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시민네트워크에서 나눴던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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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풀뿌리민주주의는 가능할까?

   

1. 2010 풀뿌리민주주의

 

1) 2010년의 정국은?

-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 5월 23일. 중앙정치 이슈가 지역의제를 압도할 가능성이 높음.

- 4대강사업, 행정구역통합 등 각종 사업들이 대기하고 있음. 예전 관행을 볼 때 지역별로 각종 개발사업들이 패키지로 공약될 가능성이 높음.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운 개발사업들도 쏟아져 나올 듯.

- 자립과 자치를 모색하는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음.

 

2) 2010년에는 선거만 있나?

- 한일합방 100주년, 4월민중항쟁 50주년, 5월 광주항쟁 30주년. 95년 단체장선거 실시 15주년 등 여러 기념일들.

- 2010년 한 해를 선거만 준비하며 보내야 할까? 4월, 5월의 흐름을 이어 6월의 정치운동, 2011년을 기획하는 운동으로 나아간다면...

 

3) 그래도 선거는 중요하잖아...-.-;;

- 2006년 5․31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48.9%)보다 높은 51.6%. 정당득표율은 한나라당이 53.8%, 열린우리당이 21.6%, 민주노동당 12.1%, 민주당 9.9%를 기록. 16개 광역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2곳, 열린우리당이 1곳, 민주당이 2곳을 차지. 230개 기초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55곳, 열린우리당이 19곳, 민주당이 20곳을 차지. 733명 광역의원 중 한나라당이 557곳, 열린우리당이 52곳, 민주당이 80곳, 민주노동당이 15곳을 차지. 2,888명 기초의원 중 한나라당이 1,622곳, 열린우리당이 629곳, 민주당이 276곳, 민주노동당이 66곳을 차지.

- 전체 당선자의 성별을 살펴보면, 남성이 86.3%, 여성이 13.7%. 광역단체장 16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고, 230개 기초단체장 중에서도 여성은 불과 3명.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선거에서도 여성의원의 당선비율은 각각 4.9%, 4.4%. 대부분의 비례. 지역구 여성 지방의원 비율은 4.26%. 진보정당 진입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적 계층, 계급, 성별 구조가 제도정치에서 대표되고 있는가?

-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당선,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민주당 1명, 진보신당 1명, 무소속 후보 3명 당선, 경기도 시흥시장도 민주당 후보.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서울시 광진구에서 한나라당 후보 1명이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강원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전라남도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 구시군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1석도 얻지 못했고 민주당이 2석, 민주노동당이 1석, 무소속이 2석을 차지.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 선거들을 통해 진보세력은 단결했는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운동은 반MB후보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를 위한 공동후보를 결의할 수 있을까?

 

4) 선거란 무엇을 하는 공간일까?

- 선거는 당선되기 위한 공간. 그러면 낙선되면 모든 게 끝일까?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낙선가능성이 당선가능성보다 매우매우 높다. 그렇다면 선거에 왜 나갈까?

- 선거 때 당선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평상시에 지역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선거 때의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해서 4년 동안 활동한다면...

- 어차피 낙선할 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발언을 하기 위한 공간,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일본의 열혈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 기가 막혀……부러워 침이 다 나오네! 빌어먹을! 잠깐만!? 그럴 게 아니라 입후보해서 직접 해보면 될 것 아냐? 어라, 뭐라고라고라? 마침 그때 선거철이 다가왔기에 주저 없이 입후보를 하기로 했다. 2007년 4월 22일에 투표하는 스기나미 구의회의원 선거였다. 말할 것도 없지만, 금배지가 탐나서 선거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길거리를 우리 것으로 탈환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도해본 것이었다.…나는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벗대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동네 토박이나 유지들한테 잘 보이려고 손바닥을 비빌 필요도 없다.…하여간 이 기간에는 기본적으로 역 앞이든 어디에서든 언론 활동이라면 무엇을 해도 군소리가 없다, 이거다! 이런 해방구가 어디 있을쏘냐? 더구나 선거활동은 공짜로 할 수 있으니까 돈 걱정도 없다.…중간중간에 “가난뱅이가 설치면 매일 축제다, 축제야!” “따분한 이 세상, 얌전하게 살 줄 알고! 가난뱅이의 본때를 보여줄 거야!” 등 마쓰모토 후보의 ‘가두연설’도 섞어 넣었다.…소동은 소동이고 선거는 선거다. 투표일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다음날 개표 결과가 나왔다. 1,061표를 얻어 떨어졌다. 당선하려면 2,000표 이상을 얻어야 하는데 절반 정도 표가 나온 것이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지만, 공탁금 몰수 라인인 400표는 넘겨(넘기지 못하면 사전에 걸어놓은 30만 엔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빌어먹을 규칙)작전은 대체로 성공리에 끝났다.…여하튼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투표소까지 찾아갔다는 것은 대단한 현상이다. 난 평범한 재활용 가게의 손님들이 내게 표를 찍어주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언제나 책장이나 냉장고를 사주는 아줌마 집에 배달하러 갔더니 “점장한테 한 표 찍었어!”하시는 거였다. 또 이웃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우리 가족 전부 마쓰모토를 찍었어”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 그래도 선거가 중요하다면 주민들의 책임서명 운동을 하면 어떨까?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뽑은 책임을 지고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서명운동. 선거감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가 스스로 결의하고 동네 일에 참여하겠다는 공정선거운동...

