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주간지를 구독하지 않는 우리집에 2달에 한번 배달되는 잡지가 있다.
하나는 녹색평론이고, 다른 하나는 민들레이다.

이름도 이쁘다.
녹색평론, 민들레..
그리고 그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지 않고 충실하다.
녹색을 바탕에 둔 대안적인 패러다임과 진정 교육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안의 고민.

그렇기에 나는 이 두 잡지만큼은 정기구독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잡지를 읽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내가 다니는 느티나무도서관에도 녹색평론과 민들레는 항상 비치되어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고민...
사람들은 왜 이 잡지를 읽을까?
뭔가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두 잡지의 공통점은 집요하게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내 머리 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두 잡지는 언제나 소수파이다.
다수파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기보다는 다수파가 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 이 두 잡지를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학생협특별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학생협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일상을 비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부딪쳐보는 수밖에...^^;;
헐, 전날에 강의하는 분이 고미숙 선생이시네.
어쩌면 적절한 배합일지도...^^;;

● 사회정치적 배경


- 스페인은 브라질과 달리 발전되고 불평등 지수도 낮은 국가.

- 조직되지 않은 시민 대신 조직된 단체들이 참여를 주도하지만 후견주의 모델로는 보기 어려움.

- 개인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참여모델이 요구되기 시작함.

-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시민들도 대의정치 체계를 불신함.

- 좌파정당은 참여에 우호적이지만 내부의 관료적인 문화와 권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낌.

- 시민참여와 관련된 법규정으로 Reglamentos de Participación Ciudadana(Citizen Participations Regulations), Ley de Modernización Del Gobierno Local(Law of local government modernization, 2003)이 있음. 지방정부 근대화법은 지방의회의 편에서 지방정부의 행정권과 입법권을 강화시켰음. 즉 시장은 직선되지 않고 정당의 추천을 받아 지방의회에서 선출됨.

- 각 자치공동체는 주대통령, 주장관, 주의원, 관료들을 갖는, 연방국가는 아니지만 연방국가와 비슷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분권형 국가로 전환됨.

- 참여예산제도는 시민참여를 증진할 뿐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려는 시도임.

- 브라질과 달리 참여예산제도는 좌파연합의 강령이 아니기에 시장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음.

- 알바세데만이 아니라 코르도바(Cordoba), 푸엔테헤닐(Puente Genil)에서도 참여예산제가 실시중.



● 사례분석


- 코르도바의 경우 2001년부터 참여예산제도가 실시되었고 계속 변화되고 있음. 초기 제도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운영.

preliminary informative district meeting: 시민들의 개인적인 참여

         ↓                              이전 해의 과정 검토

agents workshops: 참여자들이 선출한 agent들이 회의하고 회의를 운영.

         ↓         우선순위를 정할 기준들을 결정. 이후 과정을 운영.

district table: 지역의 단체와 agent들이 마을회의 날짜를 결정.

         ↓

neighborhood assemblies: 시민들이 각 지역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토의

         ↓

district table: 토의된 프로젝트들에 앞서 정한 기준들을 적용

         ↓    지역제안서를 작성

district assemblies: 시민들에게 제안서를 제출하고 필요하다면 수정.

         ↓          이 회의로 agent의 역할은 끝나고 새 대표가 선출.

thematic tables: 제안서의 실현가능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설명.

         ↓

city tables: 대표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우선순위를 정함.

            몇몇 대표들은 제안서를 실행하는 과정에 참여.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그러나 몇몇 연합단체들(associative organizations)은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속 비판을 가함. 결국 2004년에 시의회가 참여예산제도 중지를 선언하고 2005년에 연합단체들과 개인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 이 제도에서 연합단체들이 회의를 조직하고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의제를 제안(planification)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음.

preliminary informative district meetings

       ↓                                ↓

District table                      sectoral planification

       ↓                                ↓

city council informs of technical feasibility

       ↓                                ↓

District assemblies                 thematic assemblies

       ↓                                ┃

district table

       ↓                                ↓

city council informs of technical feasibility

       ↓

city council

 

그러나 여전히 참여율이 떨어지고 여성참여를 고려하지 않아 성차가 드러남. 새 제도는 기성단체들의 영향력만 확대됨.

- 푸엔테 헤닐의 참여예산제도도 2001년도에 시작됨. 시예산의 25%만 다루고 그것도 주제회의만 열림. 2002년도부터 참여예산의 날(PB days)을 선포하고 단체의 대표와 지역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이전 해의 예산을 토의함. 그 뒤 시민들이 시민회의에서 우선순위를 토론함. 그 뒤 시의 공무원(municipal employee)이 기술적인 제안을 하고, 시민회의 대표들, 지역시민참여위원회의 대표들, 지역단체와 사회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논의함. 시위원회(city council)가 프로젝트의 실행을 맡음. 2004년도부터는 전략참여계획(Plan Estategico Participativo(PEP)이 도입되어 시 전체적인 계획들을 다룸.


● 알바세데

- 주민수 16만, 7개의 행정지구로 나눠져 있음.

- 행정지구 내에 시민들의 참여와 의견제시를 지원하는 마을회의(neighborhood councils)가 구성되어 있음.

- 전통적으로 지역정치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온 강력한 시민단체와 마을회의 네트워크가 존재함. 참여예산제도는 이런 단체들에 초점을 맞춤.

- 참여예산제도가 선거 당시 타협안으로 제안됨.

시민제안(10월)

전체총회(11월)

실행위원회(1~3월)

전체총회(6월)

마을회의를 통해

개인자격으로

참여예산안 승인

실행위원회 선출

참여예산안 실행

주제별 위원회

의회에 보낼 최종안 승인

- 두 명의 공무원(municipal employee)이 과정에 대한 기술적인 지원을 전담함.

- 전체총회는 단체와 지역대표들, 400명으로 구성. 명예직이고 보수 없음.

- 실행위원회는 마을회의와 지구대표 25명으로 구성.

- 주제별 위원회에서 시민과 공무원이 특정한 주제를 다룸. 10~15 사이의 주제로 구성되고 모든 시민에게 개방됨.

- 성인 인구 중 4%의 참여.

- 결과: 전체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배치가 고민되어야 함. 마을 네트워크가 사전에 구성되어야 함. 주요 정치행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함.


