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녹색당 평당원이다. 당직자도 아닌 사람이 그동안의 녹색당 활동을 설명하고 평가하자니 참 부담스럽다. 아마도 내게 글을 청탁한 건 그동안 정당정치를 강하게 비판해온 사람이고 아나키즘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인 듯한데, 한발 멀리 떨어진 사람이 활동을 자세하게 관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상비평’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면 좋겠다. 그리고 좀 단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내 성격 탓이다. 그런 걸 피하고 싶었으면 신중하게 글을 써줄 다른 필자를 구했어야 옳다. 이 글이 불편하다면 독자들은 나를 탓하지 말고 청탁을 한 편집진을 탓하길.

 

녹색당 얘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좀 소신 있는 사람, 고집이 세고 싫은 걸 못 참는 사람, 이간질 대마왕으로 보지만 나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게 ‘관계’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신념이자 이념이기도 하기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중요한 기준이다(다만 맺고 끊고를 확실히 할 뿐이다). 내가 녹색당에 참여한 이유 역시 관계가 강했다. 싸부(사부님이 아니다!)이신 김종철 선생님이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활동하시는 걸 보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색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 전에도 대안이념으로서 녹색사상이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불안했지만 녹색당이 아닌 다른 활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풀뿌리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런 노력이 조금 더 빨리 필요하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풀 수 있는 정당이 녹색당이라 믿었다. ‘그래도 아나키스트라면서?’, 뭐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 계통의 대선배이신 프루동 옹도 선거에 참여한 경험이 있음을 떠올려 주시라(나중에 정치에 참여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시긴 했지만).

 

그리고 정당에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청년진보당의 당우를 잠시 했었고, 진보신당의 당우도 했었다. 소위 진보정당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거나 당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정당과 관계를 맺은 게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못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신물 나게 배운 게 제도정치와 관련된 여러 이론들이었다. 재미가 없어 열심히 공부하진 알았지만 제도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굳이 이런 부연설명을 하는 건 세상 물정 몰라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이다(이런 뒷담화를 제법 듣다보니 한번쯤은 해명을 하고 싶었다).

 

이 글 속엔 이런 고민들이 뭉뚱그려져 있다. 아마 전체적인 기획 글 중에서 가장 특이한 글일 수 있을 텐데, 어차피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특이한 정당이니 좀 특이하게 설명하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녹색당이 있어 행복해요!: 거꾸로 가는 정당

 

2011년 10월 30일 서울의 선유도 공원에서 녹색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012년 3월 4일에 창당대회를 했으니, 불과 4개월 만에 정당법에 따라 5개 시도 이상에서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모은 셈이다. 기성조직을 전혀 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당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서울시나 경기도는 어떻게 하더라도 나머지 3개 지역에서 1천명 이상을 모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중앙언론사들이 주목하는 정치흐름도 아니고, 더구나 ‘야권연대’가 대세라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였다. 기성정당에서 나온 사람들과 지역의 풀뿌리단체들도 녹색당에 결합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녹색당은 서울과 경기, 부산, 대구, 충남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서울과 경기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부산, 대구, 충남에서 치러진 창당대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대구와 충남의 창당대회는 녹색당의 열기를 달군 녹색당 내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창당대회까지의 당원분포를 보면 충남 홍성 홍동면은 전국에서 녹색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고 ‘녹색당의 성지’라 불릴 정도였다. 사실 홍성은 풀무학교로 이미 유명한 곳이고, 한국 농촌공동체의 희망이라 불리는 곳이니 녹색당의 터전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그리고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가 강한 농촌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정치적인 커밍아웃’이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뭘까? 여러 사람들의 얘기와 카페, 홈페이지, SNS에 올라오는 내용을 종합하면, 그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리고 자기 욕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시민들이, 채식, 성소수자, 인권, 생태 등 다양한 이슈들이 녹색당에 결합했다. 다른 정당들도 있는데, 왜 하필 녹색당이었을까?

 

일단은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녹색은 이념이 아니다. 이건 녹색당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녹색당은 ‘탈핵’과 ‘생태’라는 구호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청색과 적색을 대체하는 제 3의 이념, 청색과 적색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념이라는 점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녹색이념을 ‘표방한’ 정당을 창당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치적인 거부감도 별로 없다. ‘착한 정당’ 같아서 많은 시민들이 좋은 뜻으로 녹색당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게 강점이자 약점이다(이유는 뒤에서).

 

편안함보다 더 강한 원동력은 녹색당이 행복을 실현할 장소로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녹색당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생애 첫 당원’이 녹색당의 모토가 될 만큼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2012년 3월 4일 창당시점에는 여성당원의 비율이 53%에 달했다. 청소년당원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발기인대회나 창당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치에 부정적인 한국사회에서 이런 당원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당들은 ‘미래의 행복’을 보장한다. 우리를 지지하면 행복을 실현시켜주겠다, 눈물을 닦아주겠다느니 또는 행복을 되찾아주겠다는 공약(公約)을 내건다. 하지만 녹색당은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왜냐하면 ‘집권’을 위한 정당도 아니고 사회체제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는 정당도 아니기 때문이다. 녹색당원들은 녹색당에 참여하며 행복을 느낀다. ‘지금 행복’하기에 ‘생애 첫 정당’에 기꺼이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이런 에너지가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고, 이런 에너지를 만드는 당원들이 녹색당의 원동력이다.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며 또 다른 사람이 행복에 감염되고, 그러면서 녹색당의 앞날이 밝혀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건 정치과정의 역전이다. 미래를 저당잡히고 보장받길 원하는 당원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보장하려는 당원이 녹색당을 이끌고 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당활동을 통해 당원들은 공적인 행복(public happiness)을 느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혁명이 자유의 공간을 만든 건 “어느 누구도 공적 행복을 향유하지 않은 채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 “아울러 공적 권력에 참여하지 않고 몫을 보유하지 않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녹색당은 한국사회에 행복을 향유할 자유의 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당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모두가 적극적인 당원은 아니다. 적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녹색당이 만든 다음카페(http://cafe.daum.net/Kgreens)나 페이스북 그룹(http://www.facebook.com/koreagreenparty)을 보면, 다양한 당원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소수(하지만 다른 정당들에 비하면 훨씬 다수!)이다.

 

하지만 그 수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적극적인 당원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피곤한 한국사회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행복해서 스스로 나서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원들이 나서서 현수막을 만들고 걸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 경험이 항상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행복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조직적인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뛰어다니는 당원, 이런 정당이 그동안 한국에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녹색당 사무처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한 송준규 씨는 《공동선》 104호 특집에 쓴 “풀뿌리들의 놀이터, 녹색당”이라는 글에서 이를 ‘놀이’라 표현했다. “사무실에서 일에 대해서 서로 격 없이 물어보고 대화하는 속에서 나는 전체적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고, “공보물에 들어갈 핵심적인 슬로건을 정하는데도, 각 책상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생각을 물어보고 깔깔 웃으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장면이 인상깊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인상은 “참 발랄하다는 것”으로 선거를 위한 특별당비 모금과정이나 선거운동과정에서 평당원들이 자발적이고 발랄하게 참여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신나고 즐겁게 도전해보는 점에서, 녹색당의 구성원들은 정치를 하나의 ‘놀이’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송준규 씨는 결론을 내린다. 정치를 놀이로 대하는 건 그동안 부정적이고 엄숙했던 정치와의 결별이다.

 

사실 이것은 녹색당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풀뿌리 운동에서는 나름의 상식으로 굳어진 논리가 있다. 활동가나 실무자가 너무 열심히 활동하지 말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도록 열어 놓으라는.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면 꽉 짜진 느낌이 없어야 한다. 3월 4일 창당 이후 녹색당 중앙당의 실무자는 8명이었다. 역설이지만 실무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원들의 일이 많았다. 특별한 건 아니고 이런 느슨함이 녹색당의 당원들을 고무시켰다.

 

허나 당원들의 요구에 실무진이 신속히 반응하지 못한 건 고민점이다. 선거나 제도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생애 첫 당원들이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반응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찾아가며 성장하는 면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당체계를 마련하는 건 앞으로의 과제이다.

