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해석된다. 그런데 권리를 보장받는 인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눈 두 개, 코 하나, 팔과 다리를 가진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까? 그렇다면 원숭이나 침팬지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유독 인간에게만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앞서, 또는 그보다 뛰어난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근대에 ‘발명’된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자들처럼 이성을 가진 존재만을 인간이라 부른다면, 그 이성은 무엇으로 측정될 수 있을까? 만일 그 이성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 ‘정신’을 뜻한다면, 그런 정신이 없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사실 사람의 생활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정신을 인간의 특징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망과 문화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불편함이 다른 누군가의 당연함으로, 나의 권리가 어떤 존재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까다롭게 묻지 않더라도 개발권/발전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권리를 인간의 권리로 제한하는 순간 인권은 생태계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권을 넘어 사회적인 권리로 해석될수록 인권은 생태주의와 충돌하곤 한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태계를 파괴해 왔으니...


흔히 인권운동과 생태주의운동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인간을 위한 운동이 인간만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운동과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생태주의를 단지 자연을 보존하자는 구호로만 이해하지 않는다면, 인권이 인간이라 정의되지 않는 생명체(태아),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명체(프랑켄슈타인)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생태주의와 인권의 접점이 보인다. 그 접점은 바로 평화이다. 생명체의 생존과 생활을 권리이자 문화로 본다면 평화는 그런 권리와 문화를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다. 평화로운 삶에서 생명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 보살피는 가능성을 누릴 수 있다.



평화유지와 평화로운 삶의 차이


서양에서 평화를 뜻하는 피스(peace)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팍스(pax)는 서로 다투지 않겠다는 합의를 뜻했다. 다투지 않겠다니 평화의 의미와 일치하는 듯하지만, 평화가 단지 분쟁이나 전쟁없는 상태만을 뜻할까? 더구나 팍스라는 말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쓰이면서 이 평화는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인 평화를 뜻했다(로마시대 이후에도 팍스라는 말은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처럼 초강대국이 구현한 세계질서와 평화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팍스가 뜻하는 평화란 주체들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강요된 질서에 가까운데도 이를 좋은 상태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평화가 목에 칼을 들이댄 위협적인 질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에 따르면, 로마시대의 평화는 전쟁의 승리와 패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국이 된 전쟁 당사국들간의 합의, 전투에서 형성된 새로운 관계와 그것에 대한 로마법의 인정을 뜻했다. 여기서 평화란 무력보다 법적인 상태와 가까웠고, 평화협정이라는 말처럼 평화는 무조건적인 강압보다 인위적인 합의에 가까웠다. 평화의 다른 이름은 질서였고, 그 질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질서의 결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 팍스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은 팍스에서 유래된 피스라는 말을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평화(平和)로 번역했다. 비록 평화라는 말은 없었지만 동양에서는 태평(太平), 인화(人和), 대동(大同), 대도(大道) 등이 평화로운 삶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질서나 법적 상태를 뜻하는 평화의 의미와 달랐다. 예를 들어 《예기(禮記)》에 따르면, “대도(大道)가 행해지니 천하가 만민의 것이 되고 어질고 유능한 자가 선출됨으로써 모두가 신의를 중히 여기고 화목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만을 사랑하거나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고 모두가 한 가족같이 사랑하였다. 그럼으로써 늙은이는 수명을 다하고 젊은이는 재능을 다하고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들도 부양받게 되었다. 또한 남자는 모두 직분이 있고 여자들은 모두 시집을 갈 수 있었다.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이처럼 풍습이 순화되어 간특한 모의가 통하지 않으니 변란이 일어나지 않고, 도둑질과 약탈이 없으니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이것을 일러 ‘대동’이라 말한다.” 이 대동의 의미가 팍스나 피스와 같을까? 대동사회에서는 정부가 질서를 만들기는커녕 정부가 가만히 놔둘 때 백성들이 평화를 즐겼다. 너와 내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 누구나 꿈꾸는 이상사회는 위대한 지배자나 특정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민중의 평화로운 삶에서 구현되었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서양에서도 등장했다. 로마시대의 키케로(Cicero)는 노예제도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평화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데서 오는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며, 또 노예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근대의 공화주의자들 중 몇몇은 민중이 평화의 수호자일 때에만 자유와 평화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상가 이반 일리치(I. Illich)는 팍스에 관해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팍스라는 말을 학살을 정당화시키고 군대를 통제하는 말로 이용했지만 12세기에 팍스는 영주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일리치에 따르면, 팍스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자급할 생존수단을 전쟁의 폭력에서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런 ‘신의 평화’, ‘땅의 평화’는 단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휴전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문제였기에 평화는 하나의 질서로 환원될 수 없었고 각자의 자율성을 누렸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일리치는 “내게는 한 인간사회가 누리는 평화는 그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하는 시(詩)만큼 개성적”이고 “각 시대와 각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강요하는 평화유지와 평화로운 민중의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평화가 시의 언어처럼 다양하고 자율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강요된 질서나 살아남기 위해 타자 앞에 무릎을 꿇는 굴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평화가 지속되다보면 나의 존엄함을 잃고 자기 스스로 의지를 꺾고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는 결국 세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파괴한다.



