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하지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09 전복의 웃음, 새로운 정치는 가능한가?(실천문학)
  2. 2009.04.16 자발적 가난의 재구성, 가난뱅이의 역습 (4)
posted by 몽똘 2009.05.09 15:52

2008년을 달궜던 촛불은 잦아들고, 이명박 정권은 그 남은 불씨를 없애느라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권은 아고라의 논객들을 구속했고 조중동 광고중단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안티이명박을 외치는 카페의 운영진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무의미한 권리목록으로 변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반하고 사법부의 재판에까지 개입해서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미디어의 힘을 깨달았는지 통신비밀보호법,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등을 총동원해서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 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앞세워 YTN과 KBS를 장악하고 MBC로 그 칼끝을 겨누며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언론의 자유’마저 짓밟고 있다.

이런 정부에 맞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용산재개발과 관련해 5명의 애꿎은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정부는 사과는커녕 관련된 시민사회단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역토호의 중심세력인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한국자유총연맹과 손을 잡고 ‘3대 신국민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옛 것이 가고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아야 할 시기에 우리는 낡은 것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2008년의 전복적인 촛불은 호된 탄압을 받으며 2009년을 보내고 있고, 1년을 10년처럼 보내는 피로감은 올 해도 여전할 듯하다. 양극화를 비롯한 경제위기와 식량, 에너지 위기 등 온갖 위기가 누적되어 온전히 삶을 지키기조차 힘들고 희망적인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지식인들이 이런저런 전망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2008년 거리의 전복이 기존의 모든 권위에 물음표를 붙였기 때문에 그 전망은 외로운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촛불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I. 대의민주주의는 웃음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는 사람이 힘에 눌리거나 설득을 당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을 받아들일 때에만 권위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때리거나 아이와 논쟁을 벌이는 것은 권위의 상실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아이를 때리는 순간 부모는 권위가 아니라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고, 아이와 논쟁하는 것은 아이와 부모가 동등하다는 점을 뜻하기에 권위가 서지 않는다. 권위는 자신을 존경하는 곳에서만 확립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권위의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고 상대를 경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어버리는 것이다.[각주:1]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U.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듯, 권위는 웃음을 철저하게 금지한다.

2008년 촛불집회의 파괴력은 단순히 시민들이 정부의 쇠고기수입정책을 직접 반대했다는 점, 그리고 10대 청소년에서 유모차 부대까지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등장했다는 점에만 있지 않았다. 촛불집회의 힘은 기존의 권위를 비웃으며 그것을 해체시켰다는 점에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을 쥐박이라 부르며 비웃었고, 아고라 논객들은 정부의 정책을 비웃었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든 누리꾼들은 신문이나 방송의 권위를 비웃었고, 전경차를 끌어내던 시민들의 밧줄이나 닭장투어, 국민토성은 경찰의 권위를 비웃었다. 아고라의 깃발은 사회운동단체들의 깃발을 비웃었고, 내가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겠다는 시민들의 결심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비웃었다.

웃음의 전복적인 힘은 대표나 전문가들의 권위에 의지하는 대의민주주의 질서를 헝클어버렸다. 대의민주주의는 명성이나 돈, 학위를 가진 대표가 선거를 통해 가진 것 없는 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지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각주:2]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같은 대표는 ‘무지한’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고 그들의 동의만을 구한다. 다음 선거에 유권자는 다른 대표를 뽑을 수도 있지만 그 자신이 직접 대표로 나서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를 정치인들의 손에, 경제를 기업인들의 손에, 학문을 지식인들의 손에 맡기고 시민이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대의민주주의의 충고는 촛불집회에서 그 힘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촛불 이후 시민들은 대의민주주의로 다시 돌아가거나 대의민주주의의 틀에 갇힐 수 없었다.

