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씨가 쓴 [호모 에로스]라는 책을 읽었다.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기로 했는데,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는 말에 역시 그 또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주제가 선택되었다.
한 친구가 고미숙씨의 [호모 에로스]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러자고 답을 했다.

사실 나는 고미숙씨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지나친 자기확신이랄까,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으며 느꼈던 불편함과 몇몇 잡지 인터뷰를 보면서 느꼈던 뜨악함, 그리고 최근 [열하일기] 번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얘기들, 뭐 이런 것 때문에 좋아하진 않지만, 그 친구들이 좋아할 이유도 있겠다 싶어 한번 읽어봤다.

내가 나이를 먹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내용은 별로 없다.
내 사랑을 타인에게 투영하지 말고 내 자신을 찾아라, 과잉하지도 냉소하지도 말라, 자기의 몸과 정직한 대화를 나눠라, 몸의 감응력, 내공을 길러라, 뭐 이정도...

그런데 나는 책을 읽으며 자꾸 지붕뚫고 하이킥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애교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사랑과 에로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사랑에 대한 원론적인 주장이나 분석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내는 그 다양한 변주에 대해서는 별반 내용이 없다.
마치 글로 배운 듯한 얘기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니 웃음이 날 수밖에...

사람의 손을 잡고 만지고 껴안고 키스하고 애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 많은 에너지와 생각들, 사람을 생각하는 것과 사람을 만지고 느끼는 것 사이에 놓인 그 차이를 고미숙씨는 잘 모르는 듯하다.
정말 쿵푸하듯 열심히 에로스를 배운 듯한 느낌만이(왜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 책 제목은 에로스이지만 에로스에 관한 얘기는 없다. 아마도 고미숙씨는 에로스를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지 않는 '원나잇스탠드'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고, 설령 '원나잇스탠드'라 할지라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양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그냥 누군가의 이야기에 기대어 얘기를 풀어갈 뿐 실감나는 얘기가 없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서 고미숙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사랑을 할땐 공부를 하라"는 얘기에선 웃음이 아니라 실소가 터져 나왔다.
사랑을 할 때 세미나를 하라니, 이게 무슨 에로스적이지 않은 소리인가.
그런 점에서 나는 고미숙씨가 인용한 빌헬름 라이히의 [오르가즘의 기능]이라는 책을 진정 열심히 읽어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마음과 몸으로 나누는 그 많은 대화들이, 다양한 생활들이 그렇게 간단히 재단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울러 나는 평론가인 고미숙씨가 김선우 시인의 '목포항'이라는 시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무쪼록 사랑과 에로스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호모 에로스]를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린다면, [호모 에로스] 역시 '쾌락 파시즘'의 변종일 뿐이다.

김선우 시인의 '목포항'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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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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