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상무와 감정노동의 현실

 

얼마 전 포스코의 한 상무가 비행 중에 스튜어디스를 모욕하고 “밥이 설익었다”, “라면이 짜다”, “라면이 익지 않았다”며 폭행하는 일이 발생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면서 감정노동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비행기만이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같은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식당과 술집같은 외식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콜센터나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들, “매우 만족했다”는 고객의 평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매우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노동과정의 스트레스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정신질환 자살자나 산재신청 횟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나라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방향’ 토론에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감정노동이 감정적 부조화(자아의 이중화), 낮은 직무만족(높은 직무 스트레스), 정신적 고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음주, 흡연, 약물, 도박 중독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사례조사 결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절반 정도가 가벼운 우울증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의 의지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 누구의 감정이 더 힘드나?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객실 승무원은 감정노동을 가장 많이 하는 직업으로 분류된다. 앨리 러셀 혹실드는 항공 승무원의 노동을 분석한 《감정노동》(이매진, 2009년)에서 “감정을 상품으로 바꾸거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도구로 바꾸는 데 자본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는 감정 관리를 사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감정관리를 좀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면서” “감정노동을 경쟁과 연결 짓고, 실제적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광고하고, 그런 미소를 만들도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노동자들이 미소를 만드는지 감독하고, 이런 활동과 기업의 이익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혹실드는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 관리를 더 많이 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고, 감정노동이 남녀의 성역할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여성에게 어머니 노릇을 요구하고, 이 사실은 묵묵히 직무 내용의 많은 부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감정노동은 주로 여성, 나이로 보면 30대 이하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판매․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수가 약 314만 명인데, 서비스 종사자의 약 66%, 판매 종사자의 약 50%가 여성이다. 특히 전화로 고객을 상담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100만 명의 상담원 중 약 89만명이 여성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하고, 2012년에는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수첩’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인권수첩’은 여성감정노동에 대한 정보와 감정노동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꿀 방법, 감정노동자가 보장받는 권리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인권수첩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생협매장과 감정노동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감정노동이 없을까? 매장의 매니저나 활동가는 무조건 친절하고 웃어야 한다고 강요받지 않을까? 조합원들은 매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같은 조합원으로서 동등하게 대하고 있나? 생협의 매장이 무조건 친절해야 할까? 외려 조합원들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매장활동가들에게 감정노동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정신에 따른다면, 조합에 감정은 넘쳐 흘러야 하지만 그것이 노동으로 강요되면 안 된다. 그리고 물품의 유통에서 공급보다 매장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데, 매장에서의 관계와 역할, 활동에 관한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서의 임상혁 소장은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를 하라는 회사의 매뉴얼 말고 고객이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와 수용의 기준, 지속적으로 웃지 않을 권리, 고객과 마찰이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는 지침 등을 담은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협에서도 이런 매뉴얼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죽음의 무기, 확산탄

확산탄은 공중에서 폭발해서 많은 작은 폭탄들을 흩뿌리는 폭탄으로 군사목표와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넓은 지역에 피해를 입히는 끔찍한 살상무기임. 확산탄 피해자 중 98%가 민간인이고 이중 1/3이 어린아이로 알려짐. 이런 비인도적인 피해 때문에 2008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탄금지협약이 추진, 체결되었고 2010년 8월부터 이 협약이 발효되고 있음. 이 협약에 따라 확산탄의 사용, 생산, 비축, 이전이 국제적으로 금지되었고, 2013년 4월까지 전 세계 80개국이 협약을 비준한 상황임.

 

확산탄의 사용을 금지하는 차원을 넘어 벨기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등 7개국은 확산탄에 대한 각종 투자를 법으로 금지함. 7개국 외에 21개국도 확산탄금지협약에 의거 투자를 금지한다는 해석 성명을 발표함. 실제로 노르웨이연금기금이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풍산과 한화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것도 이런 윤리지침에 따른 것이었음.

 

그런데 확산탄에 대한 전 세계 투자현황이 기록된 《확산탄 세계투자: 공동의 책임보고서》(2012년 6월 개정판)에 따르면 한국의 한화와 풍산은 세계 8대 확산탄 생산기업임. 그리고 이 두 기업에 가장 많이 투자한 곳이 국민연금이라 기록됨.

 

 


- 무기생산기업에 대한 투자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로

2011년 말 국민연금은 세계 4대 공적연기금으로 성장함. 국민의 생활안정과 노후행복에 공헌하겠다는 국민연금공단이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무기생산에 투자하는 것은 모순임. 더구나 국민연금은 투자할 때 투자대상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에 2009년 7월에 가입했음. 또한 국민연금은 사회책임경영, 윤리청렴경영, 사회공헌, 동반성장 등을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음.

 

전 세계적인 흐름과 자신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국민연금은 무기나 사회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생산하는 대기업보다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투자해야 함. 그러나 국민연금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벤처기금을 운용하고 있지만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지원한 사례는 없었음.

 

만일 국민연금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국민연금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이유가 있을까? 국민연금이 미래를 파괴하는 생산에 투자하는 건 자기모순임. 그런 의미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제대로 투자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듯.

 

- 참고: 무기거래를 감시하는 단체 <무기제로>의 ‘국민연금에 보내는 공개서한’

 - 일베만의 문제인가?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인터넷 사이트의 줄임말인 ‘일베’가 사회적인 논쟁의 화두가 되고 있음. 2009년에 만들어졌고 대표적인 우파 사이트로 불리는 일베에서는 하루 동안 게시물을 조회하는 수가 400만을 넘는다고 하니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 그동안 일베 게시판에서 여성이나 다문화 여성, 장애인 등 사회의 소수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잦았음. 그러다 최근 일베 게시판에 “광주 5·18은 고정간첩들과 북괴놈들 내려와서 벌어진 일”이라느니 희생당한 광주시민을 “홍어 택배”라고 부르는 글이 올라오면서 사회적인 파장이 커지고 있음.

 

그동안의 일베 게시물을 분석한 ‘일베 리포트’를 보면, 게시물에 사용된 주요 단어는 “씨발, 존나”(5,417건), “여자”(4,321건), “노무현”(2,339건), “盧”(1,564건), “광주”(1,622건), “종북”(1,633건), “민주화”(1,204건), “섹스”(616건)임. 노무현과 광주, 종북, 민주화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 건 민주화에 거부감을 가진 일베의 성향을 보여줌.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베만의 특징은 아님. 일베의 등장은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무관하지 않고, 특히 경제적, 문화적인 면에서 배제되고 있는 청년층의 확대와 연관성을 가짐.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사상을 주입당해 보수화된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기존의 권위에 대한 파괴적인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래서인지 힘에 대한 강한 욕망을 보임.

 

하지만 이런 상황논리로 일베의 등장을 분석하는 건 단편적일 수 있음. 과거에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며 많은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단편적인 분석은 어려움. 그리고 일본에서도 ‘넷 우익’이라 불리는 집단이 세를 불리고 있고, 유럽에서도 인종주의가 강해지고 있다는 현실 변화를 고려해야 함. 특히 논란 이후 중앙 일간지들은 일베를 문제집단의 집합소로 몰아세우고 있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 깊이 성찰해야 할 지점을 놓치게 함.

 


- 누가 일베인가?

 

일베가 대중의 관심을 받은 건 걸그룹인 시크릿의 일원인 전효성이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한 일 때문임. 일베에서 민주화는 반대나 싫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를 사용한 것임. 그리고 최근 밝혀진 것을 보면 일베에는 교사나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음. 즉 특정한 연령이나 직업, 계층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베에 접속하고 있음.

 

일베가 문제되자 민주당의 몇몇 국회의원은 일베의 운영을 법적으로 중단시키고, 광주시는 광주와 관련된 발언을 한 일베 회원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힘. 이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을 낳는다는 지적이 있음. 냉소와 분노가 동시에 공존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상식으로 평가되기 어렵고, 실체를 드러낸 극우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잠재된 냉소하는 사람들임.

그러니 일베를 법에 따라 처벌하거나 일베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관심을 끊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님. 물론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폭력에 가까운 발언들이 있고 그 말을 통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쾌감을 느끼려는 태도는 지극히 위험해 보임. 하지만 그 극도의 위험성은 불안감의 정점에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함.

 

어쩌면 우리 아이, 내 친구, 내 동료들이 일베에 들어가 글을 남기는 사람일 수 있음. 그렇다고 우리 속에도 일베가 있으니 모두가 내 탓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 한국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개인화해서 어떤 사회적 조건으로 만들곤 함. 가령 어려운 삶을 산 개인이 순간적인 분노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며 이를 그의 성장과정 탓으로 몰아붙이곤 함. 최근 일베 사이트에 ‘인증’이 자주 올라오는 건 그런 규정에 대한 반감이기도 함.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서로 마음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함. 타자의 눈에 비친 내 속의 심연을 대면해야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김.

지난 5월 2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생협매장 문제로 <아이쿱 광주권 생협>과 <한살림광주생협>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아이쿱 생협이 한살림 매장 근처에 연이어 대형매장을 내어 한살림매장이 큰 위기를 겪거나 폐점되자 한살림이 먼저 토론회를 제안했다. 아이쿱 생협은 신설 매장이 조합원 협동의 결과물이고 먼저 매장이 들어섰다고 그것이 기득권이나 독점일 수 없으며 협동조합도 서로 경쟁할 수 있다고 답하며 토론회를 수락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토론회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이 토론회가 시작이어야지 끝이면 안 될 것 같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가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생협과 관련된 논쟁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생협 매장이 지역의 작은 가게들에 영향을 미치거나 문을 닫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생협과 거래하는 생산지들이 커지고 사업화되면서 자기 지역 먹거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 생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털어놓는 어려움을 접한다. 그럴 때마다 놀란 가슴을 달랜다. 생협은 자기 길을 잘 걷고 있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들리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해온 걸까? 이러다간 어느 순간 생협도 점점 일반 기업처럼 변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생긴다. 살림이나 호혜의 경제학이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학, 시장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닐까? 조합원이나 협동조합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사회의 의식이나 문화는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민의 삶은 더욱더 치열한 승자독식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건 아닐까?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상호부조가 만물의 진화를 돕는다는 이론을 사회에도 적용시켰다. 경쟁이 없다거나 무조건 경쟁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경쟁만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 아니고 외려 상호부조와 상호지지를 통해서 경쟁이 제거되면 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하는 삶이 경쟁하는 삶보다 훨씬 오랜 전통과 문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단지 ‘성장이냐 아니냐’라는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는 물음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삶과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경쟁이라는 말이 이미 나왔으니 그 말을 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경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경쟁은 더 다양한 말로 치장될 것이다. 아마 적대적인 경쟁과 호의적인 경쟁이 다르다는 말도 나올 것이다. 허나 그런 차이가 만들어지려면 사회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협동조합들을 지원하고 우호적인 경쟁자를 만든다는 이탈리아의 협동조합기금이 이탈리아라는 사회적 조건을 무시하고 논의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환경은 이탈리아와 비슷한가? 협동조합에 이로운 외부 환경이 조성되어 있나? 그런 환경이 없는 상태에서 조합원들이 경쟁을 당연한 원리로 받아들일 때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을까? 무조건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하는 매장, 같은 조합원임에도 일방적인 친절함을 강요당하는 매장 활동가나 실무자, 일반 기업이 겪는 문제를 협동조합은 겪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단지 매장의 입지만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가지 물음들을 놓고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면 좋겠다.

