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인사청문회는 평범한 시민들이 평소에 보기 드문 힘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기회는 언제나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만을 심어줬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아무런 의혹을 받지 않고 공직을 맡은 사람이 단 한 사람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의혹이 제기된 분야는 다양하지만 하나 같이 일반 시민들은 벌이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자녀들의 병역이나 국적의혹, 편법증여 등 인사청문회장은 ‘위법과 탈법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런 의혹이 문제일 수 있는데 하물며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사람들이 그 모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내성이 생겨서인지 사람들은 이제 크게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장관후보자를 여당이 감싸고 야당이 물고 뜯는 지겨운 광경을 봐도 이제 시민들은 원래 그러려니 한다. 장관들의 위장전입 정도는 눈감아 줄만큼 마음씨 좋은 시민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그 옛날 공화국을 만들었던 시민들은 정치인의 부패를 가장 경계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말 큰 걱정은 그런 부패가 일반 시민들에게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화국의 시민들이 법을 우습게 여기며 지키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되뇌는 순간 그 나라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법치주의는 시민들의 상식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들의 굴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인사청문회는 시민들이 부패를 학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청문회장에서 공직자들은 자신의 부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사과만 하면 되는 사소한 일로 여긴다. 심지어 오리발을 내밀거나 그게 무슨 죄냐며 위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패를 능력으로 여기거나 그것에 무감각해진다. 생중계로 목격하고 재방송으로 복습하면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혐오감을 배우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치나 민주주의가 꽃을 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인사청문회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여러 정당들에서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내세우는 명분이야 다양하지만 정당들의 속마음은 이제 웬만한 흠집을 덮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공직을 맡을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검증과정을 거치고 그나마 가려주니 이 정도이지 정말 모든 걸 공개하면 우리는 아사리판를 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만 가득한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차지하고 있고 시민들이 이를 묵인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이럴 바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차라리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거짓말로 일관하고 제대로 검증할 생각조차 없다면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부패와 거짓말을 학습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일은 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대신에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 그 공로와 과실을 엄격히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을 담당했던 사람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옛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에는 감사위원회가 있어 임기를 마친 공직자들의 정책결정을 법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그래서 사사로이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고 엄하게 법적으로 처벌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인사청문회를 열든, 감사위원회를 만들어 사후평가를 내리든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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