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란 말은 낯설다. 사회경제란 말도 익숙하지 않은데 협동사회경제라니... 낯설지만 이미 ‘협동사회경제’라는 말을 쓰는 곳들이 여럿 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외국에서도 협동사회경제라는 말을 쓸까? 찾아보면 ‘cooperative/social economy’라는 말은 쓰지만 협동사회경제라고 붙여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을 쓰게 되었을까?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는 자신의 출범배경으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협동조합기본법제정연대회의>와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해 구성되어 6년 여 동안 활동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가 통합된 조직으로, 2012년 11월 21일 출범하였습니다. 연대회의는 한국의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제 단체들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 연대조직으로서 한국의 사회적 경제운동의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 밝힌다. 이 맥락을 읽어보면 협동사회경제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 사회적 기업을 중심으로 한 진영의 결합체를 뜻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경제운동의 활성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듯하다. 그렇다보니 두리뭉술하고 ‘협동사회경제’라는 말이 뭔가 입에 짝짝 달라붙지는 않고,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약간 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강의의 주제인 협동사회경제의 사례를 본다는 것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사례들을 본다는 것일까? 어느 협동조합의 규모가 어떻고 어떤 사회적 기업이 잘 된다는 얘기는 이미 언론이나 출판을 통해 여러 차례 다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가 만든 협동조합 사이트에서 알림마당→자료실로 들어가면 ‘아름다운협동조합 만들기’를 다운받을 수 있다. 거기서 기본적인 자료들을 얻을 수 있고,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 사회적 경제→사회적 경제 자료실에 들어가면 ‘협동조합 운영 사례집’을 다운받을 수 있다. 그 사례집에는 국내외 50개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김현대 등의 『협동조합, 참 좋다』(푸른지식, 2012년), 김성오 등의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겨울나무, 2013년)를 참조해도 좋다.

 

이 이상의 사례들을 논하는 건 나의 능력 밖이다. 심지어 나는 외국에 사례를 보러 나가본 적이 없고 그런 욕망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사례 얘기를 들어야 하니 좀 우울하실 터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자리에 섰을까? 몇 가지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1. 사례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는 왜 사례를 보고 듣고 싶어 할까? 한국사회는 좀 과다한 싶을 정도로 사례에 집착한다. 어느 곳이 주목을 받으면 그곳을 도는 것이 일종의 코스가 되고, 외국 사례도 그곳 관계자들이 힘들어할 정도로 주목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한다. 왜 그럴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을 믿어서일까?

 

사례를 보고 온 사람들은 그 사례의 전도사가 되어 여기저기서 많은 얘기들을 한다. 그런데 정말 사례를 논할만 할까? 내 경험상 하루 들린 사람들은 견학 정도이고 보름 정도 지긋하게 눌러 있어도 그곳의 역사나 사회조건, 문화적인 특징 등을 잘 모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사천 지역을 알아보겠다는 사람이 하루 돌고 난 뒤에 사천에 관해 얘기하면 어떻겠는가?). 그래서 나는 직접 가서 보고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 정리된 연구들을 보는 게 때로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꼭 가서 보고 싶은 곳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마음을 흔든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사례를 보려 할까? 뭔가를 빨리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사례를 보게 만들 수 있다. 우리도 빨리 저런 걸 만들고 싶다, 우리 지역도 빨리 저렇게 변하면 좋겠다. 그러니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듣고 빨리 그 방식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 싶어진다. 직접 보고 와서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쉽다. 내 눈으로 봤다 아이가,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사례와의 만남은 우리를 억압한다. 내 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그를 신뢰하는 게 아니라 어떤 틀을 만들고 사람과 관계를 그 속에 밀어 넣게 된다. 잘 안 되면 그 탓은 틀이 아니라 내 옆의 사람 탓이다. 이렇게 되면 사례는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라 실패의 지름길이 된다.

 

그렇다고 사례를 보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례를 보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 그 사례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을 취할 수 있다. 보통 나는 나라서 나를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타자의 얼굴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자기를 알아 간다. 어쩌면 사례의 진정한 의미는 따라가고픈 그 모습이 아니라 그것에 비친 내 모습일 수 있다. 우리가 만남을 가지는 이유는 타자에게 종속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사례에 들뜨거나 사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사례를 보는 자신의 모습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사례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냥 들어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좋은 얘기 잘 들었습니다’로 그치지 않고 그 사례가 실제 내 삶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나의 준비를 확인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특수한 사례로 여기지 말고 우리 지역 내에 그런 특수성을 접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례를 볼 때는 그 맥락을 조심스레 살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방식이나 제도를 금방 수입하고 만드는데, 그렇다보면 그것의 정신이나 문화를 무시하게 된다. 외국의 좋은 제도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다들 이상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제도를 성공하게 하는 건 탁월한 리더십의 역할도 있지만 전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구조의 탓도 크다. 우리는 사례를 볼 때 사람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만 보는데, 보이지 않는 구조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과 뭔가 변화를 도모하려는 의지, 맥락을 읽는 눈이 없다면 사례를 봐도 아니 봄만 못하다. 이를 전제하고서 사례를 보자.

 

한국에서 협동사회경제를 이룩한 지역이 어디 있을까? 협동조합 메카로 유명한 강원도 원주? 마을만들기로 유명한 전라남도 진안군?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유명한 전라북도 완주군? 풀무학교로 유명한 충청남도 홍성군? 성미산마을로 유명한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

 

협동사회경제를 이룩한 외국 지역은 또 어디일까?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볼로냐? 캐나다의 퀘벡? 영국의 토드네스? 유럽의 또 어느 지역?

 

 

2. 원주의 이야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공동체운동기관 등 19개 단체가 모인 네트워크 조직이다. 2003년 6월 5일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로 시작했고, 2009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각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는 460여 명이고, 조합원과 회원 수를 합하면 원주시 전체 인구의 10%인 3만 5천여 명에 이른다. 네트워크의 각 구성단체는 조합원 수와 매출액에 따라 회비를 낸다. 네트워크 내에는 정책위원회, 지역농업위원회, 식생활교육위원회, 협동기금위원회, 편집위원회, 국제교류위원회 등 6개 위원회가 있어 사업을 담당한다.

 

2011년 3월에 네트워크의 구성단체들은 원주 사회적 경제 블록화 사업 심포지엄에서 ‘생명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경제 조직 협약문’이라는 것을 작성했다. 이 협약문은 ‘공동 소유, 민주적 운영, 인간적 사회 서비스 실현, 협동을 통한 사회적 목적 구현’을 목적으로 삼는 조직을‘사회적 경제 조직’이라 정의했고, 다섯 가지 내용을 담았다.

 

①사회적 경제 조직 간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상호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안착시키자.

②둘째는 상호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통해 각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이를 통해 창출되는 잉여는 사회적 목적 실현에 재투자하자.

③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각 조직의 주인인 조합원 및 회원 등의 참여 보장과 이들에 대한 정보 전달에 힘쓰며 사회적 경제 조직 확대를 위해 노력하자.

④우리 모두를 위해 각 조직은 민주성, 투명성, 신뢰성 확보에 힘쓰고 인적·물적 서비스에 대한 자율 구제 등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⑤경쟁과 이윤 추구로 대변되는 주류 경제 질서에 대항하여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되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자.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아래와 같은 비전을 가진다.

①사회적 협동조합: 기아 및 식량 문제 대응,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일자리 제공, 상업적 성공으로 머물지 않고 사회 보전자 역할로서의 임무 확대.

②협동조합의 사회적 기여 : 한살림 등 기존 생협의 지역사회 기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운동 모색

③사회경제 운동을 통한 지역 공동체 건설: 이윤보다 회원과 공동체를 위한 운영, 국가로부터의 자율성, 민주적 경영(1인 1표), 자본에 대한 개인과 노동의 우위, 참여의 원칙과 개인 및 집단의 권력화(empowerment)

풀뿌리 민주주의 확립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사회적 경제 영역 발전을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마련한다.

①협동조합 정신 등 사회경제 영역의 가치와 지향점 대중적 공유: 원칙을 바탕으로 한 사회경제 영역의 운영 및 협동조합 정신의 대중적 공유와 미래비전 제시→ 제도화되지 않은 자기 원칙의 설립과 준수
선순환 구조와 사회적 경제 블록 구축을 위한 상호부조 시스템 확립: 사회적 경제 블록의 선순환 구조의 시스템화

③영역확대를 위한 노력: 네트워크 내 회원단체 확대와 영역별 구축

사회적 경제 지표를 통한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규모 파악(인적 능력과 인간적 연대포함): 사회적 경제 지표를 통한 역량 파악 및 홍보, 제도개선에 활용

⑤역사와 브랜드 홍보를 위한 체계 확립: 역사와 현재 역량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 가치 창출 및 홍보, 축제 및 세미나, 포럼 개최

⑥사회적 경제 가치를 통한 발전계획 및 지역의 미래상 정립: 협동의 도시 트렌토 등의 방식으로 지역의 미래상 정립

⑦정부 - 자치단체 간 교류협력 및 투쟁(제도 및 지원): 생협법 개정 및 조례 제정(사회적 경제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 기금조성 등

⑧국제·국내적 연대와 연구: 지속적인 교류활동을 통한 가치 및 제도, 시스템의 학습

⑨주민 삶을 책임지는 새 영역 구축: 새로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창립 지원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영역 확장을 위한 기금 조성 및 운영: 협동기금 설치 및 운영

매체의 안정적 발행과 내용의 대중화

사회경제 일꾼 재생산을 위한 비전의 공유와 교육의 장 마련: 미래 비전을 통한 재생산 및 지속적인 만남과 교육의 장 마련

네트워크의 서비스 프로그램 정착 및 안정화, 체계화: 네트워크 강화 및 서비스 프로그램 창조

⑭한국식 전형 창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공동체 운동기관, 협동조합 형 사회적 기업 등

⑮민주주의 확립

⑯지역사회와의 연대와 기여: 시민사회단체, 정당, 노동조합, 주민조직


이런 역사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을까?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의 전신(前身)인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10년 전에 만들어졌고, 네트워크는 2009년에 만들어졌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지학순 주교의 부임은 1965년의 일이다. 밝음신협은 1972년에 설립되었고, 한 살림의 전신인 원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1985년에 설립되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 속에 수많은 인물과 단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졌다. 다양한 사람과 단체가 만나 사건을 일으키고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왔다.

 

그렇다고 원주시 협동사회경제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할 수는 없다. 협동조합운동은 초기 운동가들의 연로와 후진양성의 미흡, 신자유주의와 제1금융권의 팽창, 정부 개입의 증가, 조합원 활동의 위축, 새로운 협동조합 정책 및 이론 생산의 미흡 등 운동과 경영 양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원주시청이나 원주시의 경제상황, 문화적인 조건들이 협동사회경제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사천시에는 어떤 역사가 있는가? 협동사회경제와 관련된 인물과 단체들을 꼽는다면 누가, 무엇이 있을까? 협동사회경제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사람과 단체, 자원은 무엇일까? 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자산은? 민주적으로 회의하고 공동으로 결정해본 경험은 있는가?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대처하여 성공했던 경험은 있는가?

 

단체 회원이나 조합원, 구성원들은 협동사회경제를 이해하고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가? 서로 기꺼이 역할을 나눠가지려는 자세는 되어 있는가? 협동사회경제의 확대/확장을 위해 기꺼이 내 자원을 공유할 의지는 있는가?

 

한국정부나 사천시청은 협동사회경제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는가? 한국의 경제구조나 사천시의 경제현황은 협동사회경제에 유리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가? 지역에 활용할 만한 기술이나 자원은 있는가?

 

 


3. 해외 사례 이야기


사례라고 해서 꼭 잘되는 사례만 들을 이유는 없다. 때로는 안 되는 이유를 듣는 것이 훨씬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바띨라니(Patrizia Battilani)와 베르겐대학의 쉬뢰터(Harm G. Schröter)는 “탈협동화와 그 문제점들”(Demutualization and its Problems)”(Quaderni DSE Working Paper, 2011년)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소유권 구조의 변화, 전통적인 협동조합에서의 이탈, 협동조합의 사회적 가치변화에서 탈협동화의 원인을 찾는다. 바딸라니와 쉬뢰터는 20세기부터 탈협동화가 진행되어 왔고, 1980년대 이후 특히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그래서 2007년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탈협동화를 심층적으로 조사할 연구위원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탈협동화되었던 협동조합들이 다시 협동조합으로 변신하는 재협동화(re-mutualization)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기본적으로 탈협동화가 미국식 경쟁 자본주의와 비슷하고,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 연구에서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탈협동화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지목한다.

 

첫째, 기업이나 정치․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아 협동조합이 사기업이나 투자자소유기업의 절차와 전략을 따르면서 협동조합의 조직이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organizational isomorphism)

둘째, 공동소유구조가 너무 경직되어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어렵다며 사유화를 지지하고, 급속도로 강화되는 경쟁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화적 요인(cultural reasons)

셋째, 일반경제학 교육을 받고 상호성을 옹호하지 않는 경영진이 취임하고 이들이 조합원을 희생시켜 자기 이득을 취하려 하면서 생겨난 경영진의 착취(expropriation by managers)

넷째,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협동조합에 대한 반감이나 협동조합을 낡은 모델로 보는 의식이 확산된 정치적인 요인(political reasons)

다섯째, 자본이 제한되고 관리자에 대한 통제체계가 없는 협동조합의 비효율성 또는 성장전망의 부재(inefficiency or lack of growth perspectives)

 

이런 요인을 정리하면서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지난 20년 동안 ①조합원제도에 바탕을 둔 상호부조라는 전통적인 인센티브가 흐려질 경우(협동조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때), ②정부가 탈협동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③미래의 전망을 발전시킬 방법에 관한 대안적인 견해가 전통적인 견해보다 더 매력적일 경우에 탈협동화가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강조하는 건 협동조합이 기업으로 전환되기가 쉽지 않은데 정부가 탈협동화를 가능케 하는 법률들을 제정함으로써 여러 협동조합들(특히 보험과 관련된 협동조합들)이 탈협동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탈협동화가 적절한 법적인 틀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런 법적인 틀이 탈협동화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보통 탈협동화가 성과와 성장을 내세우지만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탈협동화가 더 나은 효율성과 성과를 보장한다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신세대협동조합과 같은 혼성조합(hybridization)이 탈협동화와 관련되어 있고 탈협동화가 혼성조합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한다.

 

바띨라니와 쉬뢰터의 연구를 통해 탈협동화의 경향이 수십년 동안 강화되어 왔고 미국식 경제의 확산과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체결하고 세계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지적한 탈협동화의 원인이 한국의 협동사회경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대의원총회나 이사회가 형식적인 의결기구로 변하고 일반기업과 비슷하게 관리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1인 1표와 민주적 참여의 원칙이 훼손되는 현상, 일반기업의 경영전략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현상 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리고 한국에서 보편화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논리가 협동사회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도구로 보는 정부의 시각은 어떤 형태로든 협동사회경제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외부의 우려처럼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동원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경우, 협동사회경제의 탈협동화 경향은 훨씬 더 강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사회경제를 준비하는 진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최근에 등장한 ‘협동조합간의 경쟁’이라는 틀은 이런 현실의 경향에 저항하고 그것을 바로잡기는커녕 탈협동화 경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예를 들어, 소비자생협의 매장경쟁과 관련해 어느 한 매장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서 그 지역에 다른 매장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독점’이고 협동조합 사이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조합원을 위하고 전체 협동운동의 몫을 고려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것은 경쟁이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독점의 반대말이 경쟁이라는 것은 하이예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한국에서는 주로 자유기업원)이 강조하는 논리이다. 소비자생협이 이런 논리를 따라야 할까?

 

자유주의 경제학과 다른 관점에 따르면 독점의 반대말은 경쟁이 아니라 공유나 경제민주화, 자급자족이다. 생협매장의 지나친 경쟁을 막고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경쟁을 방해한다는 논리로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설령 어쩔 수 없이 경쟁을 고려하더라도 그건 일반기업과의 경쟁에 대처하는 방법이어야지 협동조합 간에는 적합하지 않다. 외려 소비자생협이 일정한 매장운영협정을 만들고 그런 규칙이 사회적 시장을 만들도록 자극해야 하지 않을까?

 

멘자니(Tito Menzani)와 자마니(Vera Zamagni)는 “이탈리아 경제의 협동조합 네트워크(Cooperative Networks in the Italian Economy)”(《Enterprise&Society》, 2010년)에서 이탈리아 협동조합운동의 성공이 네트워크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한다. 보통 네트워크라고 하면 하나의 중심을 가진 중앙화된 네트워크나 이리저리 분산된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를 생각하지만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은 수평적인 네트워크(horizontal network)를 구성했기에 강한 힘을 키울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네트워크에서 한 단위는 단순한 구성원일 수 있지만 때때로 다른 단위와 선으로 연결되거나 전체 네트워크를 코디네이터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다른 단위들이 자신에 의지하게 되면 전체 네트워크의 주요한 단위가 될 수 있다. 이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시장경쟁력을 증가시키고 생산을 합리화시키며 공동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위험과 기회를 공유했다는 게 멘자니와 자마니의 평가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가 멘자니와 자마니가 말한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그렇게 형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 중요하게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단체들은 그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요한 단위가 되고자 하는가?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그런 경험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축적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협동사회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래야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을 받는 조합원/회원/자원활동가들이 현실의 경쟁논리에서 벗어나 협동의 논리로 현실을 바라보고 삶을 기획할 수 있다. 만일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경쟁의 논리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협동사회경제를 탈협동화시킬 수도 있다.

 

《협동조합운동, 21세기의 대안》(들녘, 2003년)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은 “소비자협동조합의 합병시도에서 배우는 이론적, 실천적 함의(Some theoret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s of the attempted takeover of a consumer co-operative society)”(《Annals of Public and Cooperative Economics》, 2000년)라는 글에서 협동조합이 외부의 자극과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챌은 1997년에 앤드류 리건(Andrew Regan)이라는 민간업자가 유럽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이던 영국의 도매협동조합(Co-operative Wholesale Society, CWS)을 합병하려 했던 과정을 분석하면서 협동조합이 미디어의 영향이나 내부매수 등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런 문제가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사업(business enterprise)과 결사(membership association)의 분리에서 불거졌다는 점도 지적한다. 버챌은 협동조합이 사업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잠재적으로 이로운 건 조합원들 때문이라는 점을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점을 자각하고 잘 활용한다면 소비자생협이 시장에서 제한되지만 잠재적으로 아주 유용한 위치(limited but potentially quite fruitful place in the market)를 점할 것이라는 거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세인드 메리 대학 경제학과의 노브코비츠(Sonja Novkovic)는 협동조합/신용조합과정(MMCCU, the Master of management : Co-operatives and Credit Union)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차이(Co-operative difference)’를 사회적으로 인식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나 시민들이 이 차이를 이해하고 믿도록 하고 이 가치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거다.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의 사업은 이런 차이를 마케팅하는 것이고 마케팅이 곧 교육이고 교육이 마케팅이라는 점, 시설이 교육이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노동자(활동가)가 생산품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람과 큰 뜻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인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비자생협이 활동하는 장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버챌과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이 적대적인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논리를 내부에서 더 많이 교육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은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성장시키는 것이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협동조합의 전략이다. 마찬가지이다. 협동사회경제를 강화시키는 힘은 막대한 자원의 투입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강화시키고 신뢰와 협동을,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확대시켜야 한다. 정치적인 시민권과 사회경제적인 시민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플레차(Ramon Flecha)와 크루즈(Ignacio Santa Cruz)는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협력: 몬드라곤 사례(Cooperation for Economic Success: The Mondragon Case)”(《Analyse & Kritik》 2011년)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가 경쟁력을 만들고 협동조합간의 연대나 이익의 공유, 매우 평등한 봉급체계, 안정적인 고용구조 등이 협동조합의 차이를 만들고 확산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노동인민금고나 인도주의적인 경영만이 아니라 공개적인 지적 토론과 풀뿌리민주주의가 있었기에 몬드라곤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나 8시간노동제, 연금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보는 눈과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선구자조합>이 매장에 읽을거리를 비치하고 대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것은 당시 노동계급에게 절실했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공간에서의 토론과 학습을 통해 계급의식을 형성해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이 <선구자조합>의 성공을 보장했다고 나는 본다.

 

따라서 ‘협동과 연대의 의식’을 만들고 확산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1978년에 부산에서 만들어진 <양서협동조합>이 단순히 좋은 책을 거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1978년에 협동서점을 만들고, 1979년에는 협동출판사, 1985년에는 협동도서관, 1990년에는 협동연구소, 2000년에는 협동대학을 설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지난 5월 2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생협매장 문제로 <아이쿱 광주권 생협>과 <한살림광주생협>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아이쿱 생협이 한살림 매장 근처에 연이어 대형매장을 내어 한살림매장이 큰 위기를 겪거나 폐점되자 한살림이 먼저 토론회를 제안했다. 아이쿱 생협은 신설 매장이 조합원 협동의 결과물이고 먼저 매장이 들어섰다고 그것이 기득권이나 독점일 수 없으며 협동조합도 서로 경쟁할 수 있다고 답하며 토론회를 수락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토론회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이 토론회가 시작이어야지 끝이면 안 될 것 같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가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생협과 관련된 논쟁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생협 매장이 지역의 작은 가게들에 영향을 미치거나 문을 닫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생협과 거래하는 생산지들이 커지고 사업화되면서 자기 지역 먹거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 생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털어놓는 어려움을 접한다. 그럴 때마다 놀란 가슴을 달랜다. 생협은 자기 길을 잘 걷고 있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들리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해온 걸까? 이러다간 어느 순간 생협도 점점 일반 기업처럼 변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생긴다. 살림이나 호혜의 경제학이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학, 시장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닐까? 조합원이나 협동조합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사회의 의식이나 문화는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민의 삶은 더욱더 치열한 승자독식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건 아닐까?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상호부조가 만물의 진화를 돕는다는 이론을 사회에도 적용시켰다. 경쟁이 없다거나 무조건 경쟁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경쟁만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 아니고 외려 상호부조와 상호지지를 통해서 경쟁이 제거되면 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하는 삶이 경쟁하는 삶보다 훨씬 오랜 전통과 문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단지 ‘성장이냐 아니냐’라는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는 물음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삶과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경쟁이라는 말이 이미 나왔으니 그 말을 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경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경쟁은 더 다양한 말로 치장될 것이다. 아마 적대적인 경쟁과 호의적인 경쟁이 다르다는 말도 나올 것이다. 허나 그런 차이가 만들어지려면 사회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협동조합들을 지원하고 우호적인 경쟁자를 만든다는 이탈리아의 협동조합기금이 이탈리아라는 사회적 조건을 무시하고 논의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환경은 이탈리아와 비슷한가? 협동조합에 이로운 외부 환경이 조성되어 있나? 그런 환경이 없는 상태에서 조합원들이 경쟁을 당연한 원리로 받아들일 때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을까? 무조건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하는 매장, 같은 조합원임에도 일방적인 친절함을 강요당하는 매장 활동가나 실무자, 일반 기업이 겪는 문제를 협동조합은 겪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단지 매장의 입지만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가지 물음들을 놓고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면 좋겠다.

