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진짜 시험대’가 필요하다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패배라는 사실 외에 진보정치의 성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옳을까? 중요한 쟁점의 부각, 후보자 당선비율, 비례대표 정당지지율, 이런 기준들이 얘기되고 있지만, 이런 기준들은 부르주아정치의 기준과 얼마나 다를까? 승리를 판단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기준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듯하다.

유권자들이 꿨던 꿈은 이번 선거를 통해 얼마나 현실이 되었을까? 4대강 사업이 중단되고 삼성과 같은 재벌이 해체되고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되는 꿈은 얼마나 실현되었나? 그리고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4년 후의 지방선거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몇몇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정치혁명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니 진보정치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당선된 3곳의 구청이 진보정치의 미래에서 중요한 시험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단일후보가 당선된 여러 지역에서도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험을 진보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과거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단체장으로 선출되고 의회에서도 다수당을 구성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경험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공식적인 평가도 찾기 어렵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원의 의정활동이나 구청장의 구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점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무엇이 진보적 지방자치의 걸림돌이고 그 걸림돌을 제거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공동정부 구성과 관련해서는 과거의 정치권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수위나 주요한 몇몇 자리에 몇몇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민주당의 지역조직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정부 구성에만 관심을 쏟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진보정치의 시험대를 만들기는커녕 구태의연한 권력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 수도 있다. 그러니 밀실에서 타협을 하거나 정책을 만들지 말고 공개된 광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파트너는 후보를 단일화한 정당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이다. 그러니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도를 비롯해 이미 조례로 도입된 각종 제도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복지관과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등의 시설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작부터 진보정치는 뭔가 다른 점을 주민들이 실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다. 주민들의 삶이 바뀌어야 진보적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움직이는 동선, 주민들이 일하고 소비하며 쉬는 공간, 주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당선된 교육감들과 더불어 미래의 시민인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과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가야 한다.


사실 이런 과제들을 4년 안에 모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4년을 보지 말고 8년, 12년을 장기적으로 보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 주민들도 기꺼이 진보정치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려 할 것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브이의 가면과 옷을 입고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말한다. “그는 당신이고 저이기도 했어요. 그는 우리 모두였어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밤이 필요하다.

 

선거 끝! 정치 끝?

: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6․2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완패로 끝이 났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자리를 지켰지만 서울시 내 25개 구청장 중 단 4개만을 차지했다. 서울시의회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전체 106석 중 27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도 한나라당은 31개 시장․군수 선거에서 단 10개를 차지했고, 도의회 전체 124석 중 42석을 차지했다. 어렵게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어렵게 되었다.


허나 한나라당의 완패가 ‘선거의 승리’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빠진 자리를 대부분 민주당이 채웠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 공천과정 때 민주당 내부에서는 전략공천, 이중당적, 공천뒤집기 등의 잡음이 터져 나왔다. 개혁정당의 공천과정에서 벌어지면 안 될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투표가 권력을 이겼다”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말은 본질을 감추려는 시도이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곽노현, 김상곤 등의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6명이나 당선되며 교육정책의 변화를 예고했지만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여러 지역에서 착실히 활동을 해 왔던 풀뿌리 후보들이 중앙정치의 바람에 밀려 낙선한 점은, 그리고 민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이 다수의 표를 얻은 상황은 그 불안함을 예고한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정당득표율을 봐도 비슷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더욱더 불안한 건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이기려는 ‘반MB연합’,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상급식 찬성, 4대강 반대 외에 ‘반MB연합’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며 공통의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했고 그렇게 당선된 지역에서 야권연대는 어떤 새로운 정치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지금처럼 단체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지방자치제도 하에서 공동지방정부는 어떻게 작동될까? 특히 단체장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민주당이 많은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권력분점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번 선거에서 표를 몰아줬던 지역주민들은 이런 권력구조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이런 정치구조에 대한 논의 없이 무조건 단일화한 지역일수록 선거의 후폭풍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오만함과 독선에 경고를 보냈다는 점만을 보장할 뿐이다. 그마저도 저들이 정책을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고 어쩌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어서 여론을 바꾸고 조작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니 선거로 경고했으니 알아서 하겠지라며 손을 놓을 게 아니라 더욱더 적극적으로 각각의 사안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리고 민주당이나 다른 정당이 집권한 지역에서도 후보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무상급식이나 4대강사업 반대 외에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사실 무상급식은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 후보들조차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많은 예산이나 정책전환이 필요하지 않은 공약이고, 4대강사업 반대는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간섭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을 살펴보면 그 규모만 작을 뿐 4대강사업과 비슷한 형태의 개발공약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쓸데없는 개발사업들로 지역토호들의 배를 불리지는 않는지,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특혜를 받는 사람들은 없는지,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틈틈이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들려서 지역사회의 비전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정책이 집행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가끔 지방의회에 방청을 가서 뽑아준 의원들이 제 몫을 다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지역의 학교와 복지관,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등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겉만 뻔지르르하고 속은 곯아서 우리 삶을 위협하는 정책은 없는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경기도지사, 서울시장을 지지했던 표의 수라면 주민들이 직접 조례를 발의할 수 있고 중요한 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도 있다. 만일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선거 때 약속했던 것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실패할 정책을 추진한다면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정치인들이 긴장하며 일꾼 역할을 제대로 한다.


