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시민네트워크에서 나눴던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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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풀뿌리민주주의는 가능할까?

   

1. 2010 풀뿌리민주주의

 

1) 2010년의 정국은?

-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 5월 23일. 중앙정치 이슈가 지역의제를 압도할 가능성이 높음.

- 4대강사업, 행정구역통합 등 각종 사업들이 대기하고 있음. 예전 관행을 볼 때 지역별로 각종 개발사업들이 패키지로 공약될 가능성이 높음.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운 개발사업들도 쏟아져 나올 듯.

- 자립과 자치를 모색하는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음.

 

2) 2010년에는 선거만 있나?

- 한일합방 100주년, 4월민중항쟁 50주년, 5월 광주항쟁 30주년. 95년 단체장선거 실시 15주년 등 여러 기념일들.

- 2010년 한 해를 선거만 준비하며 보내야 할까? 4월, 5월의 흐름을 이어 6월의 정치운동, 2011년을 기획하는 운동으로 나아간다면...

 

3) 그래도 선거는 중요하잖아...-.-;;

- 2006년 5․31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48.9%)보다 높은 51.6%. 정당득표율은 한나라당이 53.8%, 열린우리당이 21.6%, 민주노동당 12.1%, 민주당 9.9%를 기록. 16개 광역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2곳, 열린우리당이 1곳, 민주당이 2곳을 차지. 230개 기초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55곳, 열린우리당이 19곳, 민주당이 20곳을 차지. 733명 광역의원 중 한나라당이 557곳, 열린우리당이 52곳, 민주당이 80곳, 민주노동당이 15곳을 차지. 2,888명 기초의원 중 한나라당이 1,622곳, 열린우리당이 629곳, 민주당이 276곳, 민주노동당이 66곳을 차지.

- 전체 당선자의 성별을 살펴보면, 남성이 86.3%, 여성이 13.7%. 광역단체장 16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고, 230개 기초단체장 중에서도 여성은 불과 3명.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선거에서도 여성의원의 당선비율은 각각 4.9%, 4.4%. 대부분의 비례. 지역구 여성 지방의원 비율은 4.26%. 진보정당 진입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적 계층, 계급, 성별 구조가 제도정치에서 대표되고 있는가?

-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당선,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민주당 1명, 진보신당 1명, 무소속 후보 3명 당선, 경기도 시흥시장도 민주당 후보.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서울시 광진구에서 한나라당 후보 1명이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강원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전라남도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 구시군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1석도 얻지 못했고 민주당이 2석, 민주노동당이 1석, 무소속이 2석을 차지.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 선거들을 통해 진보세력은 단결했는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운동은 반MB후보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를 위한 공동후보를 결의할 수 있을까?

 

4) 선거란 무엇을 하는 공간일까?

- 선거는 당선되기 위한 공간. 그러면 낙선되면 모든 게 끝일까?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낙선가능성이 당선가능성보다 매우매우 높다. 그렇다면 선거에 왜 나갈까?

- 선거 때 당선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평상시에 지역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선거 때의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해서 4년 동안 활동한다면...