협동조합 7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은 ‘협동조합간의 연대’이다. 그런데 연대 이전에 서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인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역 내의 다른 생협이나 협동조합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를 어떻게 모시고 있나? 이 물음에 답을 찾아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

함께 살자, 이것은 결코 당위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에서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 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거죠.”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핍을 보상받을 물질이 아니라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관리나 억압에 저항할 수 있으며, 경멸당하고 무시당하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이다. 남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을 받쳐주는 것이 사람(人)이고 협동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떤 완성된 과정이나 단계로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곧바로 뭔가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에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의 지혜를 모아 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물론 어떤 과정이나 단계가 그렇게 지혜를 모으기에 좋은 조건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본다면 모범 사례모델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의 성공이, 어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생각들이 하나의 모델로 정리되어 다른 곳에 이식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나 정치에 관해 강의할 때 가장 많이 요청받는 것이 그와 관련된 사례이다. 사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는 사례가 있을까? 내가 보기엔 없다. 밖으로는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공동체나 출판사, 단체들도 막상 가 보면 몇몇 사람들이 주요한 결정들을 내리고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결정을 보완하는 수단 정도로 여겨진다.


반면에 민주주의가 실패한 사례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왜 실패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민주적인 사회구조를 이유로 든다. 이런 구조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렵고 때론 비효율적이라고 얘기한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충분한 지적인지는 모르겠다. 바로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더욱더 필요한 게 아닐까?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운동을 하는 거지?


어느새 이런 부조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어 버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사회에 살지만 정작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거나 요구하지 못한다. 생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삶의 과제로 가져오는 건 목숨만큼 큰 대가를 요구한다. 공부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살 수는 없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불온한 민주주의. 이미 법정에서 판결이 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야 하는 노동자에게, 학생의 인권이 조례로 보장된다는 사회에서 홀로 고립되어 아파트 난간에 올라선 청소년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일까? 삶은 이렇게 절박한데 민주주의는 박제된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민주주의가 더 필요한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무슨 민주주의가 더 필요하냐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지금으로도 민주주의는 충분하며 민주주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지나쳐서 문제이고, 외국에서 얘기되듯이 현재의 문제는 과잉된 민주주의(demorecracy)라는 거다. 지금껏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거나 자기 삶과 연관된 결정들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기득권층은 기함하며 이들을 막아선다. 마치 당장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사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이건 그들의 과장이 아니라 그들의 실감일 수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송호근의 입장을 살펴보자. 송호근은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평등 지향적 심성을 지적한다. 원인보다는 결과에 더 민감한 평등주의 심성이 한국 사회를 하향 평준화시켰고, 이런 습속folklore이 누적됨으로써 책임과 의무가 결여된 평등주의가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평등주의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비난의 심성, 분노와 적개심의 에너지 등이 공정성을 권리 투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한국 사회를 파괴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송호근이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원적 평등과 관용이다. “똑같은 양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분배 기준을 요구하는 다원적 평등 개념을 주장하고, “양보의 기억을 쌓는관용을 강조한다.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비해 모범생 같은 결론이다.


어쨌거나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평등을 지향하면서 사회의 반목만 낳았다는 것이 송호근의 분석인데, 이 분석은 좀 문제가 많다. 일단 사회적인 평등을 논하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송호근은 사회주의권을 제외하고 자본주의권에서 한국은 소득 불평등이 비교적 낮았던 국가에 속한다. 적어도 금융, 토지, 주택 소유를 논외로 하고 소득만을 비교했을 때에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낮은 매우 모범적인 국가로 꼽혀 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는 소득만이 아니라 그가 배제한 금융, 부동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1988년과 2006년 사이에 토지 소유자 중 상위 50%가 소유한 면적 비중은 98.2%에서 99.6%로 늘어났다. 소위 민주화 이후 토지 소유에서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사회가 평등해지는데 반목만 늘어났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고, 외려 실질적인 평등이 더욱더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과잉을 주장하는 얘기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일 때가 많다. 이들은 본질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본심이 드러날까 봐 아프다며 엄살을 떤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과잉을 주장해야 하기에 실제 역사가 왜곡되기도 한다. 가령 송호근은 “1987년 민주화 과정은 재산 축적을 향해 무한 질주를 해 온 교양 없는 중산층결과의 평등을 앞세운 노동계급 간 전면 대결로 촉발되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과정이 재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각 집단과 계급의 이해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민주주의는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대결이 아니라 기득권층과 새롭게 구성되는 정치 주체의 대결이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


이런 잘못된 정보는 한국 사회가 공정 사회나 기회 균등을 부르짖어도 사실상 두 개의 질서로, 즉 특권을 남용하는 소수의 기득권층과 주어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민들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감춘다. 인사 청문회에서 보이듯 기득권층에겐 부동산 투기가 상식이고 직위를 남용한 특혜가 권리이며 학벌은 상속되는 재산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에겐 불법 증여나 분식 회계가 상식이고 특별사면이 권리이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를 원인 없는 적개심이라 불러야 할까? 민주주의가 사회를 하향 평준화시킨 게 아니라 기득권층과 시민들의 삶이 완전히 분리된 건데, 이것이 평등주의 탓일까?


과잉을 주장하는 기득권층에게는 지금껏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자신과 동등해지는 것이 싫다. 민주주의는 그런 동등함을 전제하기에 불손한 것이고, 과잉과 문란의 위험을 내포한 민주주의는 절제되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당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임금 인상이 아니었다.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 및 상여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조장組長에 의한 자의적인 평가 폐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노동자 간의 지위 구분 철폐, 식사의 질 개선, 복장과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 철폐, 강제적인 아침 체조 중단을 포함한 정말로 긴 요구 목록을 제시했다”.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과잉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다. 법으로 보장된 휴일을 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계약서를 쓰자고 맘 편히 얘기 할 수 없는 사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사회에서 우리도 그들과 동등하다고 얘기하는 평등은 질서를 파괴하는 위험한 것이 된다.


그래서 송호근의 모범 답안 같은 다원적 평등과 관용은 현실의 불평등과 반민주주의를 지속시킬 뿐이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순수관용비판A Critique of Pure Tolerance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정파적인non-partisan 관용을 추상적또는 순수한관용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관용이 현재의 차별과 착취, 억압을 지속시킨다고 비판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선전할 수단을, 자기 삶과 연관된 결정을 내릴 힘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모두가 똑같이 관용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래서 마르쿠제는 보편적인 관용이 아닌 차별하는 관용discriminate tolerance을 제안했다. 이는 루쉰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릴것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왕의 머리가 잘리지 않았다면 과연 프랑스혁명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때로는 불공정한 조건을 바로잡기 위한 과잉된 개입이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좀 과잉될 때에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목소리와 개입이 있어야 기득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잉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뜻하기에,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본질에 다가서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누가 과잉을 주장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학교와 연관 지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학교가 과잉을 외치며 지키려 하는 본질적인 이해관계나 기득권은 무엇일까? 학교가 학생회 선거에 개입하고 학생들의 삶을 규율하려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청소년의 삶을 규율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런 부조리한 현실과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와 학생은 같은 세계에 살고 있고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때에 따라 필요한 게 아니라 언제나 필요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 그게 가능할까?

