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도 여행은 가고 싶은데 탄소배출량은 걱정되고. 그럼 탄소배출량이 낮은 기차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캐리어를 가득 채운 짐과 자동차는 놓아두고 배낭 하나 가볍게 메고 떠나는 여행. 빠른 고속열차보다는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고속철은 서지 않는 작은 역에 내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자연과 지역을 경험하는 저탄소 여행. 내 건강에도, 지역에도, 지구에도 나쁘지 않은 여행. 지역을 소비하지 않고 알아가는 공감여행.
2028년이면 무궁화호가 사라질 예정이고, 그러면 작은 역의 운명도, 무궁화호가 서던 지역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당장 지켜낼 방법은 없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애틋하게 사랑하면 뭔가 방법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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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구미역을 지나 내리는 약목(若木)역의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이다. 1918년부터 운영되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역이지만 지금 건물은 2000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이제는 무궁화호조차 잘 서지 않아 출퇴근 시간에나 약목역에 내릴 수 있으니, 뚜벅이들은 아침에 서둘러야 한다.

약목역

지금은 여객보다 화물 중심이라 한 켠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약목역에 내려서 작은 역전으로 나오면 당황스럽게도 곧바로 큰 도로와 눈 앞에 시골 상가 풍경이 들어온다. 여기에 뭐가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일단 역전 횡단보도를 건너가자.

남계교

길을 건너 칠곡약목우체국을 보고 좌회전해서 조금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이 정류장 위치를 기억해 둘 것!), 약목전통시장을 지나 조금 더 걸가면 두만천의 남계교가 나오고 거기에 신유장군 유적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걷기의 시작이다.

그렇지만 시내의 상가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점심을 어디서 먹으면 좋을까 식당을 찾으며 걷는 걸 추천한다. 오래된 중국집, 손칼국수, 순대국, 뚝배기해장국, 손국수, 추어탕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곳곳에 있으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식도락 아닌가.

유적지 가는 길

표지판 방향으로 인도가 이어지고 중간에 잠시 끊어져도 반대편에 인도가 있으니 걷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 개천 왼편에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풍경이 보이고 앞에는 시묘산과 비룡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다면 잠시 이어폰을 빼고 개천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대나무를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보자.

곤산서원

조금 걷다 보면 오른편에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들이 사용하던 곤산서원(崑山書院)이 나온다(2004년에 복원된 건물). 인터넷을 찾아보면 사전에 협의할 경우 관람을 할 수 있다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곤산서원을 지나 1킬로미터 정도 더 걸으면 신유장군 유적지가 나온다.

칠곡군 관광 안내도
인문학마을 표지판

유적지 입구 칠곡군 관광안내도를 보면 멀리 떨어진 호국평화기념관, 꿀벌나라테마공원, 칠곡왜관철교, 칠곡평화분수같은 관광지들도 표시되어 있다(이곳은 왜관역에 내리면 걸어갈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왜관역 편을 참조!). 그것보다 더 호기심을 끈 것은 칠곡인문학마을이란 이정표이다(적정기술의 흔적도 보이고 커뮤니티센터 이름도 공평화락인데, 칠곡군이 한때 문화도시를 지향했다). 신유 노래비(신류 장군이 아니라 그 18대손인 가수를 기리는 노래비. 헷깔리지 말 것)를 지나 조금 위로 걸어올라가면 신유장군 유적지가 나온다.

신유장군 유적지

신유장군 유적지는 신류(申瀏, 1619~1680)를 모신 사당으로 신류는 1658년에 제 2차 나선정벌을 지휘했던 장군이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신류는 조총부대를 이끌고 파병을 가서 러시아군과 싸워 이겼고, 141일간의 일상을 빠짐없이 기록해 《북정록(北征錄)》이란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북정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더불어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신류가 당시 러시아에서 입수했던, 화승총보다 개량된 수석식 소총은 조선의 조총기술을 한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적지에는 신류 장군의 신주와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과 비석, 묘소를 볼 수 있다. 난세에도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장수는 말년에는 역모에 휘말리는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조선시대 뛰어난 장수들의 국룰!).

그때나 지금이나 동북아시아의 정치는 불안정하다. 당시 조선은 조공을 바치던 청나라의 요청으로 파병을 한 셈인데, 분단된 남북한은 중국, 러시아, 미국이라는 강대국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조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한미일동맹과 충돌할 가능성을 점점 더 높이고 있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한 정세에, 신뢰할 수 없는 청나라의 지휘를 받으며 2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오지로 떠나야 했던 장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북정록》은 1980년대에 번역되어 절판되었으니 도서관을 뒤지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두만저수지

신유장군 유적지는 공평화락 초록권역에 있고, 유적지 바로 옆이 두만저수지이다. 두만저수지는 1970년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둘레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길에 경사가 없어 걷기 편하고, 물결이 잔잔해 햇살이 반짝이는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다.

시골 마을에 이렇게 산책로를 만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드는데, 보통 이런 사업은 농림부가 진행하는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으로 진행된다. 여러 마을들의 연계형 사업들을 발굴해 정주여건이나 복지, 문화를 강화시키려는 사업인데, 전국의 많은 농촌들이 이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예산이 수십억을 넘어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지원하는데, 주민들보다는 컨설팅업체나 건설업체들에게만 이로운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곳곳의 흔적으로 봐서 칠곡군은 인문학 관련 사업을 시도한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입구에서 본 공평화락(公平和樂)이라는 말 자체는 참 뜻이 깊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즐거워한다, 요즘 참 그리운 단어 아닌가.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길을 걸으시는 분들 상당수가 마을 사람들이라 서로 인사를 나눈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여행지보다는 시골 동네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신유장군 유적지와 두만저수지를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시간은 잘 걷는 사람이라면 3시간,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까 유적지 표지판을 봤던 남계교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특이한 벽화들이 눈에 띈다. 2018년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던 《칠곡가시나들》의 배경이 바로 약목면이고, 할머니들이 쓴 시가 벽화로 남아 있다(관리는 잘 되고 있지 않은듯). 다들 시골마을 고령화되었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인생 팔십줄 사는 기 와 이리 재민노라 하신다. 시골의 쇠퇴가 정말 고령화 탓일까?

칠곡가시나들 벽화 거리

시간여유가 있는 사람은 시장통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저녁까지 기다려 기차를 타도 좋고, 급한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11번이나 111번을 타면 40분 정도 걸려 구미역으로 갈 수 있다. 20분 정도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으니 급한 사람은 구미로,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약목면의 풍경을 즐기며 공평화락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자. 지금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할까?

