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이 좋다.
케케묵은 책냄새보다는 책장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목적없는 방황을 좋아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지식인들의 고질병 중 하나인 '책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늘어나는 책값을 감당하지 못한 현실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이사할 때 책을 싸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요즘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서 본다.
지역도서관에 신청할 때도 있고 학교도서관에 신청할 때도 있고.
좋은 책이라면 신청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즐거움도 있고...

도서관을 애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목적없이 책장 사이를 헤매다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원래 찾으러 간 책 옆에 꽂혀 있는 책에 꽂혀 그 책을 빌려 도서관을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세 권이다.
원래는 각시를 위해 '인권의 발명'이란 책을 빌리려 했으나 어쩐 일인지 책장에 꽂혀 있지 않았다.

첫번째 고른 책은 조희연 등이 엮은 '한국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동학'이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학진과제로 수행한 개별 연구들을 묶은 책이라 내용이 아주 튼실하지는 않지만 몇몇 글들은 흥미로울 듯해서 빌렸다.
주된 관심은 김동춘 교수가 쓴 '민주화 이후의 지구화 국면에서 한국의 계급구조화'이다.
목차를 보니 이광일 선배의 '민주화 전후 지역정치와 사회경제적 독점구조의 재구성'이라는 글도 눈에 띈다.
예전에 토론회 때 잠깐 읽은 적이 있는데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른 한 권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사상가 후지따 쇼오죠오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이다.
기회가 되면 한국 뉴라이트들의 정신세계를 밝히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그럴 가치조차 없을 듯해서 미뤄왔다.
신지호를 비롯한 여러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듯해서 빌려왔다.
쓰루미 슌스케의 책과 서로 엮여있는 책인데,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 전향연구회를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글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뉴라이트들을 까발리는 글을 한번 써볼까 생각중이다.

책장 사이를 헤매다 발견한 수확이다.
박현주씨가 쓴 '행동하는 양심'.
각시의 권유로 불복종에 관한 연재를 고민하고 있는데, 한발 앞서 그 내용을 잘 묶어냈다(올 7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
미국의 프리덤 라이더스와 함께 남미의 치코 멘데스, 인도의 칩코운동, 간디의 소금행진 등을 흥미롭게 잘 썼다.
이미 잘 다룬 책이 나와 있기에 불복종에 대한 연재는 포기하고 다른 기획으로 바꿔야 할 듯.
하지만 '법원이 시민불복종을 재판할 수 있는가'라는 다소 문제적 제목의 논문을 쓰고 있는 관계로 시민불복종에 관한 고민을 정리하는 건 필요할 듯 싶다.
불복종이라는 부정의 개념 말고 긍정의 개념을 새로이 만드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다.

어쨌거나 오늘 도서관을 헤맨 결과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이 책들에 대한 구체적인 리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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