 

녹색당, 우리들/너네들 정체는 뭐니?

 

녹색당 창당대회에서 사무처장을 맡게 된 하승수 씨는 《녹색평론》 2012년 1/2월호(제 122호)에 쓴 “지금 왜 녹색당인가?”라는 글에서 녹색당을 ‘반정당의 정당’이라 불렀다. 대의민주주의에 한계가 있지만 “당장의 권력이 아니라 20~30년 후의 사회를 위한 비전과 가치를 가진 지속성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그 정치세력이 지역과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선거정치만이 아니라 생활 속의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정치세력이 일부 권력 지향적인 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래의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제도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정치를 펼치며 권력 엘리트를 통제하는 것이 녹색당의 역할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녹색당이 비판하는 정당정치는 지금 당장의 권력만 보고 선거정치에 올인하며 일부 엘리트들이 나눠먹는 정치이다.

 

그동안 정당정치를 잡아먹을 듯 비판하고 한국의 진보정당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지만 ‘좋은 정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세금으로 삥 뜯어 한 해에만 수백 조의 돈을 마음대로 나눠먹는 놈들, 재벌과 결탁해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놈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돈과 힘을 좋은 방향에 쓰면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가 될까. 선거 때마다 누군들 이런 생각이 없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리라 기대할만한 정당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정당이 정녕 가능할까 항상 의문을 품었는데, 녹색당은 그런 정당을 표방했다. 물론 기존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처럼 그런 취지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반(反)정당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정당들도 자유롭지 않다. ‘당외’만이 아니라 ‘당내’의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표결이나 다수결의 문제로만 받아들이고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눈독을 들이고 통합과 연대를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점은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는 면이다.

 

물론 녹색당만 기성정치의 함정을 잘 빠져나갈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지지한 것은 다른 정당에서 드러나지 않는 녹색당의 가치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역/지방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정당은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모든 게 중앙에서 결의되어 지방으로 전파되고 조직의 혈관을 타고 이해관계가 배분된다. ‘풀뿌리’에 기반을 두고 그 관점에서 정치를 재구성한다는 것이 내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점은 풀뿌리운동의 동지(同志)로서 10년 이상 지켜봐온 하승수씨와 김현씨가 녹색당에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친분을 맺어 왔거나 이름을 들어온 전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녹색당에 결합한 것으로 내게 설명되었다. 나는 지역의 연합체로서의 정당,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으로서의 정당이 보고 싶었고 녹색당에 기대를 걸었다.

 

물론 ‘반정당의 정당’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리고 녹색당이라는 형태가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반정당’이라는 틀과 잘 어울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녹색당의 핵심구호인 ‘탈핵’만 봐도 강력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지금 당장 강력한 힘이 요구될 듯한데, 반정당의 틀은 꽤 느슨하다. 반정당의 정치는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데 한국의 정치구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이다. 논리적으로는 연결될 수 있지만 탈핵을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집권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정치현실 아닌가. 더구나 지금 당장의 이해관계를 놓고 다투는 선거에서 미래의 비전과 가치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 그리고 중앙정치 중심, 인물(명망가) 중심의 선거에서 반정당의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어려운 물음을 푸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이 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의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착한 정당’ 이미지를 포기하고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나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맘대로 만들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판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그럼에도 지방선거에서 하지메가 상당한 득표를 했다는 점을 생각하자). 다른 하나는 중앙정치나 선거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사건은 불확실한 현실에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아예 무시된 듯하고, 두 번째는 고민만 된 듯하다. 녹색당이 창당하기 전에 『녹색당 선언』(이매진, 2012년)이 출간되었다. 녹색당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당원이 된 이유를 담담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면 녹색이라는 큰 틀로 묶이긴 하지만 각자의 관심사와 처지가 다르다. 서로 쓰는 말에서도 약간씩 충돌이 보이고(가정, 아이, 노동, 가난 등), 근본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답이 없다. 이 근본적인 물음에 관한 답이 글 속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텐데, 이 선언은 모음집에 가깝다.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원들끼리 공유하는 내용이면 상관없지만 ‘선언으로서’ 사회에 던져진 사건은 아니었다.

 

창당대회 때 발표된 창당선언문 역시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얘기하지만 4대강사업이나 핵발전소 등에 관한 이런저런 반대와 환경, 생명, 풀뿌리, 여성, 인권, 평화 등의 힘이 성장했다는 선언 정도이다. “녹색의 가치가 더 이상 미루어지거나 부차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래서 녹색의 가치가 뭔데?’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녹색과 관련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선언은 1989년에 발표된 ‘한살림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한살림 선언은 산업문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체제의 지배를 비판하고 생명의 세계관에 따른 공동체 회복과 생명의 질서 실현을 주장했다. 이것은 근대의 산업문명을 우리의 동학과 서구의 신과학운동, 녹색운동으로 극복하려는 놀라운 선언이자 사건이었다. 녹색당은 이 정도의 충격적인 선언이나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기존의 선거판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즐겁게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생정당이기에 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거려졌던 이물감들이 드러났던 것 같다. 성소수자를 암이라 부르고, 침뜸을 놓는 분들을 돌팔이라 부르고, 여전히 지도부를 찾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정당에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폭력을 다양성의 논리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설득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내면화된 편견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그걸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소수자는 폭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하나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녹색당이 추구하는 다양성이라는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정당이라는 틀 속에서 녹색의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이다. 그 정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다. 다만 정당이라는 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형태인데, 그 목적이 당원과 시민들에게 얼마나 이해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해란 건 단순히 알고 있다가 아니다.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듬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공감은 설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변화될 수 있고, 정당은 그런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했는데 바로 개입한 선거는 그런 여유를 주지 못했다.

 

사람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녹색당의 구호를 만드는 방식도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밥상’과 ‘핵 없는 미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밥상과 미래가 아이들로 재현되는 건 문제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살지 ‘아이를 위해’ 살 생각이 없다. 아이는 독립된 개체이고 ‘그만의’ 미래가 있고, 다만 나는 그 선택지가 줄어드는 걸 막고 싶을 뿐이다. 내가 즐기고 누려온 것들이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과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이 없는 사람들, 혹은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 또는 과거의 가족구성과는 다른 동거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녹색당의 가치가 소수라면 이런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해야 할 텐데, 그런 고민은 부족한 듯했다. 착한 정당은 사건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엘리트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지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하기도 하고 선한 의지를 품고 이를 위해 힘을 기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정당의 당원으로서는 같이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럴 거면 정당 외에 다른 길을 찾겠다. 남을 위하고 모두를 위한다는 자들이 정치를 이렇게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자 가장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녹색당, 우리가/너네가 정치를 알아?

 

이런 문제가 가장 불거지는 시공간이 바로 선거이다. 녹색당은 창당 후에 바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사실 너무 무리한 일정을 강행한 것이고, 후쿠시마 1주년이라는 시기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미 시작된 일이고 많은 당원들이 선거에 올인했다.

 

하지만 생애 첫 당원들과 선거를 치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거법도 익숙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좀 선거를 해봤다는 분들이 하는 조언은 기성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반대에 부딪치고, 새로운 시도는 그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냉소와 맞물린다. 반정당의 정당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는 바로 선거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왕 선거판에 끼어들었으니 자기 존재를 잘 알렸어야 했는데, 녹색당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선거 당시 녹색당 선거공보물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녹색당 선거공보물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예쁘게 만든 거야 좋았지만, 설마 했었는데,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학력이 떡하니 나와 있다. 가뜩이나 학력이 좋은 녹색당 아닌가? 선거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했는데 진보신당의 공보물에는 학력이 없었다. 왜일까? 학벌사회에 대한 공감능력은 왜 부족할까?

