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는 '원순씨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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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현 정부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불렀다. 그동안 녹색, 공정, 공생처럼 좋은 말들의 의미를 줄줄이 왜곡해온 사람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측근들의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오고 '위키리크스'를 통해 부정한 외교가 들통 난 상황에서 현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니. 개그라면 웃겠지만 진심이라니 기가 막힌다.

아직은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으니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명박산성이 영원할 수는 없다. 비록 2008년 촛불의 행진은 명박산성에 막혔지만 이제 시민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용산 레아, 홍대 두리반, 4대강 공사 현장,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강정 마을 해군 기지 등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현실을 스스로 판단하려는 움직임이다.

물론 짜잘하게 부딪쳐봤자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냉소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통계 수치나 이론, 정책을 들먹거리며 자신을 믿고 '큰 거 한방'에 기대를 걸라고 설득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성공한 사건(?)만을 기억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MB, JP, DJ같은 약자로 얘기되는 정치인과 사조직처럼 움직이는 정당들의 전유물로 얘기된다.

갑작스런 사건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군불이 없다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프리 골드파브의 <작은 것들의 정치>(이충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정치의 군불을 때는 방법을 다룬다. 한나 아렌트와 어빙 고프먼의 이론을 받아들여 골드파브는 "사람들이 역사적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상호 작용 속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세계에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주장한다.

▲ <작은 것들의 정치>(제프리 골드파브 지음, 이충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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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 1989년의 루마니아 혁명, 2001년 9·11 테러, 2004년 미국 내의 반전 운동과 대통령 선거 운동 같은 굵직한 사건들에서 일상의 정치는 변화의 물꼬를 텄다. 골드파브는 "구조적 조건들이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황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나타난 변화가 공유되고 공개되며, 그런 공유된 변화에 입각해 행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큰 거 한 방도 세상을 달리 보려는 자잘한 시도들이 쌓여야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골드파브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상호 작용에 내재한 자유로운 공적 공간의 중요성"을 간파하면 식탁, 책방, 살롱, 공장, 학교 같은 일상 공간이 정치의 장으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공간에서 상황을 스스로 새로이 규정하며 시민들은 대안적인 정치의 싹을 키운다. 마치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시민들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일상적인 유형, 즉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를 사실상 만들어" 낸다.

물론 우리의 '가카'처럼 부조리한 권력자들은 공권력을 동원하고 미디어의 입을 막으며 공식 이데올로기를 시민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식적인 공간에서는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믿는 척했지만, 식탁의 주위에서, 독립적인 책방에서, 살롱에서, 그런 강요된 관계는 의문시되었다." 의심받기 시작한 권력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시민들은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이 권력을 정의하며 대항 지식, 대항 권력을 형성한다.

특히 골드파브는 인터넷이 좌파 운동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얘기한다.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하워드 딘과 <무브온>, 미국의 반전 운동을 예로 들며 골드파브는 인터넷이야말로 작은 것들의 정치를 펼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만났다. 그들은 자신의 글을 올렸고, 서로에게 반응했으며,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행위를 조율했다. 그들은 상황을 재정의했다. 상황은 그들의 정의에 따라 변화했다." 이야기와 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터넷이야말로 작은 정치를 큰 정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물이다.

그렇다고 작은 것들의 정치가 곧 권력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흔히 시민사회의 중요성이라는 통념으로 요약되는)가 권력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지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제도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동적인 운동들은 중요한 정치적·문화적 변화를 산출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출현하자마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상황을 정의하는 힘은 제도화되지 않으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 그렇지만 대안들이, 기존의 두 지배 정당 가운데 한 정당(예컨대, 민주당―옮긴이)에서 제도화된다면, 그와 같은 대안들은 미국인들에게 꾸준히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제도화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제도화는 정당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매우 다양한 사회 제도들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것처럼 교육과 미디어 제도들은 특히 중요하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말로만 떠들지 않고 골드파브는 'deliberately considered'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하고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골드파브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나는 꼼수다>의 유행과 '닥치고 정치'라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바로 작은 것들의 정치이다.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정치

이런 골드파브의 주장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정규군이 큰 것 같지만 어떤 때 가면 정규군을 다 동원할 수도 없어요. 쥐는 고양이가 잡게 생겼지 황소가 못 잡는단 말이야. 그런 모양으로 신문에서라든지 잡지에서 못하게 되면 차 마시러 들어가서 다방에서도 얘기하고, 친구 만나 음식점에 가서 얘기하고, 기차 타러 가서 그 안에서 얘기하고, 그게 게릴라전 아니냐. 정규의 언론 기관은 아니지만, 정규의 언론 기관이 다 맥이 빠져서, 권력에 팔려서, 종이 돼서 할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런다면 우리끼리 어디서든 만나는 대로 해야 돼."

함석헌의 이런 얘기는 이미 핵심을 짚었다. 그리고 골드파브보다 훨씬 더 강한 열정과 활동으로 함석헌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글과 강연에 매료되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는 활성화되지 못했을까? 한국의 시민들이 능동적이지 못해서? 한국 사회 시민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판단하기 어렵다. 문제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몇몇 스타를 낳을 뿐 긍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민의 꿈과 희망을 대변하겠다는 인물들만 있었지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제도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아니 만들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다수 정치인과 정당들, 시민 운동 활동가들조차도 작은 것들의 정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시민들의 꿈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꿈을 꾸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촛불 집회의 끝물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편견과 망각의 정치'라는 글을 실었다. (☞관련 기사 : 편견과 망각의 정치) 3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원순닷컴이 한나라쩜 오알쩜 케이알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외려 그의 능력을 알기에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걱정스럽다. '반드시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게 서울 시장 당락과 무관한 박원순의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역사의 반복과 더불어 냉소주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열정을 경험한 뒤에 돌아가는 곳은 억압적인 학교와 공장, 가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정치의 장에 가두는 사고야말로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학교와 공장, 가정의 민주화 없이는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의 정치는 삶터의 장을 넘어 일터로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상은 작은 정치의 희망을 꽃피우는 장소가 아니라 정치의 무덤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골드파브가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보자. 골드파브가 극찬하는 폴란드는 왜 민주 혁명 이후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렸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가 왜 시민들의 생활 기반을 파괴하는 한미 FTA나 제주 해군 기지, 핵폐기물 처리장 정책을 추진했을까?

이는 정치 논리로만 풀 수 없는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골드파브의 글에서 그런 통찰력을 찾아보긴 어렵다. 정치는 내용이 아니라 틀만 짜야 하기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제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이제 정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에, '삼성공화국을 해체하라'는 요구에 답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골드파브는 아렌트의 이론에 많은 점을 기대고 있지만 그녀가 현대 정치에서 감지한 위기감을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한 듯하다. 아렌트는 근대와 현대의 차이를 핵의 발명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다루는 정치는 전쟁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할 뿐 아니라 자연 자체를 새로이 만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약속>에서 아렌트는 핵무기의 등장이 "정치를 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바로 그것, 즉 모든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가능성을 위협"하는 모순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아렌트는 정치와 진리를 연관 짓는 걸 거부하지만 정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모순을 핵의 발명에서 찾았다. 이것은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재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정치의 기반인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일정한 진리 앞에 서야 한다.

허나 골드파브는 이를 거부하는 듯하다. 골드파브는 책 제목을 따온 아룬다티 로이를 거론하며 "테러주의와 반테러주의에 대한 대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로서의 로이보다는 소설가로서의 로이를 참조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허나 나는 소설가로서의 로이만큼 반세계화 활동가로서의 로이(로이는 활동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도 좋아한다.

"만약 후세인 정권이 쓰러진다면 바스라 거리에 사람들이 뛰어나와 춤을 출지 모른다. 그렇다면 만약 부시 정권이 무너진다면 세계 전역에서 거리마다 사람들이 뛰어나와 춤을 출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 정의인가?

핵 발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의 정치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를 꿈꾸고 아직도 원자력의 신화를 믿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는 반핵(反核)을 지지해야 한다. 작은 것들의 정치, 제도 정치 모두를 위해서.
나는 경기도민이다. 팍팍한 서울 생활에 질려서 2년 전에 서울을 탈출했다. 그래서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심심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내게 투표권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박원순 변호사가 당선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치열한 경합이라는 언론 기사는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얘기로 들릴 뿐 결과가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관심은 박원순 변호사의 당선 이후에 있었다. 적대적인 중앙정부 아래에서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를 박 시장이 잘 이끌 수 있을까? 선거 공약이야 참여연대부터 희망제작소까지 시민단체를 이끌어온 실력으로 충분히 채우겠지만 정치가 종합선물세트는 아니지 않은가? 타협이 정치의 미덕이지만 갈등과 충돌 없이 정치가 이뤄질 수는 없는데 ‘친절한 원순씨’가 잘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다.

예상대로 박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이 반값으로 떨어졌으며, 서울시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대규모 토건사업이 재검토되고 어린이집이 확충될 예정이다. 심지어 한·미 FTA에 대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박 시장의 행보는 ‘신자유주의의 마녀’ 마거릿 대처 정부 아래에서 런던 시를 이끌었던 켄 리빙스턴 시장과 비슷하다. 영국 노동당의 후보였고 ‘레드 켄’(우리 식으로는 ‘빨갱이 켄’)이라 불리던 이 사람은 대중교통 요금을 인하하고 탁아시설을 늘렸으며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지켰다. 공공 서비스를 확충하며 시민참여를 활성화시켰다.


   
보수 언론이 그의 사생활을 헐뜯기도 했지만 켄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대처 정부는 런던을 비롯한 광역시의 자치권을 폐지해서 강제로 켄의 반란을 진압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보수 언론은 박 시장을 흠집 내느라 바쁘다. 박 시장이 한·미 FTA에 관한 의견서를 내자 정부 5개 부처가 합동 브리핑을 열어 이를 비판하는 등 중앙정부도 박 시장을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차이점도 있다. 리빙스턴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엔 영국 노동당을 바꾸고 영국을 바꾸려는 동지들이 있었다. 영국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신좌파의 이상이 있었다. 그렇다면 박 시장의 뒤에는 누가 있을까? 민주당? 새롭게 탄생하는 어떤 정당? 그들이 과연 근본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노동조합 힘 강화한 리빙스턴 시장


리빙스턴은 대처 정부에 맞설 뿐 아니라 대기업의 부당한 노동조건을 바로잡고 노동조합의 힘도 강화하려 했다. 이것이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서울의 ‘협찬 시장’에게도 이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구조의 문제에서 개인의 창의와 선택으로, 재벌 개혁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관점을 바꿔온 박 시장이 시민운동 시절 들었던 ‘노동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나 여성을 차별하는 기업, 부당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기업, 백혈병 환자를 양산하는 삼성전자의 물건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선언을 기대할 수 있을까.

리빙스턴은 주민이 직접 지역사회를 바꾸는 다양한 자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박 시장도 서울 곳곳에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는 외부의 공조직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몫은 그런 공동체 구성을 방해하는 기성 관변단체들의 힘을 빼고 해체시키는 일이다.

