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전쟁위기는 거품인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정전협정은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線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適對 군대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며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남북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전쟁행위를 중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전협정문에는 중국, 북한, 미국이 서명했고, 한국은 서명하지 못했다. 즉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한반도 내의 전시작전권은 한국정부에게 있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 협상을 거쳐 2015년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을 예정이지만,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준비가 없으면 이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지난 3월 14일 북한은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다른 협정들과 달리 정전협정은 특성상 쌍방이 합의하여 파기할 성격의 협정이 아니며 어느 일방이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백지화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미 양국은 “상호 합의한 정전협정에 대해 특정 일방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철회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밝힌 상태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계속되어온 한반도의 긴장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 차원에서 대북결의안이 채택되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사실상 조선정전협정은 지난 60년 동안 지속해온 미국의 체계적인 파괴행위와 그를 비호·두둔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부당한 처사로 이미 백지화되고도 남은 상태였다”고 비난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이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진행하자 군사도발행위로 규정하며 전쟁불사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 최고사령부 대변인은 "우리도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하여 제한없이 마음대로 정의의 타격을 가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 대업을 이룩하자는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 하원은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한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날 포털 업체의 검색어 1위는 화장품 업체의 50% 할인 소식이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3차 핵실험 이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불안하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이 35.7%였다. 그러면서 ‘안보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안보불감증에서 평화감수성으로

 

그런데 ‘안보불감증’이라는 말은 정권이 자신의 생명 연장이나 여론 전환을 위해 사용했던 말이다. 국방이나 안보라는 영역을 정부의 고유영역으로 묶어 놓고, 정부가 제기하는 사안들에 시민들의 무조건적인, 어느 면에서는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말이 안보불감증이었다. 따라서 그런 틀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이미 어떤 편견을 전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9․11 테러 당시 미국정부가 그런 문제에 얼마나 무능했는가를 지적한다. “부시 행정부가 정신을 수습하자마자 선택한 가장 긴급한 작전은, 미국을 테러리스트의 손에서 되찾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서 되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대체로 성공했다.” 그리고  사실상 부시정부의 애국법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를 통제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안보불감증이 아니라 평화감수성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평화 역시 타인과의 적대나 대결이 아니라 연대와 공감을 통해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의 경계로 갇히지 않는 감수성을 일깨우고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적대나 전쟁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각하는 과정에서 평화감수성은 길러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남북한의 문제 역시 적대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해결하려면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심과 살림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동향 7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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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협동조합연대는 누구인가?

2013년 1월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협동조합연대’ 창립총회가 열렸다. 대표 발기인으로는 한국협동조합연구소를 만든 황민영 씨를 비롯해, 팔만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조정현 신부, 이길재 전 농수산TV 회장, 오영숙 전 세종대 총장,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 배일도 서울지하철노조 초대 위원장, 김애실 마중물연대 공동대표, 조윤명 전 특임장관실차관,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한국협동조합연대는 앞으로 협동조합 운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협동조합 아이템 개발, 창립지원 컨설팅, 교육 및 운영 지원 등 협동조합을 위한 민간지원사업을 펼칠 예정임. 특히 사회적 소외계층과 공적 부문에 협동조합을 건설해 시장경제와 조응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데 역점을 둘 계획이라 한다.

이날 행사에서 박계동 사무총장(前 국회 사무총장)은 “우리 민족의 피에는 협동조합의 정신이 살아있다. 혹자는 협동조합이 서구에서 기원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호혜적 이타주의에 입각하여 공동체 정신을 키워왔던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보면 협동조합은 우리에게 맞춤운동 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두레’로 두레운동은 보릿고개를 넘고 새마을운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에너지 원천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날 행사에는 축사자로 고흥길 특임장관과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등이 참석했다.


- 한국협동조합연대와 제 2의 새마을 운동

3013년 3월 9일, 임헌조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와 <데일리안>의 인터뷰(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28222)를 보면, 기사 제목은 “박원순의 협동조합, 관주도하며 볼로냐 꿈?”이고 “좌파들의 독무대 폐단”, “선거에 이용할 생각이라면 수천개가 생겨나도 제역할 못한다”는 자극적인(?) 부제가 붙었다. 인터뷰 내용에서는 국민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관이 나서 주도한다면 지금의 서울시처럼 좌파 조직에만 협동조합을 몰아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인가한 협동조합들을 대다수 좌파 세력이 장악하고 있고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실무팀에 희망제작소나 아름다운 가게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아울러 반값식당을 반시장주의라고 보는데, “더 큰 문제는 좌파 내부에서 협동조합을 선거조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한 점”이라고 함. 임헌조 이사는 “협동조합을 좌파가 장악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협동조합에 대해 올바른 의미를 규정하고 발전시키기보다 조직화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며 “민주당 원외 지구당 협의회장이 당원에게 협동조합을 홍보하고 있고, 민주노총 등에서 제안서 형태로 발표돼 통용된 일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임헌조 이사는 “국민 다수는 모르는 채 일부 좌파 활동가만 알고 있는 협동조합이 자라나고, 수혜를 받은 활동가들이 국민 속에서 협동조합이 아닌 사상을 이식시키는 폐단으로 이어진다면 앞으로 수년 내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이 수천개가 생겨나도 결코 우리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헌조 이사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사무처장을 맡았던 사람으로 2013년 설 특사 55명에 포함되어 특별복권되었다. 2008년 대통령선거 때 뉴라이트전국연합 홈페이지와 신문광고로 이회창 씨를 비난하고 이명박 씨를 지지하는 글을 올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람이 한국협동조합연대의 이사를 맡은 것으로 그 단체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터뷰가 한국협동조합연대 전체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의중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연대는 <한국협동조합기업연대>에서 명칭을 바꿨고, 제 1차 협동조합 전문가 초청 간담회 후원을 300여개 보수 성향 시민단체로 구성된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맡았다.

이런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의 ‘창조 경제’와 ‘제2의 새마을운동’ 논의가 있다. 2013년 2월 1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제 18차 간사단 회의에서 안상훈 고용복지분과위원은 실업 해결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조경제를 시장경제에서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 경제까지 개념을 확장시”키자고 제안하며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공동체적인 경제주체들을 활성화시키는 ‘두 번째 새마을운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공동체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인사에서 두레와 같은 상부상조의 미덕이 나라를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한 점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 운동의 확대를 읍면동 조직을 갖춘 새마을운동중앙회가 맡고, 이를 위해 새마을운동중앙회의 위상과 조직을 정비하겠다고 인수위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농림수산부도 2월 16일 인수위 업무보고 때 “제 2의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난 2011년부터 추진 중인 `함께 하는 우리 농어촌 운동'을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확대 개편”해서 “농어촌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주민들 스스로 역량을 결집해 마을의 발전을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수위는 복지 분야, 예를 들어 노인과 장애인시설 등을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도록 하는 규정을 완화해 민간이 운영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두 흐름에서 공통된 지점, 즉 ‘두레’에 대한 강조를 찾을 수 있다. 인수위와 한국협동조합연대 모두 두레를 정신으로 지목했고, 박계총 사무총장은 “두레운동은 보릿고개를 넘고 새마을운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에너지 원천”이라고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두레를 언급했다. 이는 창조경제의 방향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협동조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예측할 수 있다. 정부가 보장하지 못하는 일자리나 복지, 안전 등을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고 정부는 자원을 지원하되, 새마을운동중앙회나 한국협동조합연대가 이런 지원을 받을 주요한 창구가 될지 모른다. 반면에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일궈온 단체들이 2012년 12월 6일 만든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는 들러리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듯 싶다.

 <모심과살림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동향' 7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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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는 행정구역개편, 실제로는 지방자치의 퇴보

이명박 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공식 의제로 만든 시기는 2009년 8월이지만 그와 관련된 논의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읍면동’으로 이어지는 지방자치구조를 실제 인구 규모와 생활권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논의를 받아들여 2009년 국회 특위를 만들고, 2010년 10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신설되어 2012년 6월 30일까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로 했지만 시기가 늦춰져 2013년 5월까지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지방분권 강화’에 관한 개편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달리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런 흐름에 냉소적이다. 현실적으로 단체장들은 행정구역이 조정될 경우 자기 지역이 사라지고 선거구가 변할 거라 우려한다. 그래서 1994년에도 시․군 경계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례로 생활권이 괴산군 청천면에 속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부 마을을 괴산군에 편입하려하자 경상북도가 반발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도 행정구역 개편 문제를 추진중이다. 유정복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꿀 예정임)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주민들의 편의, 국가 경쟁력, 지역의 정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합리적 개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서 자치구 의회 폐지론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 http://www.clar.go.kr/ )가 2013년 2월에 발표한 자료집을 보면,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지방분권 강화’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내세웠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단체장과 지방의회 둘 중 하나를 임명제로 바꾸거나 폐지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참고자료] 2012년 4~5월,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가 실시한 38개 시군 통합에 관한 여론조사결과

구분

통합안

자치단체

응답(%)

1

수원-화성-오산

수원

61.7

38.3

오산

67.4

32.6

화성

42.4

57.6

2

안양-군포-의왕

안양

79.9

20.1

군포

59.7

40.3

의왕

40.3

31.5

3

의정부-양주-동두천

의정부

63.1

36.9

양주

51.8

48.2

동두천

71.7

28.3

4

동해-삼척-태백

동해

60.4

39.6

삼척

58.3

41.7

태백

49.5

50.5

5

속초-고성-양양

속초

85.8

14.2

고성

24.2

75.8

양양

34.6

65.4

6

음성-진천

음성

71.5

28.5

진천

36.2

63.8

7

괴산-증평

괴산

88.4

11.6

증평

12.9

87.1

8

논산-계룡

논산

79.5

20.5

계룡

22.3

77.7

9

전주-완주

전주

89.4

10.6

완주

52.2

47.8

10

군산-김제-부안

군산

61.1

38.9

김제

48.7

51.3

부안

51.8

48.2

11

목포-무안-신안

목포

85.7

14.3

무안

47.6

52.4

신안

47.1

52.9

12

구미-칠곡

구미

68.3

31.7

칠곡

63.8

36.2

13

창원-함안

창원

42.6

57.4

함안

75.7

24.3

14

진주-사천

진주

71.1

28.9

사천

35.7

64.3

15

통영-거제-고성

통영

63.3

36.7

거제

24.4

75.6

고성

52.9

47.1


- 당신들의 지방자치..

앞서의 자료집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도를 광역자치단체로 계속 두되, ‘광역행정의 중심기관으로의 기능 재정립’, ‘국가기능의 도 이양 확대’, ‘도 기능의 시․군 이양으로 행정계층간 기능의 적정 분배’, ‘사무 중복 해소’ 등에 중점을 둔다.

2)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풀뿌리 지방자치 강화, 주민의 민주적 참여의식 고취,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주민자치회에 실질적 권한 부여’, ‘인구 등 지역 여건을 고려한 주민자치회 운영의 자율성 보장’, ‘시범실시 및 단계별 추진’에 중점을 둔다.

