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다섯번째 낙동 순례를 시작한다. 지난 3월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뜨거운 여름 한철을 강가에서 보냈다.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낙동강 순례 홈페이지(http://nakdongkang314.org)도 만들었고 몇번 작은 모임과 행사에 참여했지만, 끊임없이 나를 출발선상에 세우는 것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만일 내가 본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면 눈이라도 빼서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라빛 낙조를 보여주고 싶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휘돌아 가는 물길, 물길을 거슬러 오는 바람, 저문 강에 떨어지는 달빛, 새벽 강가에 하얗게 오르는 물안개, 물가에 그림자를 놓는 수변의 숲들, 그곳에 깃들고 둥지를 트는 생명들, 흰 모래사장에 꼬리를 끌고 지나간 수달의 발자국, 허리 굽은 농부의 깊은 한숨, 그곳을 배회하는 외로운 맘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다.

녹색뉴딜,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자전거 도로, 생태공원 조성, 천년의 비젼 등 화려한 구호들을 귀가 아프게 듣건만 내 눈이 보는 것은 희망찬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의 것들― 무너지고 파괴되는 모습들뿐이다.

거대한 중장비들이 파열음을 내며 강바닥과 둔치를 파고 금빛 모래를 퍼 나르는 덤프트럭의 흙먼지 나는 행렬 끝에 서서 아우성치는 산하를 카메라에 담는다. 거미줄에 걸린 작은 물방울들을 담기 위해 열렸던 렌즈로 들이대기에는 너무나 섬뜩하고 슬픈 현장이다.

그래도 시집와서 60년 허리 굽혀 일하던 강마을을 떠나는 할매보다는 설움이 덜할 것이다. 할매는 집과 논과 밭을 모두 합해 8천만원의 보상을 받아 도심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를 한채 구입했다고 하신다. 평생 살던 터전을 떠나면서도 할매는 오히려 내게 물으신다. “아래로 내려가면 전부 강물을 땡겨서 먹고사는데 물을 가둬놓으면 물이 더 나쁘지 싶은데, 안 그래요?” 정부에서 연일 홍보방송을 해도 할매도 나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사람들은 그렇게 강변을 떠나가는데, 나는 낙동강가에 10년이나 비어있던 집을 얻었다. 지붕은 날아갔고, 서까래는 기울어졌고, 아궁이는 무너져 있다. 집주인은 집을 내주면서 너무 오래 비어있던 곳이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지만, 목수 딸이라고,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팔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막상 집을 만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일손을 거들어 주었건만 방 하나를 정리하는 데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니 아무래도 처마 밑이 그립고, 따슨 방에 나날의 피로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나처럼 강가를 배회하는 걸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너진 공간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다.  

경천대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낙동강 본류인 구담, 회룡포, 삼강, 경천대, 상주, 낙동, 서산, 구미가 한시간 거리이고, 낙동강 지천(支川)인 내성천, 금천, 영강, 병성천, 감천, 위천 역시 한시간 거리이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질 상주보와 낙단보, 구담보, 구미보까지가 모두 버스로 한시간 거리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

 

어찌 재앙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

천성산을 통해 나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국토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번도 천성산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없는 자들의 기술적인 잣대에 의하여 천성산은 무너지고 파헤쳐졌다. 천성산은 내게 우리의 국토가 처해있는 아픔과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기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천성산’과 ‘4대강’은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 사업의 실행 주체는 전혀 변하지 않은 하나의 연관 속에 있다. 17분 빨리 달리기 위하여 7조 이상을 퍼부은 고속철도 2단계 사업은 개통도 하기 전에 예상 수요의 1/3도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체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의혹과 부실투성이의 고속철도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고속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사장은 이제 국토부장관으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파괴와 파행의 책임을 정부와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지난 주말, 설악산의 단풍객이 5만이 넘었고, 해운대 광안리 불꽃놀이 인파가 70만을 넘었으며, 올 시즌 야구관람객은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오색 단풍의 풍광, 바닷가의 현란한 불꽃놀이, 운동장의 함성과 열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하지만 억만년 이어져 내려온 자연의 물길이 위험에 처해있고, 그 재앙에 대한 경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되고 있어도, 태어나 자라게 해준 국토가 겪는 아픔의 현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너무나 드물다. 단풍놀이를 즐기는 사람의 1/100, 불꽃놀이를 즐기는 인파의 1/1,000, 야구장에서 만나는 사람의 1/10,000이라도 강으로 걸음을 한다면 정부가 이렇게 무모하게 국토를 파헤치는 사업을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환경문제를 당사자와 시민단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비참한 국토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개발은 ‘국토의 과잉 관리이며, 과잉 관리는 자연을 친절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분은 외국인 기자였다. 그는 “한국의 최고의 인프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라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본 일이 있는 사람은 우리 국토가 얼마나 아름답고 비옥하며 풍요로운 곳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산을 영봉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등뼈로 13개의 정맥이 굽이굽이 줄달음하고, 그 정맥들이 품어 흘려 보내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요동치며, 11개의 큰 흐름으로 한반도 전역을 생명의 기운으로 채워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흐름들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어찌 재앙이라 아니 할 수 있을까.

 

청초호 매립단지로써 4대강을 보다

지난 9월, 네번째 낙동 순례는 속초에서 시작했다. 속초의 눈이라 불렸던 청초호 매립단지가 지금 어떻게 변해있는지 문득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수의 40퍼센트가 매립된 뒤, 청초호의 예전 아름다운 풍광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해안호라는 느낌보다는 도심의 인공호같이 보였다. 설악산의 장대한 산줄기는 즐비한 고층아파트의 화폭에 가려졌고, 울산바위의 웅장함은 철재탑에 가려져 있었다.