기후위기 시대에도 여행은 가고 싶은데 탄소배출량은 걱정되고. 그럼 탄소배출량이 낮은 기차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캐리어를 가득 채운 짐과 자동차는 놓아두고 배낭 하나 가볍게 메고 떠나는 여행. 빠른 고속열차보다는 느린 무궁화호를 타고, 고속철은 서지 않는 작은 역에 내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자연과 지역을 경험하는 저탄소 여행. 내 건강에도, 지역에도, 지구에도 나쁘지 않은 여행. 지역을 소비하지 않고 알아가는 공감여행.
2028년이면 무궁화호가 사라질 예정이고, 그러면 작은 역의 운명도, 무궁화호가 서던 지역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당장 지켜낼 방법은 없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애틋하게 사랑하면 뭔가 방법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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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텀블러에 물만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인 용궁역의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용궁면의 한자어는 실제로도 용궁(龍宮)인데, 왜 바다없는 육지에 용궁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곳의 지형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용궁면 남쪽에 낙동강이 합류하는 연못인 용담소(龍潭沼)가 있는데, 그 깊이가 깊고 바닥이 동굴로 이어져 용이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용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슷한 지형의 용두소(龍頭沼)가 있어 두 마리 용이 부부가 되어 이 지역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용궁면이라는 지명은 바다 용왕과는 연관이 없지만 그런 낙원을 만들자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용이 지키는 지역은 어떤 기운과 풍경을 품고 있을까?
용궁역은 경부선으로 바로 갈 수 없고 경부선 김천역에서 경북선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김천역에서 용궁역을 오가는 기차는 하루에 다섯 번(상하행 합치면 열 번), 그러니 환승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기차 시간을 놓쳐 김천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역에서 5분 거리인 ‘시인의 거리’를 돌아봐도 좋다. 시인의 거리는 조금 오르막이지만 조용한 동네 사이로 지역 시인들의 작품이 낮은 담벼락에 그려져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다.

아침에 조금 서둘러 9시 14분에 김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용궁역에서 오후 3시 4분이나 5시 39분에 김천역으로 돌아오는 열차를 탈 수 있어 여유있게 용궁면을 둘러볼 수 있다.
                    김천역 경북선 시간표
 
이렇게 기다리면서까지 꼭 기차를 타야 할까? 기차의 탄소배출량이 자동차나 비행기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더구나 기차는 공공교통수단으로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약자의 기본권 보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기차가 활성화되어야 우리는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꼭 낭비하는 시간일까? 연인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렌다. 찾아갈 곳에 관해 생각하고 그곳의 정보를 찾으며 아직 만나지 못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 자동차와 달리 우리는 기차에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조차 싫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때릴 수도 있고.

김천역에서 두 량으로 구성된 작은 무궁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십이분 정도 가면 용궁역에 도착한다. 용궁역은 예천군에 속하지만 문경시와 바짝 붙어 있고 점촌역에서 기차로 6분밖에 안 걸린다(그래서 점촌을 오가는 버스도 다닌다). 고속철도에선 볼 수 없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풍경들을 보며 이동하다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현재 용궁역은 무인역으로 역무원이 없고, 역 내부는 별주부전을 묘사한 인형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익숙한 별주부전도 좋지만 용궁면의 특징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있지만 잠깐 둘러볼만은 하다.
              용궁역 별주부전 전시관 
용궁역 전경 
 
역을 나서면 왼편에 귀상어, 물메기 등을 묘사한 12해신의 동상이 있고 작은 카페용궁역이 있다.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 입장에서 크게 매력적인 시설은 아니지만 다 걷고 난 뒤에 차 한잔 하며 열차를 기다리기엔 나쁘지 않다.
역을 등 뒤로 하고 나서면 용궁척화비와 만파루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용궁척화비는 대원군이 전국 곳곳에 세웠던 척화비이고, 만파루는 1988년에 복원된 누각인데 독립운동의 기운을 담은 곳이라고 한다. 만파루 옆엔 예천독립운동기념비도 있어 3.1운동이 얼마나 전국적으로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저항이 넓어질수록 탄압은 어렵고 민심은 깊어진다.
만파루 전경
 
만파루 누각에 오르면 용궁면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면중심지를 낮은 산들이 쭉 둘러싸고 있어 눈이 시원해진다. 하나둘 높은 건물이 채워가는 대도시와 달리 조금씩 쇠락해가는 지역의 풍경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럼에도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고 지키고 있는 기운을 느낄 수도 있다. 낡은 것이 버릴 것은 아니듯이 쓰임새는 가치를 반영하고, 기후위기 시대는 그 가치의 전환을 요구한다.
만파루를 내려오면 뚜벅이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면중심지를 꼼꼼히 돌아보는 것. 면에서는 2017년에 복원된, 용궁면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용궁현청, 벽화가 그려진 용궁시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둘째는 사진찍는 장소로 알려진 부부송을 돌아보는 것, 셋째는 열찻길을 가로질러 황색 꽃을 피운다는 오백년된 팽나무 황목근을 둘러보는 것이다. 체력이 있고 이동이 편하고 시간이 넉넉하다면 세 곳을 다 돌아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부송보다는 황목근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부부송 주위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듯하고 용궁교까지 가는 길이 찻길이라 걷기에 편하지 않다. 그래도 출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가보고 싶다면 용궁교를 지나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강변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된다. 주의할 점으로 면 내에는 공용화장실에 여럿 있는데 외곽으로 나가면 화장실이 없으니 용무는 미리 해결하고 이동하면 좋다.
용궁현청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부부송 전경 
황목근으로 건너가는 철길
황목근과 용궁향교 가는 길 
황목근 전경 
 
면 내를 찬찬히 돌아볼 때는 그냥 둘러봐도 되지만 나중에 밥 먹을 식당을 잘 물색하면 좋다. 부지런히 눈품을 팔면 취향에 맞는 식당을 찾을 수 있다. 용궁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음식은 순대국과 오징어불고기이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순대국집들이 여럿 있고, 내륙이니만큼 배에서 잡자 마자 급냉한 오징어를 가져와 연탄불에 구운 오징어도 판다.  그 외에도 곳곳에 오래된 식당들이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며 밥 먹을 곳을 정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천연기념물 제 400호로 지정된 팽나무 황목근(黃木根)으로 가는 길은 만파루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조금 가면 철길을 지나는 길이 오른편에 보인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단골식당 별관 바로 옆인데, 철길을 건너면 걷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겹겹이 겹쳐진 산세가 시야에 확 들어오고 눈을 가리는 곳이 없어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길을 따라 나무가 늘어서 있지만 땡볕이라면 양산을 챙길 것을 권한다. 
나무데크로 조성된 길에서 황목근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빠지면 작은 동네가 나오고 동네를 통과해서 들판 사이로 조금 더 걸어가면 황목근이 나온다. 황목근은 500년 이상 된 팽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당산제를 지내는 비석이 앞에 있다. 마을 재산이던 토지가 황목근으로 등기이전되어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을 압도하는 풍광이나 사람이 몰리는 관광상품은 아니지만 한가로이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기기 좋은 곳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겠지만 뚜벅이의 반경은 이정도가 딱 적당하다.
면도 둘러보고 황목근도 다녀오면 식사에 막걸리 곁들여 한잔 하기 좋은 시간이다. 아니면 미리 막걸리 한잔 하고 살짝 들뜬 기분에 걸어도 좋다. 지역음식에 곁들여 가볍게 한잔 하며 즐기는 게 기차여행의 즐가움 아닐까. 그러다보면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 삶처럼 올 때의 방향과 갈 때의 방향에서 본 풍경이 다르니 돌아가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걷는 거리와 시간으로 따지면 용궁면은 순한 맛 정도. 가파른 오르막이 없고 걷는 거리도 그리 길지 않다. 좀 더 많이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다음 여행지는 매운 맛 코스로.^^

기후위기, 기술과잉, 초고령사회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들을 받고 부족하지만 최근의 고민들을 짧게 정리하려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삼은 산업문명이 한계에 봉착했고 그로 인해 불거진 재난들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지역이 과연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압축성장의 그늘과 문제점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분위기보다는 여전히 메가서울, 메가시티와 같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다양성이 논의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따라잡기와 복제의 힘이 훨씬 더 큽니다.