3) ‘지방분권 강화’: 21개 부처, 5,145개 기관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사무의 지방 이양’,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연계․통합’, ‘자치경찰제 실시’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추진위의 안은 ‘특별시 자치구’의 경우 ‘구청장 직선, 의회 미구성’에 방점을 두고 ‘의회 구성, 구청장 임명’, 현행 유지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즉 구청장 직선제나 지방의회 구성 중 어느 하나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서울시의 구청장 직선제나 구의회 구성 둘 중 하나가 폐지된다.

그리고 광역시 자치구․군 개편안의 경우 시장이 구청장․군수를 임명하고 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방안이 1순위이고, 2순위가 특별시처럼 구청장․군수 직선, 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방안이다. 이건 지방자치제도 부활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주민자치회 모델은 읍․면․동에 주민대표들의 의결기구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존의 동사무소를 통합한다는 방안일 뿐이다. 그리고 자치경찰제도도 예산의 이관과 권한 부여 정도이지 주민들이 경찰의 장을 선출하는 방안이 아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1991년 지방의회 부활 이전으로 시대를 되돌리겠다는 발상이다. 마치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지방자치제도를 유보시킬 때로 되돌아가는 발상이다. 이를 지방자치제도라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방자치에서 지방주권으로

2012년 11월 강원발전연구원의 김승희, 김진기, 김주원 연구원은 “지방자치에서 지역주권으로”라는 정책메모를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은 ‘지방’에서 ‘지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에 종속된 지방이 아니라 지역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지방자치에서 지역주권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의 주권의식 회복을 위한 캠페인, 오․남용되고 있는 용어 바꾸기(예를 들어, 경기도지방공무원을 경기도 공무원으로), ‘지역화’와 ‘지역주권’에 대한 철학 공유, 지역교육을 통한 지역리더 양성과 지역공동체 복원, 법률과 제도의 정비,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설치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강원도는 2013년 1월 28일 자치실현과 지역주권 회복을 위해 ‘지방’이라는 명칭 대신 ‘지역’이라는 명칭을 쓰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2년 11월 17일, 제 7회 지리산문화제 때 열린 지리산포럼에서는 지리산 자락 5개 시 군(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을 묶어 지리산특별자치도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리산과 관련된 각종 개발공약들을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막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특별자치도를 만들어 그와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자는 주장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를 살린다면, 중앙정부가 지방행정체계를 일방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자치체의 특성이 반영되도록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진행방향은 ‘개편’을 표방하지만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아, 주의를 요한다.

용인시 수지구의 느티나무도서관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며 간단한 소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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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명회를 다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더군요.
그만큼 많이 궁금하고 할 말도 많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건 내용보다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멋지고 찬란한 비전보다는 어떤 내용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는지, 그 과정에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던 건지,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과 그 '시점'을 왜 함께 고민할 수 없었던건지...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긴 시간이었지만 참여했던 분들의 궁금증이 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설명회 때 읽으셨던 그 문서도 결국 공개하지 않는 거군요. 지금까지도 올라오지 않은 걸 보면요.

절차적인 문제는 없다고 하셨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따져봐야 하겠지요.
재단이고 공공도서관이니 지켜야 할 절차가 아마 있을 겁니다.
저는 절차에 밝은 사람이라 차차 그 문제를 잘 고민하고 따져보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
세상 사는 데 그런 게 없을 수 없겠지요.
허나 어디까지만 말할 수 있다고, 우리가 왜 이 자리에서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느냐고 선을 긋는 순간, 대화는 무의미해집니다.
마치는 순간에도 변하는 건 없을 거라고 못을 박으시더군요.

느티나무의 역사는 자료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록들을 검토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왜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었는지, 저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 강한 '확신'은 어떻게 만들어 진걸까...

어쨌거나 설명회는 끝났고,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은 다시 잠잠해 지겠지요.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저부터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느티나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하게 되겠지요.
예전에는 느티나무가 있어 참 행복하다는 얘기를 했지만 이제는 느티나무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얘기를 하겠지요.
얘기를 하면서 계속 어떤 상황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할 이 상황을요...

사회과학강독회는 다음 주에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볼 생각입니다.
독서회는 계속하겠지만 어떤 정체성을 가질지는 회원들의 판단에 맡길 생각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의 독서회로 남을지, 아니면 다른 정체성을 가질지...
아마도 느티나무도서관 북카페에서 했던 제 개인적인 모임들도 장소를 바꾸게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외부의 다른 자리에서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이나 도서관 분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
반갑게 인사하지 않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시구요.^^;;

느티나무와는 2008년 9월의 장서개발강좌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지로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에도 느티나무와의 인연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1년 느티나무도서관재단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사회과학강독회를 만들어 좋은 분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 소중한 기억들은 계속 마음에 남겠지요.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전합니다.

 <문화과학>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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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이미 60만을 넘어섰지만 협동조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아는 사람들의 인식도 농업협동조합이나 생협 매장 정도이다. 하지만 농협이나 수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먹거리를 구입하는 매장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대안으로 떠오르자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서울시가 협동조합도시를 선언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관심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가 재벌들의 손아귀에 포획되어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환경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관심이 반갑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관심이 협동조합‘운동’의 확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시민의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농협이 있다고 해서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매출규모가 증가한다고 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고 중앙집권화된 국가구조가 자동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운동’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협동조합운동의 관점에서 협동조합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찾아보려 한다.



1. 한국 협동조합운동, 어디까지 왔나


협동조합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조합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농협의 조합원수가 2백 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수협도 16만 명, 신용협동조합도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런 수를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농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생협 등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 연합회가 구성된 국내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은 아래 표와 같이 추정된다.[각주:1]

구분

지역조합수

조합원수

공급액

2010

2011

증가율

2010

2011

증가율

한살림

30

247,072

293,442

18.8

186,686

222,581

19.2

아이쿱생협

75

118,824

155,705

31.0

219,647

290,132

32.1

두레생협

23

85,022

103,874

22.2

66,674

75,072

12.6

민우회생협

5

22,792

26,763

16.4

16,962

17,015

0.3

합계

123

473,890

579,757

22.3

489,996

604,800

23.4


이 자료를 보면 소비자생협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원 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약 58만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거래비용도 6,000억원을 넘는다. 더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평균증가율이 22.3%이고, 공급액 증가율도 23.4%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가율을 고려하면 이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리고 소비자생협 외에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료생협연대에 소속된 의료생협의 조합원 세대 수를 합치면 15,280세대나 된다.[각주:2]

비교기준

안성의료생협

인천평화의료생협

안산의료생협

원주의료생협

주요 설립 동기

농촌지역 의료봉사

산재 및 직업병 해결

지역환경보호운동

생협간의 협동

설립 년도

1994년 4월

1996년 11월

2000년 4월

2002년 5월

조합원수

3426세대

1749세대

2414세대

1570세대

비교기준

대전의료생협

서울의료생협

전주의료생협 

함께걸음 의료생협

주요 설립 동기

지역화폐운동

신협운동의 확장

 보건의료운동과 공동체운동

장애우 평등세상

설립 년도

2002년 8월

2002년 6월

 2004년 4월

2005년 6월

조합원수

1361세대

1650세대

408세대

526세대

비교기준

청주 의료생협

용인해바라기 

성남의료생협

수원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장애아동부모모임 

장애인무료치과 진료

복지네트워크

설립 년도

2007년 5월

2007년 3월

2008년 2월

2009 3월

조합원수

365세대

480세대

671세대

340세대

비교기준

시흥 의료생협

마포(준) 

살림의료생협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지역사회 돌봄

여성주의 돌봄공동체

설립 년도

2009년 9월

2010년 5월 발기인대회

2012년 2월 창립총회

조합원수

500 세대

 

1,000세대(2013년 1월)


둘을 합하면 조합원 세대가 약 73만 세대나 되고, 소비자생협과 의료생협 모두 조합원의 구성이 세대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지만 조합원의 수로 판단한다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가 아니라 외려 뜨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소비자생협의 조합원수와 공급액 증가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협의 성장가능성은 무시될 수 없다(그래서인지 ‘유사소비자생협’과 ‘유사의료생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농산물의 직거래와 안전한 먹거리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생협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활동들, 먹거리 교육이나 학교급식조례운동, 농업살림운동, 협동하는 생활문화정착, 지역살림운동, 지역사회 식품안전생활시스템 구축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생협 또한 질병의 치료보다 건강한 삶을, 그리고 주민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의 수는 2012년 12월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이 발효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일반협동조합이 119건, 사회적협동조합이 17건 신청되었다.[각주:3] 과거 소비자생협의 설립기준이 조합원 300명 이상, 출자금 3,000만원 이상이었다면, 협동조합기본법은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사업 대상도 먹거리나 의료에서 대리운전, 도시농업, 재생에너지사업 등으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주식회사 <해피브릿지>는 2012년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총회를 열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만 따지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2.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어디로 갈까?


어떤 제도가 사회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조건은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앞서 2007년 1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 정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런 지원정책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수는 2007년 446개에서 2012년 2,221개로 5년간 498% 증가했고, 2012년 9월 기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17,410명이고 이 중 취약계층이 10,640명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107.6만원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52.7%이다.[각주:4]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이런 수치로만 보면 사회적 기업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보다 사회적 일자리가 부각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제도를 시작할 당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법인격

(영리)법인

비영리법인

설립

시도지사 신고

기획재정부 장관 인가

사업

업종․분야 제한 없음(금융․공제 제외)

업종․분야 제한 없으나 주사업 규정

적립

잉여금의 10/100

잉여금의 30/100


협동조합의 국제연대기구인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 정의한다. 두 정의에서 어떤 차이점이 느껴지나?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을 공동구매/생산/판매/제공을 하는 ‘사업조직’으로 제한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인가하는 기획재정부도 협동조합을 “함께 규칙을 만들고 착실하게 이용하는 정의로운 사업체”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규칙과 정의는 케이크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것이지 어떤 케이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각주:5]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이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노동자협동조합(workers cooperative)이라는 개념을 직원협동조합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바꿔버린 점에서도 드러난다. 법률상의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육성법의 경험을 통해 협동조합기본법을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 기업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의 지원을 통해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사회성이나 협동의 강화보다 고용 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고, 시장경쟁에 내몰린 협동조합들이 실패를 경험할 것이고, 협동조합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명분(사회적 협동조합은 국가와 지자체의 사무 중 일부를 위탁받을 수 있다)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협동조합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왜곡이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경제는 연대의 경제, 즉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는 것”이자 “새로운 시장조절양식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시장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시장활동의 우선적 수혜자의 영역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시장을 사회적으로 재구축하는 방안을 고안하고자 하는 것”인데,[각주:6] 한국사회에서 이런 의미는 드러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기존의 시장질서를 보완하지 관계를 재정립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과정에서 드러난 특이한 점은 소비자생협을 비롯한 기존의 협동조합운동진영이 기존 법률에 있던 정치참여 금지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1999년 2월에 공포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4조는 “①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ㆍ반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 ②누구든지 조합을 이용하여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생협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생협들은 단체의 정관에 ‘정치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질서와 다른 살림살이 질서를 짜려면 이는 정치적인 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동조합들이 조합원의 사회참여와 지역적인 살림살이 회복을 추구한다면 지역정치에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운동이 기본법 제정과정에서 이런 조항을 수용했다는 점은 협동조합운동의 방향이 결사체를 배제한 사업체에 향하고 있음을, 즉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협동조합의 방향이 수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탈정치를 지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정부의 방향과 수렴된다는 점은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없다.



