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강의를 했던 청어람아카데미에서 강의 하나를 맡았다.
지속적인 강의는 아니고 일회성...
얼마 전 녹색평론에 글을 쓰면서 한국의 기독교사회주의 흐름을 잠깐 살펴봤는데, 얘기할 것이 제법 많았다.
공부를 조금 더 해서 그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한국사회의 기독교인들은 톨스토이와 아나키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강사소개

 

1 "태평천국(太平天國)을 꿈꾸다: 홍수전의 이상과 현실"

중국선교사들이 이러다 중국이 기독교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지켜보았다던 태평천국의 난과 이를 이끌었던 홍수전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는 구호가 전 중국을 일으켰던 사연의 기승전결을 만난다. 

 

강의 : 조영헌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

 

2 "우리는 낙원을 잃어버렸다: 불굴의 존 밀턴"

영국 역사상 왕정이 끊어졌던 유일한 시기인 청교도 혁명기 전 유럽을 상대로 공화정의 등장을 알리는 유려한 라틴어 문장가이자 검열철폐를 주장했던 언론자유의 수호자, 40대에 눈이 먼 채로 불후의 역작 실락원을 남긴 문학가 존 밀턴을 소개하는 첫 기회.

 

강의 : 박상익 (우석대 사회교육과 교수)

 

3 "나는 산꼭대기에 서보았네: 마틴 루터 킹"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닮고 싶어하는 위대한 웅변가이자 설교자 킹 목사. 흑백인종차별이란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해서,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동력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시대가 부를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

 

강의 :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4 "혁명적 침묵: 토마스 머튼의 영성"

20세기 영성가들은 누구나 토마스 머튼의 거대한 영적자산에 자신들이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머튼이 노동자의 삶과 평화운동에 얼마나 깊게 헌신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영성 추구는 세상과 괴리가 아니라, 더 치열한 개입을 위한 헌신이다.

 

강의 :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

 

5 "작은 성자들: 한국 기독교의 잊혀진 이름들"

역사는 영웅만 기억하지만, 성경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이름들을 잊지 않는다. 종교전문기자가 이 땅 곳곳에서 발굴한 우리가 잘 모르는 무명성자들 이야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아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였는지 찬찬히 만나는 시간.

 

강의 :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부 기자)

 

6 "폭력과 소유로부터의 자유: 톨스토이와 아나키즘"

기독교 역사 내에 언제나 소수파로 이어져 온 평화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되살린 근대의 대표적 인물, 톨스토이. 그가 당대의 동서양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를 최근 국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아나키즘(anarchism)의 맥락에서 재평가하고, 재조명해본다.

 

강의 : 하승우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커리큘럼 소개
* 수강문의 : 319-5600 / bluelog@bluelog.kr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보려고 68혁명과 관련된 동영상을 검색해 봤습니다.
국내에서는 지식채널e에서 만든 두 편의 영상을 제외하면 거의 관련 영상을 찾을 수 없네요.
그런데 유투브에 가니 의외로 영상이 많이 있다.
혼자서 보기는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 동영상은 프랑스 68혁명의 전개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UJZgkhSCq8

이 동영상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섞어서 잘 보여주네요.
아래 동영상 말고도 여러 가지 동영상이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SIgJixhY3v0&feature=related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봉기를 다룬 다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SGYioMDtcQ&feature=related
https://www.youtube.com/watch?v=JOVtzCtM9xM&feature=related

켄트주립대학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다룬 내용...
https://www.youtube.com/watch?v=vyzoNCJvy4c&feature=related

이건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무슨 영화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ywKe8ezL8vI&feature=related

존 레논의 노래입니다.
위 영화의 노래가 나옵니다. give peace a chance라는..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은 아주 정치적인 인물이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I-NRriHlLUk&feature=related
https://www.youtube.com/watch?v=Wos-dDxpJlQ&feature=related
https://www.youtube.com/watch?v=-b7qaSxuZUg&feature=related