노동자나 소수자의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선 인권조례가 논의되고, 주민들의 참여를 님비라 매도하거나 폭력으로 진압하는 상황에서도 어느 한쪽에선 주민참여조례들이 제정된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에 살다 보면 사람의 판단력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학교를 봐도 그렇다. 무상급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을 함께 밥을 먹는 공동체 문화, 즉 식구食口라 부를 수는 없다. 대학 등록금이 반값으로 떨어질 수는 있으나 대학의 교칙이나 수업 과정에 대한 권리는 오로지 대학 당국의 것이다(학생회마저 조폭들이 장악하는 대학에는 정치의 자리가 없다). 단지 수업만이 아니라 학교의 공간을 구성하고 학생들이 생활할 권리조차 학교 당국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더라도 그 사안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가 교사나 학교에 있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제도가 권리를 보장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한때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몫 없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체이니 치안의 질서에서 벗어나 강하게 아니오라고 외치며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치안의 힘이 너무 강하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귀포경찰서장이 수배자를 찾는다며 온 마을을 뒤지고, 서울시 중구청장이 대한문 앞 농성장을 부수고 화단을 만드는 건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권리의 목록을 제 아무리 길게 만들고 읽어 줘도 그것을 실제로 쓸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알아도 안 쓰는 게 약자의 권리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계속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쇠사슬을 감고 저항하던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이 경찰에 끌려가는 사진에서는 치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건 그냥 폭력, 공권력의 탈을 쓴 노골적인 폭력이다. 몫을 논하는 순간 돌아오는 이 폭력 앞에서 정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한때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에서 노동자와 청소년, 소수자들은 이미 헐벗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그 현장과 자리에 서지 않기를 원할 뿐 우리는 죽음의 뺑뺑이를 돌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존재들이다. 무기력한 민주주의가 이 뺑뺑이를 멈출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치의 등장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아니, 자기 자신과 우리의 몫을 사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얼마 전 의정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에 관한 궁금증을 질문지로 미리 받았는데, 인상에 남은 질문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회는 왜 말로 할 것이지 맨날 주먹다짐이나 하나요. 다 큰 어른들이……. 다들 생각도 있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일 텐데 왜 그리들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는지 궁금해요.” “박근혜가 이번에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박정희 정권 당시 독재정치가 맞는 건가요?” “보수 진영은 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걸 좌빨이라며 비난하나요?” “보수와 진보는 왜 항상 싸우기만 하나요? 보수와 진보의 각각 제대로 된 정의는 무엇이고 둘 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나요?” 이런 심도 깊은 질문들에 나는 국회란 원래 논쟁하고 싸움하라고 만들어 놓은 장이니 더 열심히 싸워야 하고, 다만 지금처럼 카메라가 켜진 곳에서만 싸우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했냐는 질문에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긴급조치를 남발한 사람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다음 질문들은 좀 어렵다. 질문 자체에 답하는 게 어렵다기보다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궁금해서였다. 왜 고등학생의 정치의식에서 보수와 진보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문이나 매체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계속 부각시켜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정치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건 보수와 진보 이전에 자신과 우리의 몫이다. 보수와 진보는 그 몫을 인지하고 난 뒤에야 의미 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참정권이다. 17세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바뀔까?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교육감을 선택할 수 있다면 학교가 어떻게 바뀔까? 지금처럼 정치인이나 교육 공무원들이 시혜의 관점으로 학생이나 청소년의 권리를 접근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학생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 유권자들이 가득한 학교 앞은 선거철마다 후보자들의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사 역시 수업 외의 시간에 학생들을 대하는 시선이 바뀔 것이다. 자기 몫을 생각한다면 보수와 진보보다 이게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찾아보면 정보가 없지도 않다.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내놔라 운동본부)’는 이미 5가지의 명쾌한 요구안, 선거권·피선거권 내놔라’, ‘모이고 외칠 권리 내놔라’, ‘학교 민주주의 내놔라’, ‘판단할 권리 내놔라’, ‘우리 동네 내놔라를 요구하고 있다. 너무나 훌륭한 요구이다. 문제는 이런 요구를 실현할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이 요구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구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할까? 나는 알고 있는 내놔라 운동본부를 정작 당사자인 고등학생들은 모르는데 어찌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희망이 그려지지 않는다. 정치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이미 고등학교부터 대상화되어 관전 포인트를 찾는 객관적인문제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자기 몫을 못 챙기는 사람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몫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다. 중요한 정치 의제는 언제나 중앙이나 외부에서 논의되다 삶으로 툭 떨어진다. ‘자아 성찰자기 판단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이고 실제 삶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수많은 착시 현상들이 판단을 방해하니 판단력은 더욱 떨어지고, 똑똑한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시민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대략 난감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정치학교를 열고 싶어 하는 선생님도 만났는데, 쉽지 않을 꺼라 얘기했다. 정치는 동등한 자들이 자웅을 겨루는 장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교는 정치에 적합한 장이 아니다. 어느 한편을 시혜나 훈육의 대상으로 보는 곳에서는 정치가 시작될 수 없다. 정치에 관한 지식을 교육할 수는 있겠지만 그곳이 정치의 장일 수는 없다. 그곳을 지배하는 원리는 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체로 서지 못하는 민주주의, 서로를 알아보고 동등하게 인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 새로운 관계와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민주주의는 가식이다. 내가 저들을 위해 권리 목록을 만들고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같이 살고 있는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마주 보고 있는가?

 

의식과 교육이 민주주의를 체화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과 정치를 얘기하다 보면 종종 냉소를 경험한다. 이런저런 일에 개입해 봐야 별 효용도 없고 나만 피해를 볼 것이라 생각하고, 나아가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고 주저앉히며 원래 다 그런 거라고 한다. 현실에 무심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밝을수록 더 심한 냉소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냉소를 품은 사람들을 의식화시키고 교육한다고 한들 그 삶이 바뀔 수 있을까?


재작년에 관둔 대학에서 나는 시민교육이라는 과목을 담당했다. 인문 정신을 내세운 교양 과정 개편이 그 과정을 이수할 사람들과 합의 없이 진행되었고, 학생들이 무슨 과목인지도 모른 채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 수강 대란이 벌어졌다(좋은 내용이면 과정이 중요치 않다는 생각은 그곳에서도 반복되었다). 시민교육도 그 교양 과정의 일부였고, 심지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기에 학교 내외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교육의 방법에 관한 합의가 없었고, 가장 심각한 건 강사들이 학생들을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설령 내가 좋은 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삶과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사실 시민으로서의 삶이란 학습되는 게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최상의 교육은 내가 시민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 그 삶이 주변에 울림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따라오라 설명하지 않아도 공명할 수 있는 교육의 관계, 그것이 민주주의 아닐까?


하지만 강사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빈약해진 채, 시민교육은 학생들이 팀을 짜서 현장 활동을 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민으로서의 삶이 왜 중요하고, 시민의 권리를 조직하는 법이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민원을 넣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법,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고용계약서를 써야 하는 이유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정작 학교에서의 내 삶은 그 앎을 반영하지 못했다. 학교를 관두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앎을 반영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앎과 삶의 모순, 이 커다란 간극을 해결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그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대체 어떤 교육이 가능할까? 하물며 시민교육이라니.


물론 대학 밖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수업을 맡으며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학내에 많은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살리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교육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학점을 매기고 받는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가? 내용을 함께 기획하고 실천했다면 이미 평가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지 않은가?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채 민주 시민이 되라고 하니 일시적인 경험이 장기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팀을 구성하는 목적이 학점 경쟁을 위해서라면 TV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과 대학을 바꾸기 위해 대학 안과 밖이 어떻게 연계되었던가? 사학 재단의 소유물로 둔갑한 공공재인 대학을 바꾸기 위해 시민교육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어떤 역할을 했던가? 만일 시민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그 학교의 교과과정이나 교칙이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을 텐데, 지금도 그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걸 보면 그 과정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대학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는 민주시민교육을 봐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교육을 받아서 어디에 어떻게 써먹으란 얘기인가? 청소년들이 노동기본권에 대한 교육이나 인권교육을 받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어디에 써먹으란 얘기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유소나 편의점의 사장이나 점장, 매니저에게 그것을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학생이나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을 받는다손 치더라도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그 내용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정치와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이나 공론장은 계속 줄어드는데, 권리를 교육받은 시민들은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건 공리이지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리는 분노보다 냉소를 낳기 쉽다. 이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 다른 권리 목록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식화와 교육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다. 다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역사는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안창호 선생과 이승훈 선생은 학교를 세웠다. 평범한 사람들이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둥글게 둘러앉아 삶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일제가 아닌 어떤 다른 국가로부터도 독립할 수 있을 거라고, 자치와 자급이 이루어진다면 일제가 물러가지 않아도 이미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지금 나라가 날로 기우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총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중요한 건 백성들이 깨어나는 것입니다라는 오산학교의 설립 정신은 그 고민을 말해 준다.


비록 안창호, 이승훈 선생의 이상촌 계획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그들이 학교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바는 원주나 홍성으로 이어져 지금도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그들의 계획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학교와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하나의 체계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살림살이를 해결하고 이런 관계망이 지역사회를 단단하게 만든다면 이상촌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구상했다.


의식과 교육이 아니라 생활이, 직접 그렇게 살아 보는 경험이, 그리고 그런 앎을 반영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앎이 식민지라는 현실을 극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방관자의 자세에서 벗어나 그 문제를 내 것으로서 삼아 참되고 실속 있게 행한다는 무실역행務實力行, 서로의 사랑을 도탑게 하라는 정의돈수情誼敦修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이승훈 선생의 말 역시 우리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지금 필요한 건 삶과 괴리된 앎이 아니라 삶으로 단단하게 뭉쳐질 수 있는 앎과 그런 앎의 관계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물음과 깨달음, 같은 세계에 사는 동료 시민과의 구체적인 만남과 관계, 이 관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 가는 세계, 이런 것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나는 이 말들을 사랑으로 살림살이(경제)를 살고 우정으로 정치하자고 풀이하고 싶다. 정치가 사랑의 장이 아니라 우정의 장인 것은 연인이 아니고 친구여야 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며 서로의 잘남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우정을 맺으며 산다면, 저들의 과잉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마냥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1. 보스코프스키 2013.06.07 08:41

    문서에 부분적으로 오류가 뜨네요.. 수정요...

  2. 몽똘 2013.06.07 16:13

    띄워쓰기 문제인 듯 싶구요, 글에서 빠진 부분은 없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그린비노조분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아주 즐겁게...
몇가지 해프닝이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 불쾌지수가 높고 같은 공간에서 지리한 신경전을 펼쳐야 하는 그린비노조는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힘겨운 싸움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나씩 매듭을 지어가면 좋을 것 같고,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내가 이 싸움에 관심을 가진 건 단순하다.
부당한 이유로 징계를 받은 노동자가 있고, 내가 그곳과 책을 냈다는 관계를 맺고 있어서이다.
제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내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는 노동자들과 손을 잡지 못한다면 멀리 있는 곳과는 더 손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노동과 생산을 얘기하는 게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대의적인 명분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부조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번 고개를 돌리면 또 고개를 돌리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무엇이 승리일지는 모르지만 그 싸움이 싸우는 사람들에게 기쁘게 남는 걸 보고싶다.
그러면서 나도 힘을 얻고 싶다. 우리가 믿고 싸우는 바가 옳을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기에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정말 고마운 건 힘겹게 싸우는 노동자들이다.

사실 이 싸움에는 무엇이 승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노조의 단협이 승리한다해도 여전히 출판사의 실권은 그들에게 있을 터이니.
가장 궁극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어느날 선물처럼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지리한 싸움을 겪으며 서로의 관계가 더 단단해지고 그 싸움을 함께 할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런 터전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 믿는다.
자기 노동의 결과물에 자기 이름조차 싣지 못하는 이 소외된 상황이 사라져야 주체적인 노동이 시작될 거라 믿는다.
땡땡책협동조합 역시 이런 싸움이 하나씩 승리할 때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싸움이 꼭 이겼으면 좋겠다.