휴전과 전쟁국가, 전쟁상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가혹한 현대사를 거쳐온 한반도의 주민들에게 평화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도 외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반도, 서로 포격이 오가며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있는 휴전상태의 한반도에서 평화란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를, 즉 질서유지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 휴전상태를 유지해야 하기에 우리는 노예상태나 강대국의 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에게 평화기념관이 아닌 전쟁기념관이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휴전과 분단이라는 현실은 지금도 평화를 위한 전쟁, 국익을 위한 파병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예외상태이다보니 병역거부가 ‘시민의 권리’나 ‘인권’의 차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징병제도가 우리에게는 상식이자 시민의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민족/국민과 적대적/위협적인 타민족/국민을 구분하는 경계가 세워지고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전쟁국가는 안보를 빌미로 자신의 질서를 시민들에게 강요할 명분을 얻는다. 전쟁국가에서는 평화로운 삶의 추구가 질서유지와 안보를 내세운 평화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전쟁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평화로운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건 기존의 평화관을 극복하지 못한 탓도 크다. 일리치는 민중의 편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역사가들도 평화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중의 혁명과 투쟁을 다룬 기록들은 그나마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누려왔는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일시적인 투쟁의 역사만 기억할 뿐 훨씬 더 오래되고 길었던 평화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리치는 “농민과 유목민, 마을문화와 가정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게는 검토할 만한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에 “속담과 수수께끼와 민요에 담겨 있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평화로운 삶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만일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간의 최소한의 폭력과 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 버린다고 일리치는 경고한다.


그리고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D. Lummis)는 전쟁이 일상화되고 평화가 예외적인 경우로 느껴지게 된 이유가 생태계의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매스컴에서는 ‘치안’, ‘안전’, ‘안정’, ‘공안’같은 말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반면에 ‘평화’니 ‘헌법 9조’니 하는 말을 입에 담으면 무슨 특수한 이데올로기나, 편중된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평화’라는 말을 더 이상 친숙하게 느끼지 못한다. 본디 평화란 각각의 가정이나 공동체나 지역 안에서 개개인이 누리던 극히 당연한, ‘안심’이라는 씨앗에서 싹튼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의 평안’이라는 기본적인 충족감이, 우리 주변에서 떨어져 나가 어느새 아주 먼 곳으로 유배되어버린 것만 같다.…사정은 환경문제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우리사회에는 자연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금욕적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와 소비라는 ‘쾌락’을 취할 것인가, 자연환경이라는 ‘인내’를 취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이런 착시현상들은 우리 자신의 삶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아니 우리의 전쟁같은 일상은 평화의 시야를 가리고, 나 자신을 전쟁의 희생자이자 전쟁을 치르는 주체로 만든다.


국가간에는 전쟁이 없지만 그런 질서를 받아들이는 한 국가 내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끔찍한 전쟁이 진행 중이다. 아주 평화로운 상태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켠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시야를 인간에서 생태계의 다양한 생명체로 넓히면 그 치열한 전쟁터가 드러난다. 한국에서도 신종인플루엔자나 조류독감,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 지역의 모든 가축들이 죽임을 당한다. 보통 한 해에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다. 살처분이라는 다소 누그러진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한 번에 수만의 생명체를 몰살하는 홀로코스트이다. 이런 살육을 저지르고도 우리가 평화를 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2003년 10월 지율스님이 고속철도 관통구간인 천성산의 도롱뇽을을 대신해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소송을 낸 것은 도롱뇽만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천성산이 죽고, 도롱뇽이 죽는다면 다음 죽을 차례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인식합시다”라는 지율스님의 말은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 끊임없이 파괴되어 왔고 그 파괴 속에 우리가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100일을 넘긴 단식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고속철도 공사는 완공되었다.


