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未知)의 만남은 흥미롭다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다. 익숙한 것을 지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면 좋겠다는. 내가 믿고 지지하는 것이 몇몇 사람들의 대안이 아니라 정말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을모임을 기획한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전국이 마을로 힐링을 하려는 건가. 마을로 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텐데, 왜 마을만 얘기할까. 어느 순간 마을은 정부의 정책에도 등장하고 기업의 광고에도 등장하는 무채색의 개념이 되어 버렸다.

물론 마을은 자치와 자급을 가능케 하는 삶의 중요한 기반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가 짓밟히며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마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정도의 능력을 마을이 정말 가지고 있나? 그리고 마을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들이 그 마을에 걸맞게 주민들과 함께 진행되며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나?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라는 말이 사업으로 변해 얘기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물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을의 활동이 더 작고 구체화되는 건 좋지만 그 자체로 자족적인 모임이 되어버리면 내부의 관계는 돈독해지나 점점 외부로부터 고립된다. 사실 마을이라는 말이 이런 고립감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마을에만 있으면 사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진다. 완전히 마비되지 않으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 주변엔 온통 착한 사람 뿐인데, 왜 세상은 개판인가? 내 직장은 개판인데, 마을은 왜 이리 아름답나? 이러면 사람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거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일관될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면 삶이 온전해지기 어렵다.

또한 마을의 자급능력은 점점 줄어들고 필요한 기능을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노동이 필요하다. 경비를 서고 계단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택배로 물건을 나르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많은 일들을 대신해주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이 분들은 마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대부분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약자들이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 분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 모임을 기획한 건 이런 고민을 함께 풀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였다. 매번 만나는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좀 낯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딱히 답은 안 나와도 여러 가지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마을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갑작스런 연락에 모두들 순순히(?) 응해주셨다.

이 분들을 모신 이유를 설명하다보면 이 책을 기획한 이유가 좀 드러날 것 같다. 대담에 참여하신 분들을 하파타 순으로(가나다 순의 반대로) 한분씩 소개하자면, 한채윤씨는 인권운동을 하는 우리 각시 덕분에 알게 된 분이다. 한국 최초의 동성애전문지 <버디>의 편집장을 오랫동안 맡았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퀴어문화축제, 마포민중의 집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채윤씨는 이성애 중산층 가족 중심으로 흘러가는 마을운동에 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실 것 같았다. 마을주민이라는 무채색의 개념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보이지 않길 바라는 사람을 지워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2013년에는 마포구가 “LGBT(성소수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라는 현수막의 게시를 허가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알다시피 마포구는 성미산 마을이 있는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영길씨는 청주에서 오랫동안 지역사회운동에 몸을 담았다. 지역사회운동이 그러하듯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했고(운동 외의 일도) 마을만들기 운동에도 관여했다. 공부방 운동을 하던 중 생활교육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해서 용되자는 공룡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공룡의 활동가들은 농사짓고 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영상기록물을 만들고 지역노동운동에 개입하며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공룡의 활동은 정형화되지 않는다. 어느 때는 농사를 지어 옥수수와 고구마를 팔더니, 어느 순간에는 밀양송전탑 싸움현장이나 유성노조 농성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201312월에는 지역코뮌학교 동동(動同)을 세우고 노동과 인권, 경제와 노동, 글쓰기, 대안금융운동, 도시 연구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는 공룡의 활동은 마찬가지로 정형화될 수 없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고민들을 담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김정찬씨는 종로를 중심으로 모인 여러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품애라는 단체에서 활동한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 중 나와 가장 짧은 인연을 가진 분이다. 내가 품애를 처음 접한 건 카페 토크콘서트 마빠기(마을에서 빠진 이야기)’라는 곳에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되면서였다. 인터넷으로 품애를 검색해서 카페를 찾아갔지만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었다. 품애는 결혼식이나 돌잔치같은 마을잔치를 착하게 준비하고 장애인과 함께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악회도 연다. 운동처럼 보이지 않지만 마을에 필요한 일이고 그 속에 운동의 의미가 스며드는 활동들이었다. 이런저런 사업들을 많이 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기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신범씨는 죽음을 부르는 직업병으로 유명했던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만들어진 원진재단이 세운 녹색병원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일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와 작업환경 개선, 직업병 문제 해결, 환경문제 조사 등을 하는 곳이다. 경북 구미시에서 불산이 유출되었을 때도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현장을 측정해 안전하다는 정부발표를 뒤집었다. 김신범씨가 2010년 제주인권회의에서 청소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발표하실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부끄럽지만 그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마을 내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신범 씨는 공장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을 다룰 때 소비자의 건강도 안전할 수 없다며 공장 안과 밖을 연결하는데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심이 마을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상철씨는 오랫동안 진보정당운동에 몸을 담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처지였는데 그 뒤에 정당인으로 만났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서울시당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노동당 서울시당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계획이나 주택정책,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고, 자료를 꾸준히 검토하고 공부하는 성실한(?) 정치가로 불린다. 그가 속한 노동당 서울시당의 논평은 날카로운 논리와 깔끔한 글솜씨로 꽤 명성을 날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마을운동이 탈정치화되었거나 되고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 부분을 속 시원하게 짚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지역사회운동이 정당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권단씨는 2002년에 옥천신문 기자로 입사한 뒤 옥천에 살며 옥천농민회, 옥천살림, 옥천순환경제공동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치와 자급이고, 이를 가능케 할 방법으로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섞이는 공론장을 꼽는다. 충청북도 옥천군은 안티조선운동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1989년에 주민들이 직접 옥천신문사라는 지역언론사를 만들었다. <옥천신문>을 통해 지방정부 감시부터 사회적 경제 함께 만들기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엮인다. 농민과 지역의 먹을거리, 주민자치에 관심이 많은 권단씨가 아침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은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으며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권단씨를 통해 비수도권 농촌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좋은 분들을 모셨지만 이 논의에 여성활동가가 함께 하지 못했음은 참 아쉬운 일이었다. 주변에 여러 여성활동가들이 있음에도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하지 못했다. 한 차례 사루비아 다방의 김인민씨가 참여했지만 그 뒤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청나게 바쁜 사람들이 달마다 한번 토요일에 모여 이야기 한마당을 펼쳤다. 사실 이 원고에는 그 뜨겁고 즐거운 열기를 모두 담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웃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분위기를 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4시간씩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었던 몇 차례의 모임은 끝났지만 단지 얘기만이 아니라 함께 할 실천들을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이 책은 많은 고민을 나눴던 모임의 결과물이다. 독자들도 이 책에서 어떤 해답보다 새로이 고민해야 할 질문들을 많이 찾으면 좋겠다.