우리가 얼마나 큰 힘을 실어줄 수 있겠나.
힘들 때 옆에서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고.
다음주까지 그린비출판사 분회에 따뜻한 말, 함께 하자는 말 많이 건네주면 좋겠다. 그러면 단체협상도 힘을 얻지 않겠나.
힘을 모으면 좋겠다.
너와 나, 우리를 위해...

그린비출판사분회 블로그: http://blog.jinbo.net/gblu/ 


한편으로는 인권을 강화시킨다는 조례들이 하나둘씩 제정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권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인권이 향상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외려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만 전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은 강제로 철거되고 있고, 어느 작업장에선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거나 밀려나고 있다. 인권도시가 논의되고 있지만 도시의 중요한 공적 공간들은 하나둘씩 사유화되고 있다.

 

지금껏 인권도시나 인권조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 아니기에 조심스럽지만, 인권기본조례나 인권 관련 조례들이 기존의 다른 조례들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조례와 자기입법


작년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된 인권 관련 조례들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일단 그런 조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제도를 사용할 마음을 먹을 텐데, 주민의 몇 % 정도가 조례를 알까? 그리고 인권기본조례의 대상은 이미 권리를 누리는 사람보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일 텐데, 그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있는가? 또한 인권을 침해하고 있거나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조례를 알고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있을까?

 

이런 과정이 마련되려면 적극적인 ‘공지(公知)’가 필요하다. 시민들은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어디서,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에 실리나? 시민들이 자주 오가는 시장이나 마트에 공지되나? 차별받는 대상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에 조례가 제정되었음을 공표하나?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우거나 플랑카드 몇 장 걸어놓는 것으로는 시민들이 제도를 인지할 수 없다.

 

그리고 제도를 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조례들이 규정하는 인권의 내용은 헌법이나 국제인권조약, 국제관습법 등을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헌법이나 국제인권조약, 국제관습법을 들춰본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배우는 한국사회에서, 보장보다는 박탈을 먼저 경험하는(대부분의 학교가 그렇지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참으로 먼 얘기이다. 그리하여 누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얘기이고, 실감을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양 몸에 잘 맞지 않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례안의 공개가 아니라 조례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팜플릿이나 동영상 등이 필요할 텐데, 그런 과정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나? 주민참여에 관한 여러 조례들이 시민들의 언어로 구성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는 인권기본조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특히 인권조례라면 더욱더 시민들의 문화와 가치를 고려해야 할 텐데, 표준안이나 잘 알려진 사례를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조례가 자치법규로서의 가치를 이미 상실하고 있다.

 

인권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다. 정부는 보호와 증진의 의무를 가지고 있을 뿐 실질적인 변화는 시민의 몫이다.

 

 


인권위원회와 주민참여


지금까지 대부분의 조례안들은 인권위원회를 전문가와 활동가들로 구성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외부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해당 지역사회를 정말 전문적으로 알고 있을까? 어떤 공간, 어떤 사건이 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강화시킨다는 점을 외부인이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인권감수성이나 인권의 가치는 보편적인 것이라 지역주민들이 계몽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인권이 좀 특수한 분야일 수도 있다. 대중의 상식이 편견과 선입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인권을 강요할 힘이 제도에서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도가 시민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다. 설령 억누른다 하더라도 제도는 ‘분리’나 ‘격리’의 방법을 쓸 수 있을 뿐 ‘통합’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려면 서로간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최후의 방법으로 분리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당사자들의 선택이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에서도 예산처럼 전문분야에 어떻게 일반 주민들을 참여시키는가라는 물음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어찌 보면 바로 그런 물음 때문에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평범한 시민들을 지역회의나 예산위원회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공공예산의 활용을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여기려면 나와 우리가 결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권기본조례에서도 이 부분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울시학생인권조례가 표류하는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도는 권한을 가진 사람(한국의 경우 대부분은 장長)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조례가 법률의 하위개념인 상황에서 조례의 힘은 법률을 거스를 수 없다. 그렇게 제한된 것이니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조례는 원래 취지대로 조금 더 자기입법의 과정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조례는 사문화되어 없어질 수 있지만 자기입법의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인권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고, 그 사람들이 참여과정을 통해 인권에 관해 ‘공적으로 사유하기’를 기대한다면, 교육 이후에 역할을 주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며 자신의 편견을 깨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리 지역사회에 누가 사는지, 뭘 하며 먹고 사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주민참여예산제나 사회적 경제, 마을만들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인권기본조례는 이런 다른 조례들과 어떤 연관성을 만들어가고 있나? 그런 사례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그런 부분을 통합적으로 다룰 기관이 없고 행정체계가 이런 복합성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마을만들기와 참여예산제가 따로 또 같이 가야 하는데 대부분 분리되어서 진행되고 있다. 허나 일은 사안별로 따로따로 진행되더라도, 인간의 삶은 통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도시와 관련된 정책이나 제도들은 민(民)의 활동을 흉내 내지 않으면 좋겠다. 거의 대부분의 인권조례안이 그렇지만 민간이 이미 하고 있는 영역을 관이 복제할 필요가 있을까? 지방정부가 인권과 관련된 정책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민간이 할 수 없는 영역, 예를 들어 청소년 노동기본권을 강화시키려면 청소년들을 교육시킬 게 아니라 행정구역 내에 있는 사업장의 책임자들을 소집해서 교육시켜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인권이 향상될 수 있다. 이렇게 편의점이나 작업장 등의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들(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감수성이 바뀌어야 실질적으로 지역 내의 인권이 향상될 수 있는데, 이는 지방정부의 몫이 크다. 진정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지방정부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참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강, 2005년)에서 공적 영역의 몰락과 정치의 사유화를 비판한다. 모든 것이 개인화되고 공적 공간이 분리되어 게토화될 때 시민의 삶 역시 몰락한다. 과거에는 공적인 이데올로기가 사적인 것들을 식민화시켰다면 지금은 “사적인 것들이야말로, 사적인 관심과 걱정, 추구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내몰아버리면서 공적 공간을 식민화하고 있다.”는 게 바우만의 생각이다. 이런 공적인 것의 사유화는 참여 역시 매우 사적인 활동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참여는 매력적이지 않다. 공적인 삶이 사라진 세계, 공공영역이 몰락한 세계에서 참여는 점점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변한다. 더구나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한국사회는 참여를 낭비로 만든다.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 삶이 기본이고 사적(private)이란 타자의 부재, 타자에게 드러나고 들려지는 경험을 박탈당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우리는 사생활을 먼저 챙기도록 교육받고 훈육되어져 왔다. 먹고 입고 생활하는 과정이 철저히 개인화되고 한정된 자원을 놓고 무한경쟁하는 사회에서 참여는 거부된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참여를 논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사람들이 참여를 꺼린다는 지적은 이런 구조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공허하다.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 어떤 혁명을 뜻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공통성(the common)을 확보하는 것일 수 있다. 서로를 대면하고 타자와 더불어 존재할 세계가 사라진다면, 공통성은 사라지고 참여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는 일방적으로 규정되어온 공공성(公共性)의 재구성과 무관하지 않다. 즉 인권기본조례는 공적인 삶의 재구성, 공공성의 재구성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공공성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민에게 강요하거나 보장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외려 사람들의 관계가 관행과 규범, 도덕으로 묶일 때,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할 인권은 확립될 수 있고, 정부의 제도는 때때로 그런 관계성을 침해하고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이 일방적으로 규정해온 공공성에서 민의 주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지금 중요하다고 본다.

몇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 성명서(http://www.twitlonger.com/show/llvqjd)와 그린비출판사의 호소문(http://greenbee.co.kr/blog/1798)을 읽었습니다. 노조는 "회사의 권한 남용과 억압적 태도에 우려를 표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이에 출판사는 " 노동조합의 비상식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에 회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기에 누구의, 어떤 태도가 비상식적이고 억압적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명서와 호소문에서 몇 가지 쟁점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회사 측의 충분한 설명이나 태도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1. 노조의 성명서는 "전체 회의가 사라졌고, 인트라넷에 자유로운 댓글 및 게시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출퇴근 기록기가 설치되었고, 분 단위 임금 삭감 통보에 이어 징계가 논의되었습니다. 사전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이 이어지는가 하면, 노동통제가 강화되고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달라진 새로운 편집프로세스도 직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도입되었습니다. 사무실 이전에 따른 환경 변화, 명절 선물 폐지, 생일 선물 폐지 등 지면상 다 나열하지 못한 무수한 근무 조건이 한꺼번에 후퇴했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출판사의 호소문에는 이런 지적에 대한 설명이 없고 대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노동자가 "그린비가 독자와 필자들과 함께 모여 소통하고,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커뮤니티로 만들고자 했던 웹사이트에서" " 그린비의 주요 필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대표이사에게 '표현의 자유'와 '노동자의 관점'을 운운하며 공격한 사태가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에 노조가 발표한 노동조건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출판사는 "9시 출근, 6시 칼퇴근. 주5일 근무에 야근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라고 밝히지만 노조의 문제제기는 출판사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설령 업무량이 적다손 치더라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일방적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는데 노동조합이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회사를 '협박'한다고 보기에는 정황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노동자가 업무상 과실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해당 업무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당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상습적인 근무태도 불량'이라고 합니다. 그린비출판사는 타임체크기를 설치하고 5분 이상 지각할 경우 징계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자를 칼출근, 칼퇴근 시키기 위해 타임체크기를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계를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도 자본주의 기업이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딱히 더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안 그러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칼출근, 칼퇴근이 좋기야 하지만 출판업의 특성상 편집자가 회사를 나서는 순간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이 당사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3. 업무에 관한 부분에서도 출판사의 징계사유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업무 과실로 인한 금전적 손실은 분명한 사실인데 "고성 및 불손한 태도", "직장질서 문란 행위"라는 사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노동자가 직장 상사(호소문에 나온 대로 편집장과 디자인팀장)에게 고성을 지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직원이 관리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를 까요?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면, 일단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새로 도입된 프로세스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에 문제가 있어 지적을 한 거라면, 그런 문제제기는 정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문제제기를 태도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건 올바른 논쟁방식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노동자는 회사에서 소리 지르면 안 되나요? 부당한 일이 있어도 그냥 참고 조용히만 말해야 하나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더구나 '불손한 태도'나 '직장질서 문란'이 징계 사유로 올라온 건 참으로 유감입니다. 불손함과 문란은 상하질서를 전제한 말입니, 노동조합의 주장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 좀 불손해지면 안 되나요? 문란해지면 문제일까요?^^ 

