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도 여행은 가고 싶은데 탄소배출량은 걱정되고. 그럼 탄소배출량이 낮은 기차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캐리어를 가득 채운 짐과 자동차는 놓아두고 배낭 하나 가볍게 메고 떠나는 여행. 빠른 고속열차보다는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고속철은 서지 않는 작은 역에 내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자연과 지역을 경험하는 저탄소 여행. 내 건강에도, 지역에도, 지구에도 나쁘지 않은 여행. 지역을 소비하지 않고 알아가는 공감여행.
2028년이면 무궁화호가 사라질 예정이고, 그러면 작은 역의 운명도, 무궁화호가 서던 지역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당장 지켜낼 방법은 없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애틋하게 사랑하면 뭔가 방법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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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구미역을 지나 내리는 약목(若木)역의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이다. 1918년부터 운영되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역이지만 지금 건물은 2000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이제는 무궁화호조차 잘 서지 않아 출퇴근 시간에나 약목역에 내릴 수 있으니, 뚜벅이들은 아침에 서둘러야 한다.

약목역

지금은 여객보다 화물 중심이라 한 켠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약목역에 내려서 작은 역전으로 나오면 당황스럽게도 곧바로 큰 도로와 눈 앞에 시골 상가 풍경이 들어온다. 여기에 뭐가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일단 역전 횡단보도를 건너가자.

남계교

길을 건너 칠곡약목우체국을 보고 좌회전해서 조금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이 정류장 위치를 기억해 둘 것!), 약목전통시장을 지나 조금 더 걸가면 두만천의 남계교가 나오고 거기에 신유장군 유적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걷기의 시작이다.

그렇지만 시내의 상가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점심을 어디서 먹으면 좋을까 식당을 찾으며 걷는 걸 추천한다. 오래된 중국집, 손칼국수, 순대국, 뚝배기해장국, 손국수, 추어탕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곳곳에 있으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식도락 아닌가.

유적지 가는 길

표지판 방향으로 인도가 이어지고 중간에 잠시 끊어져도 반대편에 인도가 있으니 걷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 개천 왼편에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풍경이 보이고 앞에는 시묘산과 비룡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다면 잠시 이어폰을 빼고 개천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대나무를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보자.

곤산서원

조금 걷다 보면 오른편에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들이 사용하던 곤산서원(崑山書院)이 나온다(2004년에 복원된 건물). 인터넷을 찾아보면 사전에 협의할 경우 관람을 할 수 있다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곤산서원을 지나 1킬로미터 정도 더 걸으면 신유장군 유적지가 나온다.

칠곡군 관광 안내도
인문학마을 표지판

유적지 입구 칠곡군 관광안내도를 보면 멀리 떨어진 호국평화기념관, 꿀벌나라테마공원, 칠곡왜관철교, 칠곡평화분수같은 관광지들도 표시되어 있다(이곳은 왜관역에 내리면 걸어갈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왜관역 편을 참조!). 그것보다 더 호기심을 끈 것은 칠곡인문학마을이란 이정표이다(적정기술의 흔적도 보이고 커뮤니티센터 이름도 공평화락인데, 칠곡군이 한때 문화도시를 지향했다). 신유 노래비(신류 장군이 아니라 그 18대손인 가수를 기리는 노래비. 헷깔리지 말 것)를 지나 조금 위로 걸어올라가면 신유장군 유적지가 나온다.

신유장군 유적지

신유장군 유적지는 신류(申瀏, 1619~1680)를 모신 사당으로 신류는 1658년에 제 2차 나선정벌을 지휘했던 장군이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신류는 조총부대를 이끌고 파병을 가서 러시아군과 싸워 이겼고, 141일간의 일상을 빠짐없이 기록해 《북정록(北征錄)》이란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북정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더불어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신류가 당시 러시아에서 입수했던, 화승총보다 개량된 수석식 소총은 조선의 조총기술을 한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적지에는 신류 장군의 신주와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과 비석, 묘소를 볼 수 있다. 난세에도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장수는 말년에는 역모에 휘말리는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조선시대 뛰어난 장수들의 국룰!).