성북구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지역과 지역학은 의미가 있고 진지하게 다뤄야할 주제입니다. 저 역시 지역의 가능성을 보고 오랫동안 자치와 자급의 힘을 강화시킬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회복과 재생에 대한 공동체적인 믿음을 넘어 다수를 설득하고 전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만들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연은 갑작스레 찾아오니까요. 그렇다면 우연을 기회로 만들 준비가 필요한데, 어떤 준비가 가장 중요할까요? 준비는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시작하기에 진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합니다.

 

 

1. 진단: 문제에 대한 확인

 

최근의 지역과 로컬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며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은 장소성과 다양성, 회복력 등의 긍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에 비해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애물들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점이었습니다. 마치 한편에서는 병원, 상점 등의 필요시설 부족으로 지방소멸이 얘기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의 문제를 창의적,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마치 대안처럼 얘기된다고 할까요. 여러 위기를 고려해 자원의 동원을 신중하게 조절해야 할 시기에 대규모 자원을 투입하는 메가도시 전략이 얘기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력을 위해 서울을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과 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도 서울과 같은 중심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정부가 대규모 자원을 기획/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일정한 위치나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략이 기후위기와 기술의 선택적 과잉, 불평등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붕괴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   중앙/지방정부 계획   글로벌 경쟁
   

 

기후위기는 산업문명의 이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피해가 다수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문제이고, 기술과잉이란 것도 기술의 편리성이 소수에게만 이득이 되고 위험성이 다수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문제이며, 초고령화도 위협으로 느껴지는 건 소수를 위한 사회시스템을 지탱해줄 토대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성장의 서사구조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사회의 전환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이런 고민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성장이 아닌 다른 가치지표를 찾고, 정부가 아니라 지역이 주도해서 그런 지표를 실현할 힘을 만들어 경쟁보다 순환공존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것이 현실의 운동으로 작은 성공들을 거둬왔지만 사회의 전환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대안적 가치지표   지역주도(자치/자급)   순환공존체계/지속가능성
   

 

그러면서 지금 목격하는 현상은 대안적인 가치와 언어조차도 성장담론에 포획되어 관료주의라는 깔때기를 거치면 획일화, 서열화되어 버리는 기묘한 상황입니다. 마을, 공동체, 대안경제, 공유지같은 가치와 언어들은 계속 사용되고 있지만 그 전환적 성격은 약화되고 기존 사회의 보완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격변화에는 관료주의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료주의의 특성이라 할 도구적 합리성과 목표달성을 위한 공학적 접근, 선택적 자원동원, ()정치성이 이런 대안적 가치/언어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안마저도 획일화, 서열화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고, 그것이 내부의 경쟁을 초래하면서 애초의 가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가치/언어의 포획   관료주의(중앙/지방)   획일화/서열화
   

 

재난의 시대에 지역이 대안이 되려면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지금은 다양성조차 해법으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2. 준비: 우연을 가능성으로

 

서두에서 밝혔지만 저는 한국사회의 전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그렇지만 우연과 사건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으므로 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준비는 앞서 했던 진단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저는 기후위기, 기술과잉, 초고령화가 어떤 지점에서는 사회전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전환의 방향이 문제일 텐데요. 기후위기가 불러올 재난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재난이 초래할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겁니다. 그런 대비에 지역이 어떤 역할이 할 수 있을까요? 한재각은 기본적 필요를 넘어서 더 많은 소비를 위한 부의 ()분배를 희망하며 이를 가능하도록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에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해 온 관행과 결별하는 것”(기후정의, 2022)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탈성장과 좋은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고 나아가 좋은 삶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삶과 그것을 가능케 할 공동의 토대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국가의 관리대상으로서의 고령(인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농촌에서는 일흔 살도 청년이라는 말은 고령화의 그늘을 묘사하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되지만 달리 보면 여전히 마을의 주체라는 점도 뜻합니다. ‘고령=무기력, 복지수혜층의 도식은 다분히 국가 중심적인 시각이고, 다양성은 각자의 쓸모를 찾아가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국가가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지역은 현재의 행복을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구감소보다 1인가구의 증가가 사회시스템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이 200016.3%였다면 202034.9%로 증가했습니다. 2050년이 되면 고령 1인가구의 비율이 41.1%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주거형태와 공공서비스체계는 1인 가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에 적응될 수 있을까요?

그런 적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할 것이 권력화된 통제장치로서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승일은 물리적인 환경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인 능력과 활동까지 관리하는 이중관리사회에 저항하려면 현재의 우리가 어떤 합리성의 원칙으로, 어떤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를 통해, 어떻게 통치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기계, 권력, 사회, 2021)고 봅니다. 기술과잉의 반대는 기술을 쓰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과잉의 이유와 방향을 통제하고 기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스콧은 메티스라는 개념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부단한 적응을 요구하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과업을 오랫동안 수행할 때에만 얻어지는 지식”, “지역적이고도 상황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국가처럼 보기, 2010). 이런 메티스가 활성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메티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중요성을 약화시켰던 반대의 지식, 강력하고 찬란한 진보를 확신했던 하이 모더니즘을 이해하고 해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징과 의식을 통한 공통감각의 회복   정치의 불씨 살리기   정답 없음의 인정을 통한 대안의 다양화
   

 

