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녹색당 평당원이다. 당직자도 아닌 사람이 그동안의 녹색당 활동을 설명하고 평가하자니 참 부담스럽다. 아마도 내게 글을 청탁한 건 그동안 정당정치를 강하게 비판해온 사람이고 아나키즘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인 듯한데, 한발 멀리 떨어진 사람이 활동을 자세하게 관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상비평’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면 좋겠다. 그리고 좀 단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내 성격 탓이다. 그런 걸 피하고 싶었으면 신중하게 글을 써줄 다른 필자를 구했어야 옳다. 이 글이 불편하다면 독자들은 나를 탓하지 말고 청탁을 한 편집진을 탓하길.
녹색당 얘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좀 소신 있는 사람, 고집이 세고 싫은 걸 못 참는 사람, 이간질 대마왕으로 보지만 나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게 ‘관계’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신념이자 이념이기도 하기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중요한 기준이다(다만 맺고 끊고를 확실히 할 뿐이다). 내가 녹색당에 참여한 이유 역시 관계가 강했다. 싸부(사부님이 아니다!)이신 김종철 선생님이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활동하시는 걸 보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색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 전에도 대안이념으로서 녹색사상이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불안했지만 녹색당이 아닌 다른 활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풀뿌리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런 노력이 조금 더 빨리 필요하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풀 수 있는 정당이 녹색당이라 믿었다. ‘그래도 아나키스트라면서?’, 뭐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 계통의 대선배이신 프루동 옹도 선거에 참여한 경험이 있음을 떠올려 주시라(나중에 정치에 참여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시긴 했지만).
그리고 정당에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청년진보당의 당우를 잠시 했었고, 진보신당의 당우도 했었다. 소위 진보정당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거나 당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정당과 관계를 맺은 게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못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신물 나게 배운 게 제도정치와 관련된 여러 이론들이었다. 재미가 없어 열심히 공부하진 알았지만 제도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굳이 이런 부연설명을 하는 건 세상 물정 몰라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이다(이런 뒷담화를 제법 듣다보니 한번쯤은 해명을 하고 싶었다).
이 글 속엔 이런 고민들이 뭉뚱그려져 있다. 아마 전체적인 기획 글 중에서 가장 특이한 글일 수 있을 텐데, 어차피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특이한 정당이니 좀 특이하게 설명하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녹색당이 있어 행복해요!: 거꾸로 가는 정당
2011년 10월 30일 서울의 선유도 공원에서 녹색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012년 3월 4일에 창당대회를 했으니, 불과 4개월 만에 정당법에 따라 5개 시도 이상에서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모은 셈이다. 기성조직을 전혀 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당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서울시나 경기도는 어떻게 하더라도 나머지 3개 지역에서 1천명 이상을 모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중앙언론사들이 주목하는 정치흐름도 아니고, 더구나 ‘야권연대’가 대세라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였다. 기성정당에서 나온 사람들과 지역의 풀뿌리단체들도 녹색당에 결합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녹색당은 서울과 경기, 부산, 대구, 충남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서울과 경기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부산, 대구, 충남에서 치러진 창당대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대구와 충남의 창당대회는 녹색당의 열기를 달군 녹색당 내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창당대회까지의 당원분포를 보면 충남 홍성 홍동면은 전국에서 녹색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고 ‘녹색당의 성지’라 불릴 정도였다. 사실 홍성은 풀무학교로 이미 유명한 곳이고, 한국 농촌공동체의 희망이라 불리는 곳이니 녹색당의 터전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그리고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가 강한 농촌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정치적인 커밍아웃’이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뭘까? 여러 사람들의 얘기와 카페, 홈페이지, SNS에 올라오는 내용을 종합하면, 그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리고 자기 욕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시민들이, 채식, 성소수자, 인권, 생태 등 다양한 이슈들이 녹색당에 결합했다. 다른 정당들도 있는데, 왜 하필 녹색당이었을까?
일단은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녹색은 이념이 아니다. 이건 녹색당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녹색당은 ‘탈핵’과 ‘생태’라는 구호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청색과 적색을 대체하는 제 3의 이념, 청색과 적색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념이라는 점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녹색이념을 ‘표방한’ 정당을 창당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치적인 거부감도 별로 없다. ‘착한 정당’ 같아서 많은 시민들이 좋은 뜻으로 녹색당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게 강점이자 약점이다(이유는 뒤에서).
