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세요? 저는 얼마 전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20년을 보냈고, 수도권에서 그 이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 옥천은 태어난 곳도, 지금까지 살아온 곳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곳입니다. 어떤 이는 귀촌, 귀농한 것이냐 묻지만 옥천에서 구한 집은 읍내에 있고 농촌보다는 작은 도시 풍경에 가깝습니다. 농사를 못 짓는 백수이구요. 그러니 귀촌도 귀농도 아닌 거지요.

그러면 왜 옥천으로 갔느냐? 수도권에 사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졌어요. 대부분의 자원을 외부에서 지원받으면서도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곳, 그러면서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자원을 독식하고 있는 곳이 부담스러웠죠. 풀뿌리운동과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수도권에 사는 것이 왠지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수도권을 떠나자는 이야기를 나눴고 일단 가보자는 합의가 되어 옥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우리 귀엔 낯설지만 옥천군은 1989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옥천신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옥천신문은 25년 동안 지역의 중요한 공론장이 되어 왔습니다. 2008년에는 친환경농업인들을 중심으로 옥천살림 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져 어린이집과 학교에 지역의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지역 내의 자활센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힘을 모아 옥천순환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지역대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남면은 주민들이 운영하는 지역발전위원회와 어머니학교, 배바우도서관, 배바우장터, 작은음악회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구 5만 3천명의 작은 군에서 이런 다양한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희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옥천에는 5일장이 섭니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현지 주민들의 느낌은 다릅니다. 북적이는 5일장에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고, 그에 비하면 옥천주민들이 주로 있는 상설시장은 썰렁합니다. 선거가 다가오니 군수는 이당 저당을 떠돌고,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되는 학교도 계속 나옵니다. 산업단지, 농공단지, 이런 사업들도 지역경제를 내세워 계속 시도됩니다. 한국 어느 곳에나 불안은 존재합니다.

그래도 30분이면 걸어서 돌 수 있는 읍내라 길에서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자주 나눕니다. 시민에서 군민이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함께 사는 거겠죠. 다른 지역에서도 꼬물꼬물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소식 전합니다. 따뜻한 봄 맞으세요.

공동체(共同體)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영어 community는 라틴어 communis에서 유래되었는데, 『옥스퍼드영어사전』에 따르면 이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의무나 책임, 선물을 준다’는 뜻의 munis의 조합어이다. 즉 공동체는 함께 어떤 책임을 지거나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공동체는 그 나름의 관습에 따라 같이 일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곳은 어디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가난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혼자서도 잘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공동체가 그리 절실하지 않고, 반면에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며 힘을 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참으로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다.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관계를 뜻하지 않기에 공동체의 힘은 관계를 통해 서로의 힘을 북돋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런 점을 자각할수록 그 힘은 강해진다.

 

구성원들이 서로 책임을 지거나 살림살이를 나누는 곳이기에 공동체는 어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목적을 실현하거나 이미 규정된 목적만을 실현하지 않는다. 그곳은 구성원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이고, 그래서 공동체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문턱은 아니어야 한다. 타자를 배제하는 유명한 공동체보다 공동체라 불리지 않아도 우정을 맺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공동체적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동서양 어디서나 인류 역사에서 이런 공동체들을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고,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예전에는 공동체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았다.

 

공동체가 사회의 중요한 대안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이다. 칼 폴라니(K. Polanyi)가 블레이크(W. Blake)의 싯구를 인용해 표현했듯이 자본주의는 ‘악마의 맷돌’이었다. 자본주의는 이전의 관계를 완전히 해체시키고 인간과 자연을 화폐로 측정되고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끊고, 우리 삶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방인들을 계속 만들었다. 이렇게 맷돌에 갈려나간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지지해줄 관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지금도 신자유주의라 통칭해서 불리는 여러 사회변화들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렇게 가난해진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보고 서로에 의지하며 사회의 주체로 서려는 곳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타자를 만나는 공간이자 자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자신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자를 인정하거나 존중할 수 없듯이, 나와 약속할 수 없는 사람은 타자와 약속할 수 없다. 내가 남에게 기댈 수 있어야 남도 나에게 기댈 수 있고, 내가 스스로 일어서야 타자도 일어설 수 있다. 협동조합은 타자와 더불어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나의 조건을 만드는 곳이고, 협동조합은 그 목적을 공통의 것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마주 보고 투명인간과 이방인들이 그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마주볼 방법을 찾을 때 다시 공동체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은 이미 존재하는 공동체를 활용하려는 곳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관계망을 찢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고, 때로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공통의 필요를 조직하고 공통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협동조합과 공동체는 매우 비슷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곳이다.

 

그렇지만 생활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만의 공동체, 폐쇄적인 공동체가 공동체란 말의 의미를 왜곡하듯이, 자본주의 영리기업과 비슷해지는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공동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 협동조합도 협동보다 경쟁을, 관계보다 소유를, 연대보다 시기를, 사랑보다 무관심을 퍼뜨리는 곳이 될 수 있다. 그 옛날 예수의 공동체가 기독교로 제도화되었듯이 협동조합도 공동체성을 포기할 경우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

작년 10월 정도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조직 내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했던 활동가를 한홍구 씨가 해고시키라고 지시했고, 함께 일하던 활동가들이 이를 거부하자 권고사직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정황이 집단사직을 결의한 평화박물관 6명의 활동가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담겨 있다.

http://blog.jinbo.net/peacemuseum_activists/3

굉장히 차분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 글만 읽어도 한홍구 씨의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역사와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들인가.

당시 한홍구 씨는 활동가에게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고 한다.

이 무슨 빌어먹을 소리인가.

활동가가 상임이사를 존경하는 사장님, 딸랑딸랑 이렇게 바라봐야 한다는 건가.

그러면서도 밖에서는 엄청 평등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겠지.

더 황당한 건 이 대목이다.

"권고사직을 수용해 자필사직서를 제출할 때까지 임급을 지급하지 말라는 한홍구 상임이사의 지시로 작년 10월부터 최근 사직처리시까지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바"

최근 한홍구 씨는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손잡고'라는 모임을 제안했다.

내가 보기엔 내부의 손길도 거부한 사람이 이런 모임을 제안하고 주도하는 건 부당하다 못해 운동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운동이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함께 망하는 거다.

평화박물관 활동가들이 "‘조직 내 민주주의’와 ‘시민단체의 사유화’"의 문제를 제기한 만큼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한홍구 씨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야 한다.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활동가들과 달리 그는 대학교수라는 밥벌이수단까지 가지고 있으니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집요하게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질 꺼다.

내 눈빛도 만만치 않게 불온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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