협동조합 7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은 ‘협동조합간의 연대’이다. 그런데 연대 이전에 서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인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역 내의 다른 생협이나 협동조합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를 어떻게 모시고 있나? 이 물음에 답을 찾아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

함께 살자, 이것은 결코 당위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에서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 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거죠.”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핍을 보상받을 물질이 아니라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관리나 억압에 저항할 수 있으며, 경멸당하고 무시당하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이다. 남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을 받쳐주는 것이 사람(人)이고 협동이다.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지역사회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공적인 활동들이 벌어진다. 지역정치는 주민 스스로 지역사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의제로 만들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말이지만, 한국에서 지역정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체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역정치, 시민정치를 강조해도 그것을 실현할 주민, 시민이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나 정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체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봉건왕조와 식민지, 군사독재로 이어진 질곡의 한국 역사는 자기 뜻과 의견을 펼치려는 주체를 탄압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주체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계속 제한되었고, 대안적인 정치나 경제에 대한 담론은 억제된 형태로 내면화되어왔다(특히 교육은 그런 억압을 내면화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중요한 지역 의제도 언제나 중앙 정치인을 통해 드러나야 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 권한은 중앙정부에게 있다. 1991년에 지방의회가 부활되고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았지만 정치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주체는 제한되었다. 그리고 중앙권력만이 아니라 지역 내에 형성된 각종 이권구조는 지방자치제를 딛고 자신의 권력을 공식화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지방자치제 부활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지역정치의 무대는 “기성정당의 원심력과 이권 브로커들, 지역 토호들이 판을 치는 아수라장”[각주:1]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달라진 바 없다.

런 구조에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는 드러나기 어려웠고, 지방민의 목소리는 더더욱 반영되기 어려웠다. 지역정치 활성화의 전제조건이라 할 정치주체의 자존감이나 존엄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였기에 정치는 언제나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도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북돋우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지역정치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었다.[각주:2] 마을축제를 열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부방이나 대안학교, 도서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시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지역의 주체임을 자각하며 공동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정치는 조금씩 부활했고, 그 토대가 되었던 공동체들은 규모만이 아니라 내부의 밀도에서도 그 힘을 쌓아왔다.

그럼에도 지역정치가 그동안 시민의 정치주체화를 가로막아온 정치구조나 사회구조를 변화시켰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역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라 평가받는 곳에서도 지역정치는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고 자기만족적으로 진행되곤 했다. 그동안의 시도들은 높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흐름을 무조건 긍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글은 ‘연대’의 관점에서 한국 지역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려 한다. 연대라는 말이 너무 자주 사용되고 그냥 시민단체의 명칭으로도 사용되는 한국인지라 때로는 연대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권활동가 류은숙의 말을 빌면 연대는 호혜적일 뿐 아니라 기꺼이 나서려는 자세이다. 연대는 “‘내가 노동자요’ ‘내가 빈민이요’ ‘내가 채무자요’ ‘내가 바로 박해 받는 소수자요’라는 인식과 선언”이고 “‘나는 그런 처지가 아니지만’ ‘나는 다행히 빠져나가고 성공할 수 있지만’이라는 가정법을 버리고 모두가 걸려들어 숨막혀하는 그물망을 찢어보자고 달려드는 자세”를 뜻한다.[각주:3] 이 정의에 따르면, 연대란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비대칭적인 관계를 대칭적인 관계, 우정의 관계로 만들려는 입장과 실천이다. 이 말에 지역정치의 미래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호혜의 관계가 연대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만남과 우정의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역정치가 개별 공동체 내의 상호부조를 넘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1. 왜 지역정치가 등장했는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지역정치라는 개념을 조금 더 분명히 정의해야 할 것 같다. 지역정치는 제도정치로 구조화된 영역을 넘어 “경제, 문화 등 총체적인 지역의 ‘구조화’과정에서 발생”하고 “지역의 산업구조나 인구 및 계급구성, 그리고 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된 총체적인 지역의 ‘맥락’에 있으며 그 맥락을 낳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 있다.[각주:4] 지역정치를 이해하려면 국가정치의 눈[각주:5]에 잡히지 않는 지역의 맥락, 즉 지역성(locality)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크리스텐슨(T. Christensen)은 지역성을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다섯 가지, 즉 크기, 인구밀도, 주민구성의 다양성, 지역경제구조, 사회심리(social psychology)로 정리한다.[각주:6]

먼저 크기란 주민 수를 뜻하는데, 그것이 지역정치에 중요한 이유는 크기가 조직(organization)의 필요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아는 사이라 공동체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지만, 크기가 커져서 사람들이 서로 알아볼 수 없으면 서로의 관계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절할 조직이 필요하다. 따라서 크기가 커질수록 더욱더 많은 조직이, 그리고 더욱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크기는 지역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둘째, 지역사회의 면적과 인구밀도도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농촌은 인구밀도가 낮고 비교적 자급하며 서로 떨어져서 사는 반면,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설(시장, 하수처리장, 공원, 경찰서 등)이 필요하고, 교통난과 같은 사회문제나 이해관계의 충돌가능성(주차나 소음, 쓰레기처리, 사생활 침해 등)도 높아져서 그런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할 기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구밀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고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해진다.

셋째, 주민구성의 다양성이란 인종, 계급, 문화, 직업, 나이, 성적 취향, 생활양식 등의 차이를 가리킨다. 크기가 같고 인구밀도가 동일해도 구성원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 비슷한 직업과 재산, 나이와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갈등이 비교적 적어서 지역정치의 역할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과 함께 살고 빈부격차가 아주 심하며 가치관과 연령대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면 갈등의 빈도도 높고 갈등이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래서 크기와 인구밀도가 같다 해도 내부가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정치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가 이런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처럼 주거를 격리하는 것이다. 이런 격리는 농촌보다 도시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일 다양성을 거부하는 정치인이 지방정부를 장악하면 공동체의 단일성과 동질성을 유지하려 할 테고, 그러면 공동체 자체가 격리주거지로 변해서 지역정치의 폭이 줄어든다. 반대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정치인이 나서면 지역정치의 폭이 넓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도 지역정치의 중요한 변수이다.

넷째, 앞서 다룬 크기와 인구밀도, 다양성이 ‘주민’이라는 개념으로 다뤄진다면, 경제구조는 ‘계급’을 반영한다. 농촌의 경제활동은 계급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그래서 계급정치가 지역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도시는 농촌과 달리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경제활동이 전문화되어 서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해야만 한다. 농민이나 노동자만이 아니라 공무원, 자영업자, 도시빈민 등 다양한 계급들이 서로 의존하며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하기에, 도시에서는 지역정치가 농촌보다 활성화된다. 특히 부의 축적과 집중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계급에 따라 주거와 생활공간의 격리가 이루어진다. 또한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지역 내외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경제구조가 지역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기업을 유치하거나 지역 내에 묶어두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단합하기도 하고 그런 기업을 위해 생태계나 다른 공동체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도시경제의 전문화 정도와 상호의존도, 계급구조, 지자체의 경제상황과 목표 등이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다섯째, 사회심리는 주민이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리키는데, ‘지역정체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보통 이 사회심리는 가족과 친지 같은 1차 집단과 학교·직장·소모임 같은 2차 집단에 대한 소속감으로 드러난다.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은 농촌과 소도시에서 우세하고, 2차 집단에의 소속감은 대도시에서 더 우세하다. 1차 집단이 발달된 곳에는 공동체의식과 일체감, 온정과 친밀감이 존재하는데, 이런 감정은 긍정적이지만 때때로 이런 장점이 비공식적으로 억압하고 순응을 강요하는 단점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비공식적인 영향력이 강해지면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이 강한 곳에서는 지역정치가 활성화되지 못한다. 그러나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지역정치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핵발전소나 핵폐기장, 송전탑과 같은 외부의 사안이 공동체를 자극할 경우 그런 소속감은 지역정치의 강력한 힘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가 도시화될수록 이런 1차 집단은 해체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민들은 2차 집단에 소속감을 느낀다. 도시민들의 2차 집단은 1차 집단만큼 강한 소속감을 주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공동체를 추구하게 된다. 도시민들은 비공식적인 억압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반대로 그것이 주는 보호나 소속감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공동체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주민들 간의 다양성을 배제하면 사회적인 격리로 이어져 정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그 복잡성을 이해해야 지역정치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단지 몇몇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의식만으로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지역정치가 온전히 설명되려면 여기에 중앙집권제와 서울/지역의 모호함에 관한 분석이 더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에도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은 청와대와 중앙정부에 의해 내려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권한인 예산의 면을 보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여전히 8:2이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995년 62.5%에서 2012년 52.3%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자치는 허울에 그친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정치를 근원적으로 가로막는다.

그리고 수도권의 지역사회가 지방의 지역사회가 동일한 조건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핵발전소를 비롯해 불편한 것들은 모두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이전시켰다. 수도권 주민들의 필요를 위해 지방민들의 욕구를 희생시키고,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예산을 놓고 복마전을 편다. 그래서 지역정치는 중앙정치, 지방정치라는 말과 더불어 사유되어야 하는데, 중앙정치/지역정치가 대비되는 키워드로 사용되는 반면, 지역정치와 지방정치의 연관성은 잘 논의되지 않는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지방의 지역정치는 내부식민지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해방운동이다.

또한 중앙으로의 집중은 지역성을 망각시킨다. 즉 수도권으로의 초집중구조는 지역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제임스 스콧(James Scott)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이미 ‘국가처럼’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지역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자신의 언어를 상실한 지역정치는 자신을 해명하거나 스스로 드러낼 수 없고 자신의 잠재력을 파악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문학평론가 염무웅에 따르면 1960년만 해도 서울의 느낌은 지금과 달랐다. “1960년 초봄 필자가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하여 처음 목격한 서울은 21세기인의 눈으로 본다면 여전히 농경시대적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어서, 도심에도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녔고 번화가 뒷골목을 조금만 들어가면 텃밭에서 자라는 고추와 상추를 쉽게 볼 수 있었다.”[각주:7] 그때는 서울특별시에도 농촌의 특성이 살아 있었고, 그것이 시민의 심성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역성을 상실하면서 서울은 모든 면에서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도시, 자급능력을 잃어버린 도시가 되었다. 반면에 서울과 수도권의 풍요와 그곳의 문화코드는 지방의 거주민에게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줬고 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대면하지 못한다. 타자의 상실이 자아의 상실로 이어지듯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2. 한국 지역정치운동의 현재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82%, 국토해양부 기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91.1%), 수도권의 높은 인구밀도(2011년 기준으로 서울시는 16,567명/㎢이고, 인구밀도 최저인 강원도는 89명/㎢으로 무려 186배의 차이를 보인다), 주민구성에서의 다양성 증가(대표적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이 2011년 전체 인구의 2.5%로 2010년보다 11% 증가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요소이지만, 국가/도시정치체제의 비민주성과 억압성, 계급정치의 배제, 연고정치의 활성화는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여러 구조적인 한계들을 안고 있지만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한국의 지역정치는 조금씩 활성화되어왔다.

어떻게 보면 여러 제한요인들에도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는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호는 그동안의 도시공동체운동을 “근대적 도시화과정이 만들어낸 부작용들을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도시화가 만들어낸 조건과 바탕 위에서 공동체적 삶의 원리를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라 정의한다. 한국의 도시공동체는 단순히 전통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시대적 맥락과 조건에 맞는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각주:8] 그러면서 정규호는 한국 도시공동체운동의 흐름과 특성을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 ‘적응형’ 도시공동체운동(1960~1970년대), 거주공간의 강제해체과정에 반발한 ‘저항형’ 도시공동체운동(1980년대), 도시민들이 스스로 생활세계를 지키고 가꾸려는 ‘방어형’ 도시공동체운동(1990년대), 국가나 시장과 다른 대안적인 모델을 만들려는 ‘창조형’ 도시공동체운동(1990년대 후반)으로 보고, 최근에 등장한 도시공동체운동의 성격을 ‘협력형’이라 정의한다. 이런 공동체운동에서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이 기계적으로 구분되기는 어렵고, 하나의 공동체 역사에도 다양한 기운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서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인 빠른 속도의 대도시 형성과 급속한 인구증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높은 인구밀도, 그에 따른 주민구성의 다양성의 증가, 농촌의 몰락, 1차 집단의 빠른 해체와 소속감의 상실, 수도권으로의 집중 등이 도시공동체의 형성과 지역정치 활성화를 자극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알려진 성미산마을을 비롯한 수도권의 도시공동체들이 지역정치에 개입해왔다.

반면에 농촌의 지역정치는 도시공동체운동의 그늘이라 얘기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인구와 농업의 쇠락, 정체성의 상실, 농협이나 관변단체들의 지역사회 장악력 등은 지역정치의 활력을 빠른 속도로 감소시켰다. 반면에 이주민의 증가에 따른 다양성과 공동체의 쇠락이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지방정부가 지역정치를 자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군에서처럼 마을만들기운동이 활성화되기도 하고, 충청북도 옥천군처럼 주민들 스스로 지역언론을 만들고 지역비전을 세우며 삶을 기획하는 곳도 등장했다.

아울러 도시와 농촌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잇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생협연합회로 ‘한살림’, ‘아이쿱생협연합회’,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 ‘두레생협연합회’ 등이 활동하고 있고, 안성·원주·인천·대전 등지의 의료생활협동조합, 원주의 ‘밝음신협’이나 성남의 ‘주민신협’, 서울의 ‘논골신협’과 같은 신용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들은 지역사회를 근거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의 주요한 주체이다.

이런 활동들에서 여러 가지 희망을 찾을 수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지역정치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을 극복하고 있다. 정치는 더 이상 정치인들의 독점물일 수 없고, 주민들은 지역의 전문가이자 지역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며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주민/시민단체나 주민자치센터, 생협 등에서 활동하며 시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의기구마저도 주민의 ‘대표자’가 아닌 ‘대리인’ 개념으로 변형되고 있다.

둘째, 지역정치는 추상적인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욕구를 반영하면서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기존의 국가정치가 대의(大義)를 빌미로 국민을 동원하려 했다면, 지역정치는 보육이나 청소년교육, 보행로, 미세먼지 등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를 주민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고 참여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주민들은 참여의 비용이나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역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의 몇몇 지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의 경우, 합리적인 예산편성만이 아니라 주민참여를 자극하는 매개로도 활용되고 있다.

셋째, 지역정치가 국가정치의 변화를 이끄는 ‘정치의 역전현상’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8년에 시행된 정보공개법은 1991년에 제정된 청주시의 행정정보공개조례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가의 법률이 지역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조례가 법률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단지 정보공개만이 아니라 학교급식조례나 주민소환조례, 보육조례, 청소년인권조례, 여성발전기본조례 등 국가차원에서 시행되지 않았던 혁신적인 조례들이 법률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런 지역정치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거나 대표를 선거에서 당선시키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래빈(D. Levine)의 말처럼 지역정치의 “진정한 도전은 빈민을 위한 선택이나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진정한 도전은 민중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그들을 신뢰하며 그들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각주:9] 주민은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거나 서툴 뿐이었고, 기성체제에서 배제되어온 주체들(subaltern)이 지역정치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빈민계층이나 가정에 얽매여온 주부들은 경험적 지식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에 여러 구조적인 조건들이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해왔음에도 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사회의 변화가 지역정치에 또 다른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3. 지역정치의 과제는?

사회학자 바우만(Z. Bauman)은 공동체주의를 이렇게 비판한다. “공동체주의 복음이 말하는 공동체는 큰 글씨로 쓴 집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인적 경험의 문제가 아닌 아름다운 동화에 더 가까운 그런 종류의 집이다. (…) 한마디로,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의 화폭에는 대체로 어두운 색깔이 없어야 한다.”[각주:10] 바우만은 공동체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섞일 수 없는 것을 배제하고 적대를 제거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바우만은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생활정치가 사유화되고 있는 공적인 영역을 재점유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바우만의 비판을 한국에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지역공동체가 이질적인 것이나 적대를 배제하거나 제거하려 든다는 점, 제도정치와 공적 정치영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지역정치를 방해하는 정치․사회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또는 아직 그만 한 힘을 모으지 못했다는 점)은 고민할 만한 내용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런 내용을 살펴보자.

서울특별시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의 모델이 되기 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성미산마을의 주민이자 주요한 화자(speaker)인 유창복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운동으로, 마포두레생협, 성미산학교, 동네부엌 등의 마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각주:11] 유창복의 설명에 따르면 성미산마을이라 불릴 수 있는 기관은 자체기관 2곳, 교육 9곳, 경제 12곳, 문화․동아리 11곳, 환경 3곳, 복지 1곳, 미디어 1곳, 기타 2곳, 그리고 함께하는 단체 18곳이다. 그러니 총 60곳의 기관들이 성미산마을이라 불리는 곳을 구성하고, 이 마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 집약되지 않고 촘촘한 관계망으로 구성된다.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할 다양한 기관들을 만들어온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2007년 국토해양부의 시범마을사업으로 선정되고 ‘(사)사람과 마을’이 만들어진 뒤 성미산마을은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이런 활동과 사업들을 기반으로 지역주민들의 결속력이 강해졌고 그만큼 지역정치도 활성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미산마을이 유명해지면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1세대에서 3세대까지 세대가 구분될 만큼 다양성이 증가되었다. 그렇게 마을의 크기가 커지고 주민구성의 다양성이 증가하면 내부정치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세대가 구분되며 1세대가 지역사회의 주요한 결정을 이끄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판단하기 어렵다. 외려 2차 집단의 정체성이 1차 집단의 정체성처럼 굳어지는 현상, 즉 비공식적인 의사결정절차가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마을이 외부자원의 의존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런 1세대의 주도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성미산마을의 주요 자원이 정부나 공기업, 민간공익재단, 시민단체들의 프로젝트에서 들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성미산마을을 대표하던 공동체라디오 마포FM, 사람과 마을, 성미산마을배움터, 성미산마을극장 일자리, 성미산학교사회적일자리사업부 등은 외부자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각주:12] 그럴 경우 마을의 역사와 상황을 잘 아는 1세대의 발언력이 강해지고 화자의 역할도 1세대가 맡게 된다. 1세대가 이런 경향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외부 자원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런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능력들이 축적되면서 마을을 대변하는 주요한 화자들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미산 마을의 외형이 커졌지만 그만큼 내부의 결속력이 커졌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성미산마을의 주요한 기관 중 하나인 마포두레생협이 확장되면서 내부의 관계망보다 확장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그런 의문을 반영한다(대표적으로 두레생협서울이사회 구성과 관련된 논란).[각주:13]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가 불거지고 갈등하는 현상도 그런 결속력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지역정치의 원래 목적에 따르면 이런 경향이 바로잡혀야 하지만, 대표에 집중되는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에 이 경향은 수정되기 어렵다. 그리고 도시에서 마을과 공동체라는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상품화되는 현상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공동체로 소문이 나면서 주거비용이 높아지는 현상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또 다른 모범으로 소개되는 장수마을에서도 마을공동체로 소문이 나면서 집주인들이 세를 올려 세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각주:14] 이런 현상은 마을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도 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주거불평등이 심각한 한국사회, 특히 수도권에서 공동체를 소비하는 현상은 공동체가 격리방식을 택하며 지역정치를 회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성미산마을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는 말은 연대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성미산마을이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관계망을 형성하여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을 못 받는다는 지적에,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각주:15]고 답하는 것은 연대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다가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가서는 것이, 그리고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연대라면,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관점은 연대의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스스로의 변화’만 강조하는 것은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거나 ‘공동체’로 ‘배타성’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증가가 새로운 형태의 격리를 낳는다면 그것은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이어도 그 역량이 고루 분배되고 새로운 정치주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정치의 힘은 축소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지역정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제도정치에의 관여나 공적 공간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성미산마을이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2012년에 홍익대 재단이 성미산마을의 형성 계기인 성미산을 개발해서 학원을 이전한 것도 일종의 징후이고, 성미산마을이 관계망으로 이어진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장악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 아 선거구에서 진보신당 의원이 당선되기는 했지만 성미산마을이 내세운 후보는 마포 사 선거구에서 떨어진 점도 그런 점을 반영한다.

이런 문제가 도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위대한 평민’, ‘더불어 사는 평민’을 양성하는 풀무학교로 유명한 곳이다. 풀무학교는 소규모로 게토화된 대안학교와 달리 지역과 학교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학교는 지역과 유기적 생활권을 이루는 곳입니다. 지역은 열려진 학교이고 또 학교는 지역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도 자주 했던 말 같습니다. 학교 안에 작은 사회를 만들자, 교육사를 보면 그런 주장을 한 이도 있었지만 제대로 실현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실제 사회에서 더 생생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지역과 유리되면 학교는 산 지식의 생동감을 잃고 스스로 갇히게 됩니다. 지역의 교육력을 활용하고, 또한 학교를 움직이는 원리가 지역사회를 움직일 때, 지역과 학교는 서로 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그 의지를 느낄 수 있다.[각주:16]

그래서 풀무학교는 단순히 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풀무신용협동조합’과 ‘풀무생협’을 만들어 지역경제를 뒷받침했으며, <홍성신문>이라는 지역언론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국 정농회 홍성지부’, ‘지역사회연구회’, ‘갓골어린이집’, ‘풀무학교생협’, ‘밝맑도서관’, ‘지역센터 마을활력소’ 등을 만들어 마을거점들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풀무학교 출신들이 홍동면에 정착해 다양한 지역 활성화 실험들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새로운 농촌’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품은 풀무학교의 실험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각주:17]

그런데 이런 작은 실험들을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갈 방법은 50년을 넘긴 풀무학교 역사에서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이를 가공하여 생협을 통해 유통하는 체계가 마련되고 있지만,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물류체계가 농업을 살릴 방법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현행 식품위생법과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유통되는 식품들은 법이 허가한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시설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들은 대부분 공장 중심의 기준들이다. 이웃집 할머니의 손맛이나 장맛도 공간과 시설이 받쳐주지 못하면 ‘공식적으로’ 유통되지 못한다. 농업이 아닌 농사의 관점에서 보면 농촌의 힘이 진정 강해지고 있는지, 풀무학교의 이상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농민은 WTO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곧 아무리 노력해도 턱없이 값싼 수입농산물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았고, 더욱이 우리의 작은 농토는 대수출국의 1/10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수입농산물은 여기저기 범람하였고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를 피해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다녔지만, 그러나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나온 다른 동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라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이것은 특정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한국 농촌의 보편적인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풀무학교의 힘이 강하지만 한국에서 섬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외부와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이다. 홍동면의 경우 외부에서 풀무학교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주민구성의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농민이라는 계급이 붕괴되고 있기에 농촌은 지역정치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성 증가가 실제로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는지, 풀무학교의 이상이 지역사회로 스며들고 있는지 아니면 고립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점검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인구밀도가 낮고 1차 집단의 영향력이 강한 농촌사회는 지역정치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점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점검이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 내부의 상황을 역대 선거에서의 지지율로 가늠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선거통계를 통해 홍성군의 선거결과를 살펴보면, 새누리당(舊 한나라당), 자유선진당(또는 국민중심당) 등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지난 10년 이상 꾸준히 70, 80%를 유지했다. 그래서 다른 정당들은 후보를 잘 내지 않는 곳이다. 비례대표 지지도를 봐도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06년 지방선거 기초 80.84%, 광역 76.97%, 2008년 총선 73.84%, 2010년 지방선거 기초 76.77%, 광역 72.29%, 2012년 총선 64.75%이다. 보수정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지방선거의 경우 홍동면의 지지율이고 총선이 홍성군 전체의 지지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홍동면의 지지율 변화가 홍성군의 변화를 앞지른다고 보기 어렵다.