● 참여예산제도의 필수요소들1)

만일 당신이 참여예산제도를 시작하거나 그것을 분명하게 만들려면 다음의 가정들과 목적들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8개의 권고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 가정들

- 공공재정의 분배는 시민의 생활에 가장 중요하다.

- 시민은 일상생활의 전문가이고 이미 지역적인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 참여는 자발적인 정치행위이다. 모든 사람에게.

- 참여예산제도에는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많은 돈을 절약할 것이다.


○ 목적

- 참여예산제도는 세금활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 참여예산제도는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공동체 내부의 많은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 참여예산제도는 대다수 주민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권고

- 적절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진행과정에 공동체 내의 대표성의 균형을 항상 고려하라.

- 시민들이 진행과정에 참여하면서 관심을 자극받아야 한다. 창의적인 방법과 기법을 이용해서 그들을 자극하라.

- 재정적이고 기술적인 정보를 다루는 행정당국은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복잡한 내용을 줄여라.

- 의제는 미리 잘 정리되어야 한다. 미리 진행과정에 필요한 문건들의 내용을 다듬어라.

- 공동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아라. 이주민, 빈민,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 공동의 프로젝트를 놓고 협력하게 해서 집단적인 혼을 만들어라.

- 소프트 스킬(soft skill, 리더십이나 팀워크 등 대인관계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둬라.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발전시키도록 도와라. 마을회의와 시민, 행정당국간의 편견을 없애라.

- 약간의 단기적인 성과를 만들고 상징적인 활동을 피하라. 참여의 정당성이 그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라.

[성균관 스캔들]에 다소 무관심한 듯 매력을 풍기는 정약용 선생이 잠깐 등장을 했었다.
정조가 실제로 민중의 삶에 그토록 관심을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약용 선생은 평생 그런 관심을 지고 살았던 듯하다.
우연히 정약용 선생의 글을 접하고 그 공감의 깊이에 약간 감동을 했다.
[열하일기]를 좋아하는 쪽에서는 박지원을 띄우고 정약용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어찌보면 지나치게 많은 짐을 어깨에 지고 가려 한 게 아닐까?

일평생의 반을 귀양살이로 보내고, 6명의 아이 중 4명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삶, 그러면서도 민중들의 실제 삶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그의 삶.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한가로운 글재주로 잡히지 않는 마음과 몸의 무게가 느껴진다.
파리를 조문한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또 한번 울컥했다.
굶어죽은 민중들이 파리로 변해 날라드는 것이니 파리를 잡지 말고 조문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

경오년(1810) 여름에 엄청난 파리떼가 생겨나 온 집안에 가득하더니 점점 번식하여 산과 골을 뒤덮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도 엉겨 붙고, 술집과 떡집에도 구름처럼 몰려들어 우레 같은 소리를 내었다. 노인들은 괴변이라 탄식하고, 소년들은 분을 내어 파리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 혹은 파리통을 설치해 잡아 죽이고, 혹은 파리약을 놓아 섬멸하려 했다.

나는 이를 보고 말했다.


“아아, 이 파리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굶어죽은 사람들이 변해서 이 파리들이 되었다. 아아, 이들은 기구하게 살아난 생명들이다. 슬프게도 작년에 큰 기근을 겪었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 그로 인해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가혹하게 착취까지 당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시신이 쌓여 길에 즐비했으며, 시신을 싸서 버린 거적이 언덕을 뒤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신 위로 따뜻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살이 썩어 문드러졌다. 시신에서 물이 나오고 또 나오고, 고이고 엉기더니 변하여 구더기가 되었다. 구더기떼는 강가의 모래알보다 만 배나 많았다. 구더기는 점차 날개가 돋아 파리로 변하더니 인가로 날아들었다. 아아, 이 파리들이 어찌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 존재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마련해 파리들을 널리 불러 모으나니 너희들은 서로 기별하여 함께 와서 이 음식들을 먹어라.”


이에 다음과 같이 파리를 조문한다.


파리야, 날아와 이 음식 소반에 앉아라. 수북한 흰 쌀밥에 맛있는 국이 있단다. 술과 단술이 향기롭고, 국수와 만두도 마련하였다. 그대의 마른 목을 적시고 그대의 타는 속을 축여라.


파리야, 날아오너라. 훌쩍훌쩍 울지 마라. 네 부모와 처자를 함께 데려오너라. 이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먹어 보아라. 그대가 살던 옛집에는 잡초만 가득하다. 처마는 내려앉고 벽은 무너지고 문짝은 기울었다.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그대가 일하던 밭에는 가라지만 돋아 있다. 올해는 비가 많아 흙탕물이 흐르는데, 마을은 사람이 없어 황폐하게 버려졌구나.


파리야, 날아와 기름진 고기 위에 앉아라. 살진 소다리가 보기 좋게 구워져 있고, 초장에 파강회․생선회․농어회도 있단다.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환히 펴라. 도마 위엔 남은 고기 있으니 그대 무리들에게 먹여라. 그대의 시신은 이리저리 높이 쌓였는데, 옷도 없이 거적에 둘둘 말려 있다. 장맛비 내리고 날이 더워지자 시신은 모두 이물(異物)로 변한다. 구물구물 솟아나 어지러이 꿈틀대며 움직인다. 옆구리와 등줄기에 넘쳐나더니 콧구멍까지 가득 채운다. 그러고는 허물을 벗고 훌훌 날아가는구나.


