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에는 '죽음의 송전탑'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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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난생 처음으로 정당의 발기인이 되었다.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머리를 쿵 때렸다. 불가능한 미래를 ‘실감’하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정당과 선을 긋고 살아왔지만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아이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 선을 넘어 녹색당에 주목하게 했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가 생활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5년 만에 바꾼 핸드폰이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했다. 손만 뻗으면 충전할 컴퓨터와 콘센트를 찾을 수 있는 수도권에 사는지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녹색이념은 불편한 녹색삶으로 잘 스며들지 못했다.


단지 삶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나 그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오려고 전국에 세워지는 송전탑에 관해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매체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밀집된 핵발전소들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사고들을,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사람도 살 수 없는 끔찍한 송전탑이 마을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사람도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나 역시 태어나서 자란 부산에 핵발전소가 있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본적지인 밀양을 지나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으로 오는데, 그 과정을 단 한 번도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명절 때마다 밀양을 들락거리면서도 그곳에만 69개의 철탑을 세우려한다는 사실, 그 싸움이 지난 7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으며 나의 착함을 노출시키면서도 정작 일상의 연관고리에는 무심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 1월 16일 밀양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신고리핵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지는 765송전탑이 어르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송전탑 건설을 위한 벌목을 막으려 산을 기어오르는 할머니들에게 용역들이 ‘워리워리’하며 조롱하는 장면을 보던 74세의 어르신은 “오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자결하셨다. 마을회관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마을 입구 다리로 걸어 나오던 어르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우리는 그 절박한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탈핵 없이는 미래세대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편안함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허나 정부와 한전, 용역들을 욕한들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핵발전소와 송전탑은 계속 세워질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우리의 삶이 불편해져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CT85가 아니라 밀양의 765송전탑을 향해 탈핵희망버스가 3월 17일에 출발한다. 희망버스가 일종의 ‘연대의식’을 드러낸 사건이라면, 탈핵희망버스는 연대와 더불어 속죄를 뜻한다. 먹거리나 에너지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수도권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죄를 짓는 시대가 왔다. 화려한 서울의 전기불빛에 양심의 눈이 멀지 않았다면 송전탑이라는 가시를 뽑아내야 한다.


탈핵희망버스만이 아니다. 5개 시도에서 천 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는 그 어려운 정당법을 충족시키며 녹색당이 지난 3월 4일에 창당되었다. 조직을 동원하지 않은 창당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비웃듯, 탈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녹색당을 출범시켰다.


송전탑 하나 없앤다고, 몇몇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까 냉소하기 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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