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군에는 소안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작은 섬이지만 소안도는 일제 시기 경찰과 말도 섞지 말자는 불언동맹(不言同盟)을 조직했고, 1928년에는 약 4천 명의 주민 중 800명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일제 시기 동안 섬 주민들이 감옥에 갇힌 기간을 모두 합치면 300년이 넘을 정도로 저항의 기운이 높았던 곳이다. 주민들은 “슬프도다/ 감옥에 있는 우리 형제들/ 이런 고생 저런 고생 악행 당할 때/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나/ 장래 일을 생각하니 즐거웁도다”라는 ‘옥중가’를 부르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잤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과 만주 등지의 항일조직과 사람과 물자를 주고받으며 수많은 활동가를 배출했던 ‘해방의 땅’이었다. 지금도 작은 섬에 항일운동기념관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자부심은 높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소안도는 해방 이후 제주도 4․3항쟁과 같은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육지에서 분 국민보도연맹의 바람은 소안도에도 상륙해서 주민 700~800세대 중 270여 명의 목숨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 이후에도 경찰들은 소안도를 ‘모스크바’라고 부르며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는 해방 이후 쉬쉬 숨겨야 할 비밀이 되었다.


제주도 4․3항쟁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복원되었지만 이 작은 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왜 이 섬은 빨갱이섬이 되었을까? 이 섬의 주민들은 왜 그토록 극렬하게 저항했을까?



땅을 나누고 학교를 세우다


일제 시기 소안도에는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다. 1905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소유가 분명하지 않은 토지를 몰수해서 동양척식주식회사나 친일파, 일본이주민에게 팔아넘겼다. 당시 소안도에는 왕실에 세를 내던 궁방전이 많았는데, 친일파 이완용의 아들인 이기용이 토지조사 과정에서 이 땅을 가로챘다. 이에 주민들은 소유권을 반환받으려는 소송을 제기했고 무려 13년 동안 소송이 이어진 끝에 1922년 2월 14일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것이 ‘소안도 토지계쟁사건(土地係爭事件)’이다. 소안도 주민들은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때로치면 엄청난 돈인 1만 4백원을 모아 기존의 중화학교를 발전시켜 1923년 5월 16일에 소안사립학교를 세웠다.


당시 일본노래와 일본어를 가르치며 식민지 교육을 실시하던 공립학교의 학생수는 30명에 그쳤지만, 소안사립학교에는 학생들이 넘쳤다. 1920년 중반에는 멀리 제주도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약 1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토지소유권의 확보와 학교설립은 소안도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궁방전의 소유권을 가짐으로써 소안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굴 땅을 얻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 일제의 농장과 지주들이 높은 소작료와 갖은 부역으로 소작민들을 괴롭혔다면, 소안도에서는 땅을 가진 자작농이 늘어났다. 더구나 이 자작농들은 13년 동안의 오랜 소송을 통해 땅을 얻었기 때문에 공동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농민들이었다.


농민만이 아니라 어민들도 섬 지역의 특성상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바다에 경계선을 긋고 각자의 소유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어장은 공동체의 토의와 회의를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촌에서는 마을총회와 어촌계 총회를 통해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결정되고 있다. 소안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김양식으로 유명한데, ‘단’이라는 특유의 공동어장을 운영했다. 자연산 톳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고 공동분배하는 조직인 ‘단’은 한 마을 내에 같은 수의 가구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공동성은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한 것 역시 이런 공동체의 분위기를 반영했을 것이다. 공동의 이익을 활용하는데 있어 교육보다 중요한 사업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정무역을 통해 많은 학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소송을 이끌었던 4명의 면민(面民)대표들은 자신들의 송덕비를 대신에 학교를 세우자고 제안했고 주민들은 이에 찬성했다. 1913년에 설립되어 항일사상의 씨를 심던 중화학원을 발전시킨 소안사립학교에는 저항적인 지식인들이 모여들었고, 학생들도 완도의 근처 섬들만이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몰려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미신타파, 조혼폐지, 언어평등, 남녀평등 등을 배운 학생들은 공동체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신간회의 간사였던 송내호,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정남국 등 많은 활동가들이 중화학원이나 소안사립학교를 졸업했다.


소안도가 일찍부터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지리적인 위치 탓도 컸다. 일본의 오사카와 제주도를 잇는 항로가 개발되면서 많은 전라남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지식인들도 새로운 사회의 사상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는 각종 강습회, 토론회 등이 열렸고 소안도는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소안사립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부르던 ‘소년단가’는 그 정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과 학문으로 직업을 삼고/ 정의와 사랑으로 정신을 삼아/ 같이 먹고 같이 살자/ 평화세계는 우리들의 눈앞에 완연하구나.”


그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일본 경찰의 대응에서 읽을 수 있다. 1928년 소안도의 활동가 최평산 외 12명이 구속되었는데, 그 심리 과정에서 일제 경찰은 “약 100명의 회원으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고 서울에 있는 모모 청년회와 모든 단체 등과 연락을 취해 소안도에다 공산주의를 선전하여 그 섬 하나를 완전한 공산주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계획하고 착착 그 운동을 실행하면서 한편 면장배척의 봉화로부터 경관에 대한 불언동맹을 조직 실행하고 또 소안학교를 설립하여 도민에게 공산주의적 교육을 실시하였는바 대정 13년에는 도민 거의 전부인 800여명을 회원으로 하고 그 후에도 남자는 청년회에서 여자는 여성회에서 공산주의의 역사상을 선전 실행하여 소안도 안에서는 경찰과 군의 행정이 잘 시행되지 않을 지경까지 되었던 사건이라는바 실로 근래에 드문 조직적 공산주의 운동”(《조선일보》1928년 10월 18일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에 맞서는 배움의 연대, 생활의 연대


소안도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제가 취한 첫 걸음은 소안사립학교의 문을 닫는 일이었다. 많은 활동가들을 배출하고 섬 주민들의 의식을 자극하는 기관이던 소안사립학교는 눈에 가시같았다. 호시탐탐 학교문을 닫을 기회를 엿보던 일제는 1925년 이 학교를 통제하기 위해 공립학교로 승격시키려 했지만 주민들은 면민대회를 열어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제는 독립군을 양성하고 국경일에도 일본 국기를 달지 않는다는 구실을 들어 1927년에 강제로 학교문을 닫았다. 작은 사립학교 하나를 폐쇄하기 위해 일제는 경찰병력을 소안도에 풀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3인 이상이 모이는 것과 곤봉같은 무기휴대도 금지되었다.