시작한 김에, 이매진의 가사를 한번 감상해 볼까요?^^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성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마무리를 할까요?
검색해보니 이 기도를 멋지게 부른 분들이 계시군요..
http://cafe.daum.net/bulkot/3AXF/2820?docid=AqeX|3AXF|2820|20100205234210&q=%C6%F2%C8%AD%C0%C7%20%B1%E2%B5%B5&srchid=CCBAqeX|3AXF|2820|20100205234210
  1. 2010.03.16 13:57

    비밀댓글입니다

연세대 문화학과 학술세미나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마도 지행네트워크와 관련된 얘기,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한 얘기가 궁금한 듯하다.
재미있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 한번 다른 분들의 강의를 들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면 이런 세미나가 많아져야 할텐데, 외려 이런 세미나에 대한 지원조차 거의 없다니...
중앙대의 모습을 보면 한국 대학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지금 상태라면 이제 대학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이제 대학을 버리고 대학 밖에 '참대학'을 만드는 운동이 필요할 듯.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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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 십주년 춘계 공개 학술 세미나

 

취지: 삶의 총체적으로 조망해낼 문화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생긴 연세대 문화학 협동 과정이 올해로 열 살이 되었습니다. 설립 당시에 기대한 만큼 활발한 학제간 연계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유감으로 생각하면서 현 시대를 조망하는 십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지금 우리의 일상을 압도하는 시장 권력사회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여서 어떻게 다시 여기 각자 선 자리에서‘사회’를 소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추방 권력’과 ‘생명정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농업’ ‘환대’’마을’등의 다양한 주제로 논의가 될 이 세미나에는 이미 '달라진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실천적 연구자들이 초대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삶을 이론화하면서 작은 시내를 만들어가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배워가는 기쁨을 누리기 바라며, 수강하는 우리 우리 자신들 역시 시내를 만들어 새로운 바다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 아바타, 잉여 인간, 그리고 복제 인간의 시대

 

1강 (3월 10일)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러낼 것인가? - 히키코모리의 정치학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강 (3월 17일) 추방 권력과 생명 정치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3강 (3월 24일) 노동하는 우리는 환경의 적인가?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4강 (3월 31일) 10대/청소년이 감지하는 추방권력

               (김순천, 김희옥 /르포작가)

 

5강 (4월 7일) 자본주의의 공간과 ‘일방통행로’

              (김영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전 연구 교수)

 

6강 (4월 14일) 장소, 성원권 그리고 환대의 인류학

               (김현경/ 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

 

7강 (4월 21일) 생명정치와 삶의 권리 찾기 

              (백영경 / 연세대 문화 인류학과 강사)

 

8강 (4월 28일) 이방인과 관용, 그리고 환대의 철학

               (김애령 / 이대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9강 (5월 5일) 내 친구의 단골집은 어디인가?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10강 (5월 12일) 자치와 자급의 공동체, 협동조합

              (하승우 / 한양대 연구교수,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11강 (5월 19일) 우정과 마을 이야기-수유+너머

                (고병권 / 수유너머 R 연구원)

 

12강 (5월 26일) 하자마을 십 년의 이야기-사회적 기업과 배움의 공동체 (전효관:하자센터 센터장 강원재:하자센터 기획부장)