길에는 시신만 있어 행인들이 무서워하는데, 아기는 죽은 어미의 가슴을 더듬으며 젖을 빨고 있다. 산에 무덤을 만들지 못해 마을에 시신이 뒹군다. 구덩이에 널브러져 잡초가 우거져 있다. 이리떼가 와서 좋아 날뛰며 뜯어먹는구나. 해골이 뒹구는데 구멍만 뻐끔하다. 그대는 이미 성충이 되어 날아가고 껍데기만 남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관아에 들어가지 마라. 관아에선 굶주려 여위고 해쓱한 사람을 엄격히 선발하는데, 서리가 붓을 잡고 자세히 살펴본다. 빽빽이 모인 중에 행여 한 번 뽑혀도 물처럼 멀건 죽을 겨우 한 번 얻어 마실 뿐이다. 게다가 묵은 쌀의 벌레들이 어지러이 아래위로 날아다닌다. 위세 부리는 아전들은 모두 돼지처럼 살쪘는데, 아무 공도 없건만 부화뇌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수령은 가상히 여겨 견책을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백성 구휼 그만두고 연회를 벌이는데, 북소리․피리 소리 울려 퍼진다. 아리따운 기생들은 교태를 머금고 빙빙 돌며 부채춤 추는구나. 그곳엔 음식이 풍성하게 있지만 그대가 먹을 수는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리들의 객사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가 우뚝우뚝 서 있고 창대도 늘어서 있다. 소고기국․도지고기국이 가득가득 먹음직하고, 메추리구이, 붕어찜, 오리탕, 기러기탕, 중배끼, 꿀떡에 문어오림도 흐드러졌다. 기분이 한껏 좋아 기생을 쓰다듬는데, 하인들이 큰 부채를 부쳐 대므로 그대는 그곳을 엿볼 수도 없단다. 호장은 부엌에 가서 요리를 살핀다. 숯불을 지펴 대며 왜(倭)쟁개비에 고기를 익히고, 수정과와 설탕물을 맛있다 칭찬한다.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무섭게 막아서서 배고파 호소하는 사람을 시끄럽다 물리치고, 객사에선 고요히 음식을 즐긴다. 아전들은 주막에 앉아 사람을 시켜 문서를 쓰게 해 역마를 통해 보고를 올린다. ‘백성들은 편안하며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어 태평무사’라고.


파리야, 날아오너라. 살아 돌아오지는 마라. 그대 지각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걸 축하하노니 그대 죽었어도 재앙은 형제에게까지 미친다. 6월이면 조세를 독촉하며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 사자의 포효처럼 산천을 흔든다. 가마솥도 빼앗아 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고 간다(92~93).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에 끌고 가 곤장을 치는데,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병에 걸려 죽어 간다. 백성들은 온통 눌리고 짓밟혀 괴로움과 원망이 너무도 많지만 천지 사방 어디라 호소할 데 없구나. 백성들 모두 다 죽어 가도 슬퍼할 수도 없구나. 어진 이는 움츠려 있고 소인배는 비방이나 일삼는다. 봉황은 입 다물고 까마귀만 우짖누나.


파리야, 날아서 북쪽으로 가거라. 북으로 천 리를 날아 궁궐로 가거라. 임금님께 그대의 충정을 하소연하고 깊은 슬픔 펼쳐 아뢰어라. 어려운 궁궐이라고 시비(是非)를 말 못하진 마라. 해와 달처럼 환히 백성의 사정 비추어서 어진 정치 펴 주십사 간곡히 아뢰어라. 번개처럼 우레처럼 임금님 위엄이 떨쳐지게 해 달라고 하여라. 그러면 곡식은 풍년이 들고 백성은 굶주리지 않으리라. 파리야, 그런 다음 남쪽으로 돌아오려무나.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도 읽으면서 수다도 떠는 생활공간이자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마을 문제를 고민하기도 하는 사랑방인 작은 도서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지방정부의 예산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등이 그런 좋은 변화의 사례들이다. 민주주의의 학교로 불리는 지방자치제도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다른 새로운 비전들도 많이 제안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전이 늘어나는 만큼 걱정도 늘어난다. 작은 도서관의 수가 많아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이어야 할까? 작은 도서관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1천 권의 서적은 어떻게 선정되어야 할까?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어떤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주민들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도서관이 책을 고르고 읽을 자유를 침범하지는 않을까? 도서관이 독서실로 변하지 않고 사랑방이자 생활공간의 역할을 다하려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할까? 도서관의 수가 늘어나면 마을이 질적인 변화를 겪을까? 조례가 제정되면 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레 해결될까? 도서관 조례와 작은 도서관 조례가 꼭 따로 제정되어야 할까? 관의 지원을 받더라도 민간도서관의 자율성을 훼손되지 않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주민참여예산제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위원회나 지역회의, 예산학교를 개최하는 건 쉬울 수 있다. 허나 주민들은 어떤 정보를 얼마나 주민의 눈높이에서 제공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 만큼 주민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실제로 위원으로 참여하려는 주민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관변단체에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주민들의 훈련은 되어 있나? 회의를 민주적으로 진행할 규칙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형식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실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장소, 어떤 시간대에 회의를 개최해야 더 많은 수의 주민이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홍보하고 알려야 더 많은 수의 주민, 더 많은 공무원이 주민참여예산제도에 관심을 가질까? 어떻게 하면 단체장 선거에 휘둘리지 않고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을까?


또한 작은도서관 지원조례, 친환경무상급식조례, 사회적기업육성지원조례 등이 주민참여예산조례와 따로 논의되어야 할까?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힘을 모아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구체적인 물음들에 답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면 그 뒷끝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물음들에 답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실제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할 일은 계속 늘어난다.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들을 볼수록 자기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생긴다. 그러다보면 어렵게 제도를 만들어도 정작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이, 실무를 맡을 사람이 부족하다. 지역 내에서 이런저런 명함을 여러 개 가진 ‘선수’들이 비전을 세우고 제도만 만든 뒤 할 일을 다했다고 손을 놓아버리면 사업은 허공에 붕 떠버린다. 주민을 내세우지만 정작 주민은 없고 사업만 남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제법 반복되어 왔다.


지방자치를 풀뿌리민주주의라 부르는 건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비전을 세우는 사람들의 수만 계속 늘어나고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집행하고 평가할 사람들의 수는 외려 줄어드는 듯하다.


다른 어떤 사업이나 제도, 조례보다 사람을 기르는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선수들의 방언이 아니라 민중의 언어로 비전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비전도 성공하고 변화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질러대는 사람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쫀쫀하게 따지고 챙기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소유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려면 다양한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욕구 외에도 미래의 필요를 대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자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 자원을 누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자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만일 지구라는 세계의 한정된 자원을 골고루 나눈다면 모든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지만 현재의 조건은 그렇지 않다. 어느 한쪽에선 자원이 남아돌고 심지어 썩는데, 다른 쪽에선 빈곤과 궁핍이 판을 친다. 이는 지구의 자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자원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예를 들어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를 보면, 한국에서 집을 가장 많이 가진 30명이 9,923채를 소유하고 있다. 고작 30명이 약 1만 명이 살 수 있는 집을 소유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 오래건만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전세나 월세 등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말해준다.