- 어차피 낙선할 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발언을 하기 위한 공간,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일본의 열혈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 기가 막혀……부러워 침이 다 나오네! 빌어먹을! 잠깐만!? 그럴 게 아니라 입후보해서 직접 해보면 될 것 아냐? 어라, 뭐라고라고라? 마침 그때 선거철이 다가왔기에 주저 없이 입후보를 하기로 했다. 2007년 4월 22일에 투표하는 스기나미 구의회의원 선거였다. 말할 것도 없지만, 금배지가 탐나서 선거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길거리를 우리 것으로 탈환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도해본 것이었다.…나는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벗대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동네 토박이나 유지들한테 잘 보이려고 손바닥을 비빌 필요도 없다.…하여간 이 기간에는 기본적으로 역 앞이든 어디에서든 언론 활동이라면 무엇을 해도 군소리가 없다, 이거다! 이런 해방구가 어디 있을쏘냐? 더구나 선거활동은 공짜로 할 수 있으니까 돈 걱정도 없다.…중간중간에 “가난뱅이가 설치면 매일 축제다, 축제야!” “따분한 이 세상, 얌전하게 살 줄 알고! 가난뱅이의 본때를 보여줄 거야!” 등 마쓰모토 후보의 ‘가두연설’도 섞어 넣었다.…소동은 소동이고 선거는 선거다. 투표일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다음날 개표 결과가 나왔다. 1,061표를 얻어 떨어졌다. 당선하려면 2,000표 이상을 얻어야 하는데 절반 정도 표가 나온 것이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지만, 공탁금 몰수 라인인 400표는 넘겨(넘기지 못하면 사전에 걸어놓은 30만 엔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빌어먹을 규칙)작전은 대체로 성공리에 끝났다.…여하튼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투표소까지 찾아갔다는 것은 대단한 현상이다. 난 평범한 재활용 가게의 손님들이 내게 표를 찍어주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언제나 책장이나 냉장고를 사주는 아줌마 집에 배달하러 갔더니 “점장한테 한 표 찍었어!”하시는 거였다. 또 이웃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우리 가족 전부 마쓰모토를 찍었어”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 그래도 선거가 중요하다면 주민들의 책임서명 운동을 하면 어떨까?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뽑은 책임을 지고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서명운동. 선거감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가 스스로 결의하고 동네 일에 참여하겠다는 공정선거운동...

 

 

2. 2010년을 바라보는, 주민들을 만나는 단체활동가들의 역할

 

1)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야...

- 당선자는 행복했을까? 그나마 당선되면 노련한 지역 활동가가 사라지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지역정치인이 생기는 장점(?). 허나 지방의회에서 소수파로서 그다지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고 개인적인 야심에 따라 활동영역을 광역, 국회의원 등으로 넓히다보니 정작 자기 기반이 약해짐.

- 단체 후보를 당선시킨 단체는 행복했을까? 출마 후 지역단체들의 활동영역과 지역정치인의 활동영역이 괴리되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하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음. 단체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도움을 못 받는다는 불만, 정치인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소수파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

- 선거를 통해 민중권력을 창출했다? 새로운 지역비전을 만들었다? 과거 울산의 경험을 보면 그런 평가는 불가능하다.

- 보수정치인들은 모두 바보다? 한나라당에서 공천받아 출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공천권을 딴 사람들일까? 그들은 지역기반도 없이 한나라당에 기생하는 사람들일까?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관변단체 출신이라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우리는 적에 대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반면 우리 활동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 과거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임파워먼트(개인적 임파워먼트와 조직적 임파워먼트)를 강조했다. 왜 그럴까?

 

2) 정치에 상상력을!

- 정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구조를 개혁할 뿐 아니라 권력을 주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정치권으로 투신하고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것, 분명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치세력화는 더욱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실현된 적이 있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 걸까?

-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것보다 선출되고 난 뒤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 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을 강조한다. ‘대리인 운동’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리인만큼 중요한 것이 상호성장이라고 본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든 그 속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 제도권 밖의 운동이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고민에 활력을 제공하는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체계가 있어야 정치세력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 선거는 승리하든 지든 지역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서로 치유할 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있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은 없나?

- 선거에 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는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정치화되고 정치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저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다. 정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주민운동에 요구된다.

 

3) 바이러스가 되자.

- 바이러스는 왜 무섭나. 바이러스는 종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불가능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언제나 변종을 만들어 낸다. 항상 정통과 순수를 고집하는 우리 문화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활성화시키는 문화적 균열을 만들어내야 한다.

- ‘나는 한 놈만 친다’는 주유소습격사건의 정신을 가지자. 끝까지 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바이러스가 되자. 주민들 한명 한명이 자기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게 하자. 우리 사회는 이런 정신이 부족하다. 미국산쇠고기 수입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 정치적 중립성은 포기하자. 특정 정당보다 특정 정책을 지지하면 부담은 줄어든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만들려면 내 자신 스스로가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나는 진정 정치적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정치적 바이러스인가?

