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 불고 있는 ‘노무현 1주년’
[주목! 이 주의 책] ‘노무현이 꿈꾼 나라’ 외
2010년 05월 23일 (일) 00:12:00 민임동기 기자 gomdori@pdjournal.com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지음 / 유시민 정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을 맞아 관련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운명이다〉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한 ‘사후 자서전’입니다. 노 전 대통령 어린 시절부터 서거 직전까지 여러 사건들에 대한 고인의 솔직한 생각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굵직한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노 전 대통령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과 풍경’들이 이 책 한 권에 잘 집약돼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기록을 일관된 문제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습니다.

   
〈운명이다〉는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가 노무현 전 대통령 초기 저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운명이다〉가 주는 의미는 상징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자서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느꼈습니다.〈여보 나 좀 도와줘〉와 〈운명이다〉가 발행된 시간 차이는 꽤 있지만, 고인의 생각과 가치관 등은 놀랍도록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운명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룬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서거 1주년’을 맞는 시점에 〈운명이다〉가 주는 울림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이해찬 문재인 외 / 오마이북)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문성근 문재인 이정우 정찬용 정연주 도종환 박원순 등 10명의 사람들이 노무현을 추억하는 책입니다.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시대정신을 되새긴 책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때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정치인을 비롯해 언론인, 시민운동가, 배우, 시인 등 대중적인 지식인들이 ‘노무현의 가치와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 광주 등에서 열린 1기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어서 대화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어체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과 평가 등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진보의 미래 그리고 시민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이 책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의견과 해법을 내놓습니다.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건 ‘공통적’입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노무현’보다 ‘시민’인지도 모릅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 (이정우 외 33명 지음 / 동녘)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앞의 두 책 보다는 ‘학구적인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고인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중단된 연구들을 ‘남아있는’ 학자들이 이어가자는 의미로 발간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앞서 발간된 2009년 11월에 출간된 〈진보의 미래〉 후속편이기도 합니다. 전작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고 구상했던 ‘진보’에 대한 생각이 미완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점에서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수십 명의 학자들이 ‘고인’의 구상과 물음에 대한 답인 셈입니다.

저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와 같은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그’가 이루려 했던 여러 정책과 구상들에 대한 평가와 한계 등을 학자들이 ‘후속작업’을 통해 이어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집필자에는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지식인은 물론, 참여하지 않았던 학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학자들까지 저자로 참여한 것이 눈길을 끕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 그리고 한계 등에 대해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된 화두와 이슈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을 형성하고 있네요. 우리가 아직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다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2명의 행동하는 지성들이 모여 현 단계 민주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모색한 책입니다. 2009년 11월과 12월,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 공동으로 민주주의 특강을 준비했는데 이때의 강의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김상봉, 김종철, 김찬호, 도정일, 박명림, 박원순, 오연호, 우석훈, 정희진, 진중권, 한홍구, 홍성욱 등 익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식인들이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해서’ 시민들이 어떤 사유와 행동에 나서야 하는 지를 고민했습니다. 때문에〈다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는 우리 사회 전 영역에 대한 저자들의 진단과 다양한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그렇게 긴밀한 연관성이 없는 책인데, 읽다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1주년’ 관련 서적들과 내용적으로 무척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 앞에서 소개한 책에 필자로 참여한 분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많은 대중적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그만큼 비슷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하승우 유해정 지음 / 북하우스)

6·2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정치, 욕하시는 분이 많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는 “정치, 욕만 하지 말고 직접 해보자”고 주장합니다. 실제 이 책 곳곳에는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정보가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도시생활자들을 위한 정치 실전 매뉴얼’이라고나 할까요. 암튼 이 책, 여러 가지 면에서 참 흥미롭습니다.

사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무조건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조’만 하는 건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경우 어떤 ‘이익’을 얻게 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적극적이고 현명한 정치 참여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제도에 도시생활자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을 찍을까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고민이 앞서야 한다고 조언하는 식이죠. 대의명분이나 가치 이런 걸 떠나서 나의 욕구를 대변할 후보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정치에 대한 비난과 저주가 판을 치지만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에서는 이런 부분은 잠시 논외로 합니다. 대신 당원이 되면 주로 무엇을 하는지, 후원을 하거나 자원활동을 해볼 만한 시민단체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고를지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론 만들기와 언론사에 제보하기, 정보공개청구하기 등의 짚어주기를 비롯해 동네 예산과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관 등에 직접 참여하고 또 부당한 정치에 맞서는 길도 소개합니다.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단계별 방법을 통해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가이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모든 내용을 총 망라한 ‘백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시민의 역할과 권리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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