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니 걱정이 생겼다. 독고다이 기질이 강한 음악인들 앞에서 협동과 협동조합에 관해 말하는 게 가능할까? 냉소적인 눈빛을 받으며 상처를 안고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심은 통하리란 기대를 안고 얘기를 시작해 보련다. 말하는 사람부터 소개하자면 나는 정치학을 공부했고 아나키즘과 풀뿌리민주주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03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올해부터 대학에서 강의하는 걸 관뒀다. 관둔 이유는 내 삶을 살고 싶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 공부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욕하고 싶은 거 맘껏 욕하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냈다. 만 2살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동네에서 독서모임과 마을강좌 등을 열고 있다.

내가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알게 된 건 밤섬해적단의 장성건씨를 통해서이다. 성건씨는 학교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가 유명한 음악가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어쨌거나 성건씨를 통해 이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오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오늘 얘기는 특별한 게 없다. 그냥 살아가는 얘기, 좋은 삶을 살자는 얘기일 뿐. 그냥 뻔한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

 

자립이 뭘까?

자립(自立)이란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이다. 쿨하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일까? 그런데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립이란 거짓이다.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돈 많은 놈들도 홀로 서는 건 아니고 철저히 타자를 이용하고 착취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자립인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자를 인정할 수 없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타자를 존중할 수 없고, 나와 약속할 수 없는 사람은 타자와 약속할 수 없다. 내가 남에게 기댈 수 있어야 남도 나에게 기댈 수 있고, 내가 스스로 일어서야 타자도 일어설 수 있다. 결국 자립이란 타자와 더불어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나의 조건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런 자립을 방해한다.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을 붙이고 이긴 자에게 모든 걸 몰아주는 사회이다. 1박 2일처럼 무조건 복불복이다. 타인이 까나리액젓을 먹는 걸 보며 깔깔대고 내가 먹지 않음을 안심한다. PD가 아닌 이상 1박 2일의 멤버들이 벌칙을 영원히 피할 수 없듯이, 언젠가는 내 순서도 돌아온다.

결국 자립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규칙을 새로 짜려는 노력이다. 아마 그동안의 특강도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규칙을 새로 짜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규칙을 새로 짜지 않으면 내 삶을 살 수 없고 내 삶을 산다는 건 나의 착각이다.

현실을 약간 비틀어서 저항하기는 쉽지만 규칙을 새로 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국가나 자본의 힘은 매우 강하고 우리 일상을 옴싹달싹할 수 없을 만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체제는 사소한 일탈을 허용하지만 규칙을 새로 짜려는 건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규칙을 새로 짜는 힘을 만드는 건 혼자서 할 수 없다. 아니 자립이 더불어 사는 삶을 전제하듯이 규칙을 짜는 건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합이 필요하다.

 

합이란 뭘까?

 

이 특강을 주최하는 곳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이다. 조합(組合)이란 무슨 뜻인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어 베를 짠다는 뜻이다. 베를 짜는 게 바로 규칙을 짠다는 뜻이다. 최초의 협동조합이라 불리는 영국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이런 목적을 내세웠다.

이 조합의 목적과 계획은 1인당 1파운드씩의 충분한 출자금을 조성해서 조합원의 재정적 이익과 사회적 및 가정적 상태의 개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한 출자금으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식료품, 의류 등을 판매할 점포를 설치한다.

•많은 주택을 건설 혹은 구입해서 사회적․가정적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주거로 충당한다.

•실직한 조합원 혹은 계속적인 임금 삭감으로 고통 받는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조합이 결의한 물품을 생산한다.

•조합원의 이익 증대와 생활 보장을 위해 조합은 약간의 토지를 구입하거나 빌려, 실직해 있거나 노동에 대해 부당한 보수를 받고 있는 조합원으로 하여금 이를 경작케 한다.

•실현 가능하게 되면 조합은 가능한 한 빨리 생산, 분배, 교육 및 정치적 역량을 기른다. 즉 조합은 ‘공통의 필요를 스스로 제공하는 협동체’를 건설하거나 또는 이와 같은 협동체를 건설하려는 다른 조합을 지원한다.

•금주(禁酒)를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금주 호텔을 조합 건물의 하나로서 개설한다.

 

‘금주’를 촉진한다는 것만 빼면 참 흠잡을 것이 없는 내용이다.^^ 조합은 단순히 공동구매학고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조합은 조합원이 다른 삶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해방구이다. 조합 밖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정체성을 드러내고 조합 내의 삶을 조합 밖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뒷심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뒷심을 마련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마도 그 목적에 따라 내가 얘기할 수 있는 바가 달라질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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