그러자 대의민주주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거리의 웃음을 금지하려 한다. 권력이 평범한 시민과 자신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가장 단순한 방식은 공권력을 폭력적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시민을 구속하거나 폭행해서 자신을 비웃는 대가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깨닫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의 힘이 배가 되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광장을 없앤다.

그리고 웃음의 전복적인 힘을 없애는 더욱더 근본적인 방법은 그 자신도 웃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복적인 힘을 가진 웃음이라도 그것이 상투화되면 웃음은 그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권력은 대의민주주의를 비웃는 웃음을 따라서 그 자신도 대의민주주의를 비웃기 시작한다. 권력이 스스로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절차마저 무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다시금 대의민주주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와 관련해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M. Kundera)는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세계의 합리적인 의미를 부정하는 악마가 질서를 비웃는 신무기인 웃음을 만들어내자 천사는 그 웃음소리를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어떤 것으로도 웃음의 악마적인 힘에 저항할 수 없자 천사는 악마의 전략을 따라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악마가 웃음에 사물의 부조리를 담았다면, 천사는 웃음에 이 땅의 모든 것이 올바르고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선다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웃음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각주:3]

이렇게 대중의 전복적인 웃음을 변질시키는 천사의 웃음은 기득권층이 변화를 가로막기 위해 자신의 힘을 ‘총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서구에서 68혁명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사상가 마르쿠제(H. Marcuse)는 저항이 있다 한들 기득권 체제가 바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체제가 반(反)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제는 기성사회가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마저도 체계적으로 남용하면서 우리 현실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각주:4] 왜냐하면 기성체제는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상대방에게 폭력의 딱지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적은 깨끗하게 정리되어야 할 불결한 존재인 빨갱이, 좌파, 이주노동자 등의 구체적인 인격으로 나타나고, 공권력은 유색인종이나 히피, 급진적인 지식인들에게 폭력을 집중시킨다. 이런 공격성의 증가와 함께 대중매체는 사실적인 보고를 해설이나 평가와, 정보를 선전과 뒤섞어 진리를 혼동시킨다(정보화 사회는 이런 혼동의 속도를 더욱더 빠르게 한다). 그래서 이제는 정보의 독점만이 정보의 남발 혹은 왜곡이 더욱더 큰 문제를 낳는다. 이런 분석을 통해 마르쿠제는 대항운동이 권력이 강제하는 법적․초법적인 억압과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조직의 결여” 때문에 위기를 겪으리라 예상한 바 있다.[각주:5]

지금 우리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웃음은 대의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지만 대의민주주의는 그 웃음을 왜곡시켜 다시금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 자각한 시민들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다. 웃음의 힘은 강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힘 또한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그렇다면 웃음을 넘어선 또 다른 힘이 필요한 걸까?

 

 

II. 촛불집회는 카니발이었나?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은 참여한 시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만이 아니라 즐거움도 줬다.[각주:6] 그런 새로운 시위문화를 주목하면서 여러 연구들이 촛불집회와 카니발을 비교했다.[각주:7] 분명 촛불집회는 “삶 자체가 놀이를 하는 것이고, 이 놀이는 잠시 삶 자체가 되는 것”, “웃음의 원리 속에서 구성된 민중들의 제2의 삶이며, 민중들의 축제적 삶”[각주:8]인 카니발과 많이 닮았다. 특히 카니발의 웃음은 양면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즉 “유쾌해하기도 하고 환호작약하기도 하며 동시에 조소적이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는데, 부정하기도 하고 동시에 긍정하기도 하며, 매장되기도 하며 부활하기도 한다”[각주:9]는 점에서 체제의 정형화된 웃음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만들 수도 있다.

