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장애민중연대 현장활동단이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장애운동에 잘 모르는 내가 강연을 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쪽이 내게 강연을 부탁한 건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실은 대학의 공공성과 관련된 글 때문인 듯하다.
어쨌거나 강연을 소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김도현씨나 제법 친분이 있는 단체인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장애운동에 대해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장애운동을 공부할 때 가장 좋은 입문서는 도현씨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인 듯하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보지 않고, 장애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설명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장애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해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장애인을 장애우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여성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여성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장애인 내부의 다양한 차이,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서는 안 되는 이유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장애운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97년 에바다 사건 때부터 장애운동을 해온 도현씨의 내공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쨌거나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도 여전히 내용은 부실하다.
허나 앞으로 장애운동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하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대강의 강연문을 작성해 봤다.
앞부분은 사람에 쓴 글을 약간 수정했고, 뒷부분은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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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의 다른 기원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취업시장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당시 교단의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종교해석에 도전해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은 몇몇 뛰어난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를 만들려 했습니다. 초기 대학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토론 공동체’라 불렸다. 그러니 대학의 정체성은 어느 누군가가 정해줄 수 없었고, 대학을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로 그런 교육이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캠퍼스 공간은 높은 담으로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지역공동체 속에 자리를 잡았고, 대학생은 능동적인 지역시민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자극했고, 그렇기에 대학의 학풍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련된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때론 국가권력과 대립하면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이 자리를 잡은 지역사회는 혁명적인 사상의 근원지였고 때론 실제 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학은 특정 교단이나 인물의 소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공적인 공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혁명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은 국가의 ‘억압’이나 자본의 ‘유혹과 조작’에 시달렸고, 대학 내부의 ‘권위주의’와 ‘부패’는 대학의 공동체성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몸부림쳤던 사건이 바로 1968년 전 세계를 뒤흔든 대학생들의 반란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베트남전과 징병을 반대하며 주방위군과 충돌했고, 대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된 대학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을 점거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학생들은 교과과정과 교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오쩌뚱의 포스터를 정문에 내걸었습니다. 폴란드의 대학생들은 “자유 없이 학문 없다”고 외치며 군대와 충돌했습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다시금 대학을 토론과 자치를 위한 코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유럽 대학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움과 연대성은 68년의 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지요.

그런데 한국 대학의 역사는 서구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대한제국과 식민지기에 한국의 대학은 ‘서구 따라잡기’와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밝히는 토론공동체라는 원래의 정신은 무시된 채, 형식적인 교과과정과 같은 껍데기만 이식되었던 거죠. 우리의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대학교육은 외국물을 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학생이 외우고 따르는 것을 뜻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은 토론과 혁명적인 사상의 근거지가 아니라 서구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는 공간이었습니다(식민지 시기 대학생들이 공부했던 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죠).

그래서 대학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엘리트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대학은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엘리트 구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동문들의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자원은 서울대학과 지방대간의 격차를 늘려 학벌사회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뿌리를 내려온 학생운동의 역사는 이런 지배의 역사에 대항하는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공간 자체가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섭되거나 사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도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대학이라는 공간을 비운 사이에 그곳은 더욱더 지배이데올로기를 착실히 다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한국의 대학에서 희망을 얘기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국가의 학문정책이 한국연구재단(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지식인들의 논의방향을 규정하고 자본의 산업전략이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공간 곳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에 바쁘고, 대학의 직원들은 외주용역노동자들과 연대는 커녕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쁩니다. 대학생들 역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학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2. 대학, 니들이 공공성을 알아?

 

최근 대학들이 공공성을 회복하겠다며 시도하는 여러 사업들이 있기는 합니다.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업은 담장허물기와 도서관의 개방입니다.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이 캠퍼스를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자유로이 이용하게 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것은 대학공간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좋은 방안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생색내는 것으로 그치고, 이런 시설 개방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습니다.

담장허물기나 도서관 개방 외에도 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나 행사, 대학 축제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과 대학생들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삶이 서로 연계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개방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대학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운영이 지역사회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여전히 나눠서 생각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대학 자체의 경계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대학이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의 발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쪽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사업’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대학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영어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의 산학협동과정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행되기도 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에 직접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렇게 지역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8년 정부가 법을 개정해 사학재단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은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적립금 투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상태라면 대학과 지역사회의 결합은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것은 대학이 그 결합의 의미를 공공성보다 자기 살을 찌우는 사업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대학을 연대의 공간으로 만들기

 

국가나 대학이 자연스럽게 공공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공공성은 단순히 대학이 지역사회에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섞이며 소통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을 담당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형태의 운동을 통해 공공성을 조금씩 실현해가야 합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2001년부터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대학을 만들자며 ‘무장애대학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문제를 이해하려는 이 운동은 장애인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통해 대학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운동이고 제도적인 변화는 이런 운동의 목표를 조금씩 실현하는 듯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고등교육에서 입학거부만이 아니라 수업참여나 교내외 활동을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인 대학생들의 이동 편의와 학습 지원을 위해 1천 600백명의 대학생도우미를 대학에 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도우미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이동을 돕거나 강의 내용을 대필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4천명에 달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숫자에 비하면 그 수가 부족한데도,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중증장애인 학습을 돕는 대학생 도우미 예산을 2008년에 비해 4억원이나 삭감(26억에서 22억원)했습니다. 제도변화는 주로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시․청각 장애인의 어려움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주로 편의시설이나 도우미같은 하드웨어나 지원에만 초점을 맞출 뿐 대학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장애대학이 만들어지려면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차이와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대학 공간 자체를 평등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해리포터>라는 영화를 아실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해리 포터는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잘 집중하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호그와트 학교에서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머글’이라 불리며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사는가에 따라 똑같은 사람도 달리 평가됩니다. 사람이 가진 능력은 똑같은데,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이 ‘비정상’으로, 어떤 세계에서는 ‘탁월한 능력’으로 평가받지요.