작은 사립학교 하나에 왜 이토록 일제가 많은 신경을 썼을까? 그것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을 넘어 생활을 나누고 공동체의식을 기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한 명이 자라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소안도 자체가 하나의 학교로서 함께 배우고 생활하며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기운을 만들었다. 그런 장이었기에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운동을 이끌었다.


배움과 생활의 공동체가 가진 중요성은 소안사립학교 출신 활동가들이 조직했던 단체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14년에 송내호가 만든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는 완도만이 아니라 전라도, 경상도까지 조직망이 이어진 전국 조직이었다. 의를 지켜 서로 가까이한다는 그 이름부터가 공동체성을 반영하고, 계라는 전통적인 생활조직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수의위친계는 특별함을 지녔다.


1919년 3․1운동이 지난 뒤 1920년 4월에 송내호, 정남국 등은 마을주민 100명을 회원으로 모아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만들었다. 이 배달청년회는 마을자치단위였던 리(里)를 중심으로 노동단체를 조직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1924년에는 소안노동대성회(所安勞動大成會)가 결성되어 공동경작계와 공동어장계를 만들어 공동노동에 힘썼다. 그리고 독서회와 강연회를 열고 생산조합방식으로 협동노동을 실시했다. 노동대성회는 당시의 사회주의노선과 달리 천도교 노선의 조선농민사가 추진하던 공동경작계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렇게 소안도는 전통적인 마을단위의 조직형태를 근대적인 사상과 결합하는 실험장이었다. 계급노선과 공동체노선이 서로 어울렸고 그 속에서 강력한 연대의 힘이 만들어졌다. 완도 주변에서 조직된 ‘필연단’(1925년 창립)와 ‘살자회’(1928년 창립)는 “우리는 역사적 필연성인 진화법칙에 의하여 합리적 신사회의 건설을 기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일치단결로써 민중운동의 충실한 역군이 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함양을 도모함. 우리는 신사회건설의 속성을 도모함”이라는 강령을 결의했다. 아나키즘의 주요 노선인 상호부조가 사회주의 청년단체들의 주요한 강령이 된 것은 이런 어울림과 연대를 반영했다. 그리고 전남 지역과 잦은 교류를 갖던 사상단체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함께 수용했던 서울청년회였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배움과 생활의 공간이 일치했기 때문에 학교 폐쇄에 대한 저항도 거셌다. 심지어 전라남도 사람들이 조선 거주민의 절반을 차지하던 일본 오사카에서는 800명의 일본경찰이 포위한 가운데 4,000명의 사람들이 모여 강제폐교사건을 규탄하며 제국의 심장부에서 최초로 조선총독정치를 비판하는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소안도 사람들도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야학에 보내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공간의 일치를 지켜갔다.


이런 공동체에서 연대는 의식적이고 기계적인 결합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 사회주의자들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누가 회의했다’였다고 한다. 사실 회의는 사회주의자들의 특징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특징이었다. 촌회나 동회, 계 등 여러 공동체 조직에서 회의는 일상화되어 있었고 서로의 삶이 얽혔다. 그 속에서 연대는 자연스러운 힘이었다.



공동체의 연대와 저항의 망


해방 이전 한반도 인구의 83%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생활 속에서 연대했다. 농민들의 혁명역량은 의식적인 사상학습만이 아니라 농촌사회의 전통적인 노동관행과 공동체를 디딤돌 삼아 성장했다. 일본인 대지주에게 저항하고 소작쟁의를 일으키고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마을의 집단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


소안도만이 아니라 전북지역의 농민운동은 ‘촌계(村契)’나 ‘동계(洞契)’같은 전통적인 자치조직들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런 계를 디딤돌 삼아 농민협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했다. 소작민, 자작농만이 아니라 지주들도 이런 조직에 속해 있었고, 마을학교를 세우거나 행사를 치르는데 이바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계나 교육기관에서 제명되거나 쫓겨났다.


농민사회에서 연대는 공동체의 연대를 뜻했고 이는 강력한 저항의 기반이 되었다. 국가나 자본이 침투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 해도 이런 연대의 망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정부가 자치조직을 파괴하고 농협과 수협, 축협을 만든 이유는 이런 연대의 망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런 공동체의 연대가 계급간의 연대, 전 세계적인 연대라는 더욱더 보편적인 연대로 발전하는 건 당시도 운동의 과제였다. 허나 1923, 24년의 전라남도 무안군의 암태도 소작쟁의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공동체의 연대를 디딤돌 삼아 전국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던 소작민들이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는 불납동맹(不納同盟)을 만들고 목포까지 원정을 나와 시위를 벌이자 전국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대의 틀은 의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확장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연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틀이나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생활, 공동노동을 가능하게 했던 과거의 공동체는 모두 파괴되거나 국가, 자본 내로 흡수되어 버렸다. 지금 농민들은 국가가 관리하는 농협의 틀에, 노동자들은 자본이 관리하는 개별 공장의 틀에 갇혀 버렸다. 소안도도 다르지 않다. 외지의 사람들이 몫 좋은 곳의 땅을 대부분 차지했고, 소안도의 주민들도 대부분 농협이나 수협을 통해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대회의가 꾸려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 연석회의가 꾸려지지만 그 힘은 약하기 그지없다. 관계망이나 공동체가 없으니 일상 속에서 서로 힘을 모으고 연대하는 게 아니라 연대 자체가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바쁜 일상 속에서 따로 연대할 시간과 고민을 내야 하니 힘들고 어렵고, 그러니 잘 안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2009년 9월 민주노총부산본부가 만든 노동자생협은 아직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없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 노동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노동조합과 농민회가 관계를 맺고, 노동조합과 지역주민들이 서로 공유하는 부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장을 통해 교육생협, 의료생협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지역 내에서 생산․소비가 순환되는 경제체제가 구성된다면, 그것은 국가나 자본이 쉽게 끊을 수 없는 강한 연대, 강력한 저항의 망을 만들 수 있다.


먹고 생활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생겨나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며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곳에서는 옆집 김씨 아줌마가 부당하게 해고되고 박씨 아저씨가 전셋집에서 갑자기 쫓겨난다면, 마을 전체가 그 일에 관심을 둘 것이다. 고구마줄기처럼 한 마을이 엮어져 외부의 힘에 맞서려 들 터이니 누가 감히 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려 할까?


새로운 세상을 여는 비밀의 열쇠는 더불어 사는 삶에 숨겨져 있다.