잘 뽑아줬으니 정치인들이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주인이 일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머슴들은 주인을 깔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갈아봤자 소용없다”는 우리사회의 정치불신은 또다시 높아질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늘어났다면, 지금 우리는 그런 불신과 냉소를 가라앉힐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



 

선거의 가장 기본은 투표이다. 주변 사람들이나 부모님들은 누구를 찍어야 한다며 열심히 훈수를 두시지만 딱히 기준이 없어 그 말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해야 할까? 공약집이나 홍보물을 열심히 살펴보면 누가 더 나은지를 가릴 수 있을까?



1단계: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건 뭘까?


물론 선거자료를 열심히 보는 건 중요하다. 아는 만큼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순서가 좀 뒤바뀐 거다. ‘어떤 사람을 찍을 것인가?’보다 훨씬 중요한 건 ‘나는 뭘 원하는가’이다. 선거는 내가 원하는 바를 대신해서 해결할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한테 뭘 해주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선거는 권리를 행사할 자리이지 선물을 받는 자리가 아니다. 시장에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적어서 나가는 사람이 ‘알뜰한 소비자’이듯이, 선거를 맞이해서 자신이 필요한 걸 잘 챙기는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다. 그리고 ‘훌륭한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함께 따지면 된다.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걸 먼저 쭉 늘어놓고 그걸 충실히 잘 따르겠다는 후보자를 찍어야 우리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고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도 있다.


그래야 대표가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의원님, 시장님,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할 게 아니라 “내가 뽑아줬으니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주면 더 좋겠어.”라고 말해야 민주적인 시민이다. 사실 그들이 마을에 해주는 사업들은 그들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해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짬짬이 낸 세금으로 하는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공약을 지키면 잘 했다고 등을 두들겨주면 되지 굳이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투표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 내 이웃과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챙기고 공동의 과제를 찾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뭘 해줄 거냐고 물을 일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그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



2단계: 사람됨 살피기


선거에 관한 정보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거홍보물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웬만한 후보자들이 선거 때마다(아니, 거의 선거 때만)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아니면 직접 선거사무소를 찾아가도 좋다. 혼자가면 썰렁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찾아가면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말고 곧바로 묻고 그 내용을 널리 알려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주인으로서 우리는 머슴에게 계속 고민거리를 던져줘야 한다.


대통령선거는 봉투가 비교적 간소하지만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로 오면 홍보물 봉투가 제법 두툼하다. 출마하는 사람도 많지만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때는 직접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 외에 일정한 비율의 표를 얻으면 의석을 가질 수 있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비례대표는 전체 유효투표의 3% 이상을 얻으면 원내 의석을 가질 수 있다. 2004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13.1%의 지지를 얻어 8명의 비례대표를 국회로 보냈다. 그리고 지방선거의 경우 시․도의원만이 아니라 자치구․시․군의원도 비례대표로 뽑는데, 비례대표는 의원정수의 1/10 비율로 선출되고, 후보자 중 50% 이상을 여성후보로 채우도록 되어 있다. 비례대표투표는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순서대로 당선되니 어떤 사람이 추천되었고 순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투표하는 게 좋다.