이처럼 ‘차이’는 그냥 다르다는 의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차이가 차별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장애인이 경쟁의 기준과 규칙을 짜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짠 경쟁게임에서 장애인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구조를 짜 놓고 장애인에게는 시혜의 관점을 들이댑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몇 개를 대학 내에 마련해 놓고 도우미 몇 명을 붙여주고 그걸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면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렇게 되면 차이는 ‘분리’를 불러오게 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분리되어 대학교라는 공적인 장에서도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장애인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따라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며 그 차이를 낳는 구조적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하면 대학은 언제나 ‘비장애인의 공간’일 수밖에 없고 장애인대학생의 수업권 이외의 더 큰 권리들을 발굴하거나 확장시킬 수 없으며, 대학이 다른 대학이나 지역사회의 장애민중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원인이 장애인만이 아니라 기존의 비장애인마저도 ‘무능한 인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들을 바꾸지 않으면 타자와의 관계가 파괴될 뿐 아니라 결국 내 삶도 버려지게 됩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쓰레기가 되는 삶’(wasted life)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서로의 삶이 관계를 맺고 행복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해체하고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더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분리 외에도 학점과 영어능력 등 스펙에 따라 대학생들의 삶도 정해지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는 경쟁을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무의미한 감정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런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학생들이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대학이 차별의 공간에서 ‘차이와 연대’의 공간으로 바뀌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의 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논리적인 합리성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분노와 폭발하는 열정도 필요로 합니다. 요즘 현실공간이나 인터넷에서 자기 논리나 이익을 분명하게 밝히는 똑똑한 대학생들은 늘어나지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대학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거짓된 경계를 부수고 우리의 이해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장애인대학생과 비장애인대학생이 서로의 현실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구성될 때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대학의 교과과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감하고 소통하려면 서로의 의사전달수단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교과과정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만 있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없습니다. 소통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속의 생각은 언어만이 아니라 몸짓으로, 수화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표현을 듣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학생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 교수, 직원들도 이런 소통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마련될 때 대학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교수협의회, 직원노조가 사학재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에서는 학생들끼리 아무리 연대해도 그 힘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가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하고, 반대로 대학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2004년에 ‘목포시건축물의허가등에있어장애인편의시설설치사항의사전점검에관한조례’가 주민발의로 통과되면서 최초의 장애인 관련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례는 신축되는 대형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때 반드시 사전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조례는 지역사회의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의 내부가 보수화되었다면 대학의 외부를 변화시켜 대학을 압박할 수 있고, 지역사회가 보수화되었다면 변화된 대학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역사회와 대학의 경계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최근 ‘사회적 경제’의 흐름과 더불어 노동권을 보장하는 공간으로도 변신하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운동과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 속으로 통합되는 운동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하기에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르는 기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기준에 맞서고 기준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4. 눈을 가린 정의에서 눈을 뜬 연대로

 

정의의 여신 아스트레이아는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엔 저울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눈을 가리고 공평하게 판단해서 잘못을 없애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정의는 두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지켜볼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쪽 입장, 저쪽 입장을 골고루 반영해서 결정하는 게 정의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가 듣고 판단을 내릴 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가린 정의’보다 ‘눈을 뜬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아무리 올라가도 그 끝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끝은 이미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규칙을 짜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으면 남에게 짓밟혀 쓰러지거나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짓밟아야 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합니다. 누구도 그런 걸 원하지 않지만 우리가 규칙을 짤 수 없기에 친구들과 싸워야 합니다.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같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한 언론사의 저작권을 담당하는 법무법인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에게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소식이었다. 단체 홈페이지 뉴스DB 게시판에 기사를 무단게재했다는 이유로 수천 만원의 배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파문이 확산되자 언론사는 이 게시판이 공익을 위해 운영되었고 배상 청구 이후에 뉴스게재를 중단했기에 소송과 배상을 포기하겠다고 단체에 통보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기사를 축약하거나 부분발췌를 해도 위법이고 홈페이지에 기사프레임을 링크하는 것도 위법이다. 심지어 출처를 밝혀도 저작권법을 피할 수 없다고 하니, 한 마디로 아예 신문기사에 손을 댈 생각을 말라는 얘기이다. 심지어 불법 복제물을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회 이상 삭제 명령을 내린 뒤에 게시판을 최대 6개월 동안 폐쇄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이는 언론사가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자 정부가 이를 도와 시민들을 ‘사이버 추방’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더욱더 기가 막힌 일은 일부 법무법인들이 기업의 저작권 고소 대행을 맡아 무차별적으로 ‘묻지마 저작권 고소’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일공유사이트에서 영화나 음악을 파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합의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법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변호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법무법인은 대표 변호사 부인 명의로 출판업체를 차린 뒤 이곳 직원 30명에게 저작권 침해 사건 고소장 작성 등 법률 사무를 맡기고 그 합의금을 회사에 분배했다가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이런 장사꾼들이 판을 치다보니 인터넷이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얘기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인터넷이란 공간은 정보의 복제와 유통, 가공이 자유롭다는 장점 때문에 활성화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음악, 그림, 사진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소통하고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터넷은 ‘자유와 소통의 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 공간에도 자물쇠가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이버 자물쇠가 채워질수록 IT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저작권이라는 권리 자체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지식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하나의 상품을 만들려면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하나의 이론을 완성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많은 이들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 하물며 땅을 비롯한 자연은 어느 누구의 배타적인 소유물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소유권을 존중한다. 하지만 농사를 짓지도 않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서 그 땅을 놀리고 황폐화시키고, 생활이 아니라 투기를 목적으로 무한정 집을 사모아도 그 소유를 무조건 인정해야 할까?(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한국의 집부자 1위는 무려 1,083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의욕과 건전한 윤리의식까지 갉아먹도록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을 우려해서인지 이미 16세기 조선시대에 정여립((鄭汝立)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외치며 천하가 모두의 것이라 선언했고, 약 170년 전 프랑스의 사상가 프루동은 “소유란 도둑질이다”라고 외쳤다. 인터넷 공간은 이들이 꿈꿨던 공유가 가능한 최후의 보루이니 그곳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호사의 천국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흡혈귀에 비유된다고 한다. 미국을 따라갈 생각이 아니라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부 법무법인들은 묻지마 고소를 반성하고 이를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 적어도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말이다.