 

그리고 “핵이 밥상에 올라온다”는 공보물의 큰 문구는 핵이 위험하다는 의도는 전달했지만 핵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핵을 반대하는 것이 석유문명을 반대하고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자는 논리로 들리기도 했다. 공보물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정당인가를 설명하는 듯했고, 마치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듯했다. 농업, 생명권, 노동사회 탈피, 여성․소수자․청년의 정치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사실 녹색당이 표방한 것은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연계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통해 녹색당은 어떤 연계를 목표로 삼았을까? 몇 가지 정책공약을 보면 그런 연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구상은 없었다. 무엇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한 발판이 필요한데,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은 공약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제도적인 변화를 꽃피게 할 사람들을 어떻게 찾고 그들을 도울 것인가? 생활정치의 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녹색당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이런 내용을 녹색당의 공식적인 정책이나 논평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이 점이 총선의 중요한 이슈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중앙정치에 열중할 때 녹색당은 지역정치, 지방정치, 생활정치에 몰두하는 면을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활동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녹색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내용, 녹색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시해야 알 수 있는 내용 대신에 말이다. 아마도 청년당이 훨씬 더 짧은 시간 동안 아무런 토대 없이 활동하고도 0.34%라는 정당득표를 받은 걸 보면 선거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작업을 하고 녹색당이 0.48%의 표를 받았다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앞서 말했듯이 녹색당이 총선에서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목을 놓아 지지를 호소했지만 그건 사건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건 다른 정당들도 선거 때 열심히 하는 일이다. 선거라는 ‘판’을 뒤흔들어야 사건이 되는데, 그런 사건은 없었다. 외려 사건은 진보신당에서 터졌다.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가 비례대표 1번이 된 것은 한국정치의 사건이었다.

 

물론 선거운동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철저히 중앙정치로 논리로 만들어진 선거판과 소수정당의 선거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이 녹색당의 발목을 잡았다. 녹색당원 오관영씨는 《창비주간논평》에 쓴 “녹색당 총선 참관기”에서 각종 정책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고도 이를 알릴 수 없었던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녹색당의 지향과 현실의 제도정치 사이에 간극이 컸고, 제도정당으로 등록하면서 현실의 제도적 틀이 강제하는 힘이 녹색당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했습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녹색당은 기존 제도정당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녹색당다운 소통방식, 선거운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는 내부의 한계도 인정한다. 어쨌거나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어도 녹색당에서 사건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어떤 개인이 후보자로 출마했다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문법’을 뒤흔들 새로운 언어의 출현이 필요했는데 녹색당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녹색당들이 성공한 것은 바로 그 점에서였다. 페트라 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정치의 언어와 문법을 개발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가끔씩 녹색당이 주류언론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기존의 정치문법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요샛말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아니라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좋은 정당’ 정도였지 이 정당이야말로 정말 ‘새로운 정당’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충격을 느끼며 녹색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게 만들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면 그것을 뒤흔들 사건이 필요한데 녹색당은 그런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 스스로 위안하는 점은 당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정책의 클릭수가 높다는 점 정도이다. 진정한 ‘정책정당’이라는 주장이지만 클릭수가 높다는 게 정책에 대한 지지도나 인지도가 높다는 점이나 정책내용이 뛰어나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녹색당의 정책이 분명 보수정당들보다는 뛰어나지만 진보신당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두 당의 정책을 비교하면 상당 부분이 겹친다. 더구나 녹색당의 정책은 완성본이 아니었다. 선거에 활용할 몇몇 정책을 모아놓은 것이고, 그 내용에 당원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못했다. 결국 개별 정책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적인 녹색당의 정책기조에 관한 내용은 부족했고 그것에 관한 당원들의 합의도 없었다.

 

사실 나는 선거 때마다 중앙당이 정책을 뿌리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 정책은 이해관계의 배분이지 정치의 과정일 수 없다. 정녕 풀뿌리로부터 만들어진 정당이라면, 선거의 정책이나 공약이 중앙에서 내려올 수 없다. 외려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공약이 중앙으로 모여야 한다. 각 지역의 공약들이 한데 모여 연찬과 경연을 벌여야 한다. 이게 ‘연방’의 원리로 구성되는 정치논리여야 할 텐데 아쉽지만 이번 총선 때 녹색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결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결합이 지역의 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이려면 정치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정책이라 불리는 것 이전 단계의 ‘이야기꺼리’가 필요하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보태지고 빼져야 정책의 기본방향이 분명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에는 선거법의 제한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으니 이 아쉬움은 다음 선거 때 풀릴 수 있을까?

 

현재 녹색당은 재창당 과정을 밟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득표율이었고 그래서 정당등록취소라는 일까지 겪게 되었는데 공식적인 선거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선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책임과 반성이 없다면 선거에는 왜 개입했을까?

 

공식적인 평가가 없기에 녹색당의 당원들이 쓴 글들을 모아서 읽어봤다. 녹색당원 우석영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쓴 “녹색당 0.48%의 이유”라는 글에서 녹색당 운동이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능력과 신망 있는 정치 지도자”를 요구하는 “주류의 요구”, 둘째는 녹색전환을 가능케 할 대중적인 “문화 기풍”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 셋째는 녹색의 가치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조화롭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녹색당 홈페이지에 가면 초록주의라는 필명의 사람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녹색당 19대 총선 평가”가 있다. 초록주의는 탈핵이라는 구호가 후쿠시마 사고에도 무심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했다고 전체 평을 한다. 탈핵을 내세운 것이 실패한 선거 전략이라는 얘기이다. 초록주의는 “환경생태는 아직도 중상층의 지식인과 소수인 생활 초록파를 빼놓고 하루하루의 생활에 바쁜 서민들에게는 배부른 사람들의 문제”이기에 녹색당의 정책과 활동이 다른 틀로 움직여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초록주의는 선거과정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는데, ①당원의 의겸수렴이나 권한위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급박하여 일부 절차가 무시된 상태에서 선거에 일정에 맞춰가는 것”의 문제점, ②녹색당 후보 검증절차가 없었다는 점, ③김용민 후보 사퇴 성명서의 책임 문제, ④언론 홍보나 당원들의 선거운동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총선이 끝난 뒤 한 당원은 진보신당, 청년당과의 수다회(http://cafe.daum.net/RangForum)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녹색당 찍었다고 하고, 총선 끝나고 여기저기 전화오고 문자오는데, ‘난 그래도 녹색당 찍었어, 괜찮냐? 고생 많았다’라더라, 내가 직장생활보다 선거운동에 전념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총선 끝나고 출근하니까 사장님이 다른 말씀 전혀 없으시고 ‘어쩌겠어, 결과가 이렇게 됐는데’라며 오히려 미안해하시더라. 이런 사람들도 다 찍었다는데, 내가 모은 표만 해도 100표는 넘을 듯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주변 사람들이 특이한 거다. 현실정치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누구나 녹색당이 뭔데? 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듣보잡이 된다’라는 뼈아픈 얘기를 하더라. 그걸 어떻게 넘어야 할지가 관건이지 않겠나.”

 

선거에서 득표한 비율과 당원 비율을 놓고 비교하거나 이런저런 분석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투표장에 들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후보자, 체계적인 당론 수렴,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운동같은 내부요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국내외의 정세변화, 선거 당시의 이슈, 경제상황 등 수많은 외부요인이, 심지어 날씨같은 외부요인까지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탈핵을 얘기할 때 누군가가 생뚱맞아 보이는 경제성장을 얘기하면 성장에 손이 가는 게 현실이다.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고 후보 검증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그것은 선거판의 외부변수를 쉽게 무시하긴 어렵다. 그리고 외부변수는 한 정당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선거도 불확실하다.

 

앞서의 선거분석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쉽게 동의되지 않는 건 그 글들이 선거란 표를 모으는 과정이라는 점에 너무나 쉽게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이 계속 반복해온 과정을 되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녹색당의 본질이라는 반정당의 정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선거를 통해서 표를 얻는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정치판(아~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이다)의 논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녹색당이 선거판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길 원한다. 아마 내가 계속 녹색당에 남아 있을지 아닐지를 판단할 기준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녹색당, 희망찬 실패!

