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다섯번째 낙동 순례를 시작한다. 지난 3월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뜨거운 여름 한철을 강가에서 보냈다.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낙동강 순례 홈페이지(http://nakdongkang314.org)도 만들었고 몇번 작은 모임과 행사에 참여했지만, 끊임없이 나를 출발선상에 세우는 것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만일 내가 본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면 눈이라도 빼서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라빛 낙조를 보여주고 싶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휘돌아 가는 물길, 물길을 거슬러 오는 바람, 저문 강에 떨어지는 달빛, 새벽 강가에 하얗게 오르는 물안개, 물가에 그림자를 놓는 수변의 숲들, 그곳에 깃들고 둥지를 트는 생명들, 흰 모래사장에 꼬리를 끌고 지나간 수달의 발자국, 허리 굽은 농부의 깊은 한숨, 그곳을 배회하는 외로운 맘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다.

녹색뉴딜,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자전거 도로, 생태공원 조성, 천년의 비젼 등 화려한 구호들을 귀가 아프게 듣건만 내 눈이 보는 것은 희망찬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의 것들― 무너지고 파괴되는 모습들뿐이다.

거대한 중장비들이 파열음을 내며 강바닥과 둔치를 파고 금빛 모래를 퍼 나르는 덤프트럭의 흙먼지 나는 행렬 끝에 서서 아우성치는 산하를 카메라에 담는다. 거미줄에 걸린 작은 물방울들을 담기 위해 열렸던 렌즈로 들이대기에는 너무나 섬뜩하고 슬픈 현장이다.

그래도 시집와서 60년 허리 굽혀 일하던 강마을을 떠나는 할매보다는 설움이 덜할 것이다. 할매는 집과 논과 밭을 모두 합해 8천만원의 보상을 받아 도심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를 한채 구입했다고 하신다. 평생 살던 터전을 떠나면서도 할매는 오히려 내게 물으신다. “아래로 내려가면 전부 강물을 땡겨서 먹고사는데 물을 가둬놓으면 물이 더 나쁘지 싶은데, 안 그래요?” 정부에서 연일 홍보방송을 해도 할매도 나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사람들은 그렇게 강변을 떠나가는데, 나는 낙동강가에 10년이나 비어있던 집을 얻었다. 지붕은 날아갔고, 서까래는 기울어졌고, 아궁이는 무너져 있다. 집주인은 집을 내주면서 너무 오래 비어있던 곳이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지만, 목수 딸이라고,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팔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막상 집을 만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일손을 거들어 주었건만 방 하나를 정리하는 데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니 아무래도 처마 밑이 그립고, 따슨 방에 나날의 피로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나처럼 강가를 배회하는 걸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너진 공간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다.  

경천대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낙동강 본류인 구담, 회룡포, 삼강, 경천대, 상주, 낙동, 서산, 구미가 한시간 거리이고, 낙동강 지천(支川)인 내성천, 금천, 영강, 병성천, 감천, 위천 역시 한시간 거리이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질 상주보와 낙단보, 구담보, 구미보까지가 모두 버스로 한시간 거리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

 

어찌 재앙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

천성산을 통해 나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국토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번도 천성산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없는 자들의 기술적인 잣대에 의하여 천성산은 무너지고 파헤쳐졌다. 천성산은 내게 우리의 국토가 처해있는 아픔과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기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천성산’과 ‘4대강’은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 사업의 실행 주체는 전혀 변하지 않은 하나의 연관 속에 있다. 17분 빨리 달리기 위하여 7조 이상을 퍼부은 고속철도 2단계 사업은 개통도 하기 전에 예상 수요의 1/3도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체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의혹과 부실투성이의 고속철도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고속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사장은 이제 국토부장관으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파괴와 파행의 책임을 정부와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지난 주말, 설악산의 단풍객이 5만이 넘었고, 해운대 광안리 불꽃놀이 인파가 70만을 넘었으며, 올 시즌 야구관람객은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오색 단풍의 풍광, 바닷가의 현란한 불꽃놀이, 운동장의 함성과 열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하지만 억만년 이어져 내려온 자연의 물길이 위험에 처해있고, 그 재앙에 대한 경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되고 있어도, 태어나 자라게 해준 국토가 겪는 아픔의 현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너무나 드물다. 단풍놀이를 즐기는 사람의 1/100, 불꽃놀이를 즐기는 인파의 1/1,000, 야구장에서 만나는 사람의 1/10,000이라도 강으로 걸음을 한다면 정부가 이렇게 무모하게 국토를 파헤치는 사업을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환경문제를 당사자와 시민단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비참한 국토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개발은 ‘국토의 과잉 관리이며, 과잉 관리는 자연을 친절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분은 외국인 기자였다. 그는 “한국의 최고의 인프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라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본 일이 있는 사람은 우리 국토가 얼마나 아름답고 비옥하며 풍요로운 곳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산을 영봉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등뼈로 13개의 정맥이 굽이굽이 줄달음하고, 그 정맥들이 품어 흘려 보내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요동치며, 11개의 큰 흐름으로 한반도 전역을 생명의 기운으로 채워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흐름들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어찌 재앙이라 아니 할 수 있을까.

 

청초호 매립단지로써 4대강을 보다

지난 9월, 네번째 낙동 순례는 속초에서 시작했다. 속초의 눈이라 불렸던 청초호 매립단지가 지금 어떻게 변해있는지 문득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수의 40퍼센트가 매립된 뒤, 청초호의 예전 아름다운 풍광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해안호라는 느낌보다는 도심의 인공호같이 보였다. 설악산의 장대한 산줄기는 즐비한 고층아파트의 화폭에 가려졌고, 울산바위의 웅장함은 철재탑에 가려져 있었다.

청초호 매립단지에서 보듯이, 정부가 진행하는 개발사업은 자연 자체의 효율과 그 풍요로움에 의지하기보다는, 파괴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지향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은 정작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오직 끝없이 달려갈 뿐이다.

 

나는 기록할 것이다

이제 남은 고민은 과연 이 역주행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업을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기업과, 권력과 금력으로 이 사업을 정당화하고 있는 정부가 한몸으로 결속된 상황 속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며, 질문을 던짐으로써 더 자주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함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않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강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가게 될 것이며, 강의 소리를 더 잘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현 정부는 4대강 개발사업을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에 대하여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무지를 내보임으로써 우리들의 무지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고 하였다. 지금 나는 한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업이 공론화되고 재검토될 때까지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직접 지켜본 파괴의 현장들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국토가 어떤 힘에 의하여, 어떤 논리에 의하여 어떻게 파괴되고 변화되고 있는지, 침묵의 방조자인 동시대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만간 올 뒷사람들에게 이 사업을 다시 평가받게 할 것이다.