아직 2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특징짓는 아이콘은 바로 '컨테이너'일 듯 싶다.
200년년 부산 APEC회의 때가 최초라고 하지만 컨테이너로 길을 막고 그 사이를 용접하는 그 놀라운 발상은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위키피디아에 '명박산성'이 등록될 만큼 이것은 참으로 한국의 '고유한'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일단 당선된 이상, 권력이 결코 시민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명박산성에서 컨테이너는 소위 한국의 국가성격이 여전히 소통보다 '불통(不通)'임을 잘 증명해 주었다.

촛불집회 때 컨테이너의 용도를 잘 깨달았던지, 이명박 정부는 그 다음부터 컨테이너를 방어를 넘어 공격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200일 째를 접어들고 있는 '용산에서의 국가폭력'에서도 컨테이너가 등장했다.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의지해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짓이겼고 결국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는 가난도 범죄라고 얘기하며 국가는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특공대를 투입했다.
죽은 사람이 여섯 인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은 채 200일 째를 맞이하고 있다.
컨테이너가 고공진압 때 사용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상상력, 명박산성을 뒤이은 이명박 정부의 아이콘이다.

용산 때 그 효과를 깨달았는지 정부는 쌍용자동차에도 용산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컨테이너를 사용했고 역시나 경찰특공대를 이것에 태웠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을 줄 알면서도 이 컨테이너에 타야 했던 경찰특공대의 마음은 어땠을까?
용산과 비슷한 참사가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왜 컨테이너에 타야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쌍용자동차 노조원 2명이 추락해서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생명에 지장이 없어 다행이지만 무리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있는 곳에 희생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는 공권력을 마치 사권력처럼 사용하고 있다.
공권력은 공적으로 정당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규모와 과정도 공식적이어야 한다.
크레인에 컨테이너를 묶어 고공진압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반대하면 무조건 진압한다, 명령에 따르기 싫으면 나가라, 이런 식의 일방적인 권력행사는 공권력이 아니라 사적인 권력의 속성이다.
더구나 이 사권력은 철저히 기업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민은 없고 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그러면서 뒷돈을 대주는 기업들만 있을 뿐이다.

소통도 싫다, 반대도 싫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이런 정부의 말을 계속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이제 한국에서 컨테이너는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컨테이너에 짐을 싸서 이 땅을 떠나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점도 깨달았으면 한다.
지금 이런 식으로라면...
갑자기 떡볶이가 한국의 정치논쟁의 소재로 등장했다. 서민과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탁구를 치며 시민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에 민주당은 떡볶이 먹고 어린애 안아준다고 서민의 어려움이 풀리는가라고 물으며 그 시간에 차라리 기업을 설득하라고 비판했다. 서민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시장이니 서민적인 정치 이미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시장이겠지만, 선거나 중요한 정치적 고비 외엔 정치인들의 코빼기조차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장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자주 군것질거리로 삼는 떡볶이지만 정치인들이 자기 이미지 만들 때 말고 평상시에도 먹을지 의심스러운 것이 떡볶이다.

사실 대통령이 저잣거리로 나서 시민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걸 비판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자신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도 포기하고 서민을 위해 팔 걷고 나서겠다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말이 많고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건 바로 소통의 방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시장을 찾았을 때 상인들이 입을 모아 요구한 건 대형마트의 진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대기업들의 중형 마트까지 등장해 동네 구멍가게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어렵사리 만난 대통령에게 가난한 상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정한 대통령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말은 좋지만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싼 가격에 물건을 들여오는 대형마트와 영세상인들의 공생이 정말 가능할까?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최소한 150개의 가게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웬만한 시장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셈인데, 이 둘의 공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자고로 소통이란 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며 기꺼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상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은 답을 내려 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얘기가 오갈 수 있도록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적 소통은 사회적 약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아픔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려 할 때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지금 한국 정치에는 소통이 없다. 이 대통령의 소통불능을 비판하는 민주당 역시 소통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민주당이 발표한 '뉴민주당 플랜'을 보면 뉴민주당이 아니라 뉴라이트 플랜 같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욕심은 '중도개혁주의'라는 해괴한 방향으로 향했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얘기하지만 경제성장을 해야 분배가 가능하니 경쟁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사전적 기회의 평등을 확대한다는 '기회의 복지'라는 개념은 본심을 드러낸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생활밀착 정당' 역시 소통과는 무관한 그네들의 말잔치이다.

사실 이런 소통불능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옥탑방이라는 말을 모른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의 정몽준 최고위원은 2008년에 버스비가 70원이라고 얘기해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민과 소통하려면 서민의 경험에서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대단한 엘리트 출신인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서민정치가 되려면 서민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한국의 정치구조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한다. 지방선거마저도 정당공천제로 꽁꽁 묶여 있어 평범한 시민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는다. 그러다보니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만 있지 서민의 정치는 한국에 없다.