 

써놓고 보니 녹색당의 실험에 관한 글이 아니라 녹색당 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토를 달았다. 보통 이러면 너는 토를 달 만큼 녹색당에서 열심히 활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예상했으니 답하자면 딱히 한 일은 없다. 홈페이지 제안과 토론에 몇 번 댓글을 달았고, 동네에 현수막을 달았다. 특별당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백수 신분에 거금(?)을 기꺼이 냈다. 세종대 생협하고 이어주는 일을 했고, 정책과 관련된 자문이 왔는데 녹색당이라면 중앙에서 짜서 지역에 내려주지 말고 지역에서 정책을 짜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동문서답으로 답해줬다. 이 정도다. 이 정도 했으면 나는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활동을 못해도 누구나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몫이 없는 자들이 몫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랑시에르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결론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녹색당은 한국정치구조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의 사태에서 보이듯 이곳의 정치는 의견보다 이해관계를 앞세운다. 어떤 주장보다는 누구의 주장이, 정책보다는 명망가가 더 중요한 사회이다.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그런 정치논리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러니 녹색당은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프로가 될 수 없고 어리숙하고 부족한 정당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기도 힘들 것이다(물론 지방선거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녹색당의 미래가 어둡지만 희망적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든 걸 국가중심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중앙선거와 지방선거가 다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법률과 조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녹색당은 낮은 것에 강함을 가지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녹색당에 적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우리 동네 급진주의자의 탄생'이라는 과격한 제목을 달았는데, <시사인>에 실릴 때는 '우리 동네 두 아이'라는 부드러운 제목으로 실렸다. 내가 참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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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해도 뒤숭숭, 안 해도 뒤숭숭, 언제나 선거의 끝은 찝찝하다. 이번 선거는 특히 그랬다. 절박한 일과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선거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것 같다. 그 기대만큼 선거 후유증도 크다. 괜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허전한 마음이 달래지진 않는다.

 

아직 대통령선거가 남아 있으니 이 후유증은 계속 갈 듯 싶다. 그리고 이 후유증 때문에 쓸데없이 치고받는 일도 더 많아질 것 같다.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언제쯤이면 한국정치에서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이번 대선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도 흥미로운 점은 제도정치의 장에서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거의 사라졌다면, 생활정치의 장에서는 그 경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인들의 정책은 두리뭉실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반(反)자본주의라는 대립각이 사라진 제도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나눌 근거가 사라진다.

 

하지만 생활의 영역에서는 반대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한편은 희망을 보고 다른 편은 말세를 본다. 선거로는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대표할 자가 없으니!) 선호가 생활의 영역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래서 제도정치와 생활정치의 고리를 잇거나 아예 새로운 판을 짜는 역할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역할을 맡을 새로운 주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논평하기 좋아하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끝나간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지식인들이 관전평만 했는데 이제는 감정이입과 실제개입까지 뒤섞여 그 말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더구나 상대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이라도 익힌 듯 자신만이 전체 판을 읽는다는 논평을 쏟아내는데, 듣고 있으면 참 불편하다. 마치 정치는 전문가들의 몫으로 맡겨두고 훈수를 두는 대로 움직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깔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걸음 떨어져 하나마나한 얘기를 논리적으로 쏟아내는 사람보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오타 섞인 글들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아직까지는 명망가들의 영향력이 세지만 계속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는 좌절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동네에서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 동네 여섯 살 선이와 여덟 살 안이는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과 녹색당을 지지했다. 어떤 정당에서 어떤 사람들이 출마했는지를 엄마에게 묻고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청소부 할머니가, 핵을 반대하고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이 국회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니까. “왜 어른들은 우리한테 반말하고 예의 없이 해도 되는 거야?”라고 묻는 급진주의자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 아이들은 송전탑 싸움 중인 밀양과 4대강 사업으로 위기에 몰린 두물머리에도 다녀왔다. 두 아이의 머리 속에는 송전탑을 세울 자리에 심은 나무가, 두물머리에 심은 감자와 땅콩이 계속 자라고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의 판단기준은 논리가 아니라 생명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급진주의자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총명함을 잃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아이들은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는 분향소를 짓밟는 폭력을, 해군기지와 핵발전소, 송전탑, 골프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걸 상식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동네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서도 안이와 선이들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들의 운명이 곧 우리 사회의 운명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건다. 중앙선관위가 그동안 보여왔고 또 지금 보이는 행태를 보면 이 기관이 선거를 맡는 게 과연 민주적일까 의문이 들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자.

 

투표와 선거가 민주주의에 중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여도, 찍을 만한 사람이 없어도 정당투표라도 하러 투표장에 가야 한다는 현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은 일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상현 2동은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데, 이번 총선 때 기흥구의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야 한다. 2012년 2월 2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의 인구상한선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선거구를 이렇게 만든 탓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용인을 선거구 후보자와 용인병 선거구 후보자 현수막이 동시에 붙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누가 이 동네 후보자인지를 알 수 없다. 길 하나를 두고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3만 2천명의 상현 2동 주민이 다른 구와 합쳐지는 게 정치개혁일까? 옆 동네에 사람이 부족하니 옆 동네에 가서 대표를 뽑으라는 얘기에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할까?

 

물론 지도상으로 보면 수지구가 기흥구와 붙어 있다. 하지만 생활권으로 보면 두 구의 사이를 경부고속도로가 가로질러 두 지역간의 연계는 거의 없다. 그리고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주요한 문제들이 시 단위에서 결정된다지만 이건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국회의원이 지역주민들의 대표 아닌가?

 

그런데 이 문제는 내가 사는 동네만의 것이 아니다. 용인시 기흥구의 동백동과 마북동 주민들은 처인구로 선거구가 묶였고, 수원시의 서둔동 주민들도 팔달구로 묶였다. 늘어난 기흥구와 권선구의 인구수를 조절하기 위해 동을 빼고 집어넣는 과정에서 이런 해괴한 사건이 터졌다. 주민들에게 한 마디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정치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선거구를 쪼개고 붙였다.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 대 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이런 ‘선거구 짜깁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경기도권의 신도시들은 계속 이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용인시와 수원시, 경기도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이 문제를 다룬 언론기사가 많지 않지만 문제를 다룬 언론사들도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개편한다는 ‘개리맨더링’의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선거구 획정이 아니라 선거제도이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선거구 짜깁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한국정치에서 목격했듯이 당리당략 앞에 원칙이나 논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의과정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데, 대의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 비단 선거구를 정하는 일만이 아니다. 후보자를 정하거나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한 각종 여론조사결과가 결코 정확하지 않고 조직적인 개입이 가능하며 소위 ‘셋팅선거’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매번 정책선거를 떠들어대지만 각 정당이 발간하는 두꺼운 자료집을 제외하면 선거에서 정책을 구경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전국적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런데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지금과 같은 ‘이익연대’ 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녹색당이나 진보신당같은 소수당이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이런저런 정당들이 모두 청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새누리당마저도 27세의 이준석 씨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정하고, 27세의 손수조 씨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민주통합당은 청년비례대표를 공개모집하고 경선을 통해 4명을 후보로 뽑았다. 통합진보당 역시 2030 국회의원 만들기 ‘위대한 진출’이라는 경선오디션을 통해 31세의 김재연 씨를 후보자로 선출했다. 녹색당에서는 ‘녹록하당’이라는 청년모임이 활동 중이고, 진보신당은 “3포 세대에 연애를 허(許)하라”라는 슬로건으로 청년정책을 제안했다. 그리고 안철수 교수 등이 강연했던 희망콘서트에서 자원활동했던 청년층을 중심으로 청년당이 만들어졌다.


청년정치의 등장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뜨거운 열기가 정치현장에서 뿜어지고 있다. 제 18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이 53.5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20, 30대의 정치진출은 정치란 연륜을 필요로 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깨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열기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제 19대 국회의원 공천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의 평균연령은 55.3세, 민주통합당의 평균연령은 53세이다. 두 당만 놓고 보면, 청년대표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열기가 청년의 세력화나 새로운 정치의제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청년은 실재하는가?


청년의 삶이 주요한 사회이슈로 부각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신세대’나 ‘X세대’라는 세대담론이 있었고, 2000년대 후반에는 ‘88만원 세대’가 화두로 떠올랐다. 세대담론의 속성상, 그 담론은 담론에서 배제된 사람들(非대학생)을 만들고 세대로 호명된 사람들 내부의 차이(계급이나 계층의 차이)를 감춘다. 그리고 계속되는 새로운 호명은 언제나 기존 담론의 쇠퇴를 불러왔다. 지금의 청년담론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났을까?


