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사건사고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북풍',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라는 '노풍', 4대강'전쟁'(사업이라 부르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크더군요) 등이 시민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지요.

그리고 반MB라는 구도로 짜지는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연합으로 당선되는 건 더 어려운 듯하고, 당선되고 나면 당선자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듯합니다.
유권자연대라는 단체들이 선거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선거도 그다지 흥미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네요(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창림, 서형원, 김혜련, 오관영 등등의 선수들께는 죄송...^^;;).
그래도 흥미로운 기운은 꼬물꼬물 싹트고 있는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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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하변이 만드는 새로운 블로그(www.ivoice.or.kr)도 이런 목소리를 많이 담으시겠죠?^^

저는 요즘 선거 이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 조짐이 좋지 않아서 미리 희망스런 일들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그런 일들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한양대 연구소도 그만뒀습니다(이거, 왠지 형제가 자퇴분위기인데요...ㅎㅎ).
7월에 아이가 태어나긴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분유값 떨어지면 도와주실 거죠? 아니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라도 열심히 팔아주셔야 합니다. 책 받으신 분들은 반드시 서평쓰기...ㅎㅎ)

'지식협동조합'의 뒤를 잇는 '대안대학'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꾸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공간을 공유하고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면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여기 들리는 분들도 나중에 아이가 크면 걱정이 되시겠죠. 우리 아이가 제2,제3의 김예슬이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말짱도루묵인 대학교육을 받는 아이러니를 피하려면 많이 도와주셔요.
좋은 아이디어도 주시구요.

다들 선거 때문에 바쁘실테니 선거 이후에 한번씩 찾아뵙지요.
그럼... 
 

민주주의는 생활방식이자 삶의 과정이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도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민주적으로 살지는 못한다. 민중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는 스스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있을 때에만 빛을 발한다. 따라서 민주시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최근 한국사회의 중요한 화두도 민주주의이다. 선거로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을 뽑는 한국에서 새삼 민주주의가 화두로 되는 건 민주시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회가 민주시민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자연스레 민주시민으로 성장해야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데,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는 그런 성장이 어렵다. OECD 가입국가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지만 가장 불행하고 자살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무관심과 냉소가 생기기 쉽다. 대다수의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4대강 사업을 찬성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에서는 민중의 지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라는 부제를 단 손석춘의 책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우리교육, 2010)도 그런 목소리 중 하나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묻는다. “대다수 한국인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권자가 된 어느 날부터 투표를 하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누군가에게 꼭 뒤눌려 살아가며 삶을 마감합니다. 씁쓸하게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 그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일까요.”


청년들이 스펙을 쌓느라 정신을 놓아버린 시대에 지은이는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주권자로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자기계발의 ‘제1과 제1장’이 왜 ‘민주주의 학습’인지, 민주주의의 빛깔을 묻는 게 왜 우리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직결되는지를 밝”히려 한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기에 지은이는 “민주주의를 자유와 평등, 또는 법치라는 고답적이고 식상한 틀로 분석하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난해한 이론을 다루지도 않”겠다고 얘기한다.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는 “민주주의란 우리 개개인의 인생과 직결된 ‘삶의 문제’라는 데서 출발”하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생생한 보기를 들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풀어”가겠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지은이는 먹고 사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민주주의가 중요한 이유, 대화나 타협보다 싸움과 갈등이 필요한 이유 등을 얘기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정치의식이나 주권의식이 저절로 생기지 않기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과 현상에 관해 공부하며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7가지 습관을 익히자고 제안한다.


“1. 민주주의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진실에 눈떠라.

2. 사람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세력과는 싸워라.

3. 신문-방송의 틀을 벗어나 대화하고 토론하라.

4. 직업 정치인이 정치를 독점하도록 방관하지 말라.

5. 생계 차원을 넘어 창조적 경제생활을 하라.

6. 단 한 번인 자신의 인생을 주권자로 살아가라.

7.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하고 연대하라.”

손석춘의 말처럼 몸에 익은 습관이 될 때에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얘기이긴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쉬움도 많이 느끼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독자에 대한 고려가 아쉽다. 정말 불안한 청춘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면 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소재로 삼아야 할 텐데 그런 소재들을 보기 어렵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프랑스혁명, 동학농민혁명, 4월혁명, 80년 5월의 광주항쟁, 촛불항쟁 등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주옥같은 사건들이 다뤄지는 건 좋다. 하지만 그 사건과 지금 현실을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건들은 청춘들에겐 ‘그냥 역사’일 뿐이다.


손석춘은 “민주주의를 굳이 자기계발의 맥락에서 제안하는 이유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 아는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밋밋하게” 느낀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정말 다 아는 이야기일까? 현실을 사는 청년들은 밋밋해서가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니기에 민주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김순천의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녁, 2009)에서 학교를 떠난 한 소녀는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단다. “아저씨는 커서 된 게 그거예요?” 왜 이렇게 물을까? “할 말 없잖아요. 그쪽은 다 큰 거고, 우리는 크는 중이니까. 우리는 아직 꿈도 있고 나이도 어리잖아요. 아무리 눈에 안 좋게 보여도, 저희도 사람이니까 의견을 존중해줬으면 해요.”


그러니 진짜 문제는 청년들의 밋밋함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을 학교 밖, 사회 밖으로 내몰고 냉대하는 기성세대의 관점이다. 청소년들이 민주적으로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극히 성인 중심, 기성사회 중심이기 때문에 미래의 민주주의는 불안하다.


2010년 3월 10일, 대학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김예슬의 『김예슬선언』(느린걸음, 2010)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비민주적인 체제를 떠받쳐 왔다고 고백하면서 김예슬은 그 체제에서 벗어나 거부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반면에 기성세대는 이 선언에 묵묵부답이다. 그러니 자신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는 기성세대야말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김예슬의 얘기를 들어보라. “대학거부 선언 이후 많은 중고생, 대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지금 대학 1학년생들은 고교시절 촛불집회를 경험한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이 공통으로 호소했던 말이 있다. “명박산성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부모산성 뛰어넘기’에요.”


김예슬이 특별한 사람일 수 있지만 많은 대학생들의 자기고백이나 공감이 뒤를 잇는 걸 보면 이미 청춘들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보다는 지금 그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혁명가’를 원한다. 새로운 혁명가들이 계속 탄생하려면 그들에게 책을 안겨줄 게 아니라 혁명에 쓸 무기를 줘야 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치솟는 전세값이 마음을 꺼멓게 태우고, 정리해고와 실업이 남의 회사 얘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야근과 잔업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데도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돈은 술술 어딘가로 샌다. 쓰린 속을 달래며 일을 하려니 이제는 몸도 슬슬 이상을 보이는 듯하다. 좀 쉬고 싶어도 직장에서 짤리지 않으려면 외국어나 최신 프로그램을 익히며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심지어 몸매나 유머감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열심히 사는 데도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질까?

나만 힘든 거라면 그럭저럭 참겠는데 우리 아이들의 삶도 행복하지 않다. 갓난쟁이들에게는 아토피가 끊이지 않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터진다. 학원을 보내고 싶지 않아도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 갈 곳이 마땅치 않고, 사실 집 밖만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맘 같아선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느니,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느니, 불길한 말만 들리고, 왕따에, 사이코 패스에, 세상은 미처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생활자들은 이런 많은 고민들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감당해 왔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많은 돈과 노력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의 생활능력은 세계 최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면,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 살이 훈장처럼 박히도록 일하며 역경을 기회로 만들어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갔나? 그동안 간, 쓸개 다 빼주며 뼈빠지게 일한 결과는 무엇인가? 또 하나의 가족, 무슨 가족을 떠들던 기업들은 조금만 적자가 나면 가족들을 쳐내기에 바쁘고,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정작 그 기적을 일궈온 시민들은 죽 쒀서 개주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원래 다 그런 거다, 내가 뭘 어쩌겠냐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


생활에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시민들의 근성이 이상하게 정치로 가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헝그리정신, 악바리근성이 정치 쪽으로만 가면 냉소와 허무주의로 바뀐다. 술자리에서는 정치인, 전문가 못지않게 열변을 토해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착한 양이 되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산다.


