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것질의 추억
음식으로 맺는 인간관계 점점 단절… 함께사는 행복세상만들기 고민할때
2009년 03월 20일 (금) 하승우webmaster@kyeongin.com
   
 
   
 
찬바람이 부는 초봄, 지하철역을 나서다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오뎅이나 떡볶이를 보면 잠시 망설이게 된다. 잘 구워진 풀빵이나 호떡을 봐도 꿀꺽 침을 삼키게 되는 걸 보면,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군것질의 잔재미는 강력한 유혹이다.

그런데 그 강한 유혹을 견디며 망실이게 되는 건 저 오뎅이나 호떡의 재료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 때문이다. 중국산 재료나 미국산 쇠고기가 식탁을 차지해버린 시절에 거리에서 파는 군것질 재료들이 국산이기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물질들이 중국산이나 수입 재료들에 섞여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출처를 모르는 음식을 꺼리며 불안함에 빠져든다. 그러다보니 정겹고 유혹적인 군것질거리들은 점점 추억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렇게 밀려나는 게 단지 추억만일까? 예전에는 먹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소재였다. 새로운 곳에 이사를 가면 이사떡을 돌리고, 맛난 음식을 장만하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는 풍습은 먹거리에 담긴 관계성을 잘 알려준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전에 한 점 떼어 고수레 외치며 버리는 행위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의 뭇 생명들과도 먹거리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어떤 생명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보편성은 음식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이미 맺어진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어릴 적 군것질을 즐긴 것도 단지 그것이 먹을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군것질을 하며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오뎅이나 떡볶이를 사가면 뜻밖의 먹을 것에 즐거워할 친구나 가족 등이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 보면 나눠 먹을 음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안을 넘어 고립과 고독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논리나 통계수치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고립과 고독을 합리적인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런 관계가 거짓일 뿐이라며 자기 살길이나 잘 닦으라고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지만 우리는 언제나 외롭다. 주말이면 모든 텔레비전 채널이 가족적인 느낌으로 가득 채워지는 건 우리가 외롭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가족처럼' 행동하는 걸 보며,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패밀리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자신의 고독함을 달랜다. 그리고 집에 앉아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웹서핑을 하며 우리는 고립감을 달랜다.

그러나 그런 일시적인 달램이 일상적인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현실의 고립을 그런 가상의 관계로 달래고 있는 우리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다. 대문 밖만 나서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현실, 타인에 대한 사소한 친절이나 관심이 범죄의 소재로 변해버린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친절하게 먹을 것을 나눠도 그것을 선뜻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선의(善意)조차 의심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살아갈 능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회가 천국이겠으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사회는 지옥이다.

이런 사회에 살면서도 과연 우리가 삶의 안정과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런 고독과 고립이 파괴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다룰 정치마저 파괴한다. 서로 반가이 만나며 전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하는 과정인 정치는 이런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마치 쇼핑하듯 자신의 고립된 욕망을 채워줄 정치인에게 투표할수록 관계가 만드는 공유의 영역이 파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이제 군것질과 같은 사소한 삶의 재미들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이 고독한 세계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전 캐나다의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킹 독트린』이라는 책을 읽었다. 전 세계의 재난 현장을 돌아보고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학자는 위기가 권력을 독점시킨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다. 가난하고 약한 대다수 사람들이 쓰나미나 전쟁같은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소수의 기업과 정치인들은 그런 재난으로 이득을 취하며 더욱더 배를 불리고 있다. 저자는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이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른다.

이 책은 한국도 사례로 다룬다. 1997년 IMF로 쇼크를 경험한 한국정부는 경제규칙을 바꿔 다국적 기업이 한국을 마음껏 유린하게 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2년 동안 세 배나 늘었고 많은 산업시설과 노동력, 자원이 외국회사로 넘어갔으며 자살률은 두 배나 증가했다. 저자는 이 모든 불행이 우연한 사고보다 의도적인 공격과 약탈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금모으기 운동은 ‘저질게임쇼’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만약 나오미 클라인이 지금 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떻게 분석할까? IMF를 거치며 위기에 대비하기는커녕 우리 사회는 더욱더 위기에 취약해졌다. 식량자급률이 24%에 지나지 않고 에너지의 97%를 수입해야 하는 사회, 환율과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사회, 좋은 일은커녕 제발 더 나쁜 일만 생기지 않기를 기대하는 게 지금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얘기하듯이 모두가 어렵고 힘드니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 삶이 나아질까?

