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1.02.16 23:06
우리 각시는 내가 흉내내지 못할 글을 쓴다.
글을 읽다보면 그 감정 속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우리 각시가 <시사인>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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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철거 현장에서 준우란 아이를 만나던 날도 그랬다. 아파트 건설 현장 펜스에 기대 세워진 판잣집.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현수막이 없었다면 혹한에 장사를 접은 포장마차인 줄 알았을 그곳에 철거민들이 산다. 한낮이건만 빛 한줌 들어오지 않고 바람만 피했을 뿐 말할 때마다 입김이 서리는 천막 안에서 준우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물어도 아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농담을 건네도 웃지 않는다.

다른 이를 통해 알았다. 아이의 이름이 준우라는 것도, 올해 열한 살이 됐다는 것도, 그리고 아빠 김창수씨가 용산 참사로 구속된 이후 그 충격에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도. 김창수씨는 2009년 1월 용산 망루에 올랐다가 4년형을 선고받았다. 준우 엄마는 화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한순간에 집을 빼앗긴 것도 기가 막힌데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노모를 모시며 어린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우리만 살기도 벅찬 세상에 왜 남편은 용산 철거민들을 돕겠다고 망루에 올랐는지, 내쫓으면 사라지면 될걸 왜 우리도 사람이라고 외쳤는지. 때로는 제 발로 사지에 들어간 남편이, 용산 철거민들이 원망스럽다. 슬픔과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회사 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벌이던 2009년 여름, 쌍용차 노동자의 아내들과 아이들도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빠의 긴 부재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경찰만 보면 엄마에게 숨으라고 했다. 구사대가 내뱉는 욕을 배웠고, 막대기와 돌멩이 던지는 것을 배워 소꿉장난을 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이겨야만 했던 싸움은 패배로 끝났다. 노동자 90여 명이 구속됐고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민사소송에 휘말리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해고된 이들은 생활고에 아이의 우유를, 학원을 끊었다. 누군가에겐 ‘지난 사건’이 이들에게는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었고, 오늘도 계속되는 삶이다. 혹독한 삶의 무게에 지난 2년간 쌍용차 노동자 다섯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 남의 일이라며 뒷짐만 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혹독한 세상, 안될 일에 미련 두지 말고 빨리 손 털라고.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에 아이들만 상처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돌아봤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사법부는 ‘법대로 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건설회사는 계산기만 두들기고, 많은 어른들은 남의 일이라며 뒷짐을 진다.

발전과 경제성장만이 화두인 세상에서 내몰리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이들의 고통과 그 가족의 아픔은 오롯이 그들 몫이다. 사회적 고통이 되지 못하고, 화두가 되지 못한다. 얼마나 서글픈 시대인가.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도 서러운데,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도, 분노도, 죄책감도 다 그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지는 세상은.

언젠가 아이들이 물을 거다. ‘정리해고’ ‘강제철거’ ‘승자독식’이 무슨 뜻이냐고. 그때 우리는 이 말들의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발전·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집과 부모를, 동심을 빼앗긴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외면해야 했다고, 우리 가족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오늘도 준우는 아빠를 기다리고, 수많은 준우의 부모들은 망루에, 타워크레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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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5.10 10:41

 


도시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치솟는 전세값이 마음을 꺼멓게 태우고, 정리해고와 실업이 남의 회사 얘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야근과 잔업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데도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돈은 술술 어딘가로 샌다. 쓰린 속을 달래며 일을 하려니 이제는 몸도 슬슬 이상을 보이는 듯하다. 좀 쉬고 싶어도 직장에서 짤리지 않으려면 외국어나 최신 프로그램을 익히며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심지어 몸매나 유머감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열심히 사는 데도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질까?

나만 힘든 거라면 그럭저럭 참겠는데 우리 아이들의 삶도 행복하지 않다. 갓난쟁이들에게는 아토피가 끊이지 않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터진다. 학원을 보내고 싶지 않아도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 갈 곳이 마땅치 않고, 사실 집 밖만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맘 같아선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느니,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느니, 불길한 말만 들리고, 왕따에, 사이코 패스에, 세상은 미처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생활자들은 이런 많은 고민들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감당해 왔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많은 돈과 노력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의 생활능력은 세계 최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면,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 살이 훈장처럼 박히도록 일하며 역경을 기회로 만들어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갔나? 그동안 간, 쓸개 다 빼주며 뼈빠지게 일한 결과는 무엇인가? 또 하나의 가족, 무슨 가족을 떠들던 기업들은 조금만 적자가 나면 가족들을 쳐내기에 바쁘고,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정작 그 기적을 일궈온 시민들은 죽 쒀서 개주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원래 다 그런 거다, 내가 뭘 어쩌겠냐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


생활에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시민들의 근성이 이상하게 정치로 가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헝그리정신, 악바리근성이 정치 쪽으로만 가면 냉소와 허무주의로 바뀐다. 술자리에서는 정치인, 전문가 못지않게 열변을 토해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착한 양이 되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산다.