3. 세계적인 흐름은 어디로 가고 있나?[각주:7]


협동조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연합조직)의 자산은 약 53조에 달한다.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몬드라곤의 자산규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현대중공업(2011년 기준 약 54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려 8만 4천명에 달한다. 고용인원으로만 따지면, 몬드라곤은 SK나 롯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생산과 소비, 신용, 문화 등의 영역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의 조합원 수나 매출고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전 국민의 60%가 조합원인 스위스에서는 협동조합이 카르푸의 매장을 인수했고, 이탈리아의 볼로냐시는 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협동조합은행 데자르댕(Desjardins)은 조합원이 580만명으로 자산이 216조, 노동자가 4만 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규모를 보면 협동조합은 결코 미미한 흐름이 아니며,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적지 않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과 올해 계속 소개되는 해외의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이고, 실제로 한국의 많은 소비자생협들이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같은 유럽생협의 대형매장을 부러워하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해외사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아무런 위기를 경험하지 않으며 성장만 해온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세계대전과 파시즘, 경제위기, 유럽통합이라는 실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큰 몸집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더 이상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소속된 노동자 중에서 러시아와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고용된 인원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약 1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협동조합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1990년대부터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을 만들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각주:8]

 

몬드라곤의 글로벌화와 조직형태의 변화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전체 고용규모는 늘어났지만 이것은 해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에로스키를 비롯한 유통부문이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체를 늘려온 분야에서는 조합원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규모는 커졌지만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 협동조합의 자회사들이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세워지는 모순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노동자 조합원의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를 고려할 때 제조업 조합원 중심의 몬드라곤이 그 구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정체성 변화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상시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이사회와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권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위기구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자신의 규정으로 개별 협동조합을 규제하려 들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 조합원들은 사업과 배당에 관심을 갖지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뀐다면 이 조직을 협동조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갈러(Z. Galor)는 이런 경향을 탈협동화(demutualization)라 부른다.[각주:9] 갈러는 전 세계 다양한 협동조합들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경향이 소비자협동조합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두드러직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부족이다. 즉 협동조합이 탈협동화되어도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거나 외려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탓은 아니다. 조합원의 삶을 지지하거나 조합원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 협동조합의 구조도 문제이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나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협동조합이 낡은 것이라는 편견같은 외부요인들도 탈협동화를 부추긴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이스라엘의 트누바(Tnuva)는 연계형 협동조합(secondary cooperative)으로 농업공동체인 모샤브(Moshavim)와 키부츠(Kibbutzim)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트누바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조합의 지분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아니라 두 조합의 위원회가 트누바를 운영했고, 조합원들은 트누바의 성장에서 자기 몫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대기업이 트누바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에이팩스(APAX)사가 10억 달러(트누바의 실제 자산가치는 8억 달러 정도)를 제안하자 총회는 압도적인 비율로 지분의 매각을 결정했다(에이팩스사가 51%의 지분을 차지!).

 

갈러는 조합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 그룹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탈협동화에 맞섰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쨌거나 이런 전환의 결과 2011년 7월에는 트누바의 비싼 치즈가격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조직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조직이어야 할 협동조합을 시민들이 불매운동하는 비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이 이스라엘의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협동조합간의 연대도 좋지만 연계형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구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협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갈러가 탈협동화의 외부요인이라 얘기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정권의 집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국적 자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국가의 고유한 영역이라 불렸던 치안과 군대 영역도 점점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상대의 힘이 집중된다고 해서 협동조합운동도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괴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세계가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99%의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99%의 사람들이 다시 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1%를 위한 벤처사업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의 이런 탈협동화 경향을 무시하고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양적인 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박승옥이 “성장은 결사체로서의 성장과 사업체로서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성장에의 열광을 비판한 것이다.[각주:10]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이었던 레닌(V. Lenin)조차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협동조합운동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3. 사회변혁 전략으로서의 협동조합운동은 불가능한가?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에게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허덕이고 피크오일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어떤 전략을 고민해야 할까?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가 협동조합운동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협동조합을 지지하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없는 한국,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와 재벌 중심, 토건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무한경쟁구조에 갇힌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어떻게 자신의 전략을 만들어야 할까?

 

데이비드 맥낼리(D. McNally)는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위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각주:11] 자본주의의 위기는 일시적이지 않고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의 변화는 위기의 힘과 규모를 넓히고 있다. 맥낼리는 그런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은 그런 고리를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 협동조합도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이 그런 개입과 조직의 전략을 고민할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마케팅이나 다른 사회운동의 전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원칙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이미 협동조합 7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 원칙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는 가족과 사회집단에의 참여가 강제성을 띠고 성과 재산, 인종,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은 아무나 오세요가 아니라 오는 사람을 환대해야 하고, 조합에 문턱이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중산층이나 이성애 가족의 전유물처럼 인식된 협동조합은 사회적 양극화나 가족구성의 변화라는 시대변화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단지 물건을 거래하는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첫 번째 원칙이 힘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원칙 ‘민주적 관리’는 1원 1표를 따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 1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출자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똑같은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건 조합원들의 자존감을 강화시킨다. 이 원칙은 나와 다른 사람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평등의 원칙이자 내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고 주장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조합원들은 나와 가족의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배제되고 조직구성과 일상활동,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 원칙은 일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와 조합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임을 깨닫고 나와 조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은 오로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그런 성장과 역량강화를 위한 틀이다.

 

세 번째 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는 협동조합을 움직이는 자원이 조합원의 것임을 강조한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출자금을 받는 것은 필요한 자원을 공정하게 조성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그 과정은 내 몫이 커지려면 우리의 몫이 커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몫을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고, 그렇게 몫을 내놓아야 서로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런 공유를 위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주식에 매달리지 않고 조합을 통해 살림살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합원의 욕구와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곧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야 한다.

 

네 번째 원칙 ‘자율과 독립’은 국가나 자본과 거리를 둬야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빵집, 사진관 등 문어발식 확장이 기본인 재벌경제에서, 그리고 정부가 민간단체를 길들이고 통제하려 드는 한국에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이런 정체성을 강화시킬수록 국가는 협동조합에 개입하려 들 것이고, 친환경 유기농 시장이 커질수록 자본은 협동조합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다. 이에 맞서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나 자본이 통제할 수 없는 공공성의 영역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그런 영역의 힘이 강화되는 셈이니.

 

다섯 번째 원칙 ‘교육, 훈련 및 정보의 제공’은 조합의 성공이 조합원들에게 있음을 알리는 원칙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아무런 매개 없이 가능할 수 없다. 우리 세계가 어떤 지경으로 몰락하고 있는지, 조합이 어떤 꿈을 꾸고 있고 그런 꿈을 실현하려면 조합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합원들이 스스로 꿈을 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기 위해 어떤 장이 필요한지,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이런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조합을 통해 다양한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 그 꿈을 조합에서 실현할 수 있을 때 협동조합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여섯 번째 원칙 ‘협동조합 간의 협동’은 일종의 연방제 원리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한 조합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더라도 그런 조합들이 여럿 뭉치면, 즉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어소시에이션이 되면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협동의 힘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고 공생(共生)을 지향한다. 자본주의가 적대적인 경쟁과 인수합병(M&A), 승자독식을 권장한다면, 협동조합들이 힘을 모아 서로간의 경쟁을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장을 만들고 사회적 시장을 형성하고 살림살이를 바로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질서이고, 자치와 자급이 조합을 통해 실현된다.

 

일곱 번째 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에서 지역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시도이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가 붕괴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지역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과 중앙권력이 지역을 수탈하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지역을 강화시키려 노력한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나누는 경계가 사라질수록 그 힘은 커지고, 그것이 곧 협동조합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원을 기부하거나 자원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성(locality)을 부활시키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일곱 가지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협동조합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국가의 사회보장체계와 자본의 소비체계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협동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섬으로만 존재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설령 섬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섬들이 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변화를 바라는 다양한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대는 타자가 내 쪽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타자의 편에 서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단순히 이타적인 운동을 지향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삶에 관심을 쏟다보면 그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조합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 지역사회의 변화, 조합원 가계의 노동조건, 생활상의 어려움 등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다보면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협동조합운동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운동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협동조합에 관한 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는 ‘소상공인의 사업인프라 구축 지원’을 위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자율조직화 유도를 위하여 협동조합 활성화 전폭 지원”하고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를 기반으로 공동브랜드, 공동판매 등 공동사업 활동 활성화”를 지원하며, ‘지속가능한 축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에서 도축·가공·유통·판매까지 협동조합 중심의 축산계열화체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사람중심 협동경제, 사회적 경제’라는 구호 아래 “사회적 경제를 통해 지역중심 순환경제가 활성화되고 품위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가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회적 금융을 조성하고 사회투자기금 2조원을 조성하며 사회적 경제에 관한 공감대를 강화시키고 사회적 경제를 통한 공공서비스(돌봄서비스나 보육 등) 공급을 30%까지 확대하며 사회적 경제 모델을 적극 활용하는 기초자치단체를 집중 지원하며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나 노동자대통령을 표방했던 김소연 후보의 대선투쟁공약집에서는 협동조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김순자 후보의 정책에서는 경제분야가 아니라 ‘에너지 혁명과 생태적 전환’ 정책에서 협동적 소농체제를 중심으로 농촌을 재생하기 위해 협동생산판매체제를 국가 차원에서 구성하고 농협중앙회 등을 협동조합 섹터의 중심체로 전환한다는 정도의 내용이 확인된다. 보수정당의 고민이 외려 구체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운동이나 사회운동이 협동조합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교육기관들은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긴 반면, 참교육을 지향하는 교육운동이나 대안학교들은 협동조합을 자신의 기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연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연대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설령 진보정당이 협동조합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깊은 고민은 없는 상태이다. 협동조합은 국가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율과 독립을 지켜야 하는 조직이다(과거 러시아의 경험은 협동조합이 국가의 하부기관이 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정치운동은 협동조합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운동도 자신이 누구와 함께 지역사회를 재구성할 것인지를, 그리고 단순히 후보 캠프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상공인, 노동자,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재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자신의 힘과 지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4. 나가며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함께 살자’이다.

