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현의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현장에는 사람의 접근이 금지되고, 내부상황에 대한 보도는 통제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대기에 노출되었고, 국내의 버섯과 녹차에서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그리고 원자로를 식힌 바닷물이 다시 바다로 매일 수백 톤씩 쏟아지면서 수산물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다.

 

옥천은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그리고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들이 대부분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사고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 그래서 옥천 주민들은 이런 문제에 비교적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런데 실상을 따지면 그렇게 안심하기 어렵다. 원자력발전소는 아니지만 대전에는 우라늄을 가공해서 핵연료로 만드는 한국원자로연구소가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들 대부분을 이곳에서 가공한다. 그리고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에는 정부나 병원 산업체에서 사용되고 남은 폐기물을 보관하는 방사능폐기물관리공단이 있고, 연구를 위한 원자로도 가동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옥천읍까지의 거리는 20km를 조금 넘는다. 보통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원전 반경 20km 내의 주민들은 긴급대피된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반경 30km로 긴급보호조치계획을 확대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니 대전에서 사고가 나면 옥천도 긴급대피구역에 포함된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만일 사고가 터진다면 옥천도 이 끔찍한 재앙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구나 충청남도 금산에는 우라늄 매장지역이 있다. 작년에 이 광산을 개발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우라늄 가격과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개발시도는 계속 있을 예정이다. 우라늄 광산이 개발되면 방사선이 유출되고 광물찌꺼기가 주위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보통 주거단지와 멀리 떨어지게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광산과 주거지가 가장 가까운 거리는 65km인데, 금산과 옥천의 거리는 그보다 훨씬 가깝다. 그러니 광산개발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없다.

 

원자력과 방사능만이 아니다. 2013년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2011년 전국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국 발암물질 배출량 총 7921톤 중 충청북도가 3109톤(전체의 39.3%)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청주의 오창공단에는 발암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들이 주택가에 버젓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청주 지역의 유해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화재가 폭발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 충북발전연구원이 2013년에 발표한 「충청북도 유해화학물질 위험성 완화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옥천에도 유독물질과 발암물질을 다루는 기업이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옥천군민이 안전하다고 믿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진다는 점에서 관리하기 매우 어려운 물질이고 또 위험한 물질이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3년 중앙정부도 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하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리고 충북도청은 청주권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화학물질 배출을 줄이는 SMART 프로그램을 충북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옥천군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현재까지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그런 계획을 찾기 어렵다.

 

옥천은 수질보전을 위해 개발이 제한되고 관리되는 청정지역이지만 주위에는 많은 위험요인들이 있다. 그러니 나와 가족, 지역의 안전을 마냥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계획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행정구역상 우리 지역은 아니더라도 주의를 기울이며 다른 지역 주민과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하며 살 수 있다.

옥천군의 재정상황을 보자. 2013년 8월말 옥천군의 재정공시에 따르면, 2012년 세금수입은 3천 777억원, 세금지출은 2천 979억원이다. 지방정부 자체수입을 기준으로 삼는 재정자립도는 18.1%로 2012년 전국의 군 단위 재정자립도가 16.4%이니 나쁘지 않다. 더구나 지방정부가 사용처를 정할 수 있는 예산을 기준으로 삼는 재정자주도는 71.7%로 높은 편이다. 옥천군의 자체 수입은 적지만 국비나 도비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문제는 국비나 도비를 받으려면 중앙정부나 충청북도의 사업계획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지역의 기획과 힘이 아니라 외부의 계획과 재원에 따라 옥천군의 주요 사업이 결정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국비나 도비를 받는 사업들은 언제나 지방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돈(매칭 펀드)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국비나 도비를 받으려면 지방정부도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돈을 지원받는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다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가 중간에 사업을 변경하면 기초자치단체가 말 그대로 ‘독박’을 쓰기도 한다. 실제로 강원도의 어느 기초자치단체는 사업의 실패를 알면서도 지원받은 국비를 다 쓰기 위해 불필요한 예산을 집행하는 기이한 일을 벌이고 있다.

 

악순환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데, 자기 돈이 부족한 지방정부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기도 한다. 주민과 법인이 내는 지방세가 지방정부의 재정인데, 지방채는 지방세를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 즉 빚이다. 안전행정부의 ‘2012년말 지방채무 현황’에 따르면 옥천의 채무는 200억원으로 예산대비 채무비율이 6.0%이다. 인근의 영동군은 0.9%이고, 옥천군은 충청북도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청주시(12.0%)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높은 비율은 옥천군이 2011년까지 산업단지와 농공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약 2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한 것과 연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완공을 목표로 488억원을 투자하는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조성사업이 곧 시작된다. 이 사업은 옥천군과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흥구 부군수는 2013년 11월 《충북일보》에 제 1단지가 100% 분양되고 959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94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고 썼는데, 실제로 그런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실 기업이 투자한들 그건 기업의 자산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세금이 공제된다. 의료단지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법인세와 소득세, 취득세, 재산세를 감면받고 물류비와 오폐수처리비용 등 온갖 지원을 받는다. 실제로 옥천군은 지난 5년 동안 기업들에게 133억원의 지방세를 감면했다. 투자가 유치되는 만큼 걷지 못하는 세금이나 세금지출도 늘어나는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940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는지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그 중 옥천주민이 일하는 곳은 얼마나 될까? 옥천의 물류창고업이 옥천군민의 일자리가 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조차도 미지수이다.

