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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2 불안한 시대를 떠받치는 오래된 희망(환경과 생명)
posted by 몽똘 2009.08.02 00:10

『축복받은 불안』(에이지21, 2009)이라는 책의 제목은 참 기이하다. 모두가 불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시대에 저자인 폴 호켄Paul Hawken은 불안과 축복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불안』은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책의 원제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약간 드러난다. 보통 ‘blessed ignorance’라는 표현을 ‘모르는 것이 약’으로 번역하듯이, 원제목인 ‘blessed unrest’는 ‘불안한 것이 약’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호켄은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고 인류의 삶의 불안해지는 만큼 그 위기와 불안을 바로잡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자연스레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지 않거나 믿지 못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현실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구를 살리는 아래로부터의 면역운동

 

불안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듯 호켄은 생태계 파괴에 맞섰던 브라우어와 카슨,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했던 파크스와 소로,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던 부족민과 이름 없는 사람들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 예를 들어 환경파괴기업을 감시하는 ‘파수꾼 단체Keeper group’, 기업과 프로젝트, 제도, 지역을 감시하는 ‘감시 단체Watch group’, 현장에서 직접 환경을 보호하는 ‘친구단체Friends organization’,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방어꾼 단체Defenders’, 기업광고나 홍보기업의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문화방해자Culture jammers’, 슬로우 푸드운동, 사회적 기업 등 수많은 운동들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사용한다. 세상이 위기에 처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운동들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호켄은 이런 운동들이 몸에 침입한 병균을 치료하고 몸을 회복시키는 면역체계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병에 걸리면 몸이 알아서 치료를 시작하듯이, 이런 다양한 운동들은 정치적인 부패나 경제적 질병, 생태계 파괴와 같은 지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나 팔과 다리, 가슴 등의 역할이 다르듯이, 이 운동 또한 각자가 관심을 두는 중점적인 의제에 따라 지구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런 운동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접속되어 불공정이나 부조리에 맞서는 힘을 더욱 늘리고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에 맞설 만큼 때로는 그 힘이 강력해지기도 한다.

과거의 경직된 운동과 달리 이런 운동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시민들의 필요와 지식에 의존해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흐름,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흐름,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흐름을 존중하고 그 흐름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호켄은 이 운동이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모든 인간에 대한 공평함의 필요성”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형태가 제각각이지만 호켄은 이 운동들이 환경보호, 사회정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토착문화라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얽혀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환경보호운동은 지구를 죽이는 병적인 정책에 대한 인류의 면역반응으로, 사회정의운동은 가족과 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경제적/법적 병원균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유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에 토착문화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호켄은 이런 세 가지 큰 흐름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라고 본다.

운동의 형태가 작고 다양하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호켄은 그런 회의적인 평가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운동이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고 사람들이 운동에 깔린 다양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운동이 실제로 활성화되고 있고 그러면서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고든 무어, 클린턴 같은 강자들도 기부금을 내거나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이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면역체계가 강해져서 지구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호켄이 책 뒤에 붙인 부록은 이런 가능성이 단지 공상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증거들이다.

다만 호켄은 “면역반응이 현재는 아주 많이 불완전해서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이고 “어떻게 함께 작용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질병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듯이, 이 운동도 분명 실패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호켄은 이런 운동이 성공하려면 ‘자아인식능력’, 즉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함께 모여 행동해야만 인류는 불안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과 행동, 소비행태를 바꾸는 과정에서만 자치와 시민의 힘은 치료되고 복원될 수 있다.

 

 

대안은 무수히 많다!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들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로 나서자고 주장하는 점에서 호켄의 얘기는 충분히 귀담아 들음직 하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호켄만이 아니다. 가령 에이프릴 카터April Carter는 『직접행동』(교양인, 2007)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소개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에 주목한다. 호켄이 아래로부터 다양한 운동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핀다면, 카터는 지구화라는 현상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이 어떻게 직접행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만날 수 있을지를 다룬다.

그리고 리처드 스위프트Richard Swift는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이후, 2007)에서 권력의 중앙집중화로 무기력해진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한 방법이 바로 ‘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생태민주주의가 개인의 욕망과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단초가 될 것이고 남반구 전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노력이 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을 것이라고 스위프트는 기대한다.

각기 다른 개념에 주목하지만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불안을 벗어나려는 풀뿌리 민중의 자발적인 투쟁과 그들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지구의 파괴를 막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리라 기대한다. 허울 뿐인 세계화나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에 매달렸던 헛된 꿈보다 지역의 고유성에 바탕을 둔 자치와 자급의 삶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대안의 부재보다는 대안에 대한 냉소나 무관심이 우리의 삶을 더욱더 위태롭게 한다.

 

 

여전히 이념은 필요하다!

 

그런데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는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해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인다. 카터가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하려 하고 스위프트가 자유민주주의를 강한 민주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면, 호켄은 그 질서에 강하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켄은 운동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토대를 다진 하이에크의 사상을 공진화coevolve의 관점에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듯이, 부조리하고 왜곡된 정치/경제 질서를 그대로 둔 채 다양성만 강조하는 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최상은 아니기 때문에, 자아인식능력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성장할 수 있다. 좋은 활동들의 리스트가 자동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피하려 하기에 호켄은 세계화가 작은 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성을 장려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가령 환경보호론자와 토착민이 정치적인 동맹관계를 맺어 “환경보호단체는 정치적 캠페인 조직경험이나 정부 및 언론동원능력 등 자원을 제공하고, 원주민단체는 조상들이 살아온 땅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라는 명분을 제공한다”면 환상의 콤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 이런 국제적인 역할분업이 분명 초국적기업의 나쁜 영향을 가로막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분업은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끔 한 세계의 불평등한 지배구조 자체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즉 지금 당장은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평생의 건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축복은 아직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고 불안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풀뿌리 민중의 투쟁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고 힘을 모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권력과 초국적 자본의 힘을 없애고 생명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가속화되고 있는 파괴의 흐름을,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삽질을 막으려면, 적절한 시간에 저항의 힘이 살아나야 한다. 호켄은 생태학적 복원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치워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듯이,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쉽게 복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인간의 면역체계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이념을, 전일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다양성과 활력을 상실한 건 사실이지만 역사를 거치며 누적되어온 그 희망은 여전히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오래된 희망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고 살리는 건 단순히 낡은 틀을 부여잡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한국의 경우도 맑스주의가 풍미했던80년대 이전의 다양하고 풍부했던 지적 전통과 다양한 운동들을 다시 평가하고 되살려야 한다).

물론 호켄이 이 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호켄 스스로도 웬델 베리의 말을 인용하며 여러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패턴을 위한 해결책solving for pattern’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시대는 축복의 길잡이가 될 좌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념의 시대는 아직 가지 않았고 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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