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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4 대형할인마트, 정말 값싸고 편리할까?(유레카)
posted by 몽똘 2009.02.04 21:38

오늘은 일요일, 온 가족이 모여 장을 보러 간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올라가니 마트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코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식을 하고 물건을 고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삑삑거리는 계산대를 지나 짐수레를 가득 채운 침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이다.

이렇게 대형할인마트에서 쇼핑하는 장면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 슈퍼맨이 일한다는 슈퍼마켓, 좌판과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인 재래식 시장과 달리 대형할인마트는 그 휘황찬란한 근대성을 자랑한다.

세계 최초의 대형 할인마트는 1962년에 생긴 미국의 월마트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1993년 11월 이마트가 처음 문을 열면서 대형할인마트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수와 판매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전체 소매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6.6%로 추정되고 있다(더구나 이마트, 홈플러스 상위권 회사의 점포수가 161개로 전체 할인마트의 47.1%, 매출액은 12.7조원으로 할인마트 매출액의 54.1%를 차지한다). 수치로 보면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채 400개를 넘지 않는 대형할인마트가 한국 전체 소매시장의 16.6%를 차지하고 있다니 엄청난 일이다.

사람들은 왜 대형할인마트를 찾을까? 대형할인마트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대형할인마트는 싸다?

 

맞벌이 부부들은 주말에 한꺼번에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를 찾는다. 이른 새벽까지도 문을 열고, 늦은 시간이면 김밥이나 초밥, 반찬거리가 몇 백원씩 할인되니 어찌 아니 좋을쏘냐. 공장에서 만든 물건들의 값은 밖에서 사는 것보다 싸고 물건이 워낙 많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웬만하면 마트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시식코너에서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고(한 때는 인터넷에서 마트에서 밥을 공짜로 먹는 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방해를 받지 않고 물건들을 서로 비교하며 살 수 있으니, 공간도 비좁고 물건도 많지 않은 소형 가게와 비교하면 대형 마트가 소비자에게 훨씬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외부와 단절된 환한 조명과 경쾌한 음악까지 틀어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형할인마트들은 매장에 진열하는 품목을 꾸준히 늘리며 공간의 복합화를 추진해 왔다. 이제는 단순히 먹거리나 가정용품같은 생필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의류매장이나 전자제품코너같은 공간들을 갖춰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한다. 이제는 기름을 넣는 주유소 기능까지 대형할인마트들이 한다고 하니, 마트에 들리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대형할인마트들은 직접 공장이나 산지와 거래하며 중간유통마진을 없애서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한다고 한다(어떤 대형마트는 자기 매장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파는 곳이 있다면 신고를 하라고 할 정도이다). 싼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니 누군들 마트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가격을 곰곰이 따져 보면 대형할인마트에서는 공장에서 만든 물건의 가격이 농산물의 가격보다 훨씬 싸다. 왜 그럴까?

앞서 봤듯이 대형할인마트는 몇 안 되는 기업이 많은 매장을 내며 소매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을 무기로 중소기업이나 공장에게 낮은 가격을 강요한다. 슈퍼마켓과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똑같지만, 마트는 슈퍼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상품을 공급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86%는 불공정거래를 경험했지만 거래를 중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참는다고 한다. 마트의 싼 가격은 중소기업을 희생시킨 대가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싸게 살수록 부모님의 월급봉투도 얇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농산물은 공장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산지의 가격을 아무리 낮춘다 하더라도 농산물의 가격은 협상하고 강요해서 결정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주변 농가의 것을 가져와서 파는 재래시장의 가격이 마트의 가격과 비슷하거나 싼 경우가 많다. 가끔 농산물 할인행사를 해도 그건 신선도가 떨어진 농산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마트는 한 가정이 필요한 만큼 작은 단위로 상품을 팔지 않거나 작은 단위일 경우 비싸게 가격을 매긴다. 그래서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언제나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을 사기 마련이다. 그러니 상품 하나하나의 가격은 싸다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돈을 쓰게 만든다.

그러니 대형할인마트의 할인은 중소기업이나 농민의 몫을 빼앗는 ‘착각’이거나 과소비를 하게 만드는 ‘환상’일 뿐이다.

 

대형마트와 웰빙

 

<지식채널e>의 ‘구멍없는 구멍가게’는 대형할인점과 동네 구멍가게를 비교한다. 대형할인마트가 늘어날수록 경쟁력 없는 작은 구멍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2001년 이후 1만 1,400개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리고 구멍가게를 애용하는 한 할아버지는 소주 1, 2병 사러 마트 갈 수도 없고 왕창 물건을 살 돈도 없다며 “조금 비싸지만 구멍가게는 외상도 되고”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더 비싸게 물건을 사야 하는 이 가혹한 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대형할인마트의 서비스가 구멍가게보다 더 좋을까?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의 서비스가 대형할인마트보다 나쁠까? ‘말만 잘하면 공짜’라는 말처럼 구멍가게에는 주인과 손님의 ‘흥정’이 있었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부족한 주머니를 넉넉한 인심으로 채울 수 있었다. 마트에 홀로 놓인 전자저울 대신 구멍가게에는 주인의 ‘눈대중’이, 부족한 사람에겐 한 가지 더 얹어주는 ‘마음’이 있었다. 자주 들리는 ‘단골손님’은 후한 대접을 받았고 때로는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니 동네의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구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구멍가게는 가게에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꽃이 피는 공간. 추운 겨울날이면 난로 주위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얘기부터 마을일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구멍가게의 역사를 장식했고 구멍가게는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었다.

이제 구멍가게가 사라지면서 단골과 흥정, 외상이라는 말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대형할인마트는 인심을 저울로, 흥정을 정가로, 단골을 포인트로 대체한다. 그 속에는 살가운 관계가 숨을 쉴 공간이 없다.

더구나 한꺼번에 많기 사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트에 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차를 몰고 마트에 가고 그러다보니 주말이면 마트 주변 도로는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변하면 그 매연은 마트가 위치한 곳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들이마셔야 한다. 그러니 그 편리함도 다른 것을 희생하고서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이다. 그런데도 대형할인마트의 서비스가 구멍가게보다 더 나을까?

김재인의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서해문집, 2008)에 따르면, 대형마트 하나가 생기면 약 150개의 점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대형 마트가 350개 정도가 되니 약 5만 개의 점포가 사라진 셈이다. 이렇게 대형할인마트는 동네의 구멍가게들의 문을 닫고 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앤다.

그래서 2008년 3월 5일에는 <대형마트 규제와 중소상인 육성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대형마트 입점 규제(인구수와 재래시장과의 거리를 고려할 것), 대형마트 영업 규제(중소상인에게 영향을 주는 품목 제한, 오후 8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규제), 처벌규정 강화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형할인마트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형할인마트에서는 누가 일을 할까? 마트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거나 물건을 진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심지어 마트는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부의 용역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을 데려다 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 시작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후마니타스, 2008)는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내 아이들만큼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가 대형할인마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이고 그 비율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대형할인마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중소기업이나 농민, 구멍가게의 희생이 늘어나고,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형할인마트가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그런 악순환을 막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얼마 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같은 대형할인마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팔겠다고 밝혔다(심지어 어느 마트는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표기해 판매하기도 했다). 마트들은 저마다 가격을 낮추는 가격경쟁을 벌이며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있다. 이윤을 늘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고 팔려 한다는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와 대형할인마트는 동일한 논리에 서 있다.

우리 삶을 바꾸는 변화를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마트보다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게를 찾는 것에서부터 조그만 변화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