※ 참고한 자료


김준, “해방의 섬에서 빨갱이의 섬으로”, 《오마이뉴스》2005년 8월 17일자.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엮음, 『소안항일운동사료집』(瑞寶印刷株式會社, 1990)

송윤경, “소안도 항일운동사, 전설에서 역사로”, 《뉴스메이커》 737호(2007년 8월 14일자)

정근식․김준 공저, 『해조류 양식 어촌의 구조와 변동』(경인문화사, 2004)

현정길, “노동자생협을 통한 노동운동”, 《녹색평론》 제 110호(2010년 1~2월호)

홍영기, 『1920년대 전북지역 농민운동』(한국학술정보, 2006)



학벌없는 사회가 주관하는 학교밖 청소년 인문학교실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안학교만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청소년들과 인문학이라는 틀로 다양한 주제를 다룰 듯하다.
일회적인 만남이라 그 만남을 통해 서로가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얘기를 나누고 함께 길을 찾다보면 뭔가가 보이지 않을까?

김상봉 선생님의 소개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삼성을 생각한다]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삼성문제에 대한 고민이 서평이라는 틀에 갇혀 약간은 어정쩡한 글이 되어버렸다.
한편으로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환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내용에 무조건 맞장구만 칠 수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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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강자들의 천국이다. 하나씩 따져 봐도 힘이 센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결혼해서 한 가족으로 뭉쳐 산다. 삼성그룹만 하더라도 CJ그룹, 새한그룹, 한솔그룹, 신세계그룹과 한 가족이고, 사돈들까지 따지면 대상그룹, LG그룹같은 기업과 중앙일보, 동아일보같은 언론사들이 엮여 있다. 이런 왕족들이 평범한 난장이들 위에 군림하며 지배권을 행사한다. 간혹 왕족을 호위할 기사로 발탁되는 인물들이 있지만 피가 다른 그들이 왕족에 끼지는 못한다.


그리고 한국의 정부는 이런 왕족들을 보호하는 경찰 노릇을 한다. 왕족에 문제가 생기면 은밀히 뒷수습을 하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즉각 병력을 투입해서 왕족의 재산을 보호한다. 그 대가는 쏠쏠하다. 가끔은 왕족의 혼맥에 끼어들 기회를 잡기도 하고 필요할 때 뒷돈을 두둑히 챙길 수도 있으니. 검사나 정치인의 자동차 트렁크에 현금으로 가득 채운 사과박스를 실어주는 장면이 자주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부의 부패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왕족들과 정부가 한국을 말 그대로 말아먹고 있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의 비리를 폭로해서 주목을 받았던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2010)는 그들이 어떻게 이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양심과 냉소


부패가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의로운 ‘고백’은 힘을 얻기 어렵다. 고발이라고 하지 않고 고백이라고 한 이유는 한 기업의 불의(不義)를 조사한 기록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그룹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라 양심선언을 하고 난 뒤 자신이 겪었던 맘고생도 책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그도 왕족을 수호하는 기사들 중 한 명이었으니 맘고생은 그의 말처럼 “진정한 벗”을 얻기 위한 속죄의 과정이라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불의를 드러낸 사람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데 익숙하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그 힘에 시달렸고 반대했던 사람들의 최후를 봐왔기에 사람들은 거대한 불의에 함께 맞서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고발한 양심에 냉소를 보낸다. 일상의 사소한 악에 대해서는 흥분하며 소리치는 사람들이 왕족이나 정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는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못 본 척 해야 하는데 그 얘기를 자꾸 꺼내니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하다. 냉소의 참뜻은 난장이들의 패배의식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침묵의 벽을 깨야 하고 그러려면 불의를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직접 경험한 얘기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두꺼운 부피이지만 책은 술술 잘도 읽힌다. 그러나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황태자의 경영실패를 무마하기 위해 쌈지돈 쓰듯 그룹의 자금에 손을 대는 왕족 이야기부터, 삼성 그룹을 실제로 움직인다는 구조본부가 저질러온 많은 부정과 잘못들, 그와 결탁한 권력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온다. ‘나는’이라는 주어로 이런 엄청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고백이 정 마뜩치 않고 고발을 원한다면 『삼성을 생각한다』보다 조금 더 두꺼운 부피인, 대안연대회의가 기획하고 여러 학자들이 함께 쓴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 2008)를 읽어도 좋다.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면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진다는 ‘삼성신화’의 허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고발의 표현을 빌리면, “삼성재벌의 경제력이 증대할수록 삼성재벌의 불법․탈법행위들은 더욱더 대담해지게 된 것이다.” 냉소하는 우리가 그들을 그토록 오만하게 만들었다.



용서와 약속


2008년 이건희 회장은 유죄를 선고받자 수천 억원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9년 말부터 경영 복귀 얘기가 언론을 타고 솔솔 나오더니 이제는 본격화되었다. 어쩌면 이런 수순은 미리 정해진 과정일 것이다. 그동안 국가는 이건희 회장의 죄를 사면하고 IOC유치위원이라는 직함까지 줘서 그런 분위기를 정당화시켜줬으니.


어떤 이는 그동안 잠깐 물러나 반성도 하고 재산의 일부도 기금으로 내놓았으니 이제 국가경제를 위해 용서하자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용철 씨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의 엄청난 착각이다. 삼성화재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부당하게 빼돌렸던 보험금은 고객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스톡옵션으로 막대한 이익까지 얻었다. 2009년 1월 삼성 사장단 인사안에서 비리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지키거나 승진했다고 한다.


이 책이 나온 뒤에도 놀라운 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출판사 광고를 거부했고, 이 책을 다룬 서평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는 책을 홍보하던 지하철 광고도 갑자기 사라졌고, <경향신문>이 삼성과의 광고 때문에 이 책을 다룬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거부하기도 했다. 삼성 장학생들이 지식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기획 보도를 내보낸 <경향신문>인지라 그 충격은 더한 듯싶다(그 이후 <경향신문>은 기자총회를 거쳐 이 일을 사과하며 독립언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어쨌거나 삼성이 진보적 신문이나 시민단체조차도 광고와 후원으로 통제하려 한다는 지적은 아직 한 치도 고쳐지지 않은 셈이다. 심지어 양심선언을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님들은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안식년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잠깐 수세에 몰려 수치스럽게도 평민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왕족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반성을 않는데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용서하자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굴욕이다. 용서는 동등한 사람들이 맺는 약속인데, 지금 우리는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태안 앞바다에 쏟은 기름을 전 국민이 모여서 닦았건만,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지난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건희가 범죄를 저질러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공개 문책하고 5년 동안 분과위원회에 참여할 권리를 정지시켰다. 범죄자를 사면한 정부와 그를 징계한 IOC, 누가 더 상식적인가?