- 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법의 활용. 정치적 기회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야. 스스로 움직이고 증식하고 복제하는 바이러스가 되자. 바이러스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라 싫으면 백신이 되자...^^;;

 

4) 소위 진보정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하자!

- 시민단체는 정치적으로 엉거주춤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지만 진보정당은 분명한 입장을 나타낼 수 있다. 시급한 것은 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 특히 균형발전에 대한, 지역정치에 대한 당의 입장을 요구하자. 진짜 민중권력인가?

- 국회에 진출한 자원과 지역의 연결가능성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하자. 즉 아젠다 형성과 정책연관성을 살리고 법률과 조례가 결합하는 중간매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선서를 받자.

- 지역 내에 이미 마련된 풀뿌리 인프라에 대한 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역의 자원이 겹칠 경우 당은 자기정당 후보의 당선을 고집할 것인가? 정당공천제를 팔아 자기 이익을 꾀하는 정당이려는가?

- 정당공천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단체가 함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negative한 전략이 아니라 positive한 전략으로 자치정책의 가능성을 제안하자.

- 안 하면 친하게 지내지 말자...^^;;

 

5) 지금부터 지역사회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하자!

- 계획을 짜는 사람들은 바로 주민이다. 우리 지역사회의 자원, 기술, 문화, 지식, 절차를 찾아내자.

- 진보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이런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자. 4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도 로드맵을 짜보자. 중간중간 평가과정을 거쳐 못 하면 혼내주자.

- 지역단체들이 내년 선거에서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그 내용을 분명히 만들고 선거가 끝난 뒤가 아니라 2010년 말에 평가하자. 선거에서의 목표는 당선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정책, 청소년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의제들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순환되도록 하자. 단순히 선거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를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자.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회계보고서’처럼 주민조직의 ‘생활정치보고서’를 만들어도 좋을 듯. 그러면 4년마다 형식적으로 선거를 준비하지 않고 조금씩 축적된 역량을 갖출 수 있을 듯. 이번 선거 시기에는 이것을 이슈화하고 다음 번에는 다른 것들을...

 

 

3.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 정치 사례

 

- 다른 나라 얘기는 지겨우니 그만 하자. 그래도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자.

-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교과서는 마치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이 이 저항을 일으킨 양 묘사하지만 3․1운동은 민중의 거대한 꿈틀거림이었다. 자신이 자주민(自主民)임을 자각한 민중은 그 이후 60일 동안 1,214회의 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가 박은식에 따르면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200여 만명이 참가했고 그 중 7,509명이 사망하고, 15,850명이 부상당했으며, 45,306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조선총독부는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하고 12,00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다). 독립선언서가 이 운동을 자극했을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물결을 움직인 힘은 민중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왔다.

- “안성의료생협 이사회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상당히 보수적이거나, 협동적이지 않거나, 민주적이지 않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3년 혹은 6년 이사회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적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분들이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난 후, 지역사회 농협의 이사가 된다든지, 농협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 된 이사를 중심으로 해서 서포트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든지,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안성의료생협의 한 실무자 인터뷰 중.

- 부산의 한 지역에서 아주머니들과 지역신문을 만들 던 G씨는 저녁에 편집회의를 할 수 없었다. G씨를 제외한 전원이 주부였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모임 중에 서둘러 집에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에 G씨는 남편들을 참여시키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남편들을 일일이 만나기로 하였다. G씨가 선택한 방법은 남자들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 온 저녁 시간마다 소주 몇 병씩을 사들고 이들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1년 정도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마을의 남성들과도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에 따라 G씨와 자신의 아내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이들은 마을 일에 대한 적극・핵심 참여자가 되어 있다.