비례대표는 평소에 내가 눈 여겨 보던 괜찮은 정당에 찍으면 되고, 직접 투표하는 건 앞서 얘기했듯이 나와 우리의 필요에 맞춰 투표하는 게 좋다.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았다면 그와 비슷한 공약을 내건 후보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만일 내게 딱히 필요한 부분을 못 찾았다면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보통 홍보물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온갖 공약(公約)들로 채워져 있어 후보자들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없다.


그래도 나오는 사람이 나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됨’부터 먼저 확인해 보자.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재산상황(배우자와 직계의 재산 포함), 병역사항, 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납부 및 체납실적,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포함한 전과기록, 직업·학력·경력 등 인적사항이 나와 있다.


먼저 재산과 세금, 경력을 살펴봐야 한다. 돈이 많은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었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재산이 많다면 어떤 일을 해서 재산을 모았고 재산이 적다면 왜 그런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인터넷에서 이름과 직업으로 검색하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더불어서 세금 납부 실적과 직업, 경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직업은 변호사나 기업인인데 세금을 나보다 적게 냈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런 분들은 일단 자기 주머니를 따로 찰 가능성이 높으니 정치인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직업과 경력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자기 회사나 자기 부인, 자식들의 회사, 자기가 속한 단체나 협회에게 이익을 주는 공약을 내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그런 일이 많다). 공약의 주요 내용과 직업, 경력의 내용이 겹친다면 한번 의심해봐야 한다.


다음으로 병역사항. 병역을 면제받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멀쩡한 사람이 면제를 받았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사실 이 조항이 의미를 가지려면 후보자만이 아니라 후보자의 가족 병역사항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아쉽게도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것만 있다. 예전에 국적법을 개정할 때 국내외에서 1,820명이 국적을 포기했는데, 살펴보면 전(前)국방장관, 외무장관, 대학총장의 손자 등이 있었고, 서울시 강남권이 40% 이상을, 그 중 가장 부자라는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단일주소지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했다. 자기 이익 다 챙겨먹는 사람들이 정작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잘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과기록. 생각보다 정치인들 중에 전과자들이 많다. 1987년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정치계로 많이 들어갔지만 그런 경력 외에 사기나 뇌물수수같은 잡범으로 감옥을 다녀온 사람들도 더러 있다. 민주화운동 때문에 전과기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함께 기록하니 상관없고 다른 범죄기록이 있으면 잘 확인하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실수를 더 이상 범하면 안 된다.


그리고 선거에 처음 나온 사람이 아니라 이미 공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사람에 관한 평가를 들어봐야 한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품평이나 사용후기를 보고 그 상품을 평가하듯이, 정치인도 그렇게 평가를 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발행하는 의정활동보고서나 의정활동백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평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쇼핑 할 때는 눈이 뻘겋게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투표할 때는 너무 신경을 안 쓴다. 이제 신경을 좀 써야 머슴들이 기억력 나쁜 국민들이라며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선거 끝나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신경을 좀 쓰자.