청초호 매립단지에서 보듯이, 정부가 진행하는 개발사업은 자연 자체의 효율과 그 풍요로움에 의지하기보다는, 파괴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지향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은 정작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오직 끝없이 달려갈 뿐이다.

 

나는 기록할 것이다

이제 남은 고민은 과연 이 역주행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업을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기업과, 권력과 금력으로 이 사업을 정당화하고 있는 정부가 한몸으로 결속된 상황 속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며, 질문을 던짐으로써 더 자주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함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않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강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가게 될 것이며, 강의 소리를 더 잘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현 정부는 4대강 개발사업을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에 대하여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무지를 내보임으로써 우리들의 무지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고 하였다. 지금 나는 한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업이 공론화되고 재검토될 때까지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직접 지켜본 파괴의 현장들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국토가 어떤 힘에 의하여, 어떤 논리에 의하여 어떻게 파괴되고 변화되고 있는지, 침묵의 방조자인 동시대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만간 올 뒷사람들에게 이 사업을 다시 평가받게 할 것이다.


  지 율 ―전 내원사 산감. 스님은 천성산 터널 공사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달라는 요구를 내걸고 다섯차례의 목숨을 건 단식을 마친 후, '2조5천억 국고 낭비설'을 유포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과 '나홀로 소송'을 진행해왔다. 또 한편, 낙동강을 순례하면서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벌써 벌어지고 있는 파괴의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백무산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90년대 초반 박노해와 더불어 노동계급의 삶과 투쟁성을 절절히 느끼게 했던 이...
작년에 나온 [거대한 일상]을 절반 정도 읽었는데, 문학의 힘이라는 걸 조금은 다시 느끼고 있다.
시집을 다 읽으면 한번 시평을 써볼까 생각도 한다.

시집을 읽다보니 맑스와 바쿠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이제 백무산 시인도 아나키즘으로 전향하셨나?^^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이 누구와 손을 잡고자 했는가, 왜 그들이어야 했는가, 왜 그런 이들이 사라졌는가를 시인은 짧은 언어로 얘기한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 아프면서도 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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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댈 곳

                                                   백무산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검은 얼굴의 두 사내가 쇼핑을 나왔다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손으로
라면과 야채를 넣었다 뺐다 들었다 놓았다
돈에 맞추느라 줄였다 늘렸다 했다

계산서를 구기던 여직원이 무전기 든 덩치를 불렀고
덩치는 주먹을 흔들고 욕을 퍼붓고 침 튀겼다
깜둥이 새끼들 돈 없으면 처먹지 말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은 지랄이야!
옆 계산대를 빠져나오던 자그마한 한 비구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두 배는 됨직한 그 덩치를 무릎 꿀렸다

저 자리에서 절절매며 살던 덩치가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였다
힘있는 덩치와 문명의 나라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맑스였고
희망없는 '인류의 쓰레기'들과 땅을 잃은 뜨내기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바꾸닌이었다
한줌 가진 것에 기대 비굴하게 오염되어
열정을 잃어버린 덩치들을 그는 경멸했다
그로 인해 그는 패배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더렵혔지만 진실은 그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은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

참여연대 김민영 처장이 대표자로 '서울광장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1월 24일 현재 45,100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만 19세 이상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서명할 수 있습니다. 12월 19일까지 81,000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할 예정입니다.
아래 주소
http://www.openseoul.org/Signatures/sign 으로 가면 청구인으로 서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 55% 정도밖에 서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얼른 서명을 받아 참여연대로 보냅시다.

조례개정청구는 까다롭게 청구인 명부를 조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자 싸인하거나 도장을 받아야 하고, 주소지를 아주 정확하게 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 주시길...^^

나도 서명을 받아 보낼 생각입니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리라.

누구든지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리라.

누구든지 불의한 세력에 침묵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두 귀를 닫으리라.

세상에서 받을 칭찬과 보상을 다 받은 자에게
하늘은 그를 위해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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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
90년대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으로 내게 충격을 줬던 시인이다.
특히 '이불호청을 꿰매면서'라는 시는 내게 강렬한 느낌을 줬고, 그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이끌기도 했던 그.
출옥한 뒤에는 <나눔문화>라는 단체를 만들어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한 때 그의 변화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내 의심을 탓하면서...
그가 살고자 하는 가난과 평화의 삶이 내게도 다른 방향은 아니니...
얼마 전 나눔문화 강연을 다녀오면서 그가 쓴 두번째 팜플랫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를 선물받았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그가 무엇을 보려 하는지 잘 드러난 책이다.
어쩌면 그 당시 <사노맹> 활동을 했던 사람들 중 박노해 시인이 가장 건강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언제 한번 막걸리 한잔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더 이상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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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 '못난이 노자'라는 글을 연재하는 송기원 시인의 시이다.
정신이 번뜩 나게 하는 날카로움이랄까.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난다는 구절도 섬뜻하지만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누군도 엿보며 웃고 있도다"라는 구절 역시 날카롭다.
<환경과 생명> 겨울호에 기고한 글이다.
'4대강 살리기'도 재난이지만 '행정구역개편'도 또 다른 재난의 계기가 될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공부를 강요(!)한다.
쇠고기, 대운하, 보, 미디어에 이어 이제는 행정까지...
다음에는 또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보통 행정은 그냥 행정구역이나 행정기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자치와 연관지으려 했다.
최근 글을 읽다 발견한 3-1운동과 관련된 재미있는 관점도 함께 소개했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전국적인 저항을 모색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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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체계라는 오래된 지배도구와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