물론 도시생활자들이 몰라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서는 정보가 넘쳐 난다. 많은 정치인들은 진보/보수나 좌/우, 자신의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그런 정보들에 익숙하기에 자신을 세련되고 똑똑한 시민이라 여기지만 각종 정보에만 밝을 뿐 자기 자신의 정치관을 고민해본 적이 없다. 매일마다 스캔들과 부패사건이 터지니 마치 쇼핑을 즐기듯 품평회를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에 관해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러니 “못살겠다 바꿔보자”라는 외침에 바로 따라붙는 건 “갈아봤자,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냉소이다.


루쒼(魯迅)의 『아Q정전』을 보면 아Q의 정신승리법이 나온다. 건달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아Q는 잠시 서 있다 이렇게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맞은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아Q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것을 늘 뒤에 가서 떠들어대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렸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이 같은 정신적인 승리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기 비하의 제1인자라고 여겼다. ‘자기 비하’란 말만 빼면 어쨌든 ‘제1인자’가 된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Q를 닮은 건 아닐까? 정치인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들에게 당한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우리는 생각했던 것을 늘 정치인들 뒤에서 떠들고 앞에 가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한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얘기를 학교에서 배우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법 앞에만 서면 움츠려든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순종적인 민주시민이라고 여긴다. ‘순종적인’이란 말만 빼면 어쨌든 민주시민이니까.


다른 정치는 불가능할까?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보면 아주 훌륭한 도시생활자가 나온다. 우에하라는 남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개(展開)해봐”라며 상대방에게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면 우에하라는 국가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 지금 우리에겐 우에하라와 같은 배짱이 있을까?


지나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더 많이 일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행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이나 준법정신, 근면함과 성실함이 아니라 바로 정치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개인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행복의 조건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집값이나 전세값만 좀 내려가도 살기가 훨씬 편할 텐데 지금까지 우리는 널뛰기하는 그 값을 치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 값이 정확한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셈만 정확하게 해도 삶이 한층 행복해질 텐데 그런 행복을 뒤로 미룬 채 “내 탓이오”만 외쳐 왔다.


전세값만이 아니다. 건강을 챙기는 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알고 있지만 건강 역시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불평등’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정규직 노동자보다 좋지 않다. 아무리 건강해지고 싶어도 먹는 게 부실하고 일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리고 사는 곳이 쾌적하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니 애써 고통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 이래도 건강이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적인 문제이니 건강 문제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정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고, 건강보험이나 의료시스템을 정하는 의료보건정책을 만드는 것도 정치에 속한다. 마을에 복지관, 도서관 등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 아이들의 아토피도 따지고 보면 도시의 생활환경과 연관되어 있으니 정치가 잘 이뤄진다면 아이가 몸을 박박 긁으며 힘들어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볼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가 고통스럽고 아픈 건 정치가 제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정치의 역할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보육이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떤 교육을 받는지는 모든 부모의 관심사이다. 이런 관심사를 개인적으로 풀려고 하니 우리 아이 잘 봐달라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촌지를 쥐어주며 부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런 관심을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푼다면 어떻게 될까? 보육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돌아가는 실상을 파악하고 아이들이나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면 어떨까?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문제인데도 나 혼자서 풀려고 하니 돈도 많이 들고 결과도 좋지 않다.

 

세상사는 게 원래 다 그렇지라며 담배를 꺼내 물거나 내 탓이라 자책하지 말고 정치에 관심을 좀 쏟자. 교육정책이 바뀌면 아이들의 삶도 달라질 수 있고 나도 더 이상 아이들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 노동관계법이나 보건의료관계법이 바뀌면 건강하게 삶의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주택법과 도시개발관련 법률을 바꾸면 2년마다 이사 걱정에 마음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된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두고 혼자서 먼 길을 돌아가니 지치고 힘이 든다.


귀찮게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내 아이들, 아이의 아이들, 대대손손 그렇게 선택받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태계 위기, 에너지 위기, 사회안전망의 위기 등 크고 심각한 위기들을 혼자 힘으로 쉽사리 헤쳐갈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런 요구들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여러 엔지오들의 노력으로 성별이나 장애, 연령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니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면 내게는 그것을 바로 잡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허나 제 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그걸 실제로 써먹는 사람이 없으면 법은 도루묵이 된다. 계속 요구하고 일을 바로잡아야 법이 제 역할을 한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이 나라가 조금 더 정의롭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내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자.


베란다에 플라스틱 화분을 놓고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다. 바짝 말라버린 씨앗이지만 바람을 쐬이고 물을 줬더니 몇일 만에 푸른 싹을 틔웠다. 삭막한 아파트 베란다 플라스틱에서 생명이 자라난다. 생명의 힘은 이리도 질기고 강하다. 미리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내 속에 잠재된 정치의 싹을 틔워보자.


이 책은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첫 작품이다. 우리 각시는 내가 부러워하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 내 글에 맞추느라 그 솜씨를 살리지 못했다. 다음번엔 내가 우리 각시의 솜씨를 따라가면 좋겠다.


그리고 7월이면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난다. 솔랑이가 태어날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우리 부부에게도 중요한 과정이다. 함께 하면 좋겠다.


2010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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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시와 함께 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 드디어 나왔다.
냉소하지 않고 희망을 품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술들을 한 권에 담았다.
소위 무림의 고수들만 아는 비법들을 평범한 시민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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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들어가는 글


I. 정치란 무엇일까?

1. 짜증나는 정치, 바꿀 수 없을까?

        정치가 사라지면 살기가 편할까?

        기업이 정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

        정치 참여가 양극화를 막는다

        정치 참여가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II. 선거와 참여제도 활용하기

1. 선거를 제대로 치러볼까?

        선거 때 누구를 찍어야 할까?

        투표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들

        직업으로서의 정치?


2. 선거 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뽑은 사람들을 감시하기

        잘 못하는 정치인과 공무원 들을 괴롭히기

        정신 못 차리는 정치인들 쫓아내기

        내가 직접 조례를 만들기

        우리 동네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마을예산, 이렇게 쓸 수 없나?


III. 정당 활용하기

1.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깐, 당신들 당비는 내고 당원 하나?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당은 어떻게 당론을 결정할까?

        지구당은 왜 폐지되었을까?

        재미있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2. 정당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천과정을 바꿔보자

        정당의 돈줄을 잡아라

        선거제도부터 바꿔라


IV. 엔지오 활동하기

1. 엔지오란 무엇인가?

        엔지오, 넌 누구냐?

        엔지오와 시민단체는 뭐가 다를까?

2. 엔지오 고르기

        환상의 짝꿍 엔지오 찾기

        엔지오를 고르는 기준은?

3. 엔지오 활동하기

        후원하기

        자원활동하기

        단체 만들기와 지원받기

4. 엔지오 활동, 세상을 바꿀 수 있나?

5. 생활 속의 엔지오, 생활하면서 대안을 만든다

        먹으면서 바꾼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건강하게 바꾼다, 의료생활협동조합

        불안을 넘어 협동한다, 다양한 협동조합들


V. 여론 만들기

1. 웹2.0과 현명한 군중

        블로그는 소통이다

        우리가 바로 미디어다

2. 허튼짓은 이제 그만, 정보공개제도가 있다

        정보공개청구, 속살 파헤치기

        도전! 정보공개청구

        정보공개청구가 바꾼 제도 그리고 삶


VI. 직접 맞서기

1. 시민불복종하기

        복종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복종하지 않는다고 권력이 무서워할까?

2. 마을에서 동지를 모아볼까?

        우리 동네 예산은 어떻게 쓰일까?

        주민자치센터는 누가 운영할까?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생긴 일

        학교운영위원회 참여하기

        아마추어의 반란: ‘가난뱅이’들의 생존전략


부록: 권리 찾기 매뉴얼

1. 찾아보자, 내 권리

        세계인권선언의 권리목록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살피기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2. 내 힘으로 바꾸는 세상

        첫번째 고개-정보 얻기

        두번째 고개-공공기관이나 정치인에게 요구하기

        세번째 고개-정당과 엔지오를 활용하기

        네번째 고개-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압력 가하기

        다섯번째 고개-직접 나서기



지난 4월을 마지막으로 한양대 연구소를 그만뒀다.
여러가지 고민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학에 남아있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쫓으며 살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에 묶인 삶이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했다.
이제 당분간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생각이다.

앞으로 40대의 시간을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데 바칠 생각이다.
대학 내에서 대학을 넘어서는 방법, 대학 밖에서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과 공간들을 서로 엮고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힘차다.
가자!