일단 모두가 고통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LG, SK, 국내 4대그룹의 2008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매출 1위 삼성은 220조원으로 2위 현대차의 110조원을 2배나 앞섰다). 그것도 2007년의 473조원에 비해 약 62조원이 늘어났으니 엄청난 성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매출이 늘어났으니 축하할 일일까?

하지만 4대 기업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결코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다. 경제의 규모와 영향력이 몇몇 재벌들에게 집중되는 건 소수가 지나친 권력을 가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재벌들은 그런 권력을 이용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왔기에 그런 집중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껏 알려진 것만으로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회사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피해를 입힌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LG그룹의 구본호는 주가를 거짓 공시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비리와 부정의 온상인 기업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재벌들은 일자리 창출을 거부하며 금산법이나 방송법 등 더 많은 이윤을 볼 투자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고통분담을 얘기하려 하는가? 고통은 결코 분담되지 않고, 사회의 약자들에게 집중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위기는 일종의 기회인 셈이다.

더구나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민을 쇼크 상태에 몰아넣을 이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권력독점을 막으려는 시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정부나 기업 외엔 그 누구도 경제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는 시민에 대한 경고이니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정부나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민을 철거민으로, 도시게릴라로 내몰아 그 삶을 송두리째 뽑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런 억압에 시민이 지치면 북한과 충돌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며 반전을 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쇼킹 코리아가 너무 싫어 모두가 짐을 싸서 떠나거나 더 이상 순종하는 시민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까?

어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적 지방자치'와 관련해 강연할 때 참고한 자료이다.
예전에 썼던 글을 조금 고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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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지방자치와 지방권력의 강화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지방권력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해 왔다. 근대적인 정치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지방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인들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활동하고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밀리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중앙권력이 전체적인 발전전략이나 정책을 구상하고, 지방권력은 그런 구상을 실행하는 역할분담구조가 자리를 잡아왔다. 그리고 중앙의 정치인이 지역엘리트의 뒤를 봐주고 지역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중앙-지방의 후견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이런 권력의 역할분담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였고,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고 국민주권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기에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이후에도 계속 시련을 겪어왔다.

그 문제점은 여러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일단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는 바람직한 자치에 관한 상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즉 행정자치와 경찰자치, 교육자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분권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분권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이고 중앙부처의 힘이 여전히 강력하며 지방정부의 의견은 배제되고 있다. 사실상 국토의 불균등발전과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가 중앙과 지방간의 힘의 격차를 계속 벌이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전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분권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기도 하다.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상황은 분권과 지방자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온 뒤에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도권 인구 비중만 해도 2007년 48.6%로 증가했다. 금융기관 대출의 수도권 비중은 95년 59.3%에서 2007년 68.3%로, 은행예금의 수도권 비중은 95년 64.8%에서 2007년 68.4%로, 대기업․중소기업의 수도권 비중은 1999년 49.2%에서 2006년 53.4%로 커졌다. 그리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지방재정 규모가 중앙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2004년 기준)이지만 의존재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재정자립도가 50% 미만인 자치단체가 전체의 84.4%를 차지) 분권 이후에도 역할분담구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집중화 현상은 지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즉 지방의 대도시들이 다른 지역의 인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수도권의 중심이 서울이라면, 부산과 울산이 경남권의, 대구와 포항이 경북권의, 전주와 익산이 전북권의, 대전과 천안이 충남권의, 청주와 충주가 충북권의, 춘천과 원주, 강릉이 강원도권의 수도권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중심부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사회는 경제기반이 붕괴되고 인구가 줄면서 침체위기에 빠져 있다(강준만 2008).