 

4. 회사측이 노동조합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호소문에서 "누구보다 단체협약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활동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업무상 부주의와 직장질서 문란에 대한 징계과정을 빌미로 회사측을 비난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징계마저도 악의적인 선전으로 물타기하려는 그런 행태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린비가 출간하는 책들의 성격을 볼모로 마치 '노조'를 탄압하는 회사로 몰아가는 노조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스럽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울러 노동조합이 기업 운영과 관련된 권한을 공유해야 그 기업을 민주적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김상봉 교수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책을 권합니다). 왜 노동조합이 그런 부분에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걸까요? 그리고 왜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노동조합이 팽팽한 대결을 지향할 수도 있지요. 그린비가 출간하는 책들이 진보적이라면, 출판사가 내부에서 자신의 관점을 실현하는 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5.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자와 편집자는 동반자라고 봅니다. 도판이 빠진 책임은 일차적으로 편집자에게 있겠지만, 필자 역시 이차적인 책임을 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교정지를 검토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리고 편집자는 필자가 넘긴 원고에서 오탈자만 찾는 기계적인 역할만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책이 출판되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편집자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그 책임이 온전히 편집자의 몫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궁금증이 있기에 출판사의 호소문 만으로는 "밝은 눈으로 그린비를 지켜"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린비출판사에서 책을 낸 필자로서 출판사와 노동조합이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문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출판하는 그린비출판사가 책 만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도 그런 관점을 실현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거의 결성되지 않은 출판계에서,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출판계에서 그린비출판사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이런 기대가 충족되려면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린비출판사에서 책을 낸 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주시하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입장을 같이하고 함께 지켜보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2013. 4. 30.

                                                                                                         하승우 제안드림...

  1. 헉 그 정도였군요. 어이가 없는 방식...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 2013.04.30 11:05

    비밀댓글입니다

  3. 동네형 2013.05.02 02:33

    그린비에서 번역을 하고 있는 역자로서 제안에 동의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노조측에서 가능하면 외부로 잡음없이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었으나, 이렇게 사태가 공개적으로 진행된다면 작가와 역자들이 노조에 힘을 실어야 겠습니다. 그린비 노동조합이 아무튼 현명하게 투쟁하길 바라며...

    • 몽똘 2013.05.02 23:52

      네, 고맙습니다.^^

  4. 유강은 2013.05.02 15:55

    그린비의 열성 독자이자 몇 권의 번역서를 낸 협력자로서 회사의 태도 변화를 바라며 노동조합과 함께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합니다.

    • 몽똘 2013.05.02 23:53

      아, 번역하신 책 여러 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지역사회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공적인 활동들이 벌어진다. 지역정치는 주민 스스로 지역사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의제로 만들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말이지만, 한국에서 지역정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체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역정치, 시민정치를 강조해도 그것을 실현할 주민, 시민이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나 정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체 없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봉건왕조와 식민지, 군사독재로 이어진 질곡의 한국 역사는 자기 뜻과 의견을 펼치려는 주체를 탄압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주체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계속 제한되었고, 대안적인 정치나 경제에 대한 담론은 억제된 형태로 내면화되어왔다(특히 교육은 그런 억압을 내면화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중요한 지역 의제도 언제나 중앙 정치인을 통해 드러나야 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 권한은 중앙정부에게 있다. 1991년에 지방의회가 부활되고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았지만 정치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주체는 제한되었다. 그리고 중앙권력만이 아니라 지역 내에 형성된 각종 이권구조는 지방자치제를 딛고 자신의 권력을 공식화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지방자치제 부활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지역정치의 무대는 “기성정당의 원심력과 이권 브로커들, 지역 토호들이 판을 치는 아수라장”[각주:1]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달라진 바 없다.

런 구조에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는 드러나기 어려웠고, 지방민의 목소리는 더더욱 반영되기 어려웠다. 지역정치 활성화의 전제조건이라 할 정치주체의 자존감이나 존엄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였기에 정치는 언제나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도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북돋우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지역정치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었다.[각주:2] 마을축제를 열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부방이나 대안학교, 도서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시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지역의 주체임을 자각하며 공동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정치는 조금씩 부활했고, 그 토대가 되었던 공동체들은 규모만이 아니라 내부의 밀도에서도 그 힘을 쌓아왔다.

그럼에도 지역정치가 그동안 시민의 정치주체화를 가로막아온 정치구조나 사회구조를 변화시켰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역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라 평가받는 곳에서도 지역정치는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고 자기만족적으로 진행되곤 했다. 그동안의 시도들은 높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흐름을 무조건 긍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글은 ‘연대’의 관점에서 한국 지역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려 한다. 연대라는 말이 너무 자주 사용되고 그냥 시민단체의 명칭으로도 사용되는 한국인지라 때로는 연대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권활동가 류은숙의 말을 빌면 연대는 호혜적일 뿐 아니라 기꺼이 나서려는 자세이다. 연대는 “‘내가 노동자요’ ‘내가 빈민이요’ ‘내가 채무자요’ ‘내가 바로 박해 받는 소수자요’라는 인식과 선언”이고 “‘나는 그런 처지가 아니지만’ ‘나는 다행히 빠져나가고 성공할 수 있지만’이라는 가정법을 버리고 모두가 걸려들어 숨막혀하는 그물망을 찢어보자고 달려드는 자세”를 뜻한다.[각주:3] 이 정의에 따르면, 연대란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비대칭적인 관계를 대칭적인 관계, 우정의 관계로 만들려는 입장과 실천이다. 이 말에 지역정치의 미래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호혜의 관계가 연대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만남과 우정의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역정치가 개별 공동체 내의 상호부조를 넘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1. 왜 지역정치가 등장했는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지역정치라는 개념을 조금 더 분명히 정의해야 할 것 같다. 지역정치는 제도정치로 구조화된 영역을 넘어 “경제, 문화 등 총체적인 지역의 ‘구조화’과정에서 발생”하고 “지역의 산업구조나 인구 및 계급구성, 그리고 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된 총체적인 지역의 ‘맥락’에 있으며 그 맥락을 낳게 하는 메커니즘 속에” 있다.[각주:4] 지역정치를 이해하려면 국가정치의 눈[각주:5]에 잡히지 않는 지역의 맥락, 즉 지역성(locality)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크리스텐슨(T. Christensen)은 지역성을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다섯 가지, 즉 크기, 인구밀도, 주민구성의 다양성, 지역경제구조, 사회심리(social psychology)로 정리한다.[각주:6]

먼저 크기란 주민 수를 뜻하는데, 그것이 지역정치에 중요한 이유는 크기가 조직(organization)의 필요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아는 사이라 공동체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지만, 크기가 커져서 사람들이 서로 알아볼 수 없으면 서로의 관계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절할 조직이 필요하다. 따라서 크기가 커질수록 더욱더 많은 조직이, 그리고 더욱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크기는 지역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둘째, 지역사회의 면적과 인구밀도도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농촌은 인구밀도가 낮고 비교적 자급하며 서로 떨어져서 사는 반면,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설(시장, 하수처리장, 공원, 경찰서 등)이 필요하고, 교통난과 같은 사회문제나 이해관계의 충돌가능성(주차나 소음, 쓰레기처리, 사생활 침해 등)도 높아져서 그런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할 기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구밀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고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해진다.

셋째, 주민구성의 다양성이란 인종, 계급, 문화, 직업, 나이, 성적 취향, 생활양식 등의 차이를 가리킨다. 크기가 같고 인구밀도가 동일해도 구성원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 비슷한 직업과 재산, 나이와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갈등이 비교적 적어서 지역정치의 역할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과 함께 살고 빈부격차가 아주 심하며 가치관과 연령대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면 갈등의 빈도도 높고 갈등이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래서 크기와 인구밀도가 같다 해도 내부가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정치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가 이런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처럼 주거를 격리하는 것이다. 이런 격리는 농촌보다 도시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일 다양성을 거부하는 정치인이 지방정부를 장악하면 공동체의 단일성과 동질성을 유지하려 할 테고, 그러면 공동체 자체가 격리주거지로 변해서 지역정치의 폭이 줄어든다. 반대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정치인이 나서면 지역정치의 폭이 넓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도 지역정치의 중요한 변수이다.

넷째, 앞서 다룬 크기와 인구밀도, 다양성이 ‘주민’이라는 개념으로 다뤄진다면, 경제구조는 ‘계급’을 반영한다. 농촌의 경제활동은 계급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그래서 계급정치가 지역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도시는 농촌과 달리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경제활동이 전문화되어 서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해야만 한다. 농민이나 노동자만이 아니라 공무원, 자영업자, 도시빈민 등 다양한 계급들이 서로 의존하며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하기에, 도시에서는 지역정치가 농촌보다 활성화된다. 특히 부의 축적과 집중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계급에 따라 주거와 생활공간의 격리가 이루어진다. 또한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지역 내외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경제구조가 지역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기업을 유치하거나 지역 내에 묶어두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단합하기도 하고 그런 기업을 위해 생태계나 다른 공동체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도시경제의 전문화 정도와 상호의존도, 계급구조, 지자체의 경제상황과 목표 등이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다섯째, 사회심리는 주민이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리키는데, ‘지역정체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보통 이 사회심리는 가족과 친지 같은 1차 집단과 학교·직장·소모임 같은 2차 집단에 대한 소속감으로 드러난다.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은 농촌과 소도시에서 우세하고, 2차 집단에의 소속감은 대도시에서 더 우세하다. 1차 집단이 발달된 곳에는 공동체의식과 일체감, 온정과 친밀감이 존재하는데, 이런 감정은 긍정적이지만 때때로 이런 장점이 비공식적으로 억압하고 순응을 강요하는 단점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비공식적인 영향력이 강해지면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이 강한 곳에서는 지역정치가 활성화되지 못한다. 그러나 1차 집단에의 소속감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지역정치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핵발전소나 핵폐기장, 송전탑과 같은 외부의 사안이 공동체를 자극할 경우 그런 소속감은 지역정치의 강력한 힘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가 도시화될수록 이런 1차 집단은 해체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민들은 2차 집단에 소속감을 느낀다. 도시민들의 2차 집단은 1차 집단만큼 강한 소속감을 주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공동체를 추구하게 된다. 도시민들은 비공식적인 억압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반대로 그것이 주는 보호나 소속감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공동체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주민들 간의 다양성을 배제하면 사회적인 격리로 이어져 정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그 복잡성을 이해해야 지역정치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단지 몇몇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의식만으로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지역정치가 온전히 설명되려면 여기에 중앙집권제와 서울/지역의 모호함에 관한 분석이 더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에도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은 청와대와 중앙정부에 의해 내려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권한인 예산의 면을 보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여전히 8:2이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995년 62.5%에서 2012년 52.3%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자치는 허울에 그친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정치를 근원적으로 가로막는다.

