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을 받는 우리에게 자원봉사는 그다지 매력적인 말이 아니다. 자율이나 자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강요나 강제에 의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 자원할 사람?”이라며 돌아보는 가족, 교사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불편한가. 이럴 거면 그냥 시키지 왜 자원하라고 하는 거야?

 

지금도 공공장소에서 중고등학생들이 자원봉사 띠를 두르고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교육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자원봉사시간을 인증하면서 관리하는 건 매우 어색하다. 어느 누가 다른 이의 자발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이런 한국 현실에 대해 이 책은 자발성 없이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란 강제노동과 다를 바가 없다며 돌직구를 날린다. 이 책은 자원봉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활동을 권하는 책이지만 자원봉사에 관한 환상을 심어주지 않고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바로잡는다.


자원봉사는 착한 사람들의 몫인가?

자원봉사는 단순히 착한 일을 많이 하자는 활동이 아니다. 저자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자원봉사라고 얘기한다. 상대방의 ‘편에 서는’ 활동이기에 자원봉사자는 싸움에 끼어들 수도 있다.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무조건 갈등을 피하기만 한다면 자원봉사는 어려운 일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활동, 자신의 개인적인 경력을 쌓으려는 활동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편에 선다고 해서 자원봉사가 마냥 이타적인 활동은 아니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기 속에 갇힌 자신을 대면하고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이나 가치만을 위해 살 때와는 다른 자아, 본디 자신이 되고 싶었던 자아를 만나는 과정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자원봉사란 “자기 자신을 닦아 나가는 과정”이고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 평가를 중요시할 것인가,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버리고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설 것인가”라는 물음의 과정이다. 자원봉사는 일종의 연대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체험하며 나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경력을 쌓기 위해 국제기구에 지원하는 자원봉사활동을 비판한다. “그 사람에게 가난한 이들이란 자신의 ‘경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현장에 가서 변하는 사람도 많지만, 변화를 가져오는 만남이 없다면 여전히 자기 사정으로밖에 상대방을 보지 못한다. 오직 자기 사정뿐이고 자원봉사를 하는 ‘체’ 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과장하고 광고하는 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자원봉사는 힘 있고 한가한 사람들의 몫인가?

자원봉사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활동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시간도 많은 사람들이나 자원봉사를 한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원봉사 현황을 보면, 중상위층보다 중하위층이 더 많이 참여한다. 자원봉사를 하려면 서로의 삶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힘을 가진 계층일수록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이 있듯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많이 한다.

 

그리고 성인만이 아니라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저자는 ‘아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강조한다. 똑같은 주장이라도 청소년들이 하면 사회적인 관심을 모으기 쉽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효과성을 넘어 저자는 “학교를 벗어나면 모두 한 명의 인격체”라고 강조한다. 자원봉사는 자신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니 자격요건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원봉사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건 막아야 한다. 최근 한국에도 주민자치형 도서관을 내세우며 사서를 두지 않고 자원봉사를 강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는 자원봉사자가 사서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고 “인건비를 싸게 하려고 자원봉사 활동이 이용되면 모두의 생활이 불행해진다. 내가 자원봉사를 해서 불행한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비판한다. 타인에게 불행과 고통을 줄 수 있는 자원봉사는 하지 말라는 지당하신 말씀이다. 자원봉사라는 가면을 쓴 무보수노동을 경계해야 한다.


자원봉사는 정말 자발적인가?

자원봉사는 자발적인 활동이니 남의 강요에 의한 봉사는 자원봉사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억지로 시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하도록 만드는 강요가 있었다면? 가령 봉사시간이나 학점 때문에 봉사를 한다면 그것도 자원봉사일까?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그것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자원봉사는 내가 즐거우니까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그 일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봉사할 자유도 있지만 봉사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자원봉사를 할 이유도 없다.

 

자발성은 자기 의지를 펼치는 과정이다. 그래야 자발적이라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한다. “자원봉사라는 것은 자기를 다시 돌아보고 자기를 닦아 가는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자기 모습은 거울에 비춰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 너무 깊이 생각지 말고 해 보자. 자기 나름의 자원봉사를!”


자원봉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자원봉사자들의 수가 늘어나면 세상이 바뀔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원봉사자가 적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세상이 무조건 좋은 세상은 아니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니 분리수거를 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고 쓰레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책임지고 이를 회수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구조를 바로잡아야 세상이 바뀐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우선 문제의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 그 다음에 가장 큰 원인에서 순서대로 문제를 삼아 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원봉사자는 자기 눈에 들어오는 세상만 보려 하지 말고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태계의 파괴가 경제발전과 무관하지 않고 빈곤이 전쟁과 무관할 수도 없다. 자연을 보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자원봉사가 파괴적인 발전과 엄청난 돈을 쏟아 붇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위선’이다.

 

그래서 자원봉사를 다루는 책이 글로벌 텍스(국제연대세), 다국적기업과세, 지구탄소세, 천연자원세, 무기거래세처럼 사회구조를 바꾸는 전략을 고민한다. 이렇게 구조를 바꾸려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원봉사와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얘기이다.


자신의 삶과 세상을 뜨겁게 달구자!

자원봉사처럼 미지근한 방법으로 정말 세상이 바뀔까? 뜨거운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저자는 “일시적으로 뜨거워지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줄곧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의지를 지니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다.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이 진정 큰 역사를 일군다. 우리에게 힘이 없는 게 아니라 그 힘이 약한 것일 뿐이니 뭉치면 큰 힘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묵묵히 역사를 밀고 갈 지속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큰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즐거움을 나누며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나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자원봉사, 그 속에 세상을 바꿀 힘이 들어 있다.

 

“가장 나쁜 것은 포기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망해 버리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절망한 사람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불평밖에 안 될 이야기 따위는 들어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그것 자체가 ‘자원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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