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월드컵 축구에서 골을 넣었을 때와 비슷한 함성이 동네를 뒤흔들었다. 선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해 봤다. 한 가지 떠오르는 건 평창 올림픽 유치.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온통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사람들이 기뻐하며 눈물 흘리는 광경에, 꼴 보기 싫은 인물들의 등장에 난리법석이다.

그런데 하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엑스포 등 수많은 국제행사를 치르는 동안 우리의 살림살이는 얼마나 나아졌나? 복지에 써야 할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었지만 남은 건 빚밖에 없다. 차량을 통제하고 이런저런 행사에 동원되고 전 국민이 영어를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소동을 불평 없이 받아들였건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또 올림픽을 유치했다며 소란을 피우고, 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든다. 2007년 7월 민주노동당은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러시아의 소치가 선정되었을 때 “언제까지 스포츠 쇼비니즘에 국민을 들러리 세울 건가?”라고 묻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은 국제스포츠경기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발전시킨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빚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점, 동계올림픽이 반(反)생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개발지의 인구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유치 실패가 오히려 주민들의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불과 4년이 지난 2011년 7월, 민주노동당의 논평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로 시작한다. 동계올림픽이 ‘평화와 통일의 올림픽’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4년 전의 논평이 지적했던 문제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살림살이 면을 보면, 2010년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27.5%로 매우 낮다.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군은 재정자립도가 19.9%로 지방세 수입으로는 공무원의 인건비를 근근히 해결하는 실정이다. 강원도는 자생적인 산업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각종 교부세와 보조금으로 근근이 지방정부를 운영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동계올림픽이 평창군과 강원도에 어떤 도움을 줄까? 강원도민의 살림살이에 들어가야 할 예산이 얼마나 건설사와 지역토호들의 손으로 사라질까?

물론 올림픽 유치로 많은 국비 지원을 받겠지만 대규모 경기장과 시설을 짓고 나면 그걸 관리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0년 각 월드컵 경기장의 평균 사용횟수는 30~40회에 그치는데, 관리비는 수십 억원에 달했다. 마찬가지이다. 동계올림픽을 흥청망청 전국 잔치로 치르겠지만, 행사가 끝나면 이런 비용은 고스란히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변한다.

그리고 6개의 경기장을 더 지을 뿐 아니라 강원도 내에 국제공항이 없어 경기장까지 도로를 닦고 고속철도를 놓는다고 한다. 그런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경기장을 짓고 도로와 고속철도를 놓는 신기술이 지난 4년 동안 개발되었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어떻게 ‘생태 친화적인 올림픽’이 가능하단 말인가? 한번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강원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바탕 벌어지는 소동을 보며 한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진보정당이라면 지역 내부의 힘을 끌어내고 모아서 자생적인 지역발전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비전을 파괴하는 동계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민주노동당이 ‘진심으로 환영’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아직도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평창올림픽에 들어갈 7조 이상의 세금으로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새로운 대안을 기대한다.


 