현재 한국의 소통은 꽉 막혀 있다. 빨리 그 맥을 뚫지 않으면 시장에 나가 악수를 하고 떡볶이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신문을 뒤적이기가 무서울 정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배제되어 버려지고 있고, 그 속도마저 계속 빨라지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철거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버려지고 있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해 온 공장에서 버려지고 있다. 농업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농민들은 평생 일궈온 땅에서 내몰리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동안 쥐꼬리만큼 받아오던 복지혜택에서조차 내몰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필요라는 이름 아래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은 인간이 아니라 도구처럼 쓰였다 버려지고 있다. 학력 신장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은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얼마 전 신문기사에 따르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다.

사진: 뷰앤뉴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이런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 ‘불법 점거’, ‘폭력시위단체’, ‘떼잡이들’, ‘무능한 인간’, ‘좌익’, ‘패륜’, ‘매국노’같은 딱지를 붙이며 그런 버림을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21세기에 ‘빨갱이’나 ‘간첩’이라는 말마저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기득권층과 그들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그 기준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이 사회 밖으로 거칠게 내몰고 있다(경찰청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대응하는 훈련을 하는가 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용산참사가 공권력 발동을 주저하게 만들어 한탄스럽다며 쌍용차 평택공장에 즉각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지 버려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서 더욱더 두려운 건 아니다. 두려운 건 이런 배제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과 이를 바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망이 있다면 버티며 미래를 준비해 보겠지만, 희망조차 꿈꿀 수 없다면 미래는 불가능하다. 앞으로의 일이 이미 결정된 세계에서는 더 이상 희망(希望)이나 미래(未來)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희망의 목표나 기준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목표나 기준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시야가 정치를 청와대나 국회, 몇몇 정당들, 몇몇 시민사회운동단체들로 제한되어 정치의 부정적인 면밖에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시야를 아래로 낮춰 풀뿌리나 지역공동체 차원의 긍정적인 정치를 보려 하면 그런 점은 한국 사회 전체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차원의 정치나 제한된 대안이라 여기는 지역 차원의 정치 모두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의식은 갈증을 호소하며 무작정 사막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좌표가 없기에 헤맨다고 한들 오아시스를 찾을 가능성은 낮고 까마귀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래서 새로운 좌표를 알려줄 새로운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프레임은 무조건 새로운 말을 끌어다 쓴다고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보수정치가 생활밀착형 정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새로운 프레임을 갖추는 게 아니다. 생태나 평화, 자치같은 말을 정당의 구호로 끌어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 검찰이 ‘공안’이라는 말 대신 ‘민생’이라는 말을 써서 ‘공안정국’, ‘공안부’ 등의 이미지를 바꾸려 해도 그 속성을 바꿀 수 없는 점과 같다. 프레임은 단어가 아니라 관점을 가리킨다. 보는 방법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이 새로운 관점을 갖춰야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상황, 즉 버려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기득권층의 정치전략이 ‘한 가족’, ‘하나의 공동체’라는 말을 쓰며 사람들을 한데 뭉치려 했다면, 이제 그들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내버리고 있다. 철거민이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순간, 노동조합이 폭력시위단체로 불리는 순간 그들과는 어떠한 타협이나 협상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들은 다시 공동체로 들어올 수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전략은 ‘버림받음’이라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갖춰야 한다. 새로운 관점이라 해서 인터넷과 같은 과학기술에만 의존하거나 과거의 모든 것을 낡은 것으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내가 익숙한 높이와 방향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정파(이념이 아니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그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자기 귀에 익숙한 단어만을 조합해 풀뿌리 민중의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익숙한 오해와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백날 소통을 떠들어 봐도 자신의 오만함과 확신만 더할 뿐이다.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더욱더 많이 듣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정치의 구조 자체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바꿔나갈 때 그 관점은 새로운 이념으로 구성될 수 있다. 어려운 말이나 새로운 말을 쓰며 폼 잡을 게 아니라 낡은 언어라도 그것의 진정성을 보여줄 때 우리는 민중의 가슴과 소통할 수 있다.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을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는다면 무너질 사랑탑만 쌓는 격이다.

그리고 그 관점과 이념은 기존과는 다른 정치전략을 가져야 현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시국선언이나 대변형 운동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이 사회적 포섭전략을 쓸 때에나 힘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을 버리려 하는 지금의 기득권층은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를 뿌려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도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도록 광장만 잘 틀어막고 있으면 된다는 게 그들의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결투쟁’, ‘결사항전’같은 구호도 잘 먹히지 않는다. 그 투쟁의 치열함이나 처절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버려지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사람들의 단결은 그 뒤에 버려지게 될 사람들의 연대가 아니라 그들의 외면이나 냉소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의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이라 기대하는 건 큰 착각이다. 관계가 우리의 희망이기는 하지만 그 희망은 그 관계망이 어느 정도 다져진 뒤에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는 서로의 관계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드러날 수 있다고 미리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정치전략은 버려지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모색할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터전이 국가인가, 지역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우리를 언제쯤 버릴까 가슴 졸이며 그 날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과감히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모색할 양산박을 하나씩 만들어야 희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래서 무한경쟁에서 밀려났기에 버려져야 할 무능한 존재라는 딱지를 스스로 떼어내고 자신을 중요한 정치주체라 여기도록 만들 과정을 만들어 줄, 디딤돌을 놓아 줄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민중은 아우성을 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것이다.