 

함께 살려면 일단 먼저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지금 살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마주보고 상상하다보면 먼 미래의 좋은 삶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그런 삶을 위한 틀이 될 때 온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1. 신중일, “생협 필요성 커지는데 불교계는 제자리”, 《현대불교》2012년 9월 15일자. [본문으로]
  2. 박봉희. 2010. “한국의료생협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 광주지역사회 협동조합학교 [본문으로]
  3. 최영진, “협동조합 설립 붐,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 《주간경향》2013년 1월 15일자(제 1009호) [본문으로]
  4. 국회예산정책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평가』, 2012년 10월(통권 262호) [본문으로]
  5. 기획재정부, 『협동조합 설립운영 안내서: 아름다운 협동조합 만들기』2013년 1월 24일 발행. [본문으로]
  6. 알랭 까이에 외, 김신양 편역, 『다른 경제』, (재)실업극복국민재단, 2005), 24~30쪽. [본문으로]
  7. 이 부분은 하승우, “협동조합의 부흥기/혼란기?”, 《오늘의 교육》2012년 3․4월호; 하승우, “살리지 못하면 죽는다: 유럽 탈협동화 경향이 주는 교훈”, 《살림이야기》2012년 여름호를 재구성했다. [본문으로]
  8. 김성오, 『몬드라곤의 기적: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역사비평사, 2012년), 30쪽. [본문으로]
  9. http://www.coopgalor,.com 참조. [본문으로]
  10. 박승옥, “한국 생협, 성장신화 버려라”, 《녹색평론》 2013년 1․2월호, 53쪽. [본문으로]
  11. 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강수돌․김낙중 옮김, 『글로벌 슬럼프』(그린비, 2011년) 참조. [본문으로]

한나 아렌트 강좌


● 강좌 소개
... ... ...
이 강좌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읽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각자 스스로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지금도 아렌트는 많은 점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학자이다. 아렌트를 읽고 소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아렌트의 보수적이며 복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렌트의 거의 모든 저작이 번역되어 있고 여전히 번역 작업 중이라는 사실은 아렌트의 이론이 우리 사회를 크게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온건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렌트의 저작은 불온하다. 그녀는 근대사회에 대한 전위적인 비판가인 동시에 우리의 정치적 무력함을 불편하게 드러내 주는 저술가이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가스실로 줄지어 걸어 들어가는 의지 없는 나약한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좌는 아렌트 이론을 통해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지적해보고 아렌트적인 해결책, 혹은 아렌트의 지향점들을 급진적인 이론으로 구성하려 한다.
늦은 밤 예쁜 카페에서 나즈막히 아렌트 구절을 읽으며 불온한 생각을 속닥거리는 강좌이니,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도 너무 맘 편히 오지도 마시길...


● 소개
- 권정우: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정치사상을 전공했으며, 한나 아렌트의 인간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렌트로 인해 불온한 동시에 불안한 삶을 즐기다 못해 사랑하게 되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에 있으며, 정치적 공론장, 도시, 생활정치, 민주주의의 직접행동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이 있다
- 하승우: 학교를 관두고 여러 공부모임을 꾸리고 강연을 다니며 생활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삐딱한 시선의 소유자이다. 한때 ‘도끼’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직접 만나보면 참 선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아나키즘, 풀뿌리민주주의, 직접행동 등에 관심이 있다.


● 공부모임 일정: 4월 8일부터 매주 월요일

1강 왜 지금 아렌트인가?(4/8): 하승우, 권정우
: 지금 우리 시대에 아렌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렌트가 기존의 정치이론에 던지는 문제의식은 무엇이고, 아렌트가 구사하는 정치개념의 특별함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
keyword: 독특성, 탄생성, 활동적 삶, 판단, 공론장
하승우, 『민주주의에 反하다』(낮은산, 2012)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버먼트』(그린비, 2012)
존 홀러웨이, 『크랙 캐피탈리즘』(갈무리, 2013)

2강 아렌트의 삶과 사람(4/15): 권정우
: 아렌트의 이론을 형성하고 있는 맥락(context)을 우선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독일계 유대인, 하이데거, 나치, 전체주의, 강제수용소, 미국, 망명, 이스라엘, 아이히만. 아렌트와 관련되어 있는 20세기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아렌트의 이론 형성의 영향을 살펴보겠다.
keyword: 나치, 히틀러, 하이데거, 이스라엘, 아이히만, 벤야민, 야스퍼스, 브레히트
한나 아렌트, 홍원표 역,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2010, 인간사랑).
사이먼 스위프트, 이부순 역,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2011, 앨피).
엘리자베스 영-브륄, 홍원표 역,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 사랑을 위하여』 (2007, 인간사랑).

3강 아렌트와 전체주의의 이해(4/22): 권정우
: 전체주의의 문제는 아렌트에게 학문적 대상이 아니라 그녀가 떠안은 짐이었다. 또한 나치즘이라는 하나의 사례로서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경향으로서의 전체주의를 아렌트는 언급하고 있다. 즉 특수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현실 정치와 인간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전체주의의 경향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keyword: 전체주의, 총체적 지배, 강제수용소, 군중(mob), 대중(mass)
한나 아렌트, 이진우 역, 『전체주의의 기원』 (2006, 한길사)

4강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의 대중사회(4/29): 권정우, 하승우
: 대중(mass)의 등장은 근대사회를 규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대중사회는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전체주의의 기원과 상통한다. 대중의 문제는 곧 현대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아렌트는 대중을, 무세계적(worldless)이며, 고립되어 있고, 자발성을 박탈당한 채 정치로부터 도피한 자들이라고 보고 있다. 아렌트가 보고 있는 대중과 사회에 대한 분석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이 상실되어 있고 결여되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틀이 될 것이다.
keyword: 대중, 사회, 가계(hosehold), 사적 소유, 무세계성, 고립, 외로움, 자발성, 공통감각
한나 아렌트, 이진우·박미애 역, 『전체주의의 기원』 (2006, 한길사)
한나 아렌트, 이진우 역, 『인간의 조건』 (2002, 한길사)

5강 노동의 정치, 제작의 정치, 행위의 정치(5/6): 권정우
: 아렌트는 노동, 제작, 행위로 이뤄지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위계가 전도되어 있다고 본다. 전도되어 있는 활동의 위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아렌트 이론의 주요한 문제제기이다. 아렌트는 정치를 정의할 때,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나 먹고 사는 필요의 영역을 채우는 노동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는 타인을 전제한 행위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4강에서는 행위로서의 정치란 무엇인지를 아렌트의 논의를 통해 살펴보고,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개념과 개념이 갖고 있는 현실적 함의를 지적하게 될 것이다.
keyword: 노동, 작업, 행위, 정치적인 것, 필요의 영역, 복수성, 자유
한나 아렌트, 이진우 역, 『인간의 조건』 (2002, 한길사)

6강 대중에서 정치적 인간으로(5/13): 권정우
: 그렇다면 무세계적이며 박탈된 존재인 대중이 어떻게 정치적 행위가 선사하는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까? 공적 영역은 어떻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용기’, ‘용서,’ ‘약속’, ‘새로운 시작’이라는 아렌트적 개념을 통해 정치의 새로운 미래를 조망해 본다.
keyword: 용기, 용서, 약속, 시작, 판단, 자유
한나 아렌트, 이진우 역, 『인간의 조건』 (2002, 한길사).
한나 아렌트, 김선욱 역, 『정치의 약속』 (2007, 푸른숲).
한나 아렌트, 서유경 역, 『과거와 미래 사이』 (2005, 푸른숲).

7강 공적 행복의 추구: 혁명과 평의회의 경험(5/20): 권정우
: 6강에서는 미국 독립혁명 당시의 타운 미팅과 같이 혁명 과정 안에 우발적으로 등장했고 철저히 파괴되어 버린 자발적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 볼 것이다. 그 경험들은 1871년 프랑스의 코뮌, 1905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1954년 헝가리의 레떼, 1980년 5월의 광주로 이어지며 정치적 행위의 장을 활짝 열었다. 아렌트는 인간들의 개별적인 덕(virtue) 자발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꽃피우게 한 평의회의 경험을 연방 원리, 공동세계의 구성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keyword: 혁명, 자발성, 평의회, 소비에트, 레떼, 연방 원리, 공동세계
한나 아렌트, 홍원표 역, 『혁명론』 (2004, 한길사).
한나 아렌트, 이진우 역, 『인간의 조건』 (2002, 한길사).

8강 아렌트로 본 한국정치(5/27): 권정우, 하승우
: 아렌트의 이론으로 현재의 한국정치를 진단하며 강의를 마간하는 시간! 각자가 한 편의 정치 에세이를 쓰고 이를 서로 공유하며 한국의 정치현실에 관한 공론장을 구성한다.


● 장소: 어쩌면사무소(약수동 4번 출구. http://probable.kr/contact)


● 시간: 오후 7시 30분~ 9시 30분.
- 뒷풀이는 알아서들 하시오!!


● 참가비: 정규직 노동자(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는 노동자) 10만원(더 내도 상관없음), 비정규직 노동자(한 달 살기에도 삶이 팍팍하다) 6만원(강좌 날에만 담배 한 갑, 맥주 한잔 아끼고 공부합시다), 활동가/청년백수/전업주부/대학생/기타 하루 살기도 삶이 팍팍하다 4만원(정 힘들면 가능한 만큼만 내시길).
- 어쩌면사무소의 음료는 직접 구입해 드세요. 참가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참가인원: 어쩌면사무소의 규모상 15명
- 입금한 순서대로 접수함


● 입금계좌: 우리은행 146-503204-02-001 (예금주: 권정우)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사회적기업지원법, 협동조합기본법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이 앞을 다투어 협동조합과 관련된 법령이나 조례를 제정하고 있고, 금융위기와 실업이라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사회적 경제를 주목하고 있다. 제도화의 속도가 빠르면 더 빨라졌지 늦춰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언제나 제도화는 양날의 검이다. 제도는 운동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기반이지만 반대로 운동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제한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도는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받는다. 제도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현실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수정될 때에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수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지금 처한 문제의 어려움과 심각성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불거진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가 반드시 사회적 경제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대공황과 경제위기에 등장했던 체제는 사회적 경제가 아니라 파시즘과 군사정부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성장했음에도 파시즘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시민사회를 강화시킬 방법은 제도화만큼, 또는 제도화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율성과 힘을 강화시키는 실천적인 활동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형식적으로만 얘기되는 듯하다. 사회적 경제 규모의 성장이 먼저이고 그 내실을 다져줄 조직화와 관련된 사업은 뒷순위로 밀린다. 수단과 목적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그 둘이 분리되고 수단이 목적을 압도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멀지 않아 다양한 활동들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사회에서 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민과 관이 진정 동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를, 시민사회운동은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인식하고 성찰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제도화는 양날의 검이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한다. 이 글은 성찰을 유도하기 위해 부정적인 면을 주로 드러낼 것이다.



1. 국가와 자본에 억눌린 시민사회


일제 식민지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일제 식민지는 한국에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체제를 확립했다. 식민지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수직적인 권력구조가 만들어졌고, 중앙정부가 정책의 기획과 평가 역할을, 지방정부는 단순집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수직적인 권력구조의 정착과 강화를 위해 강력한 경찰국가체계가 만들어졌고 공권력의 이름을 빈 국가폭력이 시민의 일상에 깊숙이 개입했다. 정치와 노동영역만이 아니라 교육과 위생, 보건영역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국가폭력은 시민들의 존엄을 짓밟고 수동성을 내면화시켰다.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수동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다. 중앙정부가 일상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각종 제도들과 폭력적인 개입이 지금도 제주도 강정마을이나 밀양, 삼척 등지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 이후 미군정과 한국전쟁, 분단의 고착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현대사는 반공이데올로기가 시민의 일상사를 지배하게 했다. 영화 <풍산개>에 나오듯 반공이데올로기는 단순히 ‘빨갱이’를 만들고 그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배제의 논리로만 작동하지 않았다. 빨갱이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도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에 갇히게 되었고 어느 계파에 서지 않으면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진영논리에 시달리면서 시민사회의 외부적인 자율성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자율성도 점점 사라졌다.