 

한국은 죽음이라는 사건에 너무 민감하다.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사회의 모든 쟁점과 논쟁을 중단시키며 시민들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일단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다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마당에 정치는 무슨”이라며 도덕이 현실을 압도하고 시민들에게 추모를 강요한다.


천안함 침몰 이후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라는 중요한 정치결정이 불과 한 달 남짓 남았는데도 주요한 쟁점들에 관한 논쟁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이라는 희대의 살상극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병들의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MBC방송국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파업이 한 달을 넘기고 있건만, 다른 언론들은 새만금방조제의 역사를 찬양하고 천안함의 병사들을 영웅으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리와 사법부의 스캔들이 매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부패한 공화국인데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나라를 위한 추모와 성금의 열기가 뜨겁다.


지금까지 천안함 유족 성금이 250억 원을 넘고 조문객도 6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누군들 젊은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애도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개인이 그런 애도의 마음을 품는 것과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물론 칼로 도려낸 것처럼 그런 일이 분리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관심을 적절히 분산시켜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사건 앞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국가는 가치있는 죽음과 가치 없는 죽음을 구분하면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의 대상을 정하려 한다. 국가는 병사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용사’로 추앙하지만 삼성반도체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불러온 박지연씨의 예고된 죽음을 은폐한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고 강바닥을 헤집으며 강의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강 살리기’라는 말을 쓰듯이 국가는 자신에 맞서는 생명들의 죽음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죽음만을 선택해서 그것을 미화한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유리한 것만 부각시켜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할 것이다.


이런 강력한 죽음의 정치에 맞서는 방법은 죽음의 의미를 애써 깎아내리거나 그것에 맞서는 것보다 국가가 은폐하고 감추는 죽음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죽음, 억울하게 죽어간 죽음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5월이 중요하다. 80년 5월, 91년 5월 등 우리의 현대사를 결정지었던 중요한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을 추모하는 것은 국가의 부조리와 실패를 드러내는 중요한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 권력에 희생되고 짓밟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현실로 소환해서 우리는 새로운 권력을 구성해야 하는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권력에 맞서 우리는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은 의례적인 행사가 되면 그것이 지닌 전복적인 의미를 잃어버린다. 국가는 이런 사건들을 단순한 연례행사로 만들어서 그 의미를 축소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흐름에 맞서는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큰 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지방에서 다양하고 작은 행사들을 치르면서 ‘저항의 지방화’를 모색해야 한다. 각 지방에서 시민들이 부패하고 억압적인 권력에 맞서 어떤 저항을 펼쳤는지를 알리고 바로 지금 우리가 그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우리의 무기인 말과 사상의 힘을 살려서 권력의 폭력에 맞서야 한다.


곧 500만 추모객의 애도를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가 찾아온다. 추모의 물결에 휩쓸려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먼저 상황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선거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단지 선거운동에만 집중한다면 진보정당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지금 중앙대에서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기업도 아닌 대학에서 무슨 구조조정일까? 2010년 3월, 중앙대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기업이 적자를 빌미삼아 노동자들을 해고하듯이 인기 있는 학과들만 남겨두고 돈 안 되는 학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는 속셈이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니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중앙대의 예가 이런 구조조정을 알리는 신호라는 점이다.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다. 한국의 다른 대학들이 중앙대 사례를 내세우며 비슷한 형태의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은 뻔한 일이다. 중앙대 학생들이 교내 공사장과 한강대교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대학이 구조조정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얼마 전 고려대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이 있자 잔잔한 파문이 일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조용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학생들이 이런 현실을 모를 리는 없다. 문제는 대학생들의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대학생들의 몸은 자본과 권력에 너무 익숙하다. 학과수업만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 모두가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은 이미 진부해졌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외식사업부들이 대학공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다. 학교 주변 밥값이나 월세, 전세도 물가와 재개발의 영향을 받아 계속 오르고 기숙사 생활비마저도 민간기업이 위탁운영하면서 점점 오르고 있다. 세콤을 비롯한 보안회사, 용역회사들이 관리하는 대학캠퍼스에는 고민을 털어놓을 선배도, 우정을 나눌 관계도 없다.


더 이상 대학은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아니다. 매캐한 최루탄가스 사이로 담배를 나누는 손길은 고사하고 수업노트를 복사해서 나누는 광경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생들은 명품이나 엣지있는 패션 아이템에 많은 관심을 쏟지만 학생식당이나 생활공간을 누가 관리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가격을 치른 만큼 서비스를 받고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며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경쟁의 규칙이 몸에 익어 있다. 몇 달 전 미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목록에서 대상을 삭제하는 ‘친구삭제(unfriend)’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는데, 미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모든 청년이 대학생일 필요는 없지만 대학생이 청년 인구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몰락을 모른 척 해야 할까?



소비의 중심에서 협동을 외치다!


1997년 대학가 소비의 상징처럼 얘기되는 이화여대에서 조그만 사건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와 그 앞의 거리는 대학가 소비문화를 대표해 왔지만 이화여대에서도 그런 문화를 거부하는 조용한 사건이 벌어졌다.


1996년 이화여대는 학생관을 헐고 신학생문화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당시 학생관 매점을 운영하던 대학생활협동조합(대학생협) 대신에 외부의 사업자에게 매장운영권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대학당국은 생협이 수익금으로 학생운동을 지원한다고 보면서 생협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자 이화여대 생협은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화여대생들에게 서명운동을 받고 노조와 연대하면서 학교의 방침에 저항했다. 그리고 1997년 10월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임시총회를 열었다. 당시 학생운동의 쇠퇴와 IMF로 학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3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임시총회에 참석했고, 이에 기가 눌린 학교는 결국 외주위탁 방침을 철회했다. 어려운 싸움을 거치면서 이화여대 생협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직원, 직원들도 참여하는 생협으로 발전했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대학생협이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과정은 학생운동과 무관하지 않았지만 생협의 특성상 그 활동은 운동보다 생활에 가깝다. 학생운동에는 그 이념과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다가서기 어렵지만 생협은 그렇지 않았다. 생협의 조합원 가입 동기를 보면, ‘매장 언니들이 친절해서’,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가장 필요한 하숙정보를 알려준 곳’이어서, ‘다른 매장보다 싸서’같은 생활상의 이유가 많았다.


생활의 필요 때문에 생협에 가입하지만 조합장과 임원을 선출하고 자발적으로 활동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조합원은 ‘성장’을 경험한다. 조합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도록 하면서 대학생협은 공동구매만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삶의 변화를 유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 상업문화를 배제하는 올바른 대학문화가 논의되었다. 1991년 태평양 노조가 싸울 때에는 매장에서 태평양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고 불매운동을 벌였고 97년 12월부터는 외제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밀살리기운동이 활발하던 때에는 우리밀 이화여대 지부가 만들어져 활동하기도 했고, 책벼룩시장을 통해 대학생들은 스스로 가격을 매기고 판매자, 생산자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이 서로 엮였다.


대학생협과의 싸움이 있은 지 십년, 기어이 이화여대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를 만들어 외부기업들을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화여대 생협은 물러서지 않고 조합원들이 조리법을 제안하고 그것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기획과 생산, 소비의 과정을 잇는 생활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외부자본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를 조합원의 참여확대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 고민꺼리를 준다).


지금 이화여대만이 아니라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생협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운동은 1985년 학원민주화운동의 일부인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시작되었다. 1987년 서울지역의 학생복지위원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모임을 가졌고, 1988년에 서울지역학생복지위원회연합(서복련)이 결성되었다. 그 해 10월, 최초의 대학생협인 서강대학교소비자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뒤 이화여대, 조선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에서 대학생협이 만들어졌고, ‘한솥밥을 먹는 우리’라는 대학노트 판매, 자판기용 종이컵 공동제작, 커피재료 공동구매, 우리옷 공동구매, 음식물찌꺼기 사료화, 분리수거운동 등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생협연합회 산하의 대학생협특별위원회(
http://www.univcoop.or.kr/)에 따르면, 대학구성원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비영리공익법인인 대학생협은 국공립대학교 9곳, 사립대학교 13곳이다. 각 학교마다 조합원의 수는 다르지만 대략 1천명에서 3천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은 대학생협설명회, 대학생 생협학교 등의 ‘교육사업’, 비조합원과 조합원들에게 대학생협의 활동을 알리는 ‘홍보사업’, 공동교섭, 공동구매, 공동제작 등 조합원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경제지원사업’, 일본대학생협과의 교류를 비롯한 ‘국제교류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대학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경험을 준다.