재벌과 착한 기업


어떤 이는 왜 삼성만 괴롭히냐고 묻겠지만 제일 강하고 제일 나쁜 놈부터 매를 맞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삼성이 독박을 써야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재벌가들이 삼성과 다르게 그룹을 운영한다고 믿을 근거는 하나도 없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배임과 횡령 혐의로,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혐의로, 두산그룹의 박용성 회장은 분식회계와 횡렴 혐의로, 성원그룹의 전윤수 대표이사는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혐의로,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보복폭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범죄자들이 기업들을 운영하고 국가는 이를 사면하고 시민들은 이를 묵인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면 왕족과 그들에 빌붙은 기사들이 떠나면 우리의 재벌이 착한 기업으로 변신할까? 광고 없이도 베스트셀러인 이 책이 장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만 떠나면 재벌이 갑자기 착한 기업으로 변할 거라 믿는 건 엘리트의 ‘순진함’ 또는 ‘영악함’이다. 세상의 악은 몇몇 사람의 시나리오로 제거될 수 없다. 근본적인 악은 그것과 연결된 우리 일상을 바꿀 때에만 서서히 제거될 수 있다. 재벌 중심으로 짜인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승자가 모든 걸 앗아가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변신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지금 그 악과 맞서야 한다.       

 인기 드라마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줄리엔이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는데, 양복입은 아저씨가 “더러워, 이 개새끼야. 이 냄새나는 새끼야. 너 어디서 왔어”라고 욕을 하며 시비를 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얀 피부와 긴 기럭지를 가진 줄리엔에게 시비를 걸만한 사람은 없겠지만, 설령 시비를 걸더라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은 그런 모욕을 고스란히 당했다.


지금 한국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을 내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년 5월에 벌어진 사소한 갈등을 ‘정신질환자가 부녀자를 폭행하는 사건’으로 확대시킨 아파트 주민들은 떼를 지어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는 가족들에게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이사 가라. 사람들 보이지 않는 데로 숨어 살아라,” “정신분열증환자는 갑자기 뒤에서 사람을 칼로 찌를 수 있다. 그것도 모르냐?”라며 몰아세운다고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가족의 편에서 탄원서를 모으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편견을 넘어설 수 있을까?



관용, 참을만한 것만 받아들이는 통치술


이런 사건들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타인을 혐오하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왜 우리는 이유 없이 타자를 혐오하고 몰아내려 하는가? 웬디 브라운의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그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좋은 길잡이이다.


브라운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미국에서 더욱더 강력해진 편견을 본다. 차이를 관용하자는 목소리만 높지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소수자들은 차별을 겪고 있다. 그래서 브라운은 관용을 “흔히 생각하듯이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원리․원칙․미덕이라기보다는, 목적과 내용, 행위주체와 대상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지리적 변형태를 가지는 정치적 담론이자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소 어렵게 들리지만 쉽게 정리하면 관용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활용되는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는 얘기이다. “관용 담론은 특정한 차이를 ‘문제’로 만드는 규범적이고 물질적인 힘의 작동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대상으로 관용이라는 말을 쓰는지, 왜 어떤 것은 인정되고 다른 것은 거부되는지, 그런 관용이 목적으로 삼는 효과는 무엇인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브라운에 다르면 서구사회에서 관용의 대상은 ‘믿음’에서 ‘존재’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다른 종교나 신념이 관용의 대상이었다면 19세기부터는 그 대상이 특정한 인종이나 존재를 가리켰다. 대표적으로 19세기에는 유대인이, 20세기에는 공산주의자가, 21세기에는 무슬림이 관용의 대상이다. 브라운은 이런 변화가 관용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관용의 대상이 존재로 이동하면서 인종이나 성적 선호 등이 다른 가치와 행동을 낳는 근본적인 이유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보노짓 후세인이나 정신장애인이 모욕을 당하고 내몰리는 건 개인의 삶과 상관없이 인종과 장애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브라운은 관용이 지배전략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브라운은 유대인과 여성을 예로 들며 관용이 어떻게 현재의 지배질서를 보호하는지를 설명한다. 가령 이성애자인 여성은 남녀평등의 대상이 되지만 동성애자인 여성은 관용의 대상이 된다. 이성애자는 현재의 사회질서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동성애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평등이 아니라 관용의 대상이다. 즉 동성애자가 현재의 질서를 더욱더 위협하기 때문에 지배질서는 그들을 정치적 평등이 아니라 관용의 대상으로 만든다. 유럽의 국가들이 유대인들을 관용의 대상으로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브라운은 이를 ‘대리보충(supplement)’이라 부르며 “관용은 평등의 확장이 아니라 평등의 대리보충으로 등장한다”고 얘기한다.


국가는 부족한 정당성을 보강하기 위해 관용이라는 말을 필요로 하기에 언제나 관용의 대상을 만들고 그들을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관용의 뒤에는 언제나 폭력이 따라다닌다. 변화될 수 없는 차이를 타고난 관용의 대상들은 국가가 정한 선을 넘어서려하면 곧바로 폭력에 노출된다. 미국인으로 살려는 착한 흑인, 착한 무슬림이 아닌 다른 삶을 생각하는 순간 그는 테러리스트가 된다. 테러리스트에게 관용은 없다. 브라운은 얘기한다. “오늘날에도 개인은 예전 공동체에 대한 공적 애착과 충성을 버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충성을 바칠 때에만, 즉 하나의 민족주의를 다른 민족주의로 대체할 때에만,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국가를 넘어서 이런 논리를 확장하면 서구사회는 야만을 만들어 관리하고 관용해 왔다. 브라운은 미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가 관용의 통치술을 적절히 활용해 왔다고 얘기한다. 자유주의는 관용에 스며있는 통치술을 부정하며 관용을 탈정치적인 가치로 만들지만 실제로는 ‘정치의 문화화(culturalization of politics)’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문화를 공공재나 공적 유대의 차원으로 보지 않고 삶을 향유하는 선택의 차원으로 보면서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자는 다문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실제 모습은 자기 문화 외의 다른 문화들을 야만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문화를 교육하려 든다. 타고난 차이는 변하지 않으므로 관용의 정신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브라운은 다문화교육의 실상이 “과거 서구의 식민주의와 냉전이 남긴 효과로 고통받는 이들이, 오히려 서구의 문명화 기획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리는”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의 최종 목표는 “자유주의적 원리들의 보편적 지위에 도전하는 사회 내부의 집단과 초국가적인 비자유주의 세력을 연결․결합시키고, 이 둘을 동시에 길들이”는 것이라고 폭로한다.