 

하승우(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1894년 부패한 탐관오리에 맞서 일어선 농민들은 나라를 바로잡는 개혁을 실시하기 위해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했다. ‘그물코를 바로잡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집강소는 잘못된 관행과 행정을 바로잡고 농민들의 자치를 지원하는 공간이자, 신분의 차별을 없애고 토지를 나누어 공평하게 경작해야 한다는 이념을 전하는 공간이었다. 비록 외세에 짓밟혀 무너지긴 했지만 동학농민혁명은 전통적인 농민공동체와 정치적인 운동이 결합되어 자치와 자립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 사건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민중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반면에 첨단무기로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할 수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는 자치와 자립의 기반이 식민지 통치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일제는 본격적으로 식민지 전략을 펼치기 전부터 자치공동체를 파괴하려 잦은 지방제도 개혁을 시도했다.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행정체계를 바꾸는 것은 인위적으로 생활공동체의 경계를 나누고 합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가로막으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일제가 행정체계를 강제로 통폐합한지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행정구역 개편이 얘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왜 억압적인 지배권력이 행정체계를 자꾸 바꾸려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제와 군사독재는 왜 행정체계를 바꿨나?

 

어릴 적부터 착실히 국사(國史)를 배워온 우리는 한국을 전형적인 중앙집권형 국가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로 가면 지방양반들만이 아니라 민중들이 공동체를 이뤄 자기 삶의 기반을 다져 왔다. 두레와 같은 공동체 노동이 활성화되고 계와 같은 상호부조가 발달하면서 민중들의 공동체는 자치와 자립의 힘을 강화시켰다(주강현, 2006; 하승우, 2008).

마을마다 모정(茅亭), 농정(農亭), 농청(農廳)같은 공간이 만들어져 마을의 제사나 회의를 준비했고, 이런 전통은 촌회(村會)나 향회(鄕會)와 같은 마을의 정치기구를 만들고 강화시켰다. 보통 양반들이 농촌공동체를 지배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농민공동체가 정부에 대항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철종 때 괴산에서는 수령의 자의적 결가책정에 대하여 반대하는 향회가 29차례나 열렸으며 각처에서 관의 부조리한 조처에 굴종하지 않고 통문을 돌려 향회를 소집, 단합된 여론을 배경으로 수령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읍소(泣訴)’를 감행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감영에 진정하는 ‘의송(議送)’에 나서는 등 향회는 점차 반관적 저항을 위한 모임의 장소가 되었고 드디어 민란의 온상 구실을 하게 되었다.”(김용덕, 1992) 이처럼 마을에서 농민의 자치적인 정치원리가 봉건적인 지배원리를 서서히 극복해가고 있었기에, 이정은 박사는 “19세기 중앙정치가 60년간 세도정치의 부패와 난맥상을 보일 동안 지방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民亂이라는 형태로 중앙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民權의 성장과 面과 洞里를 중심으로 자치적인 農民的 鄕村秩序를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이정은, 2009).

따라서 일본은 이런 자치체계를 무너뜨려야만 자신의 식민지 지배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통감부를 통해 한국정치에 개입하던 1906년 7월, 각의(閣議)에 ‘지방제도개정(地方制度改正)하는 청의서(請議書)’를 제출하고 345개 전국 부군(府郡)을 220개로 대폭 통폐합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청의서는 많은 지역의 반감과 저항을 받았고 당시는 일제가 한국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던 상황이라 이 제안은 축소된 형태로 시행되었다. 그렇지만 이 안으로 1896년 13도 개정 때부터 군수의 역할을 보좌하던 향장(鄕長)과 향청(鄕廳)의 역할이 폐지되고 군주사(君主事)로 대체되어 마을은 군수의 권력에 종속되었다. 이로써 중앙에서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배질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1914년 ‘도(道)의 치관할구역(置管轄區域) 및 부군(府郡)의 명칭위치관할구역(名稱位置管轄區域)’에 관한 총독부령 제 111호를 내려 12부 317군 가운데 전체의 37%인 1부, 121군을 통폐합하고 새로 1부, 24군을 만들어 12부, 220군으로 조정했다. 그 뒤에도 지방행정통폐합은 계속되어 1910년도에 68,819개였던 동리가 1916년도에는 29,383개, 1918년도에 28,277개 동리로 줄어들었고, 이는 자치적인 동리가 행정적인 면으로 흡수되는 것을 뜻했다. 이와 더불어 각 마을의 고유하고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던 마을이름도 ○○동이나 ○○리로 획일화되었다. 또한 부군면을 통합할 때 면장의 97%를 교체하고 일제에 협조적인 사람을 면장으로 임명되었다(이정은, 2009).