따라서 지방선거를 치러도 중앙정치의 상황이 선거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중앙정치에 호흡을 맞춰야 자기 지역을 살릴 방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들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도 여전히 중앙집권적인 정치, 행정구조를 알리바이로 삼아 자신들이 응당 맡아야 할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방치하고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독자적인 권력구조를 확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즉 지방정부는 지방의 자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정부의 견제와 감독을 피하고, 중앙집권적인 행정구조와 빈약한 재정을 핑계 삼아 지역의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방의 단체장들은 예산을 무리하게 집행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각종 부조리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예상된 것들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는 수동성을 강요당했고 중앙정부의 대리인들이 지역의 권력을 나눠먹기 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억압적인 군사정부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여를 빌미로 각 지역에 행정동원형 주민기구들을 만들었다. 시․군자문위원회(1962), 시․도정 자문위원회(1964), 리․동개발위원회(1972) 등 각급 위원회들이 만들어져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그 정책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주로 지역의 토호들이 이런 위원회를 여러 개 장악하며 공무원들과 연줄관계를 형성했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는 통, 반장을 중심으로 한 ‘반상회’가 공식화되어 주민들을 동원하고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협의회, 민족통일협의회, 사회정화추진협의회, 청소년선도위원회, 자유총(반공)연맹 등의 단체들이 조직되어 중앙정부의 민간동원단체로서 지방권력을 분점해 왔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지방자치 = 민주주의의 심화’ 또는 ‘분권 = 시민사회의 강화’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30년 이상 군부정권 하에서 조직적으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지역의 권력구조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지방선거 역시 이런 지역의 보수성을 강화시키는 장치로 작동했다. 더구나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의 고리는 지역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런 보수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런 보수성을 약화시키고 분권의 민주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한국의 사회운동단체들 역시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싸우기 위해 중앙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 역시 지방이나 지역보다 중앙정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에의 참여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과정을 살펴볼 때, 한국사회에서 분권은 단순히 국가의 기능을 줄이고 권력을 분화시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를 자극하고 생활정치를 활성화시키는 능동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민주적인 권력구조가 세워지도록 기존의 보수화된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민주적인 제도를 확립하며 그 제도를 운용할 능동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즉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지방자치는 지역사회에 대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정부의 역할은 지역의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고 진보정당은 이런 능동적인 역할을 자극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또한 진보적 지방자치는 한국사회의 미래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중앙집중형 국가는 통일을 대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로 주장되는 연방제가 아니라 진보적 지방자치에 기반한 연방주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에서 각 지역정부를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연방정부로 전환해 통일국가를 운영하는 ‘코리안연방공화국’을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당헌에 따르면, “국가사무를 대폭 지방에 이양함으로써 지방행정권을 확대하고 국세중심의 재정을 개혁하여 지방정부의 재정을 강화하도록 하고 자치입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국민의 소환권과 발안권 등으로 직접 민주제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민중의 직접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직접민주주의 경험과 진보적 시민운동의 권력감시 활동을 적극 활용한다. 나아가 건전한 시민단체 대중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폐지하는 등 대중의 정치활동을 적극 보장, 실현한다.”

이런 당헌을 실현할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제도개혁만으로 연방주의가 완성될 수 있을까? 제도는 사회를 감싸는 옷일 뿐이다. 참여의 정치문화를 만들고 능동적인 시민들을 만드는 과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분권을 실시하고 참여제도를 도입할 뿐 아니라 제도를 활용할 능동적인 시민을 만드는 과정을 만들 때 실현될 수 있다.

 

 

2. 현재의 지방권력구조가 가진 문제점

 

1) 제왕적 단체장제도와 후견주의 피라미드

한국의 단체장들은 지역사회의 공식적인 정책행위자이자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행위자이다. 단체장은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배정의 우선순위를 최종결정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인사권한을 이용해서 공무원들도 장악하고 있다. 단체장의 권한은 지역의 발전방향을 정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그런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단체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거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견제할 권한을 가진 지방의원들과 지연, 학연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재선을 노리는 의원의 지역구 숙원사업을 지원하고 의원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협력과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또한 단체장은 건축이나 위생 등 주민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에 대해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기업들도 좌지우지하며 부패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단체장은 지역토호들을 지원하거나 직접 주민들을 상대로 인기성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며 다양한 득표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단체장은 공무원과 지방의원, 기업가, 지역토호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자원들과 개별적인 교환관계를 맺으며 지방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별적인 교환관계들이 확장되면 후견인-피후견인 피라미드(patron-client pyramid)가 구성된다.