첫째, 포획된 가치/언어의 탈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상징과 의식(儀式)’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역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곳이 어떤 장소라는 것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그 장소를 통해그 가치와 언어를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상징과 의식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인 공통감각이 필요한데 그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상징과 의식을 거쳐야 할까요? 그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의식은 무엇일까요? 장소가 정체성과 공통감각을 체화시킬 수 있는 의식은 무엇일까요? 김광석은 인간 신체에 체화된 한 사회의 기술 정서”(포스트디지털, 2021)기술감각이라 부릅니다. 물리적으로 확장된 지역의 공간에서 기술은 관계밀도를 높이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둘째, 관료주의를 깨뜨릴 비판의 무기들을 벼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관료주의는 도구적 합리성과 목표달성을 위한 공학적 접근, 권위주의적인 선택적 자원동원, ()정치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티스는 관료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개념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시민사회의 많은 부분이 관료화되었다는 점에 동의할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관료주의를 통제할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역설이지만 그래서 더욱더 정치의 불씨를 살리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합리적인 것을 선택하거나 목표를 포기할 결단, 느리고 수다스러운 공론장, 민주적인 자원배분과 재조직 등이 정치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정치문화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지역정당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과 변화의 지점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획일화/서열화에서 벗어나 각각의 고유한 존재를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기록 이후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통해 재현된 존재는 정지된 물체가 아니고, 지역 역시 재현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학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지역은 답일까요? 그렇지만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명은 꿈틀거릴 수밖에 없고,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이 부패할 수 있고 부패한 것에서 좋은 것이 생성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함께 번역했던 심층적응(착한책가게, 2022)이라는 책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붕괴는 피할 수 없다, 길을 찾는 지도는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생성하고 사라지고 부패하는 대안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기술감각의 조절과 생태감각의 회복이 기후위기와 기술과잉, 초고령화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답을 내려놓아야 질문이 좀 더 분명하게 인식되고 더 풍부하게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답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후연구소가 이번 7월부터 1인 체제에서 2인 체제로 전환합니다. 기존의 하승우 소장과 함께 할 분은 녹색당과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에서 활동했던 김범일 님입니다. 앞으로 부소장 직을 맡아 하승우와 함께 이후연구소를 운영하실 겁니다. 2017년부터 서로 알던 사이이고 같이 몇 번 사업을 진행해본 사이라 케미가 좋으리라 예상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그만큼 이후연구소가 맡을 일도 늘어납니다. 지금까지는 하승우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회원들과 소통했고 활동도 최소화시켜 왔지만 이제는 이후연구소의 기획사업들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회원들도 더 많이 모아 연구소의 재정도 강화시켜야 하고, 부소장이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있으니까요. 그동안은 하승우 개인 중심의 작업이었다면 이제 이후연구소라는 단체의 활동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제 회원들과의 소통도 더 정례화될 예정입니다.

 

이후연구소의 대표 사업은 사회변화에 필요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글이 편한 하승우가 책을 내는 형태로 진행해 왔는데요, 김범일 부소장의 결합으로 이제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겸하려 합니다. 김범일 부소장은 말에 능한 사람인데요, 전직 전도사라는 개인 경험을 반영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중요한 지적 흐름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입니다. 김범일 부소장의 다양한 컨텐츠를 기대해 주시구요.

 

그렇다고 김범일 부소장이 글을 안 쓸 것은 아니구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하승우와 청()년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한 매뉴얼을 작성해서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하승우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김범일의 경험과 인도로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책이지만 책 이상의 역할을 할 텍스트로 만들 예정입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질문하는 형태로 개인적인 고민과 사회적인 고민을 엮는 글을 한 주에 한 편씩 써서 회원들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후연구소의 주요한 또 다른 사업은 함께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독서모임, 공부모임을 해오다 코로나19 때문에 좀 뜸해졌는데요, 두 개의 큰 줄기로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하나는 하승우가 진행하는 정치학 강의입니다. 대학에서 진행되는 정치학원론을 좀 더 현실적이고 한국적인 고민으로 재정리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좀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강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하승우와 김범일이 함께 진행하는 정당과 민주주의공부모임입니다. 이 모임은 정당과 민주주의와 관련된 책을 함께 읽고 서로 고민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강의와 공부모임은 좀 더 정리해서 가을에 공개하겠습니다.

 

옥천의 고래실이나 다른 단체들과 제휴해서 진행하는 특강들은 계속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하승우와 김범일은 정치에 관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획도 내년 정도에 다양한 기획으로 담아내 보겠습니다.

 

, 그러니 이후연구소의 회원이 되시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1회에 공개되는 하승우와 김범일의 대화 경계의 기록을 빨리 보실 수 있구요,

팟캐스트와 유뷰트로 제작될 컨텐츠도 미리 감상하실 수 있구요,

이후연구소에서 발간되는 책 1권을 받으실 수 있구요,

이후연구소에서 진행되는 강의와 공부모임에 무료 또는 비회원보다 낮은 가격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이후연구소 회원가입은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NmvmpatYr2Vh-dGJCrQBSNowFTkGRxH7tz4On3iCblkVs1A/viewform?fbclid=IwAR3OwYicuL913t0EakwLjEDb-GN_3VlmPDRf-VteSctzpM7PNyceVICxIXk

이후연구소 관련 문의는 hereandnowlab@gmail.com 으로 해주세요.

 

함께 할 회원들을 기다립니다.

 

2022711

이후연구소 하승우, 김범일

<녹색평론>을 처음 접한 건 창간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프리조프 카프라의 신과학운동이나 한살림선언을 먼저 접했기에 <녹색평론>의 문제의식은 낯설지 않았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1991년의 소위 분신정국을 거치며 나는 뭔가 다른, 조금 더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싶었다. 그러면서 <녹색평론>을 찾아 읽게 되었고, 1993년도엔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학생운동 내의 반(反)생명 분위기를 성토(?)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대학원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녹색평론>을 볼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생태계의 위기와 진보역사관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고민은 이어졌다.

그 뒤로도 가끔 <녹색평론>을 뒤적이긴 했지만 독자로서만이 아니라 필자로 참여하게 된 건 2007년 이후였다. 당시 오창은, 이명원씨와 함께 <지행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 때 김종철 선생을 처음 만났다. 교보문고 근처에서 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고, 선생은 다른 지원 없이 각자의 돈을 모아 단체를 만드는 걸 무척 반기셨다.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봐라, 내가 가끔 밥은 사줄게. 그렇게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김밥모임(김종철 선생과 밥을 먹는 모임)의 시작이었고, 각자가 초대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밥도 먹고 막걸리를 마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한국에서 식구(食口)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끼리끼리 모여 이해관계를 나누며 먹는 밥이 짬짜미라면, 사람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나누는 밥은 대동미이다. 자신감은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북돋우는 것이고, 밥을 나누는 건 그 자신감에 든든함을 더한다. 혼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밥모임은 어지러운 세상을 함께 견디게 한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먹는다는 행위만큼 이 세계의 질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은 없다.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에 실린 마지막 글에서도 먹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선생은 해월 최시형 선생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했고, 이번 글에서도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언급했다. “이 세상의 뭇 생명체들이 모두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생물들의 먹이가 되고 자기도 다른 생물들이 공여하는 먹이를 먹고 생을 누림으로써, 그런 순환적 증여의 질서 속에서 삼라만상이 존재하고 있는 근본이치를 말씀하셨다. 여기에도 밥은 결코 누구 혼자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들의 공희(供犧)의 산물이라는 것, 그러기에 밥을 먹는 행위야말로 가장 뜻깊은 공생공락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김종철,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 녹색평론20207~9월호, 178.) 순환적 증여의 질서, 이것이야말로 밥의 질서이다.