당시 일제는 지역의 자치공동체를 파괴하고 그것을 중앙집권적인 식민지 통치구조로 흡수하려 했다. 일제가 추진한 행정체계개편은 중앙의 총독부와 지방의 면단위 통치기구가 수직적인 질서를 이루며 작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일제하의 행정체계개편은 주민편의나 행정의 합리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지배질서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통합을 목표로 삼는 행정체계개편은 자치질서의 발전보다 그것의 해체를 목표로 삼아 왔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행정체계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바뀐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부나 군사독재 하에서도 행정은 언제나 중앙권력의 이익에 봉사했기 때문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지방자치제도를 유보하고 면단위 행정을 더 확장시켜 군 단위로 전환한 것도 그 점을 증명한다. 그런 과정에서 26개시 85읍 1,407면의 지방자치단체가 26개시 140군으로 개편되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치구역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1994년 말과 1995년 초의 시군통합 역시 43개의 시와 40개의 군을 통합해 41개의 시로 개편했다(이기우, 2009). 그동안 한국의 행정체계개편은 모두 중앙정부의 구상과 결정에 따랐고, 시민들이 이런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자치행정과 주민들이 분리된 것은 공화국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자치의 이념을 담고 있지 않은 우리 헌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자치이념에 적합한 연방주의가 아예 배제되었고, 자치단체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주민자치에 관한 규정은 법률로 위임되었다(제 118조 2항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그런데 일본헌법 제 93조 2항은 ‘지방공공단체의 장, 그 의회의 의원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관리는,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고, 제95조는 ‘하나의 지방공공단체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의 투표에 있어서 그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국회는 이것을 제정할 수 없다’며 주민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주헌법 제 28조 1항도 ‘각 州의 헌법질서는 이 기본법에서 의미하는 공화적·민주적 및 사회적 법치국가의 제원칙에 부합하여야 한다. 州, 군(Kreis) 및 읍(Gemeinde)의 주민은 보통·직접·자유·평등 및 비밀 선거로 선출된 대표기관을 가져야 한다. 읍에서는 대표기관에 대신하는 읍회의를 도입할 수 있다’며 주민자치의 기본근거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하승우, 2005).

모든 법률의 기본이 되는 헌법이 자치의 이념을 담지 않고 있으니, 행정부는 시민을 언제나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 행정은 주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주민 ‘위에’ 일하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전통을 지켜 왔다. 행정체계 역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따라 변하며 주민들의 삶을 침범해 왔다.

 

 

행정체계개편이 지역발전을 위한 방안인가?

 

2009년 행정체계개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논의가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행정구역개편과 관련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참여정부 역시 2006년 전국을 70개의 광역시로 개편하는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전 정부가 논의에 그쳤다면 이명박 정부는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2 광역경제권’ 구상을 발표하며 행정개편의 기본구상을 지방자치보다 경제발전에 맞췄다. 이 구상은 “그동안 개별 광역자치단체별로 시행해 오던 지역전략산업 및 지역개발정책의 중복성 및 비효율성을 방지하고 자원배분 및 사용의 효율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제안되었다(임승빈, 2009).

그리고 2008년 10월 18일 이명박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행정구역개편, 특히 지방의 광역화와 행정계층 축소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국정과제 역시 앞서의 경제권 구상과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인 행정을 개선해서 지역경제발전을 촉진시킨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행정구역개편을 지역발전전략으로,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기업의 유치, 창압, 확장, 보전”으로 접근하는 것은 광역화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토지를 공급하며 도시를 재개발하는데 유용하리라 보기 때문이다(배득종 2008). 또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8․15 경축사에서 “100년전에 마련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며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 8월 26일 행정안전부는 이 구상을 이어받아 ‘시․군․구 자율통합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이 계획이 자율적으로(?) 통합한 기초자치단체에 특별교부세 50억 지원, 추진사업 인센티브 지원, 기반시설 설치 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교부금, 인센티브, 기반시설, 이런 내용은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이다. 부안방폐장이나 경주방폐장에서 그랬듯이 중앙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을 ‘거지’로 여기고 돈으로 유혹하는 이런 한심한 짓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어쨌거나 이런 과정을 밟아왔기에 현재 국회에는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 무려 8개의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간의 통합을 다룬 2개의 법안(노영민․이범래 의원안)을 제외하면 6개의 법률안 중 4개의 법안(권경석․우윤근․박기춘․허태열 의원안)은 시․도를 폐지하거나 국가기관화 시키고 시․군을 통합할 것을 주장하고, 나머지 2개안(이명수․차명진 의원안)은 도와 광역시, 도와 도를 통합해서 더 광역화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중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현재 광역-기초의 2계층제로 되어있는 자치계층을 단일화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학계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완규 교수는 행정구역개편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 250억 원의 행정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①시장․군수 및 시․군 의회 선거비용 절감, ②시․군 의회비 절감(의원 정원 감축, 사무처 경비 감축 등), ③민간지원경비․행사경비 등 절감, ④공공시설 통합 설치․운영을 통한 절감, ⑤청사 매각 또는 재활용을 통한 재원 확충, ⑥주민의 경제적 부담 감소라는 부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박완규, 2008). 그리고 곽상욱 오산자치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광역행정이 ①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전자적 접근성 확대라는 서비스 수요의 광역화, ②지역클러스터, 혁신도시와 같은 행정수요의 광역화, ③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중복, ④행정의 책임성과 민주성의 확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곽상욱, 2009).

하지만 이기우 교수에 따르면, 지방행정구역만 개편하면 모든 지역발전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21세기 국가경영철학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왜냐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했던 지역주의를 없애는 방법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한과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방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지방분권의 강화에 있지 행정구역개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기우 교수는 현재의 방안이 ①소규모 기초자치의 포기, ②소지역주의로 지역공동체의 해체와 지역발전거점의 상실, ③실현가능성의 부족이라는 내용상의 문제점과 함께,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통합추진이라는 방법상의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를 추진하고 주민투표를 배제하는 것은 시기와 절차 모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이기우, 2009).