불사신이 아닌 인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니면 미래가 불안해서, 그도 아니라면 자식들을 위해서? 설령 그 이유가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런 ‘과잉’이 권리로 인정되고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법제도는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소유라는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법제도가 이렇게 개인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보호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소유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소유권의 역사는 지극히 근대적인 발명품이다. 특히 인권을 확립한 1789년의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소유권의 배타성을 확립했다는 점은 혁명의 복잡한 내막을 드러낸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가진 자들의 정원에서 꽃을 피웠다.


법제도가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보호한다면 자치와 자급을 지향하는 직접행동은 그 권리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여러 정치사상가들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내세워 사적 소유권을 보호해 왔기 때문에 직접행동은 소유권이라는 체제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소유와 소유권은 다르다



서구사회에서 자연질서는 인간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고 더구나 특정한 소수의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가난, 헌신을 강조한 성경이나 인(仁)과 의(義), 도(道)를 강조한 동양의 경전 어느 것에도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무제한으로 부를 축적해서 자기 것으로 삼으라고 권하는 얘기는 없다. 그 어떤 사회에도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쿵족의 삶에서도 그 점이 드러난다. 땅에 대한 권리는 공동의 권리이고 그 지역의 주민이 아닌 방문객들도 주인의 허락을 구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 “소유권이 배타적인 특권으로 변질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이는 실제로 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직․간접적으로 핵심 성원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 지역의 자원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기에 “!쿵족은 위계질서가 없고 추장 또는 수장(headman)같은 공인된 권력자도 없다. 집단의 결정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주로 사람들로부터 받는 사적인 존경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배타적인 소유권이 확립되는 것은 근대국가의 출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전의 역사가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론은 구체적인 역사보다 이론적인 논증에 바탕을 뒀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사상가 홉스(T. Hobbes)나 로크(J. Locke)가 ‘자연상태’라는 반(反)역사적인 가정에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체제의 정당성이 개인의 생명과 그만큼 소중한 사적 소유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자연상태에서의 불안정한 공유를 포기하고 장차 더 모을 개인의 소유를 확실하게 보호받으려면 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비록 홉스는 국익國益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소유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고 봤지만). 그 뒤 이런 논리는 정치법과 시민법을 구분하면서 정치적 자유와 소유권을 구분하고, 설령 국익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국가가 시민법의 지배를 받는 소유권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근대사회에서 ‘발명된’ 배타적인 소유권은 물리적인 힘을 독점하고 경찰과 군대로 자신을 보호하는 근대국가와 더불어 확산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다를까?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고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보상해야 한다는 고대의 법령이 배타적인 소유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대의 법률 하에서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권리가 무조건 보장되지도 않았고 그 권리가 자식들에게 무한정 상속되지도 않았다. 특히 땅이나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보통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개인은 자원을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속대전> 어디에도 배타적인 소유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땅에 대한 권리를 ‘입안(立案)’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그 권리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3년의 기한을 정해놓고 땅의 소유자라도 땅을 경작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넘기거나 실제 경작자에게 땅의 권리를 줬다. 즉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이었고, 지주가 아니더라도 경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권리를 빌려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경국대전>은 임야를 개인이 점유하면 볼기 80대에 처한다고 밝히며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개화기가 되기 전까지는 한반도에 배타적인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구를 추종하던 개화파들은 자본주의 제도와 그 소유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예를 들어, 유길준은 개인의 재산권이 국가의 보호대상이라고 보면서 ‘재산의 권리’가 인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봤다). 그리고 1901년에 설치된 지계아문(地契衙門)은 전국에서 토지조사를 실시해 토지소유권 문서를 발행했고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보호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했다(그러면서 중앙정부가 세금의 징수권을 독점했다). 그리고 경작자의 권리(中畓主權)를 부정하고 소유자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대지주들의 독점적인 소유권을 보장했다.


일본 총독부의 ‘토지조사령’(1912년)과 토지조사사업은 농민들의 점유경작권과 도지권(賭地權), 입회권(入會權)을 부정하고 지주의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확립하면서 실제로 토지를 점유하고 경작해온 농민들을 소작농민으로 만들었다. 배타적인 소유권은 식민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었다.


경작권을 가진 소농(小農)이 소작농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인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 소농들이 함께 일하며 마련해온 공유지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의 삶은 철저히 그 사람이나 가족의 가진 것에만 좌우되었다.



소유에서 공유로



프랑스의 사상가 프루동(P.J. Proudhon)은 “소유란 도둑질이다”라는 주장으로 부르주아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프루동은 서구의 자연법사상 어디에도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보면서 사회를 규율하는 원리인 권리가 사회성을 파괴하는 소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생산하지 않은 것을 무력이나 교활한 짓으로 빼앗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사회성을 파괴하는 자”이고 “그는 강도이다.”


그리고 프루동은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구분하면서 설령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한다 할지라도 생산수단의 소유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생산물에 대한 소유는 배타적이다. 요컨대 물 안에서의 권리jus in re이다. 반면에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공통적이다. 즉 물에 대한 권리jus ad rem이다.” 혼자 일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에서 생산수단은 평등하게 소유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생산활동에 따른 생산물도 공정하게 분배되리라 봤다.


프루동은 이런 자연적인 질서, 자연적인 사회성을 파괴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근대국가라고 봤다. 소유권과 공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프루동이 마련한 대안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상호주의와 인민은행, 연방국가였다. 노동자 각자가 자신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이 모두를 위해 서로 연대해서 일하는 조합(association)을 만드는 것, 그런 조합의 설립을 지원하고 민중들의 상호신용을 실현하는 인민은행,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끔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정치공동체를 운영하는 연방주의, 프루동이 꿈꾼 세상이었다.


19세기의 프루동보다 훨씬 빠른 16세기에 이미 비슷한 주장을 펼친 사람이 한반도에 등장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나오는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 정여립(鄭汝立)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정여립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선 사상을 펼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다.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당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왕의 권리마저 부정했다.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정여립은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외치며 “인민에 해 되는 임금은 죽여도 가하고, 인의가 부족한 지아비는 버려도 된다”고 주장했다. 정여립은 왕위세습이나 충군사상을 부정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했으니 그가 그 시대를 평화로이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여립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동계이다. 반상차별의 세상,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정여립은 사농공상의 직업적 차별이나 반상귀천, 남녀의 신분적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했다. 이율곡의 제자이기도 했던 정여립은 민중이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만드는 계조직에 주목하고 양반,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고루 계원으로 받아들이며 대동계를 호남 일대로 확산시켰다. 대동계는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했고, 1589년에는 전주부윤의 부탁을 받고 대동계가 왜구를 몰아내기도 했을 만큼 대동계의 힘은 강했다. 정여립이 실제로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꿈꾼 대동세상,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 세상의 꿈은 후세로 이어졌다.