물론 도시생활자들이 몰라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서는 정보가 넘쳐 난다. 많은 정치인들은 진보/보수나 좌/우, 자신의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그런 정보들에 익숙하기에 자신을 세련되고 똑똑한 시민이라 여기지만 각종 정보에만 밝을 뿐 자기 자신의 정치관을 고민해본 적이 없다. 매일마다 스캔들과 부패사건이 터지니 마치 쇼핑을 즐기듯 품평회를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에 관해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러니 “못살겠다 바꿔보자”라는 외침에 바로 따라붙는 건 “갈아봤자,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냉소이다.


루쒼(魯迅)의 『아Q정전』을 보면 아Q의 정신승리법이 나온다. 건달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아Q는 잠시 서 있다 이렇게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맞은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아Q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것을 늘 뒤에 가서 떠들어대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렸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이 같은 정신적인 승리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기 비하의 제1인자라고 여겼다. ‘자기 비하’란 말만 빼면 어쨌든 ‘제1인자’가 된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Q를 닮은 건 아닐까? 정치인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들에게 당한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우리는 생각했던 것을 늘 정치인들 뒤에서 떠들고 앞에 가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한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얘기를 학교에서 배우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법 앞에만 서면 움츠려든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순종적인 민주시민이라고 여긴다. ‘순종적인’이란 말만 빼면 어쨌든 민주시민이니까.


다른 정치는 불가능할까?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보면 아주 훌륭한 도시생활자가 나온다. 우에하라는 남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개(展開)해봐”라며 상대방에게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면 우에하라는 국가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 지금 우리에겐 우에하라와 같은 배짱이 있을까?


지나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더 많이 일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행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이나 준법정신, 근면함과 성실함이 아니라 바로 정치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개인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행복의 조건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집값이나 전세값만 좀 내려가도 살기가 훨씬 편할 텐데 지금까지 우리는 널뛰기하는 그 값을 치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 값이 정확한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셈만 정확하게 해도 삶이 한층 행복해질 텐데 그런 행복을 뒤로 미룬 채 “내 탓이오”만 외쳐 왔다.


전세값만이 아니다. 건강을 챙기는 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알고 있지만 건강 역시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불평등’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정규직 노동자보다 좋지 않다. 아무리 건강해지고 싶어도 먹는 게 부실하고 일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리고 사는 곳이 쾌적하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니 애써 고통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 이래도 건강이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적인 문제이니 건강 문제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정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고, 건강보험이나 의료시스템을 정하는 의료보건정책을 만드는 것도 정치에 속한다. 마을에 복지관, 도서관 등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 아이들의 아토피도 따지고 보면 도시의 생활환경과 연관되어 있으니 정치가 잘 이뤄진다면 아이가 몸을 박박 긁으며 힘들어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볼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가 고통스럽고 아픈 건 정치가 제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정치의 역할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보육이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떤 교육을 받는지는 모든 부모의 관심사이다. 이런 관심사를 개인적으로 풀려고 하니 우리 아이 잘 봐달라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촌지를 쥐어주며 부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런 관심을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푼다면 어떻게 될까? 보육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돌아가는 실상을 파악하고 아이들이나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면 어떨까?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문제인데도 나 혼자서 풀려고 하니 돈도 많이 들고 결과도 좋지 않다.

 

세상사는 게 원래 다 그렇지라며 담배를 꺼내 물거나 내 탓이라 자책하지 말고 정치에 관심을 좀 쏟자. 교육정책이 바뀌면 아이들의 삶도 달라질 수 있고 나도 더 이상 아이들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 노동관계법이나 보건의료관계법이 바뀌면 건강하게 삶의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주택법과 도시개발관련 법률을 바꾸면 2년마다 이사 걱정에 마음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된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두고 혼자서 먼 길을 돌아가니 지치고 힘이 든다.