대안적인 정치세력의 필요성 때문인지 2012년 ‘녹색당’이 창당할 당시 홍동면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당원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불렸다.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특히 혈연·지연의 연고가 강한 농촌의 특성을 감안하면 ‘정치적인 커밍아웃’이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 총선 당시 녹색당의 득표율은 홍동면의 당원 숫자만큼도 나오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홍동면에서는 매달 정기적으로 당원모임이 열리고 일상정치활동을 위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지만,[각주:18] 좋은 담론이 적대적인 정치현실과 어떻게 충돌하고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내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풀무학교의 역사는 아직도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다. 적대가 사라진 정치는 적당한 정치적 배분을 낳을 뿐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역정치의 한계가 단지 도시와 농촌이라는 공간의 문제는 아니고 협동조합운동 내부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생활협동조합과 달리 한국의 생협들은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는다. 일본 ‘가나가와 네토’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각주:19]을 강조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간혹 생협의 이사나 이사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되는 경우는 있지만 제도정치 참여가 생협의 주요한 활동으로 논의되지는 않고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4조는 폐지되지 않았고, 2012년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에서도 공직선거 참여가 금지되었다. 생협의 주요무대가 지역사회이고 지방정부가 그 지역의 질서를 짜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조합원의 수가 이미 60만 명을 훌쩍 넘겼더라도 그 힘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생협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외부 권력의 결정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초기에 생협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몸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각주:20] 생협의 비정치성은 정상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것이라 얘기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생협의 대중적인 확산을 모색하는 생협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만으로 가입하는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생협 실무자들은 정치적인 개입을 할 경우 외부의 탄압을 받거나 내부적인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고, 우리가 현재 사는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세계화시대의 흐름은 점점 협동보다 경쟁과 독점을 향하고 있고, 나오미 클라인(N. Klein)은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르며 이 세력을 제어하는 것을 향후 정치의 주요한 과제로 지목한 바 있다.[각주:21] 이런 구조적인 변화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생협운동의 정치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재 소비자생협운동의 현실을 보면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7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인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지키고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생협들이 물류 중심의 경쟁구조를 갖춤으로써 매장의 입지를 두고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일이고, 기존의 협동조합이 새로운 협동조합의 구성을 돕고 지원하는 사례도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4. 연대는 불가능한가?

다양한 지역운동 사례들에서 드러나는 이런 경향들은 향후 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독점하는 세력에게 맞설 힘을 결집할 연대를 가로막는다. 수많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한국에서 연대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학자 라이너 촐(Rainer Zoll)은 한국사회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다. “생활세계를 통해 바라본 한국인의 상호관계에 대한 인상은 매우 긍정적”이나 “특정한 사회적 집단이 다른 집단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사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동차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잘 조직화된 남성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 두 집단이 급진적 노동조합에 함께 속해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국에는 열심히 투쟁하는 두 개의 노동조합 연맹이 있고, 이 둘을 합쳐 정확히 노동자의 12%가 조직되어 있다. 그 외의 사례로는 사기업 노동자와 공무원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있다. 사회에 관심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연대가 대부분 ‘집단연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 즉 사회집단이 서로 결속하지만 그 자체로는 닫혀 있으며 다른 집단과 날카로운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22] 지역정치 역시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지역과 마을을 만든다 해도, 어느 누구도 이런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연대는 바로 이런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절망적인 노력이다. 그런 노력 없이 지역정치의 활성화나 대안을 논하는 것은 섣부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진보신당의 이재영은 2008년 5월, <시민사회신문>에 「‘풀뿌리’는 기만이다」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 칼럼에서 이재영은 “한국에 소개돼 있는 ‘풀뿌리’란 주로 미국과 일본의 탈사회주의적 비정치 사회운동에 다름 아니”므로 “풀뿌리라는 것이 이미 인민의 파괴적 도전을 완충시키는 ‘체제의 풀뿌리’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필자는 이 칼럼을 비판하는 「‘풀뿌리 없는 진보’야말로 기만이다」라는 반박기사를 <시민사회신문>에 실었다. 그 글에서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풀뿌리의 정치전략이 탈사회주의, 비정치라는 해석은 어떻게 가능”한지, “오히려 그런 운동이야말로 정치적인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많은 지역단체 활동들이 중앙/지방정부의 프로젝트나 민간재단의 프로젝트에 의존하면서 그런 활동들은 ‘파괴적 도전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풀뿌리 활동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자신이 가진 급진적 전망을 포기하고 다가올 파국을 막는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말했듯이 다가오는 파국이 사회성 형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각주:23] 한국의 지역정치는 파국을 피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상호부조와 연대는 정치적인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패한 국가 내에 건강한 지역사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을과 공동체도 그곳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라는 장소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소성이 중요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면 지역 내외부의 다양한 정치활동과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연대는, 타자가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내가 타자의 삶을 지탱하는 좋은 관계는, 단순한 이해관계나 계산능력만으로 맺어질 수 없다. 그것은 공통성을,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통감각(common sense)을 필요로 한다. 성장만을 강요하는 시대에 그런 감각을 회복하려면 건강한 자기성찰이 필요하고, 건강한 자기성찰 없이 지역정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감각을 열어놓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여전히 중요하다.

하승우

현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서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풀뿌리민주주의, 아나키즘, 지역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쓴 책으로 <민주주의에 反하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등이 있다.

  1. 최경송, 「대안정치의 씨앗 뿌리기」, 시민자치정책센터 지음,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갈무리, 2002, 199쪽. [본문으로]
  2. 한국청년연합회(KYC)가 발행한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시금치, 2005)은 서울시 도봉구의 ‘느티나무방과후’, 경기도 일산시의 ‘야호 어린이집’, 서울시 도봉구의 주부학습동아리 ‘즐멤’, 경기도 광명시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시 강북구의 녹색가게 ‘풀빛살림터’,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평생학습원’, 대전시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마을공동체, 경기도 의정부시의 ‘꿈틀자유학교’, 인천시 연수2동의 주민자치센터, 서울시 금천구의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등 11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발행한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2008)은 한국 주민자치운동의 모범지역을 경기도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수유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지금은 ‘녹색마을사람들’로 명칭 바꿈), ‘대전여민회’와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충청남도 천안시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남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 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원주시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지금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강원도 사북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시 반송의 ‘희망세상’ 등 8곳으로 정리했다. [본문으로]
  3.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 낮은산, 2012, 177쪽. [본문으로]
  4. 김왕배, <도시, 공간, 생활세계>, 한울, 2000, 271~272쪽. [본문으로]
  5. 제임스 스콧, 전상인 옮김, <국가처럼 보기>, 에코리브르, 2010 참조. [본문으로]
  6. Terry Christensen, Local Politics: governing at the grassroots, Wadsworth Publishing Company, 1995. [본문으로]
  7. 염무웅, <자유의 역설>, 삶창, 2012, 173쪽. [본문으로]
  8. 정규호, 「한국 도시공동체운동의 전개과정과 협력형 모델의 의미」, <정신문화연구> 제35권 제2호, 2012. 6. [본문으로]
  9. Daniel H. Levine, Popular Voices in Latin American Catholic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p. 370. [본문으로]
  10.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액체근대>, 도서출판 강, 2009, 274쪽. [본문으로]
  11. 유창복, <우린 마을에서 논다>, 또하나의문화, 2010 참조. [본문으로]
  12. 조정래, 「서울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추진방향 연구」, 입법담당관 정책보고서 제3호(2012. 4. 18). [본문으로]
  13. 마포두레생협 홈페이지(http://www.mapocoop.org/) 조합원 의견나눔 게시판 2010년 3월 부분 참조. [본문으로]
  14. 박학룡, 「위태로운 세입자」, <시사인> 2012년 12월 29일자(제276호). [본문으로]
  15. 기획대담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09년 11․12월호(제41호). [본문으로]
  16. 홍순명,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 이야기>, 내일을여는책, 1998, 55쪽. [본문으로]
  17. 백승종,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궁리, 2002, 332쪽. [본문으로]
  18. 강국주, 「‘착헌 정치’란 가능할까?」, <지역과 학교> 통권 26호, 2012년 겨울호. [본문으로]
  19. 요코다 카쓰미, 나일경 옮김,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 생활클럽 운동그룹과 풀뿌리 민주주의운동의 모델 만들기>, 논형, 2004, 200쪽. [본문으로]
  20. 염찬희, 「iCOOP생협 10년의 역사와 활동」, iCOOP생협연대 지음, <협동, 생활의 윤리: iCOOP생협 10년사>, 도서출판 푸른나무, 2008, 17~18쪽. [본문으로]
  21.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쇼크 독트린>, 살림Biz, 2008 참조. [본문으로]
  22. 라이너 촐 지음, 최성환 옮김,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한울 아카데미, 2008, 14~15쪽. [본문으로]
  23.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이 폐허를 응시하라>, 도서출판 펜타그램, 2012 참조. [본문으로]
  1. 보스코프스키 2013.04.30 22:56

    드디어 쓰셨네요... 예전에 많이 보던 도서였는데 이 도서에 실린 하 선생님 문서를 뵙고 싶었습니다.

 <문화과학>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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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이미 60만을 넘어섰지만 협동조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아는 사람들의 인식도 농업협동조합이나 생협 매장 정도이다. 하지만 농협이나 수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먹거리를 구입하는 매장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대안으로 떠오르자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서울시가 협동조합도시를 선언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관심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가 재벌들의 손아귀에 포획되어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환경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관심이 반갑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관심이 협동조합‘운동’의 확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시민의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농협이 있다고 해서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매출규모가 증가한다고 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고 중앙집권화된 국가구조가 자동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운동’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협동조합운동의 관점에서 협동조합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찾아보려 한다.



1. 한국 협동조합운동, 어디까지 왔나


협동조합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조합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농협의 조합원수가 2백 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수협도 16만 명, 신용협동조합도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런 수를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농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생협 등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 연합회가 구성된 국내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은 아래 표와 같이 추정된다.[각주:1]

구분

지역조합수

조합원수

공급액

2010

2011

증가율

2010

2011

증가율

한살림

30

247,072

293,442

18.8

186,686

222,581

19.2

아이쿱생협

75

118,824

155,705

31.0

219,647

290,132

32.1

두레생협

23

85,022

103,874

22.2

66,674

75,072

12.6

민우회생협

5

22,792

26,763

16.4

16,962

17,015

0.3

합계

123

473,890

579,757

22.3

489,996

604,800

23.4


이 자료를 보면 소비자생협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원 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약 58만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거래비용도 6,000억원을 넘는다. 더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평균증가율이 22.3%이고, 공급액 증가율도 23.4%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가율을 고려하면 이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리고 소비자생협 외에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료생협연대에 소속된 의료생협의 조합원 세대 수를 합치면 15,280세대나 된다.[각주:2]

비교기준

안성의료생협

인천평화의료생협

안산의료생협

원주의료생협

주요 설립 동기

농촌지역 의료봉사

산재 및 직업병 해결

지역환경보호운동

생협간의 협동

설립 년도

1994년 4월

1996년 11월

2000년 4월

2002년 5월

조합원수

3426세대

1749세대

2414세대

1570세대

비교기준

대전의료생협

서울의료생협

전주의료생협 

함께걸음 의료생협

주요 설립 동기

지역화폐운동

신협운동의 확장

 보건의료운동과 공동체운동

장애우 평등세상

설립 년도

2002년 8월

2002년 6월

 2004년 4월

2005년 6월

조합원수

1361세대

1650세대

408세대

526세대

비교기준

청주 의료생협

용인해바라기 

성남의료생협

수원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장애아동부모모임 

장애인무료치과 진료

복지네트워크

설립 년도

2007년 5월

2007년 3월

2008년 2월

2009 3월

조합원수

365세대

480세대

671세대

340세대

비교기준

시흥 의료생협

마포(준) 

살림의료생협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지역사회 돌봄

여성주의 돌봄공동체

설립 년도

2009년 9월

2010년 5월 발기인대회

2012년 2월 창립총회

조합원수

500 세대

 

1,000세대(2013년 1월)


둘을 합하면 조합원 세대가 약 73만 세대나 되고, 소비자생협과 의료생협 모두 조합원의 구성이 세대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지만 조합원의 수로 판단한다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가 아니라 외려 뜨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소비자생협의 조합원수와 공급액 증가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협의 성장가능성은 무시될 수 없다(그래서인지 ‘유사소비자생협’과 ‘유사의료생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농산물의 직거래와 안전한 먹거리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생협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활동들, 먹거리 교육이나 학교급식조례운동, 농업살림운동, 협동하는 생활문화정착, 지역살림운동, 지역사회 식품안전생활시스템 구축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생협 또한 질병의 치료보다 건강한 삶을, 그리고 주민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의 수는 2012년 12월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이 발효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일반협동조합이 119건, 사회적협동조합이 17건 신청되었다.[각주:3] 과거 소비자생협의 설립기준이 조합원 300명 이상, 출자금 3,000만원 이상이었다면, 협동조합기본법은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사업 대상도 먹거리나 의료에서 대리운전, 도시농업, 재생에너지사업 등으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주식회사 <해피브릿지>는 2012년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총회를 열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만 따지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2.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어디로 갈까?


어떤 제도가 사회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조건은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앞서 2007년 1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 정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런 지원정책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수는 2007년 446개에서 2012년 2,221개로 5년간 498% 증가했고, 2012년 9월 기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17,410명이고 이 중 취약계층이 10,640명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107.6만원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52.7%이다.[각주:4]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이런 수치로만 보면 사회적 기업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보다 사회적 일자리가 부각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제도를 시작할 당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법인격

(영리)법인

비영리법인

설립

시도지사 신고

기획재정부 장관 인가

사업

업종․분야 제한 없음(금융․공제 제외)

업종․분야 제한 없으나 주사업 규정

적립

잉여금의 10/100

잉여금의 30/100


협동조합의 국제연대기구인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 정의한다. 두 정의에서 어떤 차이점이 느껴지나?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공동구매/생산/판매/제공을 하는 ‘사업조직’으로 제한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인가하는 기획재정부도 협동조합을 “함께 규칙을 만들고 착실하게 이용하는 정의로운 사업체”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규칙과 정의는 케이크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것이지 어떤 케이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각주:5]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이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노동자협동조합(workers cooperative)이라는 개념을 직원협동조합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바꿔버린 점에서도 드러난다. 법률상의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육성법의 경험을 통해 협동조합기본법을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 기업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의 지원을 통해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사회성이나 협동의 강화보다 고용 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고, 시장경쟁에 내몰린 협동조합들이 실패를 경험할 것이고, 협동조합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명분(사회적 협동조합은 국가와 지자체의 사무 중 일부를 위탁받을 수 있다)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협동조합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왜곡이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경제는 연대의 경제, 즉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는 것”이자 “새로운 시장조절양식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시장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시장활동의 우선적 수혜자의 영역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시장을 사회적으로 재구축하는 방안을 고안하고자 하는 것”인데,[각주:6] 한국사회에서 이런 의미는 드러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기존의 시장질서를 보완하지 관계를 재정립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과정에서 드러난 특이한 점은 소비자생협을 비롯한 기존의 협동조합운동진영이 기존 법률에 있던 정치참여 금지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1999년 2월에 공포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4조는 “①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ㆍ반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 ②누구든지 조합을 이용하여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생협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생협들은 단체의 정관에 ‘정치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질서와 다른 살림살이 질서를 짜려면 이는 정치적인 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동조합들이 조합원의 사회참여와 지역적인 살림살이 회복을 추구한다면 지역정치에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운동이 기본법 제정과정에서 이런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은 협동조합운동의 방향이 결사체를 배제한 사업체에 향하고 있음을, 즉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협동조합의 방향이 수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탈정치를 지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부의 방향과 수렴된다는 점은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없다.



3. 세계적인 흐름은 어디로 가고 있나?[각주:7]


협동조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연합조직)의 자산은 약 53조에 달한다.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몬드라곤의 자산규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현대중공업(2011년 기준 약 54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려 8만 4천명에 달한다. 고용인원으로만 따지면, 몬드라곤은 SK나 롯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생산과 소비, 신용, 문화 등의 영역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의 조합원 수나 매출고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전 국민의 60%가 조합원인 스위스에서는 협동조합이 카르푸의 매장을 인수했고, 이탈리아의 볼로냐시는 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협동조합은행 데자르댕(Desjardins)은 조합원이 580만명으로 자산이 216조, 노동자가 4만 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규모를 보면 협동조합은 결코 미미한 흐름이 아니며,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적지 않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과 올해 계속 소개되는 해외의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이고, 실제로 한국의 많은 소비자생협들이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같은 유럽생협의 대형매장을 부러워하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해외사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아무런 위기를 경험하지 않으며 성장만 해온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세계대전과 파시즘, 경제위기, 유럽통합이라는 실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큰 몸집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더 이상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소속된 노동자 중에서 러시아와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고용된 인원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약 1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협동조합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1990년대부터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을 만들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각주:8]

 

몬드라곤의 글로벌화와 조직형태의 변화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전체 고용규모는 늘어났지만 이것은 해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에로스키를 비롯한 유통부문이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체를 늘려온 분야에서는 조합원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규모는 커졌지만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 협동조합의 자회사들이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세워지는 모순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노동자 조합원의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를 고려할 때 제조업 조합원 중심의 몬드라곤이 그 구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정체성 변화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상시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이사회와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권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위기구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자신의 규정으로 개별 협동조합을 규제하려 들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 조합원들은 사업과 배당에 관심을 갖지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뀐다면 이 조직을 협동조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갈러(Z. Galor)는 이런 경향을 탈협동화(demutualization)라 부른다.[각주:9] 갈러는 전 세계 다양한 협동조합들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경향이 소비자협동조합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두드러직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부족이다. 즉 협동조합이 탈협동화되어도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거나 외려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탓은 아니다. 조합원의 삶을 지지하거나 조합원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 협동조합의 구조도 문제이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나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협동조합이 낡은 것이라는 편견같은 외부요인들도 탈협동화를 부추긴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이스라엘의 트누바(Tnuva)는 연계형 협동조합(secondary cooperative)으로 농업공동체인 모샤브(Moshavim)와 키부츠(Kibbutzim)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트누바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조합의 지분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아니라 두 조합의 위원회가 트누바를 운영했고, 조합원들은 트누바의 성장에서 자기 몫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대기업이 트누바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에이팩스(APAX)사가 10억 달러(트누바의 실제 자산가치는 8억 달러 정도)를 제안하자 총회는 압도적인 비율로 지분의 매각을 결정했다(에이팩스사가 51%의 지분을 차지!).

 

갈러는 조합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 그룹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탈협동화에 맞섰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쨌거나 이런 전환의 결과 2011년 7월에는 트누바의 비싼 치즈가격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조직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조직이어야 할 협동조합을 시민들이 불매운동하는 비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이 이스라엘의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협동조합간의 연대도 좋지만 연계형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구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협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갈러가 탈협동화의 외부요인이라 얘기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정권의 집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국적 자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국가의 고유한 영역이라 불렸던 치안과 군대 영역도 점점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상대의 힘이 집중된다고 해서 협동조합운동도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괴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세계가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99%의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99%의 사람들이 다시 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1%를 위한 벤처사업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의 이런 탈협동화 경향을 무시하고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양적인 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박승옥이 “성장은 결사체로서의 성장과 사업체로서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성장에의 열광을 비판한 것이다.[각주:10]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이었던 레닌(V. Lenin)조차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협동조합운동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3. 사회변혁 전략으로서의 협동조합운동은 불가능한가?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에게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허덕이고 피크오일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어떤 전략을 고민해야 할까?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가 협동조합운동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협동조합을 지지하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없는 한국,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와 재벌 중심, 토건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무한경쟁구조에 갇힌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어떻게 자신의 전략을 만들어야 할까?

 

데이비드 맥낼리(D. McNally)는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위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각주:11] 자본주의의 위기는 일시적이지 않고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의 변화는 위기의 힘과 규모를 넓히고 있다. 맥낼리는 그런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은 그런 고리를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 협동조합도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이 그런 개입과 조직의 전략을 고민할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마케팅이나 다른 사회운동의 전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원칙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이미 협동조합 7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 원칙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는 가족과 사회집단에의 참여가 강제성을 띠고 성과 재산, 인종,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은 아무나 오세요가 아니라 오는 사람을 환대해야 하고, 조합에 문턱이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중산층이나 이성애 가족의 전유물처럼 인식된 협동조합은 사회적 양극화나 가족구성의 변화라는 시대변화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단지 물건을 거래하는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첫 번째 원칙이 힘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원칙 ‘민주적 관리’는 1원 1표를 따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 1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출자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똑같은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건 조합원들의 자존감을 강화시킨다. 이 원칙은 나와 다른 사람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평등의 원칙이자 내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고 주장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조합원들은 나와 가족의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배제되고 조직구성과 일상활동,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 원칙은 일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와 조합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임을 깨닫고 나와 조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은 오로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그런 성장과 역량강화를 위한 틀이다.

 

세 번째 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는 협동조합을 움직이는 자원이 조합원의 것임을 강조한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출자금을 받는 것은 필요한 자원을 공정하게 조성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그 과정은 내 몫이 커지려면 우리의 몫이 커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몫을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고, 그렇게 몫을 내놓아야 서로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런 공유를 위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주식에 매달리지 않고 조합을 통해 살림살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합원의 욕구와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곧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야 한다.

 

네 번째 원칙 ‘자율과 독립’은 국가나 자본과 거리를 둬야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빵집, 사진관 등 문어발식 확장이 기본인 재벌경제에서, 그리고 정부가 민간단체를 길들이고 통제하려 드는 한국에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이런 정체성을 강화시킬수록 국가는 협동조합에 개입하려 들 것이고, 친환경 유기농 시장이 커질수록 자본은 협동조합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다. 이에 맞서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나 자본이 통제할 수 없는 공공성의 영역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그런 영역의 힘이 강화되는 셈이니.

 

다섯 번째 원칙 ‘교육, 훈련 및 정보의 제공’은 조합의 성공이 조합원들에게 있음을 알리는 원칙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아무런 매개 없이 가능할 수 없다. 우리 세계가 어떤 지경으로 몰락하고 있는지, 조합이 어떤 꿈을 꾸고 있고 그런 꿈을 실현하려면 조합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합원들이 스스로 꿈을 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기 위해 어떤 장이 필요한지,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이런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조합을 통해 다양한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 그 꿈을 조합에서 실현할 수 있을 때 협동조합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여섯 번째 원칙 ‘협동조합 간의 협동’은 일종의 연방제 원리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한 조합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더라도 그런 조합들이 여럿 뭉치면, 즉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어소시에이션이 되면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협동의 힘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고 공생(共生)을 지향한다. 자본주의가 적대적인 경쟁과 인수합병(M&A), 승자독식을 권장한다면, 협동조합들이 힘을 모아 서로간의 경쟁을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장을 만들고 사회적 시장을 형성하고 살림살이를 바로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질서이고, 자치와 자급이 조합을 통해 실현된다.