신동엽 시인은 노래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얼마 전 강의를 나가던 대학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선언문을 읽다 한 구절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학문과 양심의 전당인 대학’, 아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한국의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을 논하다니. 파견직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대학, 온갖 가게와 커피 체인점들이 점령한 대학, 포스코, 삼성 등 대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은 대학, 88만원 세대를 양성하는 취업의 최전선인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이라니, 고상하신 교수님들의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학이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얘기는 무의미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학이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으로 학문의 전당이라는 상아탑이 부모와 학생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우골탑으로 변한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교수가 권력의 해바라기(폴리페서)로 나서고 자기 제자를 성추행하기도 하는 이곳의 대학에서 다시 학문과 진리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국립대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체질 개선에 바쁘고 사립대는 학생들 등록금 모아 적립하고 기업 후원 받기에 정신이 없는데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학, 단추를 잘못 꿰다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취업시장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등장했다. 왜냐하면 대학은 당시 교단의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종교해석에 도전해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몇몇 뛰어난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를 만들려 했다. 초기 대학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토론 공동체’라 불렸다.

때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로 그런 교육이 확장되기도 했다. 학교 캠퍼스는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서로 뒤섞여 있었고, 대학생은 능동적인 지역시민이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자극했고, 그렇기에 대학의 학풍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마련된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때론 국가권력과 대립하면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도 했다. 대학이 자리를 잡은 지역사회는 혁명적인 사상의 근원지였고 때론 실제 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혁명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은 국가의 ‘억압’이나 자본의 ‘유혹과 조작’에 시달렸고, 대학 내부의 ‘권위주의’와 ‘부패’는 대학의 공동체성을 뒤흔들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몸부림쳤던 사건이 바로 1968년 전 세계를 뒤흔든 대학생들의 반란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베트남전과 징병을 반대하며 주방위군과 충돌했고, 대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된 대학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을 점거했다. 이탈리아의 대학생들은 교과과정과 교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오쩌뚱의 포스터를 정문에 내걸었다. 폴란드의 대학생들은 “자유 없이 학문 없다”고 외치며 군대와 충돌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다시금 대학을 토론과 자치를 위한 코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장으로 만들었다. 지금 유럽 대학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움과 연대성은 68년의 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대학의 역사는 서구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다. 대한제국과 식민지기에 한국의 대학은 ‘서구 따라잡기’와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즉 시대정신을 밝히는 토론공동체라는 원래의 정신은 무시된 채, 형식적인 교과과정과 같은 껍데기만 이식되었다. 우리의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대학교육은 외국물을 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학생이 외우고 따르는 것을 뜻했다. 한국에서 대학은 토론과 혁명적인 사상의 근거지가 아니라 서구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배우는 공간이었다(식민지 시기 대학생들이 공부했던 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다).

대학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엘리트의 지위를 얻었다. 대학은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다. 엘리트 구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동문들의 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자원은 서울대학과 지방대간의 격차를 늘려 학벌사회를 심화시켰다.

이런 엘리트 구조는 대학가 문화를 만들었을지 모르나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대학과 지역사회는 분리된 두 개의 공간으로 존재했다. 대학에서 저항문화가 싹텄던 때에도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있었을지언정 대학이 지역사회와 밀착해 지역토호를 몰아내거나 부패한 지방권력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 문제점은 대학이나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독재가 지방자치제를 유보시켰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지연시켰던 탓도 있다. 그리고 좌우를 막론하고 지역보다 국가 차원의 연구에만 집중했던 지식인들의 연구경향도 이런 분리에 기여했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기원과 발전과정은 토론공동체나 자율적인 코뮌을 만드는 과정과 무관했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부적절한 관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1991년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도는 국가로 집중된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앙정부는 지역혁신전략의 하나로 대학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고, 이런 권력의 변화를 눈치 챘는지 대학들도 지역사회에 조금씩 관심을 돌리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국의 각 대학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며 제안하는 방안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대학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며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업은 담장허물기와 도서관의 개방이다.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이 캠퍼스를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자유로이 이용하게 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것은 대학공간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좋은 방안으로 애기되고 있다. 그런데 담장허물기는 대학의 자체 재정이 아니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손 안 대고 코푸는 식의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서울시는 서울시 42개 대학의 담장허물기 비용을 전액 시비로 지원할 예정이다). 그리고 도서관 개방은 주민들의 대출이나 열람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어 동네의 공공도서관보다 발걸음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말 그대로 생색내는 것으로 그치고, 이런 시설 개방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담장허물기나 도서관 개방 외에도 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나 행사, 대학 축제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기도 한다. 서울시 성북구의 고려대, 국민대, 동덕여대, 서경대, 성신여대, 한성대 등 6개 대학은 성북구청과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 대학이 나서서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과 대학생들을 연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지역청소년들의 논술이나 창의력, 생활과학교실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교수나 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을 지역사회와 연계시키고 있다.

이렇게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삶이 서로 연계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개방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대학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운영이 지역사회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잘라 말하자면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여전히 나눠서 생각한다는 점을 뜻한다. 대학 자체의 경계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어렵다.

사실 대학이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의 발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쪽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사업’이다. 예를 들어, 안동대는 안동시, 안동교육청과 함께 안동영어마을을 설치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운영 중이다(말도 많고 도움도 안 된다는 그 영어마을을 대학이 나서서 한다!). 그리고 대학의 산학협동과정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행되기도 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에 직접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 평택시와 성균관대는 도일동 일대를 산업, 주택, 학교 등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땅값을 지나치게 낮게 정해 특혜시비가 일고 있고 있는데, 성균관대는 헐값에 공급받은 땅을 일반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분양할 것으로 알려져 대학이 땅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학이 이렇게 지역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8년 정부가 법을 개정해 사학재단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은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적립금 투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상태라면 대학과 지역사회의 결합은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은 대학이 그 결합의 의미를 공공성보다 자기 살을 찌우는 사업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인 그라민 은행을 만든 유누스(M. Yunus) 교수는 캠퍼스 근처의 노는 땅을 지역주민이 활용할 수 없다면, 대학이 자신의 지식에 도취되어 주민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대학이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유누스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면 학문의 의미가 없다고 믿으며 현실로 뛰어들었다.