청년이 하나의 존재로 실재하려면 그들을 묶을 공통의 문제나 집합정체성이 필요하다. 즉 기존의 계급이나 계층논의에 포섭되지 않는 독특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한국사회에 그런 독특성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20, 30대 후보들은 하나같이 청년실업과 20대의 정치적 발언권을 얘기한다. 정당들도 청년정책으로 대학생 주거지원, 대학구조 개혁, 청년 고용 및 노동정책 등을 얘기한다. 청년을 전면에 내세운 청년당의 정책 역시 국공립대 무상교육 및 사립대 반값등록금, 청년 창업․창직 기금 100조 조성 및 해외 일자리 100만개 창출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그런 공약과 정책이 청년들의 삶을 개선시킬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한국사회에서 주거와 노동시장에서의 배제가 청년만의 문제일까? 그리고 20대의 대학생 비중이 80%를 넘는 사회라 청년정책이 대학생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정책의 수혜층이 너무 빤하다. 대학생의 삶도 고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청년들의 삶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사회는 이들을 시민이나 주민의 범주에 잘 포함시키지도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20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해결책이 특정 세대로 한정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청년정치 논의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청년정치가 제 길을 가고 있나?


그런 점에서 지금의 청년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오디션이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정치신인들을 뽑는 과정이 과연 민주적일까? 그런 과정에서 청년의 의제화와 정치세력화가 정말 가능할까?


청년당이 공직피선거권을 19세로 낮추자는 정책을 내세우고, 녹색당과 진보신당도 이를 정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피선거권이 낮아지고 20, 30대의 세대별 집단투표가 실현된다면 젊은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세력화만으로 청년정치가 활성화되기는 어렵다. 인물정치에서 정책정치로의 전환을 모색하려면, ‘청탁․시혜담론’에서 ‘요구․권리담론’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대표에게 이것저것을 청탁하고 고마워하는 대의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청년을 비롯한 그 어떤 존재의 정치세력화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어도 대학생이 대학에서조차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해 시민의 시민권, 사회권을 강화시키려는 시도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도전을 받는 이 한국사회에서는 말이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요구해야 그 공통의 몫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없이 정치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청년에 대한 시혜적인 조치가 아니라 일하고 노는 문화와 노동조건 자체가 변해야 한다.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많이 일하는 게 아니라 적게 일해도 정당한 대우를 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노동현장에 깊숙이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이타적인 연대가 아니라 ‘예비노동자’로서의 요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청년정치는 어떤 가능성을 일구고 있을까?



청년에게 정말 미래가 있을까?


단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위기에 맞서야 청년정치가 가능하다. 고장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도 그 소식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핵발전소가 이 땅에 이미 21개나 있다. 청년의 미래를 백날 얘기해 봐도 핵발전소 사고 하나면 모든 기반이 사라진다. 이런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서 어떤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20대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아직까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겠다. 그냥 과거의 담론들이 유령처럼 되살아와 정치권 언저리를 배회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20대가 정치주체로서 현실을 살려면 ‘현장’이 필요하다. 정치에서는 빠른 속도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악착같이 달려드는 활동도 필요하다. 그런 활동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현장이다.


멀리 볼 필요 없다. 대학부터 시작하자. 정치는 이곳에서도 이루어진다.

<시사인>에는 '죽음의 송전탑'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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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난생 처음으로 정당의 발기인이 되었다.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머리를 쿵 때렸다. 불가능한 미래를 ‘실감’하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정당과 선을 긋고 살아왔지만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아이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 선을 넘어 녹색당에 주목하게 했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가 생활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5년 만에 바꾼 핸드폰이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했다. 손만 뻗으면 충전할 컴퓨터와 콘센트를 찾을 수 있는 수도권에 사는지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녹색이념은 불편한 녹색삶으로 잘 스며들지 못했다.


단지 삶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나 그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오려고 전국에 세워지는 송전탑에 관해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매체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밀집된 핵발전소들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사고들을,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사람도 살 수 없는 끔찍한 송전탑이 마을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사람도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나 역시 태어나서 자란 부산에 핵발전소가 있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본적지인 밀양을 지나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으로 오는데, 그 과정을 단 한 번도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명절 때마다 밀양을 들락거리면서도 그곳에만 69개의 철탑을 세우려한다는 사실, 그 싸움이 지난 7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으며 나의 착함을 노출시키면서도 정작 일상의 연관고리에는 무심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 1월 16일 밀양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신고리핵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지는 765송전탑이 어르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송전탑 건설을 위한 벌목을 막으려 산을 기어오르는 할머니들에게 용역들이 ‘워리워리’하며 조롱하는 장면을 보던 74세의 어르신은 “오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자결하셨다. 마을회관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마을 입구 다리로 걸어 나오던 어르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우리는 그 절박한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탈핵 없이는 미래세대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편안함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허나 정부와 한전, 용역들을 욕한들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핵발전소와 송전탑은 계속 세워질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우리의 삶이 불편해져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CT85가 아니라 밀양의 765송전탑을 향해 탈핵희망버스가 3월 17일에 출발한다. 희망버스가 일종의 ‘연대의식’을 드러낸 사건이라면, 탈핵희망버스는 연대와 더불어 속죄를 뜻한다. 먹거리나 에너지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수도권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죄를 짓는 시대가 왔다. 화려한 서울의 전기불빛에 양심의 눈이 멀지 않았다면 송전탑이라는 가시를 뽑아내야 한다.


탈핵희망버스만이 아니다. 5개 시도에서 천 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는 그 어려운 정당법을 충족시키며 녹색당이 지난 3월 4일에 창당되었다. 조직을 동원하지 않은 창당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비웃듯, 탈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녹색당을 출범시켰다.


송전탑 하나 없앤다고, 몇몇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까 냉소하기 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아주대학교 교지의 청탁을 받아 쓴 원고이다.
사회 각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치생활백서들을 계속 만들면 뭐가 좀 나아질래나?ㅎㅎ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학교를 빼고 사회를 바꾸겠다고 외치는 점에서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왜 현장활동을 학교에서 하면 안 되나? 학교에 바꿀 게 얼마나 많은데.
자기 일상부터 하나하나 바꿔봐야 바꾸는 재미를 알지...
단체 활동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학교의 구색을 맞춰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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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치생활백서


대학생은 시민인가? 참정권을 가진 나이이니 스스로를 시민이라 부를 수 있지만 정말 대학생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누리고 있나? 시민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도시에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듯이, 시민권이라는 것도 단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목록이 아니다. 납세와 국방 등의 의무와 책임이 국민에게 요구된다면, 시민권은 시민으로서 개인이 국가나 기업에 ‘요구할 권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권은 소리 높여 당당히 요구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알아야 요구를 할 텐데, 대학생 중에 자신의 기본권이나 시민권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미 1948년에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이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도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처럼 세계와 한국 모두 노동과 교육, 문화에 대한 권리를 보편적으로 인정한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시민에게 노동의 권리가 있다는 건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정부가 마련해야 하고, 그것도 공정하고 좋은 노동조건을 마련해야 하며, 그도 안 되면 시민이 실업수당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건 반값등록금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건 돈 있는 사람들만 웰빙의 문화를 즐기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옳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권리들이 있는데도 지금껏 우리는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왜냐하면 이런 것을 권리로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설령 권리를 안다고 하더라도 투표권 외에는 권리를 행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써먹지를 못한다. 학교의 구성원 또는 가족이라 불리는데도 교칙이나 예산을 정하는 과정에는 대학생이 참여하지 못한다. 대학 등록금이 근거 없이 팍팍 올라도, 기숙사 비용과 하숙비가 계속 올라도, 학생식당과 매점의 가격이 올라도, 그건 물가가 올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득당해 왔다. 반면에 대학이 등록금을 받아서 건물을 올리고 주식투자로 돈을 날려 먹어도, 건물을 기부받기로 약속받고 기업들에게 기숙사 운영권이나 학내 공간을 팔아도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세뇌당해 왔다.