따라서 브라운은 “관용이 유통시키고 있는 존재론, 정동, 에토스와 같은 반反정치적 언어에 맞서, 권력과 사회적 힘, 정의와 같은 언어들을 되살리”고 그런 언어들에 기반해 새로운 대항담론들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브라운의 얘기는 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타자를 배척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관용의 현란함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려는 실제 현실로 들어가야 변화가 가능하다.



좌파의 딜레마?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비평사, 1995)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이후 똘레랑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예전에 『왜 똘레랑스인가』(상형문자, 2001)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필리프 사시에(Philippe Sassier)의 책이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이상북스, 2010)로 올해에 다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우리의 실제 현실로 들어가려는 몸짓이다.


그런데 브라운의 칼날은 미국 사회만이 아니라 서구 사회를 전체를 겨눈다. 그런 점에서 똘레랑스라고 얘기되는 유럽식 관용도 그 칼날을 피할 수 없다. 똘레랑스가 우리 현실을 드러내는 무기가 되려면 브라운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똘레랑스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투쟁의 무기이고 사회정의를 위해 똘레랑스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사시에는 “똘레랑의 문제는 견디는 것에 있기보다는 똘레랑스를 보존하기 위하여 어느 선에서 견디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지를 아는 데에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 점에서 똘레랑스는 미국식 관용과 달리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정의의 관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똘레랑스는 탈정치화를 경계하지만 관용의 대상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고, 문명인과 야만인을 가르는 제국주의 시선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양창렬과 이기라 등 프랑스의 한국 유학생들이 쓴 『공존의 기술』(그린비, 2007)에서 잘 드러나듯이 2005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방리유에서 이주민들이 일으켰던 폭동은 공화국의 숨겨진 실상을 드러냈다. 우리는 프랑스만큼만 되어도 좋겠다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프랑스의 꿈은 사라지고 있다.


브라운의 얘기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브라운도 언급하듯이 60년대에 마르쿠제(H. Marcuse)가 이미 그 속성을 폭로한 바 있고, 논리적으로 탄탄하진 않지만 나 역시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책세상, 2003)에서 똘레랑스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관용담론의 실체보다 흥미로운 것은 관용의 르네상스 배경에 좌파의 딜레마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브라운은 “관용 담론의 르네상스 배경에는, 통합이나 동화보다 정체성과 차이의 문제를 부각시키려던 좌파들의 시도와,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 요구를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한’ 것으로 매도하려는 우파들의 노력도 자리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소수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던 좌파들은 어느 순간 그 차이를 인정하며 따로 살자는 우파들을 만나고 있다. 이 땅을 이미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우파들은 그러려면 나가서 너희들의 나라를 따로 만들어 살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니 각자 서로를 인정하고 알아서 살아남자고 얘기한다.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오늘부로 정리하고 쿨하게 끝내자고 얘기한다. 세계화의 시대이니 우리가 갈 곳은 많다고.


이런 주장들에 좌파는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을까? 계속 함께 살자고 매달려야 하나, 아니면 깔끔하게 헤어져야 하나? 만일 헤어지려면 지금까지의 몫을 챙겨야 하는데, 관용은 그 몫을 쳐주지 않는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상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내 몫을 받을 힘이 없기에 우리는 관용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관용을 비판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관용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이 딜레마.


이런 딜레마에 빠진 건 관용만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모욕을 당한 후세인과 곤경에 처한 장애인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네고 함께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연세대 문화학과 학술세미나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마도 지행네트워크와 관련된 얘기,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한 얘기가 궁금한 듯하다.
재미있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 한번 다른 분들의 강의를 들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면 이런 세미나가 많아져야 할텐데, 외려 이런 세미나에 대한 지원조차 거의 없다니...
중앙대의 모습을 보면 한국 대학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지금 상태라면 이제 대학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이제 대학을 버리고 대학 밖에 '참대학'을 만드는 운동이 필요할 듯.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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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 십주년 춘계 공개 학술 세미나

 

취지: 삶의 총체적으로 조망해낼 문화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생긴 연세대 문화학 협동 과정이 올해로 열 살이 되었습니다. 설립 당시에 기대한 만큼 활발한 학제간 연계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유감으로 생각하면서 현 시대를 조망하는 십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지금 우리의 일상을 압도하는 시장 권력사회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여서 어떻게 다시 여기 각자 선 자리에서‘사회’를 소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추방 권력’과 ‘생명정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농업’ ‘환대’’마을’등의 다양한 주제로 논의가 될 이 세미나에는 이미 '달라진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실천적 연구자들이 초대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삶을 이론화하면서 작은 시내를 만들어가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배워가는 기쁨을 누리기 바라며, 수강하는 우리 우리 자신들 역시 시내를 만들어 새로운 바다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 아바타, 잉여 인간, 그리고 복제 인간의 시대

 

1강 (3월 10일)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러낼 것인가? - 히키코모리의 정치학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강 (3월 17일) 추방 권력과 생명 정치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3강 (3월 24일) 노동하는 우리는 환경의 적인가?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4강 (3월 31일) 10대/청소년이 감지하는 추방권력

               (김순천, 김희옥 /르포작가)

 

5강 (4월 7일) 자본주의의 공간과 ‘일방통행로’

              (김영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전 연구 교수)

 

6강 (4월 14일) 장소, 성원권 그리고 환대의 인류학

               (김현경/ 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

 

7강 (4월 21일) 생명정치와 삶의 권리 찾기 

              (백영경 / 연세대 문화 인류학과 강사)

 

8강 (4월 28일) 이방인과 관용, 그리고 환대의 철학

               (김애령 / 이대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9강 (5월 5일) 내 친구의 단골집은 어디인가?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10강 (5월 12일) 자치와 자급의 공동체, 협동조합

              (하승우 / 한양대 연구교수,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11강 (5월 19일) 우정과 마을 이야기-수유+너머

                (고병권 / 수유너머 R 연구원)

 

12강 (5월 26일) 하자마을 십 년의 이야기-사회적 기업과 배움의 공동체 (전효관:하자센터 센터장 강원재:하자센터 기획부장)