상생의 길을 포기한 사립대학들


그러나 이런 대학생협의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한국의 사학재단들은 대학 내의 공간을 기업들에게 파는 ‘장사’에 정신이 팔려 있다. 따지고 보면 자기들이 직접 지은 건물도 아니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모으거나 기업에게 지원을 받은 것인데도 마치 재단 사유물인양 공간을 판매하고 있다.


세종대학교가 대표적이다. 2009년 12월 세종대학교 대학본부는 학교 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고 세종대 생협에 통보했다. 그러자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내단체들이 반대했고 학생들의 반대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이런 반대에 전혀 대응을 않다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서야 공식입장을 밝혔고, 세종대 생협만이 아니라 외부단체와 지역단체들이 잇달아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자 결국 신축학생회관의 입찰만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사건에서 세종대학측이 내세운 입장이다. 대학본부는 생협운영이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수익사업을 하면서도 장학금 등의 학교복지기금을 내지 않기에 공개입찰을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생협의 목적이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학생들의 생활을 돕고 것이고 생협의 활동 자체가 학생들의 복지와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측의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다. 대학측의 얘기를 한번 그대로 옮겨 보자. “생협이 공개경쟁입찰에서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운영의 건실함을 입증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대학본부는 ‘구성원들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생협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9년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는 생협도 어느 정도 경쟁의 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애착심만으로 지켜줄 단계는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종대는 대학을 운영하는 원리가 경쟁이고 캠퍼스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공간이라는 비밀을 스스로 폭로했다.


또 다른 한편의 코미디는 총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서한이다. 세종대 문제가 언론을 타자 총장은 학교발전을 핑계로 다양한 건설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한 뒤에 다음과 같은 얘기를 덧붙였다. “이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의 진실된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몇몇 학생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허위사실들을 유포하여 순수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대학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졸업하고 소위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아갈지 모르지만, 오로지 실력을 쌓고 학업에 매진해 온 학생들의 이미지를 ‘데모나 하는 대학 졸업생’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불순한 학생들이 계속 대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학생들을 선동한다면 결국, 대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등록금 동결 및 50억 원의 추가 장학금 마련의 길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빨갱이 논리가 21세기 대학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대학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국의 대학이 이 모양인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깔끔하게 정리된 건 아니지만 일단 세종대학의 외주방안은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이 좀 가라앉으면 대학측은 다시 외주방안을 추진하리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경쟁의 장, 이윤의 장으로 변한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청년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청년귀농 프로젝트 ‘율면은 대학’, 20대 데뷔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이 운영하는 ‘마포는 대학’, 몸으로 살고 삶으로 만나는 청년모임인 ‘만행’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험들은 대학이라는 장을 벗어나 있다. 대학 내에서 대학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까? 아무래도 대학 내에서 변화를 꿈꾸려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언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협이 대학의 변화를 뒷받침할 든든한 버팀목이긴 하지만 생협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이 자기 역량을 되찾고 강화시켜야 하는데, 생협이라는 생활의 장이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성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생활을 통해 협동하는 대학생협의 문턱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협은 학생운동만이 아니라 녹색가게나 재활용 등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끌어안을 수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생협에 참여하는 이유는 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생협운동의 취지에 공감해서, 생협운동 열심히 하니까 등으로 다양하다. 학생들은 식당모니터링, 식당페스티벌, 생태문화제, 녹색가게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유기농활, 생협학교, 한일조합원 교류같은 교육을 통해 점점 역량을 쌓는다. 수습위원, 학생위원, 학생이사로 성장하면서 생활과 고민의 폭이 넓어진다.


물론 이런 과정이 쉽고 수월하지만은 않다. 대학생들에 비해 다른 구성원들의 인식은 떨어진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생협을 식당과 매점 등을 운영하는 복지기구로 생각하고 협동조합과 소비운동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도 참여율이 떨어지거나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졸업을 하기 때문에 활동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들이 필요하다.



대학을 새로 만들 힘은 어디에 있을까?


위기는 곧 기회라고, 이번 세종대 생협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다른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 사태를 보며 생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이지만 이런 관계망의 확장은 새로운 연대를 준비할 수 있다.


아무런 일 없이 공허하게 연대를 얘기할 수는 없고 함께 할 일을 찾으면 좋다. 매점이나 식당, 서점만이 아니라 대학생협이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망을 만들면 좋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거문제이다. 대학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하늘에 별따기인데 그나마 들어가도 기업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많아 비싸고 운영이 까다롭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 앞은 온통 원룸이다. 하숙집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월세도 만만치 않다. 보증금과 월세에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혼자 방을 얻어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2010년 1월 연세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이 적은 돈으로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신촌에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짓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의 다른 대학들과 연계해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뉴타운재건축 사업에 열중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함께 모여 살면 조금이라도 돈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돈을 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실험도 가능하다. 한국에도 ‘빈집’이라는 주거공동체가 있지만 대학가 옆에서는 그런 운동이 활발하지 않다.


외국에는 그런 예가 제법 많은 듯하다. 예를 들어 캐나다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주거공동체 Co-op sur Généreux(
http://sites.google.com/site/coopsurgenereux2/en)를 보자. 2003년도에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이 주거공동체는 13명이 사는 이층 건물이다. 대형쓰레기통 뒤지기(dumpster diving)를 하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구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거리에서 나누어주는 ‘폭탄이 아니라 음식을(Food not Bombs)’이라는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생활에 대해 토론하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 주거공동체에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까다롭다. 즉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적고 지역공동체와의 연계가 쉽게 이루어지진 않지만 새로운 실험이라 볼 수 있다.


미국에도 여러 개의 주거협동조합들이 있다. 텍사스 대학교의 학생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하는 컬리지하우스(
http://www.collegehouses.coop/)와 협동조합간 클럽(http://iccaustin.coop/index/)도 그런 곳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주택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여성 아나키스트 클레이르(Voltairine de Cleyre)의 이름을 본따 1998년에 만들어진 클레이르 공동체(
http://decleyre.org/coop/index)도 있다. 클레이르 공동체는 채식을 하고 마을극장을 운영하며 풀뿌리운동의 싹을 내리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대학생협의 활동이 활발하고 의류, 주거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에게 대학생협에 가입하라고 충고를 할 만큼 대학생협은 대학생활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대학생협이 운영하는 매점, 식당, 서점 등의 사업과 주거공동체를 연계하면 말 그대로 먹고 생활하고 사는 생활 전체가 협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꼭 새로운 집을 지을 필요는 없고 지역의 풀뿌리운동단체들과 연계하면 의외로 좋은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학의 안과 밖에 작은 꼬뮨들이 생겨서 대학을 바꿀 힘을 조금씩 만들지 않을까?


물론 대학생협의 힘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지는 않다. 관심을 두지 않아 보이지 않던 더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생활을 통해 관계망을 넓히면 단단한 연대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대학 내에서 청소용역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고려대의 ‘불철주야(불완전노동 철폐를 주도할꺼야)’와 공공노조 고려대분회의 연대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루는 ’살맛‘이라는 학생모임과 청소용역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부당한 인사조치나 계약해지를 막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도 용역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을 고민하는 학생모임인 ‘신바람’이 만들어졌다. 동덕여대, 성신여대에서도 학생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냈고, 청주대,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도 학교가 사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이런 이슈들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단 3일 만에 고려대에서는 1만 명의 학생이, 성신여대에서는 6,500명이, 덕성여대에서는 3,500명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했다. 가까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의 문제, 자신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따지고 보면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청소용역 노동자만이 아니다. 주차와 캠퍼스를 관리하는 일도 용역노동자들의 몫이고, 대학교육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시간강사들도 비정규직이다. 교수라는 허울만 좋은 꿈을 포기하고 자신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면 시간강사들은 새로운 관계에 눈을 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관계망들은 교수들의 권위적인 문화도 바꾸고 대학당국의 일방적인 결정도 막을 힘을 만들 수 있다.