편안함보다 더 강한 원동력은 녹색당이 행복을 실현할 장소로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녹색당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생애 첫 당원’이 녹색당의 모토가 될 만큼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2012년 3월 4일 창당시점에는 여성당원의 비율이 53%에 달했다. 청소년당원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발기인대회나 창당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치에 부정적인 한국사회에서 이런 당원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당들은 ‘미래의 행복’을 보장한다. 우리를 지지하면 행복을 실현시켜주겠다, 눈물을 닦아주겠다느니 또는 행복을 되찾아주겠다는 공약(公約)을 내건다. 하지만 녹색당은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왜냐하면 ‘집권’을 위한 정당도 아니고 사회체제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는 정당도 아니기 때문이다. 녹색당원들은 녹색당에 참여하며 행복을 느낀다. ‘지금 행복’하기에 ‘생애 첫 정당’에 기꺼이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이런 에너지가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고, 이런 에너지를 만드는 당원들이 녹색당의 원동력이다.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며 또 다른 사람이 행복에 감염되고, 그러면서 녹색당의 앞날이 밝혀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건 정치과정의 역전이다. 미래를 저당잡히고 보장받길 원하는 당원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보장하려는 당원이 녹색당을 이끌고 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당활동을 통해 당원들은 공적인 행복(public happiness)을 느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혁명이 자유의 공간을 만든 건 “어느 누구도 공적 행복을 향유하지 않은 채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 “아울러 공적 권력에 참여하지 않고 몫을 보유하지 않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녹색당은 한국사회에 행복을 향유할 자유의 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당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모두가 적극적인 당원은 아니다. 적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녹색당이 만든 다음카페(http://cafe.daum.net/Kgreens)나 페이스북 그룹(http://www.facebook.com/koreagreenparty)을 보면, 다양한 당원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소수(하지만 다른 정당들에 비하면 훨씬 다수!)이다.
하지만 그 수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적극적인 당원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피곤한 한국사회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행복해서 스스로 나서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원들이 나서서 현수막을 만들고 걸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 경험이 항상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행복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조직적인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뛰어다니는 당원, 이런 정당이 그동안 한국에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녹색당 사무처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한 송준규 씨는 《공동선》 104호 특집에 쓴 “풀뿌리들의 놀이터, 녹색당”이라는 글에서 이를 ‘놀이’라 표현했다. “사무실에서 일에 대해서 서로 격 없이 물어보고 대화하는 속에서 나는 전체적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고, “공보물에 들어갈 핵심적인 슬로건을 정하는데도, 각 책상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생각을 물어보고 깔깔 웃으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장면이 인상깊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인상은 “참 발랄하다는 것”으로 선거를 위한 특별당비 모금과정이나 선거운동과정에서 평당원들이 자발적이고 발랄하게 참여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신나고 즐겁게 도전해보는 점에서, 녹색당의 구성원들은 정치를 하나의 ‘놀이’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송준규 씨는 결론을 내린다. 정치를 놀이로 대하는 건 그동안 부정적이고 엄숙했던 정치와의 결별이다.
사실 이것은 녹색당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풀뿌리 운동에서는 나름의 상식으로 굳어진 논리가 있다. 활동가나 실무자가 너무 열심히 활동하지 말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도록 열어 놓으라는.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면 꽉 짜진 느낌이 없어야 한다. 3월 4일 창당 이후 녹색당 중앙당의 실무자는 8명이었다. 역설이지만 실무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원들의 일이 많았다. 특별한 건 아니고 이런 느슨함이 녹색당의 당원들을 고무시켰다.
허나 당원들의 요구에 실무진이 신속히 반응하지 못한 건 고민점이다. 선거나 제도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생애 첫 당원들이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반응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찾아가며 성장하는 면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당체계를 마련하는 건 앞으로의 과제이다.
녹색당, 우리들/너네들 정체는 뭐니?