러시아의 사상가 바흐찐(M. Bakhtin)이 주목했던 카니발은 일상생활의 규범과 금지들을 넘어서 새로운 의사소통과 만남의 형식을 만든다. 공식적인 진리와 지성의 엄숙함을 조롱하고 비웃는 카니발은 그로테스크한 광기를 표현하는 민중의 공론장, 민중이 벌이는 축제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넘어 몸과 마음으로 우리를 구성하는 “카니발은 대화와 공동체의 의식이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함께 참여케 함으로써 공동생활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폭력적 파괴의 형태인 혁명과 달리 카니발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며 반항의 유쾌한 몸짓이다.”[각주:10] 웃음을 배제하는 혁명과 달리 카니발은 반항과 저항에 소통과 즐거움을 더한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바흐찐이 말했던 카니발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카니발은 모든 위계질서를 파괴하며 군중을 “민중의 방식으로 조직화된 전체로서의 민중”으로 묶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카니발의 과정에서 민중은 “그 몸의 육체적 접촉까지도 일정한 의미”를 갖고 “개인은 자신이 집단에서 분리될 수 없는 부분임을, 민중의 거대한 몸의 한 기관임을” 느낄 정도이다.[각주:11] 심지어 카니발은 모든 계급과 연령을 동등하게 바라보게 한다.[각주:12]

그러나 한국의 촛불집회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성인/남성 중심의 위계와 계급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청소년과 여성들은 점점 운동의 뒷전으로 밀려났고[각주:13], 촛불집회를 계급의 시선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각주:14] 촛불집회가 이런 위계질서와 계급적인 균열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여한 주체들은 개별적인 자각을 했을지언정 집단적인 자기변형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용만이 아니라 그 형식을 본다면 촛불집회는 카니발과 다른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촛불집회는 인터넷이라는 개별화된 시공간을 매개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커넥터(connector)나 노드(node), 허브(hub)라는 인터넷 형식은 사람들을 하나의 민중이 아니라 사회화된 개인으로 만들었다. 이런 개인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에서만 집단적인 흐름에 동참했다.

또한 촛불문화제나 촛불집회가 촛불산책이나 명동무한도전×2와 같은 다른 형태로 이어지며 전환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물러날 것을 외치는 촛불집회의 함성은 보편적인 세계관에 도전하는 근본적인 웃음을 만들지도 못했다.[각주:15]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의 균열선과 개별성,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카니발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 100일을 넘기며 진행되었던 촛불집회는 일상생활과 분리되어 있었기에 그 역동성을 확장시킬 수 없었다. ‘생활정치’라는 개념이 주장되기는 했지만 그 개념 역시 일상과 분리된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다. 일상과 분리될 경우 웃음과 카니발의 전복적인 힘은 신데렐라의 무도회처럼 12시를 넘기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일상과 분리되지 않은 전복의 힘이 필요하다.

 

 

III. 일상을 전복하자!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밝히기도 했던 미국의 빈민운동가 사울 알린스키(S. Alinsky)는 생활 속의 변화를 추구했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꾸려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시작해야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수동적인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알린스키는 기존 질서를 무조건 부정하지 말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며 때로는 넘어서는 다양한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각주:16]

실제로 알린스키는 재미있고 유쾌한 여러 가지 운동을 고안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자면, 빈민지역을 조직하려는 조직가는 이런 물음을 던지며 사람들을 만난다.

조직가: 저 빈민가 건물에서 살고 있습니까?

답변: 예. 그런데요?

조직가: 도대체 저기에서 왜 살지요?

답변: 무슨 말이오. 저기에서 무엇 때문에 살다니? 그럼 어디에 가서 살란 말이오? 나는 생활보호자요.

조직가: 아아, 그러면 저기에서 집세를 내고 있겠군요?

답변: 이봐요, 장난치는 거요? 웃기는군! 어디 돈 안 내고 살 수 있는 데가 있소?

조직가: 음, 저곳은 쥐나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곳처럼 보이는데요.

답변: 당연하지요.

조직가: 집주인에게 무슨 조치를 해 달라고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답변: 집주인에게 무언가 해 달라고 해 보았느냐고! 그게 싫으면 당장 나가. 집주인은 틀림없이 그렇게 말할 거요.

조직가: 집세를 내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답변: 십 분 안에 나를 내쫓을 거요.