또한 단체장은 이런 지역적인 후견주의(clientelism)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중앙의 유력정치인과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를 구축한다. 왜냐하면 지역후견주의 피라미드의 유효성은 단체장의 지위와 권력, 자원에 의존하는데,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것은 중앙정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의 단체장들은 여당이 되기 위해 잦은 정당입당과 탈당을 시도한다(박종민, 2000)

 

2) 지방의원의 과잉대표와 부패의 네트워크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들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익을 채우는 사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즉 지방의원들이 공공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의 토지이익을 추구하거나 직무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면서 이권을 추구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이런 이권추구는 단체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지방의원의 의무를 거스르며 단체장과의 유착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실제 예를 통해 살펴보면 2006년에 당선된 대전광역시 지방의원들의 경우, 개별업종별로는 상업종사자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건설업이나 금융업 및 광공업이, 운수업과 농축임수산업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렇게 지방의원의 직업점유율이 3차 산업과 2차 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자영업자들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과잉대표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지방의회 자체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배응환, 2006). 그리고 이런 직업배경은 정당 소속과 무관하게 개발위주의 사업편성을 지지하게 만들고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한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의 경력을 살펴봐도 대전광역시의 경우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모두가 관변단체, 지방의원, 정당인, 경제인 등을 경험했다. 지방의원이 되려면 정치나 관에 연결되는 관변단체나 정당조직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증명된다(배응환, 2006). 즉 새롭고 참신한 인물이 지방의원으로 선출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지역권력구조에 편입된 인물들이 지방의원으로 선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역사회내의 부패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3) 지방공무원의 성과주의와 정실주의(patronage)

2000년에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8.1%가 지방정치의 문제점으로 공무원의 부패구조를 꼽았고, 응답자의 72%가 지역토착세력과 관료의 유착관계가 심하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강명구, 2000).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공직윤리와 업무수행능력을 불신하고 지역의 토착세력과 공공부문의 공무원들이 부정한 거래를 일삼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한국의 지방공무원사회에는 사실상의 인사권을 가진 시장에 대한 줄서기 및 지연과 학연에 의한 연고주의 등 전근대적인 습성과 전국규모의 통일성과 신분보장이라는 근대적인 습성이 혼재되어 있다(최승범, 2002). 그래서 공무원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서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단체장들이 보유하게 된 강력한 인사권을 의식(퇴임후에는 지방공기업 임원으로 배치)해 단체장에게 복종하는 이중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선거 때마다 공무원들의 줄서기 현상이 심해지고 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공무원들이 지방선거에 개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4) 토호세력의 강화

지역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가문, 학연,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지역현안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사회 엘리트 개인이나 집단을 지역토호라고 부를 수 있다(박재욱, 2000). 그리고 이런 지역토호들은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각종 위원회나 관변단체들에 넓게 포진해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에게 많은 지원을 받으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연히 이들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정치적인 영향력은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예총, 대한노인회, 한국소비자연맹, 체육회, 보훈단체(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대한무공수훈자회), 지방문화원, 광복회, 새마을단체, 바르게 살기운동단체, 한국자유총연맹, 이 13개 단체는 관련 법률을 통해 많은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지원금이 2004년에 사회단체보조금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이들 13개 단체가 전체 보조금 중 약 60%에 달하는 734억원을 지원받았고, 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3개 단체가 전체 액수의 30%, 약 340억원 가량을 지원받았다. 그 뒤 이들 단체에 대한 지원액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지방정부들은 이 삭감분을 민간경상보조금, 민간행사보조․위탁금 등으로 보존해주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사업을 보조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들 3개 단체들은 지원금의 80% 이상을 운영비로 지출하고 각종 사업비조차 지방정부에게 받아서 지출하고 있다. 또한 새마을단체는 전국 137개소에서 지자체의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187개소, 한국자유총연맹은 138개소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다. 이런 편중된 지원은 이런 단체들을 장악하고 있는 토호들의 힘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언론들(중앙언론의 지사들 포함) 역시 지역의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를 감시하기는커녕 관언유착 관계를 맺고 있고, 기자와의 간담회나 주민계도용 신문구입 등은 지역언론이 감시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런 지역언론은 어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단순한 사실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지방정부의 편을 들기도 한다. 또한 지역토호로 불리는 세력들이 지방언론지를 만들어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5) 일당의 지배구조와 지역정책의 부재

지역주의 공천과 투표로 인한 특정 정당의 지방정부 독점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의 75%, 기초단체장의 67%를 장악했고 광역의원의 76%, 기초의원의 40%를 장악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집행권과 감시․감독권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에서 민주당은 전체의 57.6%에 해당하는 의석을 얻었고 전남에서도 64%의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이런 일방 지배구조 하에서 지방정부의 내부적인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가 강하다보니 지역에 관한 정책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2006년 지방선거에서 핵심쟁점은 두 가지, 중앙/지방권력 심판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정책구성의 토대가 되는 지역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나 지역현안에 관한 분석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주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난개발, 개발들과 관련된 공약들이 정책자료집을 채우는 실정이다.