녹색당 창당대회에서 사무처장을 맡게 된 하승수 씨는 《녹색평론》 2012년 1/2월호(제 122호)에 쓴 “지금 왜 녹색당인가?”라는 글에서 녹색당을 ‘반정당의 정당’이라 불렀다. 대의민주주의에 한계가 있지만 “당장의 권력이 아니라 20~30년 후의 사회를 위한 비전과 가치를 가진 지속성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그 정치세력이 지역과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선거정치만이 아니라 생활 속의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정치세력이 일부 권력 지향적인 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래의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제도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정치를 펼치며 권력 엘리트를 통제하는 것이 녹색당의 역할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녹색당이 비판하는 정당정치는 지금 당장의 권력만 보고 선거정치에 올인하며 일부 엘리트들이 나눠먹는 정치이다.
그동안 정당정치를 잡아먹을 듯 비판하고 한국의 진보정당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지만 ‘좋은 정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세금으로 삥 뜯어 한 해에만 수백 조의 돈을 마음대로 나눠먹는 놈들, 재벌과 결탁해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놈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돈과 힘을 좋은 방향에 쓰면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가 될까. 선거 때마다 누군들 이런 생각이 없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리라 기대할만한 정당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정당이 정녕 가능할까 항상 의문을 품었는데, 녹색당은 그런 정당을 표방했다. 물론 기존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처럼 그런 취지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반(反)정당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정당들도 자유롭지 않다. ‘당외’만이 아니라 ‘당내’의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표결이나 다수결의 문제로만 받아들이고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눈독을 들이고 통합과 연대를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점은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는 면이다.
물론 녹색당만 기성정치의 함정을 잘 빠져나갈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지지한 것은 다른 정당에서 드러나지 않는 녹색당의 가치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역/지방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정당은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모든 게 중앙에서 결의되어 지방으로 전파되고 조직의 혈관을 타고 이해관계가 배분된다. ‘풀뿌리’에 기반을 두고 그 관점에서 정치를 재구성한다는 것이 내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점은 풀뿌리운동의 동지(同志)로서 10년 이상 지켜봐온 하승수씨와 김현씨가 녹색당에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친분을 맺어 왔거나 이름을 들어온 전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녹색당에 결합한 것으로 내게 설명되었다. 나는 지역의 연합체로서의 정당,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으로서의 정당이 보고 싶었고 녹색당에 기대를 걸었다.
물론 ‘반정당의 정당’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리고 녹색당이라는 형태가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반정당’이라는 틀과 잘 어울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녹색당의 핵심구호인 ‘탈핵’만 봐도 강력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지금 당장 강력한 힘이 요구될 듯한데, 반정당의 틀은 꽤 느슨하다. 반정당의 정치는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데 한국의 정치구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이다. 논리적으로는 연결될 수 있지만 탈핵을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집권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정치현실 아닌가. 더구나 지금 당장의 이해관계를 놓고 다투는 선거에서 미래의 비전과 가치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 그리고 중앙정치 중심, 인물(명망가) 중심의 선거에서 반정당의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어려운 물음을 푸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이 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의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착한 정당’ 이미지를 포기하고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나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맘대로 만들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판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그럼에도 지방선거에서 하지메가 상당한 득표를 했다는 점을 생각하자). 다른 하나는 중앙정치나 선거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사건은 불확실한 현실에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아예 무시된 듯하고, 두 번째는 고민만 된 듯하다. 녹색당이 창당하기 전에 『녹색당 선언』(이매진, 2012년)이 출간되었다. 녹색당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당원이 된 이유를 담담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면 녹색이라는 큰 틀로 묶이긴 하지만 각자의 관심사와 처지가 다르다. 서로 쓰는 말에서도 약간씩 충돌이 보이고(가정, 아이, 노동, 가난 등), 근본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답이 없다. 이 근본적인 물음에 관한 답이 글 속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텐데, 이 선언은 모음집에 가깝다.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원들끼리 공유하는 내용이면 상관없지만 ‘선언으로서’ 사회에 던져진 사건은 아니었다.