정여립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은 소유를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란을 일으킨 농민들이나 스스로 조직된 의병들은 대지주나 부농에게 곡식이나 금전을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의병들은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나라를 위하여 진력하는 자이다. 고로 너희들은 나라를 위해 우(右) 물건을 빨리 제공하라”고 말하며 재물을 걷었고 협력하지 않는 지주들에게 강제로 재물을 뺏기도 했다. 활빈당같은 산적들도 부자의 돈과 곡식을 빼앗아 빈민에게 두루 나눠주며 낭비를 막고 자원을 나누려 했다.


배타적인 소유권이 확립된 일제 식민지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소유권의 벽을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다. 농민들은 배타적인 소유권을 확립하려는 식민권력에 맞서 소송을 벌이거나 소작쟁의를 일으켰고 때로는 공동경작단을 만들어 지주의 의사를 무시하고 논을 갈거나 모를 심으며 강제경작을 시도했다. 그리고 생산자협동조합, 상호금고 등을 만들어 공생의 기반을 마련하고 공동체의 힘으로 소유의 벽을 넘어서려 했다.


그리고 동학의 한 분파인 보천교는 자급자족의 종교공동체를 지향하면서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는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고 토지의 개인소유를 폐지하려 했다. 기독교계의 손정도는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설립하고 무산농민이 서로 도우면서 “생산의 자본력을 만들어 이상촌을 건설하자는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리고 YMCA의 농촌협동조합운동, 천도교의 공생조합(共生組合) 등은 공동노동, 공동경작의 흐름을 다시 만들며 농민들이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 했다.


이런 직접행동이 이루어지던 시대에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가 권리였다. 직접행동은 더불어 함께 살 공유를 민중의 권리로 요구했다.



소유권의 대안: 국유에서 공유(共有)와 공유(公有)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대표이념을 독점하면서 배타적인 소유권에 대한 대안도 국유화나 국가를 통한 관리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녕 국유화가 대안일 수 있을까?


고병권은 “공유(公有)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부정”이지만 “공유가 국유를 의미할 때, 즉 국가에 의한 배타적 독점을 의미할 때, 그 독점은 사적인 독점의 형태로 쉽게 전화될 수 있다. 국유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독점성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사적 소유권의 기반이라고 말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새만금간척사업이나 4대강사업처럼 국가권력이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처분하며 자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고병권은 이런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국가에 의한 사적 소유권의 발생이자, 소유권 없는 대중들에 대한 추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유권을 발생시킬 수 있는 힘은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가령 평택 대추리에서 이루어진 대중들의 추방은 소유권 박탈의 형식을 띠었다.” 한국처럼 식민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국가에서 국유는 위험한 논리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가 권력을 잡으면 국가의 성격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러시아혁명은 그런 변화를 일으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증명했다.


더구나 국유화는 민중과 그 공동체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유는 단순히 소유를 나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공유는 그 공유를 관리할 모임을 필요로 하고 그 모임은 구성원들에게 민주주의를 학습하며 세계관을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두레는 공동노동조직이자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다루는 의사결정기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권리를 확장시킬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대한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共有)와 공적인 소유(公有)를 지향해야 한다.


공동의 소유 면에서 노동자의 작업장 소유와 관리, 협동조합과 공유지의 확대, 작업장과 공동체 위원회들의 네트워크같은 민중의 자주관리, 직접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협동노동하고 공동관리하는 일터와 삶터를 확대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식의 공유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 지적소유권이라고 하면 음악이나 영화같은 저작물의 권리만 생각하지만 종자와 유전자,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지적소유권의 대상이다. 최근 초국적자본들이 혈안을 들이는 영역도 바로 이런 지적소유권 부분이다. 왜냐하면 지적소유권들이 결국에는 먹고 사는 문제를, 몸과 생명의 문제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소유 면에서 보면 단순히 민영화에 도전할 뿐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자산을 다시 민중이 관리해야 한다. 2009년 기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공유재산이 약 229조원을 넘어섰고, 중앙정부의 국유재산도 약 337조원에 달한다. 이 재산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낭비되어온, 정확히는 기득권층이 나눠온 이런 재산을 통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를 통해 보호받고 확대될 수 있다.



● 참고한 책


고병권 지음, 『추방과 탈주』(그린비, 2009)

김동노 지음, 『근대와 식민의 서곡』(창비, 2009).

류은숙 지음,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니사: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삼인, 2008)

조경달 지음, 허영란 옮김, 『민중과 유토피아』(역사비평사, 2009)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음, 이용재 옮김, 『소유란 무엇인가』(아카넷, 2003)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모반의 역사』(세종서적, 2001)


인권운동 사랑방의 래군이형이 인권재단 사람 소속으로 메일을 보냈다.
'가을의 신부,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 콘서트를 홍보하는 메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에 들리면 좋겠다.
솔랑이를 잠깐 맡기고 콘서트에 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 감기에 걸리셔서(요즘 우리집의 웃어른이다.헐) 좀 봐야 하겠지만...
집에 갇힌 우리 각시 콧구멍에 서울바람도 한번 넣어줘야 할 것 같고...
안 되면 내가 집에서 애를 봐야지 뭐...ㅠㅠ

-----------------------
안녕하십니까?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입니다. 물론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연말까지 사랑방을 쉬고 재단 일에 집중하고 있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이렇게 메일을 씁니다. 예전에는 종종 스팸메일을 보내곤 했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일은,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문정현 신부님 헌정 공연이 다음 주로 다가와서 입니다.

 

‘가을의 신부, 길 위의 신부’

인권재단 사람에서 이번 공연을 준비한 이유는 인권센터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재단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주셨던 신부님의 동의를 받아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인권센터를 추진하는 배경은 보도자료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권단체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다보니까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활동가들이 쉽게 모여서 소통하고, 일을 도모하는 자리, 시민들이 찾아와서 인권상담도 하고 인권교육도 받고, 자신들의 모임도 꾸리고 할 수 있는 자리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일을 저질렀습니다.

한국에서 인권운동 40년이 넘었음에도 이런 공간 하나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겠지요.