  지 율 ―전 내원사 산감. 스님은 천성산 터널 공사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달라는 요구를 내걸고 다섯차례의 목숨을 건 단식을 마친 후, '2조5천억 국고 낭비설'을 유포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과 '나홀로 소송'을 진행해왔다. 또 한편, 낙동강을 순례하면서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벌써 벌어지고 있는 파괴의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참여연대 김민영 처장이 대표자로 '서울광장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1월 24일 현재 45,100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만 19세 이상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서명할 수 있습니다. 12월 19일까지 81,000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할 예정입니다.
아래 주소
http://www.openseoul.org/Signatures/sign 으로 가면 청구인으로 서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 55% 정도밖에 서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얼른 서명을 받아 참여연대로 보냅시다.

조례개정청구는 까다롭게 청구인 명부를 조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자 싸인하거나 도장을 받아야 하고, 주소지를 아주 정확하게 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 주시길...^^

나도 서명을 받아 보낼 생각입니다.
지난 토요일 서강대에서 열린 '한국사회체제론을 다시 생각한다' 심포지움에 다녀왔다.
체제론 블로그: http://socialsystem2009.textcube.com/

지금 한국사회의 상을 드러낼 치열한 장일 줄 알았는데, 논쟁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낡은 주장의 반복에 가까웠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97년 체제', '08년체제', '새로운 헤게모니 전략', '신자유주의'라는 말만 귀를 맴돌 뿐, 지금 우리가 부딪치는 삶의 단면을 드러낼 수 있는 날카로운 사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체제론'의 탈을 쓴 '선거전략'에 가까웠다.

심포지움에 참여했던 발표자, 토론자들과 나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첫째, 그들이 맑스주의적 관점에 서 있다면, 나는 아나키즘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자 했다. 과거의 낡은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라, 심포지움의 주된 논지는 국가를 전제하고, 그걸 진보적인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는 한국의 중앙집중성과 산업화전략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온 구조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체시켜야만 진보적인 발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공동체를 택한 건 그것이 작아서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만 국가를 해체하고 자치,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자치, 자립의 기반을 강조했던 건 불쌍한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포지움에 참석한 사람들의 생각은 '민중과 함께'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불쌍한 노동자, 불쌍한 비정규직, 불쌍한 빈민을 위해서 진보정치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결코 진보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결국 자신들의 진보적인 구상으로 민중들의 삶을 끼워맞추는 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점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심포지움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한국사회를 분석할 거대담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거대담론은 그냥 크기 때문에 거대담론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크기 때문에 우리 삶과 더욱 밀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검사비용을 무료로 만들고 타미플루를 무상공급한다고 해서 '신종플루'의 공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주장을 진보적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조류독감, 신종플루로 이어지는 새로운 질병은 기존의 생태계 질서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구조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위기, 식량위기, 생태계위기라는 엄청난 해일 앞에서 왜 공동체가 희망의 대안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담론이 필요하다.
그 거대담론은 우리 삶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파괴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면서도 우리가 그 파괴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겨울방학이 오면 그 담론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1. 보스코프스키 2009.11.16 18:40

    많이 답답하셨지요.... 일단 소개블로그는 방문해보겠지만 하 선생님 제외한 상대편 사람들은 맑스주의는 아닌 듯 합니다. 전직이겠지요. 지금은 포기한. 다른 증거로 진보진영 내의 근본주의자들은 안 보이네요. 예를 들어 김성구 교수(한신대)와 같은.
    답답하게 보인 건 토론회가 선거전략 밑에 들어간 그야말로 의회주의와 계서주의 항목에 포위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제목 부터가 '체제론과 선거전략'인거 보니 선거를 전제로 한 체제론 논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몽똘 2009.11.17 19:55

      제목은 선거전략이 아니구, 한국사회체제론이었답니다.^^

    • 보스코프스키 2009.11.18 18:01

      이런 포스트 제목을 토론회 제목으로 잘못 봤군요...
      답답하게 보인 원인 또한요... 아마 답답하게 보셨다면 상상력을 상실한 죽은논의라 그랫을 겁니다.

고대에서 무기정학을 받은 학생들의 탄원서이다.
지금 고려대를 운영하고 있는 자들은 참으로 지저분한 이들이다.
이명박의 모교라 그런가, 왜 그렇게 충성경쟁을 하는지...
아니면 제 2의 이건희 사태를 막기 위해서?...
어쨌거나 재판이 잘 되면 좋겠다.
탄원서가 필요하신 분들은 다운을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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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정학 무효 확인을 위한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올 해 3월 고려대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소급적용 받은 7명은 2년간 의 고생 끝에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거의 마쳐가는 학생들이거나 이제 겨우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청년들입니다. 저희는 이번 무기정학 처분이 이미 출교·퇴학 징계로 2년이나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생한 사람들에게 또 다시 큰 해를 끼치는 징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7명의 청년들은 학교당국의 잘못된 징계결정 때문에 학업 및 사회진출에 차질을 빚었으며 2년간 천막농성장에서 생활한 덕분에 여름, 겨울 다 보내며 허리, 무릎, 피부 질환을 얻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잘못을 했다손 치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은 고통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7명의 학생들이 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이 끝까지 학생들에게 ‘중징계’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이미 졸업한 교우들을 다시 소환해 징계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증인 심리 결과를 들어보아도, 학교 당국이 학생들을 징계를 할 때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나 학생들이 자신을 소명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졌는지 등이 불분명해 보입니다. 2006년 4월 19일 본관에서 벌어진 시위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재판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미 법원에서 “[학생들의 패륜적 행위에 대한] 학교 측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고, 출교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가벼운 징계[견책 1주일, 유기정학 1개월]를 받은 학생들이나 징계하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시위] 가담 정도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며 징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미 학업과 취업에서 2년간이나 뒤떨어진 7명 학생들 개인의 어려움과, 큰 고초를 함께 겪었을 부모님들을 생각해서라도 끝이 없는 소모적 갈등이 중단될 수 있도록 올바른 결정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름 :

소 속 :

연락처 :

서 명 :

*탄원서는 다음 방법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스캔한 후 이메일(runkustu@hanmail.net)로 보내주십시오.

(2) 스캐너가 없으신 경우, 연락 주시면 받으러 가겠습니다.(연락 : 010-4454-3153)

 

*11월 4일 공판 이후 곧 판결이 날 것 같습니다. 판결이 나기 전에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다음 주인 11월 13일 이전까지 처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봉시민네트워크에서 나눴던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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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풀뿌리민주주의는 가능할까?