창당대회 때 발표된 창당선언문 역시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얘기하지만 4대강사업이나 핵발전소 등에 관한 이런저런 반대와 환경, 생명, 풀뿌리, 여성, 인권, 평화 등의 힘이 성장했다는 선언 정도이다. “녹색의 가치가 더 이상 미루어지거나 부차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래서 녹색의 가치가 뭔데?’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녹색과 관련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선언은 1989년에 발표된 ‘한살림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한살림 선언은 산업문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체제의 지배를 비판하고 생명의 세계관에 따른 공동체 회복과 생명의 질서 실현을 주장했다. 이것은 근대의 산업문명을 우리의 동학과 서구의 신과학운동, 녹색운동으로 극복하려는 놀라운 선언이자 사건이었다. 녹색당은 이 정도의 충격적인 선언이나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기존의 선거판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즐겁게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생정당이기에 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거려졌던 이물감들이 드러났던 것 같다. 성소수자를 암이라 부르고, 침뜸을 놓는 분들을 돌팔이라 부르고, 여전히 지도부를 찾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정당에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폭력을 다양성의 논리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설득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내면화된 편견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그걸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소수자는 폭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하나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녹색당이 추구하는 다양성이라는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정당이라는 틀 속에서 녹색의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이다. 그 정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다. 다만 정당이라는 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형태인데, 그 목적이 당원과 시민들에게 얼마나 이해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해란 건 단순히 알고 있다가 아니다.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듬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공감은 설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변화될 수 있고, 정당은 그런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했는데 바로 개입한 선거는 그런 여유를 주지 못했다.
사람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녹색당의 구호를 만드는 방식도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밥상’과 ‘핵 없는 미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밥상과 미래가 아이들로 재현되는 건 문제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살지 ‘아이를 위해’ 살 생각이 없다. 아이는 독립된 개체이고 ‘그만의’ 미래가 있고, 다만 나는 그 선택지가 줄어드는 걸 막고 싶을 뿐이다. 내가 즐기고 누려온 것들이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과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이 없는 사람들, 혹은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 또는 과거의 가족구성과는 다른 동거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녹색당의 가치가 소수라면 이런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해야 할 텐데, 그런 고민은 부족한 듯했다. 착한 정당은 사건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엘리트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지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하기도 하고 선한 의지를 품고 이를 위해 힘을 기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정당의 당원으로서는 같이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럴 거면 정당 외에 다른 길을 찾겠다. 남을 위하고 모두를 위한다는 자들이 정치를 이렇게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자 가장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녹색당, 우리가/너네가 정치를 알아?
이런 문제가 가장 불거지는 시공간이 바로 선거이다. 녹색당은 창당 후에 바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사실 너무 무리한 일정을 강행한 것이고, 후쿠시마 1주년이라는 시기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미 시작된 일이고 많은 당원들이 선거에 올인했다.
하지만 생애 첫 당원들과 선거를 치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거법도 익숙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좀 선거를 해봤다는 분들이 하는 조언은 기성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반대에 부딪치고, 새로운 시도는 그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냉소와 맞물린다. 반정당의 정당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는 바로 선거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왕 선거판에 끼어들었으니 자기 존재를 잘 알렸어야 했는데, 녹색당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선거 당시 녹색당 선거공보물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녹색당 선거공보물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예쁘게 만든 거야 좋았지만, 설마 했었는데,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학력이 떡하니 나와 있다. 가뜩이나 학력이 좋은 녹색당 아닌가? 선거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했는데 진보신당의 공보물에는 학력이 없었다. 왜일까? 학벌사회에 대한 공감능력은 왜 부족할까?
그리고 “핵이 밥상에 올라온다”는 공보물의 큰 문구는 핵이 위험하다는 의도는 전달했지만 핵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핵을 반대하는 것이 석유문명을 반대하고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자는 논리로 들리기도 했다. 공보물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정당인가를 설명하는 듯했고, 마치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듯했다. 농업, 생명권, 노동사회 탈피, 여성․소수자․청년의 정치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사실 녹색당이 표방한 것은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연계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통해 녹색당은 어떤 연계를 목표로 삼았을까? 몇 가지 정책공약을 보면 그런 연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구상은 없었다. 무엇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한 발판이 필요한데,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은 공약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제도적인 변화를 꽃피게 할 사람들을 어떻게 찾고 그들을 도울 것인가? 생활정치의 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녹색당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이런 내용을 녹색당의 공식적인 정책이나 논평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이 점이 총선의 중요한 이슈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중앙정치에 열중할 때 녹색당은 지역정치, 지방정치, 생활정치에 몰두하는 면을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활동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녹색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내용, 녹색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시해야 알 수 있는 내용 대신에 말이다. 아마도 청년당이 훨씬 더 짧은 시간 동안 아무런 토대 없이 활동하고도 0.34%라는 정당득표를 받은 걸 보면 선거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작업을 하고 녹색당이 0.48%의 표를 받았다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앞서 말했듯이 녹색당이 총선에서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목을 놓아 지지를 호소했지만 그건 사건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건 다른 정당들도 선거 때 열심히 하는 일이다. 선거라는 ‘판’을 뒤흔들어야 사건이 되는데, 그런 사건은 없었다. 외려 사건은 진보신당에서 터졌다.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가 비례대표 1번이 된 것은 한국정치의 사건이었다.