 

일곱 번째 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에서 지역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시도이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가 붕괴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지역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과 중앙권력이 지역을 수탈하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지역을 강화시키려 노력한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나누는 경계가 사라질수록 그 힘은 커지고, 그것이 곧 협동조합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원을 기부하거나 자원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성(locality)을 부활시키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일곱 가지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협동조합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국가의 사회보장체계와 자본의 소비체계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협동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섬으로만 존재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설령 섬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섬들이 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변화를 바라는 다양한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대는 타자가 내 쪽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타자의 편에 서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단순히 이타적인 운동을 지향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삶에 관심을 쏟다보면 그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조합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 지역사회의 변화, 조합원 가계의 노동조건, 생활상의 어려움 등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다보면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협동조합운동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운동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협동조합에 관한 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는 ‘소상공인의 사업인프라 구축 지원’을 위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자율조직화 유도를 위하여 협동조합 활성화 전폭 지원”하고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를 기반으로 공동브랜드, 공동판매 등 공동사업 활동 활성화”를 지원하며, ‘지속가능한 축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에서 도축·가공·유통·판매까지 협동조합 중심의 축산계열화체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사람중심 협동경제, 사회적 경제’라는 구호 아래 “사회적 경제를 통해 지역중심 순환경제가 활성화되고 품위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가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회적 금융을 조성하고 사회투자기금 2조원을 조성하며 사회적 경제에 관한 공감대를 강화시키고 사회적 경제를 통한 공공서비스(돌봄서비스나 보육 등) 공급을 30%까지 확대하며 사회적 경제 모델을 적극 활용하는 기초자치단체를 집중 지원하며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나 노동자대통령을 표방했던 김소연 후보의 대선투쟁공약집에서는 협동조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김순자 후보의 정책에서는 경제분야가 아니라 ‘에너지 혁명과 생태적 전환’ 정책에서 협동적 소농체제를 중심으로 농촌을 재생하기 위해 협동생산판매체제를 국가 차원에서 구성하고 농협중앙회 등을 협동조합 섹터의 중심체로 전환한다는 정도의 내용이 확인된다. 보수정당의 고민이 외려 구체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운동이나 사회운동이 협동조합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교육기관들은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긴 반면, 참교육을 지향하는 교육운동이나 대안학교들은 협동조합을 자신의 기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연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연대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설령 진보정당이 협동조합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깊은 고민은 없는 상태이다. 협동조합은 국가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율과 독립을 지켜야 하는 조직이다(과거 러시아의 경험은 협동조합이 국가의 하부기관이 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정치운동은 협동조합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운동도 자신이 누구와 함께 지역사회를 재구성할 것인지를, 그리고 단순히 후보 캠프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상공인, 노동자,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재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자신의 힘과 지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4. 나가며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함께 살자’이다.

 

함께 살려면 일단 먼저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지금 살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마주보고 상상하다보면 먼 미래의 좋은 삶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그런 삶을 위한 틀이 될 때 온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1. 신중일, “생협 필요성 커지는데 불교계는 제자리”, 《현대불교》2012년 9월 15일자. [본문으로]
  2. 박봉희. 2010. “한국의료생협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 광주지역사회 협동조합학교 [본문으로]
  3. 최영진, “협동조합 설립 붐,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 《주간경향》2013년 1월 15일자(제 1009호) [본문으로]
  4. 국회예산정책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평가』, 2012년 10월(통권 262호) [본문으로]
  5. 기획재정부, 『협동조합 설립운영 안내서: 아름다운 협동조합 만들기』2013년 1월 24일 발행. [본문으로]
  6. 알랭 까이에 외, 김신양 편역, 『다른 경제』, (재)실업극복국민재단, 2005), 24~30쪽. [본문으로]
  7. 이 부분은 하승우, “협동조합의 부흥기/혼란기?”, 《오늘의 교육》2012년 3․4월호; 하승우, “살리지 못하면 죽는다: 유럽 탈협동화 경향이 주는 교훈”, 《살림이야기》2012년 여름호를 재구성했다. [본문으로]
  8. 김성오, 『몬드라곤의 기적: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역사비평사, 2012년), 30쪽. [본문으로]
  9. http://www.coopgalor,.com 참조. [본문으로]
  10. 박승옥, “한국 생협, 성장신화 버려라”, 《녹색평론》 2013년 1․2월호, 53쪽. [본문으로]
  11. 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강수돌․김낙중 옮김, 『글로벌 슬럼프』(그린비, 2011년) 참조. [본문으로]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사회적기업지원법, 협동조합기본법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이 앞을 다투어 협동조합과 관련된 법령이나 조례를 제정하고 있고, 금융위기와 실업이라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사회적 경제를 주목하고 있다. 제도화의 속도가 빠르면 더 빨라졌지 늦춰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언제나 제도화는 양날의 검이다. 제도는 운동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기반이지만 반대로 운동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제한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도는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받는다. 제도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현실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수정될 때에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수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지금 처한 문제의 어려움과 심각성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불거진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가 반드시 사회적 경제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대공황과 경제위기에 등장했던 체제는 사회적 경제가 아니라 파시즘과 군사정부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성장했음에도 파시즘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시민사회를 강화시킬 방법은 제도화만큼, 또는 제도화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율성과 힘을 강화시키는 실천적인 활동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형식적으로만 얘기되는 듯하다. 사회적 경제 규모의 성장이 먼저이고 그 내실을 다져줄 조직화와 관련된 사업은 뒷순위로 밀린다. 수단과 목적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그 둘이 분리되고 수단이 목적을 압도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멀지 않아 다양한 활동들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사회에서 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민과 관이 진정 동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를, 시민사회운동은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인식하고 성찰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제도화는 양날의 검이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한다. 이 글은 성찰을 유도하기 위해 부정적인 면을 주로 드러낼 것이다.



1. 국가와 자본에 억눌린 시민사회


일제 식민지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일제 식민지는 한국에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체제를 확립했다. 식민지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수직적인 권력구조가 만들어졌고, 중앙정부가 정책의 기획과 평가 역할을, 지방정부는 단순집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수직적인 권력구조의 정착과 강화를 위해 강력한 경찰국가체계가 만들어졌고 공권력의 이름을 빈 국가폭력이 시민의 일상에 깊숙이 개입했다. 정치와 노동영역만이 아니라 교육과 위생, 보건영역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국가폭력은 시민들의 존엄을 짓밟고 수동성을 내면화시켰다.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수동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다. 중앙정부가 일상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각종 제도들과 폭력적인 개입이 지금도 제주도 강정마을이나 밀양, 삼척 등지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 이후 미군정과 한국전쟁, 분단의 고착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현대사는 반공이데올로기가 시민의 일상사를 지배하게 했다. 영화 <풍산개>에 나오듯 반공이데올로기는 단순히 ‘빨갱이’를 만들고 그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배제의 논리로만 작동하지 않았다. 빨갱이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도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에 갇히게 되었고 어느 계파에 서지 않으면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진영논리에 시달리면서 시민사회의 외부적인 자율성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자율성도 점점 사라졌다.

 

중앙집권형 국가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는 대부분의 지방을 ‘내부식민지’ 상태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은 자치와 자급능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재정자립도, 지역내 총생산, 지역문화/교육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지방의 능력치는 매우 낮다. 지금 당장의 역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앎과 삶이 연결되는 과정이 살아있다면 그 역량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지역적인 앎과 지식이 평가절하될 뿐 아니라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정리하자면 중앙집권형 국가와 반공․규율사회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약화되었다. 현실적으로 농협을 비롯한 관제 협동조합이 가장 큰 규모의 협동조합이듯, 사회적 경제 또한 체제 내화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허약한 기반 위에 좋은 건물을 세우겠다는 건 허황된 생각이다.

 

국가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를 고려하면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더욱더 허약해진다.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을 강화시켜 왔다. 제 아무리 시장질서를 내세워도 관치경제가 실제 모습이고, 정부가 벌이는 대규모 토건사업에서 재벌들이 이득을 취해왔다. 한국 재벌의 성장기반은 관료와의 결탁과 부패였고, 브루스 커밍스의 말처럼 “한국의 재벌들은 남한에 거대한 가족경영의 세습 기업영지를 세우고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따라서 한국의 개혁가들에게는 이 재벌체제 내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외에, 즉 이런 기업들과 국가, 그리고 거대 은행들 사이의 연계를 끊는 데 집중하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재벌들은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제휴’나 ‘협력’의 명목으로 가로채 왔다. 비도덕적인 행위는 재벌들의 기술 가로채기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들을 후려치는 납품단가 인하이다(재벌들은 매년 최소 20%이상의 단가 인하를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곽정수에 따르면, “회사의 연간 이익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에 맞춰 원가절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단가 인하 목표가 설정된다. 단가 인하는 분기별로 나눠서 시행하는데,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연간 목표와 별도로 추가적으로 단가 인하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2011년 10대 재벌의 매출액이 무려 국내총생산의 76.5%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독점을 고려하면 ‘기업사회’라는 말이 무색하고 ‘재벌사회’라 불러야 한다. 그리고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SSM만이 아니라 골목상권으로도 이미 침투하고 있다. 곽정수에 따르면, “CJ, 롯데, GS, 두산, 삼양사, 오리온, 매일유업, 농심, 남양유업, 빙그레, LG패션 등이 참여한 외식업은 일부 재벌이 먼저 진출한 분야에 다른 재벌들이 추가로 뛰어든 경우다. 여기다 와인 판매(LG, SK, 롯데, 신세계, 보광, 두산, 동원), 온라인 교육(SK, 삼성, KT, 이랜드), 차량 정비(SK), 사진관(SK), 소금 생산(CJ), 농산물 생산유통가공(현대차), 막걸리(CJ, 롯데, 진로, 오리온), 골판지(롯데, 농심, 한화, 삼양식품, 오리온, 애경), 웨딩사업(SK), 먹는 샘물(LG, 하이트), 장례업(삼성), 콜택시 사업(동부), 학원 사업(대상) 등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한 사례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대형할인점,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불거진 골목 상권 침해논란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사회적 경제의 영역과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영역이 현실적으로 겹친다.

 

국가와 자본, 시민사회라는 세 축을 고려할 때,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은 국가와 자본에 압도당해 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체적인 힘이 약하다보니 그동안의 시민사회운동은 주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활동의 초점을 맞춰왔다. 자연히 전문가 중심, 사무국 중심의 활동이 강화되었고, 엘리트 중심의 운동문화가 형성되었다. 중앙집권형 국가 속에서 운동하니 운동조직들도 피라미드형의 위계구조를 갖추게 되었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호명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식민지와 군사독재, 재벌에 억눌려온 시민문화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부활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힘이 강하다보니 노동과 농업의 의제들은 그동안 정치의 주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 법적으로 자유로워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도 실제로는 그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농민운동 역시 농촌의 파괴, 농민수의 감소, 농업의 쇠락과 더불어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기존의 노동․농민운동과 분리된 채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를 연계한 조직적인 역량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운동사회 내에 깊이 뿌리내린 정파간 갈등구조(거의 선악의 구조와 가까운)는 연대를 명목적인 연대로 만들어왔다. 통합진보당 사태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 곳곳에 그와 유사한 갈등들이 존재하고, 가부장적인 운동문화 또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즉 시민사회운동의 자체적인 역량이나 의지도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율성을 논할 수 있을까?



2. 정책의 공동생산 또는 거버넌스 구조는 존재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제도화의 방식으로 거버넌스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는 논의 이상의 실천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관이 주도하고 민간이 이를 보완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왜곡되고 있다.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가 자리잡기 어려운 몇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첫째로, 관료주의의 문제이다. 중앙집권형 국가의 관료들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권한을 누린다. 그리고 선발되는 관료들은 선거 등을 통해 선출되는 관료들과 때론 협력관계를 때론 긴장, 갈등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기도 한다. 관료들의 능력은 민주화의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업의 기획과 집행, 평가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규모 공공수요가 발생하자 관료들은 예산, 인력, 지침들을 일방적으로 확정하는 것을 관행으로 만들었다. 중앙의 부처들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입안하고 비밀리에 사업을 추진하거나 반대측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거나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일까지 생겼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직접 사업대상을 선정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기획은 중앙정부의 기획을 따를 수밖에 없고 공모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을 시작으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중앙이 계획, 평가하고 지방이 집행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민주화 이후에는 관료들이 ‘공공성’을 내세워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할 뿐 아니라 ‘조직의 이해관계’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정책집행단계보다 정책입안단계에서 이런 경쟁이 치열한데, 갈등은 권력을 더 많이 가진 부처에 유리한 쪽으로, 즉 예산이나 인력규모, 기관의 법적․공식적 권한, 대통령의 관심과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부처(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검찰청, 중앙인사위원회,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 법무부 등)에게 더 유리하다. 조직의 이해관계가 강조되다보니 공공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거버넌스도 부처간의 이해관계에 무력해지기 쉽다.

 

물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이런 관료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개방형 공무원제도 등)가 있었지만 내부의 저항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관료들의 저항만이 아니라 개혁의 방향이 힘의 불균형이나 실제 조건을 무시하고 원론을 내세우는 경향도 있었다. 또한 한국의 관료조직은 지연과 학벌을 통해 단단한 연고를 다지고, 이런 연고들은 주무장관이나 단체장과 같은 임명되거나 선출된 관료들의 통제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관료주의 구조에서는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제도화의 과정은 정부의 의지만을 반영하기 쉽다.

 

둘째는 지금도 깊이 뿌리내려 있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문화이다. 시민은 정치의 ‘대상’이었지 정치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관은 계획을 구상하고 민은 그것을 따르는 철저한 역할분담만이 이루어졌다. 한국처럼 관존민비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곳에서는 정부가 주민이나 시민의 능력을 불신하고, 그러다보니 주민이나 시민은 정부의 의도를 믿지 않고 적극적으로 결정과정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는 당위적으로 참여를 강조할 게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예를 들어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자료집을 나눠주거나 자주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할 기회를 가지는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문화의 물질성은 공유자산에 대한 관의 ‘독점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을 바꾼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주민들이 그 공간을 쓰려면 공무원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점유하고 있는 공유자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경제의 실현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들이 사회의 몫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정부의 손에 묶여 있거나 남용되고 있다.

 

셋째, 거버넌스에 필요한 정보와 자원의 불균형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사안과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협력하려면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하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토론해야 하고, 그리고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토론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아야 한다.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제공한 채 같이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건 거버넌스를 형식적인 틀로 만드는 원인이다.

 

아울러 그런 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도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과정의 의미는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과 공간이 보장될 때에만 거버넌스가 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질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사례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행정이 편한 시간과 장소에서 제한된 정보와 짧은 시간 내에 아무런 권한도 없이 거버넌스를 내세운 협력이 이루어진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간동안 업체수만 늘리려는 방식은 사회적 경제의 뿌리내리기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넷째, 거버넌스의 실현방식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특정 주민들만을, 소위 ‘지역토호’라 불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왔다. 뉴라이트의 권력기반이 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세력들이 시민사회, 제3섹터라는 영역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버넌스는 이해당사자와 더불어 전문가들의 참여를 당연시하고 이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곤 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의 정부들에서도 거버넌스는 주로 시민단체나 지식인들만을 파트너로 삼았다. 정부는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런 위원회에는 시민들보다 단체나 지식인들이 주로 참여했다. 더구나 이런 위원회들이 시민과 정부 사이를 매개했다기보다는 단체나 지식인들이 구상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역할을 잡지 못했음을 뜻한다. 운동이 변화된 사회적 조건에 발맞춰 성격을 바꾸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거버넌스의 덫’에 걸려들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지역의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경제를 실현함에 있어 전문가는 누구인가? 주민들은 지역에 관해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식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적어도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만큼, 또는 그보다 더 소중하다. 더구나 현재 그 지역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나 요리사라 하더라도 좋은 집이나 음식을 만들려면 그 집에 살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욕구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섯째, 거버넌스 이면에 깔린 민영화나 시장논리의 문제점이다. 설령 국가가 권한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의 강화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이중 구조가 아니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삼각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분권이나 역할변화는 시민사회의 강화가 아니라 시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탈규제’와 ‘민영화’, ‘위탁관리’만이 국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그런 시각을 잘 보여준다.

 

여섯째, 거버넌스가 논의되는 시점이다. 보통 거버넌스는 사안을 계획하는 단계에서가 아니라 그 사안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갈등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안되었고, 그렇기에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를 주장하면서도 일반 주민이나 평범한 시민들을 중요한 논의대상이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고 거버넌스를 논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라는 정책과제가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실현되려면 관과 민의 공동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에서는 그런 협력이 거의 불가능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이런 초기의 제도화가 사회적 경제의 앞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논리이다.

 

지금 당장 제도화의 방향에 개입하지 못하더라도 내적인 힘을 기르고 있다면 이후에라도 시민사회운동이 제도의 틀을 바꾸는데 참여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3. 운동과 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자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나눔장터 등 사회적 경제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고 관련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규모와 활동가의 수가 운동의 목적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외려 규모와 수가 늘어날수록 단체 내부에서조차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자기 담당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외부로 알려진 만큼 내실이 없다는 비판, 사업담당자만 있지 활동가는 없다는 성찰도 있다. 눈에 띄는 사업에 단체들이 몰리고 때로는 단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첫째, 정부의 사업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없고, 이런 식이라면 당장 사업을 관두고 싶지만 우리가 아니면 안 될 사업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는 식의 얘기가 많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봄 직하다. 정부의 일을 대행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 진영의 역할일까? 물론 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업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런 사업들에 모두 ‘사회적 경제’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다. 특히 사업에 대한 ‘평가의 권한’을 사회적 경제 진영이 가지고 있지 않고, 외려 관이 그런 평가의 권한을 가지고 사업에 개입한다. 따라서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 사업을 하는 것인가’,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확장하며 사업에 개입하고 있나’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많은 사업들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정부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와 사회적 경제의 공고화나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인가? 단체들의 고유활동을 지원사업으로 기획하거나 그 단체의 설립목적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을, 소위 ‘뜨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가 사업만을 위한다면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보조금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관료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마련하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적 경제를 실행한다는 단체들도 쉬운 길만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 갈수록 단체들의 사업이 비슷해지고 있고, 지역특성을 반영한 활동들, 아니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지역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하는 활동들은 사라지고 있다. 자원을 마련하는 과정이 곧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과정인데, 외부자원을 동원하려 애쓰다보니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을 밟더라도 지속성이 담보되는 내부의 자원을 모으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공무원들은 바보가 아니고 자원이 제한되고 부족한 시민사회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거만하게 나온다. 때로는 일부러 단체들끼리 경쟁을 붙이고 자기 말을 잘 듣는 단체들을 밀어주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운동의 목적은 자꾸 사라지고 사업만 남게 된다. 더구나 행정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의 밑바닥을 다지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사회적 목적보다 앞서 나가게 된다. ‘왜 우리가 운동을 시작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사회적 경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생기는 고민인데, 요즘은 어딜 가나 사람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왜 그럴까? 앞으로 박원순 시장과 같은 사람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운동이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활동가, 뛰어난 활동가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이런저런 시민사회운동의 활동가로 충원되었지만 경쟁적인 교육체계, 대학 중심, 학벌 중심의 교육체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제 그런 충원구조는 사라졌다. 10년 뒤, 20년 뒤에는 누가 어떤 과정을 밟아 운동에 참여할까? 아이디어나 기획력이 뛰어나고 그나마 사회정의감을 가진 대학생들도 아마 단체가 아니라 행정조직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실행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활동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목적을 공유하더라도 문화를 공유하지 못하는 ‘세대단절’의 문제가 풀뿌리운동 내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단절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풀뿌리운동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고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의 못 봤다. 10년 정도 더 지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활리듬과 가치관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가 한 단체 안에서 (그것도 운이 좋아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기르지 않으면서 어떤 지속가능성을 논할 수 있을까? 사람 없이는 제도가 지속될 수 없다.



4. 결론


이상의 비관적인 전망을 마치고 제도화 과정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일단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어느 부분의 힘을 더 강화시킬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앞서 말한 여러 문제점들에 대처할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와 제도를 변화시킬 힘은 시민들이 자신의 권한을 되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운동은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분권국가, 연방국가로 해체할 방법을 여타의 시민사회운동, 정치운동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재벌과 국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해체시키지 않고 사회적 경제의 전망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리고 협동의 문화를 구성해야 한다. 거버넌스를 제도적인 협약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계약의 실행을 요구하고 강요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단체, 운동들이 함께 도모하는 일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접촉도 잦아져야 한다. 관료주의를 넘어설 방법은 똑같은 관료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들이다. 그리고 관료주의의 특성상 일단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기 시작하면 그것을 막을 방법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용역보고서로 시작되는 정책의 입안과정에 관심을 두며 참여해야 하고 겉으로 드러난 단기적인 사업만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며 개입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지식인의 자율성 자체가 정부나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연구지원에 따라 연구방향이 주로 제도로만 맞춰지고 실질적인 삶이나 방향성과 관련된 부분들은 약화되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더 심각해진다. 즉 지식인 사회가 사회에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제도권력과 결탁하며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각종 연구용역들이 그런 거래의 매개가 된다). 이런 폐해에서 벗어나 자율성이 강화되고 다양한 지적 활동이 시민사회의 생활을 매개로 벌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운동의 다양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 참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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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2004. “지역NGO와 지방정부간 파트너십에 대한 경험적 연구”. 《지방정부연구》 제 8권 제 3호.

하승수. 2007.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하승우. 2009. “거버넌스의 붕괴와 약한 시민사회”, NGO학회 발표문(2009년 6월 12일)

하승우. 2010. “공공성의 독점과 민주주의의 붕괴: 관료주의라는 쇠창살”, 제 14회 녹색사회포럼 발표문(2010년 12월 10일)

하승우. 2011. “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의 교차점”, 충북참여자치연대 발표문(2011년 5월 23일)

하승우. 2011.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한국에서도 환상의 짝꿍일까?”, 충남발전연구원 발표문(2011년 7월 7일)

하승우. 2012. 『민주주의에 反하다』(낮은산).

하승우. 2012. “풀뿌리운동, 안녕하신가요?”, 서울형 의제개발워크숍 발표문(2012년 6월 15일)

 요즘 말로 ‘돌직구’라고 그러죠. 그냥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1.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 왔나?

 

풀뿌리라는 말이, 마을과 공동체, 협동조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좋은 일이지요. 그동안 노력해온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팽팽하게 긴장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이 우리의 입과 우리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입과 힘을 통해 퍼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과 의지를 담은 말이 그저 그런 사업처럼 논의되고 있다는 현실을 눈감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풀뿌리운동에서도 ‘사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니 실무자가 필요하고, 어느덧 활동과 활동가는 거북한 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되지 어떻게 불리든 무슨 상관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운동은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고, 나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일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이 이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볼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 길을 어떻게 걷고자 하는지 서로 확인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2.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고 있나?

 

요즘 ‘prefigurative’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저는 이 말을 좀 좋아합니다. 이 말을 ‘예시적’, ‘전(前)형성적’,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는 ‘미래를 살아가는’이라고 씁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유토피아가 온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 사회가 지금 실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도 어떤 미래를 살고 있는지 한번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를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마음에 품고 그 사회를 하나씩 실현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사회에 관해서는 얘기하거나 살지 않고 그냥 그것이 있다고 믿기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진행되는 사업을 얘기하며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사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슨 달을 가리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알 수 없고, 달을 보여주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 예언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 그 예언이 실제임을 증명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증명하지 않는 예언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에 관한 문제가 사회에 관한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을 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3. 어떤 경계를 넘어야 할까?

 

풀뿌리운동에 정말 힘이 있을까요? 단지 박근혜 정부가 등장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법률 하나 제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고 사람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운동이 어떤 변화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동의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니 답답합니다.

 

더구나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파국’이라는 상황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체제가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이미 몇 년 전에 선포되었고, 핵발전소와 먹거리 등 일상이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지만 전 세계는 조금씩 들끓고 있습니다.

 

풀뿌리운동은 이런 현실과 무관할까요? 현실은 개판인데 우리는 여전히 힐링의 방식을 택하려는 건 아닌지, 저는 좀 우려가 됩니다. 이제 풀뿌리운동도 본격적으로 자기 경계를 확장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운동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의 운동들과 서로 엮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좀 힘이 나지 않을까요? 우리 일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지냐? 과연 그 우리 일이 과연 다른 일과 무관할까요?

 

곳곳의 공장과 일터에 위험물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착각 아닐까요? 우리 지역에 무엇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가, 이것은 더 이상 남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장기파업과 철탑농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역사회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황이 벌어지면 일시적으로 연대기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사회 변화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요?

 

자치와 자급은 무관할 수 없고 자급의 기반인 농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팔자 좋게 공동체를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농업이 사업과 산업으로 변한 사회에서 자치가 실현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생활정치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제도정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사회의 공공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우리끼리만 잘 사는 공동체는 재벌가의 아름다운 브랜드아파트 CF에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로 성공한 지역의 집값이 뛰거나 재개발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서글픈 상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권은 복지국가 유럽시민들만 누리는 특권일까요?