그리고 하승수 교수는 자치계층 단일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도를 폐지하고 국가지방광역행정청과 같은 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중앙집권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점, ②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사무중복 문제는 사무배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해결가능하다는 점, ③세계적인 지역간 경쟁격화 현상은 오히려 광역지방자치단체를 더욱 광역화하고 강화할 필요성을 높이고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폐지는 대도시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 ④단층제 입법사례는 외국에서도 드물다는 점, ⑤급격한 제도변화는 지역의 정체성, 지역발전의 정신적 에너지를 상실케 할 수 있다는 점, ⑥외국에 비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구규모가 큰 상황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위적인 광역화는 생활자치의 포기가 될 것이라는 점, ⑦기초지방자치단체의 광역화는 새로 만들어질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사무소 소재지 등을 둘러싼 소지역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 등이다(하승수, 2009).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치계층을 단일화시켰을 때의 문제점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증명되었다. 즉 2007년 7월 특별자치도라는 광역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된 제주도의 경험을 보면 그 문제점은 분명해진다. 2002년에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주도 행정개편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2005년 7월 27일 주민투표를 통해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4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폐지되고 1개의 광역자치단체로 통합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높았는데(점진안 찬성률 각각 56.4%, 54.9%) 이를 무시하고 전체투표 결과를 따져 통합을 진행했다. 그리고 행정 효율성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본청과 의회, 행정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전체의 45%를 차지함으로써 행정의 반응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그리고 제주시와 도지사로 권한이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 주민자치구위원회와 같은 주민자치기능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행정개편 때보다 이전의 자치 2계층체제가 더 낫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만으로 효율성이 증가하거나 주민만족도가 높아질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하승수, 2009). 2009년 8월 제주도지사의 독단적인 행정을 문제 삼았던 제주도의 주민소환운동은 행정체계 개편이 가져올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행정체계 개편이 계속 주장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지방의 재정불균형’과 ‘불균등발전’ 때문이다. 행정체계 개편을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는 “규모의 경제효과로 인한 세출 효율화를 통해 재정지출 증가압력을 제어하고 지자체간 재정력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원윤희․심혜정, 2008) 이명박 정부는 정치보다 경제논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행정체계개편 역시 이런 경제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개발주의에 그대로 노출되어 대안적인 발전전략을 모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하승우, 2007). 따라서 학계나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명박 정부는 행정체계 개편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그들만의 개발과 개편,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

 

진정 그런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 현상과 그로 인한 ‘내부식민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지방재정이 빈약한 것이 문제라면 국세 비중을 낮추고 지방세 비중을 높일 일이지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광역화시킨다고 해서 지방재정이 탄탄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행정체계개편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더욱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의 지방을 내부식민지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고, 더 나아가 지방 내에서도 패권주의가 발생하는 부조리를 지적한다(강준만, 2008).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 현상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그 집중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2009년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 현황에 따르면, 서울, 인천, 전북을 제외한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2008년보다 낮아졌고 가장 낮은 지역들은 자립도가 10%를 넘기지도 못했다. 그리고 대전개발연구원의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 자료에 따르면, 1985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이 전체 지역내총생산의 43.3%였는데 2006년에는 전체의 47.7%를 차지해 수도권의 경제집중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지방 내에서 발생하는 지방자치단체들간의 갈등이 수도권-지방의 갈등과 갈수록 비슷해지고, 패권주의가 지방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가령 2004년 기준 경남권 인구의 60.2%가 부산과 울산에 살고, 경북권의 58%가 대구와 포항에 살고, 전남권의 57.2%가 광주와 여수에, 전북권의 49.2%가 전주와 익산에, 충남권의 57.2%가 대전과 천안에, 충북권의 55.7%가 청주와 충주에, 강원도의 50.7%가 춘천․원주․강릉에 산다는 식이다. 이런 집중화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기업과 서울에 본사를 둔 회사들이 대부분의 산업과 경제활동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에서 경제적인 이익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강준만, 2008).

따라서 이런 불평등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행정체계만 광역화한다고 해서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를 볼 때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을 해체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오히려 광역화를 통해 지방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라며 ‘생존논리’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중앙의 기득권 구조와 연결된 개발세력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노리며 단합할 것이다. 이렇게 행정체계개편은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만 이로울 뿐 대다수 주민에게는 많은 부담을 안길 것이다.

또한 광역화를 지향하는 행정체계개편은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사실상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관변단체가 대거 의회로 진출하며 지역의 공식적인 권력으로 승인을 받고, 여전히 지역의 중요한 의사소통과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보다는 ‘풀뿌리보수주의’라는 말이 시민들에게는 더욱더 익숙하다(하승수, 2007).