진보정당에게 고민거리를 던지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진보정당 소속의 시의원이 주민자치센터 직원에게 행패를 부렸던 사건에 뒤이어, 서울시의 한 구의원은 연수를 빙자한 해외관광에 동참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그리고 전라남도에서는 도의원이 술을 마시고 차량사고를 낸 뒤에 뺑소니를 쳤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거나 되묻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물의를 빚은 의원을 징계하거나 그 의원을 탈당시켜서 이런 문제를 해결될 수는 없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진보정당이 제도권으로 더 많이 진입하면 할수록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단지 선거에 나갈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뺑소니를 제외하면 이런 일은 정치‘현실’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이라는 ‘직책’에서 생겨난 이런 문제들은 후보자 개인의 품성이나 자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정당의 의원이 지방의회에서 경험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보수정당의 의원들이 키득거리며 몰려다니고 이해관계에 따른 표결을 할 때, 한 명의 의원이 이에 대처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구나 비협조적인 공무원들도 많고 지역토호들이 호시탐탐 허점을 노린다. 그렇다고 중앙당이 적절히 지원을 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험난한 가시밭길을 홀로 걷는 기분일 게다. 한 치만 삐끗해도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싸움터에서 지방의원은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왜 유독 진보정당 소속 의원들의 문제만 파헤치고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의 수많은 문제점들은 덮어 두냐며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리고 왜 정치의 기준이 도덕성이어야 하냐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허나 의정활동의 어려움들이 앞서의 문제들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진보정당의 의원들은 바로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으며 지방의회로 진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들과 똑같이 행동할 거라면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진보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사명의 문제이다. 지방의원들은 정치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사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은 중요한 사안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지만 개인의 상식과 기준이 아니라 ‘진보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언론들이 유독 진보정당의 문제점만 파헤친다는 푸념은 타당한 지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적은 아니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쏟기 어렵다, 정치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권력을 몰아주고 밀어주자는 식의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진보적이지 않고 부끄러운 소리이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대중의 정치흐름에 관심도 없고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으면서 권력에 대한 욕망만 키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방의원의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여러 기준들이 있겠지만 진보적인 지방의원은 자신의 경쟁자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즉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원외 지방의원들’이 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진보적인 지방의원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역할이 아니라 시민들과 정보와 권력을 공유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사회가 변할 수 있고 정치의 역할이 바뀔 수 있으며 진보정당의 기반이 넓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리더십에 관한 얘기들은 이미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의 ‘동원욕구’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바로 이 점에 우리 사회의 슬픈 딜레마가 있다. 진보적인 지방의원이라면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한 사회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지역사회 내의 평판이나 명망을 수집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분석하려면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한국의 지역사회지배구조를 분석하면 그 실체가 조금 드러난다. 일단, 지역사회라 해서 중앙정부와 재벌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정부와 많은 권한이 넘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7: 3이라면 지출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비중이 3: 7로 역전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여전히 중앙이 기획한 사업을 지방이 집행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소수의 재벌들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대형할인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또한 중앙언론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지배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에 위임된 집행권력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자기 마음대로 행사한다. 대통령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장은 지방정부의 예산을 쌈짓돈삼아 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재선을 위해 터무니없는 사업들을 집행한다. 이를 막을 지방의회의 힘은 약할 뿐 아니라 단체장과 연관된 보수정당이 지배하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사실 선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지방의원들은 그 권한을 가진 단체장과 결탁할 수밖에 없다. 지방공무원들(또는 그들의 관료주의)은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에 묶여 있지만 민주화 이후 독자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공무원 밑으로 통 단위까지 관변조직이 만들어져 있다. 어떠한 명분을 대더라도 이런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권력을 뒷받침하는 각종 관변단체들이 존재한다. 각 동단위까지 뿌리를 내린 새마을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의회를 빼고도 대한노인회, 각종 보훈단체, 체육단체, 한국예총, 여협, 로타리, 라이온스, 청년회 등의 단체들이 지방정부의 사회단체보조금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방정부의 각종 자문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선도위원회,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읍․면개발위원회 등 수십 개의 위원회들을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상공회의소들도 정치인, 관료, 학계, 관변단체들을 연계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로 건설업자들의 소유인 지역언론사들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개발사업을 정당화시키고, 지역의 대학들도 지방정부의 각종 용역을 받아 지방권력을 비호한다(대학교수들이 공무원 다음으로 위원직을 많이 차지하고, 각종 재단과 시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의사, 약사, 각종 직능단체들의 지역조직도 지역사회에서 이익을 거래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중앙에서 지역까지 하나의 권력망을 구성하고 서로 이해관계를 나누며 공생하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수천에서 수만 명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공권력이나 자본이 그들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준다.


반면에 우리가 가진 힘과 사람들을 한번 꼽아보자. 몇 명이나 되고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나? 민주노총, 민언련, 민노당, 진보신당, 시민단체 등 지역의 진보적인 단체들을 죄다 끌어 모아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고, 이런 단체들마저도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라 하나로 묶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누구를 믿고 누구의 편에 설까? 가치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제시하는 비전이 더 현실적일까?