 

 

2. 2010년을 바라보는, 주민들을 만나는 단체활동가들의 역할

 

1)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야...

- 당선자는 행복했을까? 그나마 당선되면 노련한 지역 활동가가 사라지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지역정치인이 생기는 장점(?). 허나 지방의회에서 소수파로서 그다지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고 개인적인 야심에 따라 활동영역을 광역, 국회의원 등으로 넓히다보니 정작 자기 기반이 약해짐.

- 단체 후보를 당선시킨 단체는 행복했을까? 출마 후 지역단체들의 활동영역과 지역정치인의 활동영역이 괴리되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하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음. 단체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도움을 못 받는다는 불만, 정치인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소수파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

- 선거를 통해 민중권력을 창출했다? 새로운 지역비전을 만들었다? 과거 울산의 경험을 보면 그런 평가는 불가능하다.

- 보수정치인들은 모두 바보다? 한나라당에서 공천받아 출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공천권을 딴 사람들일까? 그들은 지역기반도 없이 한나라당에 기생하는 사람들일까?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관변단체 출신이라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우리는 적에 대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반면 우리 활동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 과거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임파워먼트(개인적 임파워먼트와 조직적 임파워먼트)를 강조했다. 왜 그럴까?

 

2) 정치에 상상력을!

- 정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구조를 개혁할 뿐 아니라 권력을 주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정치권으로 투신하고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것, 분명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치세력화는 더욱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실현된 적이 있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 걸까?

-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것보다 선출되고 난 뒤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 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을 강조한다. ‘대리인 운동’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리인만큼 중요한 것이 상호성장이라고 본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든 그 속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 제도권 밖의 운동이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고민에 활력을 제공하는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체계가 있어야 정치세력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 선거는 승리하든 지든 지역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서로 치유할 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있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은 없나?

- 선거에 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는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정치화되고 정치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저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다. 정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주민운동에 요구된다.

 

3) 바이러스가 되자.

- 바이러스는 왜 무섭나. 바이러스는 종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불가능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언제나 변종을 만들어 낸다. 항상 정통과 순수를 고집하는 우리 문화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활성화시키는 문화적 균열을 만들어내야 한다.

- ‘나는 한 놈만 친다’는 주유소습격사건의 정신을 가지자. 끝까지 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바이러스가 되자. 주민들 한명 한명이 자기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게 하자. 우리 사회는 이런 정신이 부족하다. 미국산쇠고기 수입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 정치적 중립성은 포기하자. 특정 정당보다 특정 정책을 지지하면 부담은 줄어든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만들려면 내 자신 스스로가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나는 진정 정치적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정치적 바이러스인가?

- 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법의 활용. 정치적 기회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야. 스스로 움직이고 증식하고 복제하는 바이러스가 되자. 바이러스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라 싫으면 백신이 되자...^^;;

 

4) 소위 진보정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하자!

- 시민단체는 정치적으로 엉거주춤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지만 진보정당은 분명한 입장을 나타낼 수 있다. 시급한 것은 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 특히 균형발전에 대한, 지역정치에 대한 당의 입장을 요구하자. 진짜 민중권력인가?

- 국회에 진출한 자원과 지역의 연결가능성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하자. 즉 아젠다 형성과 정책연관성을 살리고 법률과 조례가 결합하는 중간매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선서를 받자.