내 기억에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장 본질적인 구호는 2002년 사회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내걸었던 ‘해체 서울’이었다. 식량과 에너지를 거의 생산하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하는 서울시민의 행복은 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서울시장은 서울을 넘어서 생각해야 한다.
<내일을 여는 역사>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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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을 좀 두려 하면 어김없이 “왜 선거 나가게?”라고 묻는 한국사회, 자신이 뽑은 대표자 앞에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도 술자리에서 질펀하게 정치인의 자질을 논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그럴 줄 알았다”는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정치현실이 부정적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런 인식의 문제점은 부정한 정치현실을 바꿀 힘도 정치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생활정치의 의미는 소중하다. 생활정치는 단순히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을 몰아내자는 주장으로 그치지 않고 시민을 정치의 주인공으로 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이념이나 구호보다 실질적인 생활의 변화,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꾼다. 즉 생활정치는 특정 정치인의 교체가 아니라 정치참여과정과 정치의제의 변화를 요구한다.

정치적인 장의 관객이 아니라 주인이라면 나는 더 이상 정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리고 정치는 선악의 기준이나 단순한 논평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생활정치에서 정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 ‘1인칭’, ‘2인칭’의 시점을 갖는다. 따라서 나는 또 다른 주인들과 공동체의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보스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국사회에서 생활정치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활정치라는 말이 등장하려면 먼저 그런 정치의 장이 마련되어야 했고, 따라서 우리는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각종 정치적인 사건들에 관해 시민들이 자유로이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한국에서는 조중동같은 기득권화된 언론사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선거 때마다 색깔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그래도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다양한 의제가 소통되면서 생활정치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사회에서 생활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 활성화를 위한 조건을 따져본다. 아울러 생활정치의 관점에서 중앙집중화된 복지국가 담론을 넘어서 분권화되고 지방화된 복지사회론을 전개한다. 또한 총선, 대선이 실시되는 2012년에 이런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살펴보려 한다.


1. 생활정치는 어떤 변화를 꿈꾸나?

한국사회에 생활정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총선 때였다. 이때는 단순히 주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미로 생활정치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러다 생활정치라는 말이 기성정치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1995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보육과 교육, 복지가 이루어지는 지역사회, 생활세계를 잘 아는 여성들이 지방의회로 진출하거나 그런 생활상의 의제들이 선거공약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활정치라는 말이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YMCA>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생활정치아카데미’나 ‘생활정치네트워크’를 결성해서 지방선거에 후보자를 낼 뿐 아니라 시민교육, 즉 민주적인 토론역량과 합리적인 갈등해결능력, 정치적인 의사표현능력 등을 키우고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극복하며 시민의 정치역량을 강화시키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운동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전문가들을 제도정치 속으로 보낼 뿐 아니라 시민사회 자체의 역량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생활정치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생활정치가 활성화되려면, 다양한 정치의 장이 구성되고 각자 고유한 의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중앙정치, 수도권정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방이나 지역사회의 주체나 의제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방선거 때에도 언제나 중앙의 정치바람이나 국가적인 사안이 후보자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쳐왔고, 지역사회를 대변하는 후보자나 의제들은 선거에서 배제되었다. 생활정치를 내세운 여성운동이나 시민운동도 여성후보공천비율을 확대하거나 여성의 정치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했지만 국가 중심의 정치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둘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주로 선거로 드러났고 선거를 준비하는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지도 못한 채 보수화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정치와 생활정치의 거리는 좁혀지지 못했다. 선거 때가 오면 정당과 시민사회운동이 전술적으로 연대하고 공동의 의제나 정책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선거 이후에는 그런 연대가 이어지지 못했다. 즉 한국사회에서 생활정치운동은 ‘정치개념의 확장’이라는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

셋째,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뿌리를 내려온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지방의회나 지방정부를 장악하며 지방자치를 보수화시키고 생활정치를 가로막았다. 사실상 기득권 세력들이 다수의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독점한 채 이권을 나눠먹어 왔다. 그러니 구청장이나 시장, 지방의원들이 부패하고 제대로 임기조차 마치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경기도 시흥시나 성남시처럼 시장들이 몇 대째 계속 구속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넷째,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면서 생활정치의 의제는 노동의제를 배제하게 되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분리되었듯이, 생활의제도 노동의제와 분리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이나 문화운동이 자연스레 결합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노동정치가 생활정치를 무시하고 생활정치가 노동운동을 배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섯째, 한국의 시민사회운동들이 주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제기하고 정당의 빈 곳을 메워온 것은 맞지만 그들 역시 공공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생활상의 문제로 접목시키지 못했다. 시민사회운동은 전문가나 활동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시민의 생활로 파고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생활정치 역시 추상적인 가치로만 얘기되지 실제 생활을 바꾸는 운동으로서 논의되지 못했고, 생활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할 시민들은 관객은 아닐지라도 운동의 객체나 수혜자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여섯째, 일본에서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가나가와네토’나 ‘도쿄생활자네트워크’같은 정치모임을 구성해서 ‘생활자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은 일본의 ‘생활자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운동을 펼치고 있지 않다. 한국의 생협법(제 4조)이 생협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탓도 있지만, 소비자생협들 스스로 정치활동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소비자생협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들도 스스로 정한 ‘정치적 중립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생활정치라는 말은 자주 쓰이게 되었지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고 시민사회 자체가 강화되지도 못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뀔 기미를 보인 것은 2010년 지방선거였다. 민선 5기를 맞이하는 지방선거에서는 중앙의 정치바람이 잦아졌고 공동지방정부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기득권세력의 독식현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상급식이나 마을만들기, 사회적 기업과 같은 생활의제들이 주요한 선거쟁점으로 떠올랐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신의 정치성을 커밍아웃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비롯한 주민참여제도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고, 시정(구정)공동운영위원회나 도정협의회같은 거버넌스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는 분명 생활정치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던 한국사회의 특징들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여전히 정치는 관전이나 논평의 주제이지 내가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장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처럼 주요한 현안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유도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시도들이 생활정치를 강화시킬지 아니면 제도정치를 강화시킬지를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특히 중앙정부나 수도권이 주요한 정치의제를 독점하고 중앙언론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교육, 문화, 경제 등 모든 사회자원이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는 초집중화 현상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치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시선도 중앙에 집중되어 있지 자기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생활정치가 꿈꾸는 변화는 내 욕구를 대신 해결해줄 ‘해결사’의 등장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공통의 욕구로 만들며 함께 꿈꿀 ‘공동체’의 등장이다. 생활정치는 다른 사람이 내게 필요하거나 중요한 것을 정해주는 과정이 아니라 내 자신이, 우리 스스로 그런 필요와 중요성을 정해가는 과정이다.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아도 좋지만 같이 힘을 모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런 자립(自立)을 통해 자치(自治)의 힘이 강화되고 자존감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공생(共生)이나 공존(共存)도 그런 자립을 전제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2. 복지국가와 복지사회의 큰 차이점

과거와 달리 한국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권리’없이 ‘의무’만이 강조되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복지는 상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그런데 복지국가가 곧 시민의 복지와 행복을 대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그것이 생활정치의 방식일지는 의문이다.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생활정치와 관련해 중요한 고민꺼리를 던져준다.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는 다른 개념이죠. 국가와 사회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니까요. 복지국가는 국가적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고, 복지사회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들 자신이 자주적으로 상호 연대하고 협동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사회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당장에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확실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틀입니다.”

김종철 발행인의 말처럼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는 다르고, 생활정치는 복지국가보다 복지사회와 가까운 개념이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주장하는 주요 정책들에 공감하고 그것이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리라는 점을 모르지 않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변화일지는 의문이다. ‘보편적 복지’가 가진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라는 구도로 해명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김종철 발행인은 “개인들의 자립적 역량과 자기책임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나라”인 덴마크의 아이들이 스스로 도시락을 싼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이 필요하지만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장만하는 교육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대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두가 스스로 필요한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판단을 대신하고 그들의 성장을 대신하려는 사회에서 생활정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남성들이 여성들의 필요를 예측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사회에서 생활정치는 왜곡되기 쉽다. 모든 복지를 한꺼번에 실시할 수 없다면 우선순위가 필요한데 그 우선순위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정해야 한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관료조직은 그렇게 유연하지 않다.

그리고 복지국가에 관한 담론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의 모든 학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한다고 치자. 조그만 공터에도 아파트를 짓는 서울시는 그 많은 쌀이나 식재료를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까? 지산지소(地産地消)나 로컬푸드(local food)를 전제하지 않은 무상급식은 다른 지역사회의 복지를 파괴할 수 있다. 피크 오일(peak oil) 시대를 맞이한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전력자급률이 1.9%에 지나지 않는 서울특별시가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려면 다른 지역의 에너지를 빼앗아와야 한다. 많은 결정권한을 소유한 수도권이 주요한 사회자원을 배분하면서 전체적인 균형복지를 추진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 담론은 중심부가 주변부를 지배하는 ‘내부식민지’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복지국가 담론은 김종철 발행인이 지적하듯이 “복지국가가 유지되려면 반드시 경제성장이 계속돼야 한다는 대전제”를 유지한다. 복지는 세금을 높이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야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의 잇따른 경제위기에서 드러나듯 성장은 ‘신화’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종철 발행인의 얘기는 시사적이다. “거듭 말하지만, 덴마크 같은 사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제도 개혁 이전에 시민들 자신의 자주적․협동적 결사운동이 활발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자주적 결사체가 활발해져야 국가도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건강해질 수 있어요. 원래 근대국가의 논리는 그대로 두면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원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국가나 자본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연대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단, 개인들이 자신의 독자적 인격과 자립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것이죠. 우선 나 자신이 강인한 인간, 실력있는 인간이 돼야 합니다. 그러자면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통해서 단련을 해야 합니다. 타인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라는 진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장 훌륭한 복지는 제도가 아닙니다. 풍요로운 인간관계입니다. 물론 그 인간관계는 민주적인 관계여야 하죠.”

따라서 복지국가와 생활정치의 방향도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가 위로부터의 제도적 보장을 강조한다면, 생활정치는 아래로부터의 상호부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활정치는 어떤 식의 복지를 구상할까?

복지국가를 얘기할 때 많이 다뤄지는 것은 일정한 ‘기준’이다. 국가가 국민의 최저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처럼 다양한 기준을 통해 복지국가의 복지는 실현된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이 시민의 ‘실제 욕구’와 얼마나 일치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인가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가 모든 기준을 결정하는 것은 구조적인 비민주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가령 수도권의 기초생활수급자가 느끼는 불편과 어려움이 지방에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불편이나 어려움과 똑같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수준을 정하는 시빌 미니멈(civil minimum)이라는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 시빌 미니멈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생활환경기준, 예를 들어 보행로나 공원, 복지시설, 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하는지를 정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시빌 미니멈을 정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실제 욕구가 이런 기준들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생활클럽생협>의 요코다 카쓰미는 이와 또 다른 커뮤니티 옵티멈(community optimum)을 제안한다. 내셔널 미니멈이나 시빌 미니멈이 필요하지만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에 의한 복지로 지역복지에 최적의 조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지역사회의 복지를 최저수준이 아니라 ‘최적수준’으로 보장하려면 시민이 복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복지의 제공자이기도 해야 한다. 즉 “미니멈에 입각한 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기에 이러한 기준에 입각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사회에서 ‘최저 기준’에 입각한 복지 서비스를 창출해 그 수익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 상부상조의 인간관계(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참가하는 것을 통해 미니멈보다 더 만족스러운 복지기준을 만들어내고 상호 활용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자 정치가 활성화되고 있기에 가능한 주장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논의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정치가 소수의 정치인과 다수의 시민관객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되었듯이, 우리의 복지도 언제나 수혜자층이 누구인가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허나 생활정치의 관점으로 본다면, 일방적인 수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복지의 관점이 놓치는 것은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의 ‘처지’이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 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거죠. 물질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 즉 가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문젭니다. 관리되는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위험이 상처받는 것이 고통스러운 게 아닐까요?”라고 묻는다.
복지국가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시키려면,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수혜관계가 아니라 호혜성이다.