 

중앙집권형 국가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는 대부분의 지방을 ‘내부식민지’ 상태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은 자치와 자급능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재정자립도, 지역내 총생산, 지역문화/교육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지방의 능력치는 매우 낮다. 지금 당장의 역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앎과 삶이 연결되는 과정이 살아있다면 그 역량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지역적인 앎과 지식이 평가절하될 뿐 아니라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정리하자면 중앙집권형 국가와 반공․규율사회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약화되었다. 현실적으로 농협을 비롯한 관제 협동조합이 가장 큰 규모의 협동조합이듯, 사회적 경제 또한 체제 내화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허약한 기반 위에 좋은 건물을 세우겠다는 건 허황된 생각이다.

 

국가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를 고려하면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더욱더 허약해진다.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을 강화시켜 왔다. 제 아무리 시장질서를 내세워도 관치경제가 실제 모습이고, 정부가 벌이는 대규모 토건사업에서 재벌들이 이득을 취해왔다. 한국 재벌의 성장기반은 관료와의 결탁과 부패였고, 브루스 커밍스의 말처럼 “한국의 재벌들은 남한에 거대한 가족경영의 세습 기업영지를 세우고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따라서 한국의 개혁가들에게는 이 재벌체제 내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외에, 즉 이런 기업들과 국가, 그리고 거대 은행들 사이의 연계를 끊는 데 집중하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재벌들은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제휴’나 ‘협력’의 명목으로 가로채 왔다. 비도덕적인 행위는 재벌들의 기술 가로채기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들을 후려치는 납품단가 인하이다(재벌들은 매년 최소 20%이상의 단가 인하를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곽정수에 따르면, “회사의 연간 이익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에 맞춰 원가절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단가 인하 목표가 설정된다. 단가 인하는 분기별로 나눠서 시행하는데,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연간 목표와 별도로 추가적으로 단가 인하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2011년 10대 재벌의 매출액이 무려 국내총생산의 76.5%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독점을 고려하면 ‘기업사회’라는 말이 무색하고 ‘재벌사회’라 불러야 한다. 그리고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SSM만이 아니라 골목상권으로도 이미 침투하고 있다. 곽정수에 따르면, “CJ, 롯데, GS, 두산, 삼양사, 오리온, 매일유업, 농심, 남양유업, 빙그레, LG패션 등이 참여한 외식업은 일부 재벌이 먼저 진출한 분야에 다른 재벌들이 추가로 뛰어든 경우다. 여기다 와인 판매(LG, SK, 롯데, 신세계, 보광, 두산, 동원), 온라인 교육(SK, 삼성, KT, 이랜드), 차량 정비(SK), 사진관(SK), 소금 생산(CJ), 농산물 생산유통가공(현대차), 막걸리(CJ, 롯데, 진로, 오리온), 골판지(롯데, 농심, 한화, 삼양식품, 오리온, 애경), 웨딩사업(SK), 먹는 샘물(LG, 하이트), 장례업(삼성), 콜택시 사업(동부), 학원 사업(대상) 등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한 사례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대형할인점,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불거진 골목 상권 침해논란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사회적 경제의 영역과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영역이 현실적으로 겹친다.

 

국가와 자본, 시민사회라는 세 축을 고려할 때,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은 국가와 자본에 압도당해 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체적인 힘이 약하다보니 그동안의 시민사회운동은 주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활동의 초점을 맞춰왔다. 자연히 전문가 중심, 사무국 중심의 활동이 강화되었고, 엘리트 중심의 운동문화가 형성되었다. 중앙집권형 국가 속에서 운동하니 운동조직들도 피라미드형의 위계구조를 갖추게 되었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호명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식민지와 군사독재, 재벌에 억눌려온 시민문화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부활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힘이 강하다보니 노동과 농업의 의제들은 그동안 정치의 주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 법적으로 자유로워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도 실제로는 그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농민운동 역시 농촌의 파괴, 농민수의 감소, 농업의 쇠락과 더불어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기존의 노동․농민운동과 분리된 채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를 연계한 조직적인 역량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운동사회 내에 깊이 뿌리내린 정파간 갈등구조(거의 선악의 구조와 가까운)는 연대를 명목적인 연대로 만들어왔다. 통합진보당 사태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 곳곳에 그와 유사한 갈등들이 존재하고, 가부장적인 운동문화 또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즉 시민사회운동의 자체적인 역량이나 의지도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율성을 논할 수 있을까?



2. 정책의 공동생산 또는 거버넌스 구조는 존재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제도화의 방식으로 거버넌스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는 논의 이상의 실천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관이 주도하고 민간이 이를 보완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왜곡되고 있다.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가 자리잡기 어려운 몇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첫째로, 관료주의의 문제이다. 중앙집권형 국가의 관료들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권한을 누린다. 그리고 선발되는 관료들은 선거 등을 통해 선출되는 관료들과 때론 협력관계를 때론 긴장, 갈등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기도 한다. 관료들의 능력은 민주화의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업의 기획과 집행, 평가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규모 공공수요가 발생하자 관료들은 예산, 인력, 지침들을 일방적으로 확정하는 것을 관행으로 만들었다. 중앙의 부처들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입안하고 비밀리에 사업을 추진하거나 반대측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거나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일까지 생겼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직접 사업대상을 선정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기획은 중앙정부의 기획을 따를 수밖에 없고 공모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을 시작으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중앙이 계획, 평가하고 지방이 집행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민주화 이후에는 관료들이 ‘공공성’을 내세워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할 뿐 아니라 ‘조직의 이해관계’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정책집행단계보다 정책입안단계에서 이런 경쟁이 치열한데, 갈등은 권력을 더 많이 가진 부처에 유리한 쪽으로, 즉 예산이나 인력규모, 기관의 법적․공식적 권한, 대통령의 관심과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부처(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검찰청, 중앙인사위원회,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 법무부 등)에게 더 유리하다. 조직의 이해관계가 강조되다보니 공공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거버넌스도 부처간의 이해관계에 무력해지기 쉽다.

 

물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이런 관료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개방형 공무원제도 등)가 있었지만 내부의 저항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관료들의 저항만이 아니라 개혁의 방향이 힘의 불균형이나 실제 조건을 무시하고 원론을 내세우는 경향도 있었다. 또한 한국의 관료조직은 지연과 학벌을 통해 단단한 연고를 다지고, 이런 연고들은 주무장관이나 단체장과 같은 임명되거나 선출된 관료들의 통제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관료주의 구조에서는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제도화의 과정은 정부의 의지만을 반영하기 쉽다.

 

둘째는 지금도 깊이 뿌리내려 있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문화이다. 시민은 정치의 ‘대상’이었지 정치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관은 계획을 구상하고 민은 그것을 따르는 철저한 역할분담만이 이루어졌다. 한국처럼 관존민비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곳에서는 정부가 주민이나 시민의 능력을 불신하고, 그러다보니 주민이나 시민은 정부의 의도를 믿지 않고 적극적으로 결정과정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는 당위적으로 참여를 강조할 게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예를 들어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자료집을 나눠주거나 자주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할 기회를 가지는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문화의 물질성은 공유자산에 대한 관의 ‘독점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을 바꾼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주민들이 그 공간을 쓰려면 공무원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점유하고 있는 공유자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경제의 실현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들이 사회의 몫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정부의 손에 묶여 있거나 남용되고 있다.

 

셋째, 거버넌스에 필요한 정보와 자원의 불균형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사안과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협력하려면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하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토론해야 하고, 그리고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토론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아야 한다.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제공한 채 같이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건 거버넌스를 형식적인 틀로 만드는 원인이다.

 

아울러 그런 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도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과정의 의미는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과 공간이 보장될 때에만 거버넌스가 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질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사례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행정이 편한 시간과 장소에서 제한된 정보와 짧은 시간 내에 아무런 권한도 없이 거버넌스를 내세운 협력이 이루어진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간동안 업체수만 늘리려는 방식은 사회적 경제의 뿌리내리기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넷째, 거버넌스의 실현방식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특정 주민들만을, 소위 ‘지역토호’라 불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왔다. 뉴라이트의 권력기반이 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세력들이 시민사회, 제3섹터라는 영역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버넌스는 이해당사자와 더불어 전문가들의 참여를 당연시하고 이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곤 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의 정부들에서도 거버넌스는 주로 시민단체나 지식인들만을 파트너로 삼았다. 정부는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런 위원회에는 시민들보다 단체나 지식인들이 주로 참여했다. 더구나 이런 위원회들이 시민과 정부 사이를 매개했다기보다는 단체나 지식인들이 구상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역할을 잡지 못했음을 뜻한다. 운동이 변화된 사회적 조건에 발맞춰 성격을 바꾸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거버넌스의 덫’에 걸려들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지역의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경제를 실현함에 있어 전문가는 누구인가? 주민들은 지역에 관해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식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적어도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만큼, 또는 그보다 더 소중하다. 더구나 현재 그 지역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나 요리사라 하더라도 좋은 집이나 음식을 만들려면 그 집에 살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욕구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섯째, 거버넌스 이면에 깔린 민영화나 시장논리의 문제점이다. 설령 국가가 권한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의 강화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이중 구조가 아니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삼각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분권이나 역할변화는 시민사회의 강화가 아니라 시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탈규제’와 ‘민영화’, ‘위탁관리’만이 국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그런 시각을 잘 보여준다.

 

여섯째, 거버넌스가 논의되는 시점이다. 보통 거버넌스는 사안을 계획하는 단계에서가 아니라 그 사안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갈등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안되었고, 그렇기에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를 주장하면서도 일반 주민이나 평범한 시민들을 중요한 논의대상이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고 거버넌스를 논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라는 정책과제가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실현되려면 관과 민의 공동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에서는 그런 협력이 거의 불가능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이런 초기의 제도화가 사회적 경제의 앞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논리이다.

