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안전한 민주주의’를 원하게 만드는 세뇌를 당해 왔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층은 민주주의를 가상현실의 정치논리로 만들었다. 모범시민이라면 라디오나 텔레비전, 케이블TV로 중개되는 정치를 듣거나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직접 행동하는 건 금지되었다. 누구든 정치인을 비판하고 그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장은 반드시 거리가 아니어야 했다. 왜냐하면 거리는 어떤 매개(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시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흥분하고 연대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08년 종로와 시청 앞 거리를 달궜던 시민들의 외침은 그런 모범시민의 틀이 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젊은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니들이 뭘 알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모범시민들은 여전하지만,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거리의 민주주의와 직접행동


이런 분위기에서 68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임스 밀러의 책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개마고원, 2010)는 그 뜨거웠던 나날들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다. 지은이가 스스로 고백하듯 이 책은 단지 사건들에 관한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당시 운동을 이끌었던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역사를 복원한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속엔 당시 <민주사회학생연합(SDS)>을 이끌던 사람들의 생각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과 사회운동단체에 대한 비판, 그들이 서로 드러냈던 차이들이 담겨 있다. 포트휴런선언, 미시시피의 프리덤 라이더, 마틴루터 킹의 워싱턴평화행진, 베트남 반전운동, 68년 미국 민주당의 시카고전당대회 등 굵직한 사건들이 알란 하버, 톰 헤이든, 리처드 플랙스, 폴 부스 등 활동가들의 삶과 맞물려 설명된다.


지은이의 관심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학생들이 조직을 만들어 흑인거주지와 가난한 백인들의 동네로 들어간 이유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은 “불가사의한 정신적 봉기”였고 청년들은 허무감을 떨쳐내고 “더 자유롭고 더 정당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을 함께 공유하고, 그 믿음을 실현”해 갔다. 청년들은 난생 처음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며 함께 세상에 관해 고민할 기회를 누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참여민주주의’라는 마법의 말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정답이 존재했던 건 아니었다. 참여민주주의나 거리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수사이자 실천을 통해 실현해야 할 이념이었다. 그것은 투표나 권력행위가 아니라 청년과 가난한 사람들의 우정, 토론, 행동을 통해 드러나야 할 정치적인 권리였다. 참여민주주의는 직접행동을 통해 꽃을 피웠다.



포트휴런선언과 김예슬 선언


저자는 그런 역사를 만들었던 잠재력을 1962년에 <민주사회학생연합>이 발표했던 ‘포트휴런선언’에서 찾는다. 포트휴런선언은 “우리 시대는 유토피아라는 전망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그 어떤 전망에도 열정을 전혀 내보이지 않고 있다”고 고백하며 “사람들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변화가 현재 질서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틀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이 생활하던 “현실의 대학, 낯익은 대학은 악명 높은 ‘자기 내부로의 이주(inner emigration)’를 행한 사적인 인간들이 점령한 곳”이었다. 포트휴런선언은 더 이상 이런 정지한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청년들의 선언이었고 청년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마냥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선언이 올해 초에 있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김예슬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를 자퇴했다.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는,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는,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는 고백은 아픈 공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우리의 거리는 아직도 위험한 공간일 뿐 ‘불온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포트휴런선언이 ‘그래도 대학’이라는 비빌 곳을 찾았다면, 김예슬 선언은 우리 사회에서 ‘대학조차’ 비빌 언덕이 아니라는 현실을 드러냈다. 그러니 잔소리를 할 기회만 엿보던 꼰대들처럼 청년들, 20대를 탓할 이유가 없다.


왜 당시의 미국 대학생들처럼 정신적 봉기를 하거나 프랑스 고교생들처럼 거리로 나서지 않는가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지 못하는 건 경찰의 방패나 높은 부모산성만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규칙을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비빌 언덕도, 언제나 자기 품을 내어주는 키다리 아저씨도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을 사는 청년들에게 ‘신좌파’의 열정을 전하기에 이 책은 좀 허전하다.



신좌파는 힘을 잃었는가?


이 책의 원래 부제는 “포트휴런에서 시카고점거까지(From Port Huron to the Siege of Chicago)”로 미국 신좌파운동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 신좌파운동과 참여민주주의”라는 번역본의 부제는 좀 지나치다. 그리고 지은이는 인터뷰를 한 사람들 뒤에 숨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지은이에 따르면, 참여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망, “공통의 관심을 공유한 우호적인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는 공동체”와 “현대의 삶에서 민주주의의 한계를 실험하는 매우 위험한 노력을 시도하려는 실험적인 집단”라는 전망, 서로 합의해서 공동으로 결정하려는 전망과 “모든 고정된 원칙과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발견, 즉흥적 창조, 예측할 수 없는 극적인 혁신”에 매혹된 전망 사이의 망설임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대항혁명”인 신보수주의에 제압되었다.


허나 신좌파운동은 그런 전망을 넘어선 면을 가졌고, 그건 미국에서도 그랬다. 켈너(D. Kellner)가 마르쿠제(H. Marcuse)의 유고를 엮어서 낸 『신좌파와 1960년대(The New Left and The 1960s)』(Routledge, 2005)에서 마르쿠제는 신좌파의 실패라는 말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신좌파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맞지만 혁명을 자유의 영역으로 다시 정의했던 신좌파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60년대 이후 생산과 분배에서의 자기결정이나 공장점거가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고, 신좌파의 새로운 문제제기, 즉 욕구와 만족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의식/무의식을 해방시켜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심층심리학)은 힘을 얻었다. 그런 점에서 마르쿠제는 실패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오히려 마르쿠제는 이런 경고를 남겼다. “과거에 좌파가 그랬듯이 신좌파는 후기 자본주의의 반동적이고 공격적인 경향에 희생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경향들은 위기가 확산될수록 더욱더 심각해지고 체제가 전쟁과 저항의 억압에서 자신의 출구를 찾게끔 만든다. 사회주의의 필요성은 또 다시 파시즘의 필요성과 대결하고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고전적인 양자택일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 더욱더 절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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