물론 선거운동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철저히 중앙정치로 논리로 만들어진 선거판과 소수정당의 선거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이 녹색당의 발목을 잡았다. 녹색당원 오관영씨는 《창비주간논평》에 쓴 “녹색당 총선 참관기”에서 각종 정책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고도 이를 알릴 수 없었던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녹색당의 지향과 현실의 제도정치 사이에 간극이 컸고, 제도정당으로 등록하면서 현실의 제도적 틀이 강제하는 힘이 녹색당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했습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녹색당은 기존 제도정당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녹색당다운 소통방식, 선거운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는 내부의 한계도 인정한다. 어쨌거나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어도 녹색당에서 사건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어떤 개인이 후보자로 출마했다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문법’을 뒤흔들 새로운 언어의 출현이 필요했는데 녹색당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녹색당들이 성공한 것은 바로 그 점에서였다. 페트라 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정치의 언어와 문법을 개발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가끔씩 녹색당이 주류언론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기존의 정치문법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요샛말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아니라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좋은 정당’ 정도였지 이 정당이야말로 정말 ‘새로운 정당’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충격을 느끼며 녹색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게 만들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면 그것을 뒤흔들 사건이 필요한데 녹색당은 그런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 스스로 위안하는 점은 당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정책의 클릭수가 높다는 점 정도이다. 진정한 ‘정책정당’이라는 주장이지만 클릭수가 높다는 게 정책에 대한 지지도나 인지도가 높다는 점이나 정책내용이 뛰어나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녹색당의 정책이 분명 보수정당들보다는 뛰어나지만 진보신당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두 당의 정책을 비교하면 상당 부분이 겹친다. 더구나 녹색당의 정책은 완성본이 아니었다. 선거에 활용할 몇몇 정책을 모아놓은 것이고, 그 내용에 당원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못했다. 결국 개별 정책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적인 녹색당의 정책기조에 관한 내용은 부족했고 그것에 관한 당원들의 합의도 없었다.
사실 나는 선거 때마다 중앙당이 정책을 뿌리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 정책은 이해관계의 배분이지 정치의 과정일 수 없다. 정녕 풀뿌리로부터 만들어진 정당이라면, 선거의 정책이나 공약이 중앙에서 내려올 수 없다. 외려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공약이 중앙으로 모여야 한다. 각 지역의 공약들이 한데 모여 연찬과 경연을 벌여야 한다. 이게 ‘연방’의 원리로 구성되는 정치논리여야 할 텐데 아쉽지만 이번 총선 때 녹색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결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결합이 지역의 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이려면 정치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정책이라 불리는 것 이전 단계의 ‘이야기꺼리’가 필요하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보태지고 빼져야 정책의 기본방향이 분명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에는 선거법의 제한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으니 이 아쉬움은 다음 선거 때 풀릴 수 있을까?
현재 녹색당은 재창당 과정을 밟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득표율이었고 그래서 정당등록취소라는 일까지 겪게 되었는데 공식적인 선거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선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책임과 반성이 없다면 선거에는 왜 개입했을까?