   

1. 2010 풀뿌리민주주의

 

1) 2010년의 정국은?

-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 5월 23일. 중앙정치 이슈가 지역의제를 압도할 가능성이 높음.

- 4대강사업, 행정구역통합 등 각종 사업들이 대기하고 있음. 예전 관행을 볼 때 지역별로 각종 개발사업들이 패키지로 공약될 가능성이 높음.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운 개발사업들도 쏟아져 나올 듯.

- 자립과 자치를 모색하는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음.

 

2) 2010년에는 선거만 있나?

- 한일합방 100주년, 4월민중항쟁 50주년, 5월 광주항쟁 30주년. 95년 단체장선거 실시 15주년 등 여러 기념일들.

- 2010년 한 해를 선거만 준비하며 보내야 할까? 4월, 5월의 흐름을 이어 6월의 정치운동, 2011년을 기획하는 운동으로 나아간다면...

 

3) 그래도 선거는 중요하잖아...-.-;;

- 2006년 5․31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48.9%)보다 높은 51.6%. 정당득표율은 한나라당이 53.8%, 열린우리당이 21.6%, 민주노동당 12.1%, 민주당 9.9%를 기록. 16개 광역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2곳, 열린우리당이 1곳, 민주당이 2곳을 차지. 230개 기초단체장 중 한나라당이 155곳, 열린우리당이 19곳, 민주당이 20곳을 차지. 733명 광역의원 중 한나라당이 557곳, 열린우리당이 52곳, 민주당이 80곳, 민주노동당이 15곳을 차지. 2,888명 기초의원 중 한나라당이 1,622곳, 열린우리당이 629곳, 민주당이 276곳, 민주노동당이 66곳을 차지.

- 전체 당선자의 성별을 살펴보면, 남성이 86.3%, 여성이 13.7%. 광역단체장 16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고, 230개 기초단체장 중에서도 여성은 불과 3명.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선거에서도 여성의원의 당선비율은 각각 4.9%, 4.4%. 대부분의 비례. 지역구 여성 지방의원 비율은 4.26%. 진보정당 진입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적 계층, 계급, 성별 구조가 제도정치에서 대표되고 있는가?

-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당선,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민주당 1명, 진보신당 1명, 무소속 후보 3명 당선, 경기도 시흥시장도 민주당 후보.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서울시 광진구에서 한나라당 후보 1명이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강원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전라남도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 구시군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1석도 얻지 못했고 민주당이 2석, 민주노동당이 1석, 무소속이 2석을 차지.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 선거들을 통해 진보세력은 단결했는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운동은 반MB후보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를 위한 공동후보를 결의할 수 있을까?

 

4) 선거란 무엇을 하는 공간일까?

- 선거는 당선되기 위한 공간. 그러면 낙선되면 모든 게 끝일까?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낙선가능성이 당선가능성보다 매우매우 높다. 그렇다면 선거에 왜 나갈까?

- 선거 때 당선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평상시에 지역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선거 때의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해서 4년 동안 활동한다면...

- 어차피 낙선할 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발언을 하기 위한 공간,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일본의 열혈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 기가 막혀……부러워 침이 다 나오네! 빌어먹을! 잠깐만!? 그럴 게 아니라 입후보해서 직접 해보면 될 것 아냐? 어라, 뭐라고라고라? 마침 그때 선거철이 다가왔기에 주저 없이 입후보를 하기로 했다. 2007년 4월 22일에 투표하는 스기나미 구의회의원 선거였다. 말할 것도 없지만, 금배지가 탐나서 선거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길거리를 우리 것으로 탈환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도해본 것이었다.…나는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벗대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동네 토박이나 유지들한테 잘 보이려고 손바닥을 비빌 필요도 없다.…하여간 이 기간에는 기본적으로 역 앞이든 어디에서든 언론 활동이라면 무엇을 해도 군소리가 없다, 이거다! 이런 해방구가 어디 있을쏘냐? 더구나 선거활동은 공짜로 할 수 있으니까 돈 걱정도 없다.…중간중간에 “가난뱅이가 설치면 매일 축제다, 축제야!” “따분한 이 세상, 얌전하게 살 줄 알고! 가난뱅이의 본때를 보여줄 거야!” 등 마쓰모토 후보의 ‘가두연설’도 섞어 넣었다.…소동은 소동이고 선거는 선거다. 투표일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다음날 개표 결과가 나왔다. 1,061표를 얻어 떨어졌다. 당선하려면 2,000표 이상을 얻어야 하는데 절반 정도 표가 나온 것이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지만, 공탁금 몰수 라인인 400표는 넘겨(넘기지 못하면 사전에 걸어놓은 30만 엔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빌어먹을 규칙)작전은 대체로 성공리에 끝났다.…여하튼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투표소까지 찾아갔다는 것은 대단한 현상이다. 난 평범한 재활용 가게의 손님들이 내게 표를 찍어주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언제나 책장이나 냉장고를 사주는 아줌마 집에 배달하러 갔더니 “점장한테 한 표 찍었어!”하시는 거였다. 또 이웃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우리 가족 전부 마쓰모토를 찍었어”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 그래도 선거가 중요하다면 주민들의 책임서명 운동을 하면 어떨까?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뽑은 책임을 지고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서명운동. 선거감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가 스스로 결의하고 동네 일에 참여하겠다는 공정선거운동...

 

 

2. 2010년을 바라보는, 주민들을 만나는 단체활동가들의 역할

 

1)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야...

- 당선자는 행복했을까? 그나마 당선되면 노련한 지역 활동가가 사라지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지역정치인이 생기는 장점(?). 허나 지방의회에서 소수파로서 그다지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고 개인적인 야심에 따라 활동영역을 광역, 국회의원 등으로 넓히다보니 정작 자기 기반이 약해짐.

- 단체 후보를 당선시킨 단체는 행복했을까? 출마 후 지역단체들의 활동영역과 지역정치인의 활동영역이 괴리되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하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음. 단체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도움을 못 받는다는 불만, 정치인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소수파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

- 선거를 통해 민중권력을 창출했다? 새로운 지역비전을 만들었다? 과거 울산의 경험을 보면 그런 평가는 불가능하다.

- 보수정치인들은 모두 바보다? 한나라당에서 공천받아 출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공천권을 딴 사람들일까? 그들은 지역기반도 없이 한나라당에 기생하는 사람들일까?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관변단체 출신이라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우리는 적에 대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반면 우리 활동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 과거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임파워먼트(개인적 임파워먼트와 조직적 임파워먼트)를 강조했다. 왜 그럴까?

