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마음이 급하다. 주말 동안 집에서 엄마, 아빠랑 노는데 익숙해진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가야 한다. 일어나면 간단히 먹을 걸 챙겨 주고 아토피성 피부라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어린이집이라 아이 손을 잡고, 보통은 아이를 안거나 어부바를 하고 길을 떠난다.

 

집에서 십분 정도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가는 시간은 종잡을 수 없다. 가는 길에 나무와 꽃, 가게 안의 닭과 오리, 토끼와도 인사를 나눠야 하고, 중간에 있는 공원 분수대와 나무 위 까치, 참새와도 인사를 나눠야 한다. 기분 좋게 헤어지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도 계속 부른다. 그러다보면 이삼십 분이 후딱 지나가고 어린이집은 멀게만 느껴진다.

 

2주에 한번 월요일 오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주부들과 함께 사회과학책을 읽는 날엔 마음이 더 바쁘다. 아이가 조금 일찍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늦잠을 잔 날에는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하지만 아이가 억지로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 웬만하면 설득하고 조심히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안 되면 들춰 업고 뛰어야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그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다른 곳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야 아이도 강요받지 않고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더 단단한 삶을 살 거라 나는 믿는다.

 

실제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거나 모임장소로 가서 내 일을 할 시간이 생겼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돌아서는 엄마들의 표정에서 뭔가 자유와 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기에 맞이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다. 아이가 점심밥을 먹고 돌아오는 시간인 3시 즈음이면 길가에 엄마들이 늘어서 있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를 반가이 맞이한다. 아침의 여유가 없어진다면 이런 반가움이 생길까?

 

그냥 집에서 키울까 생각하다 접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평생 똥 기저귀 한번 갈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은 옛날보다 애 키우기 쉬운데 무슨 어린이집이냐며 떠든다. 하지만 대가족이 모여 돌아가며 한 번씩 안아주고 집 밖에 애 혼자 나가도 걱정 없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애를 키운다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물론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 사고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그리고 무상보육 이전에는 기본비용에 각종 프로그램 비용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립어린이집을 찾았고, 마침 동네에 시립어린이집이 새로 개원했다. 하지만 시립어린이집 입소순위를 보고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빈곤이나 장애를 제외하면 맞벌이여야 우선순위에 드는데, 취업의 기준이 “1일 8시간 이상, 월 20일 이상 근로”였다. 우리 집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일을 하지만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맞벌이가 아니다.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올 7월부터 국공립만이 아니라 민간․가정 어린이집에도 맞벌이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맞벌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누군가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건 참 어렵고 조심스러워야 할 일인데 정부의 정책결정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그리고 초인적인 노동을 칭송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유를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우리 아이는 그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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