공식적인 평가가 없기에 녹색당의 당원들이 쓴 글들을 모아서 읽어봤다. 녹색당원 우석영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쓴 “녹색당 0.48%의 이유”라는 글에서 녹색당 운동이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능력과 신망 있는 정치 지도자”를 요구하는 “주류의 요구”, 둘째는 녹색전환을 가능케 할 대중적인 “문화 기풍”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 셋째는 녹색의 가치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조화롭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녹색당 홈페이지에 가면 초록주의라는 필명의 사람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녹색당 19대 총선 평가”가 있다. 초록주의는 탈핵이라는 구호가 후쿠시마 사고에도 무심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했다고 전체 평을 한다. 탈핵을 내세운 것이 실패한 선거 전략이라는 얘기이다. 초록주의는 “환경생태는 아직도 중상층의 지식인과 소수인 생활 초록파를 빼놓고 하루하루의 생활에 바쁜 서민들에게는 배부른 사람들의 문제”이기에 녹색당의 정책과 활동이 다른 틀로 움직여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초록주의는 선거과정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는데, ①당원의 의겸수렴이나 권한위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급박하여 일부 절차가 무시된 상태에서 선거에 일정에 맞춰가는 것”의 문제점, ②녹색당 후보 검증절차가 없었다는 점, ③김용민 후보 사퇴 성명서의 책임 문제, ④언론 홍보나 당원들의 선거운동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총선이 끝난 뒤 한 당원은 진보신당, 청년당과의 수다회(http://cafe.daum.net/RangForum)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녹색당 찍었다고 하고, 총선 끝나고 여기저기 전화오고 문자오는데, ‘난 그래도 녹색당 찍었어, 괜찮냐? 고생 많았다’라더라, 내가 직장생활보다 선거운동에 전념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총선 끝나고 출근하니까 사장님이 다른 말씀 전혀 없으시고 ‘어쩌겠어, 결과가 이렇게 됐는데’라며 오히려 미안해하시더라. 이런 사람들도 다 찍었다는데, 내가 모은 표만 해도 100표는 넘을 듯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주변 사람들이 특이한 거다. 현실정치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누구나 녹색당이 뭔데? 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듣보잡이 된다’라는 뼈아픈 얘기를 하더라. 그걸 어떻게 넘어야 할지가 관건이지 않겠나.”
선거에서 득표한 비율과 당원 비율을 놓고 비교하거나 이런저런 분석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투표장에 들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후보자, 체계적인 당론 수렴,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운동같은 내부요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국내외의 정세변화, 선거 당시의 이슈, 경제상황 등 수많은 외부요인이, 심지어 날씨같은 외부요인까지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탈핵을 얘기할 때 누군가가 생뚱맞아 보이는 경제성장을 얘기하면 성장에 손이 가는 게 현실이다.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고 후보 검증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그것은 선거판의 외부변수를 쉽게 무시하긴 어렵다. 그리고 외부변수는 한 정당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선거도 불확실하다.
앞서의 선거분석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쉽게 동의되지 않는 건 그 글들이 선거란 표를 모으는 과정이라는 점에 너무나 쉽게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이 계속 반복해온 과정을 되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녹색당의 본질이라는 반정당의 정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선거를 통해서 표를 얻는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정치판(아~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이다)의 논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녹색당이 선거판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길 원한다. 아마 내가 계속 녹색당에 남아 있을지 아닐지를 판단할 기준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녹색당, 희망찬 실패!
써놓고 보니 녹색당의 실험에 관한 글이 아니라 녹색당 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토를 달았다. 보통 이러면 너는 토를 달 만큼 녹색당에서 열심히 활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예상했으니 답하자면 딱히 한 일은 없다. 홈페이지 제안과 토론에 몇 번 댓글을 달았고, 동네에 현수막을 달았다. 특별당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백수 신분에 거금(?)을 기꺼이 냈다. 세종대 생협하고 이어주는 일을 했고, 정책과 관련된 자문이 왔는데 녹색당이라면 중앙에서 짜서 지역에 내려주지 말고 지역에서 정책을 짜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동문서답으로 답해줬다. 이 정도다. 이 정도 했으면 나는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활동을 못해도 누구나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몫이 없는 자들이 몫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랑시에르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결론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녹색당은 한국정치구조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의 사태에서 보이듯 이곳의 정치는 의견보다 이해관계를 앞세운다. 어떤 주장보다는 누구의 주장이, 정책보다는 명망가가 더 중요한 사회이다.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그런 정치논리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러니 녹색당은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프로가 될 수 없고 어리숙하고 부족한 정당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기도 힘들 것이다(물론 지방선거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녹색당의 미래가 어둡지만 희망적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든 걸 국가중심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중앙선거와 지방선거가 다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법률과 조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녹색당은 낮은 것에 강함을 가지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녹색당에 적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