그래서 생활로 체감되지 않는 정치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정치행동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정치는 함께 모여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 정치는 거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정치는 꾸준한 연습과정이다. 저기 멀리 있는 청와대나 국회를 바라보며 정치를 고민하지 말고 총장실이나 대학본부, 행정실, 교수연구실을 보며 정치를 고민해야 연습을 할 수 있다. 한국의 행정이나 예산체계, 업무처리방식,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정부체계나 공무원들의 태도와 거의 비슷하기에, 학교에서 충분히 연습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쥐 죽은 듯 지내면 사회에 나가도 순응하며 살게 된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정치를 연습할 때 너무 정도(正道)를 걸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강자와 싸우는 약자의 무기는 정도가 아니라 변칙이다. 예측하지 못한 수를 둬야 상대방이 당황하며 허점을 보이고, 이 틈을 치고 들어가야 이길 수 있다. 때로는 끈질기게, 때로는 야비하게 상대를 코너로 몰아붙여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괜히 센 척하면서 정면승부를 시도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다.



대학에서 정치하기


가장 뜨거운 감자부터 다뤄보자. 반값 등록금이 화두인데, 이번 선거결과가 어떻든 그것이 실현될 조짐은 별로 없다. 어쨌거나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면 대학의 재정이 어렵다는 학교의 징징거림을 한칼에 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료가 필요하다. 정보를 가지면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다.


2011년 9월에 개정된 ‘고등교육법’은 학생위원이 등록금심의위원회의 3/10 이상을 차지해야 하고 회의록을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며 위원회가 학교측에 자료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즉 대학생위원이 등록금의 산출근거나 대학의 회계운영현황 등을 학교 측에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자료나 다른 학교의 자료, 기본적인 통계가 궁금하면 한국대학교육연구소(
http://www.khei.re.kr/)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자료를 모으면 학교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물론 학교 측이 순순히 이런 자료를 주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경우에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럴 경우 국․공립대학만이 아니라 사립대학도 공공기관이라 정보공개청구의 대상이라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실제로 2011년 11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사학재단의 결산서를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이런 사례가 있으니 학교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직접 청구할 수 있다. 정보공개센터(
http://www.opengirok.or.kr/)를 통하면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해도 대학의 입장이 바뀌지 본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www.epeople.go.kr)에 가면 민원을 넣을 수 있다. 내용과 상관없이 민원을 넣으면 위원회가 관련부서를 알아서 찾아 통보하고 처리결과를 알려주니 효과적이다. 다만 요구사항을 분명히 해야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담포털(http://consult.humanrights.go.kr/)에 진정이나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 1학년 휴학을 교칙으로 금지한다거나 상대평가제도를 강화하고 수강신청을 제한하는 것 등 생각해보면 제기할 내용이 많다.


그래도 안 되면 이번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청년대표들에게 자료를 받아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국회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자료를 요청하면 대학들은 반드시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 홈페이지(
http://www.assembly.go.kr/)에 가면 지금 국회가 다루는 법률이나 국회의원들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정보광장’코너에서 회의관련정보와 법률관련정보 등을 검색할 수 있고, ‘의원광장’코너에서는 국회의원 현황과 국회의원들을 검색해서 볼 수 있고 그들의 홈페이지에도 찾아갈 수 있다.


이렇게 정보를 모으면 학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사학재단들은 창설자나 그 가족들의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안 된다. 그리고 총장을 선거로 뽑고 논의기구를 만들어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대학특성화나 글로벌화, 전문인력 양성 등을 내세워 대학본부가 기획을 주도하면서 대학 내의 의사결정구조가 더욱더 비민주적으로 변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의 참여를 배제하고 재단이나 대학본부가 일방적으로 학교비전이나 발전계획을 주도한다. 대학의 비민주적인 운영과 적립금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등록금을 낮추라는 압력이 강해지면 대학들은 발전기금 모금과 재정 확충을 내세워 산학협력 강화, 재정수입의 다양화, 수익사업의 추진 등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방향은 대학연구의 사유화와 독점, 시장논리에 맞춰진 교과개편이나 학사운영, 학내노동의 외주화와 캠퍼스의 상업화 등을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대학이 학문을 연구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기업의 연구소로 변하거나 그 자체가 하나의 기업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런 사태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해도 자료를 거의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실망은 하지 말자. 이런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학교는 긴장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학교가 꼼수를 부리기 어렵다. 학교가 상대평가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학생을 통제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대학들은 많은 돈을 홍보비로 쓰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나 외부에 학교 일이 퍼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리고 신문이나 TV같은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압박을 가하면 학교 측의 태도가 달라진다.


왜 귀찮게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면, 지금 현실을 보자. 2011년을 기준으로 사립대학의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3.6%인데, 재단이 학교에 전입하는 돈의 비율은 3.3%에 불과하다. 심지어 39개 대학은 한 푼의 전입금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2009년 1년 동안 전국 사립대가 땅이나 건물을 사고 공사를 하는 데 쓴 돈이 무려 1조 2,668억 원인데, 사립대 법인이 낸 돈은 1,366억원(10.8%)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렸다는 얘기이다. 2010년에는 30개의 사립대학이 주식과 파생상품에 적립금을 투자했다가 약 150억 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사학재단들의 적립금은 이미 10조원을 넘어 섰는데,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원금을 상환하지 못한 학생들의 수는 2010년에는 2만 5천 366명으로, 2006년 670명에 비해 5년 사이에 약 38배나 증가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었던 지난 10년 동안 대학적립금은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등록금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내가 낸 등록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등록금을 내는 사람으로서 나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학교의 공간을 이용하고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실험실습비를 쓰는 그 모든 과정에 학생의 권리가 있다. 그리고 빼곡한 강의실에 흥미도 없는 주제의 강의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강의를 개설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학생의 권리이다. 교육내용은 교수의 몫이지만 교육과정은 공동의 몫이니까, 그리고 재단이 아니라 우리가 교수들의 월급을 주니까.


그리고 대학 공간이 외부 기업에게 팔리면 팔릴수록 그만큼 생활비가 많이 든다. 반면에 대학생활협동조합이 있으면 낮은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니 대학생협을 만들도록 학교에 요구하거나 대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것도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어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 모여 신고하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여러 가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혼자서 학교의 문제를 지적하기 어려우면 학내의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짓장도 맞들면 났다고 청소노동자나 주차관리원, 시간강사 등과 연대하여 학내를 점거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것도 좋다. 실제로 성공회대의 노숙모임인 ‘꿈꾸는 슬리퍼’는 2009년부터 학교 내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다.


학교에서만 정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자신의 권리를 잘 모른다. 근
로기준법 제 5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1주일 동안 정해진 근로일수를 개근한 노동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이때 사용자는 통상적인 근로일의 하루치 시급을 주급과 별도로 셈해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주휴수당’이라 한다. 그리고 제 56조에 따르면,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의 노동에 대해서는 야간근로수당을 통상임금의 1/2 이상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보통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이런 사실들을 잘 모른다. 지난 2011년 10월 <청년유니온>이 커피빈코리아를 상대로 주휴수당 지불을 요구해서 약3천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5억원 규모의 미지급 수당을 받았다. 이렇게 싸우면 공정한 몫을 챙길 수 있다. 필요하다면 청년유니온(
http://cafe.daum.net/alabor)의 도움을 구하도록.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나중에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취직할 수 있다.



동네에서 정치하기


대학생들은 동네의 이방인이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지라 자신이 사는 동네를 잘 모른다. 그런데 동네를 잘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방정부도 일상적인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동네 일에 관심을 가지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즉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에 가면 여러 가지 공지사항이 뜬다. 거기에 보면 지방정부가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제 때에 신청만 잘하면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 등록금넷과 민주노동당 등의 단체들이 ‘대학생학자금이자지원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벌였듯이 대학생을 지원할 조례나 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1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들이 적은 돈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서대문구의 다른 대학들과 연계해 지방자치단체가 신촌에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짓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요구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건 좋은 일이다.


동네에 관심을 가지면 동네의 공공시설, 도서관이나 복지관을 이용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싼 가격의 프로그램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관심을 가져야 공공시설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 동네 일에 무관심하고 이런 시설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청년들에게 불친절하다. 만일 공무원들이 딱딱하게 굴면, 구청이나 시청 홈페이지에 가서 구청장이나 시장과의 대화 비슷한 게시판에 글을 남겨라. 장담하건대, 그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공무원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동네를 돌아보면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작은 단체들이 제법 많다. 단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자원활동을 하면 많은 동네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관계를 맺고 지내다보면 동네에서 떡도 나오고 밥도 나온다.