조직가: 음, 저 건물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집세를 내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답변: 글쎄, 쫓아내기 시작하겠죠.……어어, 알다시피 모두를 쫓아내려면 힘이 들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조직가: 예, 아마 그렇겠죠.

답변: 이봐요, 당신, 뭔가 있는 모양인데. 좋소. 당신, 내 친구들 몇 사람 만나보시겠소. 한 잔 합시다.”[각주:17]

또 다른 예도 있다. 알린스키는 미국 은행이 가난한 흑인청년들에게 대출을 거부하자 흑인청년들에게 매일 잔돈을 나눠주고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하게 했다. 아무리 잔돈이라도 예금을 하겠다는 것을 막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수십 명의 흑인들이 은행 창구 앞에 서있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른 고객들이 거래은행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국 그 은행은 흑인청년들에게 돈을 대출해야 했다.[각주:18] 그리고 백인 엘리트 계층이 자신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알린스키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 200장 정도를 사서 흑인들에게 나눠준 뒤 그들이 배불리 식사를 하고 공연장에 가서 방귀를 뀌며 위협하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 또한 1971년에 일본을 방문한 알린스키는 재일동포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고 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집에서 쥐를 다 잡아서 차에다 싣고 도쿄의 긴자 거리에 가서 다 풀어 놓으시오. 거리의 잘난 사람들이 놀라면 ‘뭐 그렇게들 놀라시오. 우리는 이들과 같이 사는 데요’ 하시오”[각주:19]

알린스키가 이런 기발한 방법들을 쓴 것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였지만 평소에 유머감각을 강조했던 그의 철학 탓도 있었다. 알린스키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활동가들이 유머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머감각을 가져야 “확신을 가지지 않고 자유롭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탐구하며 독단적 교리를 혐오”할 수 있고 “그가 모순을 인지하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힘 있는 무기는 풍자와 조롱”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각주:20]

일본의 궁상스러운 청년 마쓰모토 하지메(松本哉)도 알린스키처럼 일상 속의 변화를 추구한다. 만국의 노동자가 아니라 만국의 가난뱅이여 단결하라, 라고 외치는 하지메는 가난뱅이를 등쳐먹는 자본주의 경제에 맞서는 방법이 재활용 가게를 만들고 빈집을 점거하며 지역에 공공공간을 확보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새로이 맺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수청년들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쓸모없는 물건을 모으거나 동네회의에 참여하며 자신이 사는 동네를 ‘양산박’으로 만들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지메는 이렇게 얘기한다. “매일 저녁,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생중계하고 이웃의 말뼈다귀 같은 놈들을 모아 술을 마시다 보니까, 혼돈과 에너지가 넘치는 가게가 되었다.”[각주:21]

도심지를 불바다로 만들자는 과격한 방을 붙이고 난 뒤 길거리에 모여 숯불로 찌개를 끓여 술을 마시고, 집회신고를 낸 뒤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서 경찰을 ‘바람맞히기 데모’를 열며, 길목 좋은 곳에서 데모를 하기 위해 지방선거 후보자로 나서는 하지메의 행동은 단지 기행으로 그치지 않는 전복의 기운을 품고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하지메는 일상적인 삶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따분한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아이고,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3년만 다니고 그만둬야지, 그때는 자유롭게 살아가야지”하는 놈치고 진짜 회사를 그만 두고 자유롭게 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안정감 위주로 무리도 안 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면 해방감 있는 세상을 맛볼 수 없다.”[각주:22]

다른 시공간을 살았지만 알린스키와 하지메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기존의 룰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동을 당장 시작하라. 그러면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다.