 

지금 당장 제도화의 방향에 개입하지 못하더라도 내적인 힘을 기르고 있다면 이후에라도 시민사회운동이 제도의 틀을 바꾸는데 참여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3. 운동과 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자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나눔장터 등 사회적 경제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고 관련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규모와 활동가의 수가 운동의 목적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외려 규모와 수가 늘어날수록 단체 내부에서조차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자기 담당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외부로 알려진 만큼 내실이 없다는 비판, 사업담당자만 있지 활동가는 없다는 성찰도 있다. 눈에 띄는 사업에 단체들이 몰리고 때로는 단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첫째, 정부의 사업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없고, 이런 식이라면 당장 사업을 관두고 싶지만 우리가 아니면 안 될 사업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는 식의 얘기가 많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봄 직하다. 정부의 일을 대행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 진영의 역할일까? 물론 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업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런 사업들에 모두 ‘사회적 경제’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다. 특히 사업에 대한 ‘평가의 권한’을 사회적 경제 진영이 가지고 있지 않고, 외려 관이 그런 평가의 권한을 가지고 사업에 개입한다. 따라서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 사업을 하는 것인가’,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확장하며 사업에 개입하고 있나’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많은 사업들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정부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와 사회적 경제의 공고화나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인가? 단체들의 고유활동을 지원사업으로 기획하거나 그 단체의 설립목적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을, 소위 ‘뜨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가 사업만을 위한다면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보조금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관료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마련하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적 경제를 실행한다는 단체들도 쉬운 길만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 갈수록 단체들의 사업이 비슷해지고 있고, 지역특성을 반영한 활동들, 아니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지역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하는 활동들은 사라지고 있다. 자원을 마련하는 과정이 곧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과정인데, 외부자원을 동원하려 애쓰다보니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을 밟더라도 지속성이 담보되는 내부의 자원을 모으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공무원들은 바보가 아니고 자원이 제한되고 부족한 시민사회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거만하게 나온다. 때로는 일부러 단체들끼리 경쟁을 붙이고 자기 말을 잘 듣는 단체들을 밀어주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운동의 목적은 자꾸 사라지고 사업만 남게 된다. 더구나 행정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의 밑바닥을 다지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사회적 목적보다 앞서 나가게 된다. ‘왜 우리가 운동을 시작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사회적 경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생기는 고민인데, 요즘은 어딜 가나 사람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왜 그럴까? 앞으로 박원순 시장과 같은 사람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운동이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활동가, 뛰어난 활동가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이런저런 시민사회운동의 활동가로 충원되었지만 경쟁적인 교육체계, 대학 중심, 학벌 중심의 교육체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제 그런 충원구조는 사라졌다. 10년 뒤, 20년 뒤에는 누가 어떤 과정을 밟아 운동에 참여할까? 아이디어나 기획력이 뛰어나고 그나마 사회정의감을 가진 대학생들도 아마 단체가 아니라 행정조직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실행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활동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목적을 공유하더라도 문화를 공유하지 못하는 ‘세대단절’의 문제가 풀뿌리운동 내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단절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풀뿌리운동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고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의 못 봤다. 10년 정도 더 지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활리듬과 가치관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가 한 단체 안에서 (그것도 운이 좋아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기르지 않으면서 어떤 지속가능성을 논할 수 있을까? 사람 없이는 제도가 지속될 수 없다.



4. 결론


이상의 비관적인 전망을 마치고 제도화 과정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일단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어느 부분의 힘을 더 강화시킬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앞서 말한 여러 문제점들에 대처할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와 제도를 변화시킬 힘은 시민들이 자신의 권한을 되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운동은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분권국가, 연방국가로 해체할 방법을 여타의 시민사회운동, 정치운동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재벌과 국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해체시키지 않고 사회적 경제의 전망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리고 협동의 문화를 구성해야 한다. 거버넌스를 제도적인 협약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계약의 실행을 요구하고 강요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단체, 운동들이 함께 도모하는 일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접촉도 잦아져야 한다. 관료주의를 넘어설 방법은 똑같은 관료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들이다. 그리고 관료주의의 특성상 일단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기 시작하면 그것을 막을 방법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용역보고서로 시작되는 정책의 입안과정에 관심을 두며 참여해야 하고 겉으로 드러난 단기적인 사업만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며 개입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지식인의 자율성 자체가 정부나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연구지원에 따라 연구방향이 주로 제도로만 맞춰지고 실질적인 삶이나 방향성과 관련된 부분들은 약화되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더 심각해진다. 즉 지식인 사회가 사회에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제도권력과 결탁하며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각종 연구용역들이 그런 거래의 매개가 된다). 이런 폐해에서 벗어나 자율성이 강화되고 다양한 지적 활동이 시민사회의 생활을 매개로 벌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운동의 다양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 참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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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 2011. “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의 교차점”, 충북참여자치연대 발표문(2011년 5월 23일)

하승우. 2011.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한국에서도 환상의 짝꿍일까?”, 충남발전연구원 발표문(2011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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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 2012. “풀뿌리운동, 안녕하신가요?”, 서울형 의제개발워크숍 발표문(2012년 6월 15일)

 요즘 말로 ‘돌직구’라고 그러죠. 그냥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1.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 왔나?

 

풀뿌리라는 말이, 마을과 공동체, 협동조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좋은 일이지요. 그동안 노력해온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팽팽하게 긴장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이 우리의 입과 우리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입과 힘을 통해 퍼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과 의지를 담은 말이 그저 그런 사업처럼 논의되고 있다는 현실을 눈감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풀뿌리운동에서도 ‘사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니 실무자가 필요하고, 어느덧 활동과 활동가는 거북한 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되지 어떻게 불리든 무슨 상관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운동은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고, 나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일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이 이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볼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 길을 어떻게 걷고자 하는지 서로 확인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2.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고 있나?

 

요즘 ‘prefigurative’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저는 이 말을 좀 좋아합니다. 이 말을 ‘예시적’, ‘전(前)형성적’,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는 ‘미래를 살아가는’이라고 씁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유토피아가 온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 사회가 지금 실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도 어떤 미래를 살고 있는지 한번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를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마음에 품고 그 사회를 하나씩 실현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사회에 관해서는 얘기하거나 살지 않고 그냥 그것이 있다고 믿기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진행되는 사업을 얘기하며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사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슨 달을 가리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알 수 없고, 달을 보여주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 예언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 그 예언이 실제임을 증명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증명하지 않는 예언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에 관한 문제가 사회에 관한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을 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3. 어떤 경계를 넘어야 할까?

 

풀뿌리운동에 정말 힘이 있을까요? 단지 박근혜 정부가 등장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법률 하나 제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고 사람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운동이 어떤 변화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동의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니 답답합니다.

 

더구나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파국’이라는 상황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체제가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이미 몇 년 전에 선포되었고, 핵발전소와 먹거리 등 일상이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지만 전 세계는 조금씩 들끓고 있습니다.

 

풀뿌리운동은 이런 현실과 무관할까요? 현실은 개판인데 우리는 여전히 힐링의 방식을 택하려는 건 아닌지, 저는 좀 우려가 됩니다. 이제 풀뿌리운동도 본격적으로 자기 경계를 확장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운동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의 운동들과 서로 엮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좀 힘이 나지 않을까요? 우리 일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지냐? 과연 그 우리 일이 과연 다른 일과 무관할까요?

 

곳곳의 공장과 일터에 위험물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착각 아닐까요? 우리 지역에 무엇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가, 이것은 더 이상 남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장기파업과 철탑농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역사회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황이 벌어지면 일시적으로 연대기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사회 변화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요?

 

자치와 자급은 무관할 수 없고 자급의 기반인 농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팔자 좋게 공동체를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농업이 사업과 산업으로 변한 사회에서 자치가 실현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생활정치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제도정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사회의 공공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우리끼리만 잘 사는 공동체는 재벌가의 아름다운 브랜드아파트 CF에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로 성공한 지역의 집값이 뛰거나 재개발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서글픈 상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권은 복지국가 유럽시민들만 누리는 특권일까요?

 

제가 운영위원장이라는 큰 권력을 낼름 사다리타기로 얻었습니다. 사다리타기로 얻은 권력, 양껏 써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작년부터 시작된 사례연구팀에서 어느 정도 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은 비정규직 노동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 인권운동 등 이미 진행 중인 다양한 운동들, 지역사회를 중심에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운동들과 공통의 질문을 놓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진행된 “인권운동가 + 풀뿌리운동가 우리 한번 만나” 자리가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단위를 만들지 않더라도 같이 고민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고민이 잘 나눠지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준비된 운영위원장 하승우였습니다.^^

요즘 들어 협동조합에 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협동조합에 관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언론매체에서도 협동조합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나 기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동조합이 대안사회의 기반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협동조합을 지역경제 발전모델로 고려하기도 한다.

 

왜 갑자기(?) 협동조합일까? 기념일 챙기길 좋아하는 한국인지라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조금 더 실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소개되는 경향을 보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면에 많이 집중된 듯하다. 그런 면도 분명 긍정성을 갖지만 그것만으로 협동조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강좌의 주제는 협동조합과 지역운동이다. 그런데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시초를 보면, 협동조합과 지역운동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곧 지역운동이었다.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협동조합이 고민되었다. 물론 협동조합은 경제활동을 하는 법인이자 조직활동을 하는 결사체이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고 힘을 축적할까?? 일반 기업처럼 경제활동을 하지만 경제활동의 목적이 달랐다. 자본주의 기업은 이윤의 축적, 자본형성이 목적이지만 협동조합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 힘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 그런 점에서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기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 지역운동이자 협동운동

 

일제 식민지 시기 여러 개혁가들이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남강 이승훈 선생도 그런 개혁가였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학교만 세운 게 아니라 협동조합을 근거로 한 이상촌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학교와 협동조합은 이상촌의 기둥이었다. 지역을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안병욱 등이 쓴 『안창호 평전』(청포도, 2007년)을 보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산과 강이 있고 지미가 비옥한 지점을 택하여서 200호 정도의 집단 부락”을 세우려 했다. 이 이상촌에는 “공회당(公會堂), 여관, 학교, 욕장, 운동장, 우편국, 금융과 협동조합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설치될 것”으로 “집단적인 회식과 오락”을 안창호 선생은 강조했다. 이 부락에는 금융기관과 협동조합이 있는데, “금융기관에서는 저금과 융자의 일을”, 협동조합은 “생산품의 공동판매와 일상생활 용품의 공동구매 배급기관”을 담당한다. 안창호 선생은 이 부락에 “일반교육의 학교 이외에 직업학교를 세우”려 했고 “직업학교는 농(農)․잠(蠶)․임(林)․원예․목축(牧畜)․공(工) 등의 여러 과목을 두되, 공에는 농가 건축, 농촌 토목, 요업, 식료품 가공, 농구제조의 목․철공, 농촌 상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소자본과 약간의 연장으로 직업을 갖고 이상촌의 한 몫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표였다. 안창호 선생은 이러한 모범촌과 직업학교를 각 도에 하나씩 설립해서 적어도 전국 각 면에 한사람씩을 선발하여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모범촌은 “첫째, 각 사람이 교육받고 훈련받은 직업 기능을 가질 것, 둘째, 그리하여서 농․어․임․공 기타 모든 생산방법을 과학화하고 합리화할 것, 셋째, 부락사업의 계획과 경영과 노력을 집단화할 것. 이것을 도산은 분공합작(分工合作)이라 하였다. 넷째, 부락의 금융과 공공 매매의 협동기관을 세울 것. 다섯째, 각 사람의 덕, 즉 신용을 향상하고 부락의 일상생활을 도덕적․위생적․심미적으로 개선하여서 생활이 안전하고 유쾌하게 할 것”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안창호 선생에게 협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안창호 선생은 이를 무실역행(務實力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아무리 옳은 것을 알더라도 행함이 없으면 아니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봤고 무실역행하는 중요한 기관이 학교와 협동조합이었다. 이 둘은 분리된 기관이 아니었다.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세운 대성학원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 1954년 원주에 세워진 장일순 선생의 대성학원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을 실제 계획에 옮겼던 건 이승훈 선생이다. 이승훈 선생은 충남 홍성군에 풀무학교를 세운 이찬갑 선생의 종증조부이다. 이찬갑 선생에 관한 백승종의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궁리출판, 2002년)에서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오산학교는 용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일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하숙집을 정해두고 있었다. 이찬갑의 집에서도 대문의 서편에 있는 사랑방 두 개를 학생들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숙비를 지불함으로써, 이 집의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1940년경까지는 그러했다.” 이승훈 선생은 용동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사유지 일부를 마을 전체의 공유 농지로 기증하는 한편 마을조직인 용동회를 조직했다. 용동회는 “자치적으로 마을의 위생, 교양, 풍기는 물론이고 마을의 모든 일을 처리”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가운데서도 한 명씩 간사를 선출하여 마을일을 함께 의논”했다. 용동회와 별도로 이승훈 선생의 측근과 친척들이 자면회를 조직해서 근면, 청결, 책임을 주장하며 “농지 개량, 연료 개량, 협동생산, 협동노동 및 소득증대”를 추구했다.

