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 성명서(http://www.twitlonger.com/show/llvqjd)와 그린비출판사의 호소문(http://greenbee.co.kr/blog/1798)을 읽었습니다. 노조는 "회사의 권한 남용과 억압적 태도에 우려를 표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이에 출판사는 " 노동조합의 비상식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에 회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기에 누구의, 어떤 태도가 비상식적이고 억압적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명서와 호소문에서 몇 가지 쟁점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회사 측의 충분한 설명이나 태도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1. 노조의 성명서는 "전체 회의가 사라졌고, 인트라넷에 자유로운 댓글 및 게시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출퇴근 기록기가 설치되었고, 분 단위 임금 삭감 통보에 이어 징계가 논의되었습니다. 사전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이 이어지는가 하면, 노동통제가 강화되고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달라진 새로운 편집프로세스도 직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도입되었습니다. 사무실 이전에 따른 환경 변화, 명절 선물 폐지, 생일 선물 폐지 등 지면상 다 나열하지 못한 무수한 근무 조건이 한꺼번에 후퇴했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출판사의 호소문에는 이런 지적에 대한 설명이 없고 대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노동자가 "그린비가 독자와 필자들과 함께 모여 소통하고,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커뮤니티로 만들고자 했던 웹사이트에서" " 그린비의 주요 필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대표이사에게 '표현의 자유'와 '노동자의 관점'을 운운하며 공격한 사태가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에 노조가 발표한 노동조건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출판사는 "9시 출근, 6시 칼퇴근. 주5일 근무에 야근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라고 밝히지만 노조의 문제제기는 출판사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설령 업무량이 적다손 치더라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일방적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는데 노동조합이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회사를 '협박'한다고 보기에는 정황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노동자가 업무상 과실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해당 업무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당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상습적인 근무태도 불량'이라고 합니다. 그린비출판사는 타임체크기를 설치하고 5분 이상 지각할 경우 징계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자를 칼출근, 칼퇴근 시키기 위해 타임체크기를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계를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도 자본주의 기업이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딱히 더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안 그러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칼출근, 칼퇴근이 좋기야 하지만 출판업의 특성상 편집자가 회사를 나서는 순간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이 당사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3. 업무에 관한 부분에서도 출판사의 징계사유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업무 과실로 인한 금전적 손실은 분명한 사실인데 "고성 및 불손한 태도", "직장질서 문란 행위"라는 사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노동자가 직장 상사(호소문에 나온 대로 편집장과 디자인팀장)에게 고성을 지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직원이 관리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를 까요?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면, 일단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새로 도입된 프로세스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에 문제가 있어 지적을 한 거라면, 그런 문제제기는 정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문제제기를 태도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건 올바른 논쟁방식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노동자는 회사에서 소리 지르면 안 되나요? 부당한 일이 있어도 그냥 참고 조용히만 말해야 하나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더구나 '불손한 태도'나 '직장질서 문란'이 징계 사유로 올라온 건 참으로 유감입니다. 불손함과 문란은 상하질서를 전제한 말입니, 노동조합의 주장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 좀 불손해지면 안 되나요? 문란해지면 문제일까요?^^ 

 

4. 회사측이 노동조합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호소문에서 "누구보다 단체협약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활동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업무상 부주의와 직장질서 문란에 대한 징계과정을 빌미로 회사측을 비난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징계마저도 악의적인 선전으로 물타기하려는 그런 행태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린비가 출간하는 책들의 성격을 볼모로 마치 '노조'를 탄압하는 회사로 몰아가는 노조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울러 노동조합이 기업 운영과 관련된 권한을 공유해야 그 기업을 민주적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김상봉 교수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책을 권합니다). 왜 노동조합이 그런 부분에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걸까요? 그리고 왜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노동조합이 팽팽한 대결을 지향할 수도 있지요. 그린비가 출간하는 책들이 진보적이라면, 출판사가 내부에서 자신의 관점을 실현하는 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5.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자와 편집자는 동반자라고 봅니다. 도판이 빠진 책임은 일차적으로 편집자에게 있겠지만, 필자 역시 이차적인 책임을 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교정지를 검토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리고 편집자는 필자가 넘긴 원고에서 오탈자만 찾는 기계적인 역할만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책이 출판되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편집자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그 책임이 온전히 편집자의 몫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궁금증이 있기에 출판사의 호소문 만으로는 "밝은 눈으로 그린비를 지켜"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린비출판사에서 책을 낸 필자로서 출판사와 노동조합이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문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출판하는 그린비출판사가 책 만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도 그런 관점을 실현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거의 결성되지 않은 출판계에서,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출판계에서 그린비출판사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이런 기대가 충족되려면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린비출판사에서 책을 낸 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주시하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입장을 같이하고 함께 지켜보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2013. 4. 30.

                                                                                                         하승우 제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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