내가 속한 풀뿌리자치연구소가 모처럼 후원의 밤을 연다.
한국 내에서 풀뿌리운동과 관련해 가장 많은 힘이 축적된 곳이다.
하지만 여느 단체처럼 재정상황은 계속 적자이다.
소장님과 상근연구위원, 단 2분의 인건비조차 매달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원의 밤이 그런 재정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일시적으로 단체의 곳간을 채울 수는 있다.

혹 티켓 구입에 관심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연락 주시길...
 


이제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사건사고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북풍',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라는 '노풍', 4대강'전쟁'(사업이라 부르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크더군요) 등이 시민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지요.

그리고 반MB라는 구도로 짜지는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연합으로 당선되는 건 더 어려운 듯하고, 당선되고 나면 당선자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듯합니다.
유권자연대라는 단체들이 선거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선거도 그다지 흥미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네요(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창림, 서형원, 김혜련, 오관영 등등의 선수들께는 죄송...^^;;).
그래도 흥미로운 기운은 꼬물꼬물 싹트고 있는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ㅎㅎ
하변이 만드는 새로운 블로그(www.ivoice.or.kr)도 이런 목소리를 많이 담으시겠죠?^^

저는 요즘 선거 이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 조짐이 좋지 않아서 미리 희망스런 일들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그런 일들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한양대 연구소도 그만뒀습니다(이거, 왠지 형제가 자퇴분위기인데요...ㅎㅎ).
7월에 아이가 태어나긴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분유값 떨어지면 도와주실 거죠? 아니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라도 열심히 팔아주셔야 합니다. 책 받으신 분들은 반드시 서평쓰기...ㅎㅎ)

'지식협동조합'의 뒤를 잇는 '대안대학'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꾸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공간을 공유하고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면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여기 들리는 분들도 나중에 아이가 크면 걱정이 되시겠죠. 우리 아이가 제2,제3의 김예슬이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말짱도루묵인 대학교육을 받는 아이러니를 피하려면 많이 도와주셔요.
좋은 아이디어도 주시구요.

다들 선거 때문에 바쁘실테니 선거 이후에 한번씩 찾아뵙지요.
그럼... 

풀뿌리자치연구호 이음의 출판기념회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요즘 머릿 속을 떠도는 이야기들을 대충 정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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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두 쓴 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나눠 쓴 책에 대해 제가 발제라는 걸 하려니 좀 어색하기도 하네요. 아마도 전체 기획을 한 것과 다른 분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게 떠넘긴 듯한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미 제가 발제를 한다고 다 나갔으니 몇 자 적어라도 가야 할 듯해서 글을 끄적거려 봅니다.

예전에 이음이 냈던 책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가 지방자치제도와 더불어 풀뿌리운동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는 조금 더 정치적인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올 6월의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탓도 있지만 풀뿌리의 실험들이 공동체를 의미있게 바꾸려면 정치영역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것도 있지만 뭘 해도 참 안 바뀔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단지 정치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에게 함께 정치를 하자고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저는 두 가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변화를 거쳐 왔고 민주화 속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냉소적일까?

그와 관련해 저는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 일반에 대해 수동적인 이유는 능동적이려 할 때마다 끊임없이 억눌려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제 관심은 지난 100년 동안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노력이 어떻게 좌절되었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남겼을까라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는 사람들의 저항의지를 제거하기 위해 식민지 시절부터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런 체계가 우리 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교육이겠지요. 새로운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교육이 식민지 교육의 방식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해괴한 논리로 경쟁의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강해질수록 더불어 살려는 의지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은 우리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TV 개그코너의 표현을 빌린다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는 정치의 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정도면 되었지라는 잘못된 자족감(특히 정치엘리트들의!!)도 그런 수동성에 한 몫을 하겠지요.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지나치다면 지금껏 많은 것이 변했다라는 말도 지나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도가 변한 건 맞지만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제도가 열려진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지고 있습니다. 소위 민주정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사회, 경제, 문화적 지표를 따져보면 오히려 우리 사회는 후퇴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의 탓이라고 꼭 집어 얘기하긴 어렵지만 그 탓이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요.

또한 노력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의 근원은 자기 자신의 힘이 매우 약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바꿔보려 할텐데 내가 약하다고 여기니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약하니 저 더럽고 부패한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사람들의 자신감과 자긍심이 짓밟히고 너덜너덜해져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는 무의미한 제도가 될 뿐 아니라 위험한 제도가 되기도 합니다.

위험한 제도가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냉소가 냉소로만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못 나서면 다른 사람이 나설 때 격려하고 북돋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나서는 사람을 시기하고 경멸하고 왕따를 시키는 거지요. 어느 순간 자기 자신도 이 시스템을 지키는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버린 거지요.