- 지역 내에 이미 마련된 풀뿌리 인프라에 대한 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역의 자원이 겹칠 경우 당은 자기정당 후보의 당선을 고집할 것인가? 정당공천제를 팔아 자기 이익을 꾀하는 정당이려는가?

- 정당공천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단체가 함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negative한 전략이 아니라 positive한 전략으로 자치정책의 가능성을 제안하자.

- 안 하면 친하게 지내지 말자...^^;;

 

5) 지금부터 지역사회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하자!

- 계획을 짜는 사람들은 바로 주민이다. 우리 지역사회의 자원, 기술, 문화, 지식, 절차를 찾아내자.

- 진보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이런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자. 4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도 로드맵을 짜보자. 중간중간 평가과정을 거쳐 못 하면 혼내주자.

- 지역단체들이 내년 선거에서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그 내용을 분명히 만들고 선거가 끝난 뒤가 아니라 2010년 말에 평가하자. 선거에서의 목표는 당선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정책, 청소년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의제들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순환되도록 하자. 단순히 선거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를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자.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회계보고서’처럼 주민조직의 ‘생활정치보고서’를 만들어도 좋을 듯. 그러면 4년마다 형식적으로 선거를 준비하지 않고 조금씩 축적된 역량을 갖출 수 있을 듯. 이번 선거 시기에는 이것을 이슈화하고 다음 번에는 다른 것들을...

 

 

3.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 정치 사례

 

- 다른 나라 얘기는 지겨우니 그만 하자. 그래도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자.

-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교과서는 마치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이 이 저항을 일으킨 양 묘사하지만 3․1운동은 민중의 거대한 꿈틀거림이었다. 자신이 자주민(自主民)임을 자각한 민중은 그 이후 60일 동안 1,214회의 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가 박은식에 따르면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200여 만명이 참가했고 그 중 7,509명이 사망하고, 15,850명이 부상당했으며, 45,306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조선총독부는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하고 12,00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다). 독립선언서가 이 운동을 자극했을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물결을 움직인 힘은 민중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왔다.

- “안성의료생협 이사회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상당히 보수적이거나, 협동적이지 않거나, 민주적이지 않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3년 혹은 6년 이사회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적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분들이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난 후, 지역사회 농협의 이사가 된다든지, 농협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 된 이사를 중심으로 해서 서포트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든지,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안성의료생협의 한 실무자 인터뷰 중.

- 부산의 한 지역에서 아주머니들과 지역신문을 만들 던 G씨는 저녁에 편집회의를 할 수 없었다. G씨를 제외한 전원이 주부였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모임 중에 서둘러 집에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에 G씨는 남편들을 참여시키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남편들을 일일이 만나기로 하였다. G씨가 선택한 방법은 남자들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 온 저녁 시간마다 소주 몇 병씩을 사들고 이들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1년 정도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마을의 남성들과도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에 따라 G씨와 자신의 아내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이들은 마을 일에 대한 적극・핵심 참여자가 되어 있다.

- 강원도 원주시에는 전체 30만 인구 중에 2만 명 이상이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전체 자산규모가 4천여 억원에 이를 만큼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다수의 협동조합들이 건설되고 조합원 수가 늘어나는 현상과는 별개로 지역사회는 점차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여타 지역의 상황과 그리 차별적이지 않았다. 이는 협동조합의 사업적 성과가 지역사회로 연계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에 원주지역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협동조합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대안적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별 협동조합의 발전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협동조합의 철학과 원칙에 따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여 <원주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주민참여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생명의 도시에 걸맞게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구조를 만들며, 협동경제의 이윤을 지역복지 개선을 위해 환원하는 등 진정한 지역공동체 건설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에서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시기에 복지정책를 주요한 정책적 이슈로 제기하기 위하여 시장후보들에게 제안할 구체적 복지정책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천안의 복지기관 및 단체들에 네트워크를 제안하였다. 정책 제안은 각 복지기관 및 단체들이 자신들의 복지영역에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고 이것을 전체가 모여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천안을 복지세상으로 만드는 33가지 방법’이란 정책제안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제 복지기관 및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차기 시장에게 관철하기 위하여 가능한 많은 주민들을 이 토론회에 동원하였고, 결국 사회복지라는 단일 주제에 따른 토론회에 1,000명 이상의 유례없는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였다. 이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장은 이들의 주장 대부분을 정책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같은 성과가 발생하자 보다 많은 사회복지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으며, 다음 선거인 2006년 선거를 대비하여 <531지방선거 복지천안을 위한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지난 번 선거에서 이 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한 참여 주체들은 이때에도 사회복지 예산, 지역복지인프라, 아동보육 등 모두 9개 영역 23개 의제를 확정하여 900여명이 참여하는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두 번의 성공적 사례는 천안시로 하여금 이 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내용에 무게를 싣도록 하였으며, 현재에는 천안시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 성공한 사례, 실패한 사례 모두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사회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모범답안은 없고 해법은 밖에 있지 않다.

