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선거는 공무원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돕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된다. 국민을 대신해 중요한 정책들을 집행하는 책임을 맡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정치논리가 아니라 법률과 규칙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부패한 권력층은 끊임없이 선거에 공무원들을 동원해 왔다. 아직도 ‘관권선거’라는 말이 언론매체에 등장할 만큼 동원의 뿌리는 깊다. 위계질서에 따라 상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또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공무원들은 어느 한 편에 설 것을 요구받아 왔다. 사회가 민주화되어도 이런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개입과 정치참여의 차이점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제는 현실을 감추고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즉 중립성은 마치 공무원들이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시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거나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행정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물론 공무원들이 수동적으로 동원만 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권력층의 비리를 폭로하고 때로는 권력층과 적절히 타협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직을 그만두고 선거에 출마해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폭로나 변신은 개인의 선택과 결단으로 머물렀고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공직사회와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밝히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밀실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고 사회의 이득보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이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사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계획을 짜고 결정하는 권한이 행정당국에 집중된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은 이미 정치의 중요한 주체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치’가 실현되도록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지하더라도, 그런 중립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은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시민으로서 투표할 권리를 통해 사회와 행정시스템을 변화시켜야 공무원의 역할을 올바로 정할 수 있다.



시민 공무원의 생각이 중요하다


미국의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제 2차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유태인 말살계획을 이끌었던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본 뒤 ‘악의 평범함’에 관해 얘기했다.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악의 화신이나 전쟁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 평범한 공무원처럼 보였다. 아이히만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책임감있게 일했을 뿐이라며 항변했다. 아렌트는 그 모습을 보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 잘못된 부조리에 대해 언제나 마음속으로만 반대를 하는 것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혹시 내 속에도 아이히만이 없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공직사회에 뿌리내린 권위주의와 관존민비의식, 반공이데올로기, 개발이데올로기, 연고주의 등은 합리적인 판단과 공감어린 연대를 가로막는다. 공무원들도 시민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며 이런 아이히만들을 몰아내야 한다.


국내외에서 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시민 공무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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