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의를 나가던 대학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선언문을 읽다 한 구절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학문과 양심의 전당인 대학’, 아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한국의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을 논하다니. 파견직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대학, 온갖 가게와 커피 체인점들이 점령한 대학, 포스코, 삼성 등 대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은 대학, 88만원 세대를 양성하는 취업의 최전선인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이라니, 고상하신 교수님들의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학이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얘기는 무의미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학이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으로 학문의 전당이라는 상아탑이 부모와 학생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우골탑으로 변한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교수가 권력의 해바라기(폴리페서)로 나서고 자기 제자를 성추행하기도 하는 이곳의 대학에서 다시 학문과 진리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국립대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체질 개선에 바쁘고 사립대는 학생들 등록금 모아 적립하고 기업 후원 받기에 정신이 없는데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학, 단추를 잘못 꿰다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취업시장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등장했다. 왜냐하면 대학은 당시 교단의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종교해석에 도전해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몇몇 뛰어난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를 만들려 했다. 초기 대학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토론 공동체’라 불렸다.

때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로 그런 교육이 확장되기도 했다. 학교 캠퍼스는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서로 뒤섞여 있었고, 대학생은 능동적인 지역시민이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자극했고, 그렇기에 대학의 학풍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마련된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때론 국가권력과 대립하면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도 했다. 대학이 자리를 잡은 지역사회는 혁명적인 사상의 근원지였고 때론 실제 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혁명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은 국가의 ‘억압’이나 자본의 ‘유혹과 조작’에 시달렸고, 대학 내부의 ‘권위주의’와 ‘부패’는 대학의 공동체성을 뒤흔들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몸부림쳤던 사건이 바로 1968년 전 세계를 뒤흔든 대학생들의 반란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베트남전과 징병을 반대하며 주방위군과 충돌했고, 대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된 대학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을 점거했다. 이탈리아의 대학생들은 교과과정과 교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오쩌뚱의 포스터를 정문에 내걸었다. 폴란드의 대학생들은 “자유 없이 학문 없다”고 외치며 군대와 충돌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다시금 대학을 토론과 자치를 위한 코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장으로 만들었다. 지금 유럽 대학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움과 연대성은 68년의 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대학의 역사는 서구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다. 대한제국과 식민지기에 한국의 대학은 ‘서구 따라잡기’와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즉 시대정신을 밝히는 토론공동체라는 원래의 정신은 무시된 채, 형식적인 교과과정과 같은 껍데기만 이식되었다. 우리의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대학교육은 외국물을 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학생이 외우고 따르는 것을 뜻했다. 한국에서 대학은 토론과 혁명적인 사상의 근거지가 아니라 서구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배우는 공간이었다(식민지 시기 대학생들이 공부했던 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다).

대학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엘리트의 지위를 얻었다. 대학은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다. 엘리트 구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동문들의 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자원은 서울대학과 지방대간의 격차를 늘려 학벌사회를 심화시켰다.

이런 엘리트 구조는 대학가 문화를 만들었을지 모르나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대학과 지역사회는 분리된 두 개의 공간으로 존재했다. 대학에서 저항문화가 싹텄던 때에도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있었을지언정 대학이 지역사회와 밀착해 지역토호를 몰아내거나 부패한 지방권력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 문제점은 대학이나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독재가 지방자치제를 유보시켰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지연시켰던 탓도 있다. 그리고 좌우를 막론하고 지역보다 국가 차원의 연구에만 집중했던 지식인들의 연구경향도 이런 분리에 기여했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기원과 발전과정은 토론공동체나 자율적인 코뮌을 만드는 과정과 무관했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부적절한 관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1991년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도는 국가로 집중된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앙정부는 지역혁신전략의 하나로 대학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고, 이런 권력의 변화를 눈치 챘는지 대학들도 지역사회에 조금씩 관심을 돌리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국의 각 대학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며 제안하는 방안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대학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며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업은 담장허물기와 도서관의 개방이다.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이 캠퍼스를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자유로이 이용하게 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것은 대학공간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좋은 방안으로 애기되고 있다. 그런데 담장허물기는 대학의 자체 재정이 아니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손 안 대고 코푸는 식의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서울시는 서울시 42개 대학의 담장허물기 비용을 전액 시비로 지원할 예정이다). 그리고 도서관 개방은 주민들의 대출이나 열람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어 동네의 공공도서관보다 발걸음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말 그대로 생색내는 것으로 그치고, 이런 시설 개방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담장허물기나 도서관 개방 외에도 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나 행사, 대학 축제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기도 한다. 서울시 성북구의 고려대, 국민대, 동덕여대, 서경대, 성신여대, 한성대 등 6개 대학은 성북구청과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 대학이 나서서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과 대학생들을 연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지역청소년들의 논술이나 창의력, 생활과학교실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교수나 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을 지역사회와 연계시키고 있다.