서울에서부터 만들고, 지역마다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는 중심이 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인권운동에 절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권센터를 시민의 힘으로!

그래서 우리 재단의 사무실 하나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그런 센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누구 유명한 사람들이 제안하고, 발기하고, 참여해서가 아니라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그런 인권센터 운동이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제안하겠지만, 인권활동가들부터, 지역의 이런저런 모임들로부터, 인권세상을 염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인권센터의 주춧돌을 놓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십시일반으로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그런 인권센터였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에 많이 와 주시길…

이런 인권센터를 만드는 첫 작업을 알리는 일이 이번 공연입니다.

그런데 공연 날이 가까워지니 걱정이 앞섭니다.

사람들은 많이 올까, 후불제의 취지를 사람들이 잘 이해할까(돈 걱정)도 걱정이지만

우리의 공연이 신부님께 도리어 누가 되지는 않을지가 가장 큰 걱정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주위에 이 공연에 참여하자고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각 단체들에서는 홈페이지에 배너부터 달아주고, 사무실에 포스터도 달고, 회원들에게 웹자보로 홍보도 하고 해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인권단체의 활동가와 회원들이 북적되는

그런 공연이기를 바랍니다.

저희 공연 관련 카페(http://cafe.daum.net/hrfund)가 있으니 거기서 배너도 퍼 나르고, 관련한 기사도 퍼 날라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공연이 성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공연장에서 만나겠습니다.

 

- 2010. 10. 26.(안중근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했던 날)

박래군 드림

인류 역사에서 권력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사회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간혹 불평등한 사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지만 그런 시도들은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층은 덩굴처럼 얽혀 서로의 뒤를 봐주면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나 상식조차 무시하고 있다. 절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기득권층은 거의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기득권을 독점하고 강화해 왔다. 간혹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벌거벗음을 폭로하거나 당나귀 귀라는 소문을 퍼뜨려도 기득권층은 압도적인 힘으로 그 사실을 은폐해 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사실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이럴 수 있냐는 분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와 뒤섞인다. 그리고 한 명에 대한 분노는 곧 또 다른 이에 대한 분노에 밀려나고, 해결 없는 분노가 길어지면서 분노는 어쩔 수 없다는 냉소로 변질된다.



깃털과 몸통



우리 사회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몸통 찾기에 바쁘다. 기득권층을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메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세력들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사건이란 게 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건은 그런 관계가 폭로된 상황을 뜻한다. 사건이 터졌으니 부패의 고리가 끊어져야 할 텐데, 우리사회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진실이 더욱더 은폐된다. 깃털이 몸통을 흔들고 거짓이 진실을 감춘다.


사실 깃털과 몸통을 나누는 생각 자체가 우리의 병든 현실을 반영한다. 한 사회에 살지만 그들과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영화 <공공의 적2>에서 검사 강철중(설경구 役)이 상대하는 한상우(정준호 役)는 대표적인 기득권층이다. 어릴 적부터 든든한 집안을 배경 삼아 승승장구해온 상우는 돈세탁, 협박, 뇌물, 살인을 일삼으며 5천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미국으로 빼돌리려 한다. 자신을 잡으려는 철중에게 상우는 이렇게 얘기한다. “태생이 천한 것들이 좀 괜찮은 자리에 오르면 착각을 해. 자기들이 뭔가 대단한 걸 이룬 것처럼. 그래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들 머리 위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니들은 니들끼리 살란 말이야. 버러지같은 인생들끼리.”


영화는 강철중이 한상우를 구속시키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강철중처럼 “법이 뭔데요? 법, 그거 최소한입니다. 사람들끼리 살면서 정말 지켜야할 최소한인데, 그것도 안 지키는 진짜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못하면서 법같은 거 없이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 억울하게 만들면요. 다시 못 돌아와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검사는 없다. 외려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벌가의 비리는 번번이 무죄판결을 받고 설령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금방 집행유예나 특별사면을 받는다.



근대의 법․제도와 기득권



21세기를 맞이해 독특한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세기말>은 20세기말 한국사회의 풍경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천(이호재 役)은 이렇게 말한다. “돈 있는 이들이, 이대로, 왜 제발 이대로 하면서 건배하는 줄 아나. 참말로 이대로가 좋은 기라. 대한민국, 망해도 안 되고 더 잘 되도 안 되는 기라. 선진국, 그거 절대 사절이야. 선진국하고 후진국 결정적인 차이가 뭔 줄 아나. 투명과세라. 많이 번 놈 많이 내고 쪼매 번 놈 쪼매 내고. 가진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그거 아이가. 내 돈 넘 주는 거. 내하고 룸살롱 같이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간 아가 있는데, 마, 학을 떼는 기라. 얼매나 세금을 때려 맞는지, 빨갱이 나라가 따로 없다 캐. 여서 얼매 안 냈거든. 그라이 여가 천국이제.”


모두가 약간의 불안감과 흥분을 느끼며 맞이했던 21세기에도 한국의 기득권층은 철저한 현상유지를 바랬다. 일제 식민지 시기와 군사독재를 거쳐 완성된 우리의 근대적인 법․제도는 기득권층을 처벌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입법, 행정, 사법 거의 모든 제도가 철저히 기득권층을 보호해 왔다. 아직까지도 친일파의 재산을 환수하는 문제가 뉴스거리가 될 만큼 우리의 근대법과 제도는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가로막아 왔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일단 한번 만들어진 권력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기득권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법과 제도의 잘못된 적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 자체가 문제이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부패한 수령을 쫓아내거나 필요하다면 부잣집 곳간을 열기도 했는데, 근대의 법과 제도는 이런 해결책을 금지했다. 사유화된 공권력이 힘을 독점했고, 자력구제는 범죄가 되었다. 우리는 옛날보다 더 합리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야만적인 사회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합리의 가면을 쓴 야만적인 사회에서 기득권층을 무너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야만적인 억압의 형식은 조금씩 세련되게 변해 왔다. 과거에는 국가의 폭력이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짓밟았다면, 지금은 돈의 폭력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라리 노역을 살고 나오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에게 갖가지 벌금형이 내려지고 있다. 파업을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손해배상압력이 노동조합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니 기득권층에게 ‘법대로 하자’는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법치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하나의 공동체와 두 개의 세계