이후연구소 창립선언문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지만 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현재의 조건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2050년,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미래가 달라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래라고 얘기하지만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재이고 파괴된 과거의 누적입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는 미래에 개입하기 위해 이후연구소는 창립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이후연구소는 실험실로서 참여자들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주제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크게 방향성만 보면 토건사회에서 공존사회로의 전환, 재난사회에서 인권사회로의 전환, 고탄소사회에서 탄소제로사회로의 전환, 성장사회에서 순환사회로의 전환,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연방국가로의 전환, 관료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새로운 참여자가 생기면 더욱더 새로운 주제들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이후연구소는 희망찬 청사진보다 힘들고 어려운 전환의 구체적인 조건들을, 번드르르한 말보다 삶의 언어를 다듬겠습니다. 흩어지는 냉소의 언어보다 연결고리를 만들 연대의 언어를 찾겠습니다. 파국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보다는 파국을 직시하며 길을 만들겠습니다. 이후연구소의 길에 함께해 주세요.

2019년 11월 1일
이후연구소

 

□ 이후연구소는 후원회원의 월회비가 아닌 연회비로 운영됩니다(월회비 하실 분은 알아서 자동이체로). 후원금은 연구소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건비와 사업비로 사용됩니다.
- 후원회원에게는 소장과 참여자들이 쓴 책들이 저자 싸인본으로 증정됩니다(어쩌면 개이득).
- 연회비는 십만원, 이십만원, 삼십만원 등 기타(월회비는 알아서 자동이체로)

--------------
이후연구소 2020년 사업계획

□ 이후연구소의 사업은 그 해의 핵심사업과 다양한 주제의 실험실들로 구성됩니다. 핵심사업은 소장이 주도해서 진행할 연구활동사업이고 실험실은 참여자들을 모아서 진행됩니다(물론 소장이 각 실험실들에 어느 정도 관여할 겁니다). 매년 연말에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 핵심사업의 결과물은 책으로 정리되어 후원회원들에게 무료로 배송될 예정입니다. 2020년 핵심사업은 두 주제 중 하나로 진행될 예정입니다(주제는 회원에게만 공개.ㅋㅋ).