3단계: 정책실현가능성 살피기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걸더라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 공약의 숫자나 하겠다는 사업의 규모보다 실현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옛날에는 당선되면 이것저것 다해준다고 뻥을 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매니페스토’(참공약)라고해서 그 공약을 지킬 과정을 밝히게 한다. 2008년도에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선거공약과 함께 각 사업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기한, 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하도록 하고 있으니 뻥을 치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자. 이런 과정을 세세하게 밝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단 뻥쟁이로 봐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http://www.manifesto.or.kr/)에 가면 매니페스토운동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여러 가지 선거정보와 선거자료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매니페스토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일단 그 공약을 한번은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약간은 더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실현가능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공약이 시민들의 욕구를 얼마나 반영했는가이다. 시민들은 당장 필요한 게 복지와 교육인데, 후보자들은 건설이나 재건축 등 엉뚱한 공약을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공약들이 아파트 재개발을 하고 커다란 편의시설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까는 하드웨어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뭘 많이 세운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후보자들은 자기나 가족들이 운영하는 기업에 이득을 가져다줄 공약들을 자기 지역을 위한 것인양 선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냥 선거를 대행해주는 회사에 맡겨서 지역의 욕구와 무관한 사업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니 그 사업이 실제로 필요한 건지, 재정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고 하는 경우에도 그 시설이 얼마만한 규모로 어떤 위치에 세워지는지를 봐야 한다. 주민들이 잘 가지도 않는 곳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편의시설을 세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는 다리품을 파는 만큼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후보자의 정책을 평가할 때도 품을 들이는 것만큼 좋은 사람을 대표로 뽑을 수 있다. 보통 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를 설치하니 그 사무실에 한번 방문해서 주인의 지위를 실험해 봐도 좋다. 직접 찾아갔는데 소 닭 보듯 한다면 주인을 제대로 섬길 준비가 안 된 머슴이니 바로 리스트에서 지우자.


그리고 선거법에 따라 각 후보자들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거리유세나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다. 대통령후보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은 지역의 유선방송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홍보한다. 또한 지정된 공개장소에서 연설하고 대담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싹수가 보이는 인물인지 그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보자.


또한 시민단체들은 보통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간의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곤 한다. 시간이 되면 한번 참석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좀 들어볼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서 말을 잘 하는 후보자보다는 하나의 정책이라도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 후보자에게 귀를 기울이면 좋다.



4단계: 기권하거나 무효표 만들기


요즘 정치는 시장원리를 따라 정당이 정책을 생산하고 유권자가 정책을 선택한다는 논리를 많이 내세운다. 유권자가 직접 정책을 고민하지 않도록 최대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정책을 만들고 뜻을 받들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쇼핑할 때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으면 사지 않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만일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는데도 자꾸 투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는 것도 시민의 몫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도 시민의 선택 중 하나이다. 왜 이 물건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알려야 파는 쪽에서도 고민을 좀 할 게 아닌가? 좋은 상품이 나올 때까지 상품을 사지 않으면서 나쁜 상품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제대로 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삐딱하게 굴자.


워낙 쓸만한 인물이 없는 선거판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표소에 들어갈 때까지 망설이게 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더더욱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한 표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투표할 수도 있지만 한번 떠난 투표용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에는 ‘no bullet, but ballot’, 즉 총알 대신 투표권이라는 말이 있다. 총으로 해결할 일을 투표권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비중있게 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진정 시민이 주권자라고 여긴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이런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자. 기표소에서 기권란을 그리고 그곳에 기표를 하자. 그렇게 기표하면 잘못 찍어서 생긴 무효표와 구분되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면서도 수동적으로 지금의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정치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당선된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 마뜩잖으면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해도 좋다. 찍을 사람이 없는 선거판을 거부한다는 점을 표현하는 건 주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유럽의 경우 실제로 투표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멕시코에서는 무효를 뜻하는 눌로(Nulo)를 찍자는 ‘Voto Nulo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눌로운동은 아무도 찍지 않는 것이 현직 정치인들을 뽑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벌어졌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 이런 행위는 투표용지를 잘못 찍어 무효표를 만든 경우나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경우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하려 한다면 최소한 웹사이트에서라도 그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해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기권의 권리를 달라!

: 거짓 선거판을 거부하고 시민주권을 보장하는 기권란을 만들자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시도의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표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선거의 정당성이 사라지니, 선관위는 시민들에게 투표를 권유할 뿐 아니라 상품권이나 컴퓨터 등을 경품으로 주는 변칙적인 방법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편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고, 이런 편법들은 선거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더욱더 왜곡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선관위의 편법은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찾는다. 허나 사람들이 투표장을 찾지 않는 건 투표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시만 하더라도 세 명의 시장후보가 있는데, 세 명 모두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의 후보는 국회의원이 공천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다른 한 명의 후보인 현직시장은 인사비리로 이미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세 명 모두에게 께름직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운데, 이 세 명을 놓고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하고 싶을까?