 

6) 지역시민단체의 침체

지역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정당체계를 보완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이익을 규정하고 요구할 수 있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훈련과 정치참여를 자극할 수 있으며 지역의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시민단체들은 그런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지방정부가 여는 공청회나 토론회에 참석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수준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앙정치를 무대로 활동하는 단위가 지방자치나 지역의제와 관련된 고민을 심도 있게 진전시키기도,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학교나 교회, 주민조직과 같은 미시적인 공공기구에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정상호, 2006). 또한 주민들의 관심이 지역사회에 맞춰져 있지 않고,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라는 현실에서 시민단체들의 당위적인 주장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후견주의 피라미드의 힘에 계속 밀려나고 있다.

 

 

3. 진보적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자치제도 개혁

 

1) 단체장권한의 견제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일차적인 권한은 지방의회에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일당지배 구조에서 지방의회가 얼마나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앙정당의 정체성이 지방의원의 판단력을 결정하거나 의원의 이해관계를 대체하지 못하고, 소수당이라도 발언하고 개입할 기회를 가지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예산심의권한 외에 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최소한 의회사무국에 관한 인사권 확보)을 지방의회가 가져야 하고, 행정사무에 관한 지방의회의 조사권(관계자의 출두, 증언, 기록제출 요구를 거부할 시 처벌 강화)도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유급제가 되었으니 매년 1회의 정기 행정사무감사방식을 벗어나 일상적, 상시적인 감시․견제기능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즉 중앙정부가 단체장을 견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수평적 권력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그러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정당이 책임을 지고 의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2) 정보공개제도의 활성화와 투명성 확보

2000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참여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응답자의 29.3%가 참여제도의 미흡을, 24.2%가 지방행정에 관한 정보부족을 꼽았다. 사실 참여는 당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참여의지를 뒷받침하도록 그와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보공개제도는 공무원, 시민 모두의 의식과 행동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1998년부터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정보공개수준은 형편없다. 특히 ‘시민참여’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정책결정과정”과 “예산집행”에 대한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시민운동도 정보공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폐쇄성이 더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하승수, 2002).

따라서 실제 정보공개에 소요되는 비용(복사수수료를 인하하고 공익과 관련된 경우 전액 감면)을 줄이고, 정보공개심의회의 공무원비중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보공개를 청구하기 전에 지방정부가 예산이나 판공비, 행정과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한국의 청주시와 안산시는 이런 정보공개를 시민/주민참여조례안으로 명문화시켰다).

그리고 중앙공직자만이 아니라 지방공직자들도 자신들의 재산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법이나 겸직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고 공공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3) 4인 선거구제로의 개편과 정당법, 선거법 개정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일당지배 현상을 극복하려면 선거구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일본의 경우 3~5인 선거구제를 택해서 소수파의 의사가 충분히 의석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자치단체들이 임의로 쪼개놓은 2인 선거구제를 4인 선거구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광역의원만이 아니라 기초의원에서도 여성비례 50% 이상을 강제조항으로 만들고, 가능하다면 공천에서 프랑스처럼 남녀동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현행 정당법의 규정을 완화시켜서 지역정당(local party)의 등장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토착형 지역정당이 아니라 지역차원의 네트워크형 정치운동조직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관변단체나 후견주의 네트워크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초록정치연대>나 다른 풀뿌리지역운동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운동과 제도정치를 연계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법 개정을 통한 지역정당의 설립은 지역정책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도가 올바른지 고민을 해야 한다. 책임정치 실현이라는 구호는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정당이 분권형 정당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정치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에게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호배정은 올바르지 않다.