최근 옆 나라 일본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쏟자는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삶이 이 모양이라는 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쿄 히비야 공원에 텐트를 친 젊은이들은 구걸을 받지 않고 일하면서 당당하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조직화에 열심인 유아사 마코토(湯浅誠)는 『빈곤에 맞서다』(검둥소, 2009)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와 ‘어차피 헛일이다’ 사이를 연결하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활동이 사회 전체에 퍼지면 정치도 빈곤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더욱더 관심을 갖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채 돌아보지 않는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싶다. 빈곤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마코토만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하지메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하지메는 일상적인 삶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얘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따분한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아이고,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3년만 다니고 그만둬야지, 그때는 자유롭게 살아가야지”하는 놈치고 진짜 회사를 그만 두고 자유롭게 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안정감 위주로 무리도 안 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면 해방감 있는 세상을 맛볼 수 없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신감과 자긍심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떨까요? 최근 지방선거와 관련된 논의들을 봐도 참으로 한심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소위 야권이 단합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합공천을 하면 최소한 1석이라도 건질 수 있겠지, 연합논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니 일단 모든 지역에서 다 공천을 내놓고 협상을 해야지, 풀뿌리정치와는 그리 상관없는 생각들이 여러 매체들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거 자체를 거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거만을 바라보면 정치라는 영역이 아주 좁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에게 정치가 선거밖에 없습니까? 정당이 있고 시민단체가 있고 여러 가지 자원활동이 있고 시민들과 함께 일을 모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있습니다.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에 실린 많은 사례와 내용들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니 관심을 끊어라가 아니라 선거가 중요한 만큼 우리 일상의 정치화, 페미니스트들이 얘기하듯이 개인적인 것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상 속에서 권력의 작용을 볼 뿐 아니라 그 권력을 변형시키는 사람들의 자발성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가 정치를 그렇게 자꾸 좁게만 해석하고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을 바꾸더라도 그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제가 최근에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두레와 계같은 공동체 조직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걸 저는 18세기 정도로 봅니다. 농업기술도 발달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잉여도 생기고 상업도 활성화되는 거지요. 이런 사회의 발전이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든든하게 하고 공동체 조직은 그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18, 19세기에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던 건 아마도 이런 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저항을 꿈꾸기만 했다면 이제는 함께 저항할 사람들과 조직이 있는 거지요.

더구나 이런 조직들은 ‘회의’라는 걸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따로 정치시간을 빼야 하지만 이런 조직들에서는 일상이 곧 정치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을 겁니다. 즉 정치문화가 형성된 거지요. 그 힘이 폭발한 게 동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믿음과 종교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20세기는 바로 이런 믿음과 자발성, 공동체를 짓밟고 해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습니다. 단지 파괴할 뿐 아니라 그것을 왜곡하고 대체하려 했지요. 일종의 ‘가짜 공동체’를 만들어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관변단체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습니다. 이런 경쟁 속에서 정치문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정치문화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과정이 없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장의 문화가 사라졌다면 다시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프레이리나 알린스키, 함석헌, 장일순같은 분들이 왜 그토록 교육이라는 걸 강조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서 배움이라는 걸 강조했을까, 저는 그 이유를 바로 이런 점에서 찾고 싶습니다.

공동체가 실체로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상적인 교육의 틀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상을 보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며 단단한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거짓 공동체가 아닌 진짜 공동체가 가능하겠지요. 사람 일에 시간을 쏟지 못한다면 저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풀뿌리정치가 실현되려면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보는 관점,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삶을 바꿔야 풀뿌리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안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시대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때론 격하게 부딪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끌려가는 시대정신이 아니라 내가 끌고가는 시대정신을 만들려면 우리 스스로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수다 떨며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지요. 뭘 바라셨습니까...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두번째로 책을 냈다.
한국사회에서 왜 풀뿌리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주장했던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의 뒤를 잇는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의 풀뿌리운동이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고민하며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다뤘다.
책의 제목은 최근의 유행을 쫓아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좋은 정치]이다.

처음에 기획을 했을 때와 약간 구조가 바뀌었고, 중간에 필자가 교체되면서 기획의도가 다소 무뎌지기도 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작품이 나왔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를 냉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마련되었으면 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는 글      하승우

1부 왜 우리는 풀뿌리인가
1장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과 풀뿌리운동       장이정수·오관영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 하승우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       김현·최경송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       조양호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       정규호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       김현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       하승수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       이호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을 중심으로       김태선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       하승수

결론에 대신하여 ― 사회 흐름을 바꾸는 풀뿌리운동을 만들어가자       하승수 

아래의 내용은 들어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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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에 부활했으니 2010년이면 지방 선거는 스무 살을 맞이한다. 하지만 청년기에 접어든 지방 선거의 모습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부정과 비리, 부패가 난무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모습은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2006년 지방 선거 이후 구속된 자치단체장(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 40명을 넘고, 성매매, 음주 운전, 뇌물, 폭력 등으로 구속된 지방의원도 수백 명을 넘는다.