 

이렇게 “오산학교를 발전시키는 한편, 이승훈은 지역 공동체를 굳건한 기반 위에 세우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용동을 비롯한 오산의 일곱 마을에 저마다 동회를 조직하게 하고, 그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소비조합을 설치했다. 조합은 일곱 마을의 연합체이기도 한 동시에 동회의 상위 조직이기도 했던 셈이다. 소비조합은 본래 학생과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학용품을 값싸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찬갑은 소비조합 일에 특히 열심이었다. 1933년 3월부터 1935년 3월까지 그는 오산소비조합의 전무이사를 지냈을 정도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찬갑은 조합운동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 1958년 4월, 그는 주옥로와 함께 충남 홍성에 풀무학교를 창설했는데, 개교 직후 학교 내에 소비조합을 설치했던 것이다. 오산의 경우에도 소비조합의 사무실은 오산학교 구내에 있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학교와 조합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설명을 들어보자. “오산의 조합은 일종의 은행이었다. 오산학교 학생들의 학비는 부형이 학교로 송금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돈을 조합이 보관했다.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의 허가를 얻은 다음, 금전 출납부에 돈을 사용할 용도를 기입했다. 그런 뒤에야 지출이 가능했다. 용돈 지출의 경우, 학생들은 소비조합에 가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물품 구입에 사용한 금액은 매월 말 학교와 조합 및 조합원인 학생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계산되었다. 조합의 회원은 오산의 주민, 교사 및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대표가 상임위원으로서 조합회의에 참여했다. 오산 일곱 마을의 동회는 각 마을의 이익을 조합에 파견된 대표를 통하여 조합 회의에서 대변할 수 있었다.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인 지위에 관한 문제까지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관한 연구에서 서굉일은 주장하기를, 오산학교와 일곱 마을의 공동체 활동은 “학교와 교회, 농촌으로 나누어진 현장을 교육과 산업으로 구조화시키고 정신과 물질이라는 양면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서굉일 1988, 275). 서굉일의 그러한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사실, 오산학교의 시설물 가운데서도 주민들의 복지에 특히 기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던 학교 병원과 목욕탕은 그 이용이 전면 개방되었다. 학교에서 개최되는 각종 강연회와 음악회에도 주민들이 초대되었다. 그 밖에도 교회, 동회 및 야학을 통하여 오산의 뜻있는 인사들은 주민들의 정신생활을 지도했다. 그러한 결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휩쓸던 사회주의의 격랑 속에서도 오산 일대는 계층적 갈등이 노골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산학교의 교사였던 함석헌 선생이 1968년에 부산에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세우고 조합원 1호로 가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윤봉길 선생도 사실은 지역을 바꾸는 혁명가였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http://www.yunbonggil.or.kr/)에 가면 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불과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윤봉길 의사는 농업에 바탕을 둔 사회변화를 추구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주인공인 농민은 이 때까지 주인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농사는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라고 강조하는 <농민독본>을 직접 써서 야학에서 교재로 사용했다. “지식이란 혼자 힘으로 터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사실도 발표하여 남에게 가르쳐 보기도 하고, 실제로 적용해 보아야 비로소 산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례 강연회 때에는 열심히 연사의 말을 듣기도 하고, 토론회 때에는 여러분도 한번씩 연단에 올라가서 아는 바를 발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독서회를 조직했다. 이 독서회는 “1. 낮에 일하다가 쉬는 사이, 밤에 야학이 파한 뒤에도 시간을 내어 독서한다. 2. 누구나 독서한 뒤 그 소감을 적어 두었다가 토론회때 의견을 발표한다. 3. 제한된 책을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하는 관계로 가급적이면 빨리 읽고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라는 규정을 두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윤봉길 선생이 힘쓴 것은 협동정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매달, 매철마다 돈과 곡식을 모아 상을 당하거나 경사가 생겼을 때 서로 도우며 친목을 도모하는 위친(爲親契), 달마다 자신이 직접 번 돈 10전 씩을 모아 돼지와 닭을 기르고 유실수를 재배하는 월진회(月進會),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며 만든 수암체육회, “뭉처야 한다. 그리고 혁신해야한다. 살길은 단결과 혁신 뿐이다”라며 마을회관인 부흥원(復興院)을 세우고 이 건물에 야학당과 구매조합, 각종 회의공간을 만들었다. 부흥원은 “첫째. 증산운동(增産運動을 펴야한다. 둘째. 마을 공동의 구매조합을 만든다. 셋째. 일본 물건을 배척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土産品)을 애용한다. 넷째. 부업(副業)을 장려해야 한다. 다섯째. 생활개선이다.”라는 실천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를 권장했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농산품을 매매하고 그 이윤을 부원에게 배당했다. 농민공생조합을 만들어 공동구입 배급 및 판매를 담당하는 소비부, 창고 및 공장 경영, 위탁판매를 담당하는 생산부, 농자금을 융통하고 예금활동을 하는 신용부, 주요 농기구들을 관리하는 이용부, 병원과 이발소, 목욕탕을 운영하는 위생부를 뒀다. 만주로 떠나기 전에 4년 동안 충남 예산군에서 지역운동을 펼쳤다.

 

앞선 선배들의 사상과 삶에서 지역과 협동조합, 학교는 분리된 기관이 아니었다. 이런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치와 자급을 지향했다. 풀무학교가 내건 ‘위대한 평민’은 헛된 구호가 아니고, 다만 그런 위대함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로 증명되어야 했다. 협동조합은 위대한 평민들이 자신의 삶을 살고 협동하는 방편이었다.

 

이상촌은 한반도 내에서만 생기지 않았다. 무장항일조직인 <신민부(新民府)>를 이끌던 김좌진 선생이 김종진, 유자명, 이을규 선생 등의 도움을 받아 1929년에 만든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도 이상촌을 추구했다. 유자명, 이을규 선생 등은 북만주에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고 크로포트킨의 농업론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려 했다.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우리는 한 개의 농민으로서 농민대중과 같이 공동노작(共同勞作)하여 자력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활개선과 영농방법의 개선 및 사상의 계몽에 주력한다”는 당면강령을 세우고 자신의 뜻을 실현할 공동체를 찾았다.

 

<한족총연합회>는 자신이 만주에 사는 한국 교민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향상발전을 도모하며 동시에 항일구국의 완수를 위하여 재만동포의 총력을 집결한 교포들의 자주자치적 협동조직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족총연합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①교포들의 집단정착사업, 교포의 유랑 방지 및 집단부락 촉성, ②영농지도와 개량․공동판매․공동구입․경제적 상호금고 설치 등을 목적하는 협동조합사업, ③교육․문화사업, 즉 소학․중학의 설립운영, 각지조직의 연락 및 교포들의 소식․교포들의 생활개선․농업기술지도 등을 위한 정기간행물발행, 순회강좌․순회문고설치, 성인교육과 장학제도,  ④청장년에 대한 농한기의 단기군사훈련, ⑤중학출신자로써 군사간부양성을 위한 군사교육기관의 설립운영, ⑥항일게릴라부대의 교육 훈련․계획지도를 맡으며, 지방치안을 위한 지방조직체의 치안대의 편성지도 등을 위한 통솔부 설치.” 실제로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도정하기 위해 직접 정미소를 차리고 위탁판매까지 담당했다.

 

이런 운동들에서 주목할 점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이상촌이라는 구상 속에 각각의 기능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을 기르는 일과 지역사회를 성장시키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고, 학교와 협동조합이 분리되지 않았고 필요를 성찰하는 일과 필요를 조직하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은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공생공락하는 자치와 자급 공동체였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필영이를 제한 외에 네 아이는 무엇을 하던지 거리에 나가 신문지를 팔더라도 죄다 일전씩의 벌이라도 버는 일을 실행케 하고 이 불경기 시기를 이용하여 절용을 공부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안창호 선생의 협동조합은 정의돈수(情誼敦修), 서로의 사랑을 도탑게 닦는 것, 사랑하기를 날마다 힘써 그것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오산학교의 경우, 조합 사무실이 학교 안에 있었다. 이런 학교가 협동조합을 교육내용에 반영하지 않았을까? 윤봉길 선생은 마을회관 부흥원을 세우고 그곳에 야학당과 구매조합, 회의공간을 만들었다.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정미소를 세우고 협동의 그물망을 짬으로써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를 지금 현실에서 살아가려 했다. 협동조합은 그렇게 축적한 힘으로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발판이었다.

 

 

2. 협동조합은 어려운 것인가?

 

물론 사회상황은 바뀌었다. 한국은 더 이상 농사가 기본이지도 않고 지역 내의 관계망도 거의 파괴되었다. 마을은 의식적으로 관계 맺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미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일상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강력한 중앙집중화는 대부분의 지방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자식을 농민이나 노동자로 기르지 않으려 하는 상황은, 윤봉길 선생이 비판했던 그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고 교육은 이른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사회 어디에서도 협동을 경험할 곳이 없고, 우리의 마음과 습관은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촌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거의 사라졌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국가 차원의 독점을 상쇄시켰던 마을 내의 재분배, 이를 가능케했던 공유지들이 거의 사라졌고, 최소한의 생계기준도 바뀌었다. 제임스 스콧의 『농민의 도덕경제』(아카넷, 2004년)를 보면, “농민에게 있어서의 기준은 ‘얼마나 가져가는가’보다 ‘얼마가 남는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생존기준은 착취당한 잉여가치라는 기준에 의존하는 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착취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들은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논리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의 협동조합운동을 봐도 우호적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초기에는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그 시련이 협동조합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협동의 근본은 동일하다고 본다. 내 것을 우리 것으로 전환시키고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려는 노력, 서로를 우리 삶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 서로의 필요를 공동의 필요로 만들어 우리의 몫을 키우는 과정이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일본 유학생으로 <협동조합운동사>를 조직하고 활성화시켰던 전진한은 자전적 기록인 『이렇게 싸웠다』(무역연구원, 1996년)에서 자신의 이념을 ‘자유협동주의’라 명명했다. “개인주의에서 독점성과 배타성이 止 즉 폐기되고 개성자유 즉 개성존엄성, 평등성, 창의성이 揚 즉 보존됨과 동시에 전체주의에서 강권주의와 기계주의가 止 즉 폐기되고 사회협동 즉 사회연대성, 공존성이 揚 즉 보존”되는 이념인 자유협동주의는 농어촌의 협동조합체계와 도시의 소비자/생산자협동조합체계를 결합할 뿐 아니라 임금제도를 철폐하고 이익을 균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협동조합조성법, 협동조합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던 전진한은 국가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민중의 자조적인 생활을 통해 협동조합 공화국을 만들려 했다. 그는 “국민경제가 일부 독점재벌이나 간상모리배 심지어는 탐관오리에게 농단됨이 없”도록 협동조합운동을 활성화시키려 했다.

