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스캔들]에 다소 무관심한 듯 매력을 풍기는 정약용 선생이 잠깐 등장을 했었다.
정조가 실제로 민중의 삶에 그토록 관심을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약용 선생은 평생 그런 관심을 지고 살았던 듯하다.
우연히 정약용 선생의 글을 접하고 그 공감의 깊이에 약간 감동을 했다.
[열하일기]를 좋아하는 쪽에서는 박지원을 띄우고 정약용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어찌보면 지나치게 많은 짐을 어깨에 지고 가려 한 게 아닐까?

일평생의 반을 귀양살이로 보내고, 6명의 아이 중 4명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삶, 그러면서도 민중들의 실제 삶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그의 삶.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한가로운 글재주로 잡히지 않는 마음과 몸의 무게가 느껴진다.
파리를 조문한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또 한번 울컥했다.
굶어죽은 민중들이 파리로 변해 날라드는 것이니 파리를 잡지 말고 조문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

경오년(1810) 여름에 엄청난 파리떼가 생겨나 온 집안에 가득하더니 점점 번식하여 산과 골을 뒤덮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도 엉겨 붙고, 술집과 떡집에도 구름처럼 몰려들어 우레 같은 소리를 내었다. 노인들은 괴변이라 탄식하고, 소년들은 분을 내어 파리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 혹은 파리통을 설치해 잡아 죽이고, 혹은 파리약을 놓아 섬멸하려 했다.

나는 이를 보고 말했다.


“아아, 이 파리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굶어죽은 사람들이 변해서 이 파리들이 되었다. 아아, 이들은 기구하게 살아난 생명들이다. 슬프게도 작년에 큰 기근을 겪었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 그로 인해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가혹하게 착취까지 당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시신이 쌓여 길에 즐비했으며, 시신을 싸서 버린 거적이 언덕을 뒤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신 위로 따뜻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살이 썩어 문드러졌다. 시신에서 물이 나오고 또 나오고, 고이고 엉기더니 변하여 구더기가 되었다. 구더기떼는 강가의 모래알보다 만 배나 많았다. 구더기는 점차 날개가 돋아 파리로 변하더니 인가로 날아들었다. 아아, 이 파리들이 어찌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 존재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마련해 파리들을 널리 불러 모으나니 너희들은 서로 기별하여 함께 와서 이 음식들을 먹어라.”


이에 다음과 같이 파리를 조문한다.


파리야, 날아와 이 음식 소반에 앉아라. 수북한 흰 쌀밥에 맛있는 국이 있단다. 술과 단술이 향기롭고, 국수와 만두도 마련하였다. 그대의 마른 목을 적시고 그대의 타는 속을 축여라.


파리야, 날아오너라. 훌쩍훌쩍 울지 마라. 네 부모와 처자를 함께 데려오너라. 이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먹어 보아라. 그대가 살던 옛집에는 잡초만 가득하다. 처마는 내려앉고 벽은 무너지고 문짝은 기울었다.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그대가 일하던 밭에는 가라지만 돋아 있다. 올해는 비가 많아 흙탕물이 흐르는데, 마을은 사람이 없어 황폐하게 버려졌구나.


파리야, 날아와 기름진 고기 위에 앉아라. 살진 소다리가 보기 좋게 구워져 있고, 초장에 파강회․생선회․농어회도 있단다.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환히 펴라. 도마 위엔 남은 고기 있으니 그대 무리들에게 먹여라. 그대의 시신은 이리저리 높이 쌓였는데, 옷도 없이 거적에 둘둘 말려 있다. 장맛비 내리고 날이 더워지자 시신은 모두 이물(異物)로 변한다. 구물구물 솟아나 어지러이 꿈틀대며 움직인다. 옆구리와 등줄기에 넘쳐나더니 콧구멍까지 가득 채운다. 그러고는 허물을 벗고 훌훌 날아가는구나.


길에는 시신만 있어 행인들이 무서워하는데, 아기는 죽은 어미의 가슴을 더듬으며 젖을 빨고 있다. 산에 무덤을 만들지 못해 마을에 시신이 뒹군다. 구덩이에 널브러져 잡초가 우거져 있다. 이리떼가 와서 좋아 날뛰며 뜯어먹는구나. 해골이 뒹구는데 구멍만 뻐끔하다. 그대는 이미 성충이 되어 날아가고 껍데기만 남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관아에 들어가지 마라. 관아에선 굶주려 여위고 해쓱한 사람을 엄격히 선발하는데, 서리가 붓을 잡고 자세히 살펴본다. 빽빽이 모인 중에 행여 한 번 뽑혀도 물처럼 멀건 죽을 겨우 한 번 얻어 마실 뿐이다. 게다가 묵은 쌀의 벌레들이 어지러이 아래위로 날아다닌다. 위세 부리는 아전들은 모두 돼지처럼 살쪘는데, 아무 공도 없건만 부화뇌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수령은 가상히 여겨 견책을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백성 구휼 그만두고 연회를 벌이는데, 북소리․피리 소리 울려 퍼진다. 아리따운 기생들은 교태를 머금고 빙빙 돌며 부채춤 추는구나. 그곳엔 음식이 풍성하게 있지만 그대가 먹을 수는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리들의 객사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가 우뚝우뚝 서 있고 창대도 늘어서 있다. 소고기국․도지고기국이 가득가득 먹음직하고, 메추리구이, 붕어찜, 오리탕, 기러기탕, 중배끼, 꿀떡에 문어오림도 흐드러졌다. 기분이 한껏 좋아 기생을 쓰다듬는데, 하인들이 큰 부채를 부쳐 대므로 그대는 그곳을 엿볼 수도 없단다. 호장은 부엌에 가서 요리를 살핀다. 숯불을 지펴 대며 왜(倭)쟁개비에 고기를 익히고, 수정과와 설탕물을 맛있다 칭찬한다.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무섭게 막아서서 배고파 호소하는 사람을 시끄럽다 물리치고, 객사에선 고요히 음식을 즐긴다. 아전들은 주막에 앉아 사람을 시켜 문서를 쓰게 해 역마를 통해 보고를 올린다. ‘백성들은 편안하며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어 태평무사’라고.


파리야, 날아오너라. 살아 돌아오지는 마라. 그대 지각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걸 축하하노니 그대 죽었어도 재앙은 형제에게까지 미친다. 6월이면 조세를 독촉하며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 사자의 포효처럼 산천을 흔든다. 가마솥도 빼앗아 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고 간다(92~93).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에 끌고 가 곤장을 치는데,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병에 걸려 죽어 간다. 백성들은 온통 눌리고 짓밟혀 괴로움과 원망이 너무도 많지만 천지 사방 어디라 호소할 데 없구나. 백성들 모두 다 죽어 가도 슬퍼할 수도 없구나. 어진 이는 움츠려 있고 소인배는 비방이나 일삼는다. 봉황은 입 다물고 까마귀만 우짖누나.


파리야, 날아서 북쪽으로 가거라. 북으로 천 리를 날아 궁궐로 가거라. 임금님께 그대의 충정을 하소연하고 깊은 슬픔 펼쳐 아뢰어라. 어려운 궁궐이라고 시비(是非)를 말 못하진 마라. 해와 달처럼 환히 백성의 사정 비추어서 어진 정치 펴 주십사 간곡히 아뢰어라. 번개처럼 우레처럼 임금님 위엄이 떨쳐지게 해 달라고 하여라. 그러면 곡식은 풍년이 들고 백성은 굶주리지 않으리라. 파리야, 그런 다음 남쪽으로 돌아오려무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