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90년대 초반 박노해와 더불어 노동계급의 삶과 투쟁성을 절절히 느끼게 했던 이...
작년에 나온 [거대한 일상]을 절반 정도 읽었는데, 문학의 힘이라는 걸 조금은 다시 느끼고 있다.
시집을 다 읽으면 한번 시평을 써볼까 생각도 한다.
시집을 읽다보니 맑스와 바쿠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이제 백무산 시인도 아나키즘으로 전향하셨나?^^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이 누구와 손을 잡고자 했는가, 왜 그들이어야 했는가, 왜 그런 이들이 사라졌는가를 시인은 짧은 언어로 얘기한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 아프면서도 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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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댈 곳
백무산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검은 얼굴의 두 사내가 쇼핑을 나왔다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손으로
라면과 야채를 넣었다 뺐다 들었다 놓았다
돈에 맞추느라 줄였다 늘렸다 했다
계산서를 구기던 여직원이 무전기 든 덩치를 불렀고
덩치는 주먹을 흔들고 욕을 퍼붓고 침 튀겼다
깜둥이 새끼들 돈 없으면 처먹지 말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은 지랄이야!
옆 계산대를 빠져나오던 자그마한 한 비구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두 배는 됨직한 그 덩치를 무릎 꿀렸다
저 자리에서 절절매며 살던 덩치가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였다
힘있는 덩치와 문명의 나라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맑스였고
희망없는 '인류의 쓰레기'들과 땅을 잃은 뜨내기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바꾸닌이었다
한줌 가진 것에 기대 비굴하게 오염되어
열정을 잃어버린 덩치들을 그는 경멸했다
그로 인해 그는 패배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더렵혔지만 진실은 그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은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