좀비처럼 자기 식욕만 남은 존재가 아니라면, 뭇 생명들은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또 그러면서 자신을 돌보기 위해 밥을 먹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위기는 이런 순환적 증여의 고리가 끊어지고 일방적인 먹이사슬이 만들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녹색평론>에 실린 글들이 강조하던 소농을 농업에 대한 강조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의미를 단편적으로 만드는 해석이다.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라 순환질서를 유지시키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농 중심의 사회는 순환이 기본질서인 사회이자 그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힘에 맞설 수 있는 사회이다. 따로 떨어진 개별 농가의 질서가 아니라 자급력을 갖춘 소농들이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자치를 행사하는 사회이다. 김종철 선생은 이런 자치와 자급의 힘이 만들어져야 순환적 증여의 질서도 회복,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순환의 질서가 농업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건 순간이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순환될 거라 생각하면 부의 독점이나 상속도 덧없는 일이 된다. 반면에 순환이 아니라 축적과 독점이 상식을 차지하면 부패는 자연스럽고, 약자의 처지는 갈수록 나빠진다. 선생에게 기본소득은 순환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성장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소농에 관한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들렸지만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가 경고하는 기후위기는 가장 구체적으로는 식량위기로, 그로 인한 갈등(전쟁)으로 경험될 것이다. 지금이야 버튼만 누르고 클릭만 하면 먹거리를 배송시키거나 음식을 사먹을 수 있지만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작물 재배지가 줄어들면 식량난이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소득 상위층과 하위층의 장바구니는 유기농과 패스트푸드로 양분되고 있고, 이런 먹거리불평등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 화두인 사회에서 소농은 순환의 고리를 다시 이으려는 노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만남을 막고 밥을 나눠 먹는 걸 금지하는 코비드19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바이러스이다. 그런데 우리가 흩어지면 흩어질수록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질서는 강화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대에 밥을 같이 먹는 모임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모임이다. 그 급진적인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든든했고, 이제 그 기반을 나누는 것이 산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를 생각하며

 

김종철 선생이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화두는 근대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마지막 글에서도 선생은 슬픈 미나마타를 쓴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를 언급하며 근대를 돌아본다. 그리고 단상의 마무리는 장일순 선생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잘남을 겨누며 이름을 날리려는 것이 근대의 허명이라면, 장일순 선생은 바닥을 기어라고 했고 세상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不散爲天下先)”라는 노자의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김종철 선생은 이를 비폭력주의 행동의 원칙으로 해석하며 이 세상의 모든 목숨붙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저마다의 타고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자기중심적 배타적 권력욕망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풀이했다(김종철. <나락 한알 속의 우주>,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엮음,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녹색평론사, 2004), 71.). 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과잉이 아니라 검소이다.

개화기의 최시형 선생이 동학을 통해 비근대의 길을 열려 했다면, 장일순 선생은 소위 원주캠프를 통해 비중심, 비국가의 사유를 설파했다. 김종철 선생은 이 사상계보를 이은 사람이고 근대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비근대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책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는 그런 주장을 빼곡히 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까? 19891028일 한살림모임 창립기념식에서 장일순 선생은 ()에 관하여란 강연을 했다. “시는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최시형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존경의 문화로 돌아가야, 생명을 모시는 경제로 돌아가야 본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한살림이 그런 모심의 생활태도와 관계를 키워가는 틀이 되기를 원했다)(장일순 지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1997), 70.).

이 시의 세계관은 자기 밖의 객체를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그리고 동일한 이원론에 기초한 객체를 변화시켜야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역시 거부한다. <녹색평론>에 실렸던 다양한 글들은 이런 세계관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고, 김종철 선생은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방식만으론 시의 태도와 관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외려 성장을 반대하고 개발을 막으려면 그것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하지 않는 것에 써야 한다. 권력을 잡아 한방에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면 일상에서 전환의 기반을 닦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 어떻게 보면 시는 존중과 기다림을 통해 더 많은 힘을 끌어내는 방법,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이미 가진 힘을 끌어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환대라는 말이 주로 쓰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말은 모심이라 생각한다. 시천주(侍天主)라는 말처럼 모심은 하늘과 땅, 돌이나 풀, 벌레까지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시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건 인간의 근본 한계를 자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정신적 능력”(126)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남들과 더불어서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는소국사상(小國思想)이기도 하다(김종철,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년), 126, 143쪽.). 김종철 선생은 물질적 빈곤보다 사상적 빈곤을 채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이 과제를 잘 풀고 있을까? ‘녹색’, ‘그린’, ‘인권마저도 더욱더 성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야기하는 사회라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런 점에서 김종철 선생이 채우던 자리의 공백도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일망정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물을 길어 붓기를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그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보는 행운이 우리에게도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앞의 책, 9.) 밥을 먹던 식객이자 다른 세상을 함께 꿈꿨던 동지로서 선생의 명복을 빈다.

- 소개: 공공성 개념을 교통, 복지, 의료, 먹거리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해서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를 알아본다. 공공성 개념의 기본적인 틀과 실제 쓰임새를 알아보고 한국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

- 세미나는 요약강연과 강독으로 진행. 총 8회 매주 진행. 신청자는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참석, 원하는 사람에게는 발제 기회 부여. 분할 신청 불가능.

- 이후연구소 회원은 신청 우선. 비회원은 신청 순서대로(회원신청이 늘면 비회원 신청이 불가능할 수 있음).

- 신청비는 이후연구소 회원이나 옛따책방의 친구일 경우 8만원, 비회원의 경우 13만원.

- 장소는 서울 옛따책방(홍대입구역 3번 출구 카페 본주르)

- 강독세미나 일정은 4월 21일(화)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반

신청은 다음 링크로. http://bitly.kr/zy4OBi2

- 진행 순서(가안)

1. 하승우, 공공성(책세상, 2014)

2. 오건호 등,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철수와영희, 2018)

3. 김상철, 무상교통(이매진, 2014)

4. 김창엽,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한울, 2019)

5. 김흥주 등, 한국의 먹거리와 농업(따비, 2015)

6. 김조설, 한국 복지정책 형성의 역사(인간과복지, 2017) 또는 양재진,  『복지의 원리(한겨레출판, 2020) 

7. 파블로 솔론 등,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착한책가게, 2018)

8주. 교육과 도서관의 공공성(텍스트는 추후 공지)

9주. 에너지 공공성(텍스트는 추후 공지)

 

사회와 고통 강독 세미나

 

- 소개: 고통의 사회적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간이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어떻게 그 고통을 조절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 고통 앞에서의 무력감을 우회할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 세미나는 요약강연과 강독으로 진행. 11회 매주 진행. 신청자는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참석, 원하는 사람에게는 발제 기회 부여. 11회 모두 참석이 요구되고 분할 신청은 불가능.

