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 불고 있는 ‘노무현 1주년’
[주목! 이 주의 책] ‘노무현이 꿈꾼 나라’ 외
2010년 05월 23일 (일) 00:12:00 민임동기 기자 gomdori@pdjournal.com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지음 / 유시민 정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을 맞아 관련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운명이다〉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한 ‘사후 자서전’입니다. 노 전 대통령 어린 시절부터 서거 직전까지 여러 사건들에 대한 고인의 솔직한 생각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굵직한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노 전 대통령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과 풍경’들이 이 책 한 권에 잘 집약돼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기록을 일관된 문제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습니다.

   
〈운명이다〉는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가 노무현 전 대통령 초기 저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운명이다〉가 주는 의미는 상징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자서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느꼈습니다.〈여보 나 좀 도와줘〉와 〈운명이다〉가 발행된 시간 차이는 꽤 있지만, 고인의 생각과 가치관 등은 놀랍도록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운명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룬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서거 1주년’을 맞는 시점에 〈운명이다〉가 주는 울림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이해찬 문재인 외 / 오마이북)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문성근 문재인 이정우 정찬용 정연주 도종환 박원순 등 10명의 사람들이 노무현을 추억하는 책입니다.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시대정신을 되새긴 책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때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정치인을 비롯해 언론인, 시민운동가, 배우, 시인 등 대중적인 지식인들이 ‘노무현의 가치와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 광주 등에서 열린 1기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어서 대화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어체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과 평가 등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진보의 미래 그리고 시민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이 책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의견과 해법을 내놓습니다.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건 ‘공통적’입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노무현’보다 ‘시민’인지도 모릅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 (이정우 외 33명 지음 / 동녘)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앞의 두 책 보다는 ‘학구적인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고인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중단된 연구들을 ‘남아있는’ 학자들이 이어가자는 의미로 발간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앞서 발간된 2009년 11월에 출간된 〈진보의 미래〉 후속편이기도 합니다. 전작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고 구상했던 ‘진보’에 대한 생각이 미완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점에서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수십 명의 학자들이 ‘고인’의 구상과 물음에 대한 답인 셈입니다.

저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와 같은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그’가 이루려 했던 여러 정책과 구상들에 대한 평가와 한계 등을 학자들이 ‘후속작업’을 통해 이어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집필자에는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지식인은 물론, 참여하지 않았던 학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학자들까지 저자로 참여한 것이 눈길을 끕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 그리고 한계 등에 대해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된 화두와 이슈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을 형성하고 있네요. 우리가 아직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다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2명의 행동하는 지성들이 모여 현 단계 민주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모색한 책입니다. 2009년 11월과 12월,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 공동으로 민주주의 특강을 준비했는데 이때의 강의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김상봉, 김종철, 김찬호, 도정일, 박명림, 박원순, 오연호, 우석훈, 정희진, 진중권, 한홍구, 홍성욱 등 익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식인들이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해서’ 시민들이 어떤 사유와 행동에 나서야 하는 지를 고민했습니다. 때문에〈다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는 우리 사회 전 영역에 대한 저자들의 진단과 다양한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그렇게 긴밀한 연관성이 없는 책인데, 읽다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1주년’ 관련 서적들과 내용적으로 무척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 앞에서 소개한 책에 필자로 참여한 분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많은 대중적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그만큼 비슷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하승우 유해정 지음 / 북하우스)

6·2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정치, 욕하시는 분이 많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는 “정치, 욕만 하지 말고 직접 해보자”고 주장합니다. 실제 이 책 곳곳에는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정보가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도시생활자들을 위한 정치 실전 매뉴얼’이라고나 할까요. 암튼 이 책, 여러 가지 면에서 참 흥미롭습니다.

사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무조건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조’만 하는 건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경우 어떤 ‘이익’을 얻게 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적극적이고 현명한 정치 참여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제도에 도시생활자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을 찍을까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고민이 앞서야 한다고 조언하는 식이죠. 대의명분이나 가치 이런 걸 떠나서 나의 욕구를 대변할 후보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정치에 대한 비난과 저주가 판을 치지만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에서는 이런 부분은 잠시 논외로 합니다. 대신 당원이 되면 주로 무엇을 하는지, 후원을 하거나 자원활동을 해볼 만한 시민단체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고를지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론 만들기와 언론사에 제보하기, 정보공개청구하기 등의 짚어주기를 비롯해 동네 예산과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관 등에 직접 참여하고 또 부당한 정치에 맞서는 길도 소개합니다.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단계별 방법을 통해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가이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모든 내용을 총 망라한 ‘백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시민의 역할과 권리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네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에 많은 얘기를 쏟아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했던 실수와 실패까지도 미화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우려했던 바이지만 그야말로 깊이를 강요하는 글들을 접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같이 사는 사람 덕분에 민주노총 부산지부에 계신 김진숙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깊이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본인은 선생님이 아니라 노동자라며 이런 호칭을 거부하겠지만 그 분이 쓰신 글들은 힘든 일 잊고 좋은 것만 기억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니 어찌 선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널리 함께 읽고 싶어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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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오전에 글을 발표할 자리가 있어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노무현이 자살했대요'라고 말하는 다른 분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농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말을 하는 분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며 이게 현실이구나 실감했다.
먼저, 그토록 싫어했지만 목숨을 버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내세에서 그가 행복한 삶을 누리길 빌고 많은 존경을 받았으면 한다.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도 화제는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황석영이 최근 이명박을 따라다니며 벌인 코미디는 화제에 오르지도 못했다.
대중이 부여한 명예를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양 권력에 빌붙어 팔아넘긴 행태는 어떠한 비난을 받아도 그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은 한국 현대사만큼 파란만장했고 그가 남긴 성공과 저지른 오류 모두가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평가가 현실권력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차단했고, 그의 유서처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그의 결단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수를 던짐으로써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정치가'임을 증명한 셈이다.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한국 현대 정치인의 반열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는 어설프게 박정희 흉내나 내는 이명박이라는 사람보다 자신이 훨씬 탁월한 정치인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남긴 유서 역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무게를 남겼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구라'를 남발하고 있을 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은 자기 그릇을 보여줄만한 '명작'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에 좌절하여 자살하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보며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깊이를 채우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결국 삶을 마감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기대를 걸었고, 또 그런 만큼 그가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많은 실망을 했다.
사실 나는 그가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즐거웠다. 한국에서 선거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허나 그것 뿐이었다.
그가 당선되어 한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리라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라 대통령이었으니까.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이 사회를 바꾸리라는 기대를 나는 버린지 오래되었으니까.

아마 당분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한 인물에 관해 얘기를 나눌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안타까움이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부안 방폐장, 대추리, 파병, 한미FTA같은 사건들은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사실에도 그를 찬양할 수 없게 한다(그 모든 사건들이 한 개인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깊이에의 강요'에서 화가가 자살하자 깊이를 강요했던 그 평론가는 이런 글을 남겼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 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런 비평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고통과 충격에 시달릴 유족들에게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수많은 시민들에게도 평안함이 다시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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