 

사실 의료기기 산업단지는 옥천군만이 아니라 충청북도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제 2의료단지 사업을 충북개발공사가 맡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로 충청북도의 사업방향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산업단지를 지어야 할까?

 

이런 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의 여론도 반영되지 않고 관련된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다. 작년 5월에 완료되었다는 단지조성 타당성 용역보고서도 비공개 상태이다. 그리고 1단지에 새로 들어왔다는 기업들이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지역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없다. 옥천군의 많은 토지는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라 수질보전지역으로 묶여 있어 유해물질의 영향을 적게 받는 편이지만,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러니 주민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고, 군민들은 그 효과도 분명하지 않은 의료단지를 더 큰 규모로 짓겠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대규모 단지를 만들고 외부기업을 유치해서 지역경제를 살리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끔찍했다. 머리로는 핵발전소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재앙이 펼쳐지니 머리가 멍해졌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이미지로만 다가와 느낌이 없었는데 후쿠시마의 사고는 달랐다.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곳에서 벌어진 사고는 팔짱 끼고 관전할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고를 계기로 ‘탈핵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핵발전소나 방사능에 대한 정보의 양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후쿠시마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 해류를 타고 퍼지는 방사능 물질, 버섯이나 생선에서 검출되기 시작한 세슘, 아스팔트에서 검출된 방사능 등 여기저기의 정보들은 탈핵운동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론 시민들의 공포심을 계속 자극하기도 했다. 나도 그랬다. 오뎅을 즐겨 먹는지라 이 오뎅의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수산물은 괜찮나, 이런 걱정만 계속 늘었다. 사실 먹는 것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어찌할 수 없는 큰 것보단 작은 것에 대한 걱정들만 자꾸 늘어났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핵과 방사능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한치도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송전탑으로 전국을 도배하고 있다. 국토 면적 대비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1위인 한국, 핵발전소 보유 개수가 세계 5위인 한국, 끊임없이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삶을 기획하고 있는 걸까?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쏟아도 공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공권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포악하고 염치없는 상황들이 이어져도 딱히 대안은 없다. 그들은 너무나 잘 안다. 자신들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뭐,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고 증거를 조작해 간첩사건을 만들어도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넘기는 쿨한 국민들이 사는 나라. 너무 많은 사건들이 터져서일까? 이제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면 관심조차 못 받고 사라진다. 이러니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시간을 질질 끄며 망각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핵은 삶과 직결된 문제이다. 사고가 터지면 4년이나 5년 뒤에 보자고 말할 새도 없이 한 지역이 폐허로 변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그 영향을 받는다. ‘뒤’가 없다는 점에서 핵은 인류가 직면한 완전히 새로운 공포인데, 문제는 경험이 없기에 그 결과를 예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거나 핵폭탄을 실험했던 수많은 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지금도 공유되지 않고 과학의 장벽에 막혀 있다. 그러다보니 생각은 있지만 느낌은 없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 절실함이 없다.

불량부품들로 삐거덕거리며 움직이는 핵발전소들과 버릴 곳 없이 계속 쌓이는 핵폐기물,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고 소식들. 방사능 유출이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공포는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솔직하게 얘기하면 핵사고는 이미 진행 중이지 않은가. 불량부품들로 작동되는 원자로와 그 위험한 곳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노동자들, 핵발전소 근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 그들에게 핵사고는 다가올 사건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이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변호인》을 본 사람이 천 만명을 넘어도 눈 앞의 간첩조작사건에 분노하며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건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절실하지 않다.

후쿠시마 이후 한국사회가 변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 노력들은 보이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하다고 답하련다. 인간의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핵발전이 가능하며, 지금의 산업구조를 볼 때 핵발전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경제성장이 가능한가? ‘전력=산업화’라는 등식에서 우리는 핵발전과 자본주의의 밀접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길 기대하는 사회, 그러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눈 감아 주는 사회에서 탈핵은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삼성전자, 노동자의 노동을 분단위로 쪼개어 착취하는 삼성전자서비스사가 성장하는 사회, 온갖 화학약품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는데도 친환경 상품을 수입하는 소비자들의 사회는 비정상이다. 이런 사회를 유지시키는 대통령이 비정상성의 정상화를 떠드는 사회야말로 정말 비정상이다. 그렇지만 이런 비정상성을 끝내려는 용기를 낼 만큼 우리는 절실하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속삭이는 내부의 망명객이 되었다. 이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사회를 등지고 있다. 허나 내가 ‘잠시’ 사회를 등졌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외려 사회가 우리를 등지고 있다. 자기 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추방하고 배제시킨다. 그러니 대안은 우리도 국민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이 뻔뻔한 사회를 갈아엎는 것이다. 고전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불가능하다거나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데 미래를 어떻게 다 구상하고 시작하나. 뭔가 분명하지 않지만 일단 용기를 내어 일어서 보자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 중 하나 이상을 그만두며 저항을 해보자는 거다.

그리고 탈핵은 우리만 잘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일본은 핵발전 중단 상태이나 언제 다시 가동할지 모르고,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은 엄청난 수의 핵발전소를 세울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빽빽한 핵발전 단지의 중심에 놓인다. 방사능만이 아니라 황사와 미세먼지가 알려주듯, 우리는 이미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한중일 시민사회가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을 넘어 사람들이 직접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안일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나? 일본, 중국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민족주의의 불길에 휩싸이는 한국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기억과 연대를 혼동하는 순간 대안의 힘은 사그라진다. 손을 내밀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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