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지역사회 내의 평판이나 명망을 수집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분석하려면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한국의 지역사회지배구조를 분석하면 그 실체가 조금 드러난다. 일단, 지역사회라 해서 중앙정부와 재벌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정부와 많은 권한이 넘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7: 3이라면 지출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비중이 3: 7로 역전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여전히 중앙이 기획한 사업을 지방이 집행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소수의 재벌들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대형할인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또한 중앙언론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지배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에 위임된 집행권력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자기 마음대로 행사한다. 대통령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장은 지방정부의 예산을 쌈짓돈삼아 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재선을 위해 터무니없는 사업들을 집행한다. 이를 막을 지방의회의 힘은 약할 뿐 아니라 단체장과 연관된 보수정당이 지배하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사실 선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지방의원들은 그 권한을 가진 단체장과 결탁할 수밖에 없다. 지방공무원들(또는 그들의 관료주의)은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에 묶여 있지만 민주화 이후 독자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공무원 밑으로 통 단위까지 관변조직이 만들어져 있다. 어떠한 명분을 대더라도 이런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권력을 뒷받침하는 각종 관변단체들이 존재한다. 각 동단위까지 뿌리를 내린 새마을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의회를 빼고도 대한노인회, 각종 보훈단체, 체육단체, 한국예총, 여협, 로타리, 라이온스, 청년회 등의 단체들이 지방정부의 사회단체보조금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방정부의 각종 자문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선도위원회,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읍․면개발위원회 등 수십 개의 위원회들을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상공회의소들도 정치인, 관료, 학계, 관변단체들을 연계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로 건설업자들의 소유인 지역언론사들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개발사업을 정당화시키고, 지역의 대학들도 지방정부의 각종 용역을 받아 지방권력을 비호한다(대학교수들이 공무원 다음으로 위원직을 많이 차지하고, 각종 재단과 시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의사, 약사, 각종 직능단체들의 지역조직도 지역사회에서 이익을 거래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중앙에서 지역까지 하나의 권력망을 구성하고 서로 이해관계를 나누며 공생하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수천에서 수만 명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공권력이나 자본이 그들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준다.


반면에 우리가 가진 힘과 사람들을 한번 꼽아보자. 몇 명이나 되고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나? 민주노총, 민언련, 민노당, 진보신당, 시민단체 등 지역의 진보적인 단체들을 죄다 끌어 모아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고, 이런 단체들마저도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라 하나로 묶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누구를 믿고 누구의 편에 설까? 가치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제시하는 비전이 더 현실적일까?


이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진보적 지방자치는 그냥 말일 뿐이다. 얼마 되지 않는 몫을 놓고 싸울 것인가, 우리의 편을 더 많이 모을 것인가,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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