이렇게 그 성장 과정이 불량하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하나같이 지방자치제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렵게 부활시킨 제도이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오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잘못과 부작용이 많지만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불리는 지방자치제도는 식민지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은 맞지만 싹수가 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경험이 없는 탓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일제 강점기부터 백년 이상 조금만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면 빨갱이로 몰리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면 마치 이기주의자나 님비인 양 매도당하는 사회에서, 언제나 엘리트들이 나를 믿으라며 대중을 이끌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다. 아직 경험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며 타박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풀뿌리운동은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듯이 제도도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며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껏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장하며 자아를 찾으면 제 몫을 다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방법에 모범 답안, 완성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앙 언론에는 나쁜 모습만 비치지만 지역사회에서 소소하게 작은 변화를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기대는 헛되지 않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의 그릇이 그것에 맞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는 점에서 사람은 매우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이미 조금씩 지역사회를 바꾸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사람들이 만드는 길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능동적인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모범답안은 아니더라도 뭔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한 발 앞선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되새기고 그 의미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이 책을 기획한 이유다. 더불어 고민을 나누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1부에 실린 글들은 풀뿌리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가나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마을 사람들을 바꾸다보면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 ‘일상 속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바로 풀뿌리다.


1장인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 풀뿌리운동’은 중앙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풀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중앙과 지역을 넘나들며 경험한 느낌에 관해 편지처럼 잔잔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진행된 시민운동에 관한 반성과 더불어 활동가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는 풀뿌리운동을 지지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기보다는 드러내놓고 편을 든다. 그동안 풀뿌리운동, 풀뿌리민주주의에 관한 관심도 있었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그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풀뿌리운동의 처지에서 그런 비판을 반박하는 글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나서는 직접행동을 지지하는 날것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는 풀뿌리라는 말조차 틀에 박힌 관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 자신에서 시작하는 풀뿌리운동은 느리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튼다. 어떤 틀에 갇힌 인간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를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을 만들고 만나게 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풀뿌리운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험들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은 인터넷이 가져온 사회 변화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와 풀뿌리의 관계를 분석한다. 풀뿌리와 더불어 소통이라는 말도 유행하지만 정작 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터넷을 활용하자는 주장을 넘어 운동, 정치, 비전과 세력, 미디어라는 네 가지 지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만날 수 있다.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에서는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도입된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 등 여러 제도들이 풀뿌리라는 도마 위에 오른다. ‘자치’, ‘참여’라는 말은 유행했지만 왜 우리 삶은 변하지 않고 나아지지도 않을까? 제도만 도입되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부는 이 물음에 답한다.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는 한국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온 중앙 집권형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앙으로 집중된 개발 전략은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고 토착 경제를 붕괴시켰다. 자립성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 자율성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분권分權에서 자치自治로, 분산分散에서 자립自立으로 나아가는 전환이 필요하다.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는 주민소환제도, 주민발의제도, 주민소송제도, 주민투표제도, 참여예산제도, 주민감사청구제도 등의 시민참여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제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까다로운 제도적 제약과 행정부의 미약한 의지가 주민자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리라 기대한다.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왠지 불순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가까이 하면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그런 느낌이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가로막아왔다. 우리가 하는 일은 봉사이고 복지이지 정치하고는 무관하다, 마을 만들기에 정치색이 끼면 곤란하다, 이런 생각이 정치로 향하는 우리의 관심을 가로막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까?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은 좋은 삶을 살려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정치는 삶의 문제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좋은 정치가 필요하고, 풀뿌리운동도 좋은 정치를 위해 대의정치, 지역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헛된 공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나라 안팎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려면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며, 선한 마음을 자극하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바꿀 힘을 만들어간다. 풍부한 사례와 함께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으로 중심으로’는 서울시 노원구라는 구체적인 지역을 통해 네트워크운동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환경·교육·여성 등 다양한 관심을 가진 단체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는 지방 선거라는 어려운 과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짚어보게 한다. 관객 민주주의를 벗어나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여러 과제들도 제안한다.


이 글을 쓴 이들은 또 다른 ‘대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왜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기본 방향을 제시할 뿐 구체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운영위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이지만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다. 이음은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 풀뿌리운동 사례를 조사해서 알리고 현장의 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이 사람들이 있어 외롭다 칭얼대지 않고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꿈을 꾸며 걸어갈 수 있다. 함께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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