 

 

IV. 스스로 웃게 하라!

 

루쉰(魯迅)이 『아Q정전』에서 주장했듯이, 대중이 패배주의적인 ‘정신승리법’을 버리고 자신의 상황에 눈을 뜰 때에만 웃음은 전복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 고통을 참으며 현실을 똑바로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변화는 새로운 감성, 새로운 공감에 바탕을 둔 비판적인 인식을 회복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 힘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촛불집회의 결과가 어찌되었건 사람들은 정치행위에 참여할 때 느끼는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익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자신의 이익이 공동체의 이익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각주:23] 이런 깨달음은 일상 속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새로운 감성, 새로운 이성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모든 사건은 언제나 진행 중이기에 그 방향을 미리 점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새로운 감성과 이성을 가진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 때에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가로막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말하고 웃게 할 때에만 민주주의는 그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활용하건 부정하건, 새로운 전술은 현실의 조건을 따라야 하지만 한 가지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누구를 대변하려 하지 말고 우리들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웃자!

그리고 때때로 민주주의가 고통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 뭘까? 그것이 바로 웃음이다. 영국의 작가 로렌스(D. H. Lawrence)가 ‘제대로 된 혁명’에서 노래했듯이,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1. 한나 아렌트, 김동식 옮김, 『공화국의 위기』, 도서출판 두레, 1979, 165~166쪽.
 [본문으로]
  2. 미국의 정치학자 마넹(B. Manin)은 전문가 중심의 정치를 불신하는 추첨제도가 선거제도로 바뀐 것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찾는다. 왜냐하면 추첨제도는 누구나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했는데, 선거는 탁월한 사람들만 권력을 갖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버나드 마넹, 곽준혁 옮김,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2004, 61쪽).
 [본문으로]
  3. 밀란 쿤데라, 정인용 옮김, 『웃음과 망각의 책』, 문학사상사, 1992, 96쪽. [본문으로]
  4. Herbert Marcuse, One-dimensional Man(Boston: Beacon Press, 1964), pp.248~250. [본문으로]
  5. Herbert Marcuse, Counterrevolution and Revolt(Boston: Beacon Press), 1972), p.29 [본문으로]
  6. “조롱과 비웃음은 억압적 권위를 겨냥하는 무기이면서 만인을 유쾌하게 만든다. 촛불집회를 유쾌하게 만든 무수한 패러디는 웃음의 미학과 상상력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민유기,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2008년 촛불신화의 역사적 의미」, 『실천문학』 2008년 겨울호, 340쪽) [본문으로]
  7. 촛불집회 참여자를 “프랑수아 라블레가 묘사했던 신명난 군중, 통 큰 기괴와 기상천외한 유머를 한 몸에 체현한 미래의 군중”(김상준. 2008. 「대한민국 민주주의 60년을 보는 시각」,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한국사회학회 특별심포지움 발표문, 13~14쪽)으로 보거나 “촛불집회는 바흐찐이 말하는 다음․다성적 카니발(carnival)의 속성을 매우 닮아있으며, 그 주체는 단연코 개인인 동시에 대중인 인․민”(전규찬, 「촛불집회, 민주적․자율적 대중교통의 빅뱅」, 『문화/과학』 2008년 가을호, 116~117쪽)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8. 미하일 바흐찐, 이덕형․최건영 옮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아카넷, 2001, 30쪽. [본문으로]
  9. 바흐찐, 앞의 책, 36쪽. [본문으로]
  10. 정화열, 박현모 옮김, 『몸의 정치』, 민음사, 2000, 81쪽. [본문으로]
  11. 바흐찐, 앞의 책, 396쪽. [본문으로]
  12. 바흐찐의 말을 빌린다면, “여기 한 소년은 아버지의 촛불을 불어 끄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Sia ammazzato il signore Padre!(아버지는 죽어버려라!)’ 유쾌하게 아버지에게 죽음을 위협하며 그의 촛불을 끄는 소년의 이 놀라운 카니발적 외침”(바흐찐, 앞의 책, 390쪽) [본문으로]