□ 실험실은 연구소가 제안하는 주제와 실험실 개설을 원하는 참여자들이 제안하는 주제로 개설될 예정입니다.
- 참여자가 없거나 활동이 뜸해지면 실험실은 폐쇄됩니다.
- 실험실마다 랩(lab)장을 두고 연구소 사정에 따라 활동비와 사업비를 지원할 생각입니다(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쥬). 당분간은 연구소 사정이 안 좋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프로젝트로 전환할 수 있는 실험실 주제는 기획해서 활동비와 사업비를 마련할 생각입니다(기획서 작성은 연구소가 지원합니다).
- 사업지원을 받는다면 실험실 진행상황을 1년에 두 번 공개할 생각입니다. 일종의 중간보고회, 최종보고회인 셈인데요. 옥천과 참여자들이 활동하는 실험지 두 곳에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 후원회원들은 실험실 개설을 제안하고 보고회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2020년의 실험실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더 자세한 설명은 회원에게만.ㅋㅋ).
- 농촌 실험실: 농촌의 관점에서 도시의 문제를 바라봅니다.
- 선거 실험실: 2020년 총선을 맞이해 선거결과가 아니라 ‘선거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선거과정을 정리합니다.
- 기후위기 실험실: 기후위기가 한국의 일상에 미칠 데이터들을 정리하고, 관련된 정부정책들을 정리합니다.
- 추가 개설 예정

□ 실험실과 별개로 공부모임과 연대사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 공부모임은 옥천과 서울에서 동시에 진행할 생각인데, 서울의 경우 땡땡책협동조합이나 옛따책방 등과 함께 진행할까 합니다.
- 제주녹색당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현안대응팀’을 진행하고 있고, 공익재정연구소와 ‘세금판다 시즌2’(시즌1은 여기로. (https://www.youtube.com/channel/UCQDAKvtsbubivQdPi5mHe_A)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 이 많은 일들을 혼자서 다할 수 있냐구요? 음, 뭐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드는데, 함께 할 사람들이 생길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가급적 가볍게 연구소를 운영할 생각입니다.ㅎㅎ

회원가입은 여기로...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NmvmpatYr2Vh-dGJCrQBSNowFTkGRxH7tz4On3iCblkVs1A/viewform?fbclid=IwAR3OwYicuL913t0EakwLjEDb-GN_3VlmPDRf-VteSctzpM7PNyceVICxIXk

 

주민소환제도와 주민소환운동은 같지만 다르다. 제도가 있다고 해서 그 제도의 목적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주민소환제도는 주민소환운동을 통해서만 자기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즉 운동이 없다면 제도는 사문화된 규정일 뿐이다.

주민소환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정치적인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다. 2006년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국회가 부패와 무능에 빠진 상태였고, 여야가 지방부패 척결을 위해 주민소환제 입법을 약속했음에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국회의장이 동북아역사재단법 등 4개 법안을 직권상정하겠다고 하자 민주노동당이 표결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주민소환법을 직권상정법안에 포함시켰다. 이 표결이 통과되면서 2007년 7월 1일부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민소환제도가 시행되었다.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에서도 정치가 작동한 셈이다.

사실 주민소환제도 자체가 무조건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2003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역사상 두 번째 도지사 주민소환이 이루어졌다. 전력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책임이 명분이었으나 기업의 자금이 동원됐고 소환을 뒤이은 선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보수파가 당선되었다. 주민소환제도의 부정적인 결과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이다.

그러니 제도 자체는 ‘양날의 칼’이다. 칼의 쓰임새는 칼 자체가 아니라 칼을 쓰는 사람에 달려 있다. 정치인을 실제로 소환할 수 있는가 아닌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소환운동을 통해 칼잡이는 무엇을 하고자 하고, 더 중요하게는 소환 과정의 정치에, 소환 이후의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려 하는가, 라고 생각한다.