그리고 지방자치제도의 실시,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도라는 직접민주주의제도의 도입에도 시민들의 참여환경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국의 좋은 참여제도들도 한국으로 오기만 하면 하나같이 시민참여를 가로막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처럼 널리 알려진 제도만이 아니라 주민참여예산제도나 옴부즈만같은 제도들이 이미 도입되어 있지만 전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하승우, 2006).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행정체계개편이 지금 당장은 마을 단위의 풀뿌리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풀뿌리운동의 뿌리를 위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편은 풀뿌리운동이 필요로 하는 주체성장의 ‘과정’과 ‘여유’를 없앨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곧바로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등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풀뿌리운동은 주체들이 성장할 ‘과정’과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행정체계개편은 소외된 주민이 자신의 ‘시민됨’을 자각하고 능동적인 정치적 의지를 회복하려면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자신이 사는 세계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배우며 자기 내면에 뿌리내린 본성, 개인으로 고립되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본성을 극복하는 여유를 제거할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과 비용절감만을 목표로 삼는 행정체계개편은 풀뿌리 주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행정체계개편이 은밀한 목표로 삼는 지역개발의 열풍은 풀뿌리운동이 준비해온 대안적인 지역사회발전전략을 파괴할 것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내년 지방선거 때 수많은 개발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개발전략들은 그동안 풀뿌리운동이 의제로 만들어온 주거나 교육, 먹거리와 같은 생활정치의 의제들을, 자신의 삶과 괴리되지 않은 정치를 실현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선진화를 빌미로 삼는 지역간의 경쟁은 각각의 존재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망각시킬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다소 전문적이고 생활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행정체계개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적인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민주주의의 비극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공유지를 박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세금을 걷기 위한 관료체계와 내부의 반란을 막기 위한 공권력이 강화되면서 이제 국가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전통적인 공동체나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는 낙후되거나 봉건적인 유산으로 매도당하고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듯이 행정체계개편을 마음껏 추진할 것이다. 강력한 반대가 없다면 자기 뜻대로 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부이니, 이런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작가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우리 사회를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는 “죽은 땅”이라 정의했다. 이 죽은 땅을 떠나는 탈출구는 달나라로 떠나거나 입주권을 긁어모으는 사나이를 처리할 앉은뱅이와 곱추의 공모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탈주하거나 맞서거나, 둘 중 하나이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H. Zinn)의 말처럼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다행히 우리 역사는 치열하게 맞서 싸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정은 박사는 1919년 3․1운동의 의미를 자치에서 끌어낸다. 최소한 두 달 이상 잔혹한 식민지 권력에 맞서 온 몸을 던지며 싸웠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무엇을 꿈꿨을까? 3․1운동 당시 한국의 지역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항과 상품경제의 유입, 일제에 대한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일본 식민지 체제의 수립과 일본인들의 유입, 토지조사, 지방행정구역 전면 개편, 폭우처럼 쏟아붓는 각종 세금과 법령, 식민지 관권에 의한 억압과 침탈, 국가 위기가 고조되면서 진행된 천도교와 서양 개신교의 급속한 확장, 민족교육의 억압과 식민지 교육의 보급, 시대 변화에 따른 전통 향촌공동체의 해체 또는 온존 등” 지금 우리처럼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3․1운동은 그런 불안과 공포의 고리를 끊고 자치와 자립의 기반을 다시 바로세우려 했다. 행정체계를 바꿔 공동체의 기반을 허물고 자신의 지배전략을 뼈 속 깊이 심으려던 일제에 맞서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변화의 물꼬를 텄다(이정은, 2009).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3․1운동의 뜻을 이어받은 민중의 저항이라 얘기할 수 있다.

그 저항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점은 분명하다. 그 저항은 죽은 땅을 다시 살리기 위해 기존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짜야 한다. 한 가지 이슈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대안적 전망을 구성하기 위해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욕망이 아니라 사랑이, 경쟁이 아니라 보살핌이, 대상화가 아니라 주체화가 그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Jim Ife)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아이프는 지역사회발전이 정치․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라 사회․문화․환경․인격(정신적)의 면을 고루 갖춰야 균형잡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프는 산업을 유치하고 지역산업을 조성하며 관광사업에 매달리는 발전전략을 ‘보수적인’ 전략이라 부르며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은행, 신용조합, 지역통화(LETS) 등을 활용하는 ‘급진적인’ 발전전략을 구체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런 전략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동안 배제되어온 주민들이 그 과정에서 의식을 높이고 스스로를 조직화하며 직접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문화와 지역문화, 참여문화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주민들의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안적인 지역사회발전전략에는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식과 욕구가 향상되어야 한다(아이프, 2005). 결국 목표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정치모델이 아니라 치열한 운동의 과정이다. 저들이 행정체계를 바꿔 이익을 꾀한다면, 이제 우리는 그런 체계를 넘어설 대안을, 국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를 모색해야 한다. 풀뿌리운동과 사회적 경제운동, 생활정치와 협동조합운동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 흐름에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이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자. 그것이 첫 걸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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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2006), 『두레: 농민의 역사』, 도서출판 들녘.

짐 아이프 지음, 류혜정 옮김(2005), 『지역사회개발: 세계화 시대의 지역사회 대안 모색』, 인간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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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2005), 「헌법이라는 틀은 자치를 담아낼 수 있나?」, 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 헌법 다시읽기 토론회 발표문.

-----(2006), 「정부의 주민투표제도 악용과 시민사회의 역할」, 『시민사회와 NGO』 통권 4권 제 2호.

-----(2007), 「한국의 지역사회와 새로운 변화전략의 필요성」, 『경제와 사회』 통권 75호.

-----(2008),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녹색평론』 통권 101호.