더구나 기득권층은 자기 입맛대로 법과 제도를 바꾸며 비밀리에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특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판 음서제도 논란이 벌어졌다. 한 사람의 문제인 줄 알았더니 제도 자체의 문제이다. 힘없는 이들이 신분상승을 꿈꾸는 3대 고시(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모두가 기득권층을 특별대우하거나 그들에게 유리하다. 지난 10년간 신규채용 공무원 중 약 23%가 특채로 선발되었고, 로스쿨의 한 해 등록금은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에 이르며, 외교관이나 고위 공무원의 자식들은 대학입학부터 인턴, 취직까지 온갖 특혜를 누려 왔다. 정부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기업에 취직할 때도 임원이나 사장단의 아이들, 고위 공무원의 아이들은 따로 관리된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기득권층을 위한 제도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두 개의 분리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기득권층의 세계는 우리 세계를 착취하고 약탈해서 유지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그 세계의 비밀이 간혹 공개되기도 한다. 이번에 외교통상부 특채과정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적한 사람은 홍정욱 국회의원이다. 한때 『7막 7장』이라는 성공담을 팔아 유명해지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가, 지금의 조건만 보면 너끈히 상류층에 속할 그가 왜 다른 세계의 비밀을 폭로했을까? 어찌 보면 그의 ‘태생’ 탓일지도 모른다. 그는 성공한 인물이지만 이쪽 세계에 속한 인물이기에.


하지만 이런 폭로로 그들의 세계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규칙을 정하는 건 여전히 기득권층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상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황새와 여우



물론 그동안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니다. 고인 물이 썩듯이 기득권층의 헛발질이 줄을 잇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우리 세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세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우기는 시기에 이뤄놓은 상식적인 업적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선진화를 내세우기 위해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기준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그들의 발등을 찍고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황새와 여우처럼 기득권층은 자기 꾀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인사청문회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하거나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를 하면 안 된다는 ‘우리 세계’의 상식이 다른 세계에 사는 기득권층에게는 불공정한 억지논리이다. 땅을 사랑해서 많이 사놓는 것은, 학계의 관행을 따라 표절하는 것은, 능력껏 군대를 면제받고 이중국적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 지위를 증명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하다. 지금처럼 따로 살면 될 텐데,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자니 미칠 노릇이다.


이처럼 선진국, 선진화가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기득권층은 ‘한국형’을 그토록 강조한다. 그들 세계의 상식을 한국이라는 상황으로 포장해서 유지하려 든다. 그리고 우리 세계의 간섭을 귀찮아 할 뿐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여차하면 이 공동체를 떠나겠다며 우리를 협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힘이 우리 세계의 피와 땀임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런 천국을 버리고 빨갱이 나라인 미국이나 유럽으로 떠날 수는 없기에 그들의 속내는 불안하다. 우리 세계로부터 그들의 세계를 보호해온 법과 제도가 무너질까봐 그들은 두렵다.



괴물의 등장과 기득권층의 불안



특히 기득권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합리적인 제도나 폭력적인 저항이 아니라 괴물이다. 아직까지도 기득권층이 가진 힘은 폭력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때로는 용산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반(反)테러라는 극단적인 논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괴물은 기득권층의 힘으로도 막기 어렵다. 영화 <괴물>에서 드러났듯이, 그리고 미네르바 사건과 촛불집회에서 드러났듯이, 기존의 권력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시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지는지 그 원인이나 과정을 알 수 없는 괴물을 처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괴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런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한다. 그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회질서에서 벗어난 일탈자나 사이코, 쓰레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괴물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불안하다. 그들 세계만의 상식과 힘이 괴물의 탄생을 자극한다는 점을 알지만 분리된 세계를 통합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는 기득권층에 도전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한다. 각시탈을 쓴 이강토가 되든, 미래소년 코난이 되든,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가 되든. 그들의 불안이 우리에게는 기회이다.

프레시안에 보낸 글인데, 제목이 바뀌었다.

가급적 예의를 지키려 한 글인데 제목이 바뀌어 좀 그렇게 되어 버렸다.

 

---------------------------------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불편했다기보다는 내용을 다루는 방식과 문체 때문이었다. 문체를 누누이 강조해온 분이 이런 좋은 얘기를 왜 이런 문체로 썼을까?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은 이후 고미숙 선생의 책을 읽을 때면 비슷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우린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하면 될 것을, 너네는 왜 우리처럼 못 사니라고 쪼아대니 불편할 수밖에.


그래서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다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읽지 않았을 책을 굳이 읽고 서평을 쓰는 오지랖은 불편함을 전하고 다음번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수다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서평을 부탁받기 전에 알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과 함께 책을 읽는데, 그 모임에서 고미숙 선생의 『호모 에로스』를 읽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에로스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감상문을 썼다. 책의 제목은 에로스인데 몸이나 에로스에 관한 구체적인 실화는 없고(심지어 원나잇스탠드에 대한 적개심이 드러나고!) 난데없이 세미나 얘기가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지붕뚫고 하이킥2>의 ‘애교를 글로 배웠습니다’ 편이 생각났다, 이런 감상문이었다. 그런데 출판사가 이 글에 새 책이 나왔다는 트랙백을 걸어 놨다(불편한 글에도 트랙백을 거는 출판사의 센스?).


사실 『호모 코뮤니타스』도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다(이게 나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호모 코뮤니타스』의 구성은 『호모 에로스』와 비슷했다. 요즘 세태에 대한 적당한 비판(주변 사람들에게 적절히 모은 정보들), 돈을 잘 벌고 쓰는 노하우, 돈에 대한 상상력, 에필로그이다. 두 책의 다른 점은 고미숙 선생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한 세 사람의 글이 함께 들어가 있다는 점 정도? 구성이 책의 내용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리고 시리즈라서 구성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 구성상 현실에 대한 재기발랄한(?) 비판이 달인의 노하우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


모두가 부유한 삶이라는 헛된 꿈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야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이 책은 그 대안으로 학교에 다니지 말고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젊었을 때 사서 고생하라고,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과 더부살이하며 공동체를 꾸리라고 충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좋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 얘기들은 몇 권의 책을 읽는 세미나 시간에 나눴던 수다를 책으로 옮긴 듯하다. 물론 그런 수다의 내용이 소중하지만 그런 수다가 책으로 나오려면 적어도 몇몇 사람들의 “개별적이고 일상적 차원의 윤리나 실천”만이 아니라 “경제구조나 정책적 사안”도 담아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요즘 부모들이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명분 가운데 하나가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자식들이 기죽지 않고 살려면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명목하에서”라는 현실진단이나 “이게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아주 평균적인 행보다. 이 행보가 주욱 이어지다 보면 ‘쇼핑족들의 헤븐’이라는 홍콩까지 드나들게 된단다”라는 진단은 좀 당황스럽다. 수다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진단을 현실감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몇 사람의 수다가 아니라 사회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면 조금 더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밑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 대안을 자유로이 선택하며 누릴 수 있는 사람들보다 대안에 냉소하고 때론 대안을 증오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책의 좋은 얘기들은 불가능한 것의 상상이 아니라 가능한 사람들의 여유로 그치지 쉽다.