 

제가 운영위원장이라는 큰 권력을 낼름 사다리타기로 얻었습니다. 사다리타기로 얻은 권력, 양껏 써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작년부터 시작된 사례연구팀에서 어느 정도 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은 비정규직 노동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 인권운동 등 이미 진행 중인 다양한 운동들, 지역사회를 중심에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운동들과 공통의 질문을 놓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진행된 “인권운동가 + 풀뿌리운동가 우리 한번 만나” 자리가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단위를 만들지 않더라도 같이 고민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고민이 잘 나눠지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준비된 운영위원장 하승우였습니다.^^

요즘 들어 협동조합에 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협동조합에 관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언론매체에서도 협동조합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나 기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동조합이 대안사회의 기반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협동조합을 지역경제 발전모델로 고려하기도 한다.

 

왜 갑자기(?) 협동조합일까? 기념일 챙기길 좋아하는 한국인지라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조금 더 실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소개되는 경향을 보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면에 많이 집중된 듯하다. 그런 면도 분명 긍정성을 갖지만 그것만으로 협동조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강좌의 주제는 협동조합과 지역운동이다. 그런데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시초를 보면, 협동조합과 지역운동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곧 지역운동이었다.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협동조합이 고민되었다. 물론 협동조합은 경제활동을 하는 법인이자 조직활동을 하는 결사체이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고 힘을 축적할까?? 일반 기업처럼 경제활동을 하지만 경제활동의 목적이 달랐다. 자본주의 기업은 이윤의 축적, 자본형성이 목적이지만 협동조합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 힘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 그런 점에서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기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 지역운동이자 협동운동

 

일제 식민지 시기 여러 개혁가들이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남강 이승훈 선생도 그런 개혁가였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학교만 세운 게 아니라 협동조합을 근거로 한 이상촌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학교와 협동조합은 이상촌의 기둥이었다. 지역을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안병욱 등이 쓴 『안창호 평전』(청포도, 2007년)을 보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산과 강이 있고 지미가 비옥한 지점을 택하여서 200호 정도의 집단 부락”을 세우려 했다. 이 이상촌에는 “공회당(公會堂), 여관, 학교, 욕장, 운동장, 우편국, 금융과 협동조합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설치될 것”으로 “집단적인 회식과 오락”을 안창호 선생은 강조했다. 이 부락에는 금융기관과 협동조합이 있는데, “금융기관에서는 저금과 융자의 일을”, 협동조합은 “생산품의 공동판매와 일상생활 용품의 공동구매 배급기관”을 담당한다. 안창호 선생은 이 부락에 “일반교육의 학교 이외에 직업학교를 세우”려 했고 “직업학교는 농(農)․잠(蠶)․임(林)․원예․목축(牧畜)․공(工) 등의 여러 과목을 두되, 공에는 농가 건축, 농촌 토목, 요업, 식료품 가공, 농구제조의 목․철공, 농촌 상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소자본과 약간의 연장으로 직업을 갖고 이상촌의 한 몫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표였다. 안창호 선생은 이러한 모범촌과 직업학교를 각 도에 하나씩 설립해서 적어도 전국 각 면에 한사람씩을 선발하여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모범촌은 “첫째, 각 사람이 교육받고 훈련받은 직업 기능을 가질 것, 둘째, 그리하여서 농․어․임․공 기타 모든 생산방법을 과학화하고 합리화할 것, 셋째, 부락사업의 계획과 경영과 노력을 집단화할 것. 이것을 도산은 분공합작(分工合作)이라 하였다. 넷째, 부락의 금융과 공공 매매의 협동기관을 세울 것. 다섯째, 각 사람의 덕, 즉 신용을 향상하고 부락의 일상생활을 도덕적․위생적․심미적으로 개선하여서 생활이 안전하고 유쾌하게 할 것”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안창호 선생에게 협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안창호 선생은 이를 무실역행(務實力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아무리 옳은 것을 알더라도 행함이 없으면 아니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봤고 무실역행하는 중요한 기관이 학교와 협동조합이었다. 이 둘은 분리된 기관이 아니었다.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세운 대성학원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 1954년 원주에 세워진 장일순 선생의 대성학원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을 실제 계획에 옮겼던 건 이승훈 선생이다. 이승훈 선생은 충남 홍성군에 풀무학교를 세운 이찬갑 선생의 종증조부이다. 이찬갑 선생에 관한 백승종의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궁리출판, 2002년)에서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오산학교는 용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일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하숙집을 정해두고 있었다. 이찬갑의 집에서도 대문의 서편에 있는 사랑방 두 개를 학생들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숙비를 지불함으로써, 이 집의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1940년경까지는 그러했다.” 이승훈 선생은 용동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사유지 일부를 마을 전체의 공유 농지로 기증하는 한편 마을조직인 용동회를 조직했다. 용동회는 “자치적으로 마을의 위생, 교양, 풍기는 물론이고 마을의 모든 일을 처리”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가운데서도 한 명씩 간사를 선출하여 마을일을 함께 의논”했다. 용동회와 별도로 이승훈 선생의 측근과 친척들이 자면회를 조직해서 근면, 청결, 책임을 주장하며 “농지 개량, 연료 개량, 협동생산, 협동노동 및 소득증대”를 추구했다.

 

이렇게 “오산학교를 발전시키는 한편, 이승훈은 지역 공동체를 굳건한 기반 위에 세우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용동을 비롯한 오산의 일곱 마을에 저마다 동회를 조직하게 하고, 그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소비조합을 설치했다. 조합은 일곱 마을의 연합체이기도 한 동시에 동회의 상위 조직이기도 했던 셈이다. 소비조합은 본래 학생과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학용품을 값싸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찬갑은 소비조합 일에 특히 열심이었다. 1933년 3월부터 1935년 3월까지 그는 오산소비조합의 전무이사를 지냈을 정도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찬갑은 조합운동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 1958년 4월, 그는 주옥로와 함께 충남 홍성에 풀무학교를 창설했는데, 개교 직후 학교 내에 소비조합을 설치했던 것이다. 오산의 경우에도 소비조합의 사무실은 오산학교 구내에 있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학교와 조합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설명을 들어보자. “오산의 조합은 일종의 은행이었다. 오산학교 학생들의 학비는 부형이 학교로 송금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돈을 조합이 보관했다.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의 허가를 얻은 다음, 금전 출납부에 돈을 사용할 용도를 기입했다. 그런 뒤에야 지출이 가능했다. 용돈 지출의 경우, 학생들은 소비조합에 가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물품 구입에 사용한 금액은 매월 말 학교와 조합 및 조합원인 학생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계산되었다. 조합의 회원은 오산의 주민, 교사 및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대표가 상임위원으로서 조합회의에 참여했다. 오산 일곱 마을의 동회는 각 마을의 이익을 조합에 파견된 대표를 통하여 조합 회의에서 대변할 수 있었다.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인 지위에 관한 문제까지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관한 연구에서 서굉일은 주장하기를, 오산학교와 일곱 마을의 공동체 활동은 “학교와 교회, 농촌으로 나누어진 현장을 교육과 산업으로 구조화시키고 정신과 물질이라는 양면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서굉일 1988, 275). 서굉일의 그러한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사실, 오산학교의 시설물 가운데서도 주민들의 복지에 특히 기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던 학교 병원과 목욕탕은 그 이용이 전면 개방되었다. 학교에서 개최되는 각종 강연회와 음악회에도 주민들이 초대되었다. 그 밖에도 교회, 동회 및 야학을 통하여 오산의 뜻있는 인사들은 주민들의 정신생활을 지도했다. 그러한 결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휩쓸던 사회주의의 격랑 속에서도 오산 일대는 계층적 갈등이 노골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산학교의 교사였던 함석헌 선생이 1968년에 부산에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세우고 조합원 1호로 가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윤봉길 선생도 사실은 지역을 바꾸는 혁명가였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http://www.yunbonggil.or.kr/)에 가면 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불과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윤봉길 의사는 농업에 바탕을 둔 사회변화를 추구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주인공인 농민은 이 때까지 주인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농사는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라고 강조하는 <농민독본>을 직접 써서 야학에서 교재로 사용했다. “지식이란 혼자 힘으로 터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사실도 발표하여 남에게 가르쳐 보기도 하고, 실제로 적용해 보아야 비로소 산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례 강연회 때에는 열심히 연사의 말을 듣기도 하고, 토론회 때에는 여러분도 한번씩 연단에 올라가서 아는 바를 발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독서회를 조직했다. 이 독서회는 “1. 낮에 일하다가 쉬는 사이, 밤에 야학이 파한 뒤에도 시간을 내어 독서한다. 2. 누구나 독서한 뒤 그 소감을 적어 두었다가 토론회때 의견을 발표한다. 3. 제한된 책을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하는 관계로 가급적이면 빨리 읽고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라는 규정을 두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윤봉길 선생이 힘쓴 것은 협동정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매달, 매철마다 돈과 곡식을 모아 상을 당하거나 경사가 생겼을 때 서로 도우며 친목을 도모하는 위친(爲親契), 달마다 자신이 직접 번 돈 10전 씩을 모아 돼지와 닭을 기르고 유실수를 재배하는 월진회(月進會),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며 만든 수암체육회, “뭉처야 한다. 그리고 혁신해야한다. 살길은 단결과 혁신 뿐이다”라며 마을회관인 부흥원(復興院)을 세우고 이 건물에 야학당과 구매조합, 각종 회의공간을 만들었다. 부흥원은 “첫째. 증산운동(增産運動을 펴야한다. 둘째. 마을 공동의 구매조합을 만든다. 셋째. 일본 물건을 배척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土産品)을 애용한다. 넷째. 부업(副業)을 장려해야 한다. 다섯째. 생활개선이다.”라는 실천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를 권장했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농산품을 매매하고 그 이윤을 부원에게 배당했다. 농민공생조합을 만들어 공동구입 배급 및 판매를 담당하는 소비부, 창고 및 공장 경영, 위탁판매를 담당하는 생산부, 농자금을 융통하고 예금활동을 하는 신용부, 주요 농기구들을 관리하는 이용부, 병원과 이발소, 목욕탕을 운영하는 위생부를 뒀다. 만주로 떠나기 전에 4년 동안 충남 예산군에서 지역운동을 펼쳤다.

 

앞선 선배들의 사상과 삶에서 지역과 협동조합, 학교는 분리된 기관이 아니었다. 이런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치와 자급을 지향했다. 풀무학교가 내건 ‘위대한 평민’은 헛된 구호가 아니고, 다만 그런 위대함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로 증명되어야 했다. 협동조합은 위대한 평민들이 자신의 삶을 살고 협동하는 방편이었다.

 

이상촌은 한반도 내에서만 생기지 않았다. 무장항일조직인 <신민부(新民府)>를 이끌던 김좌진 선생이 김종진, 유자명, 이을규 선생 등의 도움을 받아 1929년에 만든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도 이상촌을 추구했다. 유자명, 이을규 선생 등은 북만주에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고 크로포트킨의 농업론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려 했다.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우리는 한 개의 농민으로서 농민대중과 같이 공동노작(共同勞作)하여 자력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활개선과 영농방법의 개선 및 사상의 계몽에 주력한다”는 당면강령을 세우고 자신의 뜻을 실현할 공동체를 찾았다.

 

<한족총연합회>는 자신이 만주에 사는 한국 교민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향상발전을 도모하며 동시에 항일구국의 완수를 위하여 재만동포의 총력을 집결한 교포들의 자주자치적 협동조직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족총연합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①교포들의 집단정착사업, 교포의 유랑 방지 및 집단부락 촉성, ②영농지도와 개량․공동판매․공동구입․경제적 상호금고 설치 등을 목적하는 협동조합사업, ③교육․문화사업, 즉 소학․중학의 설립운영, 각지조직의 연락 및 교포들의 소식․교포들의 생활개선․농업기술지도 등을 위한 정기간행물발행, 순회강좌․순회문고설치, 성인교육과 장학제도,  ④청장년에 대한 농한기의 단기군사훈련, ⑤중학출신자로써 군사간부양성을 위한 군사교육기관의 설립운영, ⑥항일게릴라부대의 교육 훈련․계획지도를 맡으며, 지방치안을 위한 지방조직체의 치안대의 편성지도 등을 위한 통솔부 설치.” 실제로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도정하기 위해 직접 정미소를 차리고 위탁판매까지 담당했다.

 

이런 운동들에서 주목할 점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이상촌이라는 구상 속에 각각의 기능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을 기르는 일과 지역사회를 성장시키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고, 학교와 협동조합이 분리되지 않았고 필요를 성찰하는 일과 필요를 조직하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은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공생공락하는 자치와 자급 공동체였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필영이를 제한 외에 네 아이는 무엇을 하던지 거리에 나가 신문지를 팔더라도 죄다 일전씩의 벌이라도 버는 일을 실행케 하고 이 불경기 시기를 이용하여 절용을 공부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안창호 선생의 협동조합은 정의돈수(情誼敦修), 서로의 사랑을 도탑게 닦는 것, 사랑하기를 날마다 힘써 그것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오산학교의 경우, 조합 사무실이 학교 안에 있었다. 이런 학교가 협동조합을 교육내용에 반영하지 않았을까? 윤봉길 선생은 마을회관 부흥원을 세우고 그곳에 야학당과 구매조합, 회의공간을 만들었다.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정미소를 세우고 협동의 그물망을 짬으로써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를 지금 현실에서 살아가려 했다. 협동조합은 그렇게 축적한 힘으로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발판이었다.

 

 

2. 협동조합은 어려운 것인가?

 

물론 사회상황은 바뀌었다. 한국은 더 이상 농사가 기본이지도 않고 지역 내의 관계망도 거의 파괴되었다. 마을은 의식적으로 관계 맺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미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일상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강력한 중앙집중화는 대부분의 지방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자식을 농민이나 노동자로 기르지 않으려 하는 상황은, 윤봉길 선생이 비판했던 그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고 교육은 이른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사회 어디에서도 협동을 경험할 곳이 없고, 우리의 마음과 습관은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촌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거의 사라졌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국가 차원의 독점을 상쇄시켰던 마을 내의 재분배, 이를 가능케했던 공유지들이 거의 사라졌고, 최소한의 생계기준도 바뀌었다. 제임스 스콧의 『농민의 도덕경제』(아카넷, 2004년)를 보면, “농민에게 있어서의 기준은 ‘얼마나 가져가는가’보다 ‘얼마가 남는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생존기준은 착취당한 잉여가치라는 기준에 의존하는 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착취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들은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논리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의 협동조합운동을 봐도 우호적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초기에는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그 시련이 협동조합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협동의 근본은 동일하다고 본다. 내 것을 우리 것으로 전환시키고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려는 노력, 서로를 우리 삶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 서로의 필요를 공동의 필요로 만들어 우리의 몫을 키우는 과정이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일본 유학생으로 <협동조합운동사>를 조직하고 활성화시켰던 전진한은 자전적 기록인 『이렇게 싸웠다』(무역연구원, 1996년)에서 자신의 이념을 ‘자유협동주의’라 명명했다. “개인주의에서 독점성과 배타성이 止 즉 폐기되고 개성자유 즉 개성존엄성, 평등성, 창의성이 揚 즉 보존됨과 동시에 전체주의에서 강권주의와 기계주의가 止 즉 폐기되고 사회협동 즉 사회연대성, 공존성이 揚 즉 보존”되는 이념인 자유협동주의는 농어촌의 협동조합체계와 도시의 소비자/생산자협동조합체계를 결합할 뿐 아니라 임금제도를 철폐하고 이익을 균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협동조합조성법, 협동조합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던 전진한은 국가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민중의 자조적인 생활을 통해 협동조합 공화국을 만들려 했다. 그는 “국민경제가 일부 독점재벌이나 간상모리배 심지어는 탐관오리에게 농단됨이 없”도록 협동조합운동을 활성화시키려 했다.

 

전진한이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한 방식은 간단했다. 매일 한 사람이 한 숟가락의 쌀을 저축(자조미自助米)하고 매월 5, 10, 15, 20, 25, 30일 저녁식사를 죽으로 대체하고(애향미愛鄕米), 매월 7, 14, 21, 28일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그 쌀을 모은다(구국미救國米). 농가나 공장도 수확을 할 때나 상품을 팔 때 조금씩 판매량을 저축한다. 이것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본자산이 된다. 그 결과 불과 2년 만에 협동조합의 수가 22개, 조합원수 약 5천명에 이르렀고 자본금도 4만 5천여원에 달했다.

 

협동조합의 틀이 정형화될 필요도 없다. 차성환의 글 “양서협동조합운동의 재조명”(2009년)에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활동했던 양서협동조합운동이 설명된다. 부산의 청년활동가들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이며 도덕적인 개혁운동으로 구상한 양서협동조합운동은 말 그대로 좋은 책을 널리 권하고 함께 읽으며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운동이었다.

 

1978년 4월에 창립총회를 가진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107명의 조합원으로 시작되었고 “본 조합은 양서를 적정한 가격으로 구입․보급하고 지역사회 개발사업을 통해 부산지방의 문화 향상을 도모하며, 조합원 상호간의 협동과 신뢰에 기초한 민주적 경영방식을 익히고 나아가 경제적 민주주의와 협동주의에 입각한 참다운 자주, 자립적 경제질서의 전 사회적 확산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 목적을 위해 양서를 구입하고 판매하는 시설을 설치, 운영했고,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매월 1천원 이상 출자하고 매월 책 2권 이상을 구입하게 했다.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고, 도시문제 연구모임, 농촌문제 연구모임 등 사회문제 학습모임과 사진반, 연극반, 꽃꽂이반 등의 취미모임도 만들었다. 이런 활동으로 부산의 양서협동조합은 불과 1년 만에 조합원 수가 3배로 늘었고 흑자로 운영되었다. 이 글에 따르면 양서협동조합의 빠른 성장은 기독교 교회의 전도방식과 비슷했다고 즉 “조합원이 조합원 신입교육을 받고 취지에 흔쾌히 찬동하고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해 주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는 매력”을 줬다고 한다.

 

양서협동조합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정부의 감시와 압력을 받게 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불씨를 일구기도 했는데, 결국 정부가 양서협동조합을 부마항쟁의 배후조직으로 지목하면서 강제로 폐쇄되었다.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 마산, 대구, 울산, 서울, 수원, 광주로 퍼져나간 양서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이 민주주의를 불태우는 횃불임을 증명했다.

 

어두운 시대에 협동조합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틀이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따스한 온기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고, 노동자가 농민을, 농민이 노동자를 만나고, 학생이 선생을, 선생이 학생을 만나고, 그렇게 서로를 동등한 시각에서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협동의 힘이 생긴다.

 

협동조합운동을 어렵게 만드는 건 부족한 자원이 아니다. 협동조합에 출자하기 위해 한 사람이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쌀 한 숟갈 모으면, 협동이기에 순식간에 큰 자원이 된다. 협동의 힘은 내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마음이다. 나중에 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가진 것을 공유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들의 의미를 밝혀주고 더욱더 단단하게 다져주는 사상, 사상을 실현시키는 다양한 조직들이 협동운동을 가능케 한다.

 

반면에 서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도 여기는 순간 협동의 힘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조그만 지원금이나 매장을 놓고 지역에 있는 작은 단체, 협동조합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 사람의 성장을 기다리고 지원하지 않는 조직, 스스로 직접 나서지 않고 뒤를 봐주길 기대하는 문화는 협동운동의 힘을 위축시킨다.

 

3.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는 법

 

운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의 목표는 현실을 빌미로 삼아선 안 된다고 믿는다. 한 사람이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기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현실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 속에 학습된 기성사회의 논리로만 바라볼 경우, 우리는 주어진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년)에서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가독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적인 경험과 체험으로 구성된 경험지의 시각을 가져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외국의 모델을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다.

 

아울러 단순히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사회서비스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평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소외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년)에서 경제적 필요가 정치적인 자유의 절박성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①정치적․사회적 참여를 포함하는 기본적인 능력과 관련된 인간의 삶에서 그것들의 직접적 중요성, ②경제적 필요의 주장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정치적 관심사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표출하고 지지하는 발언의 기회를 강화시키는 그것들의 도구적 역할, ③사회적 맥락에서 ‘경제적 필요’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여 ‘필요’의 개념화에 있어서 그것들이 지니는 구성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센은 경제적인 발전이 개인을 능동적인 행위주체로 변화시키는 전략과 연계되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자원들을 중앙정부와 재벌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런 지역들이 촘촘히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나는 이를 지역들의 연합, 연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지역이 홀로 고립되어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정치를 변화시키고 분권을 이루려는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 <YMCA>운동을 이끌었던 황주석 선생은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그물코, 2007년)에서 이미 ‘시민생활나라’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시민생활나라는 참여와 자치, 자결과 협동을 중히 여기고 이로써 운영됩니다. 또한 시민생활나라는 연대를 중히 여깁니다. 나라 안의 연대, 나라 간의 연방을 형성하며 나라가 뻗어갑니다.” 중요한 과제들이 이 속에 모두 담겨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맥낼리는 『글로벌 슬럼프』(그린비, 2011년)에서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위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기를 주도하는 탈정치화의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하는 것, 그것이 대안이라고 맥낼리는 얘기한다. 그러니 협동조합은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유럽 협동조합의 기본은 농민과 소상공인, 도시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위해 협동조합은 분권화를 추구했고 지역과 지방은행을 강화시켰다. 중앙에서 조직되어 지방으로 퍼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급이 기본이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중앙이 개입했다. 중앙이 가서 판 깔아주고 컨설팅해주고 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협동조합들은 자급의 원칙을 지키고 있고, 분권화되어 있어 유연하고 조합원이나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나 협동조합이 조직되는 방식은 어떤가? 수도권과 중앙 중심이고 그 구조가 집중화되어 있다. 이런 구조를 비판하고 바로잡지 않고서는 협동운동의 성공을 점칠 수 없다.

 

아울러 협동조합은 공론장(公論場)이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과 행동들이 이 장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고 조절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수많은 얘기와 활동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분리된 삶터와 일터의 얘기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순환되어야 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삶터에서 얘기되고, 반대로 삶터의 일들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얘기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 배달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들이 그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얘기되어야 한다. 또 재벌들이 만드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조건에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제품을 쓰고 보험을 들고 주식투자를 하는 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합원들이 고민해야 하고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 벗어나면, 지금 저항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 행복을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틀,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게 하는 틀, 중앙이 아니라 변방을 강화시키는 틀, 협동조합은 그런 틀이다.

대통령선거일은 다가오는데 시민들의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다. 왠지 다들 시큰둥하다. 어찌되었건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들 중에서 앞으로 5년 동안 중요한 정책들을 결정할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선거이니 관심이 집중될 만하고 당선가능한 사람의 윤곽도 드러났으니 분위기가 달아오를 만도 한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물론 당선가능한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뭔가 부족한 면을 가져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선거는 그렇지 않았던가? 그동안의 선거도 언제나 최선은 고사하고 차선조차 아닌 차악을 지지하는 수준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최악을 가려내고 차악을 차선으로 포장하려는 관심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는 그런 관심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지하는 후보가 없을 때는(사실 대통령 선거에 당선가능한 후보를 낼만한 조직은 한국에 몇 되지 않으니), 선거연합이나 대안정책을 제안하거나 선거캠프에 들어가는 등 다른 전략들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조차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전략들이 대부분 실패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실현해야 할 중요한 사회의제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냉소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냉소가 상황을 바꾸기는커녕 더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의 선거전략들이 성공하지 못한 건 진보정치의 부족한 실력 탓도 크지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든 구조의 문제이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 이후 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체제를 고수해 왔다.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문화예술을 하든 심지어 조직폭력배를 해도 ‘전국구’가 되어야 성공하는 사회이다. 전국구가 되어야 내 이해관계나 사상을 실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는 타협이나 변질을 피할 수 없기에 전국구가 된다는 건 기존의 구조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했다.