  13. “촛불진영 내부적으로는 5월 집회초기와 달리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회세력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10대의 참여가 거대한 촛불 대중에 묻히게 되고 10대의 문제를 의제화하지 못한 데서 나온 평가로도 볼 수 있다.”(이해진, 「촛불집회 10대 참여자들의 참여 경험과 주체 형성」, 『경제와 사회』 2008년 제 80호, 89쪽) [본문으로]
  14. 기존의 사회운동은 하나가 되는 경험보다 어떻게 촛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만 주로 고민했다. “촛불은 끝내 홈에버 매장 앞으로 오지 않았다. 짬짬이 시간 내서 십여 차례 참석한 촛불집회에서 만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방인이었다. 정규직 17년차인 나도 소외감을 느끼는데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10년 후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쇠고기 수입 반대에는 그렇게도 열정적인 시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의외로 차가웠다.…촛불은 아름다웠지만 계급적 문제에 대해선 무력했고 둔감했다.”(이남신, 「아름다운 촛불이 홈에버 매장 앞으로 오지 못한 까닭은」, 『내일을 여는 역사』 2008년 가을호, 148쪽). 촛불집회에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참여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본문으로]
  15. “카니발은(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밝힌다) 공식적 세계관의 지배로부터 의식을 해방시켰으며, 세계를 새롭게 보도록 하였다. 두려워하지 않고, 경건함 없이, 완전히 비판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게다가 긍정적으로. 왜냐하면 카니발은 풍부하고 물질적인 세계의 시원과 형성, 변형, 그리고 새롭고 불멸하는 민중의 억누를 수 없는 힘과 영원한 승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바흐찐, 앞의 책, 424쪽) [본문으로]
  16. “나는 나 자신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대답만을 젊은 급진주의자들에게 해줄 수 있었다. ‘세 가지 중 하나를 하라. 첫째, 가서 통곡의 벽을 쌓고 너 자신을 위로하라. 둘째, 미쳐 버린 후에 폭탄 투척을 시작하라. 하지만 그 방법은 단지 사람을 우파로 돌아서게 만들 뿐이다. 셋째, 교훈을 얻어라. 고향으로 가서 조직화하고, 힘을 모아서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너희 자신이 대의원이 되어라.’”(사울 D. 알린스키, 박순성․박지우 옮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아르케, 2008, 33쪽) [본문으로]
  17. 알린스키, 앞의 책, 166~167쪽. [본문으로]
  18. 이를 본 따서 국내에서도 알린스키식 운동이 시도되기도 했다. 1999년 11월 7일 이화여대 총학생회 여성위원회는 부부직원 중 여성을 먼저 퇴직시키는 농협의 성차별 정책을 바꾸기 위해 농협중앙회로 몰려가 줄줄이 10원짜리 통장을 만듦으로써 농협의 일상 업무를 마비시키자고 주장하는 공고를 붙였다(이신행, 「사회만들기로서의 주민운동」, 한국도시연구소 편, 『지역주민운동 리포트』, 한국도시연구소, 1999, 33쪽 참조). [본문으로]
  19. 알린스키, 앞의 책, 16쪽. [본문으로]
  20. 알린스키, 앞의 책, 128쪽. [본문으로]
  21. 마쓰모토 하지메, 김경원 옮김, 『가난뱅이의 역습』, 이루, 2009, 71쪽. [본문으로]
  22. 하지메, 앞의 책, 201쪽. [본문으로]
  23. “우리 시대에 새로운 또 다른 경험이 정치라는 게임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행위한다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라는 점이다. 이 세대는 18세기에 ‘공공의 행복(public hapiness)’이라 불리웠던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이들이 뜻하는 ‘공공의 행복’은 인간은 공적 생활에 참여할 때,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만 머무르고 말았을 인간경험의 한 차원을 자신에게 개방하는 것이며 이 차원은 완전한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의미다.”(아렌트, 앞의 책, 24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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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4.16 15:04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일본에 아주 독특한 청년이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랑 시위도 벌이고 지방선거도 출마하는 그저그런 '괴짜'리라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넘기려다 왠지 그 실체가 궁금해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마쓰모토 하지메라는 청년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쓴 책이 최근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구나 [공룡 둘리에 관한 슬픈 오마주]나 [습지생태보고서]처럼 일그러진 우리 현실을 독특하게 묘사하는 최규석 씨가 삽화를 맡았다는 사실을...