- 이후연구소 회원은 신청 우선. 비회원은 신청 순서대로(회원신청이 늘면 비회원 신청이 불가능할 수 있음).

- 신청비는 이후연구소 회원의 경우 5만원, 비회원의 경우 10만원. 80% 이상 수강시 신청비 절반 반환.

- 23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또는 오후 7시 진행(신청자가 많은 시간대에 진행).

- 장소는 충북 옥천 포도밭출판사 모임방

- 신청은 다음 링크로. http://bitly.kr/zy4OBi2

 

이후연구소 강독세미나 참여신청서

강독세미나 참가비는 이후연구소나 관련 단체 회원 5만원, 비회원 10만원 입니다. 참석률 80% 이상일 때는 참가비의 50%를 돌려드립니다. 참가비를 입금할 계좌는 카카오뱅크 3333-13-7802423(예금주: 하승우) 입니다. 입금이 확인되면 3일 내에 확인 메일을 드립니다. 확인메일을 못 받으시면 hereandnowlab@gmail.com 으로 연락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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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연구소 회원가입은 다음 링크로.https://docs.google.com/forms/d/1t1N-_eGlIAfIdJm48cQ7U4-oYomZRVzCYhRvfwseqRk/edithttp://bitly.kr/uHSUePLv

 

이후연구소 후원회원가입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지만 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현재의 조건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2050년,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미래가 달라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래라고 얘기하지만 이미 실현되고 있는 현재이고 파괴된 과거의 누적입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는 미래에 개입하기 위해 이후연구소는 창립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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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순서(가안)

 

1. 김상봉, 철학의 헌정(, 2015)

1장 응답으로서의 역사

2장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3장 항쟁공동체와 지양된 국가

임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http://www.nomadist.org/xe/?module=file&act=procFileDownload&file_srl=2444941&sid=e587b956b360098df671015963a32231&module_srl=25691)

 

 

2. 악셀 호네트, 비규정성의 고통(그린비, 2017)

1부 정의론으로서의 헤겔 법철학

2부 정의론과 시대진단의 결합

 

 

3. 악셀 호네트, 비규정성의 고통(그린비, 2017)

3부 근대의 규범 이론으로서의 인륜성 이론

 

 

4. 아서 클라인만 등, 사회적 고통(그린비, 2002)

고통과 구조적인 폭력 - 아래로부터의 조망 / 폴 파머

경험의 호소력, 영상의 당혹감 - 우리시대의 고통에대한 문화적 전유 / 아서 클라인만 & 조안 클라인만

남아프리카의 정치적 과부 생활 - 맘펠라 람펠레

 

 

5.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이후, 2004)

 

6주.  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나무연필, 2018)

 

7. 천정환, 자살론: 고통과 해석 사이에서(문학동네, 2019)

 

 

8. 디디에 파생,리샤르 레스만, 트라우마의 제국(바다출판사, 2016)

 

 

9. 캐런 메싱, 보이지 않는 고통(동녘, 2017)

 

 

10.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11. 마지막 정리 세미나

 

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아렌트라면 어땠을까? 아렌트가 지금 한국에 산다면 정치를 어떻게 볼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독재나 전체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공론장에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어떤 작가는 이를 나치의 등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비유가 적절한가 아닌가의 여부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51%의 국민이 박근혜씨를 지지했다는 사실로만 판단될 수 없다. 왜냐하면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던 독일 총선에서도 나치의 지지율은 44%였기 때문이다. 이 지지율을 등에 업고 합법적으로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나치를 제외한 다른 정당들을 해산시키고 여론의 입을 틀어막으며 전체주의를 실현했다.

그리고 아렌트는 선거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선거가 곧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려 근대 정당과 선거가 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할 것이라 우려했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시민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적인 의견을 서로 나누며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정답을 쫓지 않는다. 선거에서의 지지율보다는 공론장을 파괴하는 정치’,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정치’, ‘사유하지 않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정치’, ‘차이를 부정하고 효율성만을 강요하는 정치의 등장이 정치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아렌트를 읽고자 하는 이유도 단순한 지적 호기심보다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논의하려는 바람일 것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그 체제 너머의 정치를 보려는 사람에게, 정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개인주의의 냉소나 전체주의의 열광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아렌트는 좋은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국내외의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이다. 하지만 그 사상을 직접 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렌트의 언어와 사상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국내에 소개된 번역서들이 낯설음과 어려움을 더한다. 그리고 사상이란 현실과의 치열한 대면에서 나오는 것인데, 아렌트의 사상이 나오게 된 맥락은 책으로 이해하기 어려다.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개념들을 한국 현실과 어떻게 맞닥뜨리게 해야 할지 막막한 면도 있다. 어려운 책을 읽다보면 아렌트를 공부하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관심과 의문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아렌트가 궁금한 사람과 아렌트를 활용하고픈 사람 모두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고 아렌트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제 I부와 제 II부로 나눴고 관심에 따라 제 I부와 제 II부를 읽는 순서를 바꿔도 좋다. 아렌트의 사상을 조곤조곤 보고 싶은 사람은 제 I부부터, 아렌트의 관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한 사람은 제 II부부터 읽어도 된다. 따로 읽어도 될 만큼 아렌트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글을 쓰려 노력했으니 두 가지 맛 파스타 또는 짬짜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한 쪽의 깊은 맛을 느끼려고 하는 사람에겐 미흡할지 모르겠으나 어느 걸 선택할지 망설이는 사람에겐 여러 고민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I부는 수용소와 공론장이라는 아렌트 사상의 고갱이를 다루고, II부는 아렌트가 평생을 걸고 맞섰던 전체주의라는 화두에 주목하고 그 문제의식을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본다. 아렌트에게 수용소와 전체주의는 평생을 따라다닌 악몽이었다. 그 악몽을 끄집어내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악몽이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무슬림이라 불렸다. 아랍 사람이나 이슬람 교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엎드려 기도하는 듯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던 수용소의 은어였다.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채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측은함과 동정을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런 삶과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정치로부터 도피해서 개인적인 생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바로 그 때문에 주어진 질서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을 구성할 용기나 의견이 없으면서도 내가 주권자라며 공허한 호기만 부리는 건 아닐까?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편끼리 똘똘 뭉쳐서 비슷한 각도로 세상을 재단하고 어긋난 부분에 대한 불만만 쏟아내는 건 아닐까? 나도 당당한 주체라며 자신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공통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서로 공유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채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건 아닐까? 고립되어 있으면서 고독한 척 위선을 부리는 건 아닐까? 수용소는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타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을 규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I부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수 있도록 아렌트의 사상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전체주의는 단순히 독재자가 지배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비공식 조직이 공식기관의 힘을 대체하고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만드는 지배구조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면서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불안을 자극하며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도록 만드는 비밀경찰이 암약하는 체제이다. 실제 현실이 아니라 조작된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고 우리 자신도 이미 규정된 지위로만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큰 비극이 발생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이다. 295명의 승객이 사망했고 9명이 아직도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의 학생들과 먹고살기 위해 배에 올랐던 사람들이 이 참사로 떼죽음을 당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참사에 책임을 진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이 원인인지, 왜 사고가 참사로 이어졌는지,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고 하지만 사실을 은폐하고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할 뿐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정부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다시 한번 극심한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자식과 가족, 이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규와 몸부림에 가만히 있으라고,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정치적인 선전이라고 비난하는 이들과 우리는 정말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시민들이 선출한 정부가 시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끔찍한 세계전쟁과 정부의 거짓말, 폭력이 난무했던 20세기를 겪었던 아렌트는 이런 경우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II부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한국의 현대사를 되짚어본다.