그리고 수도권의 지역사회가 지방의 지역사회가 동일한 조건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핵발전소를 비롯해 불편한 것들은 모두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이전시켰다. 수도권 주민들의 필요를 위해 지방민들의 욕구를 희생시키고,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예산을 놓고 복마전을 편다. 그래서 지역정치는 중앙정치, 지방정치라는 말과 더불어 사유되어야 하는데, 중앙정치/지역정치가 대비되는 키워드로 사용되는 반면, 지역정치와 지방정치의 연관성은 잘 논의되지 않는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지방의 지역정치는 내부식민지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해방운동이다.

또한 중앙으로의 집중은 지역성을 망각시킨다. 즉 수도권으로의 초집중구조는 지역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제임스 스콧(James Scott)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이미 ‘국가처럼’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지역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자신의 언어를 상실한 지역정치는 자신을 해명하거나 스스로 드러낼 수 없고 자신의 잠재력을 파악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문학평론가 염무웅에 따르면 1960년만 해도 서울의 느낌은 지금과 달랐다. “1960년 초봄 필자가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하여 처음 목격한 서울은 21세기인의 눈으로 본다면 여전히 농경시대적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어서, 도심에도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녔고 번화가 뒷골목을 조금만 들어가면 텃밭에서 자라는 고추와 상추를 쉽게 볼 수 있었다.”[각주:7] 그때는 서울특별시에도 농촌의 특성이 살아 있었고, 그것이 시민의 심성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역성을 상실하면서 서울은 모든 면에서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도시, 자급능력을 잃어버린 도시가 되었다. 반면에 서울과 수도권의 풍요와 그곳의 문화코드는 지방의 거주민에게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줬고 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대면하지 못한다. 타자의 상실이 자아의 상실로 이어지듯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2. 한국 지역정치운동의 현재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82%, 국토해양부 기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91.1%), 수도권의 높은 인구밀도(2011년 기준으로 서울시는 16,567명/㎢이고, 인구밀도 최저인 강원도는 89명/㎢으로 무려 186배의 차이를 보인다), 주민구성에서의 다양성 증가(대표적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이 2011년 전체 인구의 2.5%로 2010년보다 11% 증가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요소이지만, 국가/도시정치체제의 비민주성과 억압성, 계급정치의 배제, 연고정치의 활성화는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여러 구조적인 한계들을 안고 있지만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한국의 지역정치는 조금씩 활성화되어왔다.

어떻게 보면 여러 제한요인들에도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는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호는 그동안의 도시공동체운동을 “근대적 도시화과정이 만들어낸 부작용들을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도시화가 만들어낸 조건과 바탕 위에서 공동체적 삶의 원리를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라 정의한다. 한국의 도시공동체는 단순히 전통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시대적 맥락과 조건에 맞는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각주:8] 그러면서 정규호는 한국 도시공동체운동의 흐름과 특성을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 ‘적응형’ 도시공동체운동(1960~1970년대), 거주공간의 강제해체과정에 반발한 ‘저항형’ 도시공동체운동(1980년대), 도시민들이 스스로 생활세계를 지키고 가꾸려는 ‘방어형’ 도시공동체운동(1990년대), 국가나 시장과 다른 대안적인 모델을 만들려는 ‘창조형’ 도시공동체운동(1990년대 후반)으로 보고, 최근에 등장한 도시공동체운동의 성격을 ‘협력형’이라 정의한다. 이런 공동체운동에서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이 기계적으로 구분되기는 어렵고, 하나의 공동체 역사에도 다양한 기운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서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인 빠른 속도의 대도시 형성과 급속한 인구증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높은 인구밀도, 그에 따른 주민구성의 다양성의 증가, 농촌의 몰락, 1차 집단의 빠른 해체와 소속감의 상실, 수도권으로의 집중 등이 도시공동체의 형성과 지역정치 활성화를 자극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알려진 성미산마을을 비롯한 수도권의 도시공동체들이 지역정치에 개입해왔다.

반면에 농촌의 지역정치는 도시공동체운동의 그늘이라 얘기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인구와 농업의 쇠락, 정체성의 상실, 농협이나 관변단체들의 지역사회 장악력 등은 지역정치의 활력을 빠른 속도로 감소시켰다. 반면에 이주민의 증가에 따른 다양성과 공동체의 쇠락이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지방정부가 지역정치를 자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군에서처럼 마을만들기운동이 활성화되기도 하고, 충청북도 옥천군처럼 주민들 스스로 지역언론을 만들고 지역비전을 세우며 삶을 기획하는 곳도 등장했다.

아울러 도시와 농촌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잇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생협연합회로 ‘한살림’, ‘아이쿱생협연합회’,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 ‘두레생협연합회’ 등이 활동하고 있고, 안성·원주·인천·대전 등지의 의료생활협동조합, 원주의 ‘밝음신협’이나 성남의 ‘주민신협’, 서울의 ‘논골신협’과 같은 신용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들은 지역사회를 근거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의 주요한 주체이다.

이런 활동들에서 여러 가지 희망을 찾을 수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지역정치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을 극복하고 있다. 정치는 더 이상 정치인들의 독점물일 수 없고, 주민들은 지역의 전문가이자 지역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며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주민/시민단체나 주민자치센터, 생협 등에서 활동하며 시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의기구마저도 주민의 ‘대표자’가 아닌 ‘대리인’ 개념으로 변형되고 있다.

둘째, 지역정치는 추상적인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욕구를 반영하면서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기존의 국가정치가 대의(大義)를 빌미로 국민을 동원하려 했다면, 지역정치는 보육이나 청소년교육, 보행로, 미세먼지 등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를 주민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고 참여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주민들은 참여의 비용이나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역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의 몇몇 지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의 경우, 합리적인 예산편성만이 아니라 주민참여를 자극하는 매개로도 활용되고 있다.

셋째, 지역정치가 국가정치의 변화를 이끄는 ‘정치의 역전현상’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8년에 시행된 정보공개법은 1991년에 제정된 청주시의 행정정보공개조례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가의 법률이 지역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조례가 법률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단지 정보공개만이 아니라 학교급식조례나 주민소환조례, 보육조례, 청소년인권조례, 여성발전기본조례 등 국가차원에서 시행되지 않았던 혁신적인 조례들이 법률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런 지역정치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거나 대표를 선거에서 당선시키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래빈(D. Levine)의 말처럼 지역정치의 “진정한 도전은 빈민을 위한 선택이나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진정한 도전은 민중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그들을 신뢰하며 그들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각주:9] 주민은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거나 서툴 뿐이었고, 기성체제에서 배제되어온 주체들(subaltern)이 지역정치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빈민계층이나 가정에 얽매여온 주부들은 경험적 지식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에 여러 구조적인 조건들이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해왔음에도 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사회의 변화가 지역정치에 또 다른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3. 지역정치의 과제는?

사회학자 바우만(Z. Bauman)은 공동체주의를 이렇게 비판한다. “공동체주의 복음이 말하는 공동체는 큰 글씨로 쓴 집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인적 경험의 문제가 아닌 아름다운 동화에 더 가까운 그런 종류의 집이다. (…) 한마디로,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의 화폭에는 대체로 어두운 색깔이 없어야 한다.”[각주:10] 바우만은 공동체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섞일 수 없는 것을 배제하고 적대를 제거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바우만은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생활정치가 사유화되고 있는 공적인 영역을 재점유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바우만의 비판을 한국에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지역공동체가 이질적인 것이나 적대를 배제하거나 제거하려 든다는 점, 제도정치와 공적 정치영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지역정치를 방해하는 정치․사회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또는 아직 그만 한 힘을 모으지 못했다는 점)은 고민할 만한 내용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런 내용을 살펴보자.