근대사회에서 생활정치가 살리려 하는 것도 바로 그 호혜성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함께 행동할 때 정치의 장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 그것은 선거가 아니라 추첨이 민주적인 대표자 선출방식이라는 오랜 지혜처럼 낯설지만 손쉽게 가능한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해결책을 향해 가고 있을까?


3. 2012년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싹트고 있다. 투표율이 올라가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세계에 들어가면 다양한 사회의제들이 시민들 사이에서 얘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조건들이 생활정치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정치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의 세계를 정의하는 언어 자체가 분명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너무 어지럽다. ‘녹색성장’, ‘공정사회’, ‘공생발전’처럼 그 의미와 현실이 완전히 분리된 경우도 있고, 민주주의나 시민처럼 그 의미가 모호한 언어도 많다. 그런 점에서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우리의 언어 자체가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하며 대안용어를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혼란스럽게 만드는 암시들

더 정확하고 힘있게

소통하게 하는 대안용어

행동가

선동가, 자신만의 의제를 지닌 극단주의자

참여하는 시민, 능동적 시민, 권리있는 시민

반세계화주의자

퇴행적이고 이기적인 고립주의자

민주주의 옹호자, 강력한 공동체 옹호자, 반(反)기업통제, 반(反)경제집중

시민권

부담, 의무, 지겨운 것

공적인 참여, 공동체 만들기

관행 농업

무해하며 오랜 경험으로 입증된 것(둘 다 사실이 아니다)

화학의존적 농업, 자연착취적 농업, 공장식 농업

보수주의자

환경과 공동체를 보존하는데 헌신적임을 암시

극우, 반(反)민주 우파(적용가능할 때)

민주주의

투표와 정부에 한정된 것

살아있는 민주주의: 공정함, 포용, 상호책임성같은 민주적 가치들이 우리 공적 삶의 모든 지평에 스며드는 삶의 방식

자유무역

정부통제의 부재, 자동 메커니즘 암시(자동 메커니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우선의 불공정 무역

세계화

연결보다는 상호의존, 자유무역, 저가상품을 암시

세계적인 기업 통제, 세계적 기업주의, 경제 집중화, 경제 봉건주의, 임금 수준에 대한 세계적 하향 조정 압력

사회정의

급진좌파, 평등강요와 연결

공정성, 공정한 기회, 자유

자유선호의․자유당의

거대정부 선호

진보적, 민주적

최저임금

인간에 대한 영향력을 전달하지 못하는 용어

빈곤임금 vs 생계임금

일인당 국가 부채

대부분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것

출생 세금(2005년 각 신생아가 직면한 국가의 부채 액수는 15만 달러이다)

비영리조직

부정적인 뜻으로 정의됨

사회에 기여하는 조직, 시민의 조직

유기농, 저투입

화학살충제, 화학비료같은 물질의 부재에만 초점을 맞춤

생태 친화적 농업: 환경을 향상시키는 한편, 생태학을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사용하는 강력한 지식을 요하는 농업

선택 홍호

(낙태 합법화 옹호)

사소하게 들린다

양심 옹호

저항, 데모

제한적, 방어적

시민불복종: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

공적 삶

공무원과 유명인사에게만 한정된 것

구매자, 노동자, 고용주, 부모, 유권자, 투자자, 그리고 거대한 파문을 만들면서 매일 수행하는 모든 역할들에서 각자 하고 있는 것

동성 결혼권

성에 초점을 맞춘 것

결혼할 수 있는 권리, 동등한 결혼

세금

부담, “우리” 돈의 갈취

강력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구성원의 의무, 판사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가 이야기한 그대로, “문명의 비용”

복지국가

사람들의 요구를 다 받아주는 체제, 거대한 관료주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

 

언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언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공유할 세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는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에 나의 가치를 심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처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통의 언어와 감각이 요구된다. 생활정치는 그런 언어와 감각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이슨 델 간디오는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신급진주의를 제안하고 그런 의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얘기한다.

• 신급진주의는 인간이 소통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 신급진주의는 사람들에게 자기 내면에 자리잡은 정치적 욕망을 쫓아가라고, 선택한 현실이 무엇이든 창조하라고 주문한다.
• 신급진주의는 다른 현실을 방해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 수용되고, 존중되고,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신급진주의는 사람들이 욕망하는 현실을 자유롭게 창조하게 해주는 사회체제를 수립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하려면 이 과정을 방해하는 사회체계가 무엇이든 그것을 탐구하고 대결하고 근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 투쟁은 무한히 계속된다. 심지어 중심 없는 현실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해도 지속된다. 방해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힘이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의 현대사는 힘없는 사람들이 주변을 잘 살피고 조용히 말을 하도록 내면화시켰다. 옳고 그른 것, 바르고 나쁜 것을 논하기 전에 사람들 각자가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을 장이 필요하다. “내가 한들 뭐가 바뀌겠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대안이 없어요”라는 말이 아니라 내 속에 자리잡은 감정과 언어를 나눌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막아야할 사업과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는데, 그렇게 막연한 얘기를 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허나 내 속의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과 세계를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없다면 제 아무리 급진적인 변화라도 기성체제 속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2012년 역시 수많은 정책과 사람들 속에서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와 꿈을 공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2012년은 지나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는 반복에 그칠 것이다.

2012년 대선을 두고 안철수 씨의 등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그런 평론 역시 지식인의 ‘전문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개운한 반응은 아니다. 왜냐? 아마추어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전문가들의 정치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들은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허나 그것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비판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안철수 씨나 박원순 씨의 등장 자체가 생활정치의 성격과 맞을지도 의문이다.

특히 우리가 맞닥뜨린 근본적인 위기가 있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면서 두려움이 일고 있다. 그나마 서울에서 터진 일이기에 사건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이미 2011년 2월에 경주시, 포항시의 아스팔트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방사능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했을 수 있다.

그렇게 검출된 방사능만이 문제는 아니다. 정부는 원자력 클러스터를 만들고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핵발전 단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일본 핵발전소 사고를 바로 곁에서 겪고서도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단지 30년 동안의 풍족한 에너지 소비를 위해 수만년의 부담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생활정치를 아무리 떠들어도 부질없는 짓이다.

원자력만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의 핵심인 식량과 종자도 근본적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한미FTA를 비롯한 협약들과 초국적기업의 침투는 농민들의 삶과 우리의 식량주권
을 위협하고 있다.

어떤 정당, 어떤 정치세력이 이런 예고된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2012년은 희망의 완결점일 수 없고 희망의 시작일 뿐이다.


4. 결론

문강형준은 파국의 상황에 맞닥뜨린 우리의 실존을 좀비와 비교한다. “좀비는 포스트-정치적 상황과 결합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가 날로 분명히 몰고 오고 있는 파국의 분위기에 최적화된 주체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적인 것을 개인화하고, 이윤을 위해서 자원을 모조리 끌어다 쓰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지구적 환경문제는 외면한다. 이로 인해 결국 사회적 갈등과 지구적 문제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상황을 파국이라 할때, 그 파국 상황에서도 ‘묵묵히’ 걸어 다니며 자신의 식욕을 채우는 ‘일차원적’ 존재를 우리는 좀비라는 아이콘을 통해 발견한다. 좀비는 파국의 상황을 예비하면서 동시에 파국을 전파하는 존재다. 완벽하게 자유롭지만 완벽하게 속박된,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인간이 아닌, 포식하면서 소진하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있는, 존재이면서 비존재인, 주체이면서 반주체인, 노예이면서 소비자인, 결핍이면서 과잉인, 이 모순적 존재는 바로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의 온갖 모순을 체화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모순이 터지는 날, 어쩌면 ‘우리’는 ‘그들’ 중 하나가 되어 파괴된 거리를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좀비가 된 우리들에게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하나있으니, 파국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인간’이지 ‘좀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날카롭고 무서운 지적이다. 파국의 상황에도 ‘지금 당장의 식욕’만을 채우려는 일차원적 존재인 존비가 우리의 실제 모습일지 모른다.

좀비임을 한탄만 하지 않고 인간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생활정치를 펼치며 사람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의 정치에 끌려다니며 좀비의 삶을 살 것인지. 2012년은 그 시작을 알리는 해일 뿐이다.


※ 참고하면 좋은 책

김종철, “우애의 경제를 위하여”, 《녹색평론》2011년 7~8월호(통권 제 119호)
요코다 카쓰미 지음, 나일경 옮김,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 생활클럽 운동그룹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모델 만들기』(논형, 2004)
C.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음, 김경인 옮김,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 2010)
프란시스 무어 라페 지음, 우석영 옮김, 『살아 있는 민주주의』(이후, 2008)
제이슨 델 간디오 지음, 김상우 옮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동녘, 2011)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 박신규․엄은희․이소영․허남혁 옮김, 『비아캄페시나: 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한티재, 2011)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자음과 모음, 2011)
이지원, “현대 일본의 자치체 개혁운동: 혁신자치체와 시빌미니멈을 중심으로”,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1999년 박사논문.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2011)
김홍우 외 지음, 『삶의 정치, 소통의 정치』(대화출판사, 2003)
오사무 우오토, 『현미 선생의 도시락 1~8권』(대원씨아이, 2009~2011)
하승우․유해정,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북하우스, 2010)

[오늘의 문예비평]에 쓴 글이다.
글 중간중간이 엉성한데 그냥 내버려 뒀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읽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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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각주:1]

1. 고공크레인으로 들려진 사람들


크레인으로 올라간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들은 건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90년이었다. 노동조합을 주도하던 수십 명의 노동자를 식칼로 난자했던 끔직한 테러사건과 육해공에서 병력을 동원한 경찰의 미포만 작전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현대중공업의 노동자들이 82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올랐다. ‘골리앗 투쟁’이라 불리는 이 싸움에서 노동자들은 “새벽과 한밤중에 헬기까지 동원한 정부의 무력진압에 우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천대와 우리의 비애에 울분을 느끼고 급기야 투신하려는 동지들을 서로가 감싸안으며 자제시키고 있습니다. 저희도 저 밑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회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노조가 유린되고 정부에 의해 천대받는 현실에서 골리앗 위에 있는 우리 전원은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의하였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 전국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동조파업을 하고 울산으로 내려와 연대투쟁을 벌였고, 크레인에 오른 이들은 5일동안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벼랑끝 투쟁이었고, 노동자들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


당시에 나는 대학 선배들과 함께 서울지하철 선전전을 나갔다. 선배는 즐거운 어린이날에 크레인 위의 아빠를 맘 조리며 지켜봐야 하는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드라마같은 비극에 귀를 기울이는 승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무관심했다. 승객들이 일어난 자리엔 우리가 뿌린 유인물이 놓여 있었다.


크레인 위로 올라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은 저녁 시간 지하철로 퇴근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법으로 금지되던 시기라 진실을 알리는 목소리가 위험했을 수도 있지만 외면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불편에 가까웠다. 사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넥타이부대가, 권력층과의 협상에 바빠진 운동의 지도부가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는 점은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의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반응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보통 사람들’로 포장된, 반공과 중산층을 내세운 지배 이데올로기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을 분리시켰다. “나는 너희와 달라 또는 달라야 해”라는 구분이 “우리도 당신이다”라는 선언을 가로막았다. 힘겨운 싸움은 13일 만에 막을 내렸다.