아렌트를 읽으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1987년 민주화나 1993년 문민정부의 수립, 1997년 국민의 정부, 2003년 참여정부의 수립은 시민이 새로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는 세계를 부활시켰을까? 만일 그러하다면 왜 아직도 우리에게 정치는 부정하고 타락한 것이거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어떤 무기력한 것으로만 느껴질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한국의 정치는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글쓴이들은 이런 물음들에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주고자 노력했다. 글쓴이들은 길잡이로서 정치의 부활을 모색하는 이 흥미로운 여행에 앞장선다. 혹시 몰라 두 명이 지도를 함께 그렸고, 그래도 글쓴이들의 지도가 완벽한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돌다리를 두들겨보며 가려 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렌트의 원문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이끌어가려 했다. 가능하면 위태롭고 험난한 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 길을 지나지 않으면 다음 길로 이어지지 않는 곳도 있으니 힘들어도 같이 손을 잡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각 장의 마지막에 함께 읽기와 해설을 둔 것은 우리와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확인하기 위한 장치이다. 물론 때로는 길잡이를 따르지 않고 내키는대로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묘미일 수 있다. 그러니 길잡이에게서 여행의 모든 재미를 찾으려고 하지는 말기를... 다만 글쓴이들이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를 헤아리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은 아렌트에 관한 하나의 해석이고, 아렌트가 강조했듯이 다양한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뤄가는 합주(action-in-concert)’, 두 사람의 합주이다. 이 합주가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합주를 듣는 독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합주를 들으며 또 다른 합주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독자들의 몫이다. 깊은 바다에 홀로 들어가는 건 두려운 일이기에 이 책은 작은 불빛만 밝혀 놓았고 직접 들어가 텍스트를 건지는 작업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많은 몫을 밀어놓는 무책임한 저자들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렇게 아렌트를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빈다.

글을 쓰는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같이 아렌트 세미나를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아렌트에 관한 독서회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춰본 결과물이자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함께 이사와 간간이 고민도 나누고 밥도 나누며 만든 성과이다. 지역출판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한티재에서 이 책을 내게 되어 또 기쁘다. 모두 고마운 일이다.

 

지금 근원적으로 되풀이되는 물음, 국가란 무엇인가
한 세기 전의 한 아나키스트가 일깨우는 통렬한 비전

아나키즘 정치 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문헌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23년에 걸쳐 씌어진 대화

아나키스트 조르조가 어느 모퉁이 카페에서
열일곱 밤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과 어울려 나누는
국가와 사회에 관한 거침없는 논쟁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미치는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집회 현장에서 “국가가 책임져라”, “누구의 정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종종 접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 질문을 먼저 풀어야 했던 과거 한 아나키스트 선배의 이야기이다. 외국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 없다. 봉건제도와 외세에 맞서 농민들이 무기를 들었던 갑오년이 120년을 돌아 지금 우리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당시 무장봉기했던 동학 농민군의 고민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는 당시의 농민들보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을 헛되이 되풀이하지 않는다. 인민의 삶을,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것을 구성하고 운영할 방법을 근원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만들 수단을 가진 사회’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

『국가 없는 사회』(영어판 『At the Cafe: Conversation on Anarchism』, 2005)는 지금처럼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득한 때에,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천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897년부터 1920년까지, 23년에 걸쳐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수배와 구속을 거듭 겪으며 집필한 원고들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하며 국가 없는 사회 구상의 비전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을 설득하고 그러한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위해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면서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을 대화 상대로 등장시켜 말을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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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코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는 일찍이 학교를 떠나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으며,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이면서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였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엠마 골드만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이끌었고, 사상과 행동, 설교와 실천이 일치하는 혁명가이자 상냥하고 따뜻한 심성의 인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창 아나키즘 선전과 조직화가 왕성할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레닌’(말라테스타는 자신은 결코 지배자, 폭군이 아니라며 그러한 표현을 거부했다)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이 짧은 책에는 그의 뜨겁고 치열하던 생애가 잘 녹아들어 있다. 말라테스타는 숱한 구속과 수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삶의 노선이 굳건했다. 다름 아니라 국가 혹은 정부 권력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치받는 욕구들이 자기 힘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원리가 그의 노선이었다. 그리고 그 노선을 평생 일관된 목소리로 선전하고 조직 활동에서 실천했다. 그러한 하나의 사례가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1897년에 쓰기 시작해, 구속과 수배 및 역사적인 사건들 때문에 중간중간 단절을 겪으며 1920년에야 현재의 구성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무려 23년 간 집필된 셈이다(그러던 사이 틈틈히 토막 원고들을 자신이 편집하는 잡지나 신문에 싣곤 했다). 앞서 적었듯, 말라테스타는 일생을 쉬지 않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혁명가로 살았다. 크로포트킨과 만났을 때도 말라테스타는 어느 가게 벽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러 망치를 들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생애는 그의 글과 활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말라테스타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단어, 배운 척하는 어려운 단어나 인용구는 피하고 언제나 명확한 표현만을 사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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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사회’라는 비전을 두고 우리가 논쟁을 시작한다면 어떤 대화들이 가능할까. 말라테스타는 이 책에서 우리를 그러한 논쟁으로 한껏 끌어당긴다. 이 책 속에서는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이 등장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웅변하고 서로 논쟁한다. 여기서 치고받는 ‘질문’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과 행동을 기획할 지점들을 비춰준다. 최근 경찰과 국가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이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데 오히려 한 세기 전의 인물들이 나눈 대화와 통찰들에서 우리는 지금의 문제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원고는 ‘가상 대담’ 형식으로 씌어졌는데, 사실 당시 카페 등에서 실제 벌인 토론의 기록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말라테스타는 원고를 집필하던 시기에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대화로 짐작하는 또다른 이유는, 말라테스타가 언제나 감시를 받던 신분임에도 자주 카페에 나와 토론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는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과 대화하고 설득하여 뜻을 모으는 방법뿐이라고 굳게 믿은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옮긴이의 표현대로 말라테스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민 속으로 파고든 선동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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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나키즘 사회, 그리고 ‘자유로운 공산주의’라고도 표현하는 사회 구상을 목표로 삼는다.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반발은 무정부 사회의 무질서 상태를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말라테스타가 말하는 비전은 ‘자유로부터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인한 사회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전환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점들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로 이 책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 구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것이 옳고도 가능하다는 점을 믿을 수 있게 해준다. 아나키즘에 궁금증을 가지거나 아나키즘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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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未知)의 만남은 흥미롭다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다. 익숙한 것을 지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면 좋겠다는. 내가 믿고 지지하는 것이 몇몇 사람들의 대안이 아니라 정말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을모임을 기획한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전국이 마을로 힐링을 하려는 건가. 마을로 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텐데, 왜 마을만 얘기할까. 어느 순간 마을은 정부의 정책에도 등장하고 기업의 광고에도 등장하는 무채색의 개념이 되어 버렸다.

