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에서는 ‘법치주의’(法治主義)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은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혀 왔다. 그리고 다른 편에서는 법의 잣대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형식적인 법적용이고 국민을 법의 적용대상으로만 보는 오만한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편이 법에 따른 집행만을 강조한다면, 다른 편은 누가 법을 정하고 해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군사독재 시절의 터무니없는 말은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현실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12월, 한미FTA와 관련된 문건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던 정창수 씨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징역 9개월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그리고 올 1월에는 삼성그룹의 ‘X파일’ 사건을 폭로했던 노회찬 씨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구형받았다.

응당 국민도 그 내용을 알아야 할 FTA관련 문건을, 그것도 공청회나 토론회에서 이미 드러난 내용의 문건을 유출한 것이 구속의 이유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언론사와 대기업 간부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전․현직 검찰간부에게 떡값을 준 엄청난 비리를 폭로한 것이 처벌의 대상일까?

공공의 이익을 심하게 해치는 사건들을 폭로해서 사회적인 쟁점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잇달아 징역형을 선고받고 있다. 물론 법이 정한 과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그런 중요한 사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행동은 사회에 이로웠다. 더구나 정치과정이 그 내용을 감추며 국민을 속이려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법부가 더러운 거래와 연관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문제는 법치가 아니라 ‘법의 권위’인 셈이다.

그런데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찰과 법원은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법을 앞세운 칼날을 겨누고 있다. 검찰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을 무리하게 구속해서 수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일 검찰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말자는 운동을 이끈 혐의로 기소된 누리꾼 16명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구형했다. 시민이나 소비자로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고 운동을 펼친 것이 처벌의 대상이라니, ‘소비자운동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외친 랄프 네이더는 미국에 태어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일이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판결들이 권력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항상 ‘소신’을 강조해 왔지만, 그 소신은 시민이 아니라 권력이나 자본으로 기울어졌다. 힘없고 약한 시민들이 냉혹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국가나 경제에 기여해 왔다는 핑계로 후한 면죄부를 받아 왔다(영화 <공공의 적>의 강철중 검사처럼 권력에 맞서는 법관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일 뿐이다).

법은 강자와 약자가 같은 울타리 내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합의이다. 그런 법이 제 역할을 못하니 힘을 가진 자들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은 법이 무서워 자꾸 피하려 한다. 강자는 약자를 착취하고 조롱해서 그들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이에 약자들은 강자에게 분노와 복수심을 품으며 법을 무시한다. 각자가 능력껏 자기 삶을 알아서 지켜야 하는 곳에서 법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법치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법의 권위를 더 빨리 파괴할 뿐이다. 법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민들이 아니라 바로 검찰과 법원이니, 자기 집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외부의 혼란이 아니라 내부의 부조리가 법과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치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바로 정의와 평등이다. 헌법이 보장하듯이 법의 권위가 시민으로부터 나오고 법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할 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법을 지킬 것이다. 법의 뿌리를 지키려는 법관들의 소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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