당시 골리앗 투쟁을 이끌었던 이갑용씨는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골리앗(고공농성)에 오를 거라면 계획을 잘 잡아야 한다. 절대 혼자 올라가선 안 되고, 여럿일 경우 고공에서 어떤 일을 할지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투쟁일기 같은 것을 적어도 좋다. 어떤 경로로 침탈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 대비해야 하고,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투쟁이 때를 가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의 고공농성은 되도록 피했으면 한다. 초여름에도 견디기 어려운 하늘 위의 날씨인데 겨울에는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고공단식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단식은 지상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배변 문제 때문에 최소한으로 음식을 조절하다 단식으로 가기도 하고, 음식을 다 아래로 집어던지고 결사항전을 각오하기도 하는데, 고공 단식만은 말리고 싶다.”


하지만 그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크레인에 올라야 했다. 살 곳을 강제로 빼앗긴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우고 그 위에 올랐다. 지상에서 살 곳을 빼앗기고 내몰린 사람들은 하늘 가까운 망루와 크레인에서 안식처를 찾아야만 했다.


20세기의 소설같은 비극은 21세기 한국에도 계속 재현되었다. 절대 혼자 올라서는 안 된다는 그 크레인을, 초여름에도 견디기 어렵다는 그 크레인을 한진중공업 故김주익 위원장은 혼자 올랐다. 골리앗 투쟁이 노조간부들을 식칼로 찌르고 헬기와 해군함정으로 진압하는 노골적인 폭력에 맞섰다면, 김주익 위원장의 투쟁은 노조간부들을 매도하고 고발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은밀한 폭력에 맞섰다. 골리앗 투쟁이 빨갱이로 매도당했다면, 김주익 위원장의 투쟁은 무관심으로 외면당했다.


지상에서 35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태풍이라 불리던 매미를 견디며 무려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인 나라에서 김주익 위원장은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로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 부르짖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스스로 목을 매어야 했다. “휠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언론매체는 태풍 매미의 강력함을 연일 방송했지만 그 태풍을 견디며 한 사람이 크레인 위에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를 인터뷰한 사람도 없었다. 그가 죽음을 택하고 나서야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며 눈물을 훔쳤고,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라는 故정은임 아나운서의 멘트는 그의 죽음 뒤에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이 역시 한국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린 소설같은 현실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크레인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크레인으로 들려질 수밖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위험한 곳에 그들은 둥지를 틀어야만 했다. 높은 크레인을 오르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희망을 품었을까? 이번에 올라가면 다시 지상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간 사람들을 왜 우리는 보지 못했을까? 크레인으로 들려진 사람들의 꿈은 지상에서 꾸역꾸역 일상을 사는 우리들의 꿈과 달랐을까? 왜 우리는 눈을 감았을까?


이 외면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할 수는 없다. 그동안 크레인에서 떨어진 땀과 고통의 눈물이 지상으로 스며들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희망은 과거의 절망을 인정하고서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고통의 기억만을 부여잡자는 건 아니다.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졌다면 아마 희망이라는 말도 소용없을 것이다. 희망이 필요한 건 우리 사회가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연꽃이 썩은 연못에서 피듯 희망도 절망 속에 핀다. 이제 희망을 얘기할 시간이다.



2. 타지 않은 버스에 관한 이야기



희망버스에 관한 얘기를 할 텐데,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희망버스를 타지 못했다. 갓 돌을 지난 아이를 데리고 희망버스를 타기엔 여유가 없었다. 경험하거나 목격하지 않은 사건에 관해 말을 꺼내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고향이 부산이고 영도는 내가 힘겹게 고등학교 시기를 버티던 장소였다. 한진중공업은 당시 내 아지트였던 태종대에 가기 위해 지나쳐야만 했던 곳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그 곳 사람들, 그 곳 지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사실 직접 경험하면 알게 될 만한 이야기를 경험하지도 못한 내가 간접적으로 얘기한다는 건 꽤나 주제넘은 짓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희망버스 참가기가 아니라 희망버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망버스를 달리게 하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나도 궁금했다.


타보지 않았기에 버스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사람들이 만든 『깔깔깔 희망의 버스』(후마니타스, 2011년)를 읽으며 웃음은커녕 눈시울만 붉혔다. 시인의 예찬이 없어도 그동안 집회현장, 추모집회에서 발표된 김진숙 씨의 말과 글은 이미 한 편의 문학이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희극을 예감하는 사람을 보며 나는 깔깔깔 웃을 수 없었다. 어느 대목에서 깔깔깔 웃어야 할지 좀 난감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타지 않은 버스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들이 언론에 기고하거나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들을 검색해서 읽어봤다. 그러면서 희망버스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러 떠난 사람들이 있었고 직접 부산으로 가지는 못했어도 각지에서 희망을 지지하고 보살폈던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희망버스는 부산으로 떠난 버스가 아니라 부산에서 전국으로 떠난 버스였던 셈이다.


인터넷에서 접한 대부분의 글들은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그 희망을 일깨워준 소금꽃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1박 2일을 내어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 그들에게 온갖 물건과 마음을 건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1만 명 이상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문과 잡지들이 앞을 다투어 특집을 기획했고 다양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그런 얘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영의정 버스(청소년 활동가들의 버스), 퀴어버스, 장애인연대버스, 농민-노동자 연대버스가 등장했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숨어야 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손을 잡는 건 어떤 모순과 비판꺼리가 있더라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단지 위로하거나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서로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개인이든, 단체이든)의 수가 늘어난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시국회의와 만민공동회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말과 생각을 나눌 뿐 아니라, 양말을 나누고 밥을 나누고 약을 나누고 음악과 미술, 웃음과 눈물을 나눴다. 무한경쟁의 시대, 자기 앞가림만 강요하는 시대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뭔가를 나눈 기억은 우리가 존엄한 사람으로 살도록 도울 것이다. 사실 그동안 어느 집회장을 가든 그런 나눔은 하나의 문화였지만 이제 그 나눔이 일상을 집회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희망버스를 욕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몸소 부산으로 내려가 간만에 완장 차고 어깨에 힘준 어버이연합도 있고, 똥오줌 못 가리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종북좌파, 빨갱이 색출에 여념이 없는 구국시민들도 있고, ‘영도주민’이라며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인터넷 댓글에 자주 등장했다(내가 영도주민이라도 제법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영도 주민일까?). 어쨌거나 그들도 자신이 존재해야 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는 이들보다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든 사람들은 희망버스를 ‘타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버스를 못타 못내 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희망버스를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있었다(내 눈엔 비아냥으로 보였다). 스머프 마을의 똘똘이 스머프를 보는 느낌이랄까. 사람들은 분주히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가르치고 충고하려 드는 불편한 사람들. 눈 앞의 사람에게 직접 묻지 않고 몇 푼의 얄팍한 지식에만 의존하려는 사람들.


단지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보며 90년대 초반의 고백논쟁을 떠올렸다. 당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과 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일했던 신지호 씨는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글로 고백운동(?)의 테이프를 끊었다(그는 얼마 전 폭탄주 음주토론으로 술 먹으면 말 더 잘한다는 상식을 굳이 몸소 증명했다). 그 뒤로 운동권이었다는 사람들의 간증이 이어졌고 그 사람들이 지금은 뉴라이트라는 기괴한 이권모임(이념모임이 아니다!)을 꾸리고 있다. 희망버스를 비아냥대는 이들의 행보는 이런 과거와 다를까?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은 2011년 8월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조선산업의 문제이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조선사업의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을 잘 아는 노조의 합의와 판단을” 김진숙씨가 “시민들의 상식에서 동떨어져” 무시하고 있고, 조남호 회장이 무리하게 경영하지 않았는데도 진보가 이런 판단을 계속 무시한다면 “국민 다수와 대부분의 기업주들은 진보의 집권을 ‘한국의 재앙’이자 ‘절망’으로 여기지 않겠는가”라고 그는 물었다. 아울러 “정리해고 없는 세상은 사회주의”이고 “‘정리해고 철폐’라는 우상을 숭배해선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2010년 제주인권회의에서도 이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참 불편했는데 그 때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이 인터뷰를 보며 왜 그가 ‘진보논객’이라 불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 운동경력이 있으면 모두 진보라 불려야 할까? 그러면 김문수나 신지호, 이재호 씨도 모두 진보정치인이라 불러야 한다(그렇게 부르면 아마도 보수를 자처하는 그 사람들은 화를 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진보가 참으로 가볍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 치 혀에 진보가 놀아날 수 있다면, 나는 진보를 버리고 싶다. 그리고 집권을 위해서 진보가 현실과 타협을 한다면, 그런 진보가 집권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진보가 망하는 걸 나는 기다리겠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겨레신문》과의 2011년 8월 4일 인터뷰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희망버스는 정리해고 철폐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외치고 있다”며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주장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방송통신대 김기원 교수의 말도 불편했다. 그의 진심이 김대호 소장보다는 조금 더 우리 사회에 닿아 있음을 알지만 회사 쪽과 함께 대책을 찾아봐야 한다는 얘기는 참 한가로운 얘기로 들렸다. 그렇게 함께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면 누가 높은 크레인에 오르겠는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공리(公理)는 현실과 상식이라는 말로 재단될 수 없다. 한국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비현실과 비상식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을 어찌 현실이라 부를까. 노동운동이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 어렵사리 마련한 복수노조 허용방침은 허용 이후 불과 한 달만에 322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지는 쾌거(?)를 이뤘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졌다니 기뻐할 일이지만 이 노조들 중 대부분의 노조가 회사 측이 만든 노조라고 한다(대표적인 것이 삼성 에버랜드의 노동조합이다).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어렵사리 만든 노동조합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각 대학의 노동자들이 만든 산별노조는 이화여대나 연세대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개별노조에 교섭권을 빼앗길 처지라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상식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경북 구미의 전자부품업체 KEC는 노조의 파업에 맞서 1년이나 직장폐쇄를 한 뒤에, 공장으로 복귀한 노조원들에게 파업가담 정도에 따라 다른 색깔의 티셔츠를 입히고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현실적인 상식을 따라야 할까?


이런 비현실은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다. 노동자에게 해고가 살인이라면, 농민에게는 땅의 포기가 곧 살인이다. 땅 없는 농민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다. 하물며 농민들에게는 올라갈 크레인조차 없다. 허나 농업을 산업으로 보고 취사선택하듯이 이쪽 산업을 저쪽 산업과 거래하는 사람들에게는 땅의 포기가 곧 살인이라는 말도 우상이나 비현실적인 얘기로 들릴 것이다. 자살하는 농민들이 목숨으로 증명하는 공리를 우리는 비현실적이라며 외면해야 할까? 그런 외면이 부메랑처럼 우리의 삶을 파고들지는 않을까? 이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면 우리가 대체 어떤 대안을 얘기할 수 있을까?


기득권층이 좌지우지하는 ‘말로만 공화국’에서 정의로운 공리는 불가능한 것을 상상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희망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의 상상에 맞서는 정의로운 상상이다.