물론 마을은 자치와 자급을 가능케 하는 삶의 중요한 기반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가 짓밟히며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마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정도의 능력을 마을이 정말 가지고 있나? 그리고 마을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들이 그 마을에 걸맞게 주민들과 함께 진행되며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나?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라는 말이 사업으로 변해 얘기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물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을의 활동이 더 작고 구체화되는 건 좋지만 그 자체로 자족적인 모임이 되어버리면 내부의 관계는 돈독해지나 점점 외부로부터 고립된다. 사실 마을이라는 말이 이런 고립감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마을에만 있으면 사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진다. 완전히 마비되지 않으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 주변엔 온통 착한 사람 뿐인데, 왜 세상은 개판인가? 내 직장은 개판인데, 마을은 왜 이리 아름답나? 이러면 사람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거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일관될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면 삶이 온전해지기 어렵다.

또한 마을의 자급능력은 점점 줄어들고 필요한 기능을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노동이 필요하다. 경비를 서고 계단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택배로 물건을 나르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많은 일들을 대신해주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이 분들은 마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대부분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약자들이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 분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 모임을 기획한 건 이런 고민을 함께 풀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였다. 매번 만나는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좀 낯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딱히 답은 안 나와도 여러 가지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마을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갑작스런 연락에 모두들 순순히(?) 응해주셨다.

이 분들을 모신 이유를 설명하다보면 이 책을 기획한 이유가 좀 드러날 것 같다. 대담에 참여하신 분들을 하파타 순으로(가나다 순의 반대로) 한분씩 소개하자면, 한채윤씨는 인권운동을 하는 우리 각시 덕분에 알게 된 분이다. 한국 최초의 동성애전문지 <버디>의 편집장을 오랫동안 맡았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퀴어문화축제, 마포민중의 집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채윤씨는 이성애 중산층 가족 중심으로 흘러가는 마을운동에 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실 것 같았다. 마을주민이라는 무채색의 개념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보이지 않길 바라는 사람을 지워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2013년에는 마포구가 “LGBT(성소수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라는 현수막의 게시를 허가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알다시피 마포구는 성미산 마을이 있는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영길씨는 청주에서 오랫동안 지역사회운동에 몸을 담았다. 지역사회운동이 그러하듯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했고(운동 외의 일도) 마을만들기 운동에도 관여했다. 공부방 운동을 하던 중 생활교육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해서 용되자는 공룡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공룡의 활동가들은 농사짓고 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영상기록물을 만들고 지역노동운동에 개입하며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공룡의 활동은 정형화되지 않는다. 어느 때는 농사를 지어 옥수수와 고구마를 팔더니, 어느 순간에는 밀양송전탑 싸움현장이나 유성노조 농성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201312월에는 지역코뮌학교 동동(動同)을 세우고 노동과 인권, 경제와 노동, 글쓰기, 대안금융운동, 도시 연구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는 공룡의 활동은 마찬가지로 정형화될 수 없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고민들을 담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김정찬씨는 종로를 중심으로 모인 여러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품애라는 단체에서 활동한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 중 나와 가장 짧은 인연을 가진 분이다. 내가 품애를 처음 접한 건 카페 토크콘서트 마빠기(마을에서 빠진 이야기)’라는 곳에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되면서였다. 인터넷으로 품애를 검색해서 카페를 찾아갔지만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었다. 품애는 결혼식이나 돌잔치같은 마을잔치를 착하게 준비하고 장애인과 함께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악회도 연다. 운동처럼 보이지 않지만 마을에 필요한 일이고 그 속에 운동의 의미가 스며드는 활동들이었다. 이런저런 사업들을 많이 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기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신범씨는 죽음을 부르는 직업병으로 유명했던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만들어진 원진재단이 세운 녹색병원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일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와 작업환경 개선, 직업병 문제 해결, 환경문제 조사 등을 하는 곳이다. 경북 구미시에서 불산이 유출되었을 때도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현장을 측정해 안전하다는 정부발표를 뒤집었다. 김신범씨가 2010년 제주인권회의에서 청소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발표하실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부끄럽지만 그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마을 내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신범 씨는 공장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을 다룰 때 소비자의 건강도 안전할 수 없다며 공장 안과 밖을 연결하는데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심이 마을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상철씨는 오랫동안 진보정당운동에 몸을 담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처지였는데 그 뒤에 정당인으로 만났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서울시당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노동당 서울시당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계획이나 주택정책,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고, 자료를 꾸준히 검토하고 공부하는 성실한(?) 정치가로 불린다. 그가 속한 노동당 서울시당의 논평은 날카로운 논리와 깔끔한 글솜씨로 꽤 명성을 날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마을운동이 탈정치화되었거나 되고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 부분을 속 시원하게 짚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지역사회운동이 정당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권단씨는 2002년에 옥천신문 기자로 입사한 뒤 옥천에 살며 옥천농민회, 옥천살림, 옥천순환경제공동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치와 자급이고, 이를 가능케 할 방법으로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섞이는 공론장을 꼽는다. 충청북도 옥천군은 안티조선운동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1989년에 주민들이 직접 옥천신문사라는 지역언론사를 만들었다. <옥천신문>을 통해 지방정부 감시부터 사회적 경제 함께 만들기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엮인다. 농민과 지역의 먹을거리, 주민자치에 관심이 많은 권단씨가 아침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은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으며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권단씨를 통해 비수도권 농촌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좋은 분들을 모셨지만 이 논의에 여성활동가가 함께 하지 못했음은 참 아쉬운 일이었다. 주변에 여러 여성활동가들이 있음에도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하지 못했다. 한 차례 사루비아 다방의 김인민씨가 참여했지만 그 뒤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청나게 바쁜 사람들이 달마다 한번 토요일에 모여 이야기 한마당을 펼쳤다. 사실 이 원고에는 그 뜨겁고 즐거운 열기를 모두 담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웃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분위기를 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4시간씩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었던 몇 차례의 모임은 끝났지만 단지 얘기만이 아니라 함께 할 실천들을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이 책은 많은 고민을 나눴던 모임의 결과물이다. 독자들도 이 책에서 어떤 해답보다 새로이 고민해야 할 질문들을 많이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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