귀찮게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내 아이들, 아이의 아이들, 대대손손 그렇게 선택받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태계 위기, 에너지 위기, 사회안전망의 위기 등 크고 심각한 위기들을 혼자 힘으로 쉽사리 헤쳐갈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런 요구들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여러 엔지오들의 노력으로 성별이나 장애, 연령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니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면 내게는 그것을 바로 잡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허나 제 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그걸 실제로 써먹는 사람이 없으면 법은 도루묵이 된다. 계속 요구하고 일을 바로잡아야 법이 제 역할을 한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이 나라가 조금 더 정의롭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내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자.


베란다에 플라스틱 화분을 놓고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다. 바짝 말라버린 씨앗이지만 바람을 쐬이고 물을 줬더니 몇일 만에 푸른 싹을 틔웠다. 삭막한 아파트 베란다 플라스틱에서 생명이 자라난다. 생명의 힘은 이리도 질기고 강하다. 미리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내 속에 잠재된 정치의 싹을 틔워보자.


이 책은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첫 작품이다. 우리 각시는 내가 부러워하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 내 글에 맞추느라 그 솜씨를 살리지 못했다. 다음번엔 내가 우리 각시의 솜씨를 따라가면 좋겠다.


그리고 7월이면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난다. 솔랑이가 태어날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우리 부부에게도 중요한 과정이다. 함께 하면 좋겠다.


2010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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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시와 함께 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 드디어 나왔다.
냉소하지 않고 희망을 품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술들을 한 권에 담았다.
소위 무림의 고수들만 아는 비법들을 평범한 시민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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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들어가는 글


I. 정치란 무엇일까?

1. 짜증나는 정치, 바꿀 수 없을까?

        정치가 사라지면 살기가 편할까?

        기업이 정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

        정치 참여가 양극화를 막는다

        정치 참여가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II. 선거와 참여제도 활용하기

1. 선거를 제대로 치러볼까?

        선거 때 누구를 찍어야 할까?

        투표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들

        직업으로서의 정치?


2. 선거 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뽑은 사람들을 감시하기

        잘 못하는 정치인과 공무원 들을 괴롭히기

        정신 못 차리는 정치인들 쫓아내기

        내가 직접 조례를 만들기

        우리 동네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마을예산, 이렇게 쓸 수 없나?


III. 정당 활용하기

1.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깐, 당신들 당비는 내고 당원 하나?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당은 어떻게 당론을 결정할까?

        지구당은 왜 폐지되었을까?

        재미있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2. 정당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천과정을 바꿔보자

        정당의 돈줄을 잡아라

        선거제도부터 바꿔라


IV. 엔지오 활동하기

1. 엔지오란 무엇인가?

        엔지오, 넌 누구냐?

        엔지오와 시민단체는 뭐가 다를까?

2. 엔지오 고르기

        환상의 짝꿍 엔지오 찾기

        엔지오를 고르는 기준은?

3. 엔지오 활동하기

        후원하기

        자원활동하기

        단체 만들기와 지원받기

4. 엔지오 활동, 세상을 바꿀 수 있나?

5. 생활 속의 엔지오, 생활하면서 대안을 만든다

        먹으면서 바꾼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건강하게 바꾼다, 의료생활협동조합

        불안을 넘어 협동한다, 다양한 협동조합들


V. 여론 만들기

1. 웹2.0과 현명한 군중

        블로그는 소통이다

        우리가 바로 미디어다

2. 허튼짓은 이제 그만, 정보공개제도가 있다

        정보공개청구, 속살 파헤치기

        도전! 정보공개청구

        정보공개청구가 바꾼 제도 그리고 삶


VI. 직접 맞서기

1. 시민불복종하기

        복종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복종하지 않는다고 권력이 무서워할까?

2. 마을에서 동지를 모아볼까?

        우리 동네 예산은 어떻게 쓰일까?

        주민자치센터는 누가 운영할까?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생긴 일

        학교운영위원회 참여하기

        아마추어의 반란: ‘가난뱅이’들의 생존전략


부록: 권리 찾기 매뉴얼

1. 찾아보자, 내 권리

        세계인권선언의 권리목록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살피기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2. 내 힘으로 바꾸는 세상

        첫번째 고개-정보 얻기

        두번째 고개-공공기관이나 정치인에게 요구하기

        세번째 고개-정당과 엔지오를 활용하기

        네번째 고개-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압력 가하기

        다섯번째 고개-직접 나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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