 

4) 관변단체에 대한 통제

지역사회에서 과도하게 대표되는 정치세력들의 힘을 제어하고 시민참여의 활성화를 자극하는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3대 관변단체를 위시한 지방정부의 외곽단체들에 대한 임의적인 사회단체보조금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보조금을 전면적으로 중단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운영비 지급을 점차적으로 줄이거나 금지해서 보조금이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사회단체보조금조례를 제정해서 사회단체보조금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체 출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방정부 내의 각종 위원회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공직자윤리위원회, 교육경비보조금심의위원회, 보육위원회 등 수 십개의 위원회들은 1년에 회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같은 인물이 여러 개의 위원회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통합이 필요한 위원회들은 과감하게 통합하고, 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비중을 줄여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위원회들에는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겠지만, 자원봉사의 개념이 강하고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하지는 않은 위원회(예를 들면, 주민자치위원회나 보육위원회 등)에는 일반 주민들 중에서 참가 의욕이 있는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4. 진보적 지방자치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의 연계방안

 

1) 생활정치에서 정당의 역할

정당은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연계하는 틀이 될 수 있다.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할 때,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의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치-지방정치간 상호건설적인 협력을 이룰 수 있다”(김욱, 2006) 그리고 정당은 지역정치의 첨예화를 막는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또한 정당은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무원들에게 단체장이나 의원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즉 정당은 지방자치단체의 의사결정과 성과에 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의 민주화 없이 정당의 지역정치 참여를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고 정당 내부조직의 분권화와 운영방식의 민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정당공천제도는 국회의원이 지구당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해서 지역정치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국회의원들은 지방의 빈약한 재정자립도를 보충하는 교부금이나 보조금의 결정에 국회의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의정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공공사업과 보조금을 지역에 유치했는가를 자신의 주요한 홍보전략이자 재선전략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정당의 민주적인 분권화를 위한 방안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의 중심축은 지구당 제도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상향식 공천과정과 비례대표의원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지구당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2) 지방분권적 정당개편과 민주적인 지구당 제도의 부활

현재 비민주적인 지역권력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당위적으로 사안에 접근할 수는 없다. 지구당 제도가 폐지된 것은 한 개 지구당에 보통 년간 2~3억이 들고 정당 전체로는 년간 506억 내지 7598억원이 소요되는 고비용 때문이었다(박동수, 1998). 사무국장만이 아니라 총무, 각종 관리장과 통, 반별 담당자들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역의원들이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서 공천권 등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정치란 기본적으로 비용을 대가로 참여를 통해 민주적 합의를 구하는 과정이기에 경제적 효율성의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정영국, 2000). 특히 지구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하의상달의 통로 및 정치참여의 기본단위이므로 고비용 구조를 이유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은 이익집단이나 사회적 결사가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적 여론수렴기능을 폐지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따라서 지구당 폐지가 아니라 운영의 개선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여겨진다(박찬표, 2003).

이런 정당운영의 개선을 위해 외국의 사례들을 참조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 지구당의 하부조직인 각 branch마다 선임한 대표자들로 구성된 지구당(Constituency Labour Party: CLP)을 운영하는데, 지구당의 결정 사항에 대한 투표권은 이들만이 갖고 있다. 그리고 노동당의 후보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직접 지구당에 서류를 내는 대신 그 지역의 노조 지회, 사회주의 단체, 하위 당 조직 등 관련 기관의 지명을 받는다. 따라서 지명을 받는 수는 12명 정도이거나 이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지구당의 집행위원회에서는 이를 다시 4~6명 정도의 최종 선발 후보자 명단(shortlist)으로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이들 최종 선발 후보자들은 지구당의 총회(general management committee)에서 질의와 토론 시간을 거친 뒤 투표를 통해 과반수를 획득하면 후보자로 선정된다(강원택, 2003). 이런 영국 사례는 민주적인 지구당 운영과 공천과정의 한 예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는 정당법이 엄격하게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구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독일 정당법은 정당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지역조직에 기반한 당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명문화하고 있다. 즉 한 정당의 연방차원 조직체 아래에는 지역별 조직체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전당대회와 그로부터 선출된 당 집행부를 통한 독자적인 의사형성이 토대와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도부의 민주화를 위해 집행부가 2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고, 당 기관간의 권력분립과 민주적 통제를 위해 당심판원(Parteischiedsgerichte)을 두고 있다. 그리고 당평의회(Parteirat)는 당 집행부가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하기 전 청취권을 갖고 있는데, 이는 27개 권역 조직체에서 보낸 대의원들에 의해 구성된다(김면회, 2003).