이렇게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삶이 서로 연계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개방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대학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운영이 지역사회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잘라 말하자면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여전히 나눠서 생각한다는 점을 뜻한다. 대학 자체의 경계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어렵다.

사실 대학이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의 발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쪽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사업’이다. 예를 들어, 안동대는 안동시, 안동교육청과 함께 안동영어마을을 설치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운영 중이다(말도 많고 도움도 안 된다는 그 영어마을을 대학이 나서서 한다!). 그리고 대학의 산학협동과정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행되기도 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에 직접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 평택시와 성균관대는 도일동 일대를 산업, 주택, 학교 등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땅값을 지나치게 낮게 정해 특혜시비가 일고 있고 있는데, 성균관대는 헐값에 공급받은 땅을 일반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분양할 것으로 알려져 대학이 땅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학이 이렇게 지역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8년 정부가 법을 개정해 사학재단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은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적립금 투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상태라면 대학과 지역사회의 결합은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은 대학이 그 결합의 의미를 공공성보다 자기 살을 찌우는 사업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인 그라민 은행을 만든 유누스(M. Yunus) 교수는 캠퍼스 근처의 노는 땅을 지역주민이 활용할 수 없다면, 대학이 자신의 지식에 도취되어 주민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대학이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유누스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면 학문의 의미가 없다고 믿으며 현실로 뛰어들었다.

대학의 공공성은 단순히 대학이 지역사회에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섞이며 소통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을 담당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이나 대학생의 삶과 지역사회가 사실상 서로 분리될 수도 없다. 서울시의 뉴타운 계획에 따르면, 중앙대(흑석동)와 이화여대·추계예대(북아현동), 경희대·한국외대(이문·휘경동), 서울시립대(전농동·답십리) 등 6곳이 뉴타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 뉴타운 개발은 대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미 치솟는 등록금에 신음하는 대학생들이 비싼 하숙비나 월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기숙사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재개발은 대학과 대학생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변화는 그 속의 대학이나 대학생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대학은 지역사회에 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대학의 교육과정 자체가 이런 지역사회의 변화를 다루고 대안을 모색할 때에만, 대학이 지역학의 기반이 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살아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앞으로 닥쳐올 사회적 위기를 대비하며 대학이 지역사회의 거점으로 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다가올 식량위기를 대비해 대학이 지역사회 먹거리 순환(로컬푸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대학이 학교 내 급식을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로 전환하고 지역 내의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급식센터를 설립해 운영할 수도 있다(원주 상지대는 이런 전환의 기반을 닦고 있다). 대학이 캠퍼스 안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도시농업을 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책임지고 진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학의 화장실과 식당에서 나오는 자원(쓰레기가 아니다!)을 발효시킨 바이오메탄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녹색연합>은 2007년 국내 대학들이 사용한 에너지의 양을 분석한 결과 2000년과 비교할 때 84.9%나 소비량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같은 기간 한국사회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증가폭보다 무려 3.7배나 높다). 각 대학들이 캠퍼스에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에너지 효율을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학교자산만 불리는 나쁜 확장을 그만두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지로 변신한다면 대학은 지역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대학이 에너지를 잡아먹는 블랙홀에서 에너지 농장으로 변신할 수 있다.

식량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대학은 지역사회 대안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의 교과과정이 이런 대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대학은 명실상부한 대안적인 지역사회의 거점이 될 것이다. 대학의 각 전공학문이 그 지역에 맞는 대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면 생각은 결코 꿈으로 그칠 수 없다.

 

대학을 어떻게 접수할까?

 

어떻게 하면 한국의 대학들이 이런 대안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예전 사립학교법 개정 때 대학이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대학을 접수한다는 건 거의 꿈에 가깝다.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학재단들은 대학이 공공성의 거점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구의 68년 때처럼 바리케이트를 쌓고 강의실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접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그런 움직임을 약간만 보여도 바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할 것이 뻔하고, 한국 경찰의 우수함은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대학이라는 공간을 포위하고 서서히 압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생들이 대학이 있는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역주민들도 대학의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 아직까지 대학생들은 지역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의 발전방향을 고민해본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생들은 자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대학공간에서조차 자율적인 소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역이나 대학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는 대학생에게 민주주의는 현실의 과정일 수 없다.