 

□ 탄핵의 복기, 소환의 준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은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법은 「지방자치법」 제20조의 규정에 의한 주민소환의 투표 청구권자ㆍ청구요건ㆍ절차 및 효력 등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한다.” 즉 주민소환은 단지 정치인을 소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민의 직접참여와 행정의 민주성, 책임성 강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주민소환은 소환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 65조는 이렇게 적혀 있다. “①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은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파면에 목적이 있지 시민과의 연관성이 없고 그 과정에 시민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다. 탄핵은 시민의 투표가 아니라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도로만 보면 주민소환보다 탄핵이 훨씬 어렵고 탄핵의 경우 이후의 정치적인 과정도 시민들이 개입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주민소환이 계속 실패해 온 반면(경기도 하남시의 시의원 소환만 성공했다), 탄핵은 2017년 3월에 성공했다. 왜 그럴까? 주민소환의 요건이 탄핵보다 더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탄핵은 되고 주민소환은 안 되는가, 이것은 정치적인 질문이다.

탄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탄핵권한이 없는 시민들의 찬성율이 70%를 넘어서?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100만명을 넘어서? 최순실 게이트와 부패, 무능과 같은 탄핵의 이유가 분명해서? 이런 여론에 떠밀려 야당들도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아마도 다양한 이유들이 결합되어 탄핵 가결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009년 김태환 도지사 소환에서 드러났던 문제들이 대통령 탄핵에서도 드러났을까? 당시 투표율이 낮았던 대표적인 이유는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선거 방해였다. 탄핵과정에는 시민들이 개입할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방해는 불가능했다. 도지사측이 만든 ‘선거 참여= 찬성, 선거 불참 = 반대’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도지사 소환과정에 대한 회고를 보면, 도지사의 실정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매일 JTBC를 비롯한 뉴스가 탄핵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고 해설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도지사 소환과정에서는 없었다. 당시에 해군기지, 영리병원, 케이블카, 내국인 카지노 등 김태환 지사의 정책들에 관한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자연히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마음만큼 도지사를 소환하려는 마음이 생기기엔 정보가 부족했다.

만약 대통령 탄핵을 투표로 결정했다면 제주도의 투표율은 얼마나 나왔을까? 만약 박근혜가 제주도 출신의 정치인이었다면? 어떻게 보면 대의민주주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탄핵은 갈등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지만 그 싸움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투표라는 정치행위는 개인의 판단과 결심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와 여론, 지지하는 대안 등의 영향을 받는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소환 자체는 권력을 비우는 것이지 권력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제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주민소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의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민소환은 모든 걸 거는 승부가 아니라 다음 승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원희룡 도지사의 독주는 원희룡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독주를 방치하는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이다. 이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으면 원희룡 도지사가 아닌 다른 누가 권력을 잡아도 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만일 2009년에 김태환 도지사를 소환했다면 원희룡 도지사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제주사회는 이미 주민소환을 한번 경험했다. 2009년과 2019년은 같을까? 처음이 아니라면 상대가 어떤 수를 쓸 것인지 알고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수를 마련하며 맞대응할 수 있다.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고, 관권선거, 여론조작, 이슈 은폐 등에 대한 대응책을 하나씩 준비할 필요가 있다. 단지 수가 아니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라면 전략이 필요하다.

 

 

□ 정치는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소환실패/성공의 정치적 효과

 

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운동은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면 과정이 종결되지만, 정치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해도 그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치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기대만큼 실망을 품게 된다. 애초에 기대를 달리 잡으면 실망도 달라진다는 얘기이다.

앞서 언급했던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민주당 주지사가 소환되고 공화당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도지사에 당선된다. 미국의 주민소환은 소환과 선거를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더욱더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그래서 소환반대운동은 현주지사에 대한 신임이기도 하다). 2012년 위스콘신 주에서는 공화당의 스캇 워커 주지사가 소환되었지만 53.1%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에 성공했다. 워커 주지사가 소환된 이유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는데, 소환청구에 100만명의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무난하게 소환될 거라 예상되었다. 관건은 각자 서로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주지사를 비판하는 시민들도 소환까지는 아니라고 봤다. 명백한 부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정책에 대한 찬반은 소환의 이유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워커 주지사는 노조의 단체협상권 제한이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전략을 썼다. 즉 소환청구는 정치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정치의 시작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8년 6월까지 총 93건의 주민소환투표청구가 있었고, 이중 실제 투표로 이어진 사례는 8명(5건), 소환된 이는 2명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주민소환제도는 무의미한 것일까? 한 사례만 들어보자. 2008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광진구의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청구활동이 시작되었다.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사퇴를 하지 않자 주민들이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시의원은 사퇴하고 청구는 종결되었다. 미투표 종결된 85건 중 원인해소가 25.8%(24건)이다. 앞서의 광진구 사례에 견주어 본다면 만약 소환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시의원이 사퇴했을까?