민주노동당의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첫번째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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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전략과 초심의 진보정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집권전략이 논의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구상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으면 도루묵이니 지금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을 때 집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런 논의에 묻어나기도 한다.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논의하고, 선거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등 진보정당의 움직임도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다. 왜 진보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삼는가? 물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공직자를 배출하고 집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교육을 진행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일도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선거가 정당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중요한 실험대이지만, 그 실험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뒷받침될 때에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무엇일까? 신문을 장식하는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삶이나 욕구와 무관한 공공시설들이 많은 돈을 들여 허술하게 세워지고, 갑자기 멀쩡한 동네가 재개발지구나 사업지구로 지정되기도 한다. 그 지역과 상관없는 지역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어떤 공립 어린이집에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런 사건들이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당은 이런 사건들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고 정책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활동으로 정당은 자신의 정당성과 정책을 시민들에게 조금씩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당의 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정당은 이런 과정을 얼마나 착실히 밟아왔을까? 2005년도에 민주노동당이 발간한 『당원 정치의식 및 정책성향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의 일상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당원이 지구당원의 39.8%, 시도당원의 54.7%, 중앙당원의 61.8%를 차지한다. 그리고 일상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원의 62.2%가 직장일이 바빠서라고 답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이런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속 시원한 말과 과감한 정치활동으로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진보정당의 지방의원들이 착실하고 꼼꼼한 정치활동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과 주민들이 진보정당을 믿고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의원들만 돋보일 뿐 정당의 정체성은 점점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의 정당이 있을 뿐 정당의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진보정당이 자기 마을에서 하려는 일을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당원들이라도 그런 내용을 알고 참여할까?


이런 상황에서 집권전략을 논의하는 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선거가 다가왔으니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선거철에 지역에 뭘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보수정당에도 수두룩하다.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집권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그것만이 진보정당의 목표일 수는 없다. 더구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지금의 선거판은 내 편을 단단하게 다지지만 다른 편을 내몬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집권(執權)전략이 아니라 집권(集權)전략이 된다. 선거에 지든 이기든 친구보다 적만 늘어난다.


진보정치는 우리와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가능하다. 나는 진보‘정당’보다 ‘진보’정당이 보고 싶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두번째로 책을 냈다.
한국사회에서 왜 풀뿌리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주장했던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의 뒤를 잇는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의 풀뿌리운동이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고민하며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다뤘다.
책의 제목은 최근의 유행을 쫓아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좋은 정치]이다.

처음에 기획을 했을 때와 약간 구조가 바뀌었고, 중간에 필자가 교체되면서 기획의도가 다소 무뎌지기도 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작품이 나왔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를 냉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마련되었으면 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는 글      하승우

1부 왜 우리는 풀뿌리인가
1장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과 풀뿌리운동       장이정수·오관영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 하승우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       김현·최경송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       조양호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       정규호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       김현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       하승수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       이호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을 중심으로       김태선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       하승수

결론에 대신하여 ― 사회 흐름을 바꾸는 풀뿌리운동을 만들어가자       하승수 

아래의 내용은 들어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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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에 부활했으니 2010년이면 지방 선거는 스무 살을 맞이한다. 하지만 청년기에 접어든 지방 선거의 모습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부정과 비리, 부패가 난무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모습은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2006년 지방 선거 이후 구속된 자치단체장(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 40명을 넘고, 성매매, 음주 운전, 뇌물, 폭력 등으로 구속된 지방의원도 수백 명을 넘는다.


이렇게 그 성장 과정이 불량하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하나같이 지방자치제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렵게 부활시킨 제도이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오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잘못과 부작용이 많지만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불리는 지방자치제도는 식민지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은 맞지만 싹수가 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경험이 없는 탓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일제 강점기부터 백년 이상 조금만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면 빨갱이로 몰리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면 마치 이기주의자나 님비인 양 매도당하는 사회에서, 언제나 엘리트들이 나를 믿으라며 대중을 이끌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다. 아직 경험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며 타박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풀뿌리운동은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듯이 제도도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며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껏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장하며 자아를 찾으면 제 몫을 다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방법에 모범 답안, 완성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앙 언론에는 나쁜 모습만 비치지만 지역사회에서 소소하게 작은 변화를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기대는 헛되지 않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의 그릇이 그것에 맞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는 점에서 사람은 매우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이미 조금씩 지역사회를 바꾸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사람들이 만드는 길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능동적인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모범답안은 아니더라도 뭔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한 발 앞선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되새기고 그 의미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이 책을 기획한 이유다. 더불어 고민을 나누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1부에 실린 글들은 풀뿌리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가나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마을 사람들을 바꾸다보면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 ‘일상 속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바로 풀뿌리다.


1장인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 풀뿌리운동’은 중앙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풀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중앙과 지역을 넘나들며 경험한 느낌에 관해 편지처럼 잔잔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진행된 시민운동에 관한 반성과 더불어 활동가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는 풀뿌리운동을 지지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기보다는 드러내놓고 편을 든다. 그동안 풀뿌리운동, 풀뿌리민주주의에 관한 관심도 있었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그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풀뿌리운동의 처지에서 그런 비판을 반박하는 글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나서는 직접행동을 지지하는 날것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는 풀뿌리라는 말조차 틀에 박힌 관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 자신에서 시작하는 풀뿌리운동은 느리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튼다. 어떤 틀에 갇힌 인간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를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을 만들고 만나게 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풀뿌리운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험들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은 인터넷이 가져온 사회 변화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와 풀뿌리의 관계를 분석한다. 풀뿌리와 더불어 소통이라는 말도 유행하지만 정작 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터넷을 활용하자는 주장을 넘어 운동, 정치, 비전과 세력, 미디어라는 네 가지 지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만날 수 있다.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에서는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도입된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 등 여러 제도들이 풀뿌리라는 도마 위에 오른다. ‘자치’, ‘참여’라는 말은 유행했지만 왜 우리 삶은 변하지 않고 나아지지도 않을까? 제도만 도입되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부는 이 물음에 답한다.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는 한국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온 중앙 집권형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앙으로 집중된 개발 전략은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고 토착 경제를 붕괴시켰다. 자립성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 자율성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분권分權에서 자치自治로, 분산分散에서 자립自立으로 나아가는 전환이 필요하다.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는 주민소환제도, 주민발의제도, 주민소송제도, 주민투표제도, 참여예산제도, 주민감사청구제도 등의 시민참여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제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까다로운 제도적 제약과 행정부의 미약한 의지가 주민자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리라 기대한다.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왠지 불순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가까이 하면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그런 느낌이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가로막아왔다. 우리가 하는 일은 봉사이고 복지이지 정치하고는 무관하다, 마을 만들기에 정치색이 끼면 곤란하다, 이런 생각이 정치로 향하는 우리의 관심을 가로막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까?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은 좋은 삶을 살려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정치는 삶의 문제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좋은 정치가 필요하고, 풀뿌리운동도 좋은 정치를 위해 대의정치, 지역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헛된 공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나라 안팎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려면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며, 선한 마음을 자극하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바꿀 힘을 만들어간다. 풍부한 사례와 함께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으로 중심으로’는 서울시 노원구라는 구체적인 지역을 통해 네트워크운동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환경·교육·여성 등 다양한 관심을 가진 단체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는 지방 선거라는 어려운 과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짚어보게 한다. 관객 민주주의를 벗어나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여러 과제들도 제안한다.