아무런 단계 없이 이런 힘이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서로가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 부대끼며 조금씩 다가서야 한다. 서로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적어서 나눠보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그 대가를 화폐로 치르지 말고 지역통화를 사용하면 어떨까. 서로의 열정과 지식, 요령, 공간,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흥겨운 축제를 열면 어떨까.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대학도 공동체로 변할 수 있다. 학벌로 얼룩진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배움(大學)의 가능성이 지금 대학의 위기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듯이.



참고자료


박주희․이기춘, “대학생활협동조합의 학생참여에 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 《소비자학연구》제 16권 제 4호(2005).

대학생협특별위원회, 『대학생협 20년사』(발간예정)

대학생협특별위원회 학생연합회의, “2010 대학생협 학생워크샵” 자료집(2010).

이미옥, “짐 아이프의 지역사회개발론에 비추어 본 대학생협”,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기말페이퍼(2009).

사막에 사는 사람, “5월 11일의 콜로키움과 몬트리올의 Co-op sur Genereux”,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http://www.jihaeng.net).

김종진, “연세대 시설관리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 사례”, 청년유니온 카페(http://cafe.daum.net/alabor)

고재열, “‘밥과 장미’ 위한 할머니들의 투쟁”, 《시사IN》 2010년 1월 16일자.

인간승리로 연출되던 한 편의 드라마가 그 참혹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음모와 조작을 얘기하며 실날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결론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집에 TV가 없는지라 나는 그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줄기세포복제라는 과학기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사실여부를 섣불리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이야기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복제라는 자연적 한계를 넘어선 인위적인 기술에 대해 우리는 왜 그리 열광했고 아직도 그 흥분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걸까? 과학적인 논쟁이어야 할 기술에 관한 논란이 왜 영웅과 역적이라는 경계에 갇혀버린 걸까? 왜 아직도 내가 전체주의 사회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걸까? 책 속엔 정말 현실의 문제를 풀어갈 현명함이 담겨 있을까?



대중은 왜?


줄기세포 실험을 위해 스스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심지어 자신의 딸들에게도 기증을 권하겠다는 놀라운 발언들은 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약물을 복용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겪어야 하는 난자기증은 어느새 도덕적인 이타성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기증에 반대하거나 복제기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네 가족이라면…”이라는 위험하고 당위적인 가정과 ‘국익’을 앞세운 국가주의 논리 앞에서 그 비판의 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지나친 애정은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열풍이 무참히 짓밟았던 가냘픈 인권의 논리를 떠올리게 했다.

대체 이런 열광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났을까? 소위 냄비근성은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유전적인 요인일까? 20세기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이 물음에 답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자기 나름의 해답을 얻은 듯하다. 라이히는 『오르가즘의 기능』(윤수종 옮김, 그린비, 2005)이라는 발칙한 제목의 글에서 “6천 년이나 된 낡은 가부장적­권위주의적 문화를 재생산하는 오늘날 인간의 성격구조는, 자신의 내적 본성에 대항하여 그리고 외적인 사회적 불행에 대항하여 성격적으로 무장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얘기한다. 이 말에 따르면 무엇에 냉소하거나 열광하는 우리의 본성에는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어떤 구조적 요인이 잠재되어 있고, 그 요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이런 화두를 고민하던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에서 연구를 더 진척시켜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그것을 성격구조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그 성격구조가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즉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심리적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인간 속에 스스로를 재생산해 왔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읽다 보면 몇 가지 후련함을 느낄 수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 고만고만한 비판을 하는 한국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호쾌한 비판이 있고 지금 우리 사회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성과 관련된 얘기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한국사회, 그러면서도 성을 팔고 사는 행위가 묵인되는 한국사회, 제대로 된 피임교육이나 성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사회, 성적인 일탈이 온전히 개인의 성향 탓인 양 전자팔찌만 채우면 안전하리라 믿는 한국사회야말로 라이히의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릴 적부터 강요되는 성적인 불만족은 왜곡된 형태로 표출될 수밖에 없기에 성적인 억압이야말로 사회적인 억압과 열광의 자원이다. 라이히의 ‘성경제학’은 어려운 정치경제학보다 더 명쾌하게 변태적이고 기형적인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제자였으나 정신분석학계에서 배척을 받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공산당에게 버림받았던 라이히는 결국 미국 땅에서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아니라 식품의약국(FDA)에게 기소되어 감옥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마쳐야 했다. 이런 경력에서 드러나듯 라이히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자신의 현실과 치열하게 맞섰으며, 도덕적 엄숙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당시의 좌파들도 강하게 비판했다. 라이히가 보기에, 파시즘의 성장은 그것을 가능케 한 심리적인 구조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기존의 자유주의 이론이나 맑스주의 이론들은 이런 심리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파시즘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에 머물렀다. 즉 이들은 “대중들이 지닌 심리 구조의 본질과 그것이 유래한 경제적 토대와의 관계를” 깨닫지 못했다. 자연히 좌파는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무능력한 좌파,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무리들이다.

또한 흔히 얘기되는 것과 달리 라이히는 파시즘이 대중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면서도 대중을 매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라이히는 대중에 대한 강한 희망을 품었던 민주주의자였다. 라이히는 파시즘을 성장시킨 원동력이 대중이고 그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범죄자처럼 고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중의 그런 열광은 수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억압 받아온,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본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라이히가 대중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이 대중을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파악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라이히는 대중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그들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파시즘을 막을 수 있는 대중의 능동성이 살아나려면 “남의 뜻대로 움직이고, 비판능력이 없고, 생물학적으로 병들고, 노예상태에 빠져버린 대중들을 위에서 ‘이끌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모든 억압을 즉시 감지하고 적시에,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도록 그 억압을 떨쳐버리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라이히는 권력과 진실이 서로 대립한다고 보면서 국가의 해체와 사회적 자치야말로 대중의 역량을 부활시키는 핵심적인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중에 대한 공포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상의 파시즘 이론가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똑같이 대중을 논해도 그 애정의 깊이가 다르다.

라이히의 주장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변화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대중의 열광은 이성적인 설득이나 계몽적인 질타가 아니라 대중의 자율적인 결정과 책임의식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만족되지 못한 열정은 대리만족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리만족은 이제 그만!!!



자율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교육과 정치

라이히는 독일 파시즘이 대중심리를 장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으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길들이려 노력했다고 봤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는 체계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억압하고 타성에 길들여지는 법을 배운다. 가장 열려있고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야 할 시기에 청소년은 학교와 학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규율을 몸에 익혀야 한다. 그러니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수단 역시 댓글 문화에서 드러나듯 개인의 왜곡된 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다. 누리꾼의 세계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듯하지만 사실 그 강함은 판단의 왜소함을 감추는 가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거리의 철학자’라 불렸던 김상봉은 『도덕교육의 파시즘』(도서출판 길, 2005)에서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구성되는 존재이기에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도덕교육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고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를 판단하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도덕교육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따르는 민족,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장치였고, 그런 장치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도덕을 암기하라고 가르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김상봉은 “한국의 도덕 교과서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우리는 그것을 주저없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이라 표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네 도덕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파시즘적인 이타성을 가르친다. 물론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남을 돕는 이타성이야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따라 자신의 몸과 정신을 초개처럼 바치는 이타성은 파시즘의 주요한 자원일 뿐이다. 따라서 이타성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율적인 판단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상봉의 말처럼, “모든 자기부정은 보다 확장된 자기긍정을 위한 것이 아닐 때 그리하여 자기부정이 단지 부정을 위한 부정일 때, 그것은 노예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노예도덕은 “타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넘어 실체화된 국가를 위한 희생과 충성을 맹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로 변신한다.

특히 억압적인 노예도덕은 이질적인 목소리를 참지 못한다. 언제나 질서(뛰지 말 것)와 정숙(떠든 사람 이름적기), 통합(뭉쳐야 산다)을 강조하는 교육은 갈등과 시끄러운 토론,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정치야말로 만남과 토론을 전제하는 영역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서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데, 한국의 교육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철저히 차단하고 ‘중립성’을 칭송한다. 결국 중립이라는 명목하에 청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않고 시키는대로 복종하는,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에 길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한국에서 파시즘은 학습되고 있다.

