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2.09.18 23:19

지난 18대 국회는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해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했다. 2013년 3월부터는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다는 모호한 이유로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형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구걸을 하란 말인가?

지난 5월 서울지방경찰청은 ‘주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처음에는 폭주족을 잘못 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술의 힘을 빌려 상습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 한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서울에서 주폭 1000명만 잡으면 세상이 확 달라질 거라 말했고, 31개 전담팀을 구성해서 이미 100여 명을 구속했다고 한다. 술 마시다 보면 큰소리도 나오고 타인과 충돌할 때도 있는데, 이제 그 치기는 범죄로 규정된다. 이제는 해수욕장이나 공원으로 놀러 가서도 술을 마시려면 경찰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경기경찰청은 골목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집중 단속해 지금까지 1637명을 검거했다고 한다. 시장이나 광장에서 주변 사람에게 욕설을 하거나 행패를 부린 사람도 체포되었다고 한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괴롭히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그 사람을 조폭이라 부르며 처벌하는 게 맞는지, 경찰이 그런 해석 권한을 가지는 게 맞는지, 아무런 합의가 없었다. 이제 공공장소에서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경찰이 자신을 ‘짭새’라 부른 시민들을 모욕죄로 고발하는 일도 늘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연이어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뭔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에도 경찰에게 반드시 예의를 갖춰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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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건 ‘공권력의 과잉’이다. 경찰이 시민의 일상에 개입해 그 행위를 판단하고 처벌하려 든다. 합의로 해결될 일이 처벌 대상으로 변한다. 특히 구걸하고 술 마시고 소리 지르며 살아온 사람들, 사회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은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다. 곧 배제될 사람들은 처벌되는 공포를 느끼며 알아서 기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과잉이 언제나 결핍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컨택터스로 대표되는 용역회사들의 폭력은 이미 공권력의 통제를 벗어났고, 경찰은 이 폭력을 묵인해왔다. 사실 공권력이 사적 폭력을 묵인하거나 그와 결탁해온 역사는 독도 문제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그리고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이 민생 치안과 조직폭력 소탕을 내세웠지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경찰의 총기 사용을 장려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듯이 과잉과 결핍은 동전의 양면이다.


안전을 빌미로 공포 조장

도대체 경찰은 뭐하는 거냐며 비판하는 것이 그들의 과잉을 정당화시키고, 안전을 빌미로 공포가 조장된다. 생활공간을 분할하여 ‘깨끗한 지배’를 실현하려는 전략이 폭력으로 뒷받침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결핍으로, 노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과잉으로 대하는 경찰이 공(公)권력을 자처한다.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시민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 공권력의 정당성은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힘이 구성되는 방식에서 나오는데,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공권력의 행사에만 관심을 쏟도록 만든다.

만일 권력이, 그 정당성을 시민들의 동의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끌어내려 한다면 시민들은 그 권력을 버리고 새로운 권력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좋은 경찰의 ‘우연한 출현’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의 통제를 받는 공권력을 원한다. 경찰이 시민을 관리하려 드는 게 아니라 시민이 경찰을 관리하기를 원한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고민할 바도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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