이 글을 쓴 이들은 또 다른 ‘대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왜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기본 방향을 제시할 뿐 구체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운영위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이지만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다. 이음은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 풀뿌리운동 사례를 조사해서 알리고 현장의 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이 사람들이 있어 외롭다 칭얼대지 않고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꿈을 꾸며 걸어갈 수 있다. 함께 걷자.


김상봉 선생이 쓴 칼럼을 경향신문이 실지 않아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7155315&section=02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대한 서평 형식의 글이었다.
김상봉 선생은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 글이 인터넷 신문에 공개되고 맥락이 드러나면서 경향신문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경향신문의 사정을 고민해줄 필요는 없지만 경향신문에는 좋은 기자들이 있다.
아마도 김상봉 선생이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한다.
삼성과 광고를 의논하고 칼럼을 막은 건 경영진이나 편집데스크의 생각이지 일선 기자들의 생각은 아닐 터이니...
왜냐하면 경향신문의 기자들이 재작년에 기획취재한 '지식인의 죽음'이 바로 그 사실을 드러낸 보도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는 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할 수 없으나 현재 재정상황이 아주 좋지않은 경향신문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사인]이 [시사저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언론사를 만들었던 길을 되밟는 건 현재의 상황으로 거의 불가능한 듯하고...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삼성이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로 굳어져 버렸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예기치않은 사건은 누구에게 더 상처를 줄지...

김용철 변호사의 비리폭로나 태안사건, 이건희 회장의 사면 등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한국사회가 유독 삼성에 약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피해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삼성재벌이 만드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이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리고 삼성가족의 계열회사까지 포함하면 자본의 망은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삼성을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어느 정도 비합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삼성과 관련된 것들은 피하고 있다.
삼성 래미안이 싫고, 삼성이 만든 제품이 싫고, 삼성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싫다(문자보내기가 쉬워 5년 전에 구입한 애니콜 휴대폰을 제외하면 거의 다 없앤 듯하다).
왜 싫냐고 물으면 내가 얘기하는 몇 가지 근거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고 정경유착의 비리가 많은 기업, 기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삼성만 아니면 다 괜찮단 말이냐, 다 똑같은 독점재벌인데"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거기에 딜레마가 있는 듯하다.
삼성이 아니면, 국내의 독점재벌이 아니면, 초국적기업이 아니면, 도대체 우리는 무얼 먹고 쓰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여성민우회생협 조합원이기에 먹을거리는 기존 유통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 외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독점자본이나 초국적자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급, 자치의 구조를 갖춰야 그런 비판이 완성될 수 있고 그 전까지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언론 역시 그런 구조를 얼마나 갖출 수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상봉 선생의 글이 경향신문보다 그 글이 정면으로 겨냥한 삼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되어졌으면 좋겠다.
어느새 자기검열의 수준까지 도달해버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요즘 후배와 같이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의 The Ego and Its Own(1844년작)을 읽고 있다.
읽다보니 이런 독창적인 사상가를 진작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가라는 후회가 든다.
니체보다 훨씬 앞서 독창적인 사유의 틀을 만들었고, 중세를 벗어나지 못한 근대의 사유를 비판했던 사상가, 슈티르너.
중간까지 읽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아래는 슈티르너가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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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슈티르너는 계급제도가 사상의 지배요, 정신의 지배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것은 중세만이 아니라 근대에도 이어져 내려온 지배이고 혁명도 서열을 바꾸었을 뿐 그 지배 자체를 제거하지 못했다(개혁이 있을 뿐 진정한 혁명은 없었다). 고대인의 지혜가 모두 세계에 관한 학문이라면 근대인의 지혜는 모두 신에 관한 학문이다. 프로테스탄티즘과 근대적 사유는 내적인 종속을 더 심화시켰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슈티르너는 자유주의도 바라본다. 슈티르너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단지 깔개 위에 다른 개념을 가져왔을 뿐이다. 신성 대신에 인간을, 교회조직 대신에 정치를, 교리 대신에 ‘과학’을, ‘조잡한 도그마’와 가르침 대신에 현실의 개념과 영원의 법칙(eteranl laws)을.”(88쪽)


사람은 누구든 인간으로 대우받길 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건 우리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받을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진정한 보호자요 수호자로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 단결하고 그런 단결의 형태가 공동체와 국가로 나타난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민족(nation)이나 국가(state)의 형태로 단결할 때에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라고 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삶은 인간이 아니라 시민으로 사는 삶이라고 얘기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적인 성격이나 고립을 버리고 사적인 삶을 공적인 삶을 누릴 때 참된 인간(true man)이 된다고 얘기한다. 과거에 좋은 기독교인을 요구했듯이, 근대는 좋은 시민을 요구한다. “국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의 공동체가 되고 모든 사람은 ‘전체의 복지’에 스스로 헌신해야 한다.”(90쪽) 슈티르너는 이를 세속신(mundane god)의 출현이라 본다.


프랑스 혁명은 소유(property)라는 강렬한 재료로 불이 붙었다. 그래서 그들은 돈에 강렬한 애착을 보이고 자신의 소유를 인정받고 소유자가 되려 한다. 슈티르너는 이 과정에서도 새로운 이상이 출현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민족, ‘인민의 자유’, ‘자유로운 인민’이라는 이상이다. 평민들(commonalty)은 기득권 계층의 권리를 폐지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민족’이라 부르며 특권을 ‘권리’로 전환시켰다. 이것이 새로운 군주제의 출현을 가져왔고 제한된 군주제를 절대 군주제(absolute monarchy)로 전환시켰다. 부르주아지가 그 과정을 주도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권리를 누려야할 수많은 군중을 가졌다(Now the state has an innumerable multitude of rights to give away). 그것이 바로 국가의 권리이자 ‘정치적’ 권리이다. 더구나 국가는 그 권리에 조건을 붙여 위임된 권리에서 파생되는 의무를 충족시킬 경우에 권리를 인정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명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전에는 다수의 작은 군주국들(little monarchies)이 있었고 개인들은 이런 작은 사회에 속해있었다. 혁명은 이런 작은 군주국들을 무너뜨렸을 뿐이고, 제3계급은 자기 외의 다른 계급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일한 계급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민족으로 선언한다. 슈티르너는 이를 신과 직접 연결되려는 프로테스탄트와 비교하며 정치적 프로테스탄트라 부른다.