민주노동당의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첫번째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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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전략과 초심의 진보정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집권전략이 논의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구상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으면 도루묵이니 지금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을 때 집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런 논의에 묻어나기도 한다.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논의하고, 선거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등 진보정당의 움직임도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다. 왜 진보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삼는가? 물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공직자를 배출하고 집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교육을 진행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일도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선거가 정당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중요한 실험대이지만, 그 실험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뒷받침될 때에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무엇일까? 신문을 장식하는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삶이나 욕구와 무관한 공공시설들이 많은 돈을 들여 허술하게 세워지고, 갑자기 멀쩡한 동네가 재개발지구나 사업지구로 지정되기도 한다. 그 지역과 상관없는 지역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어떤 공립 어린이집에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런 사건들이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당은 이런 사건들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고 정책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활동으로 정당은 자신의 정당성과 정책을 시민들에게 조금씩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당의 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정당은 이런 과정을 얼마나 착실히 밟아왔을까? 2005년도에 민주노동당이 발간한 『당원 정치의식 및 정책성향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의 일상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당원이 지구당원의 39.8%, 시도당원의 54.7%, 중앙당원의 61.8%를 차지한다. 그리고 일상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원의 62.2%가 직장일이 바빠서라고 답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이런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속 시원한 말과 과감한 정치활동으로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진보정당의 지방의원들이 착실하고 꼼꼼한 정치활동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과 주민들이 진보정당을 믿고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의원들만 돋보일 뿐 정당의 정체성은 점점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의 정당이 있을 뿐 정당의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진보정당이 자기 마을에서 하려는 일을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당원들이라도 그런 내용을 알고 참여할까?


이런 상황에서 집권전략을 논의하는 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선거가 다가왔으니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선거철에 지역에 뭘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보수정당에도 수두룩하다.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집권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그것만이 진보정당의 목표일 수는 없다. 더구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지금의 선거판은 내 편을 단단하게 다지지만 다른 편을 내몬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집권(執權)전략이 아니라 집권(集權)전략이 된다. 선거에 지든 이기든 친구보다 적만 늘어난다.


진보정치는 우리와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가능하다. 나는 진보‘정당’보다 ‘진보’정당이 보고 싶다.


김상봉 선생이 쓴 칼럼을 경향신문이 실지 않아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7155315&section=02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대한 서평 형식의 글이었다.
김상봉 선생은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 글이 인터넷 신문에 공개되고 맥락이 드러나면서 경향신문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경향신문의 사정을 고민해줄 필요는 없지만 경향신문에는 좋은 기자들이 있다.
아마도 김상봉 선생이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한다.
삼성과 광고를 의논하고 칼럼을 막은 건 경영진이나 편집데스크의 생각이지 일선 기자들의 생각은 아닐 터이니...
왜냐하면 경향신문의 기자들이 재작년에 기획취재한 '지식인의 죽음'이 바로 그 사실을 드러낸 보도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는 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할 수 없으나 현재 재정상황이 아주 좋지않은 경향신문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사인]이 [시사저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언론사를 만들었던 길을 되밟는 건 현재의 상황으로 거의 불가능한 듯하고...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삼성이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로 굳어져 버렸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예기치않은 사건은 누구에게 더 상처를 줄지...