 

실 전국구의 중앙집권형 국가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책임자만 되면 마음껏 나라를 유린할 수 있고, 직접 나서지 않아도 최고책임자만 꼬시면 되니 이권을 나눠먹기에 가장 좋은 체제가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1987년 이후 여러 체제 논의가 있었지만 중앙집권형 국가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는 논의는 거의 없었다.

 

지금의 체제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던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반(反)민주적인 중앙권력에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하나같이 시민의 주인됨과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하려면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연방주의를 고민해 봄직하다.

 

혁명을 지속시키는 방법

우리 역사에는 혁명에 견줄만한 사건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실제로 사회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주체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혁명을 준비하는 방법이나 그 이후에 대한 사유가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건드리지 못한 탓도 크다. 주로 자신들의 ‘집권’만 생각하고 국가의 성격 자체를 바꿀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차이와 다양성, 민주주의를 주장해도 중앙집권형 국가에서는 그것이 자리잡을 여백이 없다. 제임스 스콧이 《국가처럼 보기》1)에서 지적했듯이 국가는 그 모든 언어와 문화, 삶의 다양한 결들을 통일시키고 표준화시킬 때에만 자신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역의 관행과 문화, 민주주의의 회복은 중앙집권화된 힘을 해체하고 지역 자체의 힘을 강화시킬 때에만 가능하다. 이 회복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와 질적으로 다르다. 연방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연방주의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은 분단이라는 조건 탓이 크다. 1960년 8월에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제안한 이후, 한국사회에서 연방은 금기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방의 의미를 제대로 사유하는 정치사회운동도 없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코리아연방제를 주장했지만 ‘1민족-1국가-2체제-2정부’라는 기존의 식상한 논의들을 벗어나지 못했고 연방제도를 체제로 사유할 뿐 그 의미와 정신을 살리지 못했다.

 

새로운 정치인이나 정당의 등장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의 정치열정을 계속 불태울 방법은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논의를 참조할 만하다. 우리는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건국보다 프랑스 혁명을 더 높이 평가하지만 아렌트는 《혁명론》2)에서 미국 건국의 가치를 더 높이 산다. 두 나라 모두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작과정에서 폭력과 파괴를 경험했지만 미국은 연방이라는 자유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프랑스 혁명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혁명이 자유의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그 이유를 프랑스 혁명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을, 동료의 자유가 아니라 결핍의 충족을, 자유가 아니라 풍요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찾는다. 혁명가들도 ‘동정’과 ‘연민’이라는 정념에 휩싸여 혁명을 지속시킬 제도를 만드는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은 독립으로 자유를 맛본 시민들이 공적 행복을 느끼며 일상적으로 통치에 참여하고 공권력에 대항해 자신의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 했다. 미국헌법은 “새로운 정치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고 내부의 규칙을 규정”하며 “혁명이 실질적으로 종말을 맞은 후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공적 자유에 대한 정념’이나 ‘공적 행복의 추구’가 미래 세대를 위한 자유로운 유희를 수용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보장했다. 즉 미국헌법은 혁명의 목적인 자유가 혁명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이자 실생활에서 쓰고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도록 했다. 미국 헌법의 수정조항들은 건국의 의미를 되살렸고 아렌트는 “미국 헌법의 진정한 권위는 수정되고 확장되는 그 내재적 능력에 있다”고 말했다. 즉 권위는 시민들 속에 있게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풍요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지금 이곳 한국의 선거판은 혁명이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아렌트의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시민이 권력의 주체로서 자유를 누리려면 개혁이든 혁명이든 그 자유를 지속시킬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해야 한다. 혁명이 열어놓은 자유의 공간을 지속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혁명은 지속될 수 없다. 혁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건 자유로운 시민의 몫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무대가 바로 연방국가이다.

 

그동안의 사건은 자유를 지속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정치를 사유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헌법을 개정시켰지만 개헌은 정치인들의 타협으로 이루어졌고, 국민투표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3개월 동안의 논의는 시민들의 말과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헌법은 정치를 자유의 실현으로 사유한 결과물도 아니었고 시민에게 자유의 공간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설치 정도가 논의되었을 뿐 혁명을 지속시킬 제도에 관한 고민은 없었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살 수 있는 권리, 그렇게 살아갈 권리는 지금 우리에게 건국에 버금가는 행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 그렇기에 연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렌트가 연방국가의 장점에 주목했던 최초의 사상가는 아니었다. 아렌트에 앞서 연방에 주목했던 여러 사상가들이 있었고, 초기에 연방주의를 고민했던 인물들은 연방주의를 단순히 국가체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민족주의 열풍이 한창이던 유럽에서 연방주의를 주장했던 사상가 프루동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루동은 《연방의 원리(Du Principe federatif)》라는 책에서 모든 정치질서가 기본적으로 권위(authority)와 자유(liberty)라는 두 가지 원리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신앙과 자유로운 이성을 따르는 이 두 원리는 서로 대립하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자유의 질서 자체가 자유를 가로막기도 하고, 때로는 권위가 자유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프루동은 어떤 순수한 원리를 표방하는 것보다 두 원리를 조절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가능케 하는 체제가 연방주의라고 봤다. 불가능한 순수성을 탐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상호계약으로 연방국가를 세운 시민은 자신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만큼을 국가에서 얻어야 하고, 계약의 구체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가 시민의 자유와 주권, 주도권을 보장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건 시민의 자유와 주권, 주도권은 양도될 수 없고, 시민이 자신의 자유와 주권을 보류하는 건 더 많은 자유와 권위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즉 연방국가는 지배나 통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서로에게 지운 의무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연방정부가 아니다.

 

프루동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혁명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민족주의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프루동의 연방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고려하지 않고 확장을 추구하던 민족국가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연방권력은 지방정부의 수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지방정부는 시민의 권리와 특권을 결코 억누를 수 없다. 연방국가는 국가보다 시민에게, 중앙권력보다 지방정부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준다. 이를 위해 연방국가는 유기적인 분리(organic separation)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리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키고 공공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프루동 사상의 특징은 경제적인 권리가 정치적인 권리를 뒷받침해야만 그 질서가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만일 연방질서가 단지 자본과 상업의 무질서를 보존하는 것이라면, 이 잘못된 아나키의 결과로 사회가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눠진다면, 정치질서는 안정되지 못할 것이다”(아나키즘을 단순히 무정부주의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질서를 개혁한 뒤에 연방정부는 경제를 개혁해야만 하고, 내부와 외부의 자본주의 착취와 금융착취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공공서비스의 독점과 교육특권, 노동분업, 자본의 이해관계, 불공정한 과세 등을 없애고 평등하고 호혜적인 노동질서를, 농업과 산업의 연방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이런 프루동의 관점을 따른다면 미국 연방이 실패한 이유는 그런 부분에서 주의 권한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헌법은 각 주가 화폐를 주조하거나 신용증권을 발행하는 등의 근본적인 경제활동을 주도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미국에서 프루동의 사상을 이어받았던 벤자민 터커는 ‘자유화폐free money와 경제적 자유를 주장했다). 경제영역에서 연방원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연방의 원리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연방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연방주의로 개헌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권력을 쪼갠다고 그 권력의 속성이 자연스레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마이클 테일러가 우려하듯이, 공동체들의 연방이 언제나 다정하고 큰 문제없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작은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연방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적인 갈등과 주변 국가의 공격 또는 대응이라는 공동체 내외부의 조건들을 고려할 때 무조건 낙관할 수는 없다.3)

 

허나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연방주의


연방주의는 단순히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방주의는 다양한 풀뿌리운동들이 자기결정권을 실현하고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홀로 고립된 풀뿌리운동은 연방주의를 통해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하고 다른 풀뿌리운동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방주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이자 요구이기도 하다.

 

연방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들 중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은데, 이들은 연방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꼼뮨들의 꼼뮨을,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을 꿈꿨다. 이들이 꿈꾼 건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들의 꼼뮨이었다. 꼼뮨에서 한 개인의 자아와 자유는 제한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자아와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연방을 통해 ‘국가 안의 국가’를 만들고, 억압적이지 않고 존엄한 노동질서를 만들며, 더불어 살고 함께 누리는 관습과 문화를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대표적으로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4)에서 왜 작은 공동체들이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묻는다.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종교적인 규율을 따르거나 소수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공동체들은 내부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자율적인 삶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꼼뮨은 적절한 규모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것이 꼭 폐쇄적이거나 작은 규모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폐쇄되고 격리된 공동체들은 자급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어렵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자유의 이념은 실제 생활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렇지만 만일 다양한 공동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니 연방이 하나의 대안인 셈이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 개성이 기존의 공동체와 어울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젊은이들은 18세가 되면 공동체를 떠나야만 한다. 다른 세계에 섞이지 않고, 그 세계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젊은이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야 할 것이다.” 이 떠남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떠남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이들이 자유로이 떠나 다른 공동체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역시 연방이 가진 장점이다. 크로포트킨이 연방주의를 궁극적인 대안이라 봤던 건 개별적인 공동체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연방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구상이다. 그리고 크로포트킨은 이런 연방이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본다. 12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도시 공동체들이 일제히 왕정에 맞서 봉기를 했는데, 이 봉기는 수공업 길드와 농촌공동체의 연합이라는 오랜 정신으로 준비되었다.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12세기의 유럽인은 본질상 연방주의자였다”고 과감하게 선언한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12세기의 현상을 어떤 탁월한 개인이나, 어떤 중앙집권적 제도의 공으로 돌리지 말고 친족관계와 농촌공동체와 같이 인류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는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에 농촌의 촌락공동체가 힘을 가졌던 시기이자 자유도시들이 연합을 형성하며 힘을 키웠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자족적인 농촌공동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경계를 초월했던 많은 조합과 길드들이 만든 연합은 연방국가라는 이름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연방이었다. 이들은 무력이나 법이 아니라 서로간의 협약과 공동서약, 우정(amilas)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고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100여 개 이상의 도시가 속했던 독일의 한자동맹을 보면 그 힘이 개별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서로가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연방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고 따로따로 모은 힘보다 더 큰 연합의 힘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품었기에 크로포트킨은 미국과 캐나다의 연방주의 체계를 찬양했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소비에트의 중앙집권화를 반대하며 ‘非국가적 성격의 연방’을 주장했고 연방주의와 지역자치를 요구했다.5)

 

연방주의는 풀뿌리의 힘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1991년에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한국에서도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풀뿌리운동의 성장했다는 얘기를 듣기 어렵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어도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의 힘이 강하고 지방정부는 자치와 자급과는 거리가 먼 단순집행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풀뿌리운동이 자기 지역에 고립된 탓도 크다. 연방주의는 그런 고립을 깨고 서로 연대해야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기결정권의 강화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지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방주의를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사상가는 구스타프 란다우어이다. 란다우어는 연방주의를 사회혁명이라고 봤다. 생활정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들의 연방을 뜻하는 연방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고 반복적인 문제의 제기와 이에 대한 개선을 포괄하는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재생 혹은 회복, 즉 생활 속에서의 끊임없는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6) 연방주의는 인간이 자기책임성의 원리를 견지하도록 하고 인간본질을 회복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연방주의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란다우어는 아나키즘의 본질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제도가 연방주의라고 봤다. 그는 맑스주의에 맞서면서 분권적이고 반(反)권위주의적인 사상을 발전시켰고 아래로부터 조직된 자율적인 꼬뮨들의 연방으로 국가를 대체하려 했다. 란다우어는 자발적인 협동과 상호부조에 기초를 둔 사회, 농업과 산업을 결합한 농촌 공동체이자 지역공동체에 기초를 둔 평등하게 교환하는 사회를 주장했다. 연방주의는 스스로 결정하면서도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호혜성을 유지하는 삶을 살자는 호소였다.

 

이것은 사회주의에 관한 란다우어의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란다우어에게 사회주의는 갑자기 한꺼번에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는 것이나 갑작스런 종말론적 활동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자라고 있는 무엇, “항상 막 시작하고 항상 움직이는” 무엇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란 어떤 이상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려는 분투이다. 인간의 아름다움, 고귀함, 풍요로움을 위한 분투인 사회주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정신이 아니라 영성을 가지고 자신을 불태우는 자각된 민중의 의지이다. 란다우어는 민중에게 “자본주의 밖으로 나가자”고, “인간이 되기 시작하자”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하나의 영감이자 모델로 기여하는, 현존 질서 내부의 리버테리안 요새 형태로 지금 우리가 대안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란다우어는 국가 속에서 국가를 변화시킬 방법으로 연방주의를 생각했다.7)

 

연방주의는 단순히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른 혼과 몸으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결의가 뭉치고 하나의 운동이 될 때 연방주의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를 실현하는 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연방주의 개헌을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연방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정, 평택, 용산, 밀양, 삼척 등 수많은 지역들이 고립된 지방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으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연합을 구성한다면 연방주의는 이미 정신으로 실현되는 셈이다. 개헌은 그 정신을 지속시키는 틀이지 연방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연방주의에서 가능한 실험


연방주의를 얘기하면 이런 반대들이 제기될 수 있다. 연방주의는 영토가 넓은 국가에서 실시되는 것이지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는 맞지 않다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큰 국가들만 연방주의를 한다는 것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착각이다. 한국보다 큰 나라들도 있지만 작은 나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연방주의 경험을 가진 스위스의 면적은 남한의 절반도 안 되고, 벨기에의 면적은 1/3 정도이다. 면적과 연방주의는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부패를 고려할 때 연방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4대강 사업에만 들어간 돈이 24조원이고 그와 관련된 부패만 모아도 그동안 지방정부들이 쳐온 사고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하물며 연방주의 하에서는 주민들이 능히 지방정부를 소환해서 심판할 수 있고, 굳이 명박산성을 넘지 않아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지방정부의 문제가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 문제를 바로잡을 시민의 권한도 강화되기 때문에, 그리고 부패를 부채질하는 중앙정부이나 재벌의 입김도 약해지기 때문에 외려 지방정부의 부패가 줄어들 수도 있다.

 

또한 한국처럼 수도권으로의 집중도가 높은 곳에서 연방이 실현되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지방이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방국가에서 재정은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른다. 오스트리아와 말레이시아의 지방정부는 연방정부에서 27~30% 정도의 재정을, 미국은 26% 정도를, 오스트리아와 인도는 46% 정도를, 스페인은 73% 정도의 재정을 지원받는다. 즉 연방국가가 된다고 해서 각 지방정부가 자체재정만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건 아니고, 그건 더 큰 자유를 보장하는 연방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그리고 지역발전이 단지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재정의 불균형이 연방주의의 장애물일 수는 없다.

 

이기우는 우리 상식과 달리 이미 연방주의가 많은 나라들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브라질, 인도, 독일,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벨기에, 이란 등 세계적으로 28개의 연방국가가 있고 세계인구의 약 40%가 연방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연방국가라는 이름을 직접 쓰지는 않아도 스페인이나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인도처럼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8)

 

연방국가가 되면 당장 생길 이득도 많다. 일단 연방국가가 되면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 지방에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다. 수도권의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방에 핵발전소를 짓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고, 안보를 위해서라며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해군기지공사를 강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이 살지도 않는 결정권자가 존재할 수 없다.

 

아울러 연방국가가 되면 경찰이나 사법부도 변할 수밖에 없다. 연방국가 하의 자치경찰제도는 경찰청장이나 서장을 선거로 뽑으니 지역주민들의 의견이나 반대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중앙경찰청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인 입법권을 갖게 되면 사법부도 그것을 반영해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연방국가가 되면 그 지역의 정서와 상식을 반영하는 판결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토호들이 지배하고 이미 자급과 자치능력을 상실해버린 지방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조건 성공을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방주의 하에서는 당연히 자치와 자급에서 시민들의 주도권이 강화된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행정을 다시 전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중앙이 계획하고 지방이 실행하는 형태의 역할분담은 근본적으로 폐지될 것이기에 토호들의 힘도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간의 자발성은 조례나 법률을 통하지 않고 자발적인 사회협약들을 통해 실현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협약들은 법률에 준하는 기능을 맡음으로써 시민들이 자신의 주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연방국가에서는 다양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당장 지역이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중앙통화를 보완할 수 있는 지역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 지역통화는 지역 바깥에서는 쓸모없거나 그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지역경제를 살찌우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통화라고 해서 꼭 새로운 형태를 취할 필요도 없고 상품권과 같은 형태를 유통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프린 암 킴제(Prien am Chiemsee) 지방에서 유통되는 킴가우어(Chiemgauer)라는 지역통화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지역기업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 사무국이 100 킴가우어를 97유로에 시민단체에게 판매하고 단체는 이를 시민에게 100유로에 판매하고 3유로를 단체활동비로 충당한다. 시민은 100킴가우어를 액면 가격대로 쓰고, 지역기업은 100킴가우어를 다른 지역기업에 지불하든지 아니면 5%의 수수료를 내고 95유로로 환전할 수 있다. 킴가우어 사무국은 이 환전에서 2유로를 남겨 사무국 운영비로 쓴다. 3개월마다 화폐가치가 2%씩 떨어지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제때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생태도시로 유명한 브라질 꾸리찌바에서는 폐기물을 분리수거하는 대가로 버스표를 지급하는데 그것이 일종의 지역통화 역할을 한다. 스위스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비르(WIR)라는 대안화폐가 있고 스위스 전체 중소기업의 약 20%가 이를 사용한다. 중소기업들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 내의 중소기업들을 활성화시키고 서로를 연계시킨다. 이런 실험들이 진행되는 곳은 대부분 연방국가이고, 시민들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기본소득과 관련된 새로운 상상들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얼마의 돈을 줄 것이냐가 아니라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찾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줄 것인가이다. 중앙은행의 통화만이 아니라 지역통화가 보완화폐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농촌의 회복이나 로컬푸드의 활성화도 연방체제 하에서 더욱더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자발성의 자연스런 결합이 가능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도 가능하다. 일본에서 얘기되는 커뮤니티 옵티멈(community optimum), 즉 상부상조에 의해서 지역사회 복지를 최적 수준으로 만드는 운영시스템도 가능하다. 이것은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침과 재원을 내리는 중앙집권형 국가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다. 당연히 교육도 지역에 기반을 둔 교육체계를 만들 수 있고, 전국이 동일한 지침에 따라 교육을 진행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학벌체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연방주의는 통일에 대비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이상적인 방법이 연방주의이다.

 

지난 10월 19일 문재인 후보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만들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의 진의를 무조건 의심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똑같은 연방이라도 그 의미가 아주 다를 수 있다.

 

연방주의로의 개헌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리고 연방주의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살겠다는 의지와 결의이다.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고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 속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억압적이지 않은 권력 또는 자유로운 권력을 새로이 고안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정치인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대비할 자유로운 정치활동과 자유로운 연대, 그것을 반영하는 헌법이다.

 글을 쓰다 결론을 못 냈다.

지금은 내라면 낼 수는 있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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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왜 여성이 많을까? 내가 생물학적 남성이라서? 여자만큼 남자를 좋아하는 걸 보면 단지 그 때문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여성활동가들의 활동방식에서 어떤 끌림을 느껴서? 솔직히 그런 끌림을 느낀다. 남성활동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 분명 있다. 그런데 그 매력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생기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타고난 무엇은 있는 듯하다. 학교를 관두고 아이를 돌보면서, 그리고 동네에서 주부들과 독서회나 공부모임을 꾸려오면서 든 생각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면도 있고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를 보면 타고난 자질이 있는 것 같고, 내가 변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면을 느낄 수 있다.

 

인간 모두가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건 인정해도 사람이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분명한 건 나의 선호와 환경 때문에 나의 사유와 표현방식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 내가 여성활동가들에게서 느끼는 끌림은 개인이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사회 속에서 강화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존재가 어떤 자질을 타고났다면, 어떤 공간이나 조직이 그 자질을 강화시킬 수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이 글의 가정은 여성적인 자질을 강화시킬 수 있는 조직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협동조합에는 여성활동가들이 많다. 협동조합운동의 기원을 보면 남성들이 대다수인데 어떤 점에서 협동조합이 여성에게 중요한 장이 될 수 있었을까? 협동조합운동이 중산층 여성들의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일까? 알려진 만큼 실제로 여성들이 협동조합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이런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1. 협동조합은 중산층 여성들의 운동인가?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 살고, 공간과 시간, 관계망이 그런 편견을 없애기도 하고 강화시키기도 한다. 한국사회에는 힘을 가진 자들이 무수히 많은 편견들을 만들었지만 그 중 가장 심한 편견을 꼽으라면 남녀에 관한 편견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편견이 만들어지거나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여성은 여전히 어떤 ‘규정’ 속에 갇혀 있다. 그 규정을 넘어서려고 하면 여전히 ‘쌈마이’나 ‘무서운 페미 언니’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라는 단순한(?) 물음을 던져보면 이런 규정이 타자를 배제할 뿐 아니라 결국 나 자신도 배제해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감명을 받은 책들 중에 벨 훅스(bell hooks)의 『행복한 페미니즘』(백년글사랑, 2002년)이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Feminism is for everybody)’인데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훅스는 『나는 여자도 아닌가요: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Ain't I a Woman : Black Women and Feminism)』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겹치는 제목이 참 시사적이다.

 

그래서인지 훅스는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간명한 범주에 집어넣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양극화하는 것은, 계급상승과 가부장제 권력의 공유를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이라고 규정한다. 여성의 불행한 가족사로 대통령 스토리를 만드는 한국이니만큼 말만 듣지 말고 누가 그 말을 하는지를 살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실 ‘모든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말은 ‘모든 노동계급은 혁명적’이라는 말처럼 공허하다. 진보와 혁명성은 타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벨 훅스의 예리함은 성차별을 계급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과 연계시킨다는 점이다. 같은 남성, 여성 내에도 차별선은 그어지고 그런 다양한 차원의 차별들이 삶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 차별선들은 같은 당사자들이 서로를 마주볼 수 없도록 만든다. 차별이 없음을 부정할 게 아니라 가부장제도는 모두에게 나쁜 것이기 때문에 남녀가 함께 물리쳐야 할 텐데 서로 마주보지 못하게 만든다. 왜? 남녀 중에도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그런 차별선을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여성성의 힘은 그런 분할과 차별, 폭력을 없애고 상호성과 사랑, 상호자유를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훅스는 강조한다.

 

협동조합 얘기를 시작하면서 벨 훅스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편견이 우리 속에도 자리를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묻기 위해서이다. 흔히 협동조합운동은 중산층 여성들의 활동무대라고 불린다. 한편으로 남성 중심의 시민사회운동이 그렇게 불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남성과 여성들을 조직하는 시민사회운동이 그렇게 불렀다. 이 호칭에는 단순히 운동주체를 지칭하는 의미보다 ‘여유를 가진’ 주부들의 운동이라는 냉소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심지어 협동조합운동 내에서조차도 조합원을 중산층 여성이라는 범주에 집어넣음으로써 조합원들의 다양한 삶과 욕구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서로 다른 운동들의 갈등이나 대립을 나쁘다고 피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대립이나 갈등의 지점이 제대로 잘 그려졌는지를 묻고 싶다.