 

2) 정치에 상상력을!

- 정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구조를 개혁할 뿐 아니라 권력을 주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정치권으로 투신하고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것, 분명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치세력화는 더욱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실현된 적이 있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 걸까?

-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것보다 선출되고 난 뒤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 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을 강조한다. ‘대리인 운동’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리인만큼 중요한 것이 상호성장이라고 본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든 그 속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 제도권 밖의 운동이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고민에 활력을 제공하는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체계가 있어야 정치세력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 선거는 승리하든 지든 지역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서로 치유할 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있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은 없나?

- 선거에 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는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정치화되고 정치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저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다. 정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주민운동에 요구된다.

 

3) 바이러스가 되자.

- 바이러스는 왜 무섭나. 바이러스는 종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불가능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언제나 변종을 만들어 낸다. 항상 정통과 순수를 고집하는 우리 문화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활성화시키는 문화적 균열을 만들어내야 한다.

- ‘나는 한 놈만 친다’는 주유소습격사건의 정신을 가지자. 끝까지 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바이러스가 되자. 주민들 한명 한명이 자기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게 하자. 우리 사회는 이런 정신이 부족하다. 미국산쇠고기 수입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 정치적 중립성은 포기하자. 특정 정당보다 특정 정책을 지지하면 부담은 줄어든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만들려면 내 자신 스스로가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나는 진정 정치적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정치적 바이러스인가?

- 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법의 활용. 정치적 기회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야. 스스로 움직이고 증식하고 복제하는 바이러스가 되자. 바이러스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라 싫으면 백신이 되자...^^;;

 

4) 소위 진보정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하자!

- 시민단체는 정치적으로 엉거주춤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지만 진보정당은 분명한 입장을 나타낼 수 있다. 시급한 것은 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 특히 균형발전에 대한, 지역정치에 대한 당의 입장을 요구하자. 진짜 민중권력인가?

- 국회에 진출한 자원과 지역의 연결가능성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하자. 즉 아젠다 형성과 정책연관성을 살리고 법률과 조례가 결합하는 중간매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선서를 받자.

- 지역 내에 이미 마련된 풀뿌리 인프라에 대한 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역의 자원이 겹칠 경우 당은 자기정당 후보의 당선을 고집할 것인가? 정당공천제를 팔아 자기 이익을 꾀하는 정당이려는가?

- 정당공천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단체가 함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negative한 전략이 아니라 positive한 전략으로 자치정책의 가능성을 제안하자.

- 안 하면 친하게 지내지 말자...^^;;

 

5) 지금부터 지역사회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하자!

- 계획을 짜는 사람들은 바로 주민이다. 우리 지역사회의 자원, 기술, 문화, 지식, 절차를 찾아내자.

- 진보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이런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자. 4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도 로드맵을 짜보자. 중간중간 평가과정을 거쳐 못 하면 혼내주자.

- 지역단체들이 내년 선거에서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그 내용을 분명히 만들고 선거가 끝난 뒤가 아니라 2010년 말에 평가하자. 선거에서의 목표는 당선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정책, 청소년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의제들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순환되도록 하자. 단순히 선거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를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자.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회계보고서’처럼 주민조직의 ‘생활정치보고서’를 만들어도 좋을 듯. 그러면 4년마다 형식적으로 선거를 준비하지 않고 조금씩 축적된 역량을 갖출 수 있을 듯. 이번 선거 시기에는 이것을 이슈화하고 다음 번에는 다른 것들을...

 

 

3.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 정치 사례

 

- 다른 나라 얘기는 지겨우니 그만 하자. 그래도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자.

-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교과서는 마치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이 이 저항을 일으킨 양 묘사하지만 3․1운동은 민중의 거대한 꿈틀거림이었다. 자신이 자주민(自主民)임을 자각한 민중은 그 이후 60일 동안 1,214회의 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가 박은식에 따르면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200여 만명이 참가했고 그 중 7,509명이 사망하고, 15,850명이 부상당했으며, 45,306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조선총독부는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하고 12,00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다). 독립선언서가 이 운동을 자극했을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물결을 움직인 힘은 민중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왔다.

- “안성의료생협 이사회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상당히 보수적이거나, 협동적이지 않거나, 민주적이지 않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3년 혹은 6년 이사회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적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분들이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난 후, 지역사회 농협의 이사가 된다든지, 농협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 된 이사를 중심으로 해서 서포트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든지,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안성의료생협의 한 실무자 인터뷰 중.

- 부산의 한 지역에서 아주머니들과 지역신문을 만들 던 G씨는 저녁에 편집회의를 할 수 없었다. G씨를 제외한 전원이 주부였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모임 중에 서둘러 집에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에 G씨는 남편들을 참여시키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남편들을 일일이 만나기로 하였다. G씨가 선택한 방법은 남자들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 온 저녁 시간마다 소주 몇 병씩을 사들고 이들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1년 정도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마을의 남성들과도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에 따라 G씨와 자신의 아내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이들은 마을 일에 대한 적극・핵심 참여자가 되어 있다.

- 강원도 원주시에는 전체 30만 인구 중에 2만 명 이상이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전체 자산규모가 4천여 억원에 이를 만큼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다수의 협동조합들이 건설되고 조합원 수가 늘어나는 현상과는 별개로 지역사회는 점차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여타 지역의 상황과 그리 차별적이지 않았다. 이는 협동조합의 사업적 성과가 지역사회로 연계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에 원주지역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협동조합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대안적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별 협동조합의 발전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협동조합의 철학과 원칙에 따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여 <원주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주민참여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생명의 도시에 걸맞게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구조를 만들며, 협동경제의 이윤을 지역복지 개선을 위해 환원하는 등 진정한 지역공동체 건설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에서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시기에 복지정책를 주요한 정책적 이슈로 제기하기 위하여 시장후보들에게 제안할 구체적 복지정책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천안의 복지기관 및 단체들에 네트워크를 제안하였다. 정책 제안은 각 복지기관 및 단체들이 자신들의 복지영역에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고 이것을 전체가 모여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천안을 복지세상으로 만드는 33가지 방법’이란 정책제안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제 복지기관 및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차기 시장에게 관철하기 위하여 가능한 많은 주민들을 이 토론회에 동원하였고, 결국 사회복지라는 단일 주제에 따른 토론회에 1,000명 이상의 유례없는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였다. 이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장은 이들의 주장 대부분을 정책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같은 성과가 발생하자 보다 많은 사회복지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으며, 다음 선거인 2006년 선거를 대비하여 <531지방선거 복지천안을 위한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지난 번 선거에서 이 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한 참여 주체들은 이때에도 사회복지 예산, 지역복지인프라, 아동보육 등 모두 9개 영역 23개 의제를 확정하여 900여명이 참여하는 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두 번의 성공적 사례는 천안시로 하여금 이 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내용에 무게를 싣도록 하였으며, 현재에는 천안시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 성공한 사례, 실패한 사례 모두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사회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모범답안은 없고 해법은 밖에 있지 않다.