대학의 공공성은 단순히 대학이 지역사회에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섞이며 소통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을 담당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이나 대학생의 삶과 지역사회가 사실상 서로 분리될 수도 없다. 서울시의 뉴타운 계획에 따르면, 중앙대(흑석동)와 이화여대·추계예대(북아현동), 경희대·한국외대(이문·휘경동), 서울시립대(전농동·답십리) 등 6곳이 뉴타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 뉴타운 개발은 대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미 치솟는 등록금에 신음하는 대학생들이 비싼 하숙비나 월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기숙사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재개발은 대학과 대학생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변화는 그 속의 대학이나 대학생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대학은 지역사회에 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대학의 교육과정 자체가 이런 지역사회의 변화를 다루고 대안을 모색할 때에만, 대학이 지역학의 기반이 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살아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앞으로 닥쳐올 사회적 위기를 대비하며 대학이 지역사회의 거점으로 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다가올 식량위기를 대비해 대학이 지역사회 먹거리 순환(로컬푸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대학이 학교 내 급식을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로 전환하고 지역 내의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급식센터를 설립해 운영할 수도 있다(원주 상지대는 이런 전환의 기반을 닦고 있다). 대학이 캠퍼스 안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도시농업을 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책임지고 진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학의 화장실과 식당에서 나오는 자원(쓰레기가 아니다!)을 발효시킨 바이오메탄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녹색연합>은 2007년 국내 대학들이 사용한 에너지의 양을 분석한 결과 2000년과 비교할 때 84.9%나 소비량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같은 기간 한국사회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증가폭보다 무려 3.7배나 높다). 각 대학들이 캠퍼스에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에너지 효율을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학교자산만 불리는 나쁜 확장을 그만두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지로 변신한다면 대학은 지역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대학이 에너지를 잡아먹는 블랙홀에서 에너지 농장으로 변신할 수 있다.

식량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대학은 지역사회 대안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의 교과과정이 이런 대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대학은 명실상부한 대안적인 지역사회의 거점이 될 것이다. 대학의 각 전공학문이 그 지역에 맞는 대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면 생각은 결코 꿈으로 그칠 수 없다.

 

대학을 어떻게 접수할까?

 

어떻게 하면 한국의 대학들이 이런 대안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예전 사립학교법 개정 때 대학이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대학을 접수한다는 건 거의 꿈에 가깝다.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학재단들은 대학이 공공성의 거점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구의 68년 때처럼 바리케이트를 쌓고 강의실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접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그런 움직임을 약간만 보여도 바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할 것이 뻔하고, 한국 경찰의 우수함은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대학이라는 공간을 포위하고 서서히 압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생들이 대학이 있는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역주민들도 대학의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 아직까지 대학생들은 지역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의 발전방향을 고민해본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생들은 자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대학공간에서조차 자율적인 소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역이나 대학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는 대학생에게 민주주의는 현실의 과정일 수 없다.

따라서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소통이라는 과제는 단순히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계몽적인 호소로 해결될 수 없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일종의 연습과정이다. 즉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참여하는 사람만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욱더 익숙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여러 가지 일에 관해 대학생들과 주민들이 만나 일상적으로 얘기를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주제와 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일은 학내 민주화이고 이것은 지역사회 민주화와 맞닿아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이 지역사회와 무관할 수 없고, 교수들이 맡는 다양한 연구용역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니 지역주민들도 대학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변화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의 저항방식을 참조할 만하다.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영화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으로 한국에 소개된 하지메는 학교가 알아서 졸업을 시켜줘야 할 만큼 ‘말썽꾸러기’였다. 캠퍼스에서 난로를 피우고 찌개를 끓여 술을 마시고 페인트를 집어던지는 습격을 감행하면서 하지메는 조금씩 대학을 변화시켜 나간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싸움의 기술이었기에 대학은 하지메를 졸업시키는 것 외에 이에 대항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하지메는 사회적인 대안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저 멀리 높이 솟은 래미안 아파트를 동경하지 않고 가난뱅이들이 모여 있는 우리 마을에 눈을 돌리는 순간 새롭고 재미난 일들이 계속 우리를 기다린다.

대학을 접수하자는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꼭 대학의 총장실을 점거하고 대학의 운영권을 빼앗아야 대학을 접수하는 게 아니다. 뭐 좀 재미나고 새로운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찾을 때, 같은 대학에 다니지만 인사 한번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때,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떠들며 경계를 없앨 때 이미 대학은 접수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9년에 출판한 '공화국의 위기'에서 정치적 거짓말의 의미를 분석한다.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미국에서는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아렌트는 미국방성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국민과 의회를 속이려 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파악한다. 진정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선출된 권력이 자기 국민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거짓말을 일단 시작하면 정부는 자기기만에 빠져들어 거짓말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을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사회정의나 공공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아렌트는 그런 상황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 언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불복종 행위야말로 공화국의 위기를 막을 진정한 정치행위라고 주장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자기 국민을 속이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정당성은 시민의 동의와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치인의 필수적인 덕목처럼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렇게 정치가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7.4%, 법원은 4.6%, 검찰은 2.6%, 국회는 0.9%로 나타났다. 임의로 결성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42.3%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정부는 공권력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에서도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사회가 크게 술렁거렸고, 오랫동안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그 당시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만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고 광우병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할 때 반드시 국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정부는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정부를 제소했기 때문에 먼저 대응하는 차원에서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부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캐나다 쇠고기 현지 작업장 점검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청을 거부했다(캐나다에서는 2003년 첫 광우병 사례가 보고된 이후 계속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캐나다가 이미 보고서를 국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왜 어떤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광우병 검역기준을 위반한 미국 도축장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청도 계속 거부하다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을 받기도 했다.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공개가 없는 정부의 말바꾸기는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간다.