나는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 텃밭을 만들고 식물을 키운다는 얘기를 들으며 감탄 또 감탄을 했다. 고공에서도 지상에서의 삶이 이어질 뿐 아니라 그곳이 지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사회운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3. 위로와 희망의 사회운동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촛불집회나 희망버스를 보며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분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 등을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분리보다 일터와 삶터의 분리, 일상과 제도의 분리, 활동가와 시민의 분리, 그로 인한 운동의 선택과 집중전략이 더욱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은 그 시작부터 전문가 중심이었고, 노동운동은 80년대부터 대기업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이었다. 이것은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문제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부진이 시민들의 능동성을 강화시켰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운동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채우지 못한 부분을 시민들이 직접 채우려 뛰어들고, 운동이 주목하지 않던 주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나 지식인들처럼 거시적인 전망이나 정책을 제안하지는 못하지만 시민들은 어떤 사건에 공감하거나 분노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공감과 분노, 직접행동이야말로 사회를 달구는 군불이다. 이렇게 보면 시민사회운동과 시민의 직접행동이 서로를 멀리할 이유는 없고 외려 서로 끌고 당기며 돌봐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득권층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시민과 운동을 이간질한다. 기득권층이 공격하는 건 시민사회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관심을 둔 시민들의 마음이다. 경찰의 방패와 캡사이신이 공격하는 건 정의로운 장에 서려는 시민들의 의지이다.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기득권층만이 아니다. 촛불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반짝하고 불타올랐다 수그러드는 건 사건 속의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사건에 콩놔라 팥놔라 훈수두기 좋아하는 지식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고 지금도 그렇다(지식인들이 할 역할은 훈수가 아니라 참여이다).


시민들의 직접행동은 시민사회운동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고 사실 대체는 불가능하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전업 활동가로 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직업적인 시민사회운동의 노하우와 조직력은 시민들에게 부족한 힘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에 조직운동이 둔감해진 일상의 영역을 시민들의 직접행동은 활성화시킬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이 일상을 제도화하고 시민의 직접행동이 제도가 일상으로 스며들도록 발판을 마련한다면, 이렇게 서로가 상대방의 활동에 주목하며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모두의 힘이 강해질 수 있다.


시간 되면 뛰어들었다 시간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는 건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없는 ‘공백’을 메워주고 ‘전망’을 제안하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역할은 중요하다. 따라서 그런 단체들의 힘이 빠지지 않도록, 국가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줘야 한다. 하루에 밥 한 숟갈씩, 일주일에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그렇게 모은 정성은 단체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인권센터를 짓는데 힘을 보태고 사회적 파업기금을 모으고 강정마을 후원주점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서 이미 그런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배우 김꽃비와 제작자 김조광수, 감독 여균동이 보여준 ‘I ♡ CT85, GANG JUNG’의 퍼포먼스도 그런 선언이 아닐까? 그에 앞섰던 배우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와 영화보다 우리 현실이 더 드라마같고 영화같다는 점을 배우와 감독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연대는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어 왔고 더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희망버스를 ‘촛불의 진화’라고 부르는 게 좀 불편하다. 왜냐하면 진화라는 말은 발전이라는 말처럼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버스는 진화가 아니라 ‘개화’이다. 희망버스는 더 이상 그들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외면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이다.


죽은 그가 나일수도 있음을, 크레인에 들려진 사람이 나의 친구, 나의 형제․자매, 나의 부모․자식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싹을 틔울 수 없다. 희망버스는 권력과 자본이 만든 경계를 허물고 “그가 나일 수 있다”고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선언하도록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다시 ‘공통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모든 차이를 무로 만드는 공통성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서의 공통성. 나는 당신과 다르다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공통성, 그렇기에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 유럽의 ‘브뤼셀 아고라’, 뉴욕의 ‘제너럴 어셈블리’, 한국의 ‘희망버스’는 그런 공통성과 깨달음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선언은 확산되고 계속 소통되고 있다. 여전히 신문이나 TV는 이런 선언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타고 소식은 돈다. 주류 언론매체는 여전히 이권에 목을 매고 있지만 사람들의 대화는 늘어나고 수다스러워지고 있다. 김진숙씨가 핸드폰을 들고 크레인에 오른 것도 김주익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희망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이 글을 쓰다 몇 년 만에 아는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부산에서 경찰로 일한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둘째 얘기가 나왔다. 희망버스를 막고 대기하는 일을 하다 아이가 유산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을 해줄까 단어를 찾았지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희망버스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는 글을 쓸지라도 아이를 잃은 동생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문제도 동생의 문제도, 시민과 경찰의 문제도 아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비극을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으니 우리의 탓이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비극은 소리없이 찾아와 희망을 비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세심하게 서로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함께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함께할 사람, 함께 하고픈 사람에게로 연대가 넓어질 수 있다.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건 충고나 동정이 아니라 ‘위로’이다. 힘을 가진 자들의 사회는 위로를 나약하다 말하지만 자신을 약하다 생각하지 않고 타자를 동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누는 위로는 결코 약하지 않다. 위로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를 덜고 같이 일어설 수 있게 한다.


얼마 전 루시드폴의 노래 ‘고등어’를 우연히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눈 감지 않고 따뜻하게 손 잡으며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라고 얘기하는 연대만큼 강한 것이 있을까?


나는 ‘결사항전’, ‘사수’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결의를 보여주기에 좋은 말이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을 제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크레인에 오르는 운동도 필요하지만 크레인에 오른 사람을 살아 내려오게 하는 운동도 필요하다. 지지하고 격려하는 운동도 필요하지만 위로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운동도 필요하다.


김진숙 씨는 크레인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주익 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주익 씨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주익 씨가 살아생전 마지막 봤던 세상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도록 제가 가진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 힘에 우리의 힘을 보태야 한다. 날마다 내려오는 연습을 하는 그 사람이 살아 내려올 수 있도록.




4. 파란 나라와 빨간 나라



우리 아이는 지금 15개월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지금 현재만큼 미래가 걱정이다. 일본 대지진에 이어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고를 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전 세계적인 탈핵 움직임에도 원자력 르네상스를 부르짖는 이상한 나라, 핵발전소의 고장이 잇따르는데도 괜찮다며 안심하라고 강요하는 나라, 사계절은 옛말이고 열대 폭우가 내리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아이랑 같이 ‘뽀로로와 함께 노래해요’를 자주 본다. 동요가 쭉 나오는데 그 중엔 ‘파란나라’라는 동요도 있다. 대학 때는 이 노래를 ‘빨란 나라’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색깔이야 빨갛든, 파랗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노래가사처럼 우리가 한번 해 보고 온 세상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바꿔갈 수 있다면.


사실 온 세상이 한 가지 색깔만 가져야 한다는 건 끔찍한 상상이다. 색깔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손을 잡고 어떤 나라를 상상하고 그 나라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점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1.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강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 계약서도 없이 1년 마다 재계약을 하는 이상한 신분의 노동자이다. 대학이 O15B나 토이도 아닌데 객원교수라니... 정리해고, 산업재해,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이상한 ‘공장’ 대학에서 일한다. 그런 신분이니만큼 눈치도 보지 않고 쓸데없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지만 불안감은 어쩔 수 없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더욱더 그렇다. 한국의 대학이 변할 수 있을까? 큰 기대는 없다. 나는 동네의 도서관에서 반상근으로 일을 한다. 몇 년 전 강의를 했던 도서관의 인상이 강해서 그 동네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동네 청년들 멘토를 하다, 도서관의 이런저런 일에 한발가락씩 담그다,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 도서관에 어떤 책을 꽂고 어떤 책을 뺄지, 도서관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내 몫이다. 재밌는 일은 일로 하지 말라는데 살다보니 일로 해도 재밌는 일도 있다. 매달 후원하는 단체를 세어보니 15개 정도 된다. 매달 30만원 정도를 회비로 낸다. 회비만 내지 않고 운영위원을 맡거나 이런저런 일을 돕는 단체들도 몇 되지만 회비와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는 단체들이 더 많다. 간혹 술 한잔 나누며 얘기도 나누고픈 활동가들도 많다. 사정이 어려워서 후원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알바도 종종 뛴다. [본문으로]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에서 아래의 사진을 봤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각지에서 측정된 세슘의 양이란다.
평년과 금년의 수치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슘의 반감기는 30년.
세슘을 마시며 살아야 하나.

바로 옆 나라 한국은 무조건 안전하니 안심하란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진정 파국이다.
'닥치고 정치'라는 구호만큼 절실한 구호는 '닥치고 반핵'이다.

일본에서도 녹색당이 창당될 것 같은데, 한국에서도 곧 녹색당이 창당될 것 같다.
반핵을 중심으로...
원자력과 反민주주의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만큼, 반핵이 가능하려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인 구조 모두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가자...
우리는 중앙집중화된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인식은 시대가 정한 에피스테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중앙화된 것에 저항하는 지역화되고 경험적인 지식, 메티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방에 있는 출판사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대구에서 '한티재'라는 출판사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마도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과 무관하지 않을 출판사 이름이다.
[녹색평론]을 편집하던 팀이 대구에 남아 출판사를 꾸렸다.
대구에 가면 꼭 한번 들리고 싶은 '물레책방'과 더불어 지방에서 새싹을 틔우고 있다.
[근대의 아틀리에: 대구 근대미술 산책], [인문학을 만나다: 대구경북지역의 자생적 인문학 커뮤니티를 찾아서], [우리 시대의 몸/삶/죽음]에 이어 [비아캄페시나]를 출간했다.

예전에 변홍철 선생님이 서울에 왔을 때 잠깐 만나기도 했는데...
예상대로, 기대만큼 좋은 책을 출간하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비아캄페시나]는 무척 중요한 책이다.
"비아캄페시나는 부정의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산과 무역의 모델을 바꾸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소작농과 농민들은 남북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재정적, 사회적, 문화적 위기로 고통 받는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건 우리는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농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에 노력해야 한다. 소작농과 소농인 우리에게 패배는 없다. 우리는 강력하고 단호하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다수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들과 인류를 위해 안전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생명과 문화 양자 모두의 다양성을 소중히 여긴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 2000년 10월 3일 비아캄페시나의 '방갈로르 선언'"
이 선언에 비아캄페시나의 정체가 드러난다.
'한티재'이기에 이 책을 다룰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게 수도권으로 집중된 우리 사회에서, 지방의 출판사들이 하나씩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한티재'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우리 사회의 메티스를 지켰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원고를 청탁받은 부산의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그런 메티스의 보고이다.
왠만하면 지방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원고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프레시안'에서 서평을 청탁받은 [작은 것들의 정치]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원제는 The politics of Small Things: The power of the powerless in dark times 이다.
번역된 제목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과 관련이 있을까?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만 해야 할텐데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겠다.
번역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 기대도 크다.


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3과목을 진행하고 있다.
나의 대학생활 멘토는 현미선생이다.
낮은산출판사의 정우진씨가 보내준 만화책, 읽는 순간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선생이구나...
입과 말이 아니라 몸과 먹거리로 묵묵히 자신의 뜻을 알려주는...
찾아서 읽게 되는 만화책이다.
현미선생의 삶 역시 메티스의 체현이다.

나는 메티스를 품은 지식인으로 살고 있는가?
반성하게 되는 하루이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다.

한 권은 내가 잠깐 들린 '현장'에서 언제나 '살고 있던' 조약골이 쓴 [운동권 셀레브리티](텍스트, 2011)이다.