그때나 지금이나 동북아시아의 정치는 불안정하다. 당시 조선은 조공을 바치던 청나라의 요청으로 파병을 한 셈인데, 분단된 남북한은 중국, 러시아, 미국이라는 강대국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조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한미일동맹과 충돌할 가능성을 점점 더 높이고 있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한 정세에, 신뢰할 수 없는 청나라의 지휘를 받으며 2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오지로 떠나야 했던 장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북정록》은 1980년대에 번역되어 절판되었으니 도서관을 뒤지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두만저수지

신유장군 유적지는 공평화락 초록권역에 있고, 유적지 바로 옆이 두만저수지이다. 두만저수지는 1970년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둘레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길에 경사가 없어 걷기 편하고, 물결이 잔잔해 햇살이 반짝이는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다.

시골 마을에 이렇게 산책로를 만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드는데, 보통 이런 사업은 농림부가 진행하는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으로 진행된다. 여러 마을들의 연계형 사업들을 발굴해 정주여건이나 복지, 문화를 강화시키려는 사업인데, 전국의 많은 농촌들이 이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예산이 수십억을 넘어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지원하는데, 주민들보다는 컨설팅업체나 건설업체들에게만 이로운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곳곳의 흔적으로 봐서 칠곡군은 인문학 관련 사업을 시도한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입구에서 본 공평화락(公平和樂)이라는 말 자체는 참 뜻이 깊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즐거워한다, 요즘 참 그리운 단어 아닌가.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길을 걸으시는 분들 상당수가 마을 사람들이라 서로 인사를 나눈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여행지보다는 시골 동네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신유장군 유적지와 두만저수지를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시간은 잘 걷는 사람이라면 3시간,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까 유적지 표지판을 봤던 남계교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특이한 벽화들이 눈에 띈다. 2018년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던 《칠곡가시나들》의 배경이 바로 약목면이고, 할머니들이 쓴 시가 벽화로 남아 있다(관리는 잘 되고 있지 않은듯). 다들 시골마을 고령화되었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인생 팔십줄 사는 기 와 이리 재민노라 하신다. 시골의 쇠퇴가 정말 고령화 탓일까?

칠곡가시나들 벽화 거리

시간여유가 있는 사람은 시장통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저녁까지 기다려 기차를 타도 좋고, 급한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11번이나 111번을 타면 40분 정도 걸려 구미역으로 갈 수 있다. 20분 정도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으니 급한 사람은 구미로,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약목면의 풍경을 즐기며 공평화락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자. 지금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할까?

기후위기 시대에도 여행은 가고 싶은데 탄소배출량은 걱정되고. 그럼 탄소배출량이 낮은 기차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캐리어를 가득 채운 짐과 자동차는 놓아두고 배낭 하나 가볍게 메고 떠나는 여행. 빠른 고속열차보다는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고속철은 서지 않는 작은 역에 내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자연과 지역을 경험하는 저탄소 여행. 내 건강에도, 지역에도, 지구에도 나쁘지 않은 여행. 지역을 소비하지 않고 알아가는 공감여행.
2028년이면 무궁화호가 사라질 예정이고, 그러면 작은 역의 운명도, 무궁화호가 서던 지역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당장 지켜낼 방법은 없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애틋하게 사랑하면 뭔가 방법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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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텀블러에 물만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인 용궁역의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용궁면의 한자어는 실제로도 용궁(龍宮)인데, 왜 바다없는 육지에 용궁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곳의 지형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용궁면 남쪽에 낙동강이 합류하는 연못인 용담소(龍潭沼)가 있는데, 그 깊이가 깊고 바닥이 동굴로 이어져 용이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용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슷한 지형의 용두소(龍頭沼)가 있어 두 마리 용이 부부가 되어 이 지역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용궁면이라는 지명은 바다 용왕과는 연관이 없지만 그런 낙원을 만들자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용이 지키는 지역은 어떤 기운과 풍경을 품고 있을까?
용궁역은 경부선으로 바로 갈 수 없고 경부선 김천역에서 경북선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김천역에서 용궁역을 오가는 기차는 하루에 다섯 번(상하행 합치면 열 번), 그러니 환승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기차 시간을 놓쳐 김천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역에서 5분 거리인 ‘시인의 거리’를 돌아봐도 좋다. 시인의 거리는 조금 오르막이지만 조용한 동네 사이로 지역 시인들의 작품이 낮은 담벼락에 그려져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다.