 

일단 중산층이라는 개념 자체가 워낙 유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기도 하거니와 엄밀하게 따져보면 중산층 여성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중산층의 임금을 버는 여성, 아니면 중산층의 임금을 버는 남편을 둔 여성? 아마도 후자의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그 속에 깔려 있으니 호명 자체가 매우 차별적이다. 만일 그런게 아니라면 설령 남편이 중산층이라 해서 그 여성이 중산층 여성이라 낙인찍힐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낙인이 가능하려면 가계의 자산을 남녀가 공유하고 여성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한을 가져야 할 텐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이런 정의는 ‘가족임금’이라는 가부장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족임금제도가 여성들을 가사노동의 틀에 가두고 남성노동자들의 가부장성을 강화시키는 제도라는 점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과거와 달리 내가 밖에서 돈을 버니 집안의 모든 일을 다하라는 가부장의 논리는 집안에서만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사실상 가족임금은 노동시장에서 여성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시키거나 여성노동을 남성노동을 보완하는 예비노동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의 결정에 따라 쉽게 해고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하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가정주부도 외부의 힘에 깃댄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남성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자립하지 못한다.

 

반대로 가족임금은 가부장성을 유지하려면 기업의 가혹한 착취를 버텨고 생계부양자라는 짐을 혼자 져야 한다고  남성노동자를 세뇌시킨다. 그래서 남성들은 주말엔 할 일 없이 텔레비전과 휴식을 즐기고 주중에는 ‘노동기계’가 되는 삶을, 요즘에는 자기관리까지 강요당하는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한편으로 강요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즐기는 가부장성은 남성의 내면을 왜곡하고 획일화시키고, 생활능력을 감퇴시키고 감수성을 떨어뜨리며 점점 더 남성을 고립시킨다. 중산층이라고해서 남성이나 여성의 삶이 여유롭거나 대안사회에 열려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우아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속으로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가장 여유 없는 계층이 중산층이다. 그러니 냉소할 이유가 없다.

 

주체의 면만이 아니라 조직의 면에서도 오해가 있다. 협동조합은 중산층의 결사체가 아니라 약자의 결사체이다. 협동조합의 기원 자체가 그러하다. 로버트 오웬(R. Owen)이 협동조합을 구상했던 이유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최초의 협동조합이라 불리는 로치데일 협동조합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조직이었다.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운동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디딤돌로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씩 따로 떨어져서 국가나 자본의 관리를 받지 않고 스스로 의식화되고 조직화되어 단결할 때 다른 가능성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만들다보면 공동체가 강해지고 또 다른 협동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협동조합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홀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조직이고 힘이었다. 어떤 의미에서건 조직이란 건 개인이 홀로 하지 못하는 힘을 발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두려워하고 조직을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관리해온 공조직 외에 또 다른 조직이 힘을 얻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걸 두려워하기에 사람들의 인식에 개입한다(한때 NGO라는 말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다 어느 순간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사라지게 된 것이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협동조합의 해라며 흥분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징후를 느끼게 된다). 그런 논리가 가부장적인 편견을 재생산하고 현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온전히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손을 내밀 수 없게 만든다.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면서’라는 시에 나오듯 “거만하고 전제주의적인 기업주의 짓거리”를 비판하는 노동조합 활동가이지만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는 모순이 생겼다. 비슷한 맥락에서 약자의 무기인 협동조합을 한가한 사람들이나 주부들의 계모임, 자원봉사활동, 때로는 일반기업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인식의 원인을 기득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면에서 협동조합운동 스스로가 재생산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협동조합운동은, 특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은 생활의 주체인 여성들을 중요한 주체로 삼았지만 가부장주의에서 해방시키려 하지 않았다. ‘밥상공동체’가 한 가정부터 우주를 포괄하는 이념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이념은 ‘누가 그 밥상을 차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먹고 함께 즐기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한국의 생협운동은 함께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인식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도 않았다(예를 들어, 일본 <가나가와 네토>처럼 여성을 ‘전일시민’, 남성을 ‘반일시민’이라 규정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2005년에 나온 『한살림운동과 조합원노동의 이해』라는 보고서를 보면, 생활협동조합운동이 주부를 주체로 삼은 이유는 “생명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보살피고 치유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생활을 화폐로 평가하는 시장시스템, 평균화시키는 행정시스템에 위탁하는 것의 위험을 자각한 주부들이 먹을거리를 매개로 생활을 자치해 나간다는 운동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립된 소비를 “사회적 힘으로 조직하는 ‘공동구입’”이 필요했고, 이런 과정에서 주부들이 “사적영역을 공공화시키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훈련”받기를 기대했다. 비슷하게 1989년 <함께가는 생활소비자협동조합>에서 시작된 <여성민우회 생협>은 ‘사회주부’, 즉 “바람직한 사회상의 실현을 추구하며 가정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기혼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삼았다. 사회주부는 “자신들의 가족 내 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함으로써 사적인 돌봄을 공적인 돌봄으로 확장시켜나가는 생활정치를 전개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치유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을 자처했다. 문제는 그런 주체의 성장에 공동구입이라는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시스템이 이미 무너졌다는 점이다. 반공급을 유지하는 몇몇 지역생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비자생협이 개인공급방식을 받아들였고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힘을 조직하는 과정은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교육은 생활 속에서 구체화되는데, 그 생활에 사회적 관계가 없다보니 교육은 형식화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앞의 한살림 보고서가 지적하듯 공급활동 외에 조합원활동이나 조합원노동을 통해 “한살림의 활동을 매개로 지역사회에서 자기실현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협동조합운동은 가족임금제도를 비롯한 노동현장의 문제점을 자신과 연결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삶터만이 아니라 일터도 바꿔야 삶터가 바뀌고 그 변화가 지속될 수 있을 텐데, 전체를 보는 시야는 부족했다. 소비자생협운동이 농민과 농업을 살리려는 노력에 힘을 쏟아온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기 어렵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한국사회의 풍경을 이미 바꿔놓았다. 더글러스 러미스가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 2010년)에서 말하듯,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지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노력을 이해하고, 그 위엄을 인정하면서 논의할 수 있는 형태로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그 사람들의 생활과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못한 면이 많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생산과 소비를 순환의 관계로 파악하는 인식은 자본주의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인식인데, 그 혁명성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냥 직거래만 남았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도 서서히 협동조합의 특성에 눈을 뜨고 그것을 길들이거나 활용하려는 전략을 펼쳐 왔다.

 

협동조합운동은 이에 일공동체나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은 가족임금체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비슷하게 사회적기업의 여성고용 비중이 높지만 이 역시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들이고 가족임금을 해체하는 장치가 아니라 가족임금을 보완하는 장치이다). 이런 대안들은 원래 목표한 대로 자본주의 화폐경제를 대체하지 못하고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운영되었고, 조합원의 자발성이 강조되지만 조합원이 협동조합 내에서만 생활하는 게 아닌 이상 사회의 강요나 억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진정 자율적인 선택이려면 그것을 가능케 할 조직적인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따라서 가정을 넘어 사회로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가정과 사회를 분리시키는 벽은 더 높아졌고, 가족임금제도와 여성의 가정주부화라는 도식이 깨어지지 않는 이상 이 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소비자생협운동은 지금도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의 먹을거리’라는 틀을 여성들, 더 정확히는 주부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밥상에 담긴 그 많은 의미를 부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이 틀은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이 가진 문제점을, 가부장주의를 해체시키지 않고 강화시킨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자녀교육의 책임자가 되고 이로 인해 자식의 교육과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문제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가부장주의를 남녀만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도 찾는 벨 훅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봄직 하다. “백인 우월주의적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지배 문화 속에서 어린이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의 문화가 어린이를 사랑하지 않고 어린이를 어른이 자기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는 문화라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만든 이 나라 최초의 사회 정의 운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주의는 “남녀를 막론하고 자기 아이에 대하여 가부장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정을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고 자유롭게 자랄 수 있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식한 운동이다.

 

협동조합이 누구의 운동인가라는 물음은 사실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누구라도 협동조합을 통해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약자나 소수자들이 사회적 주체로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는 배경인데, 이런 역할은 아직 과제이다.



2. 협동조합 7원칙을 다시 생각한다


일본의 <그린코프연합>이 발족하며 선언한 내용은 약간 충격이었다. <모심과살림연구소>가 펴낸 『모심 侍』(2002년)에 실린 다케다 케지로의 「그린코프선언 외」에는 “①생협은 어머니들의 연합체이다, ②생협운동은 어머니 연합이 담당하는 여성 자립운동이다, ③그린코프는 자립한 어머니연합과 여성운동 간의 공통의 본질을 모색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그린코프생협>은 ‘사업 근대화’를 내세우고 반 중심의 공동활동을 해체하며 생협노동을 임노동으로 규정했던 생협인데, 이 선언은 어머니와 여성자립을 강조하지 않는가. 더구나 이 선언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 어머니에 관한 생각에 찬성하는 남성까지 포함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존재로서의 어머니로부터, 의식하는 어머니로, 더 나아가 연대하는 어머니로 진화해 나간다는 생각”을 밝혔다. 경제가 생활을, 직장이 지역을 지배하는 시대에 맞서 인간의 자립, 어머니의 자립, 아이의 자립을 추구하고 “어디까지나 연대와 협동에 의한 자주적인 지역주민의 활동에 기초”한 지역활동을 하겠다는 구상은 나름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 선언과 협동조합의 구체적인 활동을 조화시킬 방법에 관한 의문은 계속 남는다.

 

이런 관심은 우리 사회에도 이미 존재했다. 2000년 7월 4일 민우회생협 조합원선언은 조화․협동․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환경, 여성, 지역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여성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이 조합원선언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남성과 여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개발하고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지역사회가 조화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생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조합원선언은 여성들이 이끄는 ‘여성생협’을 목표로, 남녀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여성적 관점’으로 대안적인 생활양식과 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지향했다.

 

그리고 2012년 6월 20일 <살림의료생협>의 어라 사무국장은 「여성주의자가 만난 사회운동방법으로서의 ‘협동조합’」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협동조합만큼 여성주의와 잘 어울리는 조직이 없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7원칙이 여성주의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왜 협동조합을 이해하는 과정이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과정인지를 설명하는 발표를 들으며 협동조합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에서 여성이 다수임에도 여성주의와 협동조합의 원칙을 같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살림의료생협>의 공간에 오면 자신의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어 지역의 숨겨진 여성주의자들이 드러나고 다른 정체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발표자의 말은 협동조합운동의 핵심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성별만이 아니라 계급, 인종, 이성애 중심의 차별에 저항하는 의료, 탈의료화를 추구한다는 목표가 궁극적으로 여성운동이라는 말도 가슴에 와 닿았다. 많은 조합원들이 모여서 같이 병원을 보러 다니고 병원에 들어올 기계를 선택한다는 말에서도 협동조합운동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성의 역량을, 생명의 살림살이를 강화시키는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 그리고 협동조합을 하기에 그리 좋지 않은 환경인 한국에서 협동조합 7원칙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앞에서 지적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틀로서 협동조합 7원칙을 성찰해 보자.

 

협동조합 7원칙 중에서 제 1원칙이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그 가장 중요한 원칙이 ‘누구나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소극적인 의미로만 해석될 수는 없다. 이미 사회적인 차별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기에 문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누구나’는 참으로 무력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조합원을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구조를 고려할 때 기혼자나 전통가족만을 중심에 둘 수도 없다. 비혼자나 아이 없는 가족, 성소수자 가족도 협동조합에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약자들이 일하는 자활공동체나 사회적 기업들에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단순히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이미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제 2원칙 ‘민주적 관리’나 제 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도 기계적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 민주란 말 그대로 주인이라는 얘기이고 참여란 단지 통로를 열어주는 게 아니라 다양성이 드러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사회적인 차별을 내부에서 바로잡고 그 정의를 사회화하는 결사체이다. 그러하기에 각 조합원들의 의견과 의지, 다양한 색깔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계망을 확대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이 이끌어야 하기에 내부민주주의야말로 외부로의 확장을 위한 전제이다. 조합이 조합원 개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잠재적인 조합원들을 조합으로 끌어들이려면 민주주의와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민주와 참여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협동조합에서도 민주보다 관리에 방점이 찍히고 참여보다 경제에 강조점이 찍힌다. 단지 조합원의 수가 많다고 해서 조합의 민주적인 운영구조가 무력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의 수가 적다고해서 반드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외려 ‘자신의 것’, ‘우리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겠다고 여기는 조합원들이 많다면 지금 당장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도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억압된 주체일수록 민주주의를 회피하거나 타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억압된 주체가 타자와 무관하지 않고 같은 지반위에 서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이해는 남성적인 결정의 화법보다 상황을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하는 ‘수다’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공식적인 대화보다 비공식 대화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서로간의 공감이 생겨야 이해가 가능하다. 이해(理解)는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내용을 따지는 과정이고 입장(standing)이 아니라 그 밑(under-standing)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부장주의와 자본주의는 권력을 집중시키고 다양성을 배제하며 소통을 차단하려 든다. 가부장주의와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그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 4원칙 ‘자율과 독립의 원칙’과 제 5원칙 ‘교육, 훈련, 정보제공의 원칙’이 중요하다. 농협이나 신협의 사례에서 보이듯 국가가 협동조합을 관리하려 드는 사회, 재벌들이 공장과 사무실을 군대로 만들고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자신의 생존과 조합원들의 변화를 도모하기 힘들다.

 

아울러 자발성, 평등, 참여와 같은 협동조합의 가치들도 계속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가나 시장과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자율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국가나 시장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점을 뜻하지 않는다. 현실과 분리된 공동체를 꾸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살려는 게 아니라면 외부와의 접촉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자율성은 나를 지킬 힘이, 국가나 시장과 약속을 맺을 힘이 내게 있음을 뜻한다. 이 힘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고 임금노동이나 화폐경제에 종속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디딤돌로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생활이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새로이 만들어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런 힘을 기르기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은 조합의 물류나 시스템이 아니라 조합원들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물류나 시스템이 이익을 좇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생산과 소비를 하나의 순환체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협동조합운동의 힘도 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조합원이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자 할 때 조합이 든든한 뒷심이 되어야 한다.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단지 식생활교육이나 교양교육만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고 해석할 수 있는 눈이다. 앞서 말했듯이 일터와 삶터의 변화를 스스로 해석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조합원, 그들이 협동조합운동의 희망이다. 그런 조합원을 많이 기르고 그들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할 틀을 제공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6원칙 ‘협동조합간의 연대’나 7원칙 ‘지역사회에의 기여’는 협동조합의 그런 시야를 뜻한다. 적대적인 경쟁, 인수합병(M&A)이 원칙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과 복불복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협동의 원칙은 다른 세상을 뜻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가려면 몇몇 조합이 아니라 전체의 힘이 모여야 하고 ‘공생(共生)’과 ‘공생(公生)’이 필요하다. 협동조합간의 공생(共生)은 서로간의 경쟁을 막거나 최소한 적대적인 경쟁을 최소화시키는 창구이고 사회적 시장을 만들 가능성을 뜻한다. 이런 시장이 형성되면 협동조합은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험할 수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공생(公生)은 협동과 지역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을 뜻한다.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가 만들어진 한국사회에서 지역사회의 의미는 단순히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 자체가 가진 동력에 주목한다는 의미이며, 그 힘과 기술, 전통에 기반해서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강화시키지 않고서 세계화의 시대에 협동조합이 생존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런 공생의 관계를 인식하려면 전일(全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나와 타자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없이 공생과 공생이 강화되지는 못한다. 내 살을 베어 타인을 먹이려는 자세가 있어야 이런 공생이 강화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기존의 강화된 남성성으로는 길러질 수 없고 여성적인 자급 관점이 필요하다.

 

마리아 미즈(M. Mies)와 베로니카 벤홀트 톰젠이 쓴 『자급관점(Subsistence Perspective)』(곧 한글번역판이 출판될 예정이다)의 서문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금 미국의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당시에는 대통령의 부인)이 방글라데시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던 이야기이다. 힐러리는 그라민 은행의 소액대출을 받아 자립을 시작한 마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마을 여성들이 이렇게 묻는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나요?”

“아뇨, 나는 암소가 없어요.”

“아파, 당신은 소득이 있나요?”

“네, 전에는 내 소득이 있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백악관으로 온 뒤에는 일을 관뒀어요.”

“아이는 몇인가요?”

“딸 한 명요.”

“아이를 더 갖고 싶은가요?”

“네, 한두 명 정도 더 갖고 싶지만, 지금의 딸 첼시와도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이 짧은 대화를 나눈 뒤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고 한다. “불쌍한 힐러리! 그녀는 소도 없고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

 

미즈와 톰젠은 이 이야기에서 다섯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가 현실을 보는 관점에 대한 반성이다. 보통 우리는 서유럽이나 미대륙을 보며 삶을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는 남반구의 찢어지게 가난한 여성농민과 도시여성의 일상생활에서 삶을 구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허나 좋은 삶이 자연과 타자, 여성, 아이들을 희생시키고서야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찌 좋은 삶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이 전쟁 속에 사는 타자들의 삶을 딛고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이 어찌 평화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미즈와 톰젠은 가장 낮은 곳, 밑바닥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외부의 힘이나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급해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엄청난 자원이 아니라 암소 한 마리와 닭 몇 마리, 아이들, 약간의 땅 만으로도 자립은 가능하고 그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셋째, 가난한 여성이 미국의 영부인을 대하는 그 자세이다. 권력자를 ‘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자신감과 위엄, 존엄함, 이들은 더 이상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넷째, 마을 여성에게 좋은 것이 전체 사회에도 좋은 것이고,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자립적인 삶을 누리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미즈와 톰젠은 이를 “사회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지 않고 비식민주의적이고 생태적인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다섯째, 세계를 ‘제1세계’와 ‘제3세계’로 나누는 정신분열증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힐러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런 차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과 같은 여성으로 위치짓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지향이 힐러리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의 물음은 근본적으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미즈와 톰젠의 논의는 가사노동과 비정규직노동이 같은 지반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비정규직 노동을 없애고 변화를 꾀하는 건 여성의 가정주부화를 빼놓고 진행될 수 없고, 노동의 성격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명목적인 7원칙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7원칙으로 원칙을 재해석해야 한다.



3. 여성이 협동조합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나?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는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으로 사회를 설명했다. 지적, 도덕적, 정치적 동의를 뜻하는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지배가 억압이라는 수단만이 아니라 동의라는 기제를 통해서도 행사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가부장제 역시 헤게모니를 통해 작동한다. 그것이 일정한 동의체계를 갖추고 있고 때로는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줄도 안다는 얘기이다. 이를 적용하면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것만으로는 협동조합의 헤게모니를 설명할 수 없다.

 

협동조합운동의 실제 현실은 어떨까? 2004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나온 「여성주의 정치학으로서 생협운동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살림과 민우회 생협의 활동여성들을 중심으로」는 그런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 논문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한편에서는 생협운동의 의미에 치중해 여성들의 활동상의 어려움 및 갈등부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생협활동을 성역할 강화라고만 간주하여, 제대로 평가하지 않거나 아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경향”을 모두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살림과 민우회생협 활동가와 실무자 등을 인터뷰해서 작성된 이 논문에 따르면,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일상은 부주일(집안일)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편은 생계책임자이고 여성은 집안살림을 맡는 성별 구도 하에서 남편의 눈에 아내의 생협활동은 주부가 여가활동으로 선택한 하나의 자원활동 쯤으로 비춰지고, 결국 남편과의 가사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가 좋아서 하는 일’로 치부된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본부와 지부, 사업과 운동의 관계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맡거나 의사결정이나 의견수렴과정에서 드러나는 위계성 등도 지적한다. 그리고 민우회생협의 활동은 여성운동과 생협운동을 조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생협운동이 여성들의 대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머무르는 한계를 보였다.

 

실제로 지금 현재를 봐도 단위생협의 이사장과 이사들이 대부분 여성이지만 생협운동을 대표하거나 정책이나 비전을 짜거나 생협운동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성들이 많다. 협동조합과 그것의 지향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생산자나 공급업체로 가도 비슷한 상황이다. 가장 잘 알고 오래된 사람들이 맡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걸 인정하면 그 구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직위가 남성들 중심으로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어떤 가능성에 주목할까? “생협운동이 단지 가사량을 늘리고 참여 여성들이 가사활동에 충실하려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협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인식하고 대안사회를 구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임파워먼트를 얻게 되는 등 여성과 생협운동 간의 다양한 측면들을 주시함으로써 여성운동으로서 커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생협활동이 “가정 내 성별분업을 해체시키고 대안적 지역문화를 생성할 뿐 아니라, 소비와 파괴의 악순환을 매개하는 생산영역에도 변화”를 준다면 살림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대안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생협활동을 통해 주부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며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여성들이 협동조합운동의 헤게모니를 쥔다는 것은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이 여성성에 뿌리를 내린다 의미이다. 훅스의 입을 빌려 얘기하자면 운동이 상호성과 사랑, 상호자유를 지향한다는 것이고, 여성이 협동조합을 통해 자립하고 생산과 재생산 영역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여성활동가의 삶을 바꿨지만 여성활동가가 협동조합을 바꾸지 못했다는 건 현재까지의 모습이고, 앞으로의 변화는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여성과 남성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까.

  1. 안인숙 2017.01.07 19:25

    지금은 어떤 결론 내실지 궁금합니다.
    위 글을 '모심과 살림' 2014년 기고한 글로 읽었는데, 여긴 2012년이네요. 같은 원고인거죠?

    고민이 있는데, 생각을 촉진해 주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간 결론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2. 몽똘 2017.01.14 18:01

    앗. 회장님. 네, 같은 원고입니다. 고민은 더 나아간 면이 있겠죠.^^;;;;

나는 20대까지 공부를 하리라 마음을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에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과학자라고 답을 했고, 커서도 누가 소원을 물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 답했다. 책읽는 것보다 손으로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고 수줍게 앉아 남의 얘기를 듣길 좋아하던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상상하지 않던 일이었다. 소심하고 낯을 가리던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꿈꾸는 세상에 관해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으니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나의 10대, 20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지금 내 모습에 적잖이 놀라곤 한다. 예를 들자면, 책값이라도 벌어보려고 여기저기 글을 쓰던 2002년, 대학원 석사시절 때 알던 선배가 ‘하니리포터’라는 인터넷신문에서 내 글을 읽고 미국에서 이런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네 석사 때 모습이 생각난다. ‘형, 나는 머리 쓰는 일보다 몸으로 때우는 게 적성에 맞아요’라고 사무실에서 나에게 이야기 했던 너인데 어떻게 머리 고생시키는 일을 하고 있구나.^^” 내 모습이 실제로 그랬으니 이 선배만 유독 생뚱맞은 반응을 보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팔자에도 없고 꿈도 꾸지 않던 공부라는 길을 택했을까?

 

1. 억압된 자아와 갇힌 학문의 유사성

나는 부산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엄친아들이었고, 나는 공부나 운동 모두 고만고만한 평범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20등 정도가 내 성적이었고 공부 잘 한다는 말보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책을 진득하게 오래 보지도 못했고 그 당시 유행하던 얄개 시리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 정도만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러니 시험 때마다 마음을 졸이기 일쑤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성적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형들이 공부를 잘하니 쟤 머리도 좋지 않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근거 없는 낙관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명절은 지옥에 가까웠다!). 오히려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계속 쫓아다녔고, 고등학교 생활은 압박감에 시달리는 암기나 공포를 잊어보려는 일탈로 채워졌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 2지망으로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공부는 내 관심 밖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형을 보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시위현장에 가보고 운동권 가요를 배우기도 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사회과학세미나’도 내 관심 밖이었다. 책이라면 전공책과 사회과학서적 어느 것에도 끌리지 않았고 나는 술 마시고 노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군인이 정치를 하던 심각한 시대였던지라 겉치레를 하기 위해 딴에는 심각한 척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 관심은 연애나 길거리의 사람들 삶에 있었다. 학교 가다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 노점을 구경하고 집에 오다 시장 봐서 술 마시는 삶이 가장 행복했다.