경희대 대학원보에 쓴 글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좀 드러내보려 했다.
어쩌면 드러난 명박이보다 그것의 실체 없음, 사람들의 생각하지 않음이 그 실체일지 모르겠다는 추측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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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족족’ 검거하기 바라고 설사 인도에 산재되어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해 주길 바랍니다. 검거위주로 해서 시위대를 좀 많이 잡아야 돼”, 시위대를 보면 무조건 쫓아가서 잡으라는 경찰의 섬뜩한 무전내용이다. 그런데 이 무전의 시점은 과거 군사정권 때가 아니다. 2009년 5월 촛불 1주년 집회 때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일선 경찰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런 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단체들은 불법폭력시위단체로 규정되어 정부지원이나 기업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국가브랜드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집단이기주의로, 철거민들은 도심 테러리스트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기도 했고, 군조직인 기무사가 움직인다는 소문도 솔솔 퍼지고 있다. 또한 정부는 새로운 저항의 양산박으로 떠오른 인터넷을 저작권법,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각종 법들로 규제하려고 들고 있다.

정부에 반대하기 때문에 사회의 악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은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아니기에 더 이상 정치는 필요 없다. 이렇게 정부의 억압이 강해지고 정치가 사라지면서 ‘파시즘’, ‘파쇼’, ‘전체주의’같은 단어들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면이 공포의 전부는 아니다.

 

플루토크라트와 대중의 공포

 

옆 나라 일본에서는 불안을 뜻하는 precarious와 노동자를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인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는 말이 유행이라 한다. 미래를 계획하며 삶을 준비할 수 없는 비정규직/일용직 시대,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승자독식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는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불안을 나눠 갖는 건 아니다. 금권정치(金權政治)를 뜻하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나라, 한국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재벌 총수들은 줄줄이 사면되고 파업노동자와 촛불시위대는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는 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가 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의 몸부림이 떼잡이로 낙인을 찍히는 나라에서는 공포도 사람을 가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함을 견뎌야하는 대중은 자기 삶을 틀어쥔 금권정치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만한 경쟁력을 갖추는 ‘미션 임파시블’을 강요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도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건 권력의 무서움보다 삶의 가벼움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폭력적인 이명박 정부보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나 철거, 실업, 비참한 상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20년대의 대공황과 혼란 역시 사람들에게 이런 두려움을 줬다. 그리고 그 시대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를 출현시켰다. 이 체제는 수많은 유대인, 집시, 빈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를 쓴 힐베르크(R. Hilberg)의 표현을 빈다면) 독일인의 일상을 ‘파괴기계’로 만들었다.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Eichmann)의 인상은 피에 굶주린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이자 옆집 아저씨였다. 악마는 사악한 의도를 가진 범죄자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협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숨은 악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사람을 생명이 아니라 사물로 대하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불확실성의 생존경쟁, 전체주의의 작동방식

 

사실 그 원인을 분명하게 알면 사람들은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화장실의 귀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공포스러운 건 그것이 우리 일상 속에 잠재해 있을 뿐 아니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모르는 공포, 규칙도 합리성도 없는 공포, 그런 점에서 바우만(Z. Bauman)은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에서 불확실함이야말로 공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얘기한다. 정체를 모르기에 맞서 싸워볼 의지조차 품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공포이다. 그리고 그런 공포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벨트를 단단히 차고, 한층 더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홀로 남겨지는 공포, 추방당하는 공포”야말로 공포의 최고봉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가장 큰 특징이 비밀경찰이나 친위대같은 폭력적인 국가기구보다 ‘무정형(無定形)의 지배구조’라고 지적했다. 공무원과 정당, 정당 밖의 돌격대 등 여러 세력들이 제각기 지도자의 뜻을 받들고 있다며 주장하고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용산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4대강 사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지도자의 의지는 모든 곳에서 언제나 구현될 수 있으며, 지도자는 어떤 위계질서에도, 심지어 그 스스로 구축한 것에도 묶이지 않”는 사회가 바로 전체주의 사회이다.

더 나아가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불러오는 공포에 대한 오해도 지적한다. 전체주의 공포정치는 정치적인 반대파를 제거할 때가 아니라 그들을 제거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공포정치의 필수품인 숙청과 비밀경찰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파가 사라지고 난 뒤에 등장하고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감시한다. 이들은 국가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객관적인 적’을 규정하고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를 만든다. 지목된 용의자들은 갑자기 ‘수용소’에 갇히고 이 사회에서 사라진다(올 10월 7일 정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던 이주노동자 미누가 잠복해 있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들에게 갑자기 표적단속되어 추방을 기다리고 있듯이).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용의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은 서로를 고발하며 충성을 증명하고, 그렇게 서로에게 죄를 지으며 그 체제의 공범자가 되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 정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다한다. 전체주의는 모래알처럼 분리된 대중에 의해 힘을 얻고 그렇게 지속된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무서움은 드러난 억압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서로를 불신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눈에 드러난 독재자보다 형체 없는 지배가, 승자독식의 파괴적인 사회에 홀로 버려져 있다는 대중의 두려움이 전체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공포와 희망의 변증법

 

허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암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언제나 시민들의 수많은 저항이 강력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왔다. 현실세계의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 진지를 구축하고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공포에 시달리지만 그 공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의 뿌리를 내리려 한다. 억압을 감내하는 능동적인 정치행위와 동료 시민에 대한 믿음․연대는 전체주의 체제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희망을 퍼트리고 공포를 몰아낸다.

하지만 단지 눈에 보이는 정치인을 바꾸거나 정권을 바꾸는 것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형체를 드러내고 승자독식의 경쟁구도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공포의 정치는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다스리는 삶의 기반을 다질 때에만 우리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가장 급한 과제는 모래알처럼 분리되어 적대적으로 경쟁하는 대중에서 벗어나 서로 보살피고 협동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공포를 희망으로 만들 변증법의 힘은 서로의 고통에 슬퍼하고 연민하는 시민들의 소통과 공감, 울림에서 나온다. 의심을 거두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희망이 쌓인다.