김용철 변호사의 비리폭로나 태안사건, 이건희 회장의 사면 등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한국사회가 유독 삼성에 약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피해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삼성재벌이 만드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이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리고 삼성가족의 계열회사까지 포함하면 자본의 망은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삼성을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어느 정도 비합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삼성과 관련된 것들은 피하고 있다.
삼성 래미안이 싫고, 삼성이 만든 제품이 싫고, 삼성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싫다(문자보내기가 쉬워 5년 전에 구입한 애니콜 휴대폰을 제외하면 거의 다 없앤 듯하다).
왜 싫냐고 물으면 내가 얘기하는 몇 가지 근거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고 정경유착의 비리가 많은 기업, 기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삼성만 아니면 다 괜찮단 말이냐, 다 똑같은 독점재벌인데"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거기에 딜레마가 있는 듯하다.
삼성이 아니면, 국내의 독점재벌이 아니면, 초국적기업이 아니면, 도대체 우리는 무얼 먹고 쓰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여성민우회생협 조합원이기에 먹을거리는 기존 유통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 외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독점자본이나 초국적자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급, 자치의 구조를 갖춰야 그런 비판이 완성될 수 있고 그 전까지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언론 역시 그런 구조를 얼마나 갖출 수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상봉 선생의 글이 경향신문보다 그 글이 정면으로 겨냥한 삼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되어졌으면 좋겠다.
어느새 자기검열의 수준까지 도달해버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우 약하다.
기득권층이 지배하고 재벌이 승승장구하며 이명박이 집권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취약한 게 아니다.
우리네 민주주의가 약한 것은 그것이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몸으로 겪으며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네 민주주의는 언제나 머릿속 아테네를 떠다닌다.
경험적이지 않기에 그 지식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슨 무슨 민주주의를 떠들기는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실제 공간에서, 일상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지식인은 아주 드물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제도의 수준에서만 얘기되지 실제 삶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진행되는 회의인 듯한데, 회의 발표 자료를 모두 공개했다.
http://tlc.oise.utoronto.ca/wordpress/conferences/
800페이지에 가까운 발표문들이 PDF파일로 묶여 있다.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섹션: 시민권의 학습과 참여민주주의 - 논쟁과 개념, 이슈들
2섹션: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3섹션: 고등교육에서 민주주의 학습
4섹션: 비공식 교육기관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5섹션: 사회운동과 정당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6섹션: 지역공동체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7섹션: 지역과 지방 거버넌스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8섹션: 전지구적 맥락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읽어보진 못했으나 서구사회에서는 시민권(citizenship)이 다시 핵심적인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여성과 이주민, 청소년처럼 기존의 시민권 논의에서 배제되어온 정치주체들을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포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라 얘기할 수 있다.

지금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제)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잡고,
선거만이 아니라 주민소송, 주민투표, 주민발의, 참여예산제도 등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하는 방법,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
웹상에서 이슈를 조직하고 알리는 방법,
동네를 조직하고 정치화하는 방법 등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다음 달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최소한 뭐라도 한 가지 하면서 욕을 하고, 내 속의 분노를 정치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보자는...
그런 과정에서만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1. 문강 2010.02.12 13:13

    와우~ 올해가 가기 전에 형의 책을 볼 수 있는거?
    기대되네요.
    건강 잘 챙기면서 쓰세요~
    형수님과 (뱃속의) 아이도 잘 있겠지? :)

    • 몽똘 2010.02.16 10:35

      음, 올해가 가기 전에는 형의 책 두 권을 보게 될거야.ㅎㅎ 해정씨와 아기 모두 잘 지내고 있어. 너두 새해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잘 되길 빌께...

미국의 작가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경관과 찬송가'에서 주인공 소피는 추운 겨울을 교도소에서 보내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른다. 자존심 강한 소피는 자선단체의 적선을 받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교도소에서 지내려 한다. 교도소에 가기 위해 무전취식을 하고 무단횡단을 하고 우산을 훔치지만 소피의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찬송가 소리를 들은 소피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삶을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소피는 경관에게 붙들려 금고 4개월의 형을 선고받는다. 이 작품에서 오 헨리는 불평등한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 헨리의 소설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유아사 마코토(湯浅誠)는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에서 경제대국 일본 내의 빈곤을 다루며 현실의 소피를 얘기한다. 마코토는 고용과 사회보험, 생활보호제도라는 3중의 사회안전망이 붕괴하자 가난한 사람들이 제 4의 대안으로 교도소를 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자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교도소를 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면서 소설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생계형 범죄라는 말이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2008 사회조사’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10명 중에 4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는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한 노숙자들이 교도소를 택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이정도면 소설 속 아이러니는 더 이상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런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두는 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올 해부터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에 대한 난방비 지원금이나 월세 지원금 등 각종 지원예산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연말이라 각계각층의 따뜻한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자선은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를 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인지 올해 10월 민간업체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교도소가 최초로 등장할 예정이다. 법무부의 ‘2010 주요업무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민영교도소를 허가해서 교도소 신축 비용을 줄이고 다양한 교화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기독교 재단법인 아가페가 경기도 여주시에 300여명의 수형자를 수용할 수 있는 민영교도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정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 잡지 않고 오히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나쁜 방향을 택하고 있다.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는커녕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그들이 교도소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법치주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불법시위와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경영권 편법승계와 조세포탈 및 배임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 100억 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하는 사회에서 법치주의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강요하는 정상적인 언어일 뿐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비극을 부를까? 새로 태어난 이들이 부모의 굴레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더 깊은 나락으로 미끄러지는 곳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가 없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기에 충동을 억누르지도 동기를 묻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까?