예를 들어, 책은 가족과 분리된 삶을 찬양하지만 사실 그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이다. 마치 몇몇 대안학교들이 ‘자기 아이들’을 공부도 잘 하고 놀기도 잘 놀고 예술적인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욕망을 반영하듯이. 하지만 가족을 거북이등껍질처럼 이고 살아 온 사람들에겐 “부모의 가난은 자식한테는 차라리 축복”이라는 말처럼 불편한 말도 없다.


격월간 잡지 《민들레》 69호에서 현병호 선생은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에 대한 불편함을 털어놓았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을 만든 사람은 아마도 지독한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리라. 가난은 불편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아침에 배달되는 도시락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독거노인이나, 아이를 키우면서 끼니 걱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저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게다. 친구들 눈치를 보면서 무료 급식을 받아야 점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도 가난은 불편을 넘어서 자존감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것이다.” 책을 읽으며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다.



우리들의 탐욕 아니면 청승, 그들의 공동체?



책을 읽으며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강연료 얘기를 할 때이다. 자신의 얘기를 듣고자 청한 단체에게 강연료 얘기를 꺼내고 정신노동의 화폐가치를 얘기하며 “풋, 더 어이없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게 우연한 만남의 기회와 장을 마련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책 곳곳에서 비노바 바베나 마하트마 간디의 얘기를 칭송하니 어리둥절하다. 바베나 간디도 자신의 얘기를 듣고자 청한 단체에게 그렇게 반응했을까?


이런 불일치가 실수로 느껴지지 않는 건 마쓰모토 하지메의 행동을 “화폐에 대한 통쾌한 복수”라고 얘기하면서 <수유+너머>가 보증금 1억에 월세 천만 원을 내며 돈이 “흘러오는 만큼 다시 흘러가게” 하는 단체라고 자랑(?)할 때이다. 허나 일본에서 곧 헐릴 건물을 수리해서 활용하는 ‘아마추어의 반란’과 비교한다면 <수유+너머>는 이미 가난뱅이와 무관하다(오히려 서울 해방촌의 ‘빈집’이 하지메와 더 가깝다). 책을 읽다 문득 개그 콘서트의 행복전도사가 생각났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하잖아요. 이 정도도 못하면 그건 공동체가 아니잖아요, 그냥 청승이지.” 옛날 살던 옥탑방에서 길 건너편 래미안 아파트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한겨울에 수도파이프 얼어 터질까 걱정하며 주방창문 열고 담배 한 대 피는데, 저쪽에서는 반팔 입은 사람들이 거실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책에서 고미숙 선생이 예로 드는 대안은 좋은 세상이지만 <수유+너머>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만의 세상이다. 그 공동체 밖의 세상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고 가끔 있더라도 언론에서 다뤄지는 기사처럼 매우 추상적이고 현실감이 떨어진다(참고로 얘기하자면 한국에 분당시는 없고 <문탁네트워크>는 용인시 수지구에 있다). 자기 공동체의 단단함과 이런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밖의 세계를 접하지 않고 자기 세계의 원리가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수유+너머>가 쪼개져서 전국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다지만 그 공동체는 여전히 자기만의 원리로 움직이는 공동체이다(<수유+너머>라는 이름을 내건 단체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는 게 인문학적으로 긍정적인지도 잘 모르겠다).


나 역시 공동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가급적이면 말을 가려서 쓰는데, 그 이유는 공동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기만족감 때문이다.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즐기는 건 그들의 자유이다. 허나 그런 공동체가 대안공동체를 자처하며 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면 좀 불편해진다. 화폐 없이 생활하는 공동체들이 많아지는 건 분명 우리사회의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니 우리의 방식을 따르라고 말하는 건 오만이다.


이 세상에는 몰라서 못 사는 사람보다 알아도 못 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생각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디딤돌이 아니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디딤돌이 될 때 운동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공동체는 공간 내에서의 차이와 증여보다 공간 밖과의 강한 충돌을 겪으며 조금씩 확장될 것이다. 독자로서 나는 그런 충돌에 관한 얘기가,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얘기보다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사람들의 얘기가 더 궁금하다.


돌아가신 장일순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도둑을 만나면 도둑이 돼서 얘기를 나눠야 해요. 도둑은 절대 샌님 말은 안 들어요.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도둑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말문을 열기 시작한단 이 말이에요. 그때 도둑질을 하려면 없는 사람 것 한두 푼 훔치려 하지 말고 있는 사람 것을 털고 그것도 없는 사람과 나눠 쓰면 좋지 않겠냐고 하면 알아들어요. 부처님은 마흔네 개의 얼굴을 갖고 계시다는 말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거지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 이 말이에요.”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 두 분을 뵈면 정말 신부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부복보다 평상복 차림일 때가 훨씬 더 많은 신부님이고 성당보다 거리나 집회에서 더 자주 뵐 수 있는 신부님이지만 그 어느 종교인들보다 더 많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생명, 평화라는 말은 두 분의 모습에서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생생한 활동으로 꽃을 피우지요.
그런 두 분이 형제라는 사실이 한편으로 놀랍고 다른 한편으론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 문정현 신부님이 콘서트를 여십니다.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러 용산에서 생활하실 때 잠깐 짬을 내서 뵌 적이 있었는데(저랑 같이 사는 사람의 덕입니다),
그때 잠깐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되던 콘서트가 11월달의 공연으로 잡혔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정말 아름다운 사진이죠).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열립니다.
매일 다른 테마로 진행되고, 입장료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감동을 받은 만큼 성금으로 내라니 이 역시 신부님의 콘서트다운 생각입니다.
기회가 되면 콘서트에 들려 신부님의 얘기도 듣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성금도 팍팍 내시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