  1. 보스코프스키 2009.11.16 18:30

    전체주의라는 말은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쨋다구'이후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물론 후지다 쇼오조오 선생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등 은 이전 출간 도서고요... 소개 도서의 한나 아렌트 저서의 왜곡 사용에 기인한 것인데...
    적절한 제목으로 '공포의 통치술, 현대사회의 운영원리' 를 추천 드립니다.
    아 슬라보예 지젝 도서와 같은 연속물(씨리즈; 이음풀빵)로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 있습니다. 이 도서도 일독 부탁 드리고 갑니다. 바우만을 언급하셨길래 추천 드립니다.

    • 몽똘 2009.11.17 20:22

      음, 지젝의 책이 아렌트의 글을 근거없이 비난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전체주의라는 맥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그건 쇼오조오 선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구요. 바우만의 책은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그럼...^^

한국사회에서 인사청문회는 평범한 시민들이 평소에 보기 드문 힘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기회는 언제나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만을 심어줬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아무런 의혹을 받지 않고 공직을 맡은 사람이 단 한 사람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의혹이 제기된 분야는 다양하지만 하나 같이 일반 시민들은 벌이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자녀들의 병역이나 국적의혹, 편법증여 등 인사청문회장은 ‘위법과 탈법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런 의혹이 문제일 수 있는데 하물며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사람들이 그 모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내성이 생겨서인지 사람들은 이제 크게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장관후보자를 여당이 감싸고 야당이 물고 뜯는 지겨운 광경을 봐도 이제 시민들은 원래 그러려니 한다. 장관들의 위장전입 정도는 눈감아 줄만큼 마음씨 좋은 시민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그 옛날 공화국을 만들었던 시민들은 정치인의 부패를 가장 경계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말 큰 걱정은 그런 부패가 일반 시민들에게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화국의 시민들이 법을 우습게 여기며 지키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되뇌는 순간 그 나라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법치주의는 시민들의 상식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들의 굴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인사청문회는 시민들이 부패를 학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청문회장에서 공직자들은 자신의 부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사과만 하면 되는 사소한 일로 여긴다. 심지어 오리발을 내밀거나 그게 무슨 죄냐며 위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패를 능력으로 여기거나 그것에 무감각해진다. 생중계로 목격하고 재방송으로 복습하면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혐오감을 배우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치나 민주주의가 꽃을 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인사청문회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여러 정당들에서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내세우는 명분이야 다양하지만 정당들의 속마음은 이제 웬만한 흠집을 덮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공직을 맡을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검증과정을 거치고 그나마 가려주니 이 정도이지 정말 모든 걸 공개하면 우리는 아사리판를 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만 가득한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차지하고 있고 시민들이 이를 묵인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이럴 바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차라리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거짓말로 일관하고 제대로 검증할 생각조차 없다면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부패와 거짓말을 학습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일은 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대신에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 그 공로와 과실을 엄격히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을 담당했던 사람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옛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에는 감사위원회가 있어 임기를 마친 공직자들의 정책결정을 법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그래서 사사로이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고 엄하게 법적으로 처벌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인사청문회를 열든, 감사위원회를 만들어 사후평가를 내리든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레디앙에 글이 실린 뒤 경향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독한 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데,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비슷한 얘기를 하승수씨는 '착하게' 썼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1830)
당분간 시민운동과 '다소' 불편한 관계로 지내야 할 듯...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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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국정원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개입하거나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기업들을 뒷조사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지난 6월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가 그러한 소문이 사실이라 밝히자, 국정원은 국가가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유례없는 해프닝을 일으켰다. 이에 박원순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은 최근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이 개입했던 여러 가지 정황을 밝히며 민주주의의 후퇴에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이번 일이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나 시민단체의 대응을 보며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왜냐 하면 박원순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목소리가 한국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기자회견문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를 떠난 뒤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새로운 운동영역을 개척하려 했다고 밝혔다. 기부문화와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 등을 한국 시민사회의 화두로 만든 것은 공이라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박원순 변호사가 그 영역을 언급하기 전에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밥할머니로 대표되는 기부문화가 있었고, 아름다운 가게 전에 녹색가게가 있었으며, 많은 풀뿌리 단체들이 자기 마을을 지켜왔다.

그런데 운동의 아이콘이 만들어지면서 ‘자원의 집중화’가 이루어졌고, 몇몇 단체들이 시민사회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이 기존의 운동과 보폭을 맞춰야 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정부와의 파트너십이나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양적인 성장’을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건드린 부분은 박원순 변호사의 ‘약한 고리’였다. 기자회견문을 찬찬히 읽어 보면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와 전면적인 싸움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만일 국정원의 활동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이 기자회견은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 마련되었을 것이고 고발 전에 사례가 공개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기자회견은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나 저항운동’보다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번 소송에 많은 기대를 걸고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책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실 시민단체들의 성명서에서 나오듯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조차도’ 정부를 비판했다가 큰 코를 다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은 활동가들은 그동안 어떤 고초를 겪었을까?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각종 고발과 벌금형에 시달려 왔다. 갖은 시련을 견디며 민주주의를 일구는 것은 대표선수만의 몫이 아니었다. 대표선수들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나설 자리는 아직 마련될 수 없는 것일까?

국정원의 한심한 짓을 통해 우리의 시민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좋겠다. 결자해지의 지혜를 기대한다.
  1. 보스코프스키 2009.11.19 19:17

    최원씨께서 이 글을 소개하셨네요... 조희연 교수(http://dnsm.skhu.ac.kr/ )와 토론하면서 언급하셨습니다. 한국사회구성체인가 하는 블로그의 소개 기사로 알았습니다.
    단 숀 쉬한(우리시대의 아나키즘)과 유사하게 마르크스(주의)의 아나키즘 성향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있긴 하네요... 그리고 바쿠닌에 대한 서술이 사실과 판이하고요...

    http://socialsystem2009.textcube.com/7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976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985

    • 몽똘 2009.11.19 21:20

      제가 쓴 맥락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곳에 인용해 놓았군요. 필요한 부분만 따다 쓰는 건 기존 좌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하군요. 흠흠...


몇일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장원의 고발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은 이미 전문으로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발표되었으니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7125625&Section=03)

국정원이 주요한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들리는 소문이 아니니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국정원이 국가를 내세워 민간인에게 명예훼손을 빌미로 고발한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박원순 변호사의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시민사회진영이 조금씩 단결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박원순 변호사가 흘린 눈물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다른 애기를 한다는 게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행동에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박원순 변호사가 '절반의 진실'만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전에 따르면 진실은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름'을 뜻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거짓 없이 얘기했지만 참되고  바르게 얘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자회견 내용에 관해 최소한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박원순 변호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활동해 왔다.