더구나 시장만이 아니라 도의원, 시의원, 교육의원을 놓고 봐도 비슷한 마음이다. 홍보물을 보면 이런저런 경력을 써놓았지만 선뜻 지지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선거 끝나고 나서 정당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비례대표도 께름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 용인시만의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사람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뽑아야 하는 선거를 민주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렇게 뽑을 사람이 없는데도 투표하고픈 마음이 생길까?


따라서 정말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기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진정 시민이 주권자라고 여긴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이런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자.


시민들 다수가 기권란에 기표하면 선거를 다시 치르도록 해야 한다. 주권은 정치공동체의 틀을 만들 권리이다. 한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응당 시민들의 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선거는 시민이 일꾼을 고르는 자리이지 일꾼이 시민들에게 뭘 해주겠다며 유혹하는 장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이 쓰는 예산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지 그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예산을 제대로 써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


이미 2008년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선거가 끝나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치인들이 이런 주장을 반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마음대로 권력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제도개선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없다면 우리가 지금 만들면 되고, 민주주의란 특정한 모델이 아니라 민중이 지배하는 방식이니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선거를 다시 치를 비용이 문제라면 그런 후보자들을 공천한 정당이 그 비용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보다 국고보조금으로 정당을 운영하면서도(2008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정당의 당원들 중 당비를 내는 사람은 7.1%에 불과하다) 선거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정당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정당도 더욱더 신중하게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을까?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 선거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직접 뜻을 밝히자. 기표소에서 기권란을 그리고 그곳에 기표를 하자. 그렇게 기표하면 잘못 찍어서 생긴 무효표와 구분되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면서도 수동적으로 지금의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정치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당선된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투표일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을 찍을지 결심을 한 용인시민은 몇이나 될까?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5년 68.4%, 1998년 52.7%, 2002년 48.9%, 2006년 51.3%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으니 지방선거에만 관심도가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방선거에 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이 지방선거인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더욱더 부족하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건 대부분 중앙정치이고 우리 지역의 소식은 아주 짧게 언급된다. 그러니 지역에 관한 정보를 구하려면 직접 인터넷이나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를 검색해야 한다. 복잡하고 귀찮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중앙정치의 선호도에 따라 후보자를 뽑거나 그냥 투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무심함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옛날에 비해 시청과 구청이 많은 권한을 갖게 되었다. 돈은 중앙정부에서 나올지라도 시청과 구청이 도시계획, 보육과 복지, 교육, 교통 등 우리 일상과 관련된 정책들을 계획하고 집행한다. 순간의 실수가 4년을 좌우할 수 있고, 순간의 선택이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더군다나 지금 용인시는 공천과정에서부터 심한 잡음이 일었다. 한나라당은 국민공천배심원단이 부적격 판정을 내린 오세동 후보를 시장후보로 공천했고, 민주당은 기준을 세우지 못하다 여론조사에서 밀린 김학규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여기에 인사비리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현재의 용인시장 서정석 후보가 출마했다. 그러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용인시의 밝은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선거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 한번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고 선거를 이용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꿔보자. 선거에 앞서 최소한 이것만은 기억하고 다짐하자.


첫째, 사람과 정책이 비슷비슷해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면, 나와 우리 가족이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자. 선거는 일꾼을 뽑는 장이니 내가 무슨 일을 시킬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후보자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책으로 만들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자. 선거사무소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가 원하는 정책과 미래를 요구하고 후보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만들자.


둘째, 정책을 따지기 어렵다면 사람됨이라도 꼼꼼히 살펴보자. 선거홍보물에는 후보자의 재산상황, 병역사항, 세금납부실적, 전과기록 등이 나와 있다. 사람됨이라도 괜찮은 사람을 뽑아야 비리나 큰 정책실패를 막을 수 있다.