어찌 보면 수능이 교육의 100%를 차지하는 한국사회는 노예를 양산하는 교육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사회학자 김덕영의 강력한 표현을 빈다면, “한국의 교육부라는 파쇼적 집단은 학생들에게 위에서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틀과 도식 안에 자신을 철저하게 가두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철저하게 복종하라고 다그친다. 교육부장관을 교주로, 교육방송을 성전으로, 수능강사를 성직자로 그리고 수능교재를 경전으로 받들지어다!”(『위장된 학교』, 인물과사상사, 2004)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수동적이고 자기억압적인 본능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그 엄청난 진부함으로 언제나 강력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정치도 톡톡히 한 몫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에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를 공급하는 한국의 지식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뉴(new)’, ‘신(新)’이라는 접두어를 달지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식상한 담론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새로움은 마치 권태로움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권태롭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어찌보면 그 권태로움이야말로 대중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기를 바라는 세력들의 치밀한 계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팩스턴(Robert O. Paxton)은 『파시즘』(손명희, 최희영 옮김, 교양인, 2005)에서 독재자의 이미지보다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시즘은 위기감을 조장하고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몰락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라도 공동체를 정화해야 한다는 믿음, 타고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파시즘은 이런 감정적인 분위기를 자극할 뿐 아니라 냉정한 계산과 현실판단을 이용했다. 즉 “파시스트들은 중도파와 보수파의 무능력을 잽싸게 이용해 대중정치를 파악해 들어갔다. 명망 있는 거물들이 대중 정치를 경멸하는 사이, 파시스트들은 대중 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민족주의를 널리 선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시스트들은 흥미진진한 정치적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능숙한 홍보활동을 펼쳐 대중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또 이들은 준군사 조직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으로 대중의 규율을 잡았으며, 마침내, 승패가 불확실한 선거 제도를 없애고 가부만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로 대체했다.” 팩스턴이 분석하고 있는 파시즘 사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지지보다 정치적 “양극화, 교착상태, 내·외부의 적에 대항한 대중 동원, 전통적 엘리트층과의 공모”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팩스턴의 관점은 지금 우리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파시즘은 멀리 있지 않고 현실의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태나 냉소, 무관심이 아니라 자율적인 열정과 능동적인 관심이다.


균열과 희망찬 시도들

한때 라디오는 자동차와 함께 대표적인 파시즘의 선전수단이었다.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괴벨스는 대대적으로 라디오를 보급하고 그것을 중요한 선전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독일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소리의 자본주의』(송태욱 옮김, 이매진, 2005)에서 그런 사회에서도 균열과 틈새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에서 라디오가 소통의 매체라기보다 일방적인 소리를, “우리 삶의 시간과 공간을, 나아가 사회적 현실의 성립을 거의 전면에 걸쳐 점령해버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라디오를 통과한 소리는 장소를 초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세계를 동질화시킨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매개이기도 하다. 라디오와 같은 매체는 “‘소리’를 부르주아적인 기호로서 유통시키고 소비해가려는 사회적 전략”인 ‘소리의 자본주의’를 구성했다. 또한 일본에서도 메이지 정부는 전신망과 유선전화를 “국민의 신체를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율 훈련용 미디어”로 이용했다.

그렇지만 요시미 슌야는 젊은이들이 이런 장치를 새로운 문화적 수단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지역의 중심부에 설치된 방송국에서 각 가정에 설치된 스피커로 음향을 내보내는 유선방송 전화는 “젊은이들 중 전기 매니아가 하드웨어 측면을 리드하며, 지역의 전기점이 설비를 담당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 그대로 촌락 공동체의 풀뿌리 운동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요시미 슌야는 전화가 “국가장치 뿐만 아니라 자생적 목소리 문화로도 기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은 무선 네트워크인 무선통신에 대한 분석으로도 이어진다. 20세기초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무선 라디오 붐이 일어나 아마추어들의 풀뿌리 전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즉 영화 <볼륨을 높여라>처럼 무선라디오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와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생겨난 라디오 클럽들은 서로 연계되며 “ 미국 전역을 뒤덮는 풀뿌리 정보망”으로 발전했고 “1916년, 민주주의 이념을 담은 메시지를 자신의 네트워크만으로 미국 전역에 전달하는 실험을 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볼륨을 높인다면 새로운 네트워크가 구성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런 사례에 주목하면서 요시미 슌야는 “19세기 이후 복제기술의 발전 과정에는, 오늘날에는 자명해진 방송이나 통신으로 대표되는, 모두 거리를 없애면서 국토나 지구를 뒤덮어가는 미디어로 일원화되는 움직임만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적인 장치 그 자체가 어떤 사회적 진보성을 담보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런 장치는 파시즘의 매체로도 또는 민주주의의 매체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과학기술 자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의 사용하는 인간의 판단과 행위가 중요하다.

나찌즘의 마수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해야 했던 20세기의 탁월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런 판단과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1997)에서 인간이 처한 새로운 상황을, 즉 “인간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을 자연의 자녀로 속하게 만드는 마지막 끈조차 제거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을 우려했다. 그리고 자동화에 의한 노동 없는 노동사회, 인간 삶의 터전인 지구를 벗어난 우주로의 진출 같은 새로운 조건들도 판단의 과제로 제시되었다. 어찌보면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었던 이런 새로운 조건은 우리에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와 미래사이』(서유경 옮김, 푸른숲, 2005)에서 아렌트는 우리 시대를 유서 없이 유산이 남겨진 시대라 명명했다. 즉 “상속인에게 무엇이 그의 정당한 소유인가를 명시하는 유서는 과거에 속한 것의 미래적 용도를 지정”하는데, 만일 유서가 없다면 그 무엇도 그 소유의 미래를 규정할 수 없다. 이 비유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과거가 미래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주지 못하는 시대, 따라서 우리 스스로 과거와 미래 모두와 대면하며 우리 현실의 틈을 판단하고 과거와 미래 모두에게 진지하게 맞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대중을 경계했지만 아렌트는 인간의 위대함을 믿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불멸을 위해, 기억을 통해 전승되는 이름을 위해 위대한 행위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연적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근대적인 인간의 비극은 이런 행위의 우연성을 인간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이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행위할 뿐 아니라 그 자연조차 만들어 냄으로써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17세기 이래로 탐구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만을 알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사물 자체보다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옮겨갔다. 자연히 그 형성과정을 탐구하는 ‘역사’가 중요해졌고, “역사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과정, 즉 그 실존을 인류에게 전적으로 빚지고 있는 유일하게 총체적으로 이해되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건국역사라는 말처럼 인간의 삶 역시 하나의 ‘만드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역사를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지만, 이 관점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재배치하거나 현재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대의 역사는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내는 위대한 화음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재배치하고 미래를 조작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오만함이야말로 파시즘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렌트는 “행위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시작한 행위의 결과를 결코 예견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렌트의 역사관은 역사를 빌미로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조작하려는 경향이 강한 한국사회에, 인간의 다원성을 부정하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하려는 사회에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 갑갑한 현실에서 아렌트의 책을 자꾸 손에 쥐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인간과 세계의 실존 전체를 포괄할 수 없”고 “인간이 의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인간 이성의 범주는 “인간의 감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우리의 두뇌는 “지상에 속해 있고 지구에 한정되어 있다.” 유작(遺作)인 『정신의 삶』(홍원표 옮김, 푸른숲, 2004)에서 아렌트는 인간이 “현재라고 명명한 것은 희망 속에서 그를 앞으로 떠미는 과거의 무거운 짐에 대한 평생의 투쟁이며, 그가 확신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향수와 회상 속에서 ‘과거의 적막’을 향해 그를 뒤로 밀치는 미래(그것의 유일한 확신은 죽음인)의 공포에 대한 평생의 투쟁“이라고 얘기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모두와 치열하게 맞서며 그 틈을 벌여야 할 시공간일 뿐이다.

절망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원대한 공상이 아니라 내 삶에서 소소하게 만나고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 김신용이 노래했듯이, “불면, 찢어질 듯 가냘픈 날개를 가진 나비가 그 드넓은 바다의, 죽음의 혀 같은 물결 위를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그 어떤 질긴 목숨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나래를 치는! 나래를 치는...... 그 비애의 힘”(『환상통』, 천년의 시작, 2005)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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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획회의]라는 서평지에 쓴 글인데 최근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이 이 때와 비슷해서 다시 올려본다.
 

선거로 제한된 정치적 상상력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20년을 맞이한다. 자치단체장선거가 1995년에 부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자치제도는 16년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실험을 거쳐 왔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사춘기를 지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갈 단계인데, 아직도 우리의 자치는 너무나 허약하다.