특히 독일 녹색당은 시의회, 군의회, 주의회, 그리고 연방의회에서 여러 시민운동 단체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기구들로부터 여러 민중운동 단체에게 특별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을 자신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영국 노동당과 유사하게 녹색당에서 선거의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우선 지방집단에 대해 자신이 보증받을 만한가 하는 점을 묻게 된다. 지방집단의 보증을 받은 후보자는 그 다음 주 조직에 자신의 이력서와 정치성명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든 당원들에게 배포된다. 마지막으로 후보자들은 주말에 열리는 주 전체의 당대회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의회에 있어서 자신들의 우선 과제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피력한 뒤 일반당원들로부터 질문을 받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색당의 일부 지부들은 시민운동단체의 대표들과 같은 비당원들이 녹색당의 결정 사항들에 대해 표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부들은 투표권을 주지 않더라도 비당원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스프레트낙․카프라, 1990).

영국과 독일의 사례는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정당구조 확립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지구당이 아래로부터의 의사수렴을 위한 기본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당 위원장도 선출되어야 한다. 지방선거 후보자를 공천할 때 지역의 사회단체에게 추천이나 지명을 받도록 하는 방법은 정당과 지역시민사회단체를 연계시키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공천과정에서 후보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그런 토론과 논쟁과정에서 공천과정의 민주성이 자연스럽게 담보되고 정책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토의민주주의의 활성화). 또한 평당원들의 대표자가 당의 정책에 관해 사전에 의견을 듣도록 하는 당평의회나 당기관간의 분쟁을 통제하는 일종의 사법기관인 당심판원제도도 수용할 만한 제도이다. 선거 때만이 아니라 당원들이 지속적으로 당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야 한다.

이런 시사점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 정강을 살펴보면, 시․도당 대의원대회는 “시·도당 규약의 제정과 개정, 시·도당 운영위원회가 제출한 안건의 심의, 결정, 지역위원회의 주요한 업무”를 결정한다. 그리고 지역위원회 대의원대회는 지역위원장 및 부위원장, 사무국장, 당소속 관할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 지역위원회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선출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데, “지역위원회의 사업계획 승인, 중요사업 결정” 등의 권한을 갖는다. 앞서 얘기한 시사점을 고려해서 이런 내부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정당 내부의 제도들은 정당의 이익대표기능과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근거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 당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경우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의 효과도 낳을 수 있고 정치참여를 자극할 수도 있다.

 

3)주민참여제도의 재정비와 내실화

정당과의 연계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들도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참여를 당위적으로 강조한다고 정치참여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이 지방정치에 보이는 관심도는 매우 낮고, 특히 여성과 젊은 층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나 네트워크 구성이 바로 주민참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는 참여의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즉 주민참여를 활성화시킨다고 해서 증가된 주민참여가 주민 다수의 복지증진이라는 지방정치에 목적에 자동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 지식, 노력, 금전 등에서 발생하는 참여의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지방정치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따져볼 경우 상류층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정치적 소외층의 참여를 증가시키기 위해 참여비용을 줄이고 주민의 능력과 의지를 고취시키는 시민교육을 실시하며 상류층의 과잉대표를 제어하기 위해 공무원이 중립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이승종, 2000). 그리고 지방의회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후견주의 피라미드를 붕괴시킬 수 있도록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참여를 제도화하는 제도적인 방안들로 주민발의제도, 주민투표제도, 주민소환제도 등이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참여의 벽이 여전히 높고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은 2006년 8월 행자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일괄적으로 통보한 주민참여예산조례안도 마찬가지이다.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들이 그 취지와 달리 지역의 특정 이해관계나 행정의 조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제도들이 제 의미를 가지려면 제도들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청구인 요건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청구인을 완화할 경우 이런 제도들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지역이 권력의 무풍지대가 아닌 만큼 그런 남용은 반작용을 통해 일정정도 제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방정책의 계획, 실행, 평가단계에 주민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그 과정에 참여한 주민들이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져야 한다.