용산의 레아, 홍대의 두리반, 강정마을, 내가 몇 시간 남짓 들린 곳에서 조약골은 살고 있다.
이 책은 그의 활동과 음악,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좀처럼 듣기 어려운 그의 과거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좀 궁금하긴 하지만 제목과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다.
나중에 본격적인 서평을 한번 쓰겠지만 아쉬움은 '거리'이다.
자서전 형식의 글이 삶과 거리를 두긴 어렵겠지만 현장에서 사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 담겨있었으면 훨씬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쉽다.
그 치열한 현장이 날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의 시선만으로 정리되어 아쉽다.

다른 한 권은 내가 좋아하는 길동무이며 탁월한 문화비평가인 문강형준이 쓴 [파국의 지형학](자음과 모음, 2011)이다.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인데 그가 미국에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얼마나 열심히 읽고 듣고 보고 정리하며 사는지를, 미국에서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이곳과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사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아쉬운 점은 그의 글에 '현장'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보고 읽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드러내고 해부하지만, 현장에 사는 사람이라면 묵직한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얘기들이 길게 부연설명된다.
그가 한국에 돌아올 날을 기대하게 되는 건 그에게 다시 현장이 주어졌을 때 폭발할 날카로움 때문이다.

독자이기에 가능한 상상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이 하나로 섞이면, 현장과 비평이 하나로 섞이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듯 싶다.
아직 기대할 게 많은 사람들이기에 아쉽지는 않다.

김중미씨가 문정현 신부님의 구술을 받아 쓴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떠나다](낮은산, 2011), [에코토피아]를 쓴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가 쓴 [추첨민주주의](이매진, 2011)도 곁들여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아카이브 출판사가 보내 준 사진집 [사람을 보라](아카이브, 2001)는 감동적이다. 우리의 일상을 깨고 들어오는..

스테판 하딩의 [지구의 노래](현암사, 2011)와 에메 세제르의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그린비, 2011)을 읽고 있는데 묵직한 느낌이다(그런데 66페이지에 불과한 세제르의 책은 가격이 만원이다. 꽤나 어이가 없는 가격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루시드폴이 부른 ‘고등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고등어라는 존재가 주는 감동보다 그 존재를 바라보는 가수의 시선 때문이다. 고등어를 보며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 걸”라고 노래하는 김창완의 시선과는 또 다른 따뜻함과 공감이 가사에 묻어난다.


어쩌면 사회운동, 인권운동도 고등어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쳐 가는 튼튼한 지느러미.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배불리 먹는 삶을 위해 자기를 아끼지 않고 바다를 가르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는 위안을 얻을 것이다.


허나 고등어가 단지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 나름의 삶이 있고 꿈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생을 투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해방이나 변혁이라는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 꿈과 소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설명되지 않는 꿈과 소망에 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현?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움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했다는 환호를 나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믿어서도 아니고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는 말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새로운 것의 등장을 기대하지만 그 새로움이 아무런 기반 없이 출현했다고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이 태어난다. 사상가 아렌트(H. Arendt)가 말한 ‘탄생성(natality)’의 의미처럼,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류 자체(human beings)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이 태어난 인간은 이미 태어난 사람과 세계(world)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전 세계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한 완전한 새로움은 없다. 특히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사회운동이 그런 새로움을 취하기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나는 믿는다.


예전에는 새로움에 들뜨는 분위기를 단지 갈망이라 생각했다. 워낙 현실이 갑갑하니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나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흥분이라 여겼다.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환호는 그 새로운 것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의도로 느껴진다. 특히 지식인들에게서 그런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이라며 이전과 다른 양식을 만들고 그것을 설명하고 주도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욕망이 개입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움에 대한 환호를 언제나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나 희망버스는 분명 기존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운동이다. 하지만 보기 어려웠던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권력과 자본에 맞섰던 수많은 사건들을 찾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방법은 새로워지겠지만 그 뜻과 과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예를 들어 1924년의 암태도 소작쟁의는 최초의 소작쟁의이자 성공적인 쟁의로 불린다. 부조리한 소작료를 거부하는 불납동맹이 결성되고, 지주측이 이를 탄압하고 식민경찰이 간부들을 구속시키자 소작인들은 면민대회를 열고 저항에 나섰다. 이들은 소작인들이 구속된 목표경찰서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몰려갔고 석방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굶어죽겠다고 결의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굶어죽기를 각오한 아사동맹이 4일을 넘기자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변호사들이 변호를 자처했다.


작가 송기숙은 소설 《암태도》에서 당시 소작인들의 고민을 글로 복원했다. “요새 세상에는 싸운다는 것이 그냥 버티는 이렇게 버티는 것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버티면서 또 한쪽으로는 신문으로 세상에다 대고 왜장을 치고, 양수겹장으로 몰아쳐야 해요. 개명한 세상에 산다는 것이 뭡니까? 연락선 놔두고 풍선 타고 다니던 생각만 하면 그만치 세상에서 뒤떨어지는 것이 됩니다.…옛날 동학난리 때도 요새같이 신문만 있었더라면 일이 그렇게 전라도 쪽에서만 일어나다 말지는…….” 기술은 달라졌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건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사람들을 동요시키던 논의꺼리도 변하지 않았다.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은 투쟁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관해 회의를 열며 이렇게 얘기한다. “저자들하고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부애난다고 혹시라도 저 작자들한테 손을 대서는 큰일납니다. 악담은 얼마든지 퍼부어도 좋지만 손을 대서는 절대로 안돼요. 혹시 저쪽에서 먼저 손을 대더라도 그냥 맞아요. 저놈들은 내중에 가서는 이쪽에서 그렇게 손을 대도록 수를 쓸지도 모릅니다. 경찰을 불러들일 언턱거리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애난다고 때리는 것은 저자들 수에 말려드는 것이고, 같이 치고 맞더라도 경찰을 불러들일 구실이 되기는 마찬가지니까 결국 이 쪽이 지는 것입니다. 이 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1924년의 일이니 무려 87년 전이다. 허나 지금의 상황과 얼마나 비슷한가?


암태도 소작쟁의 당시 소작인들이 내세웠던 조건은 잡혀간 소작인들의 석방과 소작료율을 7, 8할에서 4할로 내리는 것이었다. 당시 5, 6할을 하던 소작료를 4할로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납동맹, 아사동맹을 각오했던 암태도민의 저항은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지주측은 소작료율 인하와 함께 2,000원이라는 큰 돈을 소작인들에게 기부해야 했다. 희망버스와 관련해 불가능한 요구라니, 산업계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느니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1919년 3․1운동 때 사람들이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는 불가능한 구호였다. 어쩌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보다 훨씬 더 실현 불가능한 구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그 구호를 외친 수십만 명의 민중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지금처럼 조직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구호에 자신의 불만과 꿈을 걸었다. 구호는 하나였지만 그 속엔 민중들의 다양한 소망과 꿈이 담겨 있었다. 일제 관리의 못된 행동에 대한 불만, 무거운 세금과 부역에 대한 불만, 인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정책에 대한 분노, 강제로 묘목을 심게 하는 것에 대한 분노, 독립된 삶을 살고자 하는 꿈, 공동체와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꿈 등이 그 구호에 뒤섞였다.


그 불가능한 구호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 다양한 꿈들을 담을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운동경력이 화려하고 오래 되었다고 한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들, 아무리 대단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한들, 하나의 구호로 터져 나오는 그 수많은 꿈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수많은 시민의 이름을 팔아도 그는 홀로 있는 자일 뿐이다. 홀로 있는 자는 운동을 하는 자가 아니다.



운동과 정서, 연대



나는 문제를 추상화시키면서 자신들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관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사회를 바꾸는데 어찌 모범답안이나 정답이 있을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는 반갑지만 옳다, 그르다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밥맛이다. 누구나 훈수를 둘 수 있지만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정답이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운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당연히 이념과 조직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인적․물적 자원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단체도 필요하고, 그런 단체가 내세우는 이념도 중요하다. 그런데 관변단체가 폭넓게 퍼져있고 노동조합과 같은 기본조직조차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이념이나 단체의 힘으로만 구성되기 어렵다. 만일 이념이나 조직만이 문제라면 김대호나 김기원이 지적했던 조선산업계의 동향이나 실현가능한 정책이 중요할 수 있다. 허나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식민지 시기 농민운동과 관련된 책을 뒤적이다 재미있는 구절을 봤다. 3․1운동 당시 “주변 마을이 다 하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른바 ‘체면시위’라는 것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체면시위의 규모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체면이라는 것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이다.


지금 우리라고 해서 다를까? 집회 때마다 나부끼는 깃발도 어느 정도는 그런 체면을 상징한다. 그리고 ‘나도 그곳에 있었다’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인증’욕구도 그런 체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체면 차리기’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체면을 세우려 드는 건 아니고 체면이 밥 먹여주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체면을 생각한다면 평화를 깨고 남의 삶터에 침입하는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고, 어른의 멱살을 잡는 용역깡패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체면을 세우려는 용기는 품위있는 사회를 만든다. 단 하루라도 품위있게 살고자 하는 체면이 하루하루의 일상이 될 때 운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한 분노나 공감도 사람들을 움직인다. 한 사람이 129일 동안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외쳤건만 기업과 세상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 목소리를 무시했고 그 사실에 사람들은 분노했다(그 사연을 소개한 故정은임 아나운서의 멘트가 아직도 인터넷을 떠다닌다).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보면 1991년 5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분노했다. 그러니 지금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김진숙의 어깨 위엔 여러 사람들의 짐과 꿈들이 실려 있다.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하는 건, 냉정하게 이성을 차리고 이해관계를 따지자고 얘기하는 건 그 분노의 원인을 인정하지 않는 위선이다. 그 속에는 공감하지 않고 타자의 꿈을 배제하려는 폭력의 싹이 똬리를 틀고 있다. 반면에 공감이나 정서를 담은 합리성은 삶의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그런 합리성에 바탕을 둔 위로의 마음도 사람들을 움직인다. 누군가는 크레인 위에 올라 있어야 희망버스가 출발할 수 있다. 그 누군가가 꼭 나일 필요는 없지만 그 버거운 짐을, 자신의 다른 소망과 꿈을 포기하고 그 짐을 지려는 사람을 위로하고픈 마음. 평생을 투사로 싸워주길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이가 삶을 선택할 수 있고 때론 쉴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홀로 크레인에 올라간 이를 보며 우리가 건네고 싶은 그 많은 말들이 희망버스로 이어졌을 것이다. 먼 발치에서나마 그 얼굴 한번 보고 건강하세요, 꼭 이기세요, 라고 말하고픈 그 맘이, 나도 힘들지만 함께 힘을 내요, 라고 말하고픈 그 공감이 희망버스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또 다른 현장에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이 당신의 승리로 우리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연대의 마음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희망버스의 희망은 하나일 수 없다.


그런데 소위 ‘운동권’은 위로에 인색하다. 고맙다, 수고했다며 손 한번 꼭 쥐어주고 등 한번 두드려주면 될 텐데 그런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 운동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운동을 책임졌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앞서 루시드폴의 ‘고등어’라는 노래를 얘기했는데, 그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위로는 동정이 아니다. 고맙고 수고했다고 얘기하는 게 어찌 동정일까. 동정은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만 위로는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 즉 같이 아파하는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이 우리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퍼진 것이 위로이니 위로는 서로의 마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연결시킨다. 위로는 계속 꿈을 꾸자며 서로를 다독인다. 서로에 대한 위로 없이 연대가 가능할까?