역시나...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유쾌한 표지(중간의 푸른 깃발엔 '캐백수 연대'라고 적혀 있다.ㅎㅎ)에, [습지생태보고서]의 출연진들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글과 삽화가 이렇게 절묘하게 일치되는 책은 아마도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어쨌거나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우울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껏해야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자라는 낡은 주장을 한다면, [가난뱅이의 역습]은 유쾌하고 혁명적인 반란을 외친다.

책을 펴니 제 1창의 제목은 '여차할 때 써봄직한 가난뱅이 생활기술'이다. 방세를 아끼는 법부터 노숙하는 법, 차를 얻어타는 법, 입을 옷을 구하는 법 등 다양한 생활의 지혜들이 펼쳐져 있다. 가난을 궁색하게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등을 치지 말고 공유하고 공생하며 살라는 교훈도 들어 있다.  이렇게 1장만 읽고 있으면 아이 찌질해라며 슬슬 짜증이 밀려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활의 지혜보다 하지메의 장기는 대학과 거리에서 펼친 반란에서 더 빛을 발한다. 하지메는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에서 시작해 바가지를 씌우는 학생식당 분쇄 투쟁을 벌이고 궁상스러움을 없애려는 학교에 대항해 난로 투쟁, 찌개 투쟁, 술 투쟁, 갈고등어 암치 투쟁, 페인트 습격사건을 벌인다. 말이 투쟁이지 한잔 하면서 실컷 불평불만을 늘어놓다 취기를 빌려 총장실을 습격하는 막가파 학생들이다. 투쟁의 필수품은 쇠파이프나 화염병, 농성이 아니라 찌개나 고기와 술, 술판이다.

하지메의 이런 행동이 아주 엉뚱해 보이지만 내 눈에는 나름 진지하게 '판을 짜는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메는 멍석만 깔아놓고 주위의 가난뱅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유도하면서 자기 자신도 즐겁고 다른 이들도 즐거우니 이 얼마나 유쾌한 투쟁이냐. 그의 말을 들어보라.

당시는 저녁 시간 이후에 대학에 가면 언제나 누군가가 찌개를 끓이거나 고기를 굽고 있어서 곳곳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바비큐를 굽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잔 안 할래?”하고 말을 건네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으응, 이게 정말 바람직한 대학인 거다. 걸어다니기만 해도 친구가 생기니까!


이런 하지메의 투쟁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거리로 이어진다. 하지메는 이제 거리에서 노상 대연회나 찌개 집회를 열었다. 거리에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이면 여기저기서 가난뱅이들이 나타나 이 축제에 동참한다. 따로 선동하거나 선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렇게 모여든 힘을 모아 중심가를 습격(?)하거나 크리스마스 분쇄 집회를 연다.

사람들이 상상만 했던 사건들이 하지메의 행동에선 실현된다. DJ가 시끄러운 음악을 틀며 시위를 벌이고, 집회 신고를 하고선 달랑 3명만 집회에 참여한다든지(3인 데모), 심지어 귀찮으면(?) 신고만 하고 집회를 열지 않는다(공포의 바람맞히기 데모). 생각해 보라, 집회장에서 열리지 않을 집회를 기다리는 경찰의 모습을...

대학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지메의 거리축제엔 음악과 춤이 빠지지 않는다.