셋째, 지방자치는 좋은 대표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 전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말고 당선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계속 감시하고 문제가 있으면 주민감사제도나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주민들이 주민발의제도나 주민투표제도를 통해 직접 조례를 제정하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제도 외에도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에서 민원을 넣고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용인시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 한번으로 행복을 바라지 말고 나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끈질기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 겨울 뒤에 봄이 오고 고난 뒤에 행복이 온다.


이제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사건사고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북풍',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라는 '노풍', 4대강'전쟁'(사업이라 부르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크더군요) 등이 시민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지요.

그리고 반MB라는 구도로 짜지는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연합으로 당선되는 건 더 어려운 듯하고, 당선되고 나면 당선자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듯합니다.
유권자연대라는 단체들이 선거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선거도 그다지 흥미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네요(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창림, 서형원, 김혜련, 오관영 등등의 선수들께는 죄송...^^;;).
그래도 흥미로운 기운은 꼬물꼬물 싹트고 있는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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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하변이 만드는 새로운 블로그(www.ivoice.or.kr)도 이런 목소리를 많이 담으시겠죠?^^

저는 요즘 선거 이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 조짐이 좋지 않아서 미리 희망스런 일들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그런 일들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한양대 연구소도 그만뒀습니다(이거, 왠지 형제가 자퇴분위기인데요...ㅎㅎ).
7월에 아이가 태어나긴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분유값 떨어지면 도와주실 거죠? 아니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라도 열심히 팔아주셔야 합니다. 책 받으신 분들은 반드시 서평쓰기...ㅎㅎ)

'지식협동조합'의 뒤를 잇는 '대안대학'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꾸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공간을 공유하고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면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여기 들리는 분들도 나중에 아이가 크면 걱정이 되시겠죠. 우리 아이가 제2,제3의 김예슬이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말짱도루묵인 대학교육을 받는 아이러니를 피하려면 많이 도와주셔요.
좋은 아이디어도 주시구요.

다들 선거 때문에 바쁘실테니 선거 이후에 한번씩 찾아뵙지요.
그럼... 
 

선거로 제한된 정치적 상상력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20년을 맞이한다. 자치단체장선거가 1995년에 부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자치제도는 16년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실험을 거쳐 왔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사춘기를 지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갈 단계인데, 아직도 우리의 자치는 너무나 허약하다.


