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09.12.12 10:04

백무산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90년대 초반 박노해와 더불어 노동계급의 삶과 투쟁성을 절절히 느끼게 했던 이...
작년에 나온 [거대한 일상]을 절반 정도 읽었는데, 문학의 힘이라는 걸 조금은 다시 느끼고 있다.
시집을 다 읽으면 한번 시평을 써볼까 생각도 한다.

시집을 읽다보니 맑스와 바쿠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이제 백무산 시인도 아나키즘으로 전향하셨나?^^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이 누구와 손을 잡고자 했는가, 왜 그들이어야 했는가, 왜 그런 이들이 사라졌는가를 시인은 짧은 언어로 얘기한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 아프면서도 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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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댈 곳

                                                   백무산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검은 얼굴의 두 사내가 쇼핑을 나왔다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손으로
라면과 야채를 넣었다 뺐다 들었다 놓았다
돈에 맞추느라 줄였다 늘렸다 했다

계산서를 구기던 여직원이 무전기 든 덩치를 불렀고
덩치는 주먹을 흔들고 욕을 퍼붓고 침 튀겼다
깜둥이 새끼들 돈 없으면 처먹지 말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은 지랄이야!
옆 계산대를 빠져나오던 자그마한 한 비구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두 배는 됨직한 그 덩치를 무릎 꿀렸다

저 자리에서 절절매며 살던 덩치가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였다
힘있는 덩치와 문명의 나라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맑스였고
희망없는 '인류의 쓰레기'들과 땅을 잃은 뜨내기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바꾸닌이었다
한줌 가진 것에 기대 비굴하게 오염되어
열정을 잃어버린 덩치들을 그는 경멸했다
그로 인해 그는 패배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더렵혔지만 진실은 그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은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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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11.16 09:04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리라.

누구든지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리라.

누구든지 불의한 세력에 침묵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두 귀를 닫으리라.

세상에서 받을 칭찬과 보상을 다 받은 자에게
하늘은 그를 위해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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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
90년대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으로 내게 충격을 줬던 시인이다.
특히 '이불호청을 꿰매면서'라는 시는 내게 강렬한 느낌을 줬고, 그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이끌기도 했던 그.
출옥한 뒤에는 <나눔문화>라는 단체를 만들어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한 때 그의 변화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내 의심을 탓하면서...
그가 살고자 하는 가난과 평화의 삶이 내게도 다른 방향은 아니니...
얼마 전 나눔문화 강연을 다녀오면서 그가 쓴 두번째 팜플랫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를 선물받았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그가 무엇을 보려 하는지 잘 드러난 책이다.
어쩌면 그 당시 <사노맹> 활동을 했던 사람들 중 박노해 시인이 가장 건강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언제 한번 막걸리 한잔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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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11.16 08:56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더 이상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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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 '못난이 노자'라는 글을 연재하는 송기원 시인의 시이다.
정신이 번뜩 나게 하는 날카로움이랄까.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난다는 구절도 섬뜻하지만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누군도 엿보며 웃고 있도다"라는 구절 역시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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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9.15 08:22
나눔문화가 보내주는 숨고르기에 실린 박노해 시인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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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을 먹을 때
가위로 자르지 마라
그 사람과 절교의 식사가 아니라면

김치를 먹을 때
가위로 자르지 마라
오랜 인연과 결별의 만찬이 아니라면

끈을 묶을 때
풀 때를 생각하며 사려 깊게 매듭을 지어라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게 하지 마라

가위는 반듯이 오릴 때만 써라
단절과 파괴를 위해 가위를 들지 마라
가위는 오직 창조를 위한 단절에만 써라

사람 관계도 일의 정리도
세상을 바꾸는 투쟁도 그러하다
살리고 나누고 창조를 위해서만 가위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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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이렇게 시를 나누는 것도 문제삼을 수 있다는 말씀.
그러니 이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가.
법을 어기는 게 바로 사는 법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저작권법에 대해서는 가위를 써야 할 듯.^^

그나저나 박노해 시인은 아나키스트로 전향했나?
파괴를 향한 열정이 창조를 향한 열정이라는 바쿠닌의 느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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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1.30 14:23

제대로 된 혁명

- D.H.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즐거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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