다양한 삶과 꿈이 만나는 장



2008년 촛불집회 때 참여자들이 이랜드나 비정규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운동의 한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같은 논리로 따지면 지금 희망버스를 보며 버스가 고리핵발전소로 가지 않는다, 포이동으로 가지 않는다며 볼멘소리가 나야와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노동이슈가 다른 모든 사안보다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하나의 꿈을 서로에게 강요하는데, 이 꿈이 다른 꿈보다 앞선다며 설득하는데 익숙하다. 힘들 때 서로를 위로하기보다는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데 익숙하다. 조그만 차이도 불편해하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한다. 대화와 토론은 서로의 꿈과 소망을 나누는 게 아니라 내 꿈과 소망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만 들으니 아무리 토론을 많이 해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노동이슈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꿈을 꿀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어찌 노동으로만 정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꿈이 열심히 일만 하는 사회도 아니고. 그러니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꿈이 다양한 사건들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의 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 시기라고 얘기하지 말고 내 앞만이 아니라 다른 운동의 앞도 봐야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이야말로 농민운동과 노동자운동이 만나야 할 때이다. 도시에서 계속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하며 살아라가 아니라 농촌에서 땅을 일구며 살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노동운동의 중요한 이슈는 땅과 종자를 지키는 농민운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빈민이나 노동자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농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의 조건은 농민운동의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자의 일상이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생활공간에서도 이루어지니 노동운동과 주민운동, 풀뿌리운동의 거리도 멀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바라볼 때 조금 더 자세를 낮추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진숙 역시 이렇게 얘기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애 처음 민들레를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글이 마지막 연재이다. 그동안 심심한 글을 참고 읽어준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참고한 글

김진숙,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년)

송기숙, 『암태도』(창작과비평사, 1981년)


얼마전 옥천신문에서 강의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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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지방은 식민지일까? 식민지라면 누구의 식민지일까? 서울공화국, 서울제국의 식민지? 그렇다면 지방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서울공화국이나 서울제국에서 파견된 관리들이어야 하는데, 비틀거리긴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조건 그렇게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역의 토호들이 중앙권력과 결탁하지만 그 관계를 하나의 위계질서로 파악하긴 어렵다.


그리고  지역간 불균등 발전은 국가의 의도일 뿐 아니라 자본(재벌)의 의도이기도 하다. 자본은 새로운 시장과 자원, 노동력, 생산입지를 찾아 이동하고,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나오듯 재벌들은 부동산 위기 때마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겨왔다. 자본은 자신에게 유리한 입지를 조성하고 그곳을 개발하고 다른 곳을 뒤처지게 만들어 이익을 취해 왔다. 그러니 식민지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긴 어렵다.


그럼에도 ‘내부 식민지’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앞으로 진행될 방향을 보여주는 것보다 지금까지 흘러온 방향을 분석하는데 유용하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과 자원을 빨아들이며 지방을 황폐화시키는 블랙홀같은 수도권이 실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방자치제도의 실시와 균형발전논리에도 아직 중앙집권형 국가와 소수 재벌의 결탁구조, 중앙과 지방의 기득권층이 서로의 뒤를 봐주는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식민성이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부 식민지’라는 개념을 쓸 때의 분명한 장점이 있다.


다만 식민지라는 표현을 쓰려면 그것이 만들어진 역사와 식민지를 관리하는 주체, 식민지를 관리하는 방식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많지 않다. 이 글은 그것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




1. 식민지 경험은 사라졌을까?



일제 식민지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갔을까? 보통 ‘국권의 상실’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일본의 지배는 국권보다 더 중요한 삶의 권리를 앗아갔다. 그것은 바로 ‘주권의 상실’이다. 세금과 밀접하게 연관된 관료제도와 상비군을 갖춘 근대국가 자체가 시민의 주권을 빼앗는다고 볼 수 있지만 식민지에서는 그런 변화가 전통과의 ‘단절’로 나타난다.


과거 전통사회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킬 이유는 없다. 다만 단절이 정체성과 자존감의 상실을 가져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식민지 상황에서는 이런 단절이 폭력을 동반한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파괴, 사적 소유권의 폭력적인 강제, 법과 규칙의 강요가 바로 그 폭력이다. 한국의 농민공동체는 파괴되고 마을의 공유는 압수되었고 일상생활을 구속하는 온갖 법률이 강요되었다. 자연스럽게 관(官)과 민(民)은 분리되었고,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사고방식이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중앙의 국가권력에서 가부장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다.


이런 위계질서 속에서 한국사회는 지극히 획일화되고 단순화되었다.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일제 식민권력은 한국을 일본경제에 종속시켰다. 일본에 쌀을 공급하기 위해 벼농사가 강요되었고, 일본의 공장에 필요한 원료작물(면화 등)의 생산이 강요되었다. 무엇을 심고 무엇을 생산할지를 식민권력이 결정했다. 식민권력과 결탁한 자본만이 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대다수 민중은 자기 삶의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식민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강한 힘을 숭상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자연스런 원리로 받아들인다. 이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폭력적인 감정을 주민들에게 심었다. 강한 것이 미덕이고 강해지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는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또 하나 식민지 권력은 주민들의 단합을 막기 위해 자신을 뒷받침할 단체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다(이들이 지금 지역사회를 장악한 ‘지역토호’의 원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민 갈등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관-민 갈등인 경우가 많았고 이런 폐해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식민지의 경험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식민지 국가들에서 검증되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 2001년)에서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과제가 “식민지배가 초래한 무기력과 상대적 후진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극복할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허나 우리는 이 과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이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조건도 되지 않았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빈곤이라는 것이 현재의 조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면 이런 식민지의 경험은 과거와의 고리를 끊고 미래를 봉쇄해서 현재의 삶을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년)에서 말했듯, “만약 우리가 소득의 빈곤에만 집중하지 않고 능력의 박탈이라는 더 포괄적인 생각으로 전환한다면, 소득 위주의 통계를 비롯한 상이한 정보적 기초를 가지고도 인간의 삶과 자유의 빈곤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소득과 부의 역할은 다른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성공과 박탈의 더 광범위하고 완전한 측면에 통합되어야만 한다.”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킬 기회를 박탈당했다.




2.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형성



이념을 떠나 국가조직을 놓고 본다면, 미군정과 그 이후의 한국정부는 식민지 시절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즉 중앙의 소수권력층이 경찰과 헌병, 군대와 같은 폭력조직을 독점하고 전국을 힘으로 통치했다. 커밍스는 앞의 책에서 미군정이 해방 후 한국에 강력한 경찰국가를 존속시켰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이런 경찰국가가 사적인 폭력의 사용을 눈감아주거나 조장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공권력의 폭력과 사적인 폭력이 약자들을 침묵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이런 폭력은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다른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해 왔다. 중앙의 권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무조건 ‘빨갱이’로 매도당했다. 핵발전소를 반대해도 빨갱이, 정부정책을 따르지 않아도 빨갱이, 국가에 성금을 내지 않아도 빨갱이, 한잔 걸치고 술김에 정부를 비판해도 빨갱이로 몰렸다(지금도 제주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득권층은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부른다). 이런 분위기는 식민성의 영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더욱더 강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수도권은 내부식민지를 만들고 지방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부식민지의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앙집권형 구조를 갖춘 모든 국가에서 드러나는 문제이다. 연방주의에서는 그 문제가 조금 덜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문제는 있다.


역사학자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년)에서 국가가 지배를 위해 사회를 ‘급진적 단순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눈에 “가치 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농작물에 기생하는 벌레는 ‘해충’으로 낙인찍힌다. 또한 가치있는 나무는 ‘목재’가 되는 반면, 이와 경쟁하는 종은 ‘잡목’이 되거나 ‘덤불’쯤으로 여겨진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동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높은 가격이 매겨진 동물은 ‘사냥감’이나 ‘가축’이 되지만 그것과 경쟁하는, 혹은 그것들을 먹이로 삼는 동물은 ‘약탈자’나 ‘야생동물’쯤으로 간주된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진보적으로 믿는 “시민권, 공공위생 프로그램, 사회안전, 교통, 커뮤니케이션, 보편적인 공교육 그리고 법 앞의 평등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모두 국가중심적, 하이 모더니즘적 단순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스콧은 국가가 파괴하고 무시해온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강조한다. 단지 바라보는 사고틀(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다. 스콧은 그동안 ‘하이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이 다양성을 파괴하고 지역적 지식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사람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개인의 자율적인 역량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다시금 과거의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콧의 분석과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지방의 앎과 삶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표준말로 말하고 학교에서 훈련된 국민으로 생각하고 군대나 공장에서 명령받은대로 살아야 했다. 자연히 모든 눈은 국가에만 초점을 맞췄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 노선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의 재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수출전략은 대다수 지방의 희생을 담보로 가능했다. 재벌들에게 유리한 각종 정책이 추진되었고, 노동자/농민은 ‘산업역군’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토의 균형발전은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와 지방으로 단순생산시설/환경파괴시설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재벌 중심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게 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말로는 시장경쟁의 규칙을 얘기하지만 그 규칙이 정해지고 실행되는 방식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정치권력이나 사법권력, 언론권력과 결탁한 재벌들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의 생각은 ‘중앙집권화된 산업화 노선’을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따르고 있다. 어떤 산업화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만 있을 뿐 개발독재를 넘어선 시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제 시기에 식민지 통치를 위해 이루어진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국가의 경제발전전략은 종속성의 늪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력한 ‘개발신화’를 형성했다. 국가가 경제 일반을 총괄하는 대표회사로 기능하며 무엇을 파종하고 심을지까지를 결정했고 농민들은 산업화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런 중앙집권화된 산업화노선은 그것을 신자유주의라 부르든 다른 뜻으로 부르든 지금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복지를 비롯한 사회서비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한국에서도 여전히 국가이다. 시민사회나 제3섹터의 영역이라 불리는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책임 부분도 여전히 국가가 독점하고 있어 ‘관치경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97년 IMF로 외국자본이 대거 한국경제를 잠식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런 부분을 말하지 않고 체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 ‘녹색’마저 이명박 정부에 빼앗긴 ‘소위’ 진보세력이 지금의 체제논쟁에서 선진화를 넘어선 어떤 생태·분권·대안사회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할 뿐이다.


사회학자 고병권은 『추방과 탈주』(그린비, 2009년)에서 이런 우리의 삶을 ‘내부 난민’이라 부른다.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의 ‘이것이 국민 모두가 살 길’이라는 식의 수사는 소위 비국민의 삶을 사는 이들의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는 외침과 대칭을 이룬다. 국가권력이 적극적 육성대상으로 삼은 인구에서 탈락한 이들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이고 국가가 떠안아야 할 비용으로 인식될 것이다. 바로 자기 나라 안에 있으면서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 줄 정부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나는 ‘내부 난민’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내부 식민지’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정말 난민처럼 떠돌고 있지 않은가.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지방민의 삶은 내부 난민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3. 빈곤과 자급, 자치



이란의 작가 마지드 라흐네마(Majid Rahnema)는 『反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년)에서 빈곤의 반대말이 부유함이 아니라 세도가라고 얘기한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pauper 곧 빈민의 대립항을 부자로 본 것이 아니라 potens 곧 세도가로 보았다. 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빈민은 자유인으로 여겨졌고 그의 자유는 오직 세도가에 의해서만 위협받는다고 여겨졌다. 11세기의 평화운동 문헌을 보면 빈민은 inermis 곧 비무장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miles 곧 군인의 무력을 존경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난이라는 말은 alleu 곧 면세 부동산이 조금밖에 없는 사람, 떠돌이 장사꾼, 심지어 호위받지 못하는 기사의 아내를 포함한 모든 비전투원에게 쓸 수 있는 말이었다. 대체로 빈자는 그저 ‘안전한 보금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지경에 놓인 사람이었을 뿐이었지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빈자가 사회 무대에 나타났다. 박탈당한 사람,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처럼 살아가리로 일부러 선택한 자발적 빈자였다.” 라흐네마의 말에 따르면, 빈곤은 특정한 문명의 발명품이자 강요된 정체성이다.