이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진보적 지방자치는 그냥 말일 뿐이다. 얼마 되지 않는 몫을 놓고 싸울 것인가, 우리의 편을 더 많이 모을 것인가,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번 칼럼을 쓰고 난 뒤, 속해 있는 단체의 블로그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다. 줄여서 표현하면, 내가 하는 얘기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실제 현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절반의 진실이라 생각한다. 지난번 칼럼은 진보정당이 지역이나 지방자치를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글이기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 얘기가 궁금하신 분은 http://blog.grasslog.net/archive/709을 방문해보시길). 그래서 오늘은 좀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지방선거에 대비하는 선거연합 논의가 한창이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선거인지라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그 논의에 집중하다보면 깃발만 꽂으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좀 환기시키는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정책정당으로 활동하려면 정책을 세울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들이 수집되어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에 가면 주로 성명․논평, 활동보고, 운영위, 대의원대회 소식만 올라와 있지 지역에 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내친 김에 민주노동당의 시․도당 홈페이지를 쭉 둘러봤다. 그런데 서울시당, 충남도당에만 약간의 지역자료가 있고 다른 시도당의 경우 자료실이라는 이름이 좀 무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지방정부의 원자료를 올려놓은 수준이지 그 자료를 민주노동당의 관점에서 가공하고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의 각 지역후보들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선거에 임할 생각인가? 물론 민주노동당이 히트시킨 몇 가지 공약들이 있지만 그 공약들을 지역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그 지역의 실정에 맞게 공약들을 다시 가공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려면 그 지역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당 내에서 지역별로 정책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지 제법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연구소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지역정보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만 과거와 달리 기본적인 자료들은 지방정부의 홈페이지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시정백서와 각종 통계자료, 예산서 등을 PDF나 엑셀파일로 다운받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면 민원을 넣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그것을 직접 구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시의 2010년 본예산서를 그냥 쓱 훑어만 봐도 많은 문제점이 눈에 띤다. 일단 사회단체보조금이 14억이나 잡혀 있는데, 대부분이 관변단체의 운영비와 사업비로 지출되고 있다. 1조 1천억원이 넘는 예산에서 수송 및 교통부문 예산이 약 2,772억원으로 25%를 차지한다. 이 액수는 사회복지예산보다 무려 300억원이나 많다. 또한 교육체육과 시예산이 553억원인데 그 중 304억원이 엘리트 체육 및 생활체육 육성에 사용된다. 지역이슈가 별 것 있나, 이런 것들이 바로 이슈이다.


몇 년치 예산서와 시정백서, 도시기본계획, 복지계획 등을 늘어놓고 그 관계를 추적하다보면 지역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들을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이렇게 쓰일 돈이 사실은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보자.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이 내거는 구호들을 추상적으로만 느낄까?


우리가 집권하면 이렇게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려면 참여의지를 자극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판을 깔아야 한다. 지역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혼자 하기 힘들다면 당이 가진 역량을 지역으로 내려 보내라.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사람을 보내 지역의 정보들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라. 거창하게 연구소를 세우려하니 차일피일 미뤄진다.


이제 진보정당에게는 감동을 주는 리더십만이 아니라 수치로 얘기하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늦다.