서울특별시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의 모델이 되기 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성미산마을의 주민이자 주요한 화자(speaker)인 유창복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운동으로, 마포두레생협, 성미산학교, 동네부엌 등의 마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각주:11] 유창복의 설명에 따르면 성미산마을이라 불릴 수 있는 기관은 자체기관 2곳, 교육 9곳, 경제 12곳, 문화․동아리 11곳, 환경 3곳, 복지 1곳, 미디어 1곳, 기타 2곳, 그리고 함께하는 단체 18곳이다. 그러니 총 60곳의 기관들이 성미산마을이라 불리는 곳을 구성하고, 이 마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 집약되지 않고 촘촘한 관계망으로 구성된다.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할 다양한 기관들을 만들어온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2007년 국토해양부의 시범마을사업으로 선정되고 ‘(사)사람과 마을’이 만들어진 뒤 성미산마을은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이런 활동과 사업들을 기반으로 지역주민들의 결속력이 강해졌고 그만큼 지역정치도 활성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미산마을이 유명해지면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1세대에서 3세대까지 세대가 구분될 만큼 다양성이 증가되었다. 그렇게 마을의 크기가 커지고 주민구성의 다양성이 증가하면 내부정치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세대가 구분되며 1세대가 지역사회의 주요한 결정을 이끄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판단하기 어렵다. 외려 2차 집단의 정체성이 1차 집단의 정체성처럼 굳어지는 현상, 즉 비공식적인 의사결정절차가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마을이 외부자원의 의존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런 1세대의 주도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성미산마을의 주요 자원이 정부나 공기업, 민간공익재단, 시민단체들의 프로젝트에서 들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성미산마을을 대표하던 공동체라디오 마포FM, 사람과 마을, 성미산마을배움터, 성미산마을극장 일자리, 성미산학교사회적일자리사업부 등은 외부자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각주:12] 그럴 경우 마을의 역사와 상황을 잘 아는 1세대의 발언력이 강해지고 화자의 역할도 1세대가 맡게 된다. 1세대가 이런 경향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외부 자원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런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능력들이 축적되면서 마을을 대변하는 주요한 화자들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미산 마을의 외형이 커졌지만 그만큼 내부의 결속력이 커졌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성미산마을의 주요한 기관 중 하나인 마포두레생협이 확장되면서 내부의 관계망보다 확장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그런 의문을 반영한다(대표적으로 두레생협서울이사회 구성과 관련된 논란).[각주:13]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가 불거지고 갈등하는 현상도 그런 결속력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지역정치의 원래 목적에 따르면 이런 경향이 바로잡혀야 하지만, 대표에 집중되는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에 이 경향은 수정되기 어렵다. 그리고 도시에서 마을과 공동체라는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상품화되는 현상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공동체로 소문이 나면서 주거비용이 높아지는 현상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또 다른 모범으로 소개되는 장수마을에서도 마을공동체로 소문이 나면서 집주인들이 세를 올려 세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각주:14] 이런 현상은 마을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도 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주거불평등이 심각한 한국사회, 특히 수도권에서 공동체를 소비하는 현상은 공동체가 격리방식을 택하며 지역정치를 회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성미산마을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는 말은 연대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성미산마을이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관계망을 형성하여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을 못 받는다는 지적에,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각주:15]고 답하는 것은 연대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다가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가서는 것이, 그리고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연대라면,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관점은 연대의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스스로의 변화’만 강조하는 것은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거나 ‘공동체’로 ‘배타성’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증가가 새로운 형태의 격리를 낳는다면 그것은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이어도 그 역량이 고루 분배되고 새로운 정치주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정치의 힘은 축소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지역정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제도정치에의 관여나 공적 공간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성미산마을이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2012년에 홍익대 재단이 성미산마을의 형성 계기인 성미산을 개발해서 학원을 이전한 것도 일종의 징후이고, 성미산마을이 관계망으로 이어진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장악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 아 선거구에서 진보신당 의원이 당선되기는 했지만 성미산마을이 내세운 후보는 마포 사 선거구에서 떨어진 점도 그런 점을 반영한다.

이런 문제가 도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위대한 평민’, ‘더불어 사는 평민’을 양성하는 풀무학교로 유명한 곳이다. 풀무학교는 소규모로 게토화된 대안학교와 달리 지역과 학교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학교는 지역과 유기적 생활권을 이루는 곳입니다. 지역은 열려진 학교이고 또 학교는 지역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도 자주 했던 말 같습니다. 학교 안에 작은 사회를 만들자, 교육사를 보면 그런 주장을 한 이도 있었지만 제대로 실현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실제 사회에서 더 생생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지역과 유리되면 학교는 산 지식의 생동감을 잃고 스스로 갇히게 됩니다. 지역의 교육력을 활용하고, 또한 학교를 움직이는 원리가 지역사회를 움직일 때, 지역과 학교는 서로 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그 의지를 느낄 수 있다.[각주:16]

그래서 풀무학교는 단순히 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풀무신용협동조합’과 ‘풀무생협’을 만들어 지역경제를 뒷받침했으며, <홍성신문>이라는 지역언론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국 정농회 홍성지부’, ‘지역사회연구회’, ‘갓골어린이집’, ‘풀무학교생협’, ‘밝맑도서관’, ‘지역센터 마을활력소’ 등을 만들어 마을거점들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풀무학교 출신들이 홍동면에 정착해 다양한 지역 활성화 실험들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새로운 농촌’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품은 풀무학교의 실험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각주:17]

그런데 이런 작은 실험들을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갈 방법은 50년을 넘긴 풀무학교 역사에서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이를 가공하여 생협을 통해 유통하는 체계가 마련되고 있지만,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물류체계가 농업을 살릴 방법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현행 식품위생법과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유통되는 식품들은 법이 허가한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시설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들은 대부분 공장 중심의 기준들이다. 이웃집 할머니의 손맛이나 장맛도 공간과 시설이 받쳐주지 못하면 ‘공식적으로’ 유통되지 못한다. 농업이 아닌 농사의 관점에서 보면 농촌의 힘이 진정 강해지고 있는지, 풀무학교의 이상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농민은 WTO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곧 아무리 노력해도 턱없이 값싼 수입농산물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았고, 더욱이 우리의 작은 농토는 대수출국의 1/10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수입농산물은 여기저기 범람하였고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를 피해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다녔지만, 그러나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나온 다른 동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라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이것은 특정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한국 농촌의 보편적인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풀무학교의 힘이 강하지만 한국에서 섬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외부와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이다. 홍동면의 경우 외부에서 풀무학교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주민구성의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농민이라는 계급이 붕괴되고 있기에 농촌은 지역정치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성 증가가 실제로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는지, 풀무학교의 이상이 지역사회로 스며들고 있는지 아니면 고립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점검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인구밀도가 낮고 1차 집단의 영향력이 강한 농촌사회는 지역정치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점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점검이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 내부의 상황을 역대 선거에서의 지지율로 가늠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선거통계를 통해 홍성군의 선거결과를 살펴보면, 새누리당(舊 한나라당), 자유선진당(또는 국민중심당) 등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지난 10년 이상 꾸준히 70, 80%를 유지했다. 그래서 다른 정당들은 후보를 잘 내지 않는 곳이다. 비례대표 지지도를 봐도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06년 지방선거 기초 80.84%, 광역 76.97%, 2008년 총선 73.84%, 2010년 지방선거 기초 76.77%, 광역 72.29%, 2012년 총선 64.75%이다. 보수정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지방선거의 경우 홍동면의 지지율이고 총선이 홍성군 전체의 지지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홍동면의 지지율 변화가 홍성군의 변화를 앞지른다고 보기 어렵다.

대안적인 정치세력의 필요성 때문인지 2012년 ‘녹색당’이 창당할 당시 홍동면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당원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불렸다.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특히 혈연·지연의 연고가 강한 농촌의 특성을 감안하면 ‘정치적인 커밍아웃’이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 총선 당시 녹색당의 득표율은 홍동면의 당원 숫자만큼도 나오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홍동면에서는 매달 정기적으로 당원모임이 열리고 일상정치활동을 위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지만,[각주:18] 좋은 담론이 적대적인 정치현실과 어떻게 충돌하고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내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풀무학교의 역사는 아직도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다. 적대가 사라진 정치는 적당한 정치적 배분을 낳을 뿐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역정치의 한계가 단지 도시와 농촌이라는 공간의 문제는 아니고 협동조합운동 내부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생활협동조합과 달리 한국의 생협들은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는다. 일본 ‘가나가와 네토’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각주:19]을 강조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간혹 생협의 이사나 이사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되는 경우는 있지만 제도정치 참여가 생협의 주요한 활동으로 논의되지는 않고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4조는 폐지되지 않았고, 2012년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에서도 공직선거 참여가 금지되었다. 생협의 주요무대가 지역사회이고 지방정부가 그 지역의 질서를 짜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조합원의 수가 이미 60만 명을 훌쩍 넘겼더라도 그 힘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생협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외부 권력의 결정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초기에 생협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몸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각주:20] 생협의 비정치성은 정상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것이라 얘기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생협의 대중적인 확산을 모색하는 생협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만으로 가입하는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생협 실무자들은 정치적인 개입을 할 경우 외부의 탄압을 받거나 내부적인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고, 우리가 현재 사는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세계화시대의 흐름은 점점 협동보다 경쟁과 독점을 향하고 있고, 나오미 클라인(N. Klein)은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르며 이 세력을 제어하는 것을 향후 정치의 주요한 과제로 지목한 바 있다.[각주:21] 이런 구조적인 변화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생협운동의 정치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재 소비자생협운동의 현실을 보면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7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인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지키고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생협들이 물류 중심의 경쟁구조를 갖춤으로써 매장의 입지를 두고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일이고, 기존의 협동조합이 새로운 협동조합의 구성을 돕고 지원하는 사례도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4. 연대는 불가능한가?

다양한 지역운동 사례들에서 드러나는 이런 경향들은 향후 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독점하는 세력에게 맞설 힘을 결집할 연대를 가로막는다. 수많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한국에서 연대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학자 라이너 촐(Rainer Zoll)은 한국사회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다. “생활세계를 통해 바라본 한국인의 상호관계에 대한 인상은 매우 긍정적”이나 “특정한 사회적 집단이 다른 집단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사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동차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잘 조직화된 남성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 두 집단이 급진적 노동조합에 함께 속해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국에는 열심히 투쟁하는 두 개의 노동조합 연맹이 있고, 이 둘을 합쳐 정확히 노동자의 12%가 조직되어 있다. 그 외의 사례로는 사기업 노동자와 공무원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있다. 사회에 관심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연대가 대부분 ‘집단연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 즉 사회집단이 서로 결속하지만 그 자체로는 닫혀 있으며 다른 집단과 날카로운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22] 지역정치 역시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지역과 마을을 만든다 해도, 어느 누구도 이런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연대는 바로 이런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절망적인 노력이다. 그런 노력 없이 지역정치의 활성화나 대안을 논하는 것은 섣부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진보신당의 이재영은 2008년 5월, <시민사회신문>에 「‘풀뿌리’는 기만이다」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 칼럼에서 이재영은 “한국에 소개돼 있는 ‘풀뿌리’란 주로 미국과 일본의 탈사회주의적 비정치 사회운동에 다름 아니”므로 “풀뿌리라는 것이 이미 인민의 파괴적 도전을 완충시키는 ‘체제의 풀뿌리’로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필자는 이 칼럼을 비판하는 「‘풀뿌리 없는 진보’야말로 기만이다」라는 반박기사를 <시민사회신문>에 실었다. 그 글에서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풀뿌리의 정치전략이 탈사회주의, 비정치라는 해석은 어떻게 가능”한지, “오히려 그런 운동이야말로 정치적인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많은 지역단체 활동들이 중앙/지방정부의 프로젝트나 민간재단의 프로젝트에 의존하면서 그런 활동들은 ‘파괴적 도전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풀뿌리 활동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자신이 가진 급진적 전망을 포기하고 다가올 파국을 막는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말했듯이 다가오는 파국이 사회성 형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각주:23] 한국의 지역정치는 파국을 피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상호부조와 연대는 정치적인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패한 국가 내에 건강한 지역사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을과 공동체도 그곳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라는 장소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소성이 중요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면 지역 내외부의 다양한 정치활동과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연대는, 타자가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내가 타자의 삶을 지탱하는 좋은 관계는, 단순한 이해관계나 계산능력만으로 맺어질 수 없다. 그것은 공통성을,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통감각(common sense)을 필요로 한다. 성장만을 강요하는 시대에 그런 감각을 회복하려면 건강한 자기성찰이 필요하고, 건강한 자기성찰 없이 지역정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감각을 열어놓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여전히 중요하다.

