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장원의 고발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은 이미 전문으로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발표되었으니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7125625&Section=03)

국정원이 주요한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들리는 소문이 아니니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국정원이 국가를 내세워 민간인에게 명예훼손을 빌미로 고발한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박원순 변호사의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시민사회진영이 조금씩 단결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박원순 변호사가 흘린 눈물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다른 애기를 한다는 게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행동에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박원순 변호사가 '절반의 진실'만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전에 따르면 진실은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름'을 뜻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거짓 없이 얘기했지만 참되고  바르게 얘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자회견 내용에 관해 최소한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박원순 변호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활동해 왔다.

"저는 참여연대를 떠난 이후로는 정부 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을 맡겨놓고 나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박원순 변호사는 실제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운동과 거리를 두어 왔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이슈와 운동에 관심을 두고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활동을 평가할 때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기존 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주로 자신이 주도했던 참여연대나 총선시민연대의 관점을 따랐고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아주 독선적인 자세로 대했다. 예를 들어, 하종강 선생의 글을 보면 박원순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드러난다(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read&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

그러면서도 박변호사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비자금에 면죄부를 제공하는 사회공헌위원회에 선뜻 참여하기도 했다(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15586). 한국의 재벌들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찬성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내용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가령, 삼성처럼 노조조차 금지하는 재벌이 회장의 비리를 면죄받는 조건으로 수천 억원을 내놓는다고 할 때, 그것을 기부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삼성이 진정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면 그룹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제대로 처우하고 노조를 설립하는 게 진정한 사회공헌이 아닌가?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 내의 노동조건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듣기 못했다.

이런 자세는 운동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듣는 사람이 불쾌할 수 있지만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자세가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실련>이 시민운동을 내세우며 기존의 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을 때 운동간의 연대는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그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더 심각한 점은 시민운동이 소수의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창안과 상상력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시민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고 그런 영역을 선점해 버렸다. 나는 그것이 일정 정도 스스로를 옥죄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실 기자회견 전문을 볼 때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의 내용은 부당함에 대한 항의이지 그 부당함의 원인에 대한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지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알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가야 할지 판단하는 역할은 그 자신이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그를 좋아하거나 그의 실용적 정책이나 의견수렴을 좋아할 생각이 없다. 용산참사는 200일을 넘어섰고 내가 아는 인권활동가들은 상습적인 벌금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착한 이명박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셋째, 박원순 변호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역홍보센터나 하나희망센터, 아름다운 가게 건, 민간단체의 인사에 국정원인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이한 세력들이 관여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던 내용들이다. 지금 시대에 국정원이 그런 곳에 실제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기자회견 전문을 읽으며 걸렸던 부분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위치도 있고 충분히 그것을 문제삼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왜 이제서야 그 문제를 폭로하는 가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의 개입을 언급한 시점은 올해 6월 23일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드러난 정황만 봐도 지역홍보센터 계약해지 시점은 올해 2월이고, 하나희망재단이 부결된 것도 올 1월이다. 그외 박원순 변호사가 개인사찰이나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탄압으로 얘기한 사례들도 대부분 올 5, 6월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특히 올해부터 개입을 일삼았다는 얘기일까?

친박연대가 국정원의 사찰을 얘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왜 그동안은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작년부터 심심찮게 국정원의 정치사찰 얘기가 나돌고 국정원법 개정이 논란이 되었는데, 왜 그 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한 사람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건 더욱더 위험하고 운동을 망치는 일이다. 다만 이번 기자회견이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운동'보다는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듯 드러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의 내용을 문제삼아 박원순 변호사가 '큰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단 역시 그리 달갑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한 개인의 영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박변이 개입했으니 일이 좀 되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운동이 싸워온 그 모든 내용이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으로 드러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벌금형과 수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냉소와 무시 등에도 굴하지 않고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개인적인 부조리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운동의 '선배'라면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 나는 선배들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고, 설령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면 그 성과를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그런 역할을 다하는 '진정한 선배'를 중앙의 언론에서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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