때 아니게 <열하일기>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문학자인 영남대 김혈조 교수가 <열하일기> 완벽본을 내면서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조목조목 지적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혈조 교수는 작년에 <열하일기>를 세계 최초의 여행기라 소개한 고미숙 등의 번역본이 북한의 리상호 번역본을 그대로 따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녹색평론> 2009년 11-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김혈조 교수는 "고미숙본은 리상호본에 윤색을 가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예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난해한 문장의 오역일수록 더욱 베낌의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인명․지명 등의 고유명사와 전고 부분에 집중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자신을 <열하일기>의 전령사라 자처했고 길진숙, 김풍기 등과 함께 <열하일기> 번역본을 낸 고미숙 평론가는 아마도 이 지적에 충분한 답을 해야 할 듯하다. 고미숙 평론가는 "꼬박 5년"  동안 이 책을 번역했고, 원문을 꼼꼼히 새기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한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김풍기, 길진숙 등과 공동작업을 추진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도중에 보리출판사에서 북한판 완역본이 나와 "완역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밝히긴 했지만 풀어쓰기가 아니라 번역이란 말을 썼다면 답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는 셈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열하일기]가 잇따라 번역된 건 고미숙 평론가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고 더구나 고미숙 평론가가 그토록 강조했던 부분이 박지원의 '문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다 하겠다.

번역이 반역이 되지 않으려면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논쟁을 통해 더욱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면 그건 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준다. 어떤 이야깃거리가 나올지 기대해 본다.
지난 토요일 서강대에서 열린 '한국사회체제론을 다시 생각한다' 심포지움에 다녀왔다.
체제론 블로그: http://socialsystem2009.textcube.com/

지금 한국사회의 상을 드러낼 치열한 장일 줄 알았는데, 논쟁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낡은 주장의 반복에 가까웠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97년 체제', '08년체제', '새로운 헤게모니 전략', '신자유주의'라는 말만 귀를 맴돌 뿐, 지금 우리가 부딪치는 삶의 단면을 드러낼 수 있는 날카로운 사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체제론'의 탈을 쓴 '선거전략'에 가까웠다.

심포지움에 참여했던 발표자, 토론자들과 나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첫째, 그들이 맑스주의적 관점에 서 있다면, 나는 아나키즘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자 했다. 과거의 낡은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라, 심포지움의 주된 논지는 국가를 전제하고, 그걸 진보적인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는 한국의 중앙집중성과 산업화전략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온 구조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체시켜야만 진보적인 발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공동체를 택한 건 그것이 작아서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만 국가를 해체하고 자치,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자치, 자립의 기반을 강조했던 건 불쌍한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포지움에 참석한 사람들의 생각은 '민중과 함께'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불쌍한 노동자, 불쌍한 비정규직, 불쌍한 빈민을 위해서 진보정치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결코 진보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결국 자신들의 진보적인 구상으로 민중들의 삶을 끼워맞추는 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점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심포지움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한국사회를 분석할 거대담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거대담론은 그냥 크기 때문에 거대담론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크기 때문에 우리 삶과 더욱 밀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검사비용을 무료로 만들고 타미플루를 무상공급한다고 해서 '신종플루'의 공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주장을 진보적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조류독감, 신종플루로 이어지는 새로운 질병은 기존의 생태계 질서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구조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위기, 식량위기, 생태계위기라는 엄청난 해일 앞에서 왜 공동체가 희망의 대안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담론이 필요하다.
그 거대담론은 우리 삶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파괴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면서도 우리가 그 파괴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겨울방학이 오면 그 담론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지난 10월 30일 민중의 집 1주년 기념토론회에 다녀왔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성장을 했고, 마포의 여러 단체들이 함께 해서 지역운동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토론회 내용은 첨부한 파일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여러모로 민중의 집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사회변화의 모범사례로 잘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며, 
아래 글은 문화연대 소식지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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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돌을 맞는 민중의 집을 반기며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민중의 ’집이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민중’이라는 말이 다소 낯선 느낌을 주지만 ‘집’의 따스한 느낌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봅니다. 내 것이 아니라 삶의 대안과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것이고자 했기에 민중의 집이 좋은 모습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1년 만에 5배나 증가한 민중의 집 회원들은 그런 믿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씨앗들이라 믿습니다.

민중의 집 1주년 평가토론회 자료집을 보니 그동안 민중의 집이 1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경제위기와 먹거리 등에 관한 여러 차례의 시민강좌를 열었고, 어학과 요리 등 생활의 지혜를 나누는 생활강좌도 있었습니다. 회원과 주민이 서로 교류하는 화요밥상이나 다정한 시장 등의 프로그램도 있었고, 청소년교실이나 ‘토끼똥’ 공부방 역시 지역사회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민중’의 집이라는 이름에 맞게 저소득층 생계비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심리상담사업이나 치과 공익진료도 진행했습니다. 또한 민중의 집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나 자생적인 주민모임에게 공간을 빌려준다는 점 또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토론회에서 안성민 사무국장은 민중의 집이 두 가지 목표, 즉 주민들의 일상적인 교육․문화공간이라는 목표와 지역커뮤니티 형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진행된 사업들을 보면 첫 번째 목표와 관련된 사업들이 많고, 두 번째 목표와 연관된 사업들은 아직 부족한 듯합니다.