 

전진한이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한 방식은 간단했다. 매일 한 사람이 한 숟가락의 쌀을 저축(자조미自助米)하고 매월 5, 10, 15, 20, 25, 30일 저녁식사를 죽으로 대체하고(애향미愛鄕米), 매월 7, 14, 21, 28일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그 쌀을 모은다(구국미救國米). 농가나 공장도 수확을 할 때나 상품을 팔 때 조금씩 판매량을 저축한다. 이것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본자산이 된다. 그 결과 불과 2년 만에 협동조합의 수가 22개, 조합원수 약 5천명에 이르렀고 자본금도 4만 5천여원에 달했다.

 

협동조합의 틀이 정형화될 필요도 없다. 차성환의 글 “양서협동조합운동의 재조명”(2009년)에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활동했던 양서협동조합운동이 설명된다. 부산의 청년활동가들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이며 도덕적인 개혁운동으로 구상한 양서협동조합운동은 말 그대로 좋은 책을 널리 권하고 함께 읽으며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운동이었다.

 

1978년 4월에 창립총회를 가진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107명의 조합원으로 시작되었고 “본 조합은 양서를 적정한 가격으로 구입․보급하고 지역사회 개발사업을 통해 부산지방의 문화 향상을 도모하며, 조합원 상호간의 협동과 신뢰에 기초한 민주적 경영방식을 익히고 나아가 경제적 민주주의와 협동주의에 입각한 참다운 자주, 자립적 경제질서의 전 사회적 확산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 목적을 위해 양서를 구입하고 판매하는 시설을 설치, 운영했고,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매월 1천원 이상 출자하고 매월 책 2권 이상을 구입하게 했다.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고, 도시문제 연구모임, 농촌문제 연구모임 등 사회문제 학습모임과 사진반, 연극반, 꽃꽂이반 등의 취미모임도 만들었다. 이런 활동으로 부산의 양서협동조합은 불과 1년 만에 조합원 수가 3배로 늘었고 흑자로 운영되었다. 이 글에 따르면 양서협동조합의 빠른 성장은 기독교 교회의 전도방식과 비슷했다고 즉 “조합원이 조합원 신입교육을 받고 취지에 흔쾌히 찬동하고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해 주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는 매력”을 줬다고 한다.

 

양서협동조합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정부의 감시와 압력을 받게 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불씨를 일구기도 했는데, 결국 정부가 양서협동조합을 부마항쟁의 배후조직으로 지목하면서 강제로 폐쇄되었다.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 마산, 대구, 울산, 서울, 수원, 광주로 퍼져나간 양서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이 민주주의를 불태우는 횃불임을 증명했다.

 

어두운 시대에 협동조합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틀이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따스한 온기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고, 노동자가 농민을, 농민이 노동자를 만나고, 학생이 선생을, 선생이 학생을 만나고, 그렇게 서로를 동등한 시각에서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협동의 힘이 생긴다.

 

협동조합운동을 어렵게 만드는 건 부족한 자원이 아니다. 협동조합에 출자하기 위해 한 사람이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쌀 한 숟갈 모으면, 협동이기에 순식간에 큰 자원이 된다. 협동의 힘은 내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마음이다. 나중에 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가진 것을 공유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들의 의미를 밝혀주고 더욱더 단단하게 다져주는 사상, 사상을 실현시키는 다양한 조직들이 협동운동을 가능케 한다.

 

반면에 서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도 여기는 순간 협동의 힘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조그만 지원금이나 매장을 놓고 지역에 있는 작은 단체, 협동조합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 사람의 성장을 기다리고 지원하지 않는 조직, 스스로 직접 나서지 않고 뒤를 봐주길 기대하는 문화는 협동운동의 힘을 위축시킨다.

 

3.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는 법

 

운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의 목표는 현실을 빌미로 삼아선 안 된다고 믿는다. 한 사람이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기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현실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 속에 학습된 기성사회의 논리로만 바라볼 경우, 우리는 주어진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년)에서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가독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적인 경험과 체험으로 구성된 경험지의 시각을 가져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외국의 모델을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다.

 

아울러 단순히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사회서비스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평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소외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년)에서 경제적 필요가 정치적인 자유의 절박성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①정치적․사회적 참여를 포함하는 기본적인 능력과 관련된 인간의 삶에서 그것들의 직접적 중요성, ②경제적 필요의 주장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정치적 관심사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표출하고 지지하는 발언의 기회를 강화시키는 그것들의 도구적 역할, ③사회적 맥락에서 ‘경제적 필요’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여 ‘필요’의 개념화에 있어서 그것들이 지니는 구성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센은 경제적인 발전이 개인을 능동적인 행위주체로 변화시키는 전략과 연계되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자원들을 중앙정부와 재벌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런 지역들이 촘촘히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나는 이를 지역들의 연합, 연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지역이 홀로 고립되어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정치를 변화시키고 분권을 이루려는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 <YMCA>운동을 이끌었던 황주석 선생은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그물코, 2007년)에서 이미 ‘시민생활나라’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시민생활나라는 참여와 자치, 자결과 협동을 중히 여기고 이로써 운영됩니다. 또한 시민생활나라는 연대를 중히 여깁니다. 나라 안의 연대, 나라 간의 연방을 형성하며 나라가 뻗어갑니다.” 중요한 과제들이 이 속에 모두 담겨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맥낼리는 『글로벌 슬럼프』(그린비, 2011년)에서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위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기를 주도하는 탈정치화의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하는 것, 그것이 대안이라고 맥낼리는 얘기한다. 그러니 협동조합은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유럽 협동조합의 기본은 농민과 소상공인, 도시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위해 협동조합은 분권화를 추구했고 지역과 지방은행을 강화시켰다. 중앙에서 조직되어 지방으로 퍼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급이 기본이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중앙이 개입했다. 중앙이 가서 판 깔아주고 컨설팅해주고 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협동조합들은 자급의 원칙을 지키고 있고, 분권화되어 있어 유연하고 조합원이나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나 협동조합이 조직되는 방식은 어떤가? 수도권과 중앙 중심이고 그 구조가 집중화되어 있다. 이런 구조를 비판하고 바로잡지 않고서는 협동운동의 성공을 점칠 수 없다.

 

아울러 협동조합은 공론장(公論場)이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과 행동들이 이 장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고 조절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수많은 얘기와 활동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분리된 삶터와 일터의 얘기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순환되어야 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삶터에서 얘기되고, 반대로 삶터의 일들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얘기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 배달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들이 그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얘기되어야 한다. 또 재벌들이 만드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조건에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제품을 쓰고 보험을 들고 주식투자를 하는 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합원들이 고민해야 하고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 벗어나면, 지금 저항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 행복을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틀,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게 하는 틀, 중앙이 아니라 변방을 강화시키는 틀, 협동조합은 그런 틀이다.

 맨 날 똑같다. 한참을 욕하다가 선거 당일이 되면 울며 겨자먹기로 투표한다. 최악이 안 되면 다행이고, 최악이면 술을 들이킨다. 정치하는 인간들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민의 가슴이 뛰길 원치 않는다. 그냥 표만 찍어주길 원한다. 니들이 찍지 별 수 있겠냐, 그런 똥배짱이다. 이런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몇일 전, 동네에 걸려있던 선거벽보를 누가 찢었다. 딴 일엔 굼뜬 경찰이 재빨리 출동했고, CCTV에 잡힌 용의자를 체포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지원금 부족에 불만을 품고 찢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급자가 아닌 나도 선거벽보를 보면 가끔 찢고 싶을 때가 있다.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슴이 뛰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는 ‘소위’ 진보후보가 세 명이나 되는데, 가슴이 전혀 안 뛴다. 한 명일 때도 가끔 벌렁거렸던 가슴이 세 명인데도 죽은 듯 잠잠하다. 그냥 선거 공탁금만 떠오른다. 세 명 합치면 11억인데, 아깝다, 돈을 쓸 때는 팍팍 써야 하겠지만 이런 판에 왜 팍팍 써야 할까,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이 판이 이렇게 된 것에는 우리만의 ‘이율배반’도 한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대통령 후보들이 현장을 방문하고 우리를 지지하기를 ‘내심’ 기대한다. 표가 보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자들이 사람들이 모이면 올 만도 한데, 그들은 오지 않는다. 사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찍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곳에 표가 보이지 않기에 그들은 오지 않는다. 까놓고 말하면, 사실 아닌가. 우리는 ‘소위’ 진보후보를 찍을 사람들이 아닌가. 오지 않을 거라, 우리를 대변하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우리는 그들이 오지 않는다고 욕한다. 왜?

 

우리 편이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면, 선거에서는 편을 바꾸거나 같은 편을 먹는 것이 상식인데, 또 우리는 그러지도 못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자세이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니 맨 날 만나는 사람들 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우리 편이 늘 부족하다고 한탄한다. 이런 이율배반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선거는 맨 날 똑같을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우리 때문에.

 

 

사실 선거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선거 이후이다. 정책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책을 보자는 것은 그 사람이나 캠프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선거 이후에 뭘 하려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편, 저 편 논의에서 사라지는 건 정책이고 선거 이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말들의 잔치이고 이후를 얘기하지 않는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그 공약을 뜻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만 한 명 달랑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라 정책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니 통 크게 우리가 몰표를 줄 테니 노동부나 복지부 전체를 우리한테 넘겨라, 뭐 이런 수를 쓸 수는 없을까?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이니 그 정도 약속을 받으면 우리 몫을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선거‘까지’만 얘기하고 그 때 웃고 울기에 이후를 보지 않는다. 누가 당선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아무런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기에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기성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진심이든 뻥이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면, 우리는 늘 익숙한 공간을 헤맨다. 그러니 선거 이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맨 날 그 편이 그 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까면서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알기에 기득권층은 선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안다. 심지어 별 수 없이 자신들을 지지할 거라는 사실도.

 

그것은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복직을 하더라도 기업의 주인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마찬가지이다. 제 손으로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자들이 노동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국외로 튈 수도 있지만 외국이 자신들의 천국일 수 없다는 점을 그들은 잘 안다.

 

그러니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살겠다고 결의할 수는 없을까?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일 수는 없을까?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을 만들어 우리끼리 재밌게 살면, 그들도 좀 머리를 숙이지 않을까? 맨 날 제왕적 대통령제라 욕하면서 대통령 제도를 한 치도 바꿀 생각을 못 하는 그런 냉소주의를 버리고 헌법을 바꿀 수는 없을까? 검사나 판사가 또라이라고 욕하지 말고 그들이 준거로 삼을 헌법을 우리 뜻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경찰이 깡패라고 욕하지 말고 경찰서장을 우리 손으로 뽑을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열심히 세금 내봐야 4대강 사업이나 토건사업에 쓸 텐데, 그런 몫을 주지 않고 우리가 나눠서 잘 쓰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을까? 선거 이후를 보며 칼을 벼리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선거판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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