미래를 꿈꾼다면 우리 곁의 소피에 관심을 쏟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3·1운동, 직접행동으로 주인임을 증명하다!

 

 

1919년 4월 1일 밤 11시, 경기도 화성시 수촌리의 주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개죽산 봉우리는 마치 산불이 난 듯 환했고 만세 소리가 온 마을을 뒤덮었다. 개죽산만이 아니라 쌍봉산, 천덕산, 당재봉, 무봉산 화성 일대의 산봉우리들이 붉게 타올랐고 깜깜한 밤공기를 타고 만세소리는 사방으로 퍼졌다. 일본 헌병대가 총을 쏘며 산기슭을 올랐지만 도망을 치면서도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입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 3월 말에는 인근 수원에서 위생검사와 도박을 핑계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일본 경찰 1명이 주민들에게 맞아죽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칠흙같은 밤 수촌리 주민들의 마음은 산 위의 횃불처럼 불타올랐다. 이대로 꿇고 사느니 서서 죽자, 굳은 다짐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같은 날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주민들은 몽둥이를 들고 일본인들이 사는 마을로 쳐들어갔다. 그 놈이 그놈이지만 일제가 권력을 잡은 뒤에는 삶이 더 어려워졌다. 자기 땅을 짓던 사람들도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대부분이 높은 소작료에 시달렸다. 심지어 일제는 일본 모종을 심어라, 뽕나무를 키워라, 매달 가마니를 몇 장씩 짜서 내라는 온갖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주민의 82.9%가 소작농이던 칠곡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안성 주민들은 헌병주재소를 불태우고 전선을 끊었으며 우체국과 면사무소에 불을 질렀다. 주민들은 일본인의 상점도 부쉈고 심지어 다리나 철도까지 끊으려 했다. 심지어 일본 군대가 공격할 것을 대비해 산 위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기도 해서 상해임시정부는 시위대를 ‘독립군’이라 부르기도 했다. 일제는 이날 경기도 안성의 만세시위를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의 시위와 더불어 ‘전국 3대 폭동’이라 불렀다.

 

유관순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우리가 유관순 누나와 태극기, 만세 삼창으로만 기억하는 3․1운동은 조선 말기 수많은 민란들의 뒤를 이었고, 가까이는 1894년 동학혁명의 기운을 이어받았다. 이 땅의 민중들은 산꼭대기에 횃불이나 봉화를 피우고 만세를 외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했다. 시골 장터가 열리는 곳마다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사람의 시신을 떠메고 상여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학생들은 학교 문을,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닫았다. 농민들은 일제 품종이나 묘목을 심지 않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일제 상품을 사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어린이, 거지, 기생들도 만세를 외치며 시위의 주체로 등장했다. 심지어 삼베 주머니로 도시락을 만들어 망태에 넣고 돌아다니는 전문 시위꾼인 ‘만세꾼’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데 누가 감히 운동을 이끌었다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참여한 사람들도 200만 명을 넘었다. 그리고 3월 1일만이 아니라 3월부터 4월 말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3.1~3.10

3.11~3.20

3.21~3.31

4.1~4.10

4.11~4.20

4.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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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34.6

65.4

 

<표>에서 드러나듯 서울의 만세시위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점점 수그러들었지만 오히려 전국 각지에서 그 기운을 이어받아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3월 말과 4월 초는 시위의 정점을 이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목숨 걸고’ 거리에서 일제와 맞섰다. 때로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때로는 돌멩이를 던지며, 때로는 낫과 몽둥이, 호미를 들고 경찰, 헌병과 맞섰다.