"저는 참여연대를 떠난 이후로는 정부 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을 맡겨놓고 나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박원순 변호사는 실제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운동과 거리를 두어 왔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이슈와 운동에 관심을 두고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활동을 평가할 때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기존 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주로 자신이 주도했던 참여연대나 총선시민연대의 관점을 따랐고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아주 독선적인 자세로 대했다. 예를 들어, 하종강 선생의 글을 보면 박원순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드러난다(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read&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

그러면서도 박변호사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비자금에 면죄부를 제공하는 사회공헌위원회에 선뜻 참여하기도 했다(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15586). 한국의 재벌들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찬성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내용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가령, 삼성처럼 노조조차 금지하는 재벌이 회장의 비리를 면죄받는 조건으로 수천 억원을 내놓는다고 할 때, 그것을 기부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삼성이 진정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면 그룹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제대로 처우하고 노조를 설립하는 게 진정한 사회공헌이 아닌가?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 내의 노동조건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듣기 못했다.

이런 자세는 운동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듣는 사람이 불쾌할 수 있지만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자세가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실련>이 시민운동을 내세우며 기존의 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을 때 운동간의 연대는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그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더 심각한 점은 시민운동이 소수의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창안과 상상력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시민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고 그런 영역을 선점해 버렸다. 나는 그것이 일정 정도 스스로를 옥죄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실 기자회견 전문을 볼 때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의 내용은 부당함에 대한 항의이지 그 부당함의 원인에 대한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지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알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가야 할지 판단하는 역할은 그 자신이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그를 좋아하거나 그의 실용적 정책이나 의견수렴을 좋아할 생각이 없다. 용산참사는 200일을 넘어섰고 내가 아는 인권활동가들은 상습적인 벌금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착한 이명박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셋째, 박원순 변호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역홍보센터나 하나희망센터, 아름다운 가게 건, 민간단체의 인사에 국정원인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이한 세력들이 관여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던 내용들이다. 지금 시대에 국정원이 그런 곳에 실제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기자회견 전문을 읽으며 걸렸던 부분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위치도 있고 충분히 그것을 문제삼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왜 이제서야 그 문제를 폭로하는 가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의 개입을 언급한 시점은 올해 6월 23일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드러난 정황만 봐도 지역홍보센터 계약해지 시점은 올해 2월이고, 하나희망재단이 부결된 것도 올 1월이다. 그외 박원순 변호사가 개인사찰이나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탄압으로 얘기한 사례들도 대부분 올 5, 6월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특히 올해부터 개입을 일삼았다는 얘기일까?

친박연대가 국정원의 사찰을 얘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왜 그동안은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작년부터 심심찮게 국정원의 정치사찰 얘기가 나돌고 국정원법 개정이 논란이 되었는데, 왜 그 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한 사람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건 더욱더 위험하고 운동을 망치는 일이다. 다만 이번 기자회견이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운동'보다는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듯 드러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의 내용을 문제삼아 박원순 변호사가 '큰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단 역시 그리 달갑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한 개인의 영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박변이 개입했으니 일이 좀 되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운동이 싸워온 그 모든 내용이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으로 드러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벌금형과 수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냉소와 무시 등에도 굴하지 않고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개인적인 부조리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운동의 '선배'라면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 나는 선배들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고, 설령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면 그 성과를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그런 역할을 다하는 '진정한 선배'를 중앙의 언론에서는 보지 못했다.

  1. 몽똘 2009.09.22 08:24

    정치사회비평으로 보냈더니 이 글이 돌고돌아 [레디앙]에 실렸다. [레디앙] 특유의 편집 덕분에 '까는 글'이 되어버린 듯. 허나 모든 글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그곳의 분위기인 듯하다. 어떠한 글도 그곳에 가져다놓으면 어색해지는...

    • 창림 2009.09.22 09:59

      여튼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아침부터 뒷목이 뻐근해지네요.
      동네에서 공부를 좀 할까하는데 안내해주심이 어떤지...


13일 장애민중연대 현장활동단이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장애운동에 잘 모르는 내가 강연을 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쪽이 내게 강연을 부탁한 건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실은 대학의 공공성과 관련된 글 때문인 듯하다.
어쨌거나 강연을 소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김도현씨나 제법 친분이 있는 단체인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장애운동에 대해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장애운동을 공부할 때 가장 좋은 입문서는 도현씨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인 듯하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보지 않고, 장애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설명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장애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해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장애인을 장애우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여성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여성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장애인 내부의 다양한 차이,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서는 안 되는 이유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장애운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97년 에바다 사건 때부터 장애운동을 해온 도현씨의 내공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쨌거나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도 여전히 내용은 부실하다.
허나 앞으로 장애운동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하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대강의 강연문을 작성해 봤다.
앞부분은 사람에 쓴 글을 약간 수정했고, 뒷부분은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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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의 다른 기원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취업시장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당시 교단의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종교해석에 도전해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은 몇몇 뛰어난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를 만들려 했습니다. 초기 대학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토론 공동체’라 불렸다. 그러니 대학의 정체성은 어느 누군가가 정해줄 수 없었고, 대학을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로 그런 교육이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캠퍼스 공간은 높은 담으로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지역공동체 속에 자리를 잡았고, 대학생은 능동적인 지역시민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자극했고, 그렇기에 대학의 학풍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련된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때론 국가권력과 대립하면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이 자리를 잡은 지역사회는 혁명적인 사상의 근원지였고 때론 실제 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학은 특정 교단이나 인물의 소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공적인 공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혁명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은 국가의 ‘억압’이나 자본의 ‘유혹과 조작’에 시달렸고, 대학 내부의 ‘권위주의’와 ‘부패’는 대학의 공동체성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몸부림쳤던 사건이 바로 1968년 전 세계를 뒤흔든 대학생들의 반란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베트남전과 징병을 반대하며 주방위군과 충돌했고, 대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된 대학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을 점거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학생들은 교과과정과 교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오쩌뚱의 포스터를 정문에 내걸었습니다. 폴란드의 대학생들은 “자유 없이 학문 없다”고 외치며 군대와 충돌했습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다시금 대학을 토론과 자치를 위한 코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유럽 대학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움과 연대성은 68년의 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지요.

그런데 한국 대학의 역사는 서구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대한제국과 식민지기에 한국의 대학은 ‘서구 따라잡기’와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밝히는 토론공동체라는 원래의 정신은 무시된 채, 형식적인 교과과정과 같은 껍데기만 이식되었던 거죠. 우리의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대학교육은 외국물을 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학생이 외우고 따르는 것을 뜻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은 토론과 혁명적인 사상의 근거지가 아니라 서구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는 공간이었습니다(식민지 시기 대학생들이 공부했던 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죠).