따라서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소통이라는 과제는 단순히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계몽적인 호소로 해결될 수 없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일종의 연습과정이다. 즉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참여하는 사람만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욱더 익숙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여러 가지 일에 관해 대학생들과 주민들이 만나 일상적으로 얘기를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주제와 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일은 학내 민주화이고 이것은 지역사회 민주화와 맞닿아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이 지역사회와 무관할 수 없고, 교수들이 맡는 다양한 연구용역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니 지역주민들도 대학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변화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의 저항방식을 참조할 만하다.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영화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으로 한국에 소개된 하지메는 학교가 알아서 졸업을 시켜줘야 할 만큼 ‘말썽꾸러기’였다. 캠퍼스에서 난로를 피우고 찌개를 끓여 술을 마시고 페인트를 집어던지는 습격을 감행하면서 하지메는 조금씩 대학을 변화시켜 나간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싸움의 기술이었기에 대학은 하지메를 졸업시키는 것 외에 이에 대항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하지메는 사회적인 대안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저 멀리 높이 솟은 래미안 아파트를 동경하지 않고 가난뱅이들이 모여 있는 우리 마을에 눈을 돌리는 순간 새롭고 재미난 일들이 계속 우리를 기다린다.

대학을 접수하자는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꼭 대학의 총장실을 점거하고 대학의 운영권을 빼앗아야 대학을 접수하는 게 아니다. 뭐 좀 재미나고 새로운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찾을 때, 같은 대학에 다니지만 인사 한번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때,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떠들며 경계를 없앨 때 이미 대학은 접수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9년에 출판한 '공화국의 위기'에서 정치적 거짓말의 의미를 분석한다.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미국에서는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아렌트는 미국방성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국민과 의회를 속이려 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파악한다. 진정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선출된 권력이 자기 국민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거짓말을 일단 시작하면 정부는 자기기만에 빠져들어 거짓말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을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사회정의나 공공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아렌트는 그런 상황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 언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불복종 행위야말로 공화국의 위기를 막을 진정한 정치행위라고 주장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자기 국민을 속이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정당성은 시민의 동의와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치인의 필수적인 덕목처럼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렇게 정치가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7.4%, 법원은 4.6%, 검찰은 2.6%, 국회는 0.9%로 나타났다. 임의로 결성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42.3%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정부는 공권력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에서도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사회가 크게 술렁거렸고, 오랫동안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그 당시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만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고 광우병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할 때 반드시 국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정부는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정부를 제소했기 때문에 먼저 대응하는 차원에서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부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캐나다 쇠고기 현지 작업장 점검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청을 거부했다(캐나다에서는 2003년 첫 광우병 사례가 보고된 이후 계속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캐나다가 이미 보고서를 국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왜 어떤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광우병 검역기준을 위반한 미국 도축장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청도 계속 거부하다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을 받기도 했다.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공개가 없는 정부의 말바꾸기는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간다.

그리고 작년만 해도 정부는 주변국의 조건에 맞춰 쇠고기 수입기준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겠다며 나서는 주변국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 정부는 누구의 정부이기에 국내 축산농가나 국민의 안전보다 국제기준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단 말인가?

이런 정부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학교에서 진실되게 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하는 게 뭐가 나쁜가? 모두가 서로를 속이며 거짓말의 공범이 되는 사회, 그곳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난 6월 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 13회 인권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왔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장소사용을 허가했다 취소하고 경찰이 무대설치를 방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화제는 개막했다.

용산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개막작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용산만이 아니라 흑석동, 성남 등 전국 곳곳에서 뉴타운과 재개발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4구역에서만 약 47조원의 엄청난 이윤을 볼 수 있으니 힘 있는 자들은 악착같이 개발을 하려 든다. 세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개발계획, 그들을 위협하는 용역깡패, 용역의 불법적인 활동을 묵인하는 공권력, 한국사회에서 40년 이상 반복되어온 야만이다. 철거촌은 한국의 게토이자 수용소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006)에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풍경을 기록한다.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렌트는 이 살인마가 평범한 공무원으로 성실히 일했다고 보면서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생각 없이 법과 명령을 따르는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비극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유명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재판정에 세운 것이 일종의 정치쇼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비극의 책임은 아이히만만이 아니라 유대인 자신과 그들의 이웃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와 협력해서 유대인의 명단을 작성하고 기차에 태워 수용소로 보내고 심지어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던 사람들은 바로 유대인과 이웃들이었다. 아렌트는 이들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나치의 계획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영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나는 수많은 아이히만들의 모습을 보았다. 철거민들을 끌어내고 방패로 찍는 전경들, 6명의 죽음을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찰과 그들을 사면한 검찰, 그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아이히만이고 우리 시대의 무사유를 대표한다.

그와 함께 나는 우리 각자의 아이히만도 발견했다. 그 이웃들이 유대인을 외면했듯이 우리 역시 함께 살던 주민들이 철거민으로 규정되는 순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던가. 나의 일상을 지속시키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묵인하지 않았던가. 보편적인 정의의 원칙에 따라 현재의 부조리를 거부할 인간 최후의 권리를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았던가. 아직 시신을 모시지도 못한 유족들의 절규에 귀를 막지 않았던가.

강력한 야만의 힘을 꺾으려면 우리 자신이 문명의 정치, 살림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희망이 우리 내부에서 싹틀 수 있도록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고 고통받는 타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 영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며 되묻는다. 우리는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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