경희대 대학원보에 쓴 글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좀 드러내보려 했다.
어쩌면 드러난 명박이보다 그것의 실체 없음, 사람들의 생각하지 않음이 그 실체일지 모르겠다는 추측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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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족족’ 검거하기 바라고 설사 인도에 산재되어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해 주길 바랍니다. 검거위주로 해서 시위대를 좀 많이 잡아야 돼”, 시위대를 보면 무조건 쫓아가서 잡으라는 경찰의 섬뜩한 무전내용이다. 그런데 이 무전의 시점은 과거 군사정권 때가 아니다. 2009년 5월 촛불 1주년 집회 때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일선 경찰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런 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단체들은 불법폭력시위단체로 규정되어 정부지원이나 기업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국가브랜드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집단이기주의로, 철거민들은 도심 테러리스트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기도 했고, 군조직인 기무사가 움직인다는 소문도 솔솔 퍼지고 있다. 또한 정부는 새로운 저항의 양산박으로 떠오른 인터넷을 저작권법,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각종 법들로 규제하려고 들고 있다.

정부에 반대하기 때문에 사회의 악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은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아니기에 더 이상 정치는 필요 없다. 이렇게 정부의 억압이 강해지고 정치가 사라지면서 ‘파시즘’, ‘파쇼’, ‘전체주의’같은 단어들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면이 공포의 전부는 아니다.

 

플루토크라트와 대중의 공포

 

옆 나라 일본에서는 불안을 뜻하는 precarious와 노동자를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인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는 말이 유행이라 한다. 미래를 계획하며 삶을 준비할 수 없는 비정규직/일용직 시대,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승자독식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는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불안을 나눠 갖는 건 아니다. 금권정치(金權政治)를 뜻하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나라, 한국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재벌 총수들은 줄줄이 사면되고 파업노동자와 촛불시위대는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는 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가 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의 몸부림이 떼잡이로 낙인을 찍히는 나라에서는 공포도 사람을 가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함을 견뎌야하는 대중은 자기 삶을 틀어쥔 금권정치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만한 경쟁력을 갖추는 ‘미션 임파시블’을 강요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도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건 권력의 무서움보다 삶의 가벼움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폭력적인 이명박 정부보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나 철거, 실업, 비참한 상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20년대의 대공황과 혼란 역시 사람들에게 이런 두려움을 줬다. 그리고 그 시대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를 출현시켰다. 이 체제는 수많은 유대인, 집시, 빈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를 쓴 힐베르크(R. Hilberg)의 표현을 빈다면) 독일인의 일상을 ‘파괴기계’로 만들었다.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Eichmann)의 인상은 피에 굶주린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이자 옆집 아저씨였다. 악마는 사악한 의도를 가진 범죄자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협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숨은 악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사람을 생명이 아니라 사물로 대하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불확실성의 생존경쟁, 전체주의의 작동방식

 

사실 그 원인을 분명하게 알면 사람들은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화장실의 귀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공포스러운 건 그것이 우리 일상 속에 잠재해 있을 뿐 아니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모르는 공포, 규칙도 합리성도 없는 공포, 그런 점에서 바우만(Z. Bauman)은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에서 불확실함이야말로 공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얘기한다. 정체를 모르기에 맞서 싸워볼 의지조차 품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공포이다. 그리고 그런 공포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벨트를 단단히 차고, 한층 더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홀로 남겨지는 공포, 추방당하는 공포”야말로 공포의 최고봉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가장 큰 특징이 비밀경찰이나 친위대같은 폭력적인 국가기구보다 ‘무정형(無定形)의 지배구조’라고 지적했다. 공무원과 정당, 정당 밖의 돌격대 등 여러 세력들이 제각기 지도자의 뜻을 받들고 있다며 주장하고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용산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4대강 사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지도자의 의지는 모든 곳에서 언제나 구현될 수 있으며, 지도자는 어떤 위계질서에도, 심지어 그 스스로 구축한 것에도 묶이지 않”는 사회가 바로 전체주의 사회이다.