하승우

현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서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풀뿌리민주주의, 아나키즘, 지역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쓴 책으로 <민주주의에 反하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등이 있다.

  1. 최경송, 「대안정치의 씨앗 뿌리기」, 시민자치정책센터 지음,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갈무리, 2002, 199쪽. [본문으로]
  2. 한국청년연합회(KYC)가 발행한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시금치, 2005)은 서울시 도봉구의 ‘느티나무방과후’, 경기도 일산시의 ‘야호 어린이집’, 서울시 도봉구의 주부학습동아리 ‘즐멤’, 경기도 광명시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시 강북구의 녹색가게 ‘풀빛살림터’,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평생학습원’, 대전시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마을공동체, 경기도 의정부시의 ‘꿈틀자유학교’, 인천시 연수2동의 주민자치센터, 서울시 금천구의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등 11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발행한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2008)은 한국 주민자치운동의 모범지역을 경기도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수유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지금은 ‘녹색마을사람들’로 명칭 바꿈), ‘대전여민회’와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충청남도 천안시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남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 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원주시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지금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강원도 사북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시 반송의 ‘희망세상’ 등 8곳으로 정리했다. [본문으로]
  3.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 낮은산, 2012, 177쪽. [본문으로]
  4. 김왕배, <도시, 공간, 생활세계>, 한울, 2000, 271~272쪽. [본문으로]
  5. 제임스 스콧, 전상인 옮김, <국가처럼 보기>, 에코리브르, 2010 참조. [본문으로]
  6. Terry Christensen, Local Politics: governing at the grassroots, Wadsworth Publishing Company, 1995. [본문으로]
  7. 염무웅, <자유의 역설>, 삶창, 2012, 173쪽. [본문으로]
  8. 정규호, 「한국 도시공동체운동의 전개과정과 협력형 모델의 의미」, <정신문화연구> 제35권 제2호, 2012. 6. [본문으로]
  9. Daniel H. Levine, Popular Voices in Latin American Catholic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p. 370. [본문으로]
  10.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액체근대>, 도서출판 강, 2009, 274쪽. [본문으로]
  11. 유창복, <우린 마을에서 논다>, 또하나의문화, 2010 참조. [본문으로]
  12. 조정래, 「서울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추진방향 연구」, 입법담당관 정책보고서 제3호(2012. 4. 18). [본문으로]
  13. 마포두레생협 홈페이지(http://www.mapocoop.org/) 조합원 의견나눔 게시판 2010년 3월 부분 참조. [본문으로]
  14. 박학룡, 「위태로운 세입자」, <시사인> 2012년 12월 29일자(제276호). [본문으로]
  15. 기획대담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09년 11․12월호(제41호). [본문으로]
  16. 홍순명,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 이야기>, 내일을여는책, 1998, 55쪽. [본문으로]
  17. 백승종,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궁리, 2002, 332쪽. [본문으로]
  18. 강국주, 「‘착헌 정치’란 가능할까?」, <지역과 학교> 통권 26호, 2012년 겨울호. [본문으로]
  19. 요코다 카쓰미, 나일경 옮김,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 생활클럽 운동그룹과 풀뿌리 민주주의운동의 모델 만들기>, 논형, 2004, 200쪽. [본문으로]
  20. 염찬희, 「iCOOP생협 10년의 역사와 활동」, iCOOP생협연대 지음, <협동, 생활의 윤리: iCOOP생협 10년사>, 도서출판 푸른나무, 2008, 17~18쪽. [본문으로]
  21.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쇼크 독트린>, 살림Biz, 2008 참조. [본문으로]
  22. 라이너 촐 지음, 최성환 옮김,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한울 아카데미, 2008, 14~15쪽. [본문으로]
  23.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이 폐허를 응시하라>, 도서출판 펜타그램, 2012 참조. [본문으로]
  1. 보스코프스키 2013.04.30 22:56

    드디어 쓰셨네요... 예전에 많이 보던 도서였는데 이 도서에 실린 하 선생님 문서를 뵙고 싶었습니다.

1. 못 살겠다 갈아보자?

 

간디의 나라로 익숙한 인도에서 총파업이 벌어졌다. 지난 2013년 2월 20, 21일, 약 1억 명의 인도노동자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조치에 대항해서 48시간 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인도 전체 인구가 약 11억 명이니 그중 1/10이 파업에 참여한 셈이고,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파업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대체 누가 이런 거대한 파업을 이끌었을까? 인도에도 여러 노조연합체들이 있는데, 이번 파업에는 노동조합의 규모와 상관없이 석유, 은행, 보험, 통신, 광산, 운송, 보건, 농업 등의 대다수 노동조합들이 힘을 합쳐 총파업에 나섰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함께 많은 지역의 시장, 상점, 관공서, 학교, 은행, 보험사들이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차량이 불에 타거나 공장에 불이 나기도 했다.

 

성자같은 이미지의 나라 인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시간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인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주요한 산업을 국유화했고 협동조합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았다. 1904년 협동조합 신용회사법이 제정되고, 국가의 주요한 경제계획에도 협동조합과 관련된 내용이 반드시 포함될 정도였다. 그런데 1991년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인도는 국제통화기금(IMF)에게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요당했다. 인도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바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국영기업을 매각했다. 협동조합에게 저리의 자금을 제공했던 정책도 폐지되고 협동조합은 취약계층의 고용을 창출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을 입안했던 사람이 지금의 만모한 싱 총리이다. 싱 총리의 구조조정으로 경제는 회생되는 듯 보였지만 사회양극화는 매우 심각해졌고, 인도 농가는 몰락하고 있으며,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파업 전인 2012년에도 총파업이 있었다. 외국유통자본이 51%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는 대형유통점의 설립 허가와 유류 가격 인상을 반대하는 5천 만 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다. 

 

2. 총파업은 성공했을까?

 

이번 총파업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루피)가치가 폭락하는 반면 기름/가스값이나 곡물/채소값이 엄청나게 뛰는 생활고를 문제삼았다. 그리고 우량한 공기업을 민간기업에 매각하려는 시도에도 반대했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들은 물가인상에 대한 통제,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사회안전조치 강화, 모든 노동자에 대한 연금과 물가수당 지금 등 10가지 개혁조치를 정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인도정부가 이 총파업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인도정부는 이 총파업이 국가경제를 악화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킨다며 비난했고, 이 파업에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정부는 불통(不通)이다.

 

그래도 2014년에는 인도의 총선이 있다. 싱 총리는 이미 2012년 말에 총선에 대비해 젊은 층을 대폭 임용하는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고, 2013년 1월부터 주(州)정부나 군청 등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빈민층 은행계좌에 직접 정부보조금을 입금해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미 선거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2012년 말, 인도 5대 공업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 구자라트 주의 총선에서 극우 성향인 제 1야당 인도국민당(BJP)의 모디가 3선 연임에 성공하며 2014년 선거를 노리고 있다. 구자라트 주의 선거에서 인도국민당은 전체 182석 중 115석을 차지해 여당인 국민회의당을 2배 이상 앞섰다. 2014년 총선에서 BJP가 승리하면 구자라트가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인도의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의회 선거(연방하원 545석 중 가장 많은 80석 차지)서는 사회주의 정당인 사마지와디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했고, 불가촌 천민을 대변하는 국민사회당이 2위, 여당인 국민회의당은 4위를 차지했다.

 

심각한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입안했던 정권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안이 극우성향의 정당으로 몰리는 건 인도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그리고 공산당을 비롯한 인도의 기존 좌파들은 현정부와 비슷한 성장주도의 전략을 계획함으로써 차별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인도는 한국의 미래일까?

 

어쨌거나 인도의 노동자들은 대규모 총파업을 벌이며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일까? 전국의 장기파업 사업장을 살펴보면, 흥국생명과 코오롱 노조의 파업일은 이제 3,000일에 다가서고 있다. 영남대의료원과 콜트콜텍의 파업은 2,000일을 넘어섰고, 재능교육 파업은 곧 2,000일을 넘긴다. 쌍용자동차, 쓰리엠, 유성기업 등 장기파업장들이 줄을 잇는다. 해결방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철탑에 올라간 최병승, 천의봉씨의 철탑투쟁은 160일을 넘어섰다. 160일이면 5달을 넘는다. 철탑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한다. 봄이 오면 철탑에서 내려올 수 있으려나...

 

인도의 사례에서 보이듯 전체적인 경제흐름과 협동조합의 현실은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구조조정을 받아들였고, 경제는 성장하지만 사회양극화는 더욱더 심각해지는 모순이 불거지고 있다. 실질임금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하지만 총파업은커녕 이런 흐름에 맞서는 시도들도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다.

 

인도의 총파업에서 우리의 어떤 미래를 엿볼 수 있을까?

  1. 2013.05.20 01:47

    비밀댓글입니다

  2. 인도 전체 인구를 고려하고 이 파업에 조직된 노동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민들이 동참하신 걸 보면 1억이라는 숫자가 크지만 가능한 숫자인 듯 싶네요.
    그리고 인도의 협동조합운동은 간디나 판차야트 운동 등에서 그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22134718 이 글이나 인터넷 검색 해보시면 자료를 찾으실 수 있어요.
    불가촌천민은 오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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