올해의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들처럼 ‘그냥 선거’일 뿐이지 정치의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말로만 ‘자치’를 떠들 뿐 자치의 실제 주인이어야 할 주민들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5+4’라는 선거연합만 논의되고 있지 주민들이 자치의 주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함께 지역의 정책과 비전을 세우며 정치인의 권력독점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은 선거가 중요하고 반MB,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단결하자고 말하지만 전라도로 가면 그 구호는 반민주당으로 바뀐다. 그리고 당비를 내는 민주당 당원의 비율이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8년 동안 집권했지만 자치의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시민단체들이 활용해온 시민후보 전술이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할까? 이런 물음에 충분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집권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활동이 시작되고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선거에 좀 집중해 보자. 200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정당들은 정치개혁을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자고 합의했다. 지구당은 정당의 중요한 기관인데 왜 개혁을 위해 폐지되었을까? 보수정당들은 지구당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천비리가 자주 불거지자 지구당을 폐지했고,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런 결정에 반발했지만 실정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구당이 폐지되고 시․도당만 유지되면서 각 지역의 당원조직들은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라는 애매한 기구들로 전환되었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정당은 공직자를 선출하고 다양한 지역의 이슈를 전국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고 이슈를 제기하는 지구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구당은 지역의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치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따라서 지구당 없는 정당조직을 생각하기 어렵고,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당연히 평당원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지구당을 중심으로 당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보수정당의 지구당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모두 없앤다면 우리 정치에서 남겨놓을 것은 없다. 오히려 지구당이 없다보니 지역의 억울함과 분노가 공식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중앙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중요한 결정들은 중앙에서 내려지고 사업들도 중앙의 이슈를 따른다. 중앙언론에서 보도되는 중앙의 이슈에는 민감하지만 당원들조차도 자기 마을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진보정당들조차 분권화된 정당구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장의 집권전략이 자치를 위한 정당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정당과 친하게 지내보려 해도 좀처럼 거리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당법은 지역정당의 출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현행 정당법은 로컬파티(local party)의 출현을 막고 있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을 창당하려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에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5개 이상 둬야 한다. 그래서 2006년 지방선거 때 시도된 충청북도 옥천의 풀뿌리옥천당은 정당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야 했다. 이런 정당법 하에서는 자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정당을 끼지 않고 시민이 선거에 참여하면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한다. 선거기호에서 뒤로 밀릴 뿐 아니라 선거운동도 나중에 시작해야 한다. 또 선거에 참여하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돈을 혼자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후보자로 등록을 하려면 시도지사의 경우 5천만원, 자치구청장이나 시장선거는 1천만원, 광역의원 선거는 300만원, 기초의원 선거는 2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누구나 선거에 후보자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는 뻥이고 제법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뜻을 품은 사람들을 지원할 후원회가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정치자금법 제 6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특별․광역시장, 시도지사에게만 정치인 후원회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법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뜻 있는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한다. 왜 아름다움을 가로막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이 선거과정을 혼탁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시민의 정치참여는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되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트위터만이 아니라 UCC나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은 정치적인 생각을 자유로이 나누며 토론하고 나쁜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도 교환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민들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홍길동처럼 집을 나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밖에.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 106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인이 집집마다 돈이나 물건을 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과 집집마다 들려서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정책을 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뽀샵으로 손질한 얼굴 말고 실제 얼굴을 알아야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당당하게 유권자의 요구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기초의원의 경우 그렇게 살갑게 만나야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진정 국민의 머슴이라면 집집마다 돌면서 품을 팔아야 옳으니 무조건 금지할 일이 아니다.


정치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공직선거법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제 60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와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선거운동조차 가로막는 것은 이주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정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어릴 적부터 경험해야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데 지금 법은 그 싹을 자르고 있다(최소한 교육감 선거에서라도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옳다). 풀뿌리의 우군은 이런 사람들인데 참여를 금지당하니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정책을 결정할 사람을 뽑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한 정치만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의 정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법이 일일이 나서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권리를 막으니 이를 어쩌나.



제도를 넘어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역의 시민들이,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야 자치는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삶의 기반이 너무 부실하다.


우리는 옛날보다 발전했다고 여기지만 적어도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살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정치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9, 20세기에 이 땅에서 수많은 민란들과 저항들이 나타났던 건 자존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정치문화, 자치와 자급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치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가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문화를 강제로 짓밟았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다.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고, 그 문화를 명령과 복종의 수동적인 문화로 대체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치문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문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죽어버린 법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다. 그런 행동들로 자극을 받고 새롭게 해석되면서 법은 조금씩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꿈이다. 꿈은 완성된 법전이 아니라 몸부림이고 꿈틀거림이다. 조그만 꿈틀거림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다. 중앙의 정치바람보다 자기 마을의 꿈틀거림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처럼 이명박 정부는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이 모든 걸 다 가지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검사가 온갖 접대를 요구하는 건 나쁜 놈들 능력이고, 이건희가 국민들의 정직성을 탓하는 건 강자의 도덕이다.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고통에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 자신을 정당화한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난다. 이 무게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며 자신을 위안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고 있다.


조세희 선생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비밀을 고백했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유기농지가 강을 죽이니까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터전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풀뿌리정치를 말하는 건 다시 떳떳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풀뿌리정치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풀뿌리정치는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보자는,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그래서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 풀뿌리정치는 변화의 과정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목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풀뿌리정치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다. 사람들의 자질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처참한 현장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치는 4년, 5년마다 한번 찾아오는 투표로 제한되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산업역군에서 찾고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지 못했다. 회의하자고 하면 빨갱이, 말 많으면 빨갱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얘기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적어도 정신의 면에서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교육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또 다른 식민지를 따르고 있다. 무릎 꿇고 기어서라도 남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민지의 본능이 강해질수록 더불어 살려는 의지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들어설 자리는 줄어든다.