제대로 동네의 주인이 되려면, 그리고 동네의 이런저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적성에 맞으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고민할 수도 있다. 선거법에 따르면, 만 25세 이상의 시민이면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공탁금을 내야 하니 국회의원은 좀 부담스럽고 200만원을 내는 기초의원 선거는 해볼 만하다. 기초의원으로 당선되면 4년 동안 해고의 위협 없이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의회 내에 사무실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선거정보센터(
http://elecinfo.nec.go.kr/)에 가면 문헌자료만이 아니라 동영상자료, 사진자료, 선거공약, 홍보인쇄물자료 등을 볼 수 있으니 선거운동에 참고하길. 정치는 소위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인이 아니면 지역사회의 기업가가 될 수도 있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일자리나 지역고용창출 등을 정책으로 만들어 청년들을 지원하기도 하니 관심을 가지면 좋다. 버는 돈은 적을 지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으니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만들기에 도전해 볼만 하다. 희망청(
http://hopenetwork.tistory.com/)이나 한국협동조합연구소(http://www.coops.or.kr/), 사회투자지원재단(http://www.ksif.kr/), 함께 일하는 재단(http://www.hamkke.or.kr/)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사회에서 정치하기


시민사회단체나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좋은 방법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나 정당은 어버이화되어 상상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20, 30대의 투표율이 높아지니 모든 정당들이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난리법석이지만, 결국은 자기 입맛에 맞는 청년을 찾아 기존 구조에 끼워 맞추겠다는 발상이다. 경쟁에 지친 청년들에게 또 다시 오디션 방식을 요구하는 그 발상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선거 때 반짝하는 이벤트보다 당 내의 의제모임이나 꾸준한 활동을 펼치는 정당을 택하는 게 좋다. 가령, 2012년 3월에 창당된 녹색당은 다양한 의제모임과 청년모임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농민, 노동자와 연대하며 미래의 자기 삶을 대비하도록 지원하는 정당을 택하는 것이 좋다.


시민사회단체나 정당활동을 권하는 것은 법을 만들 수 있고, 노동법이나 고등교육법의 개정을 제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20인 이상이면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으니 청년비례대표제도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각 당의 청년의원들이 이런 창구 역할을 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대학생들도 식당을 이용하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와 술을 살 때 이미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내가 내는 세금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


사실 이제는 개인적인 성공보다 사회로 눈을 좀 돌려야 한다. 정치에 좀 관심을 가져야 미래를 고민할 수 있다. 피크 오일이라 석유저장고가 바닥을 이미 쳤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석유로 돌아가는 한국사회는 이런 위기를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더구나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마지막 경보를 울리고 있다. 한국에 이미 21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6개를 짓고 있고 2030년까지 핵발전소가 총 41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대학생들은 알라나 모르겠다. 현 세대가 에너지를 마음껏 쓰기 위해 핵폐기물이라는 저주의 물질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사실을.


어쨌거나 사회를 바꾸려면 우리가 의식화, 조직화되어야 한다. 공적인 참여는 당위가 아니라 나를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는 공적인 행복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정치를 즐기자!



참조하면 좋은 책


하승우․유해정, 『도시생활자를 위한 정치백서』(북하우스)

프란시스 무어 라페, 『살아있는 민주주의』(이후)

전진한 외, 『정보사냥』(도요새)


반값 등록금이 화두이다. 그동안 근거 없이 치솟던 대학 등록금이 뭇매를 맞고 있다. 등록금이 제대로 책정되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그동안 사학재단들이 등록금을 어디에 써왔는지를 보자. <한국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1년 동안 전국 사립대가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느라 쓴 돈이 무려 1조 2,668억 원이다. 그런데 그 중에 사립대 법인이 부담한 돈은 불과 1,366억 원(10.8%)이다. 결국 1조 원 이상의 학생등록금이 이런 일에 들어갔다. 학생들을 위해 그랬다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학생은 졸업해도 건물은 남으니까.


그런데 등록금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 돈도 만만치 않게 든다.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하는 경우 생활비는 몇 배로 뛴다. 예전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 그나마 돈을 아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요즘 기숙사는 대부분 민간기업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교육기관의 정체성을 버리고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5년 정부가 ‘대학설립운영규정’을 개정해 기업이나 개인이 기숙사나 식당같은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기숙사들이 민간투자(BTL) 방식으로 세워진다. 기업은 일정 기간 동안 기숙사를 운영해 자금을 회수하고 15~20년 뒤에 기숙사를 대학에 기증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공짜로 건물을 받으니 이득이고,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어 좋다. 피해를 보는 건 일반 기숙사보다 2, 3배 비싼 입주비를 내야 하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2009년에 사립대학들이 기업들에 학내의 공간을 임대해서 얻은 수익이 총 1,225억 원이다. 이렇게 번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2010년에만 약 150억 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사립대학들은 수익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학원이니까.


지금 세종대에서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대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운영하는 <세종대학교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쫓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종대는 학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며 2009년부터 생트집을 잡아 왔다. 대학본부는 <대학생협>이 적자운영을 하고 적립된 복지기금을 장학금으로 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시작된 <대학생협>의 목적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활을 돕는 것이다. 싼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실제로 <대학생협>이 운영하는 매점이나 식당은 기업체가 운영하는 곳보다 훨씬 싸다. <대학생협>의 존재와 활동 자체가 학생들의 복지와 연관되니 굳이 따로 학교에 돈을 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민간기업의 운영체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기업의 특성상 이익을 보려 할 텐데, 그런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대학생협>보다 학생들에게 이로울리 없다. 더구나 협동조합은 일반기업과 달리 조합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도 갖추고 있다. 물품이나 서비스의 가격부터 품질까지 조합원들이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 업체보다 <대학생협>이 학생들에게 이익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세종대는 막무가내이다.


결국 법정까지 간 세종대와 <대학생협>의 분쟁은 지금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학교 비리로 쫓겨났던 이사장이 복귀를 시도하는 와중에, 2011년 4월 세종대는 <대학생협>을 상대로 학교식당 및 복지시설의 운영권을 위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차 공판은 학교가 갑이니 어쩔 수 없다며 학교 측의 손을 들어 줬다.


법원이 정녕 대학의 공공성을 믿는다면, 대학이 정말 민주적인 공간이길 바란다면, 다른 판결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예전에 <세계일보>에 썼던 글을 파일 정리하다 우연히 찾았다.
2003년에 쓴 글인데 별로 바뀐 게 없다.
참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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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대학에 관해 좋은 얘기를 듣기 어렵다. 학문의 전당이라 불렸던 대학은 입시부정, 임용비리, 회계비리 같은 부정을 키우는 곳이자 이공계 위기, 인문학 위기 등 위기를 낳는 모태로 변했다. 게다가 성폭력, 엄격한 도제관계, 시간강사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착취 등 폭력과 억압을 조장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왜 학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걸까? 그 답은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다. 바로 시선과 관심을 막으며 대학을 빙 둘러싸고 있는 ‘권위라 불리는 벽’들이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이 벽은 밖으로 ‘대학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내걸어 개입을 막고 안으로 ‘대학 경영의 원칙과 효율성’을 외치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대학은 사학재단이라는 영주의 성채로 변했다. 교육부라는 군주의 대신과 계약을 맺은 영주는 성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결정권과 심의권을 가지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성 내의 법률인 학칙도 영주의 마음대로 정해진다. 연초에 한번 세금을 바치는 학생들이 벌이는 등록금 투쟁을 제외하면 앞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다. 어떻게든 학생 수를 늘려 세금을 많이 걷는 게 중요하다보니 대학교의 교원 일인당 학생수는 1965년 23.2명에서 2002년 40.1명으로 늘어났다. 고등학교와 비슷한, 때론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조그만 강의실에 갇혀 있다. 영주는 백성들의 말을 듣는 게 귀찮을 뿐 아니라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히 교수충원이나 교과과정 개편도 학생들의 욕구가 아니라 영주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영주와 계약을 맺고 학생들을 지배할 권위를 부여받은 기사들이 대학교수다. 그리고 이 기사들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라는 부하들로 자기들만의 부대를 꾸리고 그 속에서 영주와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똑똑한 부하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기에 기사들은 이 부대에게 더욱더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얼마 전 한 대학교수가 “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제자를 성추행했듯이 자신이 중세 시대 초야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기사도 있다. 이 기사들은 학생들의 절대적인 복종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도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다. 학위라는 갑옷과 학점이라는 창으로 무장한 이 기사들은 전문가주의의 쇠퇴라는 사회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런 봉건질서의 완고함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이런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학생들은 대학의 봉건질서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고 그 질서에 복종하며 착실히 계단을 밟고 올라가 기사나 영주가 되려 한다. 또는 만사를 귀찮아하며 스스로 농노, 노예가 되려 한다. 한국의 대학은 중세의 봉건제를 능가할 만큼 단단한 주종의 계약관계 혹은 먹이사슬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대학이 중세시대 등장한 공동체이기는 하다. 독일의 역사가 자입트(F. Seibt)는 대학이 신학공동체(universitas)에서 출현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에도 대학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서로 질문을 던지는 토론공동체였고 권위로 인정되어 온 원전에 의문을 품었다.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대학의 학풍은 그것이 자리잡은 지역사회까지 변화시켜내며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어떤가? 토론은 없고 권위만 있다. 그 권위의 합리적이고 정서적인 바탕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일반인들도 다 아는 상식을 왜 지성인들이 모를까?