올해의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들처럼 ‘그냥 선거’일 뿐이지 정치의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말로만 ‘자치’를 떠들 뿐 자치의 실제 주인이어야 할 주민들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5+4’라는 선거연합만 논의되고 있지 주민들이 자치의 주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함께 지역의 정책과 비전을 세우며 정치인의 권력독점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은 선거가 중요하고 반MB,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단결하자고 말하지만 전라도로 가면 그 구호는 반민주당으로 바뀐다. 그리고 당비를 내는 민주당 당원의 비율이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8년 동안 집권했지만 자치의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시민단체들이 활용해온 시민후보 전술이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할까? 이런 물음에 충분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집권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활동이 시작되고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선거에 좀 집중해 보자. 200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정당들은 정치개혁을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자고 합의했다. 지구당은 정당의 중요한 기관인데 왜 개혁을 위해 폐지되었을까? 보수정당들은 지구당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천비리가 자주 불거지자 지구당을 폐지했고,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런 결정에 반발했지만 실정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구당이 폐지되고 시․도당만 유지되면서 각 지역의 당원조직들은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라는 애매한 기구들로 전환되었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정당은 공직자를 선출하고 다양한 지역의 이슈를 전국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고 이슈를 제기하는 지구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구당은 지역의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치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따라서 지구당 없는 정당조직을 생각하기 어렵고,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당연히 평당원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지구당을 중심으로 당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보수정당의 지구당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모두 없앤다면 우리 정치에서 남겨놓을 것은 없다. 오히려 지구당이 없다보니 지역의 억울함과 분노가 공식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중앙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중요한 결정들은 중앙에서 내려지고 사업들도 중앙의 이슈를 따른다. 중앙언론에서 보도되는 중앙의 이슈에는 민감하지만 당원들조차도 자기 마을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진보정당들조차 분권화된 정당구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장의 집권전략이 자치를 위한 정당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정당과 친하게 지내보려 해도 좀처럼 거리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당법은 지역정당의 출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현행 정당법은 로컬파티(local party)의 출현을 막고 있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을 창당하려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에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5개 이상 둬야 한다. 그래서 2006년 지방선거 때 시도된 충청북도 옥천의 풀뿌리옥천당은 정당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야 했다. 이런 정당법 하에서는 자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정당을 끼지 않고 시민이 선거에 참여하면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한다. 선거기호에서 뒤로 밀릴 뿐 아니라 선거운동도 나중에 시작해야 한다. 또 선거에 참여하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돈을 혼자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후보자로 등록을 하려면 시도지사의 경우 5천만원, 자치구청장이나 시장선거는 1천만원, 광역의원 선거는 300만원, 기초의원 선거는 2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누구나 선거에 후보자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는 뻥이고 제법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뜻을 품은 사람들을 지원할 후원회가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정치자금법 제 6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특별․광역시장, 시도지사에게만 정치인 후원회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법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뜻 있는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한다. 왜 아름다움을 가로막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이 선거과정을 혼탁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시민의 정치참여는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되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트위터만이 아니라 UCC나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은 정치적인 생각을 자유로이 나누며 토론하고 나쁜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도 교환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민들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홍길동처럼 집을 나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밖에.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 106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인이 집집마다 돈이나 물건을 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과 집집마다 들려서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정책을 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뽀샵으로 손질한 얼굴 말고 실제 얼굴을 알아야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당당하게 유권자의 요구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기초의원의 경우 그렇게 살갑게 만나야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진정 국민의 머슴이라면 집집마다 돌면서 품을 팔아야 옳으니 무조건 금지할 일이 아니다.


정치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공직선거법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제 60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와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선거운동조차 가로막는 것은 이주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정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어릴 적부터 경험해야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데 지금 법은 그 싹을 자르고 있다(최소한 교육감 선거에서라도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옳다). 풀뿌리의 우군은 이런 사람들인데 참여를 금지당하니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정책을 결정할 사람을 뽑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한 정치만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의 정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법이 일일이 나서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권리를 막으니 이를 어쩌나.



제도를 넘어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역의 시민들이,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야 자치는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삶의 기반이 너무 부실하다.


우리는 옛날보다 발전했다고 여기지만 적어도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살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정치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9, 20세기에 이 땅에서 수많은 민란들과 저항들이 나타났던 건 자존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정치문화, 자치와 자급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치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가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문화를 강제로 짓밟았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다.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고, 그 문화를 명령과 복종의 수동적인 문화로 대체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치문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문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죽어버린 법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다. 그런 행동들로 자극을 받고 새롭게 해석되면서 법은 조금씩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꿈이다. 꿈은 완성된 법전이 아니라 몸부림이고 꿈틀거림이다. 조그만 꿈틀거림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다. 중앙의 정치바람보다 자기 마을의 꿈틀거림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처럼 이명박 정부는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이 모든 걸 다 가지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검사가 온갖 접대를 요구하는 건 나쁜 놈들 능력이고, 이건희가 국민들의 정직성을 탓하는 건 강자의 도덕이다.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고통에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 자신을 정당화한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난다. 이 무게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며 자신을 위안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고 있다.


조세희 선생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비밀을 고백했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유기농지가 강을 죽이니까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터전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풀뿌리정치를 말하는 건 다시 떳떳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풀뿌리정치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풀뿌리정치는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보자는,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그래서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 풀뿌리정치는 변화의 과정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목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풀뿌리정치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다. 사람들의 자질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처참한 현장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치는 4년, 5년마다 한번 찾아오는 투표로 제한되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산업역군에서 찾고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지 못했다. 회의하자고 하면 빨갱이, 말 많으면 빨갱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얘기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적어도 정신의 면에서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교육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또 다른 식민지를 따르고 있다. 무릎 꿇고 기어서라도 남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민지의 본능이 강해질수록 더불어 살려는 의지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들어설 자리는 줄어든다.


이렇게 억눌려 사니 냉소할 수밖에 없다. 자기 힘이 약하니 강자들에게 지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냉소의 효과는 두 가지인데, 강자에게 맞서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약자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쓰게 만든다. 내가 나서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설 때 격려하고 도와줘야 할 텐데 오히려 그런 사람을 시기하고 왕따를 시킨다.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려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보면 약자들도 체제를 지키는 부속품이 되어버린다.


정신적인 면과 더불어 참여를 가로막는 실제 장벽도 높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가부장적인 지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들이 풀뿌리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정치의 과제는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풀고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두 가지 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을 풀려면 정치의 즐거움을 직접 느껴보고 명예로운 삶을 맛봐야 한다.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자기 몫을 걸어봐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풀뿌리정치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한다.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한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누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뜨거운 감자’이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나 교육감을 당선시키고 괜찮은 지방의원이나 교육의원을 많이 당선시킨다면 풀뿌리정치를 가로막는 장벽들은 무너질 것이다. 괜찮은 후보들이 제법 그럴싸한 지역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는 사람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냉소적인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잘난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이고 친구보다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선거는 나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와 더불어 살 사람을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당선을 목표로 삼는 순간 사소한 차이도 비난의 이유가 되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야만 조금 더 당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니 선거에 들어가면 친구도 적이 되고 득표로 연결되지 않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은 무시된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꾸는 활동이 필요하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니 관심을 끊어라가 아니라 선거가 중요한 만큼 우리 일상의 정치도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정치를 좁게 보면 풀뿌리정치가 살아나기 어렵다. 아무리 권력을 바꾸더라도 그런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한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고, 풀뿌리정치 없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비평, 2010)가 어느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을 폭로하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와 비교하면 지나치다고 느낄 만큼 관심이 뜨겁다. 광고나 서평 하나 제대로 실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판매고가 10만부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삼성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 책이 나올 때까지 독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삼성특검이 어이 없이 끝나고 이건희 회장이 사면을 받고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으로 돌아다닐 때까지 10만의 독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용철 변호사가 배신자, 매국노로 욕을 먹고 그의 양심선언을 도왔던 신부님들이 한직으로 물러날 때 독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태안주민대책위의 성정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삼성반도체의 박지연씨가 23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을 때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지 금서(禁書)에 대한 유혹일까? 어떤 이유로 문제의 책이 잘 팔리는 걸까? 사람들은 삼성의 실체를 잘 몰라서, 그래서 그 실체를 공부하려고 책을 사보는 걸까?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으며 열심히 읽는 걸까?