아침에 조금 서둘러 9시 14분에 김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용궁역에서 오후 3시 4분이나 5시 39분에 김천역으로 돌아오는 열차를 탈 수 있어 여유있게 용궁면을 둘러볼 수 있다.
                    김천역 경북선 시간표
 
이렇게 기다리면서까지 꼭 기차를 타야 할까? 기차의 탄소배출량이 자동차나 비행기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더구나 기차는 공공교통수단으로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약자의 기본권 보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기차가 활성화되어야 우리는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꼭 낭비하는 시간일까? 연인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렌다. 찾아갈 곳에 관해 생각하고 그곳의 정보를 찾으며 아직 만나지 못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 자동차와 달리 우리는 기차에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조차 싫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때릴 수도 있고.

김천역에서 두 량으로 구성된 작은 무궁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십이분 정도 가면 용궁역에 도착한다. 용궁역은 예천군에 속하지만 문경시와 바짝 붙어 있고 점촌역에서 기차로 6분밖에 안 걸린다(그래서 점촌을 오가는 버스도 다닌다). 고속철도에선 볼 수 없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풍경들을 보며 이동하다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현재 용궁역은 무인역으로 역무원이 없고, 역 내부는 별주부전을 묘사한 인형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익숙한 별주부전도 좋지만 용궁면의 특징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있지만 잠깐 둘러볼만은 하다.
              용궁역 별주부전 전시관 
용궁역 전경 
 
역을 나서면 왼편에 귀상어, 물메기 등을 묘사한 12해신의 동상이 있고 작은 카페용궁역이 있다.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 입장에서 크게 매력적인 시설은 아니지만 다 걷고 난 뒤에 차 한잔 하며 열차를 기다리기엔 나쁘지 않다.
역을 등 뒤로 하고 나서면 용궁척화비와 만파루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용궁척화비는 대원군이 전국 곳곳에 세웠던 척화비이고, 만파루는 1988년에 복원된 누각인데 독립운동의 기운을 담은 곳이라고 한다. 만파루 옆엔 예천독립운동기념비도 있어 3.1운동이 얼마나 전국적으로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저항이 넓어질수록 탄압은 어렵고 민심은 깊어진다.
만파루 전경
 
만파루 누각에 오르면 용궁면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면중심지를 낮은 산들이 쭉 둘러싸고 있어 눈이 시원해진다. 하나둘 높은 건물이 채워가는 대도시와 달리 조금씩 쇠락해가는 지역의 풍경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럼에도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고 지키고 있는 기운을 느낄 수도 있다. 낡은 것이 버릴 것은 아니듯이 쓰임새는 가치를 반영하고, 기후위기 시대는 그 가치의 전환을 요구한다.
만파루를 내려오면 뚜벅이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면중심지를 꼼꼼히 돌아보는 것. 면에서는 2017년에 복원된, 용궁면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용궁현청, 벽화가 그려진 용궁시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둘째는 사진찍는 장소로 알려진 부부송을 돌아보는 것, 셋째는 열찻길을 가로질러 황색 꽃을 피운다는 오백년된 팽나무 황목근을 둘러보는 것이다. 체력이 있고 이동이 편하고 시간이 넉넉하다면 세 곳을 다 돌아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부송보다는 황목근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부부송 주위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듯하고 용궁교까지 가는 길이 찻길이라 걷기에 편하지 않다. 그래도 출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가보고 싶다면 용궁교를 지나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강변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된다. 주의할 점으로 면 내에는 공용화장실에 여럿 있는데 외곽으로 나가면 화장실이 없으니 용무는 미리 해결하고 이동하면 좋다.
용궁현청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부부송 전경 
황목근으로 건너가는 철길
황목근과 용궁향교 가는 길 
황목근 전경 
 