시사인에 쓴 칼럼이다.
몇 줄이 짤렸고 분량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긴 했지만(여차하면 다음 기회에 교수직의 실상을 폭로?ㅎㅎ) 대충 할 말은 했다.
2012년, 이제 비고용노동자로서의 삶을 새로이 시작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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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니 햇수로 10년이다. 그동안 직함도 시간강사, 겸임교수, 연구교수, 객원교수로 바뀌었다. 직함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계약을 해본 적이 없다. ‘이상한 공장’ 대학에는 기본적인 규칙이 없다. 핸드폰으로 해고문자를 보내는 야만적인 규칙조차 대학에는 없다.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는다는 연락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번에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학기마다 맺던 고용계약을 최소 1년으로 연장시킨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계약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조건으로 강의를 맡는지 확인한 바 없는데, 기한만 연장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결국에는 강의를 주겠다며 전화를 하는 교수들에게, 대학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난 해 시민교육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알바를 하든 반드시 고용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청년유니온을 인터뷰하고 알바 실태를 조사해서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도 고용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 여기서 어떤 교육이 가능한가? 누가 누구에게 시민됨을 가르칠 수 있는가?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을 내세운 대학에서도 비정규직은 해고되고 어떤 강사들은 외부 프로젝트를 한다는 이유로 강사료를 받지 못한다. 학교 밖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교수들도 학내에서는 놀라우리만치 보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득을 보는 건 사학재단이고, 교수들은 이런 야만을 승인하고 때로는 결탁하며 자리를 보존한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만 야만의 상태에 놓인 건 아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휴학하고 다른 학교 시험준비를 하는 ‘반수’를 막는다며 1학년생들의 휴학을 금지하는 대학들이 많다. 학생증이 은행의 체크카드로 변한 지 오래되었고, 학교 공간 곳곳에 기업들이, 상품의 논리가 침투했다. 이 모든 게 학교 발전을 위해서란다. 한국의 대학들이 제아무리 인문정신을 떠들어도 그곳은 이미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상품의 공간이다.


그래도 대학에서 필요한 전공과 교양을 배우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학기 초마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기는커녕 들을 수 있는 과목을 찾아 수강신청하느라 바쁘다. 그렇게 수강하니 당연히 수업분위기는 좋지 않다. 그리고 졸업반 학생들이 조별로 활동하는 수업, 토론하는 수업을 처음 했다고 할 정도로, 대학의 분위기는 갈수록 중고등학교를 닮아간다. 좀 쉬었다 하자고 하면 다들 책상에 얼굴을 묻는다. 뭐가 그리 피곤하냐고 물으면 쪽지시험에, 과제에 너무 힘들단다. 상대평가방식이 점점 더 세분화되니, 교수들이 가장 쉽게 성적을 매길 방법은 과제와 시험이다. 교육 원칙이나 소신 따윈 필요 없다. 한국의 대학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 존재하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건 한국 교육의 정점이 대학이고 교육의 목표가 학벌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적립금이 문제되어도 사학재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대안학교가 발버둥을 쳐도 학벌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학생들이 계속 대학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조용한 노동자, 무기력한 학생, 영악한 교수, 오만한 사학재단, 부모들의 욕망이 교육을 빙자한 야만의 대학을 유지시킨다.


그래서 대학을 관두기로 했다.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내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교수라는 직함보다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으려 한다. 현장과 이론을 잘 아는 연구자, 그들과 학생을 이어줄 시스템, 시민사회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다면 야만의 대학을 무너뜨릴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누군가는 이 공모관계에서 벗어나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 나부터 시작이다.

학교에 강의하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게 청량리로 가는 열차냐고 묻던 남루한 차림의 그 남자는 말이 고팠던지 계속 말을 걸었다. 이어폰을 빼고 눈을 맞추자 그 남자는 내게 스포츠토토 복권을 하냐고 물었다. 로또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당황하자 그는 자신의 복권을 꺼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잘 써야 한다고, 자기 아는 형님은 2만원 넣어서 100만원을 탔다고 얘기하다 그는 갑자기 지갑을 꺼냈다. 낡은 파란색 지갑에는 복권 용지로 보이는 하얀 종이가 가득했고 다행히 천원 지폐 몇 장 외에 만 원권도 보였다. 실패한 희망이 가득한 지갑을 접으며 그는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가카와 박원순 시장 얘기를 꺼냈다. 가카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일감이 줄었다고, 박원순 시장이 바로 서울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2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라며, 나이든 사람들은 보수적인데 자신은 박원순을 찍었노라며 열변을 토할 때쯤 지하철은 청량리에 도착했다. 클라이맥스라 아쉬웠지만 지갑 안의 만 원권이 복권용지로 변하지 않길 바라며 그 남자를 보내야 했다.


남자가 내린 뒤 복권과 박원순의 관계를 찾으려 애를 썼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 스포츠토토 복권을 하며 머리를 단련시키지 않아서일까? 내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왜 그에겐 당연한 일상일까?


실마리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던가. 내가 사는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를 지나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그 아파트 단지의 벽에는 시민들의 쉼터인 토월약수터를 파괴하는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수지구에 몇 남지 않은 녹지를 보존하려는 좋은 마음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아파트 벽 같은 자리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렸다. “신분당선 연장선 착공 경축! KTX-GTX 동천역에 환승역 추진하라!” 약수터를 지키자와 마을을 파헤치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걸 보며 나는 실마리를 찾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박원순을 지지하는 진보이고, 수지구에 사는, 분당을 꿈꾸는 중산층이 김문수와 가카를 지지하는 보수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인간의 마음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자기 식으로 재단하려는 몹쓸 사람들이나 할 얘기이다.


내가 찾은 실마리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도저히 함께 품을 수 없는 욕망들을 모두 움켜쥐고 살아야 할 만큼, 아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한 많은 걸 더 빨리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삶을 파괴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꼼수다’를 즐겨 들어도 2012년에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정권은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위기를 해결하거나 욕망을 풀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두 손에 움켜쥔 욕망을 내려놓고 위기에서 벗어나려 적극적으로 몸부림을 쳐야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내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를 노동조합이 떨어뜨린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집값을 높인다며 마을을 공사판으로 만들지 않고, 전력수요를 대비한다며 핵발전소를 짓지 않아야 우리는 가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1988년 귓 속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뉴스 방송에 뛰어든 남자는 우리가 그런 세계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했다. 구속된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도 그런 진실을 폭로한다. 제목부터 숨이 막힌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라니.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 누구도 꿈을 가둘 수는 없다. 우리도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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