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에게 고민거리를 던지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진보정당 소속의 시의원이 주민자치센터 직원에게 행패를 부렸던 사건에 뒤이어, 서울시의 한 구의원은 연수를 빙자한 해외관광에 동참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그리고 전라남도에서는 도의원이 술을 마시고 차량사고를 낸 뒤에 뺑소니를 쳤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거나 되묻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물의를 빚은 의원을 징계하거나 그 의원을 탈당시켜서 이런 문제를 해결될 수는 없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진보정당이 제도권으로 더 많이 진입하면 할수록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단지 선거에 나갈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뺑소니를 제외하면 이런 일은 정치‘현실’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이라는 ‘직책’에서 생겨난 이런 문제들은 후보자 개인의 품성이나 자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정당의 의원이 지방의회에서 경험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보수정당의 의원들이 키득거리며 몰려다니고 이해관계에 따른 표결을 할 때, 한 명의 의원이 이에 대처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구나 비협조적인 공무원들도 많고 지역토호들이 호시탐탐 허점을 노린다. 그렇다고 중앙당이 적절히 지원을 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험난한 가시밭길을 홀로 걷는 기분일 게다. 한 치만 삐끗해도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싸움터에서 지방의원은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왜 유독 진보정당 소속 의원들의 문제만 파헤치고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의 수많은 문제점들은 덮어 두냐며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리고 왜 정치의 기준이 도덕성이어야 하냐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허나 의정활동의 어려움들이 앞서의 문제들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진보정당의 의원들은 바로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으며 지방의회로 진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들과 똑같이 행동할 거라면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진보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사명의 문제이다. 지방의원들은 정치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사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은 중요한 사안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지만 개인의 상식과 기준이 아니라 ‘진보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언론들이 유독 진보정당의 문제점만 파헤친다는 푸념은 타당한 지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적은 아니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쏟기 어렵다, 정치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권력을 몰아주고 밀어주자는 식의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진보적이지 않고 부끄러운 소리이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대중의 정치흐름에 관심도 없고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으면서 권력에 대한 욕망만 키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방의원의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여러 기준들이 있겠지만 진보적인 지방의원은 자신의 경쟁자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즉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원외 지방의원들’이 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진보적인 지방의원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역할이 아니라 시민들과 정보와 권력을 공유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사회가 변할 수 있고 정치의 역할이 바뀔 수 있으며 진보정당의 기반이 넓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리더십에 관한 얘기들은 이미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의 ‘동원욕구’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바로 이 점에 우리 사회의 슬픈 딜레마가 있다. 진보적인 지방의원이라면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