민주노동당의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첫번째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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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전략과 초심의 진보정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집권전략이 논의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구상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으면 도루묵이니 지금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을 때 집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런 논의에 묻어나기도 한다.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논의하고, 선거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등 진보정당의 움직임도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다. 왜 진보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삼는가? 물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공직자를 배출하고 집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교육을 진행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일도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선거가 정당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중요한 실험대이지만, 그 실험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뒷받침될 때에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무엇일까? 신문을 장식하는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삶이나 욕구와 무관한 공공시설들이 많은 돈을 들여 허술하게 세워지고, 갑자기 멀쩡한 동네가 재개발지구나 사업지구로 지정되기도 한다. 그 지역과 상관없는 지역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어떤 공립 어린이집에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런 사건들이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당은 이런 사건들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고 정책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활동으로 정당은 자신의 정당성과 정책을 시민들에게 조금씩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당의 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정당은 이런 과정을 얼마나 착실히 밟아왔을까? 2005년도에 민주노동당이 발간한 『당원 정치의식 및 정책성향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의 일상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당원이 지구당원의 39.8%, 시도당원의 54.7%, 중앙당원의 61.8%를 차지한다. 그리고 일상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원의 62.2%가 직장일이 바빠서라고 답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이런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속 시원한 말과 과감한 정치활동으로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진보정당의 지방의원들이 착실하고 꼼꼼한 정치활동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과 주민들이 진보정당을 믿고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의원들만 돋보일 뿐 정당의 정체성은 점점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의 정당이 있을 뿐 정당의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진보정당이 자기 마을에서 하려는 일을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당원들이라도 그런 내용을 알고 참여할까?


이런 상황에서 집권전략을 논의하는 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선거가 다가왔으니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선거철에 지역에 뭘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보수정당에도 수두룩하다.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집권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그것만이 진보정당의 목표일 수는 없다. 더구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지금의 선거판은 내 편을 단단하게 다지지만 다른 편을 내몬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집권(執權)전략이 아니라 집권(集權)전략이 된다. 선거에 지든 이기든 친구보다 적만 늘어난다.


진보정치는 우리와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가능하다. 나는 진보‘정당’보다 ‘진보’정당이 보고 싶다.

며칠 전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무소속 시민후보로 출마한 후보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어처구니 없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시민후보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는데, 선관위에서 그런 내용을 선거홍보물에 넣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 대표들이 지지연설하는 것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법이다. 

정당이 자체적으로 결의를 해서 자기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는데, 그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불법이라니? 이런 한심한 일이 생기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선거법이고 선거관리의 실상이다.

공직선거법 84조는 전가의 보도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이 시흥시장에 출마한 무소속 최준열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 민정례
시흥시

선관위에서 근거로 들고 있는 법조항은 공직선거법 제84조이다. 이 조항은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선관위는 이 조항을 근거로 야3당이 시민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표방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이 특정한 정당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표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취지이다. 예를 들면 선거를 앞두고 정당을 탈당한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사실은 00당은 나를 지지하고 있고, 나는 당선되면 복당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을 문제삼는 조항인 것이다.

따라서 여러 정당이 공식결의를 해서 한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경우를 염두에 둔 조항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흥시장 선거처럼, 정당의 공식 조직에서 결의하여 선거공조 차원에서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공직선거법 84조의 입법취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관위의 해석을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2007년에 국민중심당에서 선관위에 질의했을 때에,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선거에서 -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간에 선거공조를 위하여 후보자를 단일화하는 경우 사퇴한 후보자나 그 정당의 대표자 또는 간부 등이 단일화된 후보자나 그 정당의 선거대책기구의 간부나 구성원 또는 연설원이 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84조에 위반되지 아니할 것임'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번 시흥시장 선거에서는 야3당이 무소속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선거홍보물에 넣지도 못하고 하고, 진보정당 당대표가 지지연설을 하는 것도 금지하겠다고 한다.

선관위는 지지를 허락해야 한다

이미 시간적으로 선거홍보물에 야3당의 지지사실을 넣기는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야3당 당대표자들의 지지연설이라도 허용해야 한다.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이 지지를 한다는데, 그것을 표현조차 못하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자의적인 잣대로 선거법을 해석한다면 선거 자체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우리나라 선거판에서 신진세력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기득권 정당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법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시흥에서 시도하고 있는 노력들이 더욱 가치가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이번 4·29 보궐선거를 보면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론적으로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너무 폐해가 크다. 이번에 시흥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한나라당, 민주당의 예비후보자들은 공천에 목을 맸다. 민주당의 경우에는 정세균 대표가 참석해서 사무실 개소식을 해 놓고, 그 다음날 후보가 사퇴하고 새로운 후보가 공천을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당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깨지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주민자치'가 아니라 '기득권 정당들의 잔치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승수 (제주대학교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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