면 내를 찬찬히 돌아볼 때는 그냥 둘러봐도 되지만 나중에 밥 먹을 식당을 잘 물색하면 좋다. 부지런히 눈품을 팔면 취향에 맞는 식당을 찾을 수 있다. 용궁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음식은 순대국과 오징어불고기이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순대국집들이 여럿 있고, 내륙이니만큼 배에서 잡자 마자 급냉한 오징어를 가져와 연탄불에 구운 오징어도 판다.  그 외에도 곳곳에 오래된 식당들이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며 밥 먹을 곳을 정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천연기념물 제 400호로 지정된 팽나무 황목근(黃木根)으로 가는 길은 만파루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조금 가면 철길을 지나는 길이 오른편에 보인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단골식당 별관 바로 옆인데, 철길을 건너면 걷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겹겹이 겹쳐진 산세가 시야에 확 들어오고 눈을 가리는 곳이 없어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길을 따라 나무가 늘어서 있지만 땡볕이라면 양산을 챙길 것을 권한다. 
나무데크로 조성된 길에서 황목근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빠지면 작은 동네가 나오고 동네를 통과해서 들판 사이로 조금 더 걸어가면 황목근이 나온다. 황목근은 500년 이상 된 팽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당산제를 지내는 비석이 앞에 있다. 마을 재산이던 토지가 황목근으로 등기이전되어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을 압도하는 풍광이나 사람이 몰리는 관광상품은 아니지만 한가로이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기기 좋은 곳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겠지만 뚜벅이의 반경은 이정도가 딱 적당하다.
면도 둘러보고 황목근도 다녀오면 식사에 막걸리 곁들여 한잔 하기 좋은 시간이다. 아니면 미리 막걸리 한잔 하고 살짝 들뜬 기분에 걸어도 좋다. 지역음식에 곁들여 가볍게 한잔 하며 즐기는 게 기차여행의 즐가움 아닐까. 그러다보면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 삶처럼 올 때의 방향과 갈 때의 방향에서 본 풍경이 다르니 돌아가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걷는 거리와 시간으로 따지면 용궁면은 순한 맛 정도. 가파른 오르막이 없고 걷는 거리도 그리 길지 않다. 좀 더 많이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다음 여행지는 매운 맛 코스로.^^

기후위기, 기술과잉, 초고령사회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들을 받고 부족하지만 최근의 고민들을 짧게 정리하려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삼은 산업문명이 한계에 봉착했고 그로 인해 불거진 재난들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지역이 과연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압축성장의 그늘과 문제점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분위기보다는 여전히 메가서울, 메가시티와 같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다양성이 논의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따라잡기와 복제의 힘이 훨씬 더 큽니다.

성북구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지역과 지역학은 의미가 있고 진지하게 다뤄야할 주제입니다. 저 역시 지역의 가능성을 보고 오랫동안 자치와 자급의 힘을 강화시킬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회복과 재생에 대한 공동체적인 믿음을 넘어 다수를 설득하고 전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만들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연은 갑작스레 찾아오니까요. 그렇다면 우연을 기회로 만들 준비가 필요한데, 어떤 준비가 가장 중요할까요? 준비는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시작하기에 진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합니다.

 

 

1. 진단: 문제에 대한 확인

 

최근의 지역과 로컬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며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은 장소성과 다양성, 회복력 등의 긍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에 비해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애물들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점이었습니다. 마치 한편에서는 병원, 상점 등의 필요시설 부족으로 지방소멸이 얘기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의 문제를 창의적,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마치 대안처럼 얘기된다고 할까요. 여러 위기를 고려해 자원의 동원을 신중하게 조절해야 할 시기에 대규모 자원을 투입하는 메가도시 전략이 얘기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력을 위해 서울을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과 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도 서울과 같은 중심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정부가 대규모 자원을 기획/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일정한 위치나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략이 기후위기와 기술의 선택적 과잉, 불평등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붕괴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   중앙/지방정부 계획   글로벌 경쟁
   

 

기후위기는 산업문명의 이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피해가 다수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문제이고, 기술과잉이란 것도 기술의 편리성이 소수에게만 이득이 되고 위험성이 다수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문제이며, 초고령화도 위협으로 느껴지는 건 소수를 위한 사회시스템을 지탱해줄 토대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성장의 서사구조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사회의 전환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이런 고민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성장이 아닌 다른 가치지표를 찾고, 정부가 아니라 지역이 주도해서 그런 지표를 실현할 힘을 만들어 경쟁보다 순환공존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것이 현실의 운동으로 작은 성공들을 거둬왔지만 사회의 전환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대안적 가치지표   지역주도(자치/자급)   순환공존체계/지속가능성
   

 

그러면서 지금 목격하는 현상은 대안적인 가치와 언어조차도 성장담론에 포획되어 관료주의라는 깔때기를 거치면 획일화, 서열화되어 버리는 기묘한 상황입니다. 마을, 공동체, 대안경제, 공유지같은 가치와 언어들은 계속 사용되고 있지만 그 전환적 성격은 약화되고 기존 사회의 보완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격변화에는 관료주의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료주의의 특성이라 할 도구적 합리성과 목표달성을 위한 공학적 접근, 선택적 자원동원, ()정치성이 이런 대안적 가치/언어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안마저도 획일화, 서열화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고, 그것이 내부의 경쟁을 초래하면서 애초의 가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가치/언어의 포획   관료주의(중앙/지방)   획일화/서열화
   

 

