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식인 마셜 버만(Marshall Berman)은 [맑스주의의 향연] (이후, 2001)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많은 지식인들이 각자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일상 생활의 문제와 흐름에서 단절돼 있는 것이 지식인들의 직업적 위기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특별한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다른 어떤 정치운동보다도 민중에 주목하고, 민중을 존중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민중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며, 민중을 뭉치게 해,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게 한다는 사실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우리가 민중의 구체적 삶과 연결지점을 잃어버린다면, 장차 민중의 삶을 한데 묶을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민중이 세계를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처럼 민중들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중이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거나 세계를 변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거리의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한, 그 잘난 [자본론]을 읽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가 버만을 좀 좋아하는 건 그가 '거리의 지식인'이 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성공회대 사건을 보면서 버만의 지적이 아주 명쾌하고 올바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밖으로 아무리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떠들어도 결국은 자신의 일상이 그와 단절되어 있다면, 자신의 생활근거지에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욕구에 주목하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똑똑하고 좌파이론에 박식한 사람들일지라도(성공회대 교수들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 커리큘럼을 보면 이론적인 면에서조차도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들은 진보적일 수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말로만 진보를 떠드는 자들을 좀 솎아내거나 그들이 스스로 반성하며 갱생의 길을 걷게 해야 할 듯 싶다.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 이제 좀 지겹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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