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경관과 찬송가'에서 주인공 소피는 추운 겨울을 교도소에서 보내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른다. 자존심 강한 소피는 자선단체의 적선을 받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교도소에서 지내려 한다. 교도소에 가기 위해 무전취식을 하고 무단횡단을 하고 우산을 훔치지만 소피의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찬송가 소리를 들은 소피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삶을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소피는 경관에게 붙들려 금고 4개월의 형을 선고받는다. 이 작품에서 오 헨리는 불평등한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 헨리의 소설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유아사 마코토(湯浅誠)는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에서 경제대국 일본 내의 빈곤을 다루며 현실의 소피를 얘기한다. 마코토는 고용과 사회보험, 생활보호제도라는 3중의 사회안전망이 붕괴하자 가난한 사람들이 제 4의 대안으로 교도소를 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자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교도소를 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면서 소설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생계형 범죄라는 말이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2008 사회조사’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10명 중에 4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는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한 노숙자들이 교도소를 택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이정도면 소설 속 아이러니는 더 이상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런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두는 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올 해부터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에 대한 난방비 지원금이나 월세 지원금 등 각종 지원예산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연말이라 각계각층의 따뜻한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자선은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를 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인지 올해 10월 민간업체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교도소가 최초로 등장할 예정이다. 법무부의 ‘2010 주요업무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민영교도소를 허가해서 교도소 신축 비용을 줄이고 다양한 교화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기독교 재단법인 아가페가 경기도 여주시에 300여명의 수형자를 수용할 수 있는 민영교도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정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 잡지 않고 오히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나쁜 방향을 택하고 있다.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는커녕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그들이 교도소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법치주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불법시위와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경영권 편법승계와 조세포탈 및 배임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 100억 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하는 사회에서 법치주의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강요하는 정상적인 언어일 뿐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비극을 부를까? 새로 태어난 이들이 부모의 굴레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더 깊은 나락으로 미끄러지는 곳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가 없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기에 충동을 억누르지도 동기를 묻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까?

미래를 꿈꾼다면 우리 곁의 소피에 관심을 쏟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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