그리고 작년만 해도 정부는 주변국의 조건에 맞춰 쇠고기 수입기준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겠다며 나서는 주변국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 정부는 누구의 정부이기에 국내 축산농가나 국민의 안전보다 국제기준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단 말인가?

이런 정부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학교에서 진실되게 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하는 게 뭐가 나쁜가? 모두가 서로를 속이며 거짓말의 공범이 되는 사회, 그곳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진보의 위기’라는 말이 지난 몇 년간 유행어처럼 되풀이되었다. 위기라는 말의 등장보다 더욱더 긴장감을 주는 것은 좀처럼 그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는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보는 위기의 원인을 정치개혁이나 민생정책의 실패에서 찾거나 정부와 언론의 ‘진보 흔들기’에서 주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더 낫다”는 한탄(恨歎)까지 나오는 걸 보면 시간이 위기를 해결해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무능하다고 여겨졌으면 차라리 부패가 더 낫다고 얘기할까? 어쨌거나 이런 한탄은 진보의 위기가 매우 근본적인 것임을 알려준다.만일 무능함만이 문제라면 진보는 자신의 능력을 길러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소위 진보인사라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리 능력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무능한 사람들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나선 게 실제로 위기를 불러왔을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진보의 실패는 무능함보다 무책임함과 종파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속 빈 진보의 무책임함

 

무엇이 진보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박정희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김영삼, 김대중이 진보였고, 김영삼보다는 김대중, 김대중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진보이다. 진보는 어느 정도 상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적인 진보와 함께 이념적 진보(좌파)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다양한 사상들, 즉 사회주의, 아나키즘, 생명사상 등을 뜻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같은 정당들은 상대적인 진보주의자들을 자유주의자라 부르며 자신들과 구별을 짓고 진정한 진보를 자처해 왔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의 교체는 사회가 진보에서 보수로 흘러가고 있음을 뜻한다. 상대적인 흐름이 바뀌더라도 이념적 진보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으면 사회 전체의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진보의 뿌리는 매우 약하다. 소위 ‘원전’을 들이밀며 누가 더 노선에 충실한가를 따지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데 힘썼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를 강화시키려는 진보의 노력은 그동안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위기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따져보면 이념적 진보는, 특히 사회주의 세력은 1989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자기 이념을 새로이 구성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사회주의 전략은 ‘혁명’과 ‘집권’을 강조했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보니 진보는 자기 이념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이념을 외치기만 하고 정작 그 이념의 쓸모를 밝히지 않은 채 한국의 진보는 민중에게 무조건 자신을 따르라고 외쳤고 따르지 않는 민중을 비난해 왔다. 더구나 그 이념을 설명하는 언어들조차 이미 낡은 것들이었다. 진보는 국가나 자본을 비판하는 것 외에 딱히 자신의 대안적인 담론을 만들지 못했고,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거나 성장시키지도 못했다. 그러니 무능력보다는 오히려 무책임함이 한국 진보의 특징이라 하겠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무책임함은 이념의 기준을 좌에서 우로 옮긴 소위 뉴라이트(어떤 점이 new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나 권력의 떡고물을 따라다니는 소위 진보인사들의 모습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념을 자신의 삶으로 녹여내지 않았기에 그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기 이익에 맞춰 입장을 바꿀 수 있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박박 기며 삶을 이념에 맞추려 했던 사람들을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은 마치 대단한 애국자인양 미화해 왔다. 민중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이런 진보를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신좌파는 없다!

 

물론 이런 문제가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이런 문제가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신좌파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도 신좌파가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신좌파가 존재하려면 구좌파가 정치세력으로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신좌파의 등장을 설명하려면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와 체제 내로의 흡수, 그에 따른 좌파 내부의 이념적, 정책적 갈등을 함께 얘기해야만 한다. 그런 갈등이 진보정당의 정강이나 정책을 바꾸고 새롭고 대중적인 사회운동이 권위적이고 관료화된 구좌파의 의사결정구조를 비판하면서 신좌파는 형성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조건들이 없었다. 아직도 빨갱이라는 비난이 등장하는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아직도 머나먼 과제이고, 좌파 내부의 갈등은 이념이나 정책 갈등보다 정파의 싸움에 가까웠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차이가 아니라 잘못이라 비난하니 비판이나 대결은 곧바로 분열로 이어졌다. 이념이 추상의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웠다. 겉으론 대단한 이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인물을 따르거나 특정한 원칙만 고집하며 정파의 이익을 따지기 때문에 타협이 안 되면 보따리를 싸서 떠나버린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치경쟁이 있을 수 없다.

분명히 억압적인 사회 환경이 정파의 비밀스런 대립을 강화시킨 면도 없지 않지만 한국의 진보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서구의 신좌파는 ‘대항문화(counter-culture)’운동과 결합해 권위주의적이고 교조적이며 가부장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바꾸려 했다. 아래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자발성이 신좌파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는 권위주의와 교조주의, 가부장주의만이 아니라 학벌과 연고주의에서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 Lakoff)는 진보가 자기 프레임(frame)을 개발하지 못하면 보수를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오히려 ‘이익집단’이라는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고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의 비리사건들은 그런 프레임을 정당화시켰다. 자연히 시민운동으로 대표되던 NGO와 사회운동단체, 진보정당 모두의 사회 신뢰도가 함께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의 진보는 ‘녹색’이라는 대안가치마저도 ‘저탄소 녹색성장’에 빼앗겨 버릴 정도로 자신의 프레임을 확장시키지도 못했다(이제는 ‘공동체’라는 가치마저 시장에 빼앗길지 모른다).