 

어떤 일에서건 배우고 남길 점이 있듯이 그 시기에도 성과는 있었다. 잠깐 학생운동을 경험하면서 조직이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91년 5월의 경험은 역시나 나의 ‘그릇’이 아주 작다는 점을 확신시켰다. 이렇게 재미없는 성장기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런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내 자신을 아주 ‘작은 인간’으로 여겼고 주변의 환경도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즉 내게는 나라는 ‘자아’가 없었다. 껍데기만 있지 영혼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의 학문이라는 것도 비슷했다. 학교에서건 세미나에서건 외국의 낯선 개념과 어려운 이론을 다루었다. 대학교의 정치학 수업은 서구의 민주주의 이론과 서양철학, 정당론을 가르쳤고, 사회과학 세미나 역시 맑스-레닌주의와 러시아 혁명사, 사회구성체론 등을 다뤘다. 당시의 지식인 사회는 이 땅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것을 지나간 시대의 낡은 유물로만 봤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작고 약해서 외부의 강한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잡아야 했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학문의 내용은 낯선 언어로 채워졌고, 그런 어려운 언어는 언제나 나를 주눅들게 했다.

 

그렇게 보면 나와 한국의 학문 모두가 외부의 것에 갇힌 존재였다. 나는 자아를 찾지 못하고 헤매었고 한국의 학문도 자기 기준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자신 안에서 성장의 기운을 찾지 못하고 외부의 것을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살만 찌우는 식용가축처럼, 나는 길들여졌고 한국도 그렇게 성장했다. 그 사육의 속도는 너무 빨라 갈매기 조나단처럼 다른 삶을 꿈꾸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는 또 다른 외부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대학교 앞의 사회과학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었다. 폴 애브리치(Paul Avrich)라는 역사가가 쓴 『러시아 아나키스트 1905』와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이라는 두 권의 책은 검은 표지에 권위와 자본주의를 갈아엎는 농부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투박함과 생동감에 나는 매력을 느꼈다. 그때는 아나키즘을 이념이라기보다 ‘부정의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한편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기 위한 철학으로 그때부터 아나키즘에 관심을 뒀다.

 

그 즈음인 1991년 3월, 낙동강에 페놀이라는 오염물질이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 생태위기를 목격하고 ‘한살림선언’을 접하면서 ‘녹색사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우리 현실 속에서 고민의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낯선 언어가 주는 구토감에 우리 언어를 찾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학이라는 걸 처음 접했고 그 때는 사상보다 종교적인 관심이 약간 앞섰다. 내 속에 억압된 감정이 가끔은 민족적인 감정이나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터지곤 했는데, 동학은 그런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공부를 하겠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갑자기 정치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 대학원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선택은 한편으로 군대를 연기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지금껏 하지 않았던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아나키즘과 녹색사상에서 잠깐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었지만, 또다시 세상의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선택과 선택을 거듭해야 했던 나는 왠지 모를 미련을 느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접한 공부는 힘들었을 뿐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수업시간에 읽어야 할 글들 대부분이 영어였고,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번역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구상보다 어떻게 하면 저자의 생각을 잘 쫓아갈 것인가가 공부의 목적이었다. 영어책을 읽는 능력이 생긴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때 읽었던 책들은 지금 머리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학원 시절의 갑갑함을 덜어준 것은 학교밖 ‘한국정치연구회’라는 연구단체였다. 당시에는 이 단체가 진보적 학술운동을 추구했고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팀에 대학원생들이 모여 함께 글을 읽고 토론을 벌였다. 공부도 공부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이 뒤섞였고 세미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뒷풀이 시간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이 사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지식인은 어떤 존재인지, 술잔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들이 새벽하늘을 밝히기 일쑤였다.

 

내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던 곳도 그곳이었다. 내가 실제로 공부를 잘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속의 많은 고민들을 쏟아내면서 선배들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어쩌면 뒷풀이 장소를 떠나지 않는 체력이 인정의 이유였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 곳은 생애 최초로 ‘사회적 인정’을 받았던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아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무조건 외부의 조건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어렴풋했던 내 자아가 조금씩 뿌연 안개를 걷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정치연구회에서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석사학위 논문을 써야할 즈음부터 하버마스(J. Habermas)라는 독일 사상가의 여러 책들을 한 권씩 읽었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으려 노력했다. 외부의 것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공부를 하면서 ‘비판적 읽기’와 ‘거리두기’를 익힐 수 있었다.

 

그런 만남과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모더니티(modernity) 비판’이라는 석사논문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모두가 쥐 죽은 듯 숨죽이고 사는 세상에서도 사회가 바뀔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가능성을 추적하다 찾아간 시기가 서구의 68혁명이었고, 희망의 씨앗을 본 사람이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the Frankfurt School)의 1세대라 불리던 마르쿠제였다. 마르쿠제를 연구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껄끄러워했고 특정한 계급이 사회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거부하던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마르쿠제에 관한 기존의 시각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나와 외부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을 좁히고 싶었기에, 나는 ‘모더니티의 이중화’라는 나름의 방법을 개발했다. 서로 대립한다고 여겨지던 사회경제적 모더니티와 미적 모더니티의 긴장과 대립을 마르쿠제가 해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긴장을 ‘의도적으로’ 유지한다고 나는 봤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미적 모더니티가 유토피아적 지향으로 존재하면서 현실을 이끌고, 사회경제적 모더니티의 지향은 현재의 잠재력에 기초해 갈등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 그것을 나는 모더니티의 이중화 전략이라 정의했다.

 

기존에 없던 마르쿠제 해석이었기에 나는 마르쿠제의 글들을 꼼꼼하게 읽고 내 구상대로 해체해서 사회경제적 모더니티와 미적 모더니티에 관한 두 가지 내용들로 재구성했다(나는 마르쿠제의 ‘입을 빌어’ 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전략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내 나름의 방법을 개발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래서인지 논문 곳곳에 자리잡은 오타(제본한 뒤에 논문을 읽으면 그 전엔 절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던 한 무더기의 오타를 발견하게 된다)에도 나는 아직까지 석사논문에 대한 불만이 그다지 없다.

 

그때 나는 최초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고,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모더니티가 사회를 완전히 삼켜버리지 않은 제 3세계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68혁명은 서구와 비서구를 가르는 문명이라는 위선을 깨려는 서구 사회 내부의 시도였던 것 같다.

 

머리 속을 떠다니던 고민을 활자로 새기면서 나는 최초로 자아와 대면했고 그와 대화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가끔은 거울을 보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나는 내 속의 억압성이나 상처와 대화하면서 조금씩 그것을 깨달음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다른 사상가의 고민을 통해 나와 외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다 더구나 기존 연구를 따르지 않고 내 식대로 하나의 사상을 재구성하는 것,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며 현재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드러내는 것, 그것을 다른 사람과 토론하고 인정을 받는 것, 이런 경험들은 내가 공부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들을 하나씩 만들었다.

 

2. 풀뿌리운동과의 만남과 성장하는 삶

석사학위를 받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집안 형편상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취직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왠지 석사논문을 썼을 때의 성취감과 자신감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그런 인정을 다른 곳에서도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짜여진 학문의 틀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사는 직장생활보다 궁핍하고 힘들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제도화된 학문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음을 가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에 대한 믿음과 학문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언제나처럼 그 원인을 나 밖의 것에서만 찾았던 것 같다. 희망은 내 머리 속 이론으로만 존재했고, 가슴은 사람들과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미련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무리하게 시작했던 박사과정 생활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채워졌다. 아나키즘과 비판이론가들의 사상은 그런 냉소를 정당화하는 무기력한 이념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그 때는 학과공부보다 그냥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빌려서 읽는 게 즐거웠다. 쇼핑하듯이 서가를 빙빙 돌며 책을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빌려서 읽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욕심 중 제일 큰 것이 책 욕심이지만 여건상 책을 살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매번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야 했다. 대학원 등록금도 비싼데 책이라도 왕창 신청해서 읽어야지 생각했고, 책을 가지지 못하는 욕심은 책을 정리해서 기록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예전에는 책을 사서 읽고 독서카드를 만들었지만 그때는 보고난 책을 도서관에 반납해야하니 컴퓨터에 책의 주요 내용과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일일이 타이핑했다. 필요한 책을 그때마다 볼 수 없어 불편했고 읽은 내용을 일일이 컴퓨터에 치는 게 참으로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된 책이 열 권, 백 권, 이백 권을 넘으면서 그 정리들은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불편함은 어느덧 공부하는 ‘습관’이 되었고 ‘공부하는 사람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정신은 자유로워졌지만 내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한국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한 책들이 거의 없다보니 사유의 힘은 지금 이곳보다 저기 먼 곳이나 이전 시대를 헤맸다. 그러다 2001년도 여름, 우연히 찾아간 풀뿌리주민활동가 워크샵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다소 투박하지만 체험으로 다져진 활동가들의 단단한 이야기가 내 머릿속 고대 아테네 광장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책에서 읽던 내용들을 운동과정에서 이미 몸으로 익혀 온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며 책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도 길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때부터 소심함과 낯가림을 무릅쓰고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을 돌아다니며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면서 나는 희망의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었다. 만일 한국의 중앙정치와 권력, 그것이 왜곡해 온 민주주의에 조그만 기대라도 품고 있었다면, 나는 그런 희망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기에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덥석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니 삶은 참으로 묘하다.

 

구나 지역을 돌며 보고 들었던 활동가들의 모습은 내가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읽어 온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았다. 현실에 없는 것이라 여겼던 판타지가 현실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상가 아이리스 영(Irish Young)이 얘기했던 소통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는 생활협동조합 활동가의 삶으로 구현되었고, 하버마스(J. Habermas)의 공론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방과 거리에서 나누는 수다와 생활로 드러났다.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철암과 부산 반송, 대전의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울산, 대전의 참여예산제는 시민들이 예산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도 자기 몫을 다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안에서는 유채꽃으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햇빛발전소로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전북 진안은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여러 사회적 기업들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대안적인 유통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안성과 원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들은 지역공동체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고, 대전한밭레츠는 지역화폐를 활성화시키며 관계의 그물망을 이어가고 있다. 나조차도 불가능한 꿈이라 여겼던 아나키즘의 공동체가 이미 우리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희망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었다. 다만 그것의 의미를 몰랐기에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말과 행위를 볼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여러 사상가들과 그들의 핵심 개념들이 떠올랐다. 그런 희망의 힘과 직업병 덕택에 나는 손을 놓고 있던, 내게 의미없다 여기며 차일피일 미루던 박사논문을 쓰리라 마음을 먹었다. ‘풀뿌리 공론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박사학위논문은 왜 풀뿌리가 희망인지를 설득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러 활동가들이 몸소 보여준 그 희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는 희망의 근거를 만들 뿐 아니라 그 희망을 더 부풀리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풀뿌리운동을 사회운동의 한 흐름이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키고 싶었고, 그것이 연구자로서의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 앞에서 학문이라는 건 공허하고 얄팍할 뿐 아니라 때때로 경험지(經驗知)를 무시하는 오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이 왜 현장에 오냐는 질문을 계속 들어야 했고 낯선 시선을 견뎌야 했다. 무정부주의라는 과격한 말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웠다(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더구나 풀뿌리운동은 아이와 가족,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일상을 갖추지 못한 비혼(非婚),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존재인 지식인은 현장에 다가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풀뿌리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본 희망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했다. 처음에는 풀뿌리운동의 활동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예산제도처럼 풀뿌리운동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연구자로 역할을 확대시켜 갔다.

 

그 과정에서 부딪친 또 다른 어려움은 현장에서 느낀 고민을 논문이라는 틀로 정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풀뿌리민주주의나 풀뿌리운동에 주목하거나 그 의미를 밝히려는 연구는 거의 없고,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 사회주의운동, 민족주의운동을 논문의 틀에 담은 연구들은 있었지만 풀뿌리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배운 학문이란 유명한 인물이나 영웅, 사상가를 따라잡는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깨닫고 공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선거 때 표를 던지는 유권자로서나 가치를 인정받을 뿐 그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지 못했고, 연구자들도 그 사람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간혹 한나 아렌트(H. Arendt)나 니체(F. Nietzsche)를 만나고 나중에는 함석헌, 장일순같은 뛰어난 사상가를 만나기도 했지만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사람들을 하나의 논문에 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쓴 방식은 풀뿌리운동의 고민을 정리한 뒤에 그런 고민과 연관되거나 고민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상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박사(博士)란 것이 넓은 시야보다 좁은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요구받고 풀뿌리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운동의 의미와 사상을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풀뿌리공론장’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박사논문의 목표를 수정했다. 서양철학을 기본논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난처했지만 현장의 고민을 중심으로 그것을 재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목표를 제대로 충족시켰는지는 의문이지만 논문의 마지막 장에는 경기도 과천시의 풀뿌리운동 사례를 대입해서 현실과의 접점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박사논문은 아직도 치수가 어긋난 옷을 입은 사람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을 준다. 풀뿌리활동가들에게 바치는 논문이었음에도 정작 활동가들은 서양사상의 개념들로 구성된 내용을 어려워했다.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충분히 녹여내지 못한 나의 부족한 내공의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느꼈다. 내 목소리로 얘기하려면 논문이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야 했다.

 

사실 애시당초 학문이 현실에 대한 관심과 고민에서 시작했음에도 지금 우리는 책을 책으로만 대한다. 과거의 사상가들이 미래의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책을 기록한 것은 아닐 터이니 우리는 과거의 지혜를 현재에 유추할 뿐이다. 그러니 과거의 것에서 정답을 찾을 수는 없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답이란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현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연구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상하거나 허황된 미래를 예측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논문을 쓴다는 핑계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동안에도 현실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며 소통하지 않으면 내가 의지해야 할 현실의 근거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연구자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먼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활동과 연구를 병행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활동가는 자신이 맡은 과제를 성공시키는 과정과 그 결과로 평가를 받지만 연구자는 활동만이 아니라 그 활동을 기록하고 보편적인 언어로 해석하는 과제를 맡는다. 보편적인 언어로 해석하려면 그와 관련된 다른 연구나 책을 공부해야 하고 그에 맞게 활동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 둘을 모두 잘 하면 좋겠지만 하다 보면 어느 한 곳에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 때는 그 짐이 버거워 추상의 세계로 도피하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독일의 작가 미카엘 엔데(M. Ende)의 소설 『모모』를 떠올렸다. 모모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서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간도둑들은 그 지극히 평범한 능력을 가장 경계했고 결국 모모에게 지고 만다. 그런 모모를 생각하며 내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그래, 내가 얘기를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듣고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자. 굳이 내가 답을 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자. 그러자 그토록 부족했던 시간이 아주 넉넉하게 채워졌고 내 삶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이런 믿음을 얻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허나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내 삶을 성장시키며 살게 되었으니 기쁠 뿐이다. 다만 과제는 남은 시간 동안 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 일이고 더욱더 기름지게 거름을 뿌리는 일이다. 믿고 바라는 것만큼 내 삶이 그렇게 움직이고, 그런 실천이 더 나은 공부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3. 서로 보살피는 삶과 지식인으로서 뿌리내리기

나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려 하는 것은 외부의 사상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것들은 우리 내부의 차이이기도 하고 우리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외부는 중요하다.

 

다만 지금 우리는 거울의 매혹과 아름다움에 빠져 자기 모습을 잊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거울의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만 드러나길 원한다.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아침형 인간’, ‘몸짱’, ‘짐승남’같은 틀로 자신을 보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삶이란 어떤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선하고 악한 것이 뒤엉켜 있다. 피카소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그 모습이란 여러 단면들이 만들어낸 기이한 형태이고 남들이 보면 괴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조작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지 못한다면 내 삶을 살기가 어렵다. 시간도둑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특히 전통적인 생활방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하는 것과 즐기는 것이 분리되지 않던 시절, 공동체는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국가의 복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활이 서로 보살피는 삶을 가능하게 했다.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지 않고 안과 밖이 경계를 이루면서도 다양한 삶들이 자연스레 뒤섞였다. 가령 옛날 집집마다 있던 마당은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집 안과 집 밖을 연결하는 공간, 가정과 일터를 연결하는 공간, 가족과 마을을 연결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다양한 공간들을 통해 사람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뒤섞일 수 있었다.

 

물론 과거의 공동체를 무조건 이상적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연의 생명이 순환하듯이, 인간사회도 그렇게 순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금 더 자유롭고 싶은 것은 도시로, 조금 더 뿌리를 내리고 싶은 것은 농촌으로 가야 옳다. 다만 그 둘의 균형이 맞아야 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균형이 무너져 있다. 무조건 도시가 좋고 편한 게 옳고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것만이 인정을 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스런 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서 삶이 외부의 조건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불안하니까 우리는 자꾸 국가나 시장에 매달린다. 정부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고 기업이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길 원한다.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고, 국가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런 주장은 공허한 바람이고, 우리 현실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듯이 국가와 시장은 한통속이다. 그들은 풀뿌리들의 삶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국가에 집착할까? 좋은 정치인, 좋은 정당이 우리의 삶을 지켜줄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 것일까?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유럽의 복지국가를 많이 얘기하지만 나는 복지국가가 진보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식민지를 가혹하게 착취했던 제국주의 없이 유럽의 복지국가가 가능하기나 했을까?

 

역사가 하워드 진(Howard Zinn)이나 조셉 폰타나(Josep Fontana)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면, 서구문명이란 착취의 흔적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소위 선진국들은 식민지의 민중들을 미개인이나 야만인으로 몰아서 그들의 영혼을 빼앗고 하얀 가면을 씌웠다. 그들은 땅과 자원을 빼앗을 뿐 아니라 생활의 기반 자체를 파괴했다. 우리가 먹는 커피, 초콜릿, 설탕 등 일상 곳곳에 제국주의 지배의 역사가 숨어 있다. 여름철 폭우와 겨울철 폭설, 황사와 사막화 등 기후변화에도 그 지배의 흔적이 숨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선진국들은 전 세계의 가난한 아이들과 여성들에게서 많은 자원과 생명을 빼앗고 있다. 그런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그들의 길을 따라야 할까? 설령 우리가 그 길에 오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기 위해 또 다른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의 풀뿌리 공동체를 짓밟아야 할텐데 우리의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식민지는 우리에게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과거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의 가슴에는 남모를 상처가 새겨져 있다. 흔히 이를 정신적 상처인 트라우마라 표현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식민지의 상처는 심리적인 것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심리학자 파농(F. Fanon)이 말했듯이, 식민지 사람들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저항하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고만고만한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히며 대리만족을 얻고 지배질서를 대물림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를 버리라는 건 자신을 버리라는 것과 똑같다.

 

더구나 식민지의 경험은 우리에게 민족과 국가의 일치를 가져왔다. 공동체의 경계가 민족, 국가와 겹쳐지면서 사람들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동일시했다. ‘민족=국가’라는 공식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국사를 배우고 군대를 다녀오고 스포츠경기에 열광하고 국민가수, 국민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국민임을 깨닫는다. 이런 경험의 공식을 깨지 못한다면 우리는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게 아나키즘은 이런 지배의 역사를 깨고 풀뿌리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식민지를 벗어날 중요한 방편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남쪽으로 튀어』에서 말했듯이, 아나키즘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념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념은 과거가 누적되어 현재로 흘러나온 흔적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과 1945년 해방까지 일본과 한반도, 중국대륙을 넘나들던 사상을 아나키즘만으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아나키즘이라는 하나의 실을 계속 따라가고 있다. 아나키즘이라는 이념은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했던 그 다양한 삶의 단면들일 뿐이고, 내게 그것의 이름은 대동사상이기도 하고 풀뿌리이기도 하다.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가 아니듯, 아나키즘도 하나로 굳어지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웠으리라 믿는다.

 

설령 그 과정에서 이념의 흔적을 찾더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세상을 바꾸리라 믿지 않는다. 삶으로 녹아들지 못한 이념은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과 학교, 마을, 공장, 구청, 시청, 국회, 청와대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념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의 규칙에 쫓겨 우정도, 사랑도 모두 뒤로 미루는 사회에서 이념은 힘을 가질 수 없다. 이념이 꽃을 피우려면 국가나 자본이 시키는 일을 거부하면서도 우리가 생활하고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옛날 마을 공동체에서는 과부나 고아, 장애인도 굶어죽지 않았다. 간혹 그렇게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을 전체가 비난을 받았다. 지금은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 썩어가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왜일까? 지금 우리는 서로 아무 것도 나누지 않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아 윤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환대의 사상가 피터 모린(P. Maurin)의 “아무도 부유해지려고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고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간단한 윤리조차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는 이념을 윤리로 다듬고 내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것이다.

 

평생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받는다면 그러리라고 대답할 듯하다. 어차피 공부란 것이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에도 가르침과 깨달음은 숨어 있다. 숨은 진리를 찾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도 아주 즐겁다. 그동안 떠도는 지식인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모모처럼 마을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에 내려가 지역의 고유한 지식을 몸에 익히고 싶다. 지금 한국의 지식사회는 서구중심일 뿐 아니라 서울 중심이다. 서울로 수입된 학문이 지방으로 확산된다. 서울에서 인정을 받아야 소위 ‘전국구’로 이름을 내걸 수 있으니 지식인들도 서울로 입성하려 발버둥친다. 그래서 나는 수도권을 떠나고 싶다. 서울을 떠나야 내 속의 생각과 감정의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경험시켜주는 우리 각시와 아이도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리라 믿는다. 우리 가족이 도시의 무미건조하고 단절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그런 감성과 생각을 익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쥔 것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쥘 수 없다는 점을 가족과 함께 깨닫고 나누며 살고 싶다. 내가 평생 해온 공부는 그렇게 나를 비추며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작고 사소하지만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1. daebaek 2012.11.07 18:06

    긴 글 읽느라 혼났지만 잘 읽었습니다 (저는 글을 길게 못 써서 이렇게 길게 글 쓰시는 분들 보면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서울을 떠나시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실 서울에 계시는 게 더 어려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서울은 가장 문제가 심하고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잖아요

    저도 수도권을 벗어나고 싶다는 꿈을 날마다 꾸지만
    그런 꿈조차도 꾸지 못할 만큼 고단한 사람들에게는
    몽똘님 같은 분이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두서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_- 흐흐..

    아.. 저 기억 하시죠? 페북에서 잠깐 뵈었던 효정이 친구

  2. 몽똘 2012.11.07 23:56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이 길어진 건 이 역시 청탁 때문인지라... 저는 써달라는 분량을 정확히 맞춰주는 필자라.ㅎㅎ 말씀하신대로 서울에 있는 게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죠. 떠나는 건 제가 살자고 하는 거라... 그냥 방주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놀러오세요.^^

  3. 보스코프스키 2012.11.10 18:08

    상단에 설탕, 커피, 초콜릿을 언급해서 질문 드립니다. 이런 기호품과 폭력의 관계를 취급한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이란 도서가 있는데 일독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저의 사정으로 날짜가 늦어 바로 낼이 빼빼로 날인가 뭔가하는 초콜릿 막대 과자 날(??)의 하루 전에 등재하는 문서입니다.
    우리가 이런 막대과자 날 - 원래 만물의 기초인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의 날입니다만! - 을 기념하는 것도 상당히 죄송스럽다는 느낌입니다. 농업인의 날 잘 지내십시요...

  4. 몽똘 2012.11.10 18:15

    아뇨, 그 책은 아직 못 읽어봤네요. 말씀 듣고보니 내일이 그 흉악한 빼빼로데이군요. 보스코프스키님도 주말 즐거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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