- 강원도 원주시에는 전체 30만 인구 중에 2만 명 이상이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전체 자산규모가 4천여 억원에 이를 만큼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다수의 협동조합들이 건설되고 조합원 수가 늘어나는 현상과는 별개로 지역사회는 점차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여타 지역의 상황과 그리 차별적이지 않았다. 이는 협동조합의 사업적 성과가 지역사회로 연계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에 원주지역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협동조합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대안적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별 협동조합의 발전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협동조합의 철학과 원칙에 따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여 <원주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주민참여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생명의 도시에 걸맞게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구조를 만들며, 협동경제의 이윤을 지역복지 개선을 위해 환원하는 등 진정한 지역공동체 건설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에서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시기에 복지정책를 주요한 정책적 이슈로 제기하기 위하여 시장후보들에게 제안할 구체적 복지정책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천안의 복지기관 및 단체들에 네트워크를 제안하였다. 정책 제안은 각 복지기관 및 단체들이 자신들의 복지영역에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고 이것을 전체가 모여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천안을 복지세상으로 만드는 33가지 방법’이란 정책제안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제 복지기관 및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차기 시장에게 관철하기 위하여 가능한 많은 주민들을 이 토론회에 동원하였고, 결국 사회복지라는 단일 주제에 따른 토론회에 1,000명 이상의 유례없는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였다. 이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장은 이들의 주장 대부분을 정책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같은 성과가 발생하자 보다 많은 사회복지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으며, 다음 선거인 2006년 선거를 대비하여 <531지방선거 복지천안을 위한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지난 번 선거에서 이 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한 참여 주체들은 이때에도 사회복지 예산, 지역복지인프라, 아동보육 등 모두 9개 영역 23개 의제를 확정하여 900여명이 참여하는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두 번의 성공적 사례는 천안시로 하여금 이 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내용에 무게를 싣도록 하였으며, 현재에는 천안시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 성공한 사례, 실패한 사례 모두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사회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모범답안은 없고 해법은 밖에 있지 않다.

레디앙에 글이 실린 뒤 경향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독한 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데,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비슷한 얘기를 하승수씨는 '착하게' 썼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1830)
당분간 시민운동과 '다소' 불편한 관계로 지내야 할 듯...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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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국정원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개입하거나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기업들을 뒷조사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지난 6월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가 그러한 소문이 사실이라 밝히자, 국정원은 국가가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유례없는 해프닝을 일으켰다. 이에 박원순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은 최근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이 개입했던 여러 가지 정황을 밝히며 민주주의의 후퇴에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이번 일이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나 시민단체의 대응을 보며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왜냐 하면 박원순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목소리가 한국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기자회견문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를 떠난 뒤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새로운 운동영역을 개척하려 했다고 밝혔다. 기부문화와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 등을 한국 시민사회의 화두로 만든 것은 공이라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박원순 변호사가 그 영역을 언급하기 전에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밥할머니로 대표되는 기부문화가 있었고, 아름다운 가게 전에 녹색가게가 있었으며, 많은 풀뿌리 단체들이 자기 마을을 지켜왔다.

그런데 운동의 아이콘이 만들어지면서 ‘자원의 집중화’가 이루어졌고, 몇몇 단체들이 시민사회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이 기존의 운동과 보폭을 맞춰야 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정부와의 파트너십이나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양적인 성장’을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건드린 부분은 박원순 변호사의 ‘약한 고리’였다. 기자회견문을 찬찬히 읽어 보면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와 전면적인 싸움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만일 국정원의 활동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이 기자회견은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 마련되었을 것이고 고발 전에 사례가 공개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기자회견은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나 저항운동’보다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번 소송에 많은 기대를 걸고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책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실 시민단체들의 성명서에서 나오듯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조차도’ 정부를 비판했다가 큰 코를 다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은 활동가들은 그동안 어떤 고초를 겪었을까?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각종 고발과 벌금형에 시달려 왔다. 갖은 시련을 견디며 민주주의를 일구는 것은 대표선수만의 몫이 아니었다. 대표선수들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나설 자리는 아직 마련될 수 없는 것일까?

국정원의 한심한 짓을 통해 우리의 시민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좋겠다. 결자해지의 지혜를 기대한다.