라흐네마는 빈곤에서 벗어날 방법이 “
금욕주의나 수도사의 생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없이는 진정한 뜻에서 인간관계가 불가능한, 존재의 총체적이고 자비로운 차원을 모든 사람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 “공생의 빈곤이라는 더 높은 형식의 융성이 ‘더 많은 소유’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많은 존재’를 누리는 데서 기쁨을 얻는 다양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마지막 희망으로 나타날 것”이라 주장한다.

이것은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운동, 자치와 자급, 생활정치,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우리말로 풀이될 수 있다. 라흐네마의 얘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관점의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국가의 민주화와 시장의 사회화, 주권의 분권화, 자치와 자급의 삶이 분리된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복잡한 이론의 과제나 강력한 세력의 과제라고 믿지 않는다. 이 과제는 지식인이나 정치인, 기업가의 몫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몫이다. 지금 당장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나 권력과 자본의 속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어떤 관점의 변화가 필요할까? 일단은 우리 몫을 되찾아야 한다. 국가에만 맞춰져 있는 우리의 시선을 지방정부로 돌려야 한다. 국가의 일에 무관심하라는 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지방정부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적어도 중앙정부의 권력보다 지방정부의 권력이 더 통제하기 쉽고 통제할 수 있는 방법도 더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세금을 더 내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국세의 비중이 아니라 지방세의 비중을 늘려 국세와 지방세의 균형을 잡고 지역의 힘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가진 건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자산이다. 헛되이 사용되는 자산이 없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을 밟아 예산이 집행되고 지방정부의 자산이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와 같은 제도의 시행이 중요하지만 이를 중간에서 매개하는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


쓰지 않고 버려지는 땅이나 건물 역시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루, 2009년)은 시사적이다. 빈 건물의 공간을 개조해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재활용 가게를 운영하는 하지메는 이렇게 얘기한다. “개인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내서 생활하는 것에 비해 가게를 통해 마을에서 공동체를 조직하면 훨씬 다양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우선 어중이떠중이가 모이면 공공의 재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신명이라도 나면 공공시설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두자. 우리 가난뱅이, 얼간이, 오합지졸은 이제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결탁해서 무언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동네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가난뱅이 천지인데도 왠지 한 사람 한 사람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시시껄렁하게 뼛골 빼먹는 직장에서 일만 죽도록 하거나 중류 계급인 척하면서 번화한 중심가로 놀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뱅이 제군!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자. 바가지 씌우려고 눈이 벌건 놈들이나 부자들이 덫을 쳐둔 장소에 갈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짱 좋은 것을 만들어보자구.…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공방(工房)이다. 무엇보다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이것저것 공구나 설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여간 쓸모가 없지 않다. 재활용 가게만 해도 가구를 수리하거나 개조하고 두들겨 부수어야 하므로 적당한 장소가 필요하다.…모두 공동으로 출자하여 만든 시설이므로 기본적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니까 돼먹지 못하게 쓸데없는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다. 게다가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면 최고 아닌가.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에서 신나는 일을 벌인다면 동네의 문화 수준이 한층 올라갈 것이다. 하아, 좋다, 좋아!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런 공동시설을 마련할 때 문지방을 높여서 “출자자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음” 같은 규정을 내거는 일은 극력 말리고 싶다. 마치 컬트 종교집단의 시설처럼 되어버리면 재미가 없으므로 가능한 한 주변에 서성이는 놈들에게도 아량을 베풀어 함께 이용하도록 하자! 출판과 인쇄에도 손을 대보면 참 재미있다…빈집을 찾아라! 물건을 찾아내라!! 바가지나 씌우는 부자 계급 주제에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척하는 당신! 남아도는 물건이나 공짜로 빌려줘!!…게스트 하우스를 만들어 얼빠진 놈들을 신나게 재워주자!…새로운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딴 동네에 가더라도 “거기 게스트 하우스에는 재미있는 놈들이 모인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면, 그곳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도서관 작전, 목욕탕 작전, 장거리버스 작전 등등” 그의 말처럼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공공의 자산, 공유를 늘려야 한다. 생활정치든 사회적 경제든 이런 공유의 몫을 늘려야 국가와 자본의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지방지식과 지방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인문학을 많이 얘기하는데, 외부의 시선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수도권 중심의 내용이 지방으로 파급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지식과 문화의 획일성을 깨고 차이와 다양성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 곳의 전통을 기반으로 지식과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정보를 매개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공간으로 도서관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사람들의 정체성이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면 자급과 자치의 중요한 기둥이 될 수 있다.

책 vs 책…그 피 튀기는 현장의 기록

[1주년 특집] 하승우, 서평으로 논쟁하다

기사입력 2011-07-29 오후 5: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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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서평은 독한 대화이다. '독한 대화'라는 말의 뜻은 이중적인데, 읽은(讀) 책에 관한 대화이자 책을 좀 독하게 평하는 대화라는 의미이다.

서평이니 책을 읽고 쓰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며 꼼꼼히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의 내용이 읽는 사람의 취향과도 맞아야 술술 읽히는데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고 또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읽어야 평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취미이자 노동이다.

프랑스작가 다니엘 페낙이 <소설처럼>에서 독자의 10가지 권리에 포함시켰던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어서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는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 인정되지 않는다. 서평을 쓰는 사람은 책에 대한 취향이나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독자가 작가는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서평을 독하게 쓰는 이유

나는 왜 책을 독하게 평하려 하는가? 원래 평(評)이라는 말 자체가 됨됨이를 따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사실 독하게 평하지 않을 거면 굳이 서평을 써서 다른 독자의 선택에 간섭할 이유가 없다. 옛날과 달리 인터넷 서점에 가면 출판사 서평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책에 관한 기본 정보는 대부분 구할 수 있다. 그러니 책에 관한 기본 정보를 서평에서 다시 나열할 필요는 없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books'의 서평이 다른 언론의 서평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책>(강유원 지음, 야간비행 펴냄). ⓒ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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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철학자 강유원은 <책>(야간비행 펴냄)에서 서평자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감식자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고미술품 감정가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서 그 물건을 제대로 감정하지 않고 무조건 파는 사람 편만 든다면 당연히 그는 사기꾼"이기 때문에 서평자에게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서평은 그 책을 감정하는 제법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출판사 서평만이 아니라 일반 서평들도 책에 관해 좋은 얘기들을 늘어놓곤 한다. 출판사 서평이 책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찬사를 늘어놓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서평들이 그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용에 너무 공감해서 좋아하는 걸 말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왜 공감하는지에 관한 근거를 충실하게 제시해야 기뻐할 텐데 맥락 없이 좋아하는 글들이 간혹 있다. 한때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주례사 서평'도 제법 있다. 그런 서평을 보면 괜히 배알이 뒤틀려 글이 세게 나가기도 한다. (서평을 쓰는 이도 사람이다!)

사실 독하다는 게 꼭 책을 나쁘게 평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서평은 독자로서 저자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런데 서평을 책처럼 길게 쓸 수 없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말하다보면 때로는 그 말이 좀 독할 수밖에 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 일부러 독하게 말해서 스트레스를 풀려는 게 아니다. 나도 책을 쓰는 사람이니 그런 악담이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내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식한다(실제로 인터넷에서 내 글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읽고 마음 상하거나 불쾌해 하기도 한다). 그러니 일부러 악담을 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평할 때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혹시 내가 책을 잘못 읽었을까 걱정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 책에 관한 다른 서평들을 찾아본다. 다른 서평을 읽으면 무의식적으로 그 논지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책을 다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른 글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다른 서평의 내용을 받아들일 만하면 내 주장을 무리하게 서평에 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뭔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저자의 다른 책들도 훑어본다. 미리 읽어본 사람의 책이라면 좀 수월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일 때는 서평을 쓰는 게 중노동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렇게 하고 난 뒤에 서평을 써야 좀 안심이 된다.

서평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부분들이 글을 쓰기 전의 준비라면,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가급적이면 이 책을 지금 읽는 이유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신간만 뽑아서 서평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다루는 의미를 따져야 하고, 신간이라 하더라도 번역서일 경우 발간 일자가 틀리는 경우가 있기에 시점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중요하기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그 근거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쓰면서 고려하는 또 다른 점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아니라 청탁을 받고 쓰는 서평의 경우, 나는 청탁한 사람의 '의도'를 따지는 편이다. 파워블로거를 비롯해 서평을 쓰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판에 굳이 내게 서평을 청탁한다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 의도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쭉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블로그에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서평만이 아니라 다른 원고도 마찬가지이다. 왜 굳이 이 주제를 내게 청탁했는지 물어보고 난 뒤에 글을 쓰겠다고 말한다). 물론 청탁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서평을 쓰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프레시안 books'에 쓴 서평을 훑어보니 내 마음에 흡족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2010년 10월에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린비 펴냄), 2011년 1월에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전상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4월에 최장집의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폴리테이아 펴냄)에 관해 서평을 썼다. 청탁의 의도도 있겠지만 세 권 모두 좀 독하게 평했다(스콧의 책은 저자보다 번역자에 초점을 맞췄다). 독하게 평하다보니 그 책의 내용을 충실히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프레시안 books'의 의도에는 잘 맞췄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평은 좀 허전한 글이다. 그 주제에 관해 내 얘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저자의 입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평은 대화이지만 저자를 눈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아니다. 쌍방향의 대화일 수 없다. 서평에서 저자의 깊은 마음속까지 간파하면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분들도 가끔 계시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 이상을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읽은 책과 지금 읽는 책을 서로 대결시키는 교활한(?) 방법을 많이 택한다. 똑같은 사건이나 개념, 인물을 놓고 차이가 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런 비교를 통해 내가 말하고픈 바를 교묘하게 얘기할 수 있다. 남의 글에 빗대어 내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기 좋고, 독자도 책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결국 서평은 독백의 형식을 취하지만 다양한 의도와 목소리를 담을 수밖에 없다. 나의 관점을 드러내지만 그 관점이 책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서평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서평을 통한 대화는 불가능한가?

서평을 쓰고 난 뒤에 내가 평한 것과 다른 식으로 평한 글을 접하곤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좋은 의도에서 썼으니 좋게 해석하자는 식의 글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그리고 누가 더 저자의 의도를 잘 따라갔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책 자체가 저자의 의도이니 그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따져야 할 몫이다. 그럴 거면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서평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서평은 저자에게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저자와 서평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책의 편집자와 서평을 쓰는 사람들 간에도 논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 자체를 놓고 따지는 논쟁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책이 나온 시점과 의도에 관한 논쟁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 논쟁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레시안 books'가 더 많은 논쟁의 중심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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