그 엄혹한 일제 시기에, 나라조차 없는 상황에서 거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저항했을까?

 

헐벗은 삶에서도 저항은 시작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목적은 단순히 조선이라는 영토를 지배하는데 있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인의 삶에서 자발성과 능동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려 했다. 왜냐하면 일제는 동학농민전쟁을 경험했고 을사조약 이후에도 수많은 의병들의 저항을 강제로 억눌러야 했기 때문이다(일본 측의 통계를 따라도,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총 2,852회의 전투가 벌어졌고, 141,185명이 이 전투에 참여했다). 따라서 일제는 민중의 삶 자체를 뿌리째 뽑아 그 삶이 외부의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일제는 행정부, 사법부의 주요 관리들을 일본인으로 교체할 뿐 아니라 헌병과 경찰의 수를 대폭 늘리고 이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헌병과 경찰은 단순히 범죄를 단속하고 첩보를 수집하는 역할만을 맡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심으라는 모종을 심지 않거나 토지측량을 거부하거나 위생검열에 응하지 않으면 헌병과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1910년에 제정된 ‘범죄즉결령’은 결찰서장이나 헌병분대장이 구류, 태형 등의 범죄나 3개월 이하의 징역, 100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를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1912년에 제정된 ‘조선태형령’은 조선인의 경우 징역이나 벌금 대신에 매질을 하게 했다. 따라서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은 자기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이면 아무나 끌고 와서 매질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일제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해 소유가 분명하지 않은 땅들을 강제로 빼앗았고 이를 이주하는 일본인들에게 팔아넘겼다. 그리고 이들은 농민들에게 비싼 소작료를 걷었다.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은 비싼 소작료를 낼 뿐 아니라 일본 모종을 쓰고 일본식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했다. 종자를 골라 모를 심고 수확하고 건조하고 탈곡하는 과정 모두에 식민권력이 간섭하며 일일이 명령을 내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모종을 밟아 뭉개고 벌금을 매겼다. 또한 도살세, 연초세, 주세, 학교조합비 등 각종 세금을 거뒀다.

일제의 만행은 이렇게 개개인의 삶을 억누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저항의 힘이 자치공동체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자치공동체인 동이나 구를 없애고 강제로 면으로 통합시켰고 대부분의 면장을 일제에 협조적인 사람으로 바꿨다. 일제는 지역의 자치공동체를 무너뜨려 중앙집권적인 식민지 지배구조로 흡수시키려 했다.

3·1운동은 이렇게 국가와 자본에 내몰리고 뿌리 뽑히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극렬한 저항이었다. 일제는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지고 있음을 눈치 챈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싸웠다. 시위 때의 구호도 다양했다. 길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은 “지금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면장이든 면서기이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를 위하여 이렇게 우리들은 진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조금이라도 국가를 위하여 진력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는 놈은 때려 죽여라”, “지금부터는 모자리 일을 할 것도 없다. 송충이를 잡을 필요도 없다”, “바닷가의 간척공사도 안 해도 좋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조선이 독립하면 부역, 세금이 필요 없게 될 것이며”, “이제부터는 묘포(苗圃)일도 할 것 없고 라고 외쳤다.

이렇게 민중들은 자신이 이 땅의 주인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권력이나 자본의 간섭 없이도 자신들이 잘 살 수 있음을, 그리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마련하는 삶이야말로 올바른 대안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점은 자치공동체가 해온 역할을 대신하던 면사무소가 공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전남 순천, 평안도 의주, 평안도 신미도 등지의 주민들이 면사무소를 접수하고 자치업무를 봤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다시는 헐벗은 삶으로 내몰리지 않으리라는 강한 의지가 국가의 폭력을 넘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었다.