소리를 중시하는 이유는 우선 우리가 즐겁게 하기 위해서지만 주변의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질서정연하게 데모를 해봐야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게 뭔 데모람. 모처럼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쌓이고 쌓인 불만을 터뜨리려고 작정했다면 틈만 나면 음향을 꽝꽝 울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교통을 마비시켜 조금이라도 세상을 들썩거리게 해야 보람이 있다. 이게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거다. 까불지 말라는 경고를 귀청이 떨어지게 알리려면 마냥 예의 바르게 굴 수가 없는 법이다. 대혼란 만만세!


이렇게 데모를 벌이다 하지메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길목 좋은 곳에서 때마다 사람들이 듣지도 않는 연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하지메는 구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온 동네의 가난한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다 모여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떠들어대며 축제를 연다. 놀랍게도 하지메는 이런 소란을 떨고도 1,061표나 얻어 공탁금을 회수(400표 이상)한다.

거리의 반란을 꿈꾸는 하지메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곳은 '아마추어의 반란'이라 불리는 재활용가게이다. 재활용 가게라고 해서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나 '녹색가게'를 떠올리지 마시라. 이들의 가게는 재활용 물품을 거래할 뿐 아니라 인터넷 라디오방송 기지(http://trio4.nobody.jp/keita/
)로, 술집으로, 무도회장으로, 다양한 반란의 공간으로 활용되니까.

의식적인 학습이든,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이든 하지메는 가난뱅이들이 서로 연대해야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지역에서 연대하며 살아가자고 외친다. 용산 참사를 통해 드러났듯이 지역의 조그만 상점들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뱅이로 전락할 신세이다. 술집, 식당으로 이어지는 대형 체인점과 대형 할인마트의 공격을 받으며 자영업자들은 몰락하고 있다. 하지메는 재활용 가게만이 아니라 이런 작은 상점들이 공동체를 꾸리고 공동의 공간을 마련하며 살아가자고 외친다.

개인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내서 생활하는 것에 비해 가게를 통해 마을에서 공동체를 조직하면 훨씬 다양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우선 어중이떠중이가 모이면 공공의 재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신명이라도 나면 공공시설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두자.



하지메는 가난뱅이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낭비를  줄이고, 가난뱅이들은 "공유할 수 있다면 공유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고, "중고품을 사거나 필요없는 물건을 파는 행동이 곧바로 바가지 씌우는 경제에 대한 저항이 된다는 말이다! 동네 할머니가 “어머, 이거 왜 이렇게 싸”하고 중고 주전자를 사 가는 것이 반체제 행동이 될 수도 있다!"고 외치는 새로운 반란가이다.

하지메가 이런 기발하면서도 가난뱅이들과 함께 하는 전략을 제시했던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미국의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도 이미 60년대에 그런 전략을 많이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잔치인 클래식 음악회에 가서 방귀를 뀌며 그들을 위협한다든지, 도심지에 쥐를 풀어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알린다든지, 10원짜리를 매일 예금하면서 은행을 압박한다든지, 알린스키는 나름 그 시대의 쇼킹한 운동전략들을 만들어냈다. 아마 찾아보면 더 많은 기발한 운동방식이 있고, 한국에도 그런 기발한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지메라는 이 시대의 청년이 가진 새로움은 분명 있다. 그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개념을 궁상스럽게 외치지 않고 부자들을 긴장시키고 압박하는 공격적인 개념으로 바꾼다. 우린 더이상 부자들을 위해 일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 당신들이 짜놓은 경쟁의 규칙을 더이상 따르지 않겠다는 그의 각오는 다분히 위협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따분한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아이고,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3년만 다니고 그만둬야지, 그때는 자유롭게 살아가야지”하는 놈치고 진짜 회사를 가믄두고 자유롭게 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안정감 위주로 무리도 안 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면 해방감 있는 세상을 맛볼 수 없다

나는 그가 계속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대학에서 거리로, 구의회선거로, 그의 반란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얼마전 마포 민중의 집에서는 그를 다룬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이 상영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마쓰모토 하지메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의 방문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가난뱅이들의 역습을 기대해 본다(설마, 재미 없게 강연회만 하고 돌아가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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