몇일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장원의 고발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은 이미 전문으로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발표되었으니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7125625&Section=03)

국정원이 주요한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들리는 소문이 아니니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국정원이 국가를 내세워 민간인에게 명예훼손을 빌미로 고발한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박원순 변호사의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시민사회진영이 조금씩 단결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박원순 변호사가 흘린 눈물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다른 애기를 한다는 게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행동에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박원순 변호사가 '절반의 진실'만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전에 따르면 진실은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름'을 뜻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거짓 없이 얘기했지만 참되고  바르게 얘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자회견 내용에 관해 최소한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박원순 변호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활동해 왔다.

"저는 참여연대를 떠난 이후로는 정부 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을 맡겨놓고 나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박원순 변호사는 실제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운동과 거리를 두어 왔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이슈와 운동에 관심을 두고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활동을 평가할 때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기존 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주로 자신이 주도했던 참여연대나 총선시민연대의 관점을 따랐고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아주 독선적인 자세로 대했다. 예를 들어, 하종강 선생의 글을 보면 박원순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드러난다(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read&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

그러면서도 박변호사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비자금에 면죄부를 제공하는 사회공헌위원회에 선뜻 참여하기도 했다(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15586). 한국의 재벌들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찬성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내용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가령, 삼성처럼 노조조차 금지하는 재벌이 회장의 비리를 면죄받는 조건으로 수천 억원을 내놓는다고 할 때, 그것을 기부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삼성이 진정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면 그룹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제대로 처우하고 노조를 설립하는 게 진정한 사회공헌이 아닌가?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 내의 노동조건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듣기 못했다.

이런 자세는 운동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듣는 사람이 불쾌할 수 있지만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자세가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실련>이 시민운동을 내세우며 기존의 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을 때 운동간의 연대는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그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더 심각한 점은 시민운동이 소수의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창안과 상상력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시민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고 그런 영역을 선점해 버렸다. 나는 그것이 일정 정도 스스로를 옥죄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실 기자회견 전문을 볼 때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의 내용은 부당함에 대한 항의이지 그 부당함의 원인에 대한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지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알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가야 할지 판단하는 역할은 그 자신이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그를 좋아하거나 그의 실용적 정책이나 의견수렴을 좋아할 생각이 없다. 용산참사는 200일을 넘어섰고 내가 아는 인권활동가들은 상습적인 벌금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착한 이명박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셋째, 박원순 변호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역홍보센터나 하나희망센터, 아름다운 가게 건, 민간단체의 인사에 국정원인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이한 세력들이 관여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던 내용들이다. 지금 시대에 국정원이 그런 곳에 실제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기자회견 전문을 읽으며 걸렸던 부분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위치도 있고 충분히 그것을 문제삼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왜 이제서야 그 문제를 폭로하는 가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의 개입을 언급한 시점은 올해 6월 23일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드러난 정황만 봐도 지역홍보센터 계약해지 시점은 올해 2월이고, 하나희망재단이 부결된 것도 올 1월이다. 그외 박원순 변호사가 개인사찰이나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탄압으로 얘기한 사례들도 대부분 올 5, 6월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특히 올해부터 개입을 일삼았다는 얘기일까?

친박연대가 국정원의 사찰을 얘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왜 그동안은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작년부터 심심찮게 국정원의 정치사찰 얘기가 나돌고 국정원법 개정이 논란이 되었는데, 왜 그 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한 사람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건 더욱더 위험하고 운동을 망치는 일이다. 다만 이번 기자회견이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운동'보다는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듯 드러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의 내용을 문제삼아 박원순 변호사가 '큰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단 역시 그리 달갑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한 개인의 영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박변이 개입했으니 일이 좀 되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운동이 싸워온 그 모든 내용이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으로 드러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벌금형과 수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냉소와 무시 등에도 굴하지 않고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개인적인 부조리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운동의 '선배'라면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 나는 선배들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고, 설령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면 그 성과를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그런 역할을 다하는 '진정한 선배'를 중앙의 언론에서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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