개인적인 인상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민중의 집 1주년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1년 사업평가를 보면 잘된 사업이 ‘공부방과 청소년’(30%), ‘강좌’(25%), ‘공간나눔활동’(15%), ‘벼룩시장’(15%) 등이고, 기대에 못 미친 사업이 ‘다각적인 지역활동’(27%), ‘회원활동’(20%), ‘주민휴식공간’(18%), ‘소모임/동아리 활동’(14%)입니다. 이 결과를 봐도 기획된 프로그램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반면, 나눠 쓰는 공간보다 회원/주민들의 활동공간으로서의 의미는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활동가가 커뮤니티 형성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평가하는데, 응답자의 절반이 민중의 집을 ‘서로의 삶을 가꾸고 나누는 주민공동체’라고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결과는 활동가와 회원들이 생각하는 ‘주민공동체’의 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회원들이 생각하는 주민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내부에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 회원들의 참여를 촉진시켜야 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할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모든 일을 다할 수는 없으니까요)에 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회원들이 역할과 책임을 나눠 갖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회원의 참여수준에서도 드러납니다. ‘보통이다’가 56%이고, ‘낮다’가 26%, ‘높다’가 12.5%라는 점은 그리 낮은 참여수준이 아닙니다. 그런데 앞으로 중점을 두어야 할 사업이 ‘살기좋은 마을만들기’(26%), ‘교육/문화사업’(19%), ‘비정규직지원/연대사업’(14%), ‘대안교육사업’(13%), ‘생활공동체사업’(13%), ‘지역정치사업’(11%) 등으로 다양하게 드러난다는 점은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욕구가 드러나는 건 좋지만, 이 점을 다르게 해석하면 민중의 집의 지향에 관한 내부의 합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모두 하면 좋겠지만 실무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과제는 많은 사업만 벌리고 수습을 못하거나 그 결과를 다른 사업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게 만들곤 합니다. 따라서 회원들이 민중의 집의 목표를 공유하고 각각의 사업을 책임지는 주체로 나서도록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회원참여를 고민할 때 회원참여가 어려운 이유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를 보면, ‘시간과 여력이 부족’(50%), ‘민중의 집에 대해 잘 몰라서’(19%), ‘참여기회부족’(13%), ‘거리가 멀어서’(11%), ‘참여이유를 못 느낌’(7%)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정말 미친 듯이 바빠서 시간과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회원들이 시간과 여력을 민중의 집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하고픈 얘기는 회원들을 적극적으로 민중의 집으로 끌어들이고 그들 스스로가 지역사회를 조직화하는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역사회의 주민들을 회원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과제라면 지역사회 조직화와 회원 조직화는 사실상 같은 과제입니다. 그리고 지역 내의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고 공간이나 기자재를 공유하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각각의 과정에 회원들이 자리를 잡게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중의 집 운영체계도 다시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각각의 동아리 모임이나 소모임들이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지역 내의 단체들도 일정한 운영체계 속으로 끌어들이면 좋겠습니다. 주민을 다양한 프로그램의 대상자가 아니라 민중의 집 운영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과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과제는 나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회원사업(회원 대상의 사업이 아니라 회원의 역량강화 사업)을 공동체 사업과 분리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민중의 집이 부딪쳐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재정적인 문제가 대표적이고 지방자치단체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과제입니다. 하지만 내부가 단단하게 뭉쳐지고 지역사회가 민중의 집에 많은 신뢰를 보내고 우정을 느낀다면, 다른 단체들의 어려움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첫 돌을 지낸 민중의 집이 건강한 사춘기를 맞이하길 기대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고대에서 무기정학을 받은 학생들의 탄원서이다.
지금 고려대를 운영하고 있는 자들은 참으로 지저분한 이들이다.
이명박의 모교라 그런가, 왜 그렇게 충성경쟁을 하는지...
아니면 제 2의 이건희 사태를 막기 위해서?...
어쨌거나 재판이 잘 되면 좋겠다.
탄원서가 필요하신 분들은 다운을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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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정학 무효 확인을 위한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올 해 3월 고려대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소급적용 받은 7명은 2년간 의 고생 끝에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거의 마쳐가는 학생들이거나 이제 겨우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들입니다. 저희는 이번 무기정학 처분이 이미 출교·퇴학 징계로 2년이나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생한 사람들에게 또 다시 큰 해를 끼치는 징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7명의 청년들은 학교당국의 잘못된 징계결정 때문에 학업 및 사회진출에 차질을 빚었으며 2년간 천막농성장에서 생활한 덕분에 여름, 겨울 다 보내며 허리, 무릎, 피부 질환을 얻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잘못을 했다손 치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은 고통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7명의 학생들이 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이 끝까지 학생들에게 ‘중징계’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이미 졸업한 교우들을 다시 소환해 징계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증인 심리 결과를 들어보아도, 학교 당국이 학생들을 징계를 할 때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나 학생들이 자신을 소명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졌는지 등이 불분명해 보입니다. 2006년 4월 19일 본관에서 벌어진 시위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재판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미 법원에서 “[학생들의 패륜적 행위에 대한] 학교 측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고, 출교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가벼운 징계[견책 1주일, 유기정학 1개월]를 받은 학생들이나 징계하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시위] 가담 정도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며 징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미 학업과 취업에서 2년간이나 뒤떨어진 7명 학생들 개인의 어려움과, 큰 고초를 함께 겪었을 부모님들을 생각해서라도 끝이 없는 소모적 갈등이 중단될 수 있도록 올바른 결정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름 :

소 속 :

연락처 :

서 명 :

*탄원서는 다음 방법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스캔한 후 이메일(runkustu@hanmail.net)로 보내주십시오.

(2) 스캐너가 없으신 경우, 연락 주시면 받으러 가겠습니다.(연락 : 010-4454-3153)

 

*11월 4일 공판 이후 곧 판결이 날 것 같습니다. 판결이 나기 전에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다음 주인 11월 13일 이전까지 처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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