 

관점의 진보가 필요하다!

 

자기 가슴과 몸으로 진보의 내용을 새로 채우지 않는다면 진보정치의 가능성은 없다. 자신을 진보라 주장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경우는 드물다. 말만 뻔지르르하고 실제 사는 모습은 개판인 경우가 많고,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자신의 진보성을 풀어내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러니 진보의 이념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조금 더 상대적으로 진보한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위기의 시대는 그런 상대적인 진보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경제위기와 식량, 에너지 위기의 시대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념적 진보가 새로운 틀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 미래의 해법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보의 관점이 새로워져야 한다. 자신은 내버려둔 채 남을 변화시키겠다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일찍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진보에게 바닥으로 기어라고 말했다. 오만함을 버리고 낮은 시선에서 민중의 삶을 바라보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만나고 반기고 사랑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책임감을 지닌 진보적 리더십은 혁명을 이끄는 전위조직이 아니라 더불어 살려고 치열하게 움직이는 모임을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나 청년실업을 비롯한 사회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분명 진보의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정규직으로의 전환, 무상교육, 무상의료같은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정책들이 민중의 조건 없는 지지를 받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는 자발적인 문화를 만들고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한 그런 정책들은 지지의 기반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구좌파/신좌파의 무의미한 논쟁에서 벗어나 즐거운 진보의 양산박을 만들어야 한다(최근 일본청년 마쓰모토 하지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런 필요성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관점과 삶의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리라 기대할 순 없다. 허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진보가 망한들 우리네 살림살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한국의 기득권 보수만큼 부패할 뿐 아니라 무능한 세력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에 많은 얘기를 쏟아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했던 실수와 실패까지도 미화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우려했던 바이지만 그야말로 깊이를 강요하는 글들을 접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같이 사는 사람 덕분에 민주노총 부산지부에 계신 김진숙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깊이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본인은 선생님이 아니라 노동자라며 이런 호칭을 거부하겠지만 그 분이 쓰신 글들은 힘든 일 잊고 좋은 것만 기억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니 어찌 선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널리 함께 읽고 싶어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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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서울 시내 곳곳에는 광장이라는 이름을 단 공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청 앞에 위치한 서울광장도 그런 공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요즘 많은 시민들은 그곳을 광장이 아니라 '차벽'으로 둘러싸인 공터로 여긴다.
사진에서 드러나듯이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은 그냥 잔디가 깔린 공터일 뿐이다.
쥐새끼 한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히 쌓은 차벽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공터이다.
굳이 경찰청에 '광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줘야 할런지 모르겠으나 혹 모르고 그럴 수 있으니 설명하자면  광장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브리태니커] 광장: 개방된 장소에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
[국립국어원] 광장: 1.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
                           2.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광장은 여러 사람들이 자유로이 모여 이용하고 뜻을 펼칠 수 있는 장이다. 그러니 광장에서 사람들이 추모제를 열거나 집회, 문화제를 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경찰청, 정부는 폭력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광장 사용을 막아왔다.
경찰이 막지 않는다면 폭력시위가 벌어질 가능성 자체가 없을 터인데, 오히려 무리하게 시민들의 광장 진입을 막아서 폭력을 유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서울광장 앞에 설치된 노대통령 분향소까지 강제로 철거하는 만행마저 일삼고 있다.

시민들이 쓸 수 없는 공간을 광장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 서울광장은 서울광장이 아니라 서울공터라 부를 일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올해로 제 13회를 맞이하는 인권영화제는 내일인 6월 5일부터 3일간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불과 행사 이틀을 앞두고 불허 통보를 했다.
문장이 쓸데없이 길고 비문투성이인 것은 그냥 넘어가자(어차피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길게 나열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광장사용을 불허한다는 논리는 참으로 황당하다.
시민들이 쓰기 위해 광장이 있는 거지, 광장을 위해 시민들이 나가야 하나.
그러면 서울광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저 파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환경주의자 오세훈, 이명박씨의 마음인가?

아무래도 서울시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영화 상영작 다수가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영화제가 불법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승인 취소 이유를 밝혔다.
당연히 인권영화제에는 정치적인 내용의 영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니 인권 자체가 정치적인 주제이니 당연히 인권영화제는 정치적인 내용을 다뤄야 한다.
인권영화제에서 정치적인 영화를 빼라고 하면 무슨 영화를 틀 것인가?

이 역시 솔직하지 못한 답변이다.
아마도 서울시나 정부의 마음은 또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제 13회 인권영화제의 개막작품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개발에 맞선 그들의 이야기"이다.
소위 용산참사에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유가족들의 고독한 싸움을 다룬 영화다.
자신들이 애써 잠재운 사건을 다시 물 위로 건져 올려 다루고 뉴타운과 재개발같은 삽질이 다시 공론의 장에 오르니 서울시나 정부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인권영화제는 무료로 진행되어 누구나 그 영화를 감상할 수 있으니 무조건 영화제를 막을 수밖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용산은 잊혀지지 않고 서서히 정치적인 의제로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가 평화미사를 드려온 데 이어,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가 용산현장을 방문해 분향소를 찾았다.
종교계까지 움직일 정도로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광장을 가로막고 행사를 불허하는 것으로 이런 민심을 막을 수 있을까?
광장을 막을테면 막으라.
광장을 공터로 만들 수는 있어도 시민의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되살아난 정의의 불씨가 부조리한 권력을 무너뜨릴 날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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