그리고 김태환 도지사가 주민소환투표 기간에 “1년이 아니라, 5년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퍼뜨린 것으로 안다. 다음 선거에 나올 생각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김태환 지사는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친척의 구속이나 공천 등 여러 문제가 있었겠지만 소환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불출마했을까? 만일 김태환 지사의 소환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누가 도지사로 당선되었을까?

제 4회 도지사선거에서 득표율은 다음과 같았다.

구시군명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득표율)

열린우리당

진철훈

한나라당

현명관

무소속

김태환

합계

411,862

277,003

44,334

(16.15)

112,774

(41.10)

117,244

(42.73)

274,352

제주시

218,768

138,717

22,748

(16.49)

56,423

(40.91)

58,722

(42.58)

137,893

북제주군

74,387

51,650

10,793

(21.22)

16,607

(32.65)

23,455

(46.12)

50,855

서귀포시

62,209

43,561

5,087

(11.79)

19,930

(46.22)

18,098

(41.97)

43,115

남제주군

56,498

43,075

5,706

(13.42)

19,814

(46.63)

16,969

(39.93)

42,489

 

그리고 제 5회 도지사선거의 득표율은 다음과 같았다.

구시군명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득표율)

민주당

고희범

무소속

현명관

무소속

우근민

합계

424,098

276,056

48,186

(18.03)

108,344

(40.55)

110,603

(41.40)

267,133

제주시

305,765

195,450

36,447

(19.19)

74,905

(39.45)

78,514

(41.35)

189,866

서귀포시

118,333

80,606

11,739

(15.19)

33,439

(43.27)

32,089

(41.53)

77,267

 

만일 주민소환이 성공했다면, 다른 걸 떠나서 도지사직을 상실했던 우근민이 다시 후보로 나올 수 있었을까? 신구범씨가 제 6회 도지사선거에 나올 수 있었을까? 낡은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올 생각을 버렸다면 제주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위의 득표율을 보면 제 4회, 제 5회 민주당, 현명관, 김태환/우근민의 득표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당시의 주민소환운동이 깨지 못한 건 김태환이 아니라 우근민이 다시 나와 당선될 수 있는 권력구조였다.

그렇다면 당시 주민소환운동은 단순히 김태환을 도지사직에서 끌어내리는 차원을 넘어 제주의 토호권력, 궨당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급진적인 차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의 실패는 투표함을 열지 못한 게 아니라 이 급진적인 차원을 더욱더 활성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드러났다고 본다.

 

 

□ 소환과정도 정치다

 

만약 주민소환도 못할 거면 정치인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대의민주주의가 분명한 한계를 보였고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가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같은 제도인데, 이 제도를 쓰지 못하는 건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피해를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주민소환이 없는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의 기득권정치구조를 허용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이 드러내는 건 보수적인 지역권력구조와 진작에 드러났어야 하는 지역사회 내부의 균열선이다. 이 구조와 균열선을 드러내지 않으면 지역사회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들은 계속 바뀌겠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고 난개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을 논한다는 것은 또다른 층위의 권력구조변화와 맞물려 있다. 바로 총선이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3명인데 이렇게 무기력한 때가 있었나? 국회의원도 소환하자는 국민소환제가 논의되는 시점에서, 도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경고장이 아니라 해임장을 보내는 건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다.

그렇다면 주민소환운동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진정한 논쟁점이 아니다. 진짜 고민점은 우리가 주민소환운동을 할만한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주민소환을 통해 제주의 권력구조를 변화시킬 전략을 짜고 있는가, 라고 본다. 그런 의지와 역량, 전략이 있다면 소환투표가 실패해도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쪽팔려도 계속 이런 구조에서 욕이나 하며 버텨야 한다. 불행은 현재의 생태, 정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존버’하며 버틸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소환은 ‘못된 정치인’을 끌어내리기 위한 특정한 변수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정치인’을 만들기 위한 상수일 수 있다. 주민소환운동은 매우 정치적인 운동이다. 현행 법률상 한계가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한계 때문에 제도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는 정치의 소멸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원희룡 지사 주민소환운동을 통해 제주의 시민사회운동은 어떤 정치판을 만들고자 하는가? 소환 과정의 정치, 소환 이후의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려 하는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