 

4) 광역 단위의 지방정책연구소 설립과 정당연수원의 활성화

지역의 정당조직이 활성화되고 주민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더라도 그런 활성화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되어 실질적으로 지역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탈정치, 정치적 무관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따라서 4인 선거구제로의 확대와 함께 정당의 지역정책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고 그런 기능은 정당의 본래 목적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일단 현행 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는 광역단위에 정당이 지방정책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의 현황을 분석하고 정책화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소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포럼을 구성해도 좋다. 또한 가능하다면 광역단위만이 아니라 기초단위에도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방의원들이 지역정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연구소를 설립하는 비용이 문제일 수 있지만,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진행하는 각종 개발용역비를 모으면 연구소 운영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연구소가 원활하게 운영된다면 시민사회와 공무원, 정당간의 정책 네트워크 구성도 가능하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단체장과 공무원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방의원 연수프로그램은 그런 역할을 맡기에 부족하고, 민간단체가 진행하는 연수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지방의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는데, 별도의 기구를 마련할 필요 없이 그런 기능을 정당의 연수원이 맡으면 된다.

 

 

5.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지방자치를 구현하고 있는가?

 

1)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민주노동당 당헌을 보면, 수도권으로의 집중화 현상에 대한 대안이나 구체적인 분권과정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리고 연방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상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사회 지방자치의 한계가 정치, 경제, 문화의 면에서 지방이 가진 한계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정책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비전은 한국 내에서도 실현되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이다. 지방이 자급능력을 잃고 내부식민지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연방공화국은 모순을 은폐할 뿐이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수도권으로의 집중화 현상을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장기적인 기획을 필요로 한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영역에서 집중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수도권이라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방자치는 헛된 꿈일 뿐이다.

 

2) 진보적인 지역비전은 존재하는가?

민주노동당은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에 맞는 지역사회 비전을 만들고 있는가? 즉 단체장으로 당선되면 그 기간동안 그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이 비전이 없다면 보수적인 지방정부를 설득해서 변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진보적 지방자치에 따른다면, 이 비전은 전문가나 당원이 아니라 지역주민, 지역시민과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새로운 지역비전이 토건국가식 개발주의를 극복하려면 적극적인 시민참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동당은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지방선거의 시기가 도래하면 지역의제 발굴이나 후보발굴에 집중하고, 선거 이외의 시기에는 중앙의 투쟁방침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 문제다. 그것은 지방자치나 진보적 지방자치에 대한 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한상진 외, 2006).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구호일 뿐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당내 구조도 부족하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주거, 교육, 사회복지와 같은 생활정치의 주요 의제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비전을 만들 때 가능하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참여예산제같은 정책들을 지방선거나 지역정치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할 게 아니라 지역적인 상황에 맞게 무엇을 가장 먼저 실행하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방에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단순히 선거용이라면 그것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의제를 발굴하고 실천하는 과정 곳곳에서 지역 내의 다양한 모임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두 글에서는 그런 연대에 관한 고민보다는 진보정당이 지역사회에서 이것저것을 다 하겠다는 욕심만 드러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3) 내부정치의 과잉과 외부정치의 부재

민주노동당의 성공적인 지역정치 사례라 불리는 울산 지역의 진보정치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진보정치의 현실을 ‘내부정치의 과잉’과 ‘외부정치의 부재’라는 말로 정리했다. 정치세력간의 충돌이나 갈등은 정당정치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도권 경쟁이나 다른 세력에 대한 배제로 나타날 경우 그것은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때로는 정책을 구성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내부로 정치역량이 집중되면서 진보적 지방자치의 연대세력이어야 할 다른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연대’라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같은 지역주민으로서 일상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일상활동이 자연스럽게 선거에서의 지지로 드러나게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서서히 해결되고 있는가? 그리고 진보정당은 지역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가? 민중의 직접참여를 보장한다는 당헌의 의미가 살아나려면 일종의 참여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화는 한 번의 이벤트나 사건만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적인 참여문화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예를 들어, 민중의 집)이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정당이 성과를 가져가려 하지 말고 그 성과나 성공의 몫을 지역주민에게 돌리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4) 진보정당은 선한 조직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가 반드시 도덕적인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지역 주민들의 평판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주민들의 좋은 평판을 받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말로만 ‘머슴’을 자처하지 말고 주인의 말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을 몸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활동문화는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대중을 이끌려는 엘리트 의식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인 듯하다. 그러니 생활정치의 이슈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소위 성공사례를 따라잡기 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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