그러면서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팍스의 또 다른 명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더 이상 질서나 안보가 아니라 바로 경제이다. 전쟁국가의 명분도 경제이고 그 결정이 옳다고 믿는 우리의 명분도 경제이다. 그리고 이런 파괴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고 4대강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도록 세뇌당해온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권과 생태주의의 접점인 평화를 파괴해 왔다. 공장의 착취와 억압, 생태계의 파괴는 무관하지 않다. 토건국가의 다른 이름이 전쟁국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틀로 평화의 관점을 확장시켜야 하고 인권과 생태운동이 서로 눈을 맞춰야 한다.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辻 信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전쟁을 말할 때 저는 자연계에 대한 전쟁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환경문제와 평화문제가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유팩 같은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군수산업을 포함한 경제 그 자체가 일종의 전쟁이라는 인식은 전혀 못하고 있어요. 확신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과제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과 인권, 생태


일리치는 평화를 깨트리는 전쟁의 주역이 세상의 오해와 달리 바로 경제발전이라고 지적한다. 일리치는 민중의 평화(popular peace)와 ‘팍스 에코노미카(pax economica)’의 대립을 지적하면서 민족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민중의 자급생활을 보장하던 평화인 민중문화와 공유지, 여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엘리트들이 발전을 내세워 민중을 지배했다고 지적한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자급적 생존방식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적인 것을 ‘비사회적’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미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이런 팍스 에코노미카는 경제권력들의 균형,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질서를 민중들에게 강요한다. 자치와 자급의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경제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인권운동과 생태주의운동이 손을 잡아야 한다.


토다 키요시(戶田 淸) 교수는 민주화란 “평화(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고, 환경보전이나 차별의 극복까지도 포함하는 적극적 평화)의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얘기한다. 에너지, 군수, 자동차, 식품 등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이, 그리고 “유해상품의 합법적 판매나, 나아가서 농약의 대량사용을 비롯해서 ‘자연에 대한 폭력’까지 포함”하는 폭력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평화로운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 안에서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재생산해가는 얼개”인 서브시스턴스(subsistence)가 보장되려면 “환경과의 조화, 사회적 공정[성], 소비의존증이 아닌 진실로 풍요로운 생활조건”이 필요한데, 이는 민주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실 우리 시대에 생태는 이미 인권의 중요한 항목이다. 지적소유권에 따른 종자(種子)의 독점과 신체적인 권리의 상실, 생태계 파괴에 따른 생명체의 오염과 기형화, 가장 극단적으로는 핵의 위협이 인간의 생활세계 자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정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누리려면 내가 생활하는 터전이 그런 권리를 뒷받침해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몫 없는 사람들의 몫,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 ‘인권의 정치’라면, ‘생태의 정치’는 그 몫과 목소리의 범위를 더 넓히라고 요구한다. 아니 몫과 목소리를 나누는 기준을 해체하고 서로의 관계망의 새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녹색과 적색을 무조건 뭉뚱그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운동들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하며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자기만족을 비판하는 러미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은 아주 중요하고 또 정곡을 찌르고 있고, 저 자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기에는 아주 큰 함정이 있어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노력을 이해하고, 그 위엄을 인정하면서 논의할 수 있는 형태로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사람들의 생활과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마음이 죽었다’느니 하는 말을 그 시대에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포기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말도. 그런 말들을 내뱉고는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외국인들이 실제로 그 당시 교토에 많았어요.” 생태주의운동이 인권운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사회를 민주화시킬 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러미스는 “기업이 대규모 공해를 일으키고 있는데 내가 그런 작은 일들을 죽어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는 무력감. 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전쟁상태에서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운동에 참가하면, 자신의 활동과 거대한 환경문제와의 관계가 분명해질 겁니다. 즉 자신의 작은 행동과 커다란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거란 말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인권운동이 생태주의운동의 시야를 받아들일 때 활동의 전일성(全一性)이 회복될 수 있다.


이렇게 인권과 생태의 관점을 통합하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2004년 5월 평택에서 열린 ‘5․29반전평화문화축제’에서 문정현 신부는 이렇게 연설했다. “저는 6개월 동안 유랑하면서 평화가 무엇인가를 터득했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청주에 갔습니다. 천연기념물인 두꺼비와 맹꽁이가 개발에 밀려서 멸종이 되지 않도록 서식처를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성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고 싶은 곳을 쉽게 갈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강대국의 침략으로 죽어가는 부녀자들 노인들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그러기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리고 평화활동가 조약골은 이 강연을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로 만들었다.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일리치의 말처럼 평화를 시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들이 우리 사회에도 등장하고 있다.


평화의 시를 느끼는 감수성이 일상을 사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남이 만들어준 안전한 평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평화를 가능케 한다. 하나의 평화, 하나의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평화, 다채로운 질서를 가능케 한다. 지배자들의 구별짓기, 경계짓기, 분할통치(divide and rule)를 넘어서야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다



※ 참고한 책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음, 김경인 옮김,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 2010)

이반 일리치 지음, “평화의 근원적 의미”(《녹색평론》 2002년 1~2월호)

토다 키요시 지음, 김원식 옮김, 『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사, 2003)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혁명론』(한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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