이렇게 억눌려 사니 냉소할 수밖에 없다. 자기 힘이 약하니 강자들에게 지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냉소의 효과는 두 가지인데, 강자에게 맞서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약자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쓰게 만든다. 내가 나서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설 때 격려하고 도와줘야 할 텐데 오히려 그런 사람을 시기하고 왕따를 시킨다.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려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보면 약자들도 체제를 지키는 부속품이 되어버린다.


정신적인 면과 더불어 참여를 가로막는 실제 장벽도 높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가부장적인 지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들이 풀뿌리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정치의 과제는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풀고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두 가지 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을 풀려면 정치의 즐거움을 직접 느껴보고 명예로운 삶을 맛봐야 한다.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자기 몫을 걸어봐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풀뿌리정치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한다.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한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누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뜨거운 감자’이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나 교육감을 당선시키고 괜찮은 지방의원이나 교육의원을 많이 당선시킨다면 풀뿌리정치를 가로막는 장벽들은 무너질 것이다. 괜찮은 후보들이 제법 그럴싸한 지역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는 사람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냉소적인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잘난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이고 친구보다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선거는 나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와 더불어 살 사람을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당선을 목표로 삼는 순간 사소한 차이도 비난의 이유가 되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야만 조금 더 당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니 선거에 들어가면 친구도 적이 되고 득표로 연결되지 않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은 무시된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꾸는 활동이 필요하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니 관심을 끊어라가 아니라 선거가 중요한 만큼 우리 일상의 정치도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정치를 좁게 보면 풀뿌리정치가 살아나기 어렵다. 아무리 권력을 바꾸더라도 그런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한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고, 풀뿌리정치 없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소식지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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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풀뿌리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던 사람들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뿌리 깊은 변화를 이루지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바퀴처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에게 모든 걸 다 바치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나 혼자,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아픔과 고통에 자꾸 눈을 감고, 그 마음을 다스리려 자꾸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내가 혼자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이 무게를 견디며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 위안합니다.

하지만 조세희 선생님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책에서 이런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농지가 강을 죽인다고 매도당하며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내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어쩌면 이미 늦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죽어버린 땅을 등 뒤에 남기고 소설에서처럼 우리는 달나라를 갈망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풀뿌리라는 말을 되뇌는 건 이런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뿌리는 우리의 삶이 더욱더 단단히 이 땅에 뿌리를 내려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보자는, 그리고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겠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풀뿌리는 그런 점에서 변화의 시작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과정입니다.

올해는 여성민우회 생협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여성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이 지난 세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온 변화는 아주 소중합니다. 민우회의 ‘사회주부’는 여성대중을 조직화하고, 대중의 참여 증진을 통해 여성을 세력화하며 대중 속에서 리더십을 발굴하고, 여성대중의 지지를 받는 운동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민우회생협의 조합원선언은 환경, 여성, 지역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여성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은 가치와 생활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소소한 생활의 변화부터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까지 민우회는 다양한 변화의 물꼬를 터왔습니다.

하지만 개발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며,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이나 가사일을 여성에게 떠맡기려 합니다. 이 모든 조건들은 가치가 삶으로 녹아드는 걸 방해합니다.

그래서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서로가 서로의 역할과 활동방식을 이해하는 단계가 필요한 듯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섞은 음식이 조화로운 맛을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가치와 생활이 잘 버무려져 새로운 삶이 드러나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이 섞이려면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화백회의는 만장일치로 운영됩니다. 드라마에는 마치 그 회의가 정치적인 음모의 장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전체 회의장에서 토론될 수 있었고 차이가 합의로 이어질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디딤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내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010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머슴임을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할 겁니다. 그런 장에서도 관계는 만들어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후보자는 상대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보다 내게 표를 찍을 건지 안 찍을 건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내 진심(眞心)보다는 표심(票心)에만 관심을 쏟는 게 바로 선거입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가 자연스레 바뀌리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합니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합니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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