더 나아가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불러오는 공포에 대한 오해도 지적한다. 전체주의 공포정치는 정치적인 반대파를 제거할 때가 아니라 그들을 제거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공포정치의 필수품인 숙청과 비밀경찰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파가 사라지고 난 뒤에 등장하고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감시한다. 이들은 국가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객관적인 적’을 규정하고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를 만든다. 지목된 용의자들은 갑자기 ‘수용소’에 갇히고 이 사회에서 사라진다(올 10월 7일 정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던 이주노동자 미누가 잠복해 있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들에게 갑자기 표적단속되어 추방을 기다리고 있듯이).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용의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은 서로를 고발하며 충성을 증명하고, 그렇게 서로에게 죄를 지으며 그 체제의 공범자가 되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 정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다한다. 전체주의는 모래알처럼 분리된 대중에 의해 힘을 얻고 그렇게 지속된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무서움은 드러난 억압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서로를 불신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눈에 드러난 독재자보다 형체 없는 지배가, 승자독식의 파괴적인 사회에 홀로 버려져 있다는 대중의 두려움이 전체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공포와 희망의 변증법

 

허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암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언제나 시민들의 수많은 저항이 강력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왔다. 현실세계의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 진지를 구축하고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공포에 시달리지만 그 공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의 뿌리를 내리려 한다. 억압을 감내하는 능동적인 정치행위와 동료 시민에 대한 믿음․연대는 전체주의 체제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희망을 퍼트리고 공포를 몰아낸다.

하지만 단지 눈에 보이는 정치인을 바꾸거나 정권을 바꾸는 것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형체를 드러내고 승자독식의 경쟁구도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공포의 정치는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다스리는 삶의 기반을 다질 때에만 우리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가장 급한 과제는 모래알처럼 분리되어 적대적으로 경쟁하는 대중에서 벗어나 서로 보살피고 협동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공포를 희망으로 만들 변증법의 힘은 서로의 고통에 슬퍼하고 연민하는 시민들의 소통과 공감, 울림에서 나온다. 의심을 거두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희망이 쌓인다.


한국사회에서 인사청문회는 평범한 시민들이 평소에 보기 드문 힘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기회는 언제나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만을 심어줬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아무런 의혹을 받지 않고 공직을 맡은 사람이 단 한 사람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의혹이 제기된 분야는 다양하지만 하나 같이 일반 시민들은 벌이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자녀들의 병역이나 국적의혹, 편법증여 등 인사청문회장은 ‘위법과 탈법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런 의혹이 문제일 수 있는데 하물며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사람들이 그 모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내성이 생겨서인지 사람들은 이제 크게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장관후보자를 여당이 감싸고 야당이 물고 뜯는 지겨운 광경을 봐도 이제 시민들은 원래 그러려니 한다. 장관들의 위장전입 정도는 눈감아 줄만큼 마음씨 좋은 시민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그 옛날 공화국을 만들었던 시민들은 정치인의 부패를 가장 경계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말 큰 걱정은 그런 부패가 일반 시민들에게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화국의 시민들이 법을 우습게 여기며 지키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되뇌는 순간 그 나라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법치주의는 시민들의 상식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들의 굴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인사청문회는 시민들이 부패를 학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청문회장에서 공직자들은 자신의 부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사과만 하면 되는 사소한 일로 여긴다. 심지어 오리발을 내밀거나 그게 무슨 죄냐며 위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패를 능력으로 여기거나 그것에 무감각해진다. 생중계로 목격하고 재방송으로 복습하면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혐오감을 배우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치나 민주주의가 꽃을 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인사청문회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여러 정당들에서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내세우는 명분이야 다양하지만 정당들의 속마음은 이제 웬만한 흠집을 덮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공직을 맡을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검증과정을 거치고 그나마 가려주니 이 정도이지 정말 모든 걸 공개하면 우리는 아사리판를 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만 가득한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차지하고 있고 시민들이 이를 묵인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이럴 바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차라리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거짓말로 일관하고 제대로 검증할 생각조차 없다면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부패와 거짓말을 학습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일은 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대신에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 그 공로와 과실을 엄격히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을 담당했던 사람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옛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에는 감사위원회가 있어 임기를 마친 공직자들의 정책결정을 법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그래서 사사로이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고 엄하게 법적으로 처벌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인사청문회를 열든, 감사위원회를 만들어 사후평가를 내리든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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