공화국을 꿈꾸는 왕국의 국민들


아직도 한국을 공화국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공화국이라 부르기에 이 나라는 너무나 불공평하다. 가진 놈들이 더 무섭다고 이 나라의 부자들은 서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그룹만 해도 CJ그룹, 새한그룹, 한솔그룹, 신세계그룹과 한 가족이고, 사돈까지 따지면 대상그룹, LG그룹, 중앙일보, 동아일보까지 한 가족이다. 이런 가족관계는 삼성만이 아니라 다른 재벌들에게도 일상이다. 가족관계로 서로에게 보험을 들 뿐 아니라 이들에게는 일이 생기면 즉각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정부가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상식이 될만큼 둘의 관계는 끈끈하다. 시민들의 관계가 평등해야 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을 터인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정반대이다.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이런 부조리에 분노해야 할 터인데, 우리 사회의 풍경은 아주 차분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삼성의 성공을 시기해서 일부러 흠집을 잡는다고 생각하고 부패를 사실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부패를 인정하더라도 그런 부패가 삼성만의 일도 아니고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우려면 그 정도의 부패는 어쩔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럴 때를 대비하는 ‘준비된 선수들’도 있다. 삼성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삼성을 비호하는 지식인들이 있다. 자문교수라는 은밀한 관계를 통해, 때로는 사외이사라는 공식직함을 통해, 때로는 기업의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의 돈을 받는 지식인들이 적잖이 많다(경향신문 취재팀이 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을 보면 그 점이 잘 묘사된다).

예를 들어, 서울대 사회학과의 송호근 교수는 어떨까? 그는 삼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한국인의 평등지향적 심성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인정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문화,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좁히려는 열망이 “삼성전자를 세계 50대 기업에 진입하게 만든 경영 기법과 노력에 대한 관심보다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하고, 다른 재벌들은 놔두면서 유독 삼성만을 견제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고 지적한다(송교수에게 이 책을 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냈는가라고 물으면 그것도 평등지향적 심성 탓일까?)(송호근,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심지어 삼성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나서서 삼성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기도 한다. 삼성이 최고의 기업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 그래서 너무나 위험한 사람들이 삼성에 대한 공격을 막는데 앞장선다. 심지어 삼성에게 착취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래도 ‘우리 기업’이라며 슬쩍 돌아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그 끈적끈적한 논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


하지만 어떤 논리로 방어하더라도 공화국의 가장 큰 적은 부패이다. 왜냐하면 공화국은 시민들의 덕성이 공동체에 생명력을 계속 공급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정한 법과 규칙을 따르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공화국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을 때에만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부패는 시민들의 덕성을 타락시키고 법과 규칙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법을 피하는 방법이 ‘능력’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공화국은 부패한 왕정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공화국 시민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왕국의 신민들은 자기 환상을 깨려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위험한 경험주의


어떤 사안을 비판하다보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으라는 반박을 듣곤 한다. 어찌 보면 지당하신 말씀이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하면 어쩌란 얘기인가? 그러나 다르게 보면 이런 얘기는 심각한 폭력이기도 하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이미 현실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 어떻게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렇게 지금 현실이 다른 현실의 출현을 가로막는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 사상가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이를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경험주의(ideological empiricism)라고 불렀다. 지금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이런 경험주의는 새로운 현실의 출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것을 이상으로 만든다. 마르쿠제는 이렇게 믿는 인간을 ‘일차원의 인간(One-dimensional Man)’이라 부르며 이런 인간형을 벗어날 힘을 예술에서 찾았다. 긍정적인 것을 전복시키는 부정의 언어, 인간의 사유를 형성하는 시의 언어가 그 힘이다(허버트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문학의 종언이 선언되었고, 시의 언어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문학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현실을 보여주는데 열중하고 때로는 가족이라는 낭만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래 이게 현실인데 어쩔 거냐’ 아니면 ‘엄마, 아빠, 가족찾기’이다. 현실을 뛰어넘어 전복적이고 초월적인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언어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과학도 마찬가지이다. 통계자료와 조작된 언어들을 사용하는 세련된 글만이 경험주의의 승인을 받는다. 하지만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변화를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부조리를 고발하는 통계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생명의 고통을 통계와 사회과학의 언어들이 표현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사실과 정보를 접할수록 우리는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불신하고 냉소한다.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은 옛말이고 머리와 가슴 모두가 싸늘하게 식은지 오래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을 생각한다』가 나온 뒤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4월일이 되어서야 내부 게시판에 반박글을 올리고 그룹블로그(
www.samsungblogs.com)를 새로 만들어 공식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이미 예상하고 있듯이 근거없음의 연속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충분한 입증자료가 있다”, “국가기관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다”라는 예상된 답변들이 나온다. 싸늘하게 식은 가슴을 숫한 거짓말들이 뒤흔드니 누가 감히 도전하겠는가?


이계삼은 사상가 후지타 쇼조(藤田省三)의 표현을 빌어 우리의 현실주의를 질타한다. “오늘날 이 어이없는 현실이 현실로서 승인되는 것은 아마도 쇼조의 표현처럼 우리들의 인간성에서 본성(nature)의 영역,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천부의 감각이나, ‘상식’이라는 이성적 현실감각, 혹은 ‘양심’이라는 도덕적 감각, 그것도 아니면 그저 ‘분노’와 같은 자연스러운 야생의 정서가 거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을 거세한 이른바 ‘현실주의’의 압도적인 질주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이 모든 파행의 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계삼, '우리들의 현실주의, <녹색평론> 2010년 3/4월호)


삼성을 생각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머리로 제아무리 삼성을 생각하고 삼성가의 비리를 추적해도 우리의 몸이, 우리의 생활이 삼성에 젖어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삼성불매운동이 중요하다. 고작 불매운동으로 그 거대한 삼성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이미 이 현실에 포섭되어 있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삶들이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눈에 얼마나 무모한 일로 보였는지.



삶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사상가 톨스토이(L. Tolstoy)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서 현재의 생활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을 살게 되면 너는 사랑의 왕국이 다가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랑의 왕국이 다가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네 생활을 폭력이 아닌 사랑 위에 세워야 한다."(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위대한 인생>)


그런 점에서 삼성을 제대로 생각하려면 삼성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불매운동을 한다고 삼성딱지가 붙은 상품을 모두 버리고 다른 재벌가의 신상품을 살 필요는 없다. 새로운 상품을 사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것도 불매운동의 한 방법이다.


현명한 불매운동도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비자금과 이건희 일가의 수입원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삼성전자제품이나 삼성의 의류가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의 제2금융권에서 비자금을 축적하고 전횡을 일삼아 왔다. 이런 자금줄을 틀어막아야 삼성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 더구나 삼성생명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5월로 예고되니 삼성생명과 삼성그룹의 실체를 알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에버랜드의 위치를 흔드는 것도 필요하다. 삼성에버랜드의 작년 영업실적을 보면 레저부문이 약화되고 급식 및 식자재를 취급하는 외식사업부의 실적이 10.9%나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에버랜드 이용 안하기도 중요하지만 에버랜드 외식사업부나 그와 관련된 ‘에버푸드’라는 브랜드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도 이건희 일가를 압박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런 일이 몇몇 사람이나 몇몇 시민단체, 노동조합의 힘만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공동으로 노력할 때 재벌이라는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다. 이런 노력들이 성공하면 GMO FreeZone만이 아니라 삼성 FreeZone을 선언할 수도 있다. 상상해 보자. 우리 마을에서는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 보험사들이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삼성카드 가맹점이나 삼성카드를 쓰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홈플러스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그러면 즐겁지 않을까? 이런 다양한 노력들이 모여서 6개월 정도 자금줄을 죄면 삼성그룹이나 이건희 일가도 태도를 좀 바꾸지 않을까? 국민들에게 정신차려라고 말하지 않고 자기네들부터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그리고 삼성에 집중하면 다른 재벌들도 같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돈으로만 세상을 주무를 수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알려주자. 냉소하지 말자. 지금은 분노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불매를 넘어 자급(subsistence)의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불매와 자급의 틈을 메우는 힘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소비자생협들이 대기업의 유통망을 벗어난 삶을 가능케 하고, 생산자협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삶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재벌 없이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우리가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협동의 힘을 실현할 때 다른 삶은 현실이 된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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