그래서 대학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엘리트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대학은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엘리트 구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동문들의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자원은 서울대학과 지방대간의 격차를 늘려 학벌사회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뿌리를 내려온 학생운동의 역사는 이런 지배의 역사에 대항하는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공간 자체가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섭되거나 사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도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대학이라는 공간을 비운 사이에 그곳은 더욱더 지배이데올로기를 착실히 다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한국의 대학에서 희망을 얘기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국가의 학문정책이 한국연구재단(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지식인들의 논의방향을 규정하고 자본의 산업전략이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공간 곳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에 바쁘고, 대학의 직원들은 외주용역노동자들과 연대는 커녕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쁩니다. 대학생들 역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학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2. 대학, 니들이 공공성을 알아?

 

최근 대학들이 공공성을 회복하겠다며 시도하는 여러 사업들이 있기는 합니다.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업은 담장허물기와 도서관의 개방입니다.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이 캠퍼스를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자유로이 이용하게 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것은 대학공간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좋은 방안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생색내는 것으로 그치고, 이런 시설 개방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습니다.

담장허물기나 도서관 개방 외에도 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나 행사, 대학 축제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과 대학생들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삶이 서로 연계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개방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대학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운영이 지역사회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여전히 나눠서 생각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대학 자체의 경계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대학이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의 발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쪽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사업’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대학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영어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의 산학협동과정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행되기도 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에 직접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렇게 지역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8년 정부가 법을 개정해 사학재단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은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적립금 투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상태라면 대학과 지역사회의 결합은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것은 대학이 그 결합의 의미를 공공성보다 자기 살을 찌우는 사업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대학을 연대의 공간으로 만들기

 

국가나 대학이 자연스럽게 공공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공공성은 단순히 대학이 지역사회에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섞이며 소통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을 담당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형태의 운동을 통해 공공성을 조금씩 실현해가야 합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2001년부터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대학을 만들자며 ‘무장애대학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문제를 이해하려는 이 운동은 장애인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통해 대학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운동이고 제도적인 변화는 이런 운동의 목표를 조금씩 실현하는 듯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고등교육에서 입학거부만이 아니라 수업참여나 교내외 활동을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인 대학생들의 이동 편의와 학습 지원을 위해 1천 600백명의 대학생도우미를 대학에 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도우미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이동을 돕거나 강의 내용을 대필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4천명에 달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숫자에 비하면 그 수가 부족한데도,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중증장애인 학습을 돕는 대학생 도우미 예산을 2008년에 비해 4억원이나 삭감(26억에서 22억원)했습니다. 제도변화는 주로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시․청각 장애인의 어려움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주로 편의시설이나 도우미같은 하드웨어나 지원에만 초점을 맞출 뿐 대학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장애대학이 만들어지려면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차이와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대학 공간 자체를 평등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해리포터>라는 영화를 아실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해리 포터는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잘 집중하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호그와트 학교에서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머글’이라 불리며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사는가에 따라 똑같은 사람도 달리 평가됩니다. 사람이 가진 능력은 똑같은데,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이 ‘비정상’으로, 어떤 세계에서는 ‘탁월한 능력’으로 평가받지요.

이처럼 ‘차이’는 그냥 다르다는 의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차이가 차별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장애인이 경쟁의 기준과 규칙을 짜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짠 경쟁게임에서 장애인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구조를 짜 놓고 장애인에게는 시혜의 관점을 들이댑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몇 개를 대학 내에 마련해 놓고 도우미 몇 명을 붙여주고 그걸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면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렇게 되면 차이는 ‘분리’를 불러오게 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분리되어 대학교라는 공적인 장에서도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장애인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따라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며 그 차이를 낳는 구조적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하면 대학은 언제나 ‘비장애인의 공간’일 수밖에 없고 장애인대학생의 수업권 이외의 더 큰 권리들을 발굴하거나 확장시킬 수 없으며, 대학이 다른 대학이나 지역사회의 장애민중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원인이 장애인만이 아니라 기존의 비장애인마저도 ‘무능한 인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들을 바꾸지 않으면 타자와의 관계가 파괴될 뿐 아니라 결국 내 삶도 버려지게 됩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쓰레기가 되는 삶’(wasted life)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서로의 삶이 관계를 맺고 행복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해체하고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더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분리 외에도 학점과 영어능력 등 스펙에 따라 대학생들의 삶도 정해지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는 경쟁을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무의미한 감정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런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학생들이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대학이 차별의 공간에서 ‘차이와 연대’의 공간으로 바뀌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의 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논리적인 합리성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분노와 폭발하는 열정도 필요로 합니다. 요즘 현실공간이나 인터넷에서 자기 논리나 이익을 분명하게 밝히는 똑똑한 대학생들은 늘어나지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대학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거짓된 경계를 부수고 우리의 이해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장애인대학생과 비장애인대학생이 서로의 현실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구성될 때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대학의 교과과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감하고 소통하려면 서로의 의사전달수단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교과과정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만 있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없습니다. 소통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속의 생각은 언어만이 아니라 몸짓으로, 수화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표현을 듣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학생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 교수, 직원들도 이런 소통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마련될 때 대학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교수협의회, 직원노조가 사학재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에서는 학생들끼리 아무리 연대해도 그 힘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가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하고, 반대로 대학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2004년에 ‘목포시건축물의허가등에있어장애인편의시설설치사항의사전점검에관한조례’가 주민발의로 통과되면서 최초의 장애인 관련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례는 신축되는 대형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때 반드시 사전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조례는 지역사회의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의 내부가 보수화되었다면 대학의 외부를 변화시켜 대학을 압박할 수 있고, 지역사회가 보수화되었다면 변화된 대학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역사회와 대학의 경계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최근 ‘사회적 경제’의 흐름과 더불어 노동권을 보장하는 공간으로도 변신하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운동과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 속으로 통합되는 운동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하기에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르는 기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기준에 맞서고 기준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4. 눈을 가린 정의에서 눈을 뜬 연대로

 

정의의 여신 아스트레이아는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엔 저울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눈을 가리고 공평하게 판단해서 잘못을 없애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정의는 두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지켜볼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쪽 입장, 저쪽 입장을 골고루 반영해서 결정하는 게 정의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가 듣고 판단을 내릴 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가린 정의’보다 ‘눈을 뜬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아무리 올라가도 그 끝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끝은 이미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규칙을 짜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으면 남에게 짓밟혀 쓰러지거나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짓밟아야 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합니다. 누구도 그런 걸 원하지 않지만 우리가 규칙을 짤 수 없기에 친구들과 싸워야 합니다.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같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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