부르주아지는 국가라는 영혼에 봉사하는 좋은 시민이다. 순종적인 시민이 자유인이라는 생각이야말로 부르주아지의 뜻을 대변한다. 충실한 하인보다 더 합리적인 시민은 좋은 시민을 국가의 하인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오랫동안 지속된 정신의 지배, 영혼의 지배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도덕(moral spirit)이나 도덕의 영향력(moral influence)을 없애지 않았다. 그것을 다른 형태의 개념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슈티르너는 이것을 자유주의의 실제 모습이라 본다. ‘합리적인 질서’, ‘합리적인 법’을 얘기하지만 그 틀은 과거를 반복할 뿐이다. 자유주의자는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지배자인 이성에 대한 광신도(zealots)이다.


정치적 자유(political liberty)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두 번째 단계일 뿐이고 ‘종교의 자유’와 비슷하다. 종교를 가진 사람만이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종교의 자유가 종교의 사라짐을 뜻하지 않듯이 정치적 자유 역시 국가 내에서의 자유이다. “Political liberty means that the polis, the state, is free.…State, religion, conscience, these despots, make me a slave, and their liberty is my slavery”(97쪽). 여기서 슈티르너는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공통점을 또 하나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목적이 수단을 신성하게 만든다(the end hallows the means)는 생각이다.

개인의 자유(individual liberty) 역시 사람이 아니라 법을 따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자의적인 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법적인 군주(constitutional prince)에 종속된다. “Only liberal matter, only lawful matter”(98쪽)

슈티르너는 이런 과정이 결국 국가만을 유일한 군주로 승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경쟁도 국가를 전제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군주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아이들도 부모가 아니라 국가에 속한다.


“If the revolution ended in a reaction, this only showed what the revolution really was.”(99쪽) 신중함(discretion)이야말로 반혁명의 신호로 한계를 정하는데, 자유주의자는 진정으로 신중함을 원한다. “The revolution was not directed against the established, but against the establishment in question, against a particular establishment. It did away with this ruler, not with the ruler.”(100쪽) 슈티르너는 이런 것이 결국 개량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낡은 자리에 새로운 지배자를 세우는. 혁명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인민이고 민족이고 주권국가이다. 그것은 “A fancied I, an idea, such as the nation is, appears acting; the individuals contribute themselves as tools of this idea, and act as 'citizens'. The commonalty has its power, and at the same time its limits, in the fundamental law of the state.”(100쪽) “People keep carefully within the limits of their authorization.…I am a―law-abiding citizen!”(101쪽)

그런데 이 세계에도 세계의 붕괴에서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위험한 계급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민이다. 평민들은 자기 주변의 빈곤을 신의 현명한 뜻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눠진 행운이라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빈곤이 날뛰면 그것을 가두고 밀어내려 한다. 그러면서도 출생이 아니라 노동이 소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도 슈티르너는 과거와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고통을 겪으며 지혜를 깨우친다는 중세의 ‘진리’를 평신도들이 믿지 않게 되듯이, 노동자들도 돈의 ‘진리’를 믿지만 그럴 수 없음을 깨우친다. “‘Money governs the world’ is the keynote of the civic epoch.”(103쪽)

소유자들의 지배는 국가가 그 빈곤한 ‘신민’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이 따르는 만큼 돈(봉급)을 주고, 평민은 국가의 보호와 자비를 통해 존재한다. 그래서 만일 국가권력이 붕괴되면 평민은 반드시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잃을 게 없는 노동자들은 어떨까? 가진 게 없는 자(non-possessor)는 가진 자를 보호하고 가진 자에게 특권을 주는 권력으로 국가를 볼 것이다. 좋은 시민은 가진 자이고, 경찰은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을 주기 위해 기꺼이 많은 세금을 내는 좋은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good citizens' gladly pay high tax-rates to it in order to pay so much lower rates to their labourers).


정치적 자유주의를 끝맺는 슈티르너의 말은 맑스보다 더 빠른 1844년에 위선적인 부르주아 사회의 미래를 예고한다.

The labourers have the most enormous power in their hands, and, if they once became thoroughly conscious of it and used it, nothing would withstand them; they would only have to stop labour, regard the product of labour as theirs, and enjoy it. This is the sense of the labour disturbances which show themselves here and there. The state rests on the―slavery of labour. If labour becomes free, the state is lost(105쪽)


슈티르너는 세속세계에 관심을 가졌던 고대와 정신에 사로잡힌 중세와 근대를 얘기하면서 진정한 에고이스트가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슈티르너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인간은 누구일까? 니체가 말한 초인과 다른 또 다른 존재일까?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우 약하다.
기득권층이 지배하고 재벌이 승승장구하며 이명박이 집권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취약한 게 아니다.
우리네 민주주의가 약한 것은 그것이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몸으로 겪으며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네 민주주의는 언제나 머릿속 아테네를 떠다닌다.
경험적이지 않기에 그 지식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슨 무슨 민주주의를 떠들기는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실제 공간에서, 일상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지식인은 아주 드물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제도의 수준에서만 얘기되지 실제 삶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진행되는 회의인 듯한데, 회의 발표 자료를 모두 공개했다.
http://tlc.oise.utoronto.ca/wordpress/conferences/
800페이지에 가까운 발표문들이 PDF파일로 묶여 있다.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섹션: 시민권의 학습과 참여민주주의 - 논쟁과 개념, 이슈들
2섹션: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3섹션: 고등교육에서 민주주의 학습
4섹션: 비공식 교육기관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5섹션: 사회운동과 정당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6섹션: 지역공동체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7섹션: 지역과 지방 거버넌스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8섹션: 전지구적 맥락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읽어보진 못했으나 서구사회에서는 시민권(citizenship)이 다시 핵심적인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여성과 이주민, 청소년처럼 기존의 시민권 논의에서 배제되어온 정치주체들을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포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라 얘기할 수 있다.

지금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제)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잡고,
선거만이 아니라 주민소송, 주민투표, 주민발의, 참여예산제도 등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하는 방법,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
웹상에서 이슈를 조직하고 알리는 방법,
동네를 조직하고 정치화하는 방법 등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다음 달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최소한 뭐라도 한 가지 하면서 욕을 하고, 내 속의 분노를 정치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보자는...
그런 과정에서만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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