재난의 시대에 지역이 대안이 되려면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지금은 다양성조차 해법으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2. 준비: 우연을 가능성으로

 

서두에서 밝혔지만 저는 한국사회의 전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그렇지만 우연과 사건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으므로 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준비는 앞서 했던 진단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저는 기후위기, 기술과잉, 초고령화가 어떤 지점에서는 사회전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전환의 방향이 문제일 텐데요. 기후위기가 불러올 재난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재난이 초래할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겁니다. 그런 대비에 지역이 어떤 역할이 할 수 있을까요? 한재각은 기본적 필요를 넘어서 더 많은 소비를 위한 부의 ()분배를 희망하며 이를 가능하도록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에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해 온 관행과 결별하는 것”(기후정의, 2022)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탈성장과 좋은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고 나아가 좋은 삶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삶과 그것을 가능케 할 공동의 토대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국가의 관리대상으로서의 고령(인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농촌에서는 일흔 살도 청년이라는 말은 고령화의 그늘을 묘사하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되지만 달리 보면 여전히 마을의 주체라는 점도 뜻합니다. ‘고령=무기력, 복지수혜층의 도식은 다분히 국가 중심적인 시각이고, 다양성은 각자의 쓸모를 찾아가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국가가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지역은 현재의 행복을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구감소보다 1인가구의 증가가 사회시스템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이 200016.3%였다면 202034.9%로 증가했습니다. 2050년이 되면 고령 1인가구의 비율이 41.1%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주거형태와 공공서비스체계는 1인 가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에 적응될 수 있을까요?

그런 적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할 것이 권력화된 통제장치로서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승일은 물리적인 환경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인 능력과 활동까지 관리하는 이중관리사회에 저항하려면 현재의 우리가 어떤 합리성의 원칙으로, 어떤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를 통해, 어떻게 통치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기계, 권력, 사회, 2021)고 봅니다. 기술과잉의 반대는 기술을 쓰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과잉의 이유와 방향을 통제하고 기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스콧은 메티스라는 개념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부단한 적응을 요구하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과업을 오랫동안 수행할 때에만 얻어지는 지식”, “지역적이고도 상황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국가처럼 보기, 2010). 이런 메티스가 활성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메티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중요성을 약화시켰던 반대의 지식, 강력하고 찬란한 진보를 확신했던 하이 모더니즘을 이해하고 해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징과 의식을 통한 공통감각의 회복   정치의 불씨 살리기   정답 없음의 인정을 통한 대안의 다양화
   

 

첫째, 포획된 가치/언어의 탈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상징과 의식(儀式)’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역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곳이 어떤 장소라는 것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그 장소를 통해그 가치와 언어를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상징과 의식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인 공통감각이 필요한데 그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상징과 의식을 거쳐야 할까요? 그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의식은 무엇일까요? 장소가 정체성과 공통감각을 체화시킬 수 있는 의식은 무엇일까요? 김광석은 인간 신체에 체화된 한 사회의 기술 정서”(포스트디지털, 2021)기술감각이라 부릅니다. 물리적으로 확장된 지역의 공간에서 기술은 관계밀도를 높이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둘째, 관료주의를 깨뜨릴 비판의 무기들을 벼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관료주의는 도구적 합리성과 목표달성을 위한 공학적 접근, 권위주의적인 선택적 자원동원, ()정치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티스는 관료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개념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시민사회의 많은 부분이 관료화되었다는 점에 동의할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관료주의를 통제할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역설이지만 그래서 더욱더 정치의 불씨를 살리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합리적인 것을 선택하거나 목표를 포기할 결단, 느리고 수다스러운 공론장, 민주적인 자원배분과 재조직 등이 정치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정치문화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지역정당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과 변화의 지점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획일화/서열화에서 벗어나 각각의 고유한 존재를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기록 이후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통해 재현된 존재는 정지된 물체가 아니고, 지역 역시 재현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학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지역은 답일까요? 그렇지만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명은 꿈틀거릴 수밖에 없고,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이 부패할 수 있고 부패한 것에서 좋은 것이 생성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함께 번역했던 심층적응(착한책가게, 2022)이라는 책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붕괴는 피할 수 없다, 길을 찾는 지도는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생성하고 사라지고 부패하는 대안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기술감각의 조절과 생태감각의 회복이 기후위기와 기술과잉, 초고령화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답을 내려놓아야 질문이 좀 더 분명하게 인식되고 더 풍부하게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답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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