자기 목숨을 건 자발적인 정치의 운동이었기에 일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시위를 막아도 지방으로 들꽃처럼 번져가는 불길을 잡기는 어려웠다. 언제, 어디서 만세시위가 벌어질지 몰랐기에 일제는 가늠하지 못했다.

 

직접행동과 전쟁상태

 

이런 민중의 의지를 보았기에 일제는 이에 맞서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 민중이 일제의 ‘치안’을 무너뜨리고 ‘정치’를 지향하자 일제는 경찰, 헌병만이 아니라 일본인 자위대, 소방대까지 동원해서 민중을 탄압했다. 그런 상태에서 폭력․비폭력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위들은 민족대표들이 주장했던 평화시위를 따랐지만 일제의 폭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헌병이나 경찰이 총을 쏘고 주동자를 연행하며 강제로 해산을 시도하면,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도 돌멩이, 죽창, 삽, 도끼 등을 든 시위로 변했다. 그래서 <표>에서 드러나듯 3월 말이 되면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경기도 수원 화수리의 항쟁은 계획적으로 헌병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경찰을 때려죽이기도 했고, 평안도 안주에서는 체포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헌병주재소장과 헌병 3명을 붙잡아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직접행동에 일제는 마을 전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맞섰다. 화수리의 경우 일제는 마을의 집 30채를 불지르고 마을주민들을 끌고가 갖은 고문을 다했으며 주모자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안성 지역에서는 일제 경찰과 함께 보병부대가 주민들을 검거에 나서 1명을 죽이고 20명을 부상시켰으며 9채의 집에 불을 질렀다. 심지어 부대가 학교에 야영을 하며 한 달 동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이렇듯 무장하지 않은 민중이 무장한 권력에 맞섰던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역사가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창으로 찌르고 칼로 쳐서 마치 풀을 베듯 하였으며, 촌락과 교회당을 불태우고 부수었다. 잿더미 위에 해골만이 남아 쌓이고, 즐비했던 집들도 모두 재가 되었다. 전후 사상자가 수만 명이었고, 옥에 갇혀 형벌을 받은 사람이 6만여 명이나 되었다. 하늘의 해도 어두워져 참담하였으며, 초목도 슬피 울었다”고 적었다. 일제는 마을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을 저지른 뒤에야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런 피의 전쟁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민중의 정치를 다시 치안의 틀에 가두기 위해 일제는 ‘문화정치’를 펼쳤다. 이 문화정치는 민중들을 분열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상가 함석헌의 말처럼, “일본 군인의 총칼도 감옥의 생죽음도 무서워 않던 민중이 풀이 죽기 시작한 것은, 되는 줄 알았던 독립이 아니 돼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뒤 소위 일본 사람의 문화정치 밑에서 사회의 넉넉한 층, 지도층이 민중을 팔아넘기고 일본의 자본가와 타협하여 손잡고 돈을 벌고 출세하기를 도모하게 됨에 따라 민중의 분열이 생기면서부터였다.” 작가 이광수를 비롯한 거짓된 자치주의자들이 민중들의 자치의지를 대신하려 들었고 한국인 지주와 자본가들은 민중의 피를 팔아 자신들의 이득을 꾀했다.

스스로 다스리며 살겠다는 민중의 의지에 공포를 느낀 것은 일제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 기득권층의 국가는 역사를 왜곡해서 3․1운동의 다양한 목소리를 ‘독립’이라는 국가주의의 목표로 축소시켜야 했다. 그 다양한 목소리와 정치행동은 모두 사라지고 유관순 누나의 비폭력만 남아야 했다.

 

3·1운동과 촛불집회, 앞으로의 사회운동...

 

역사학자 이정은의 말처럼 “1919년 2월 28일 밤 서울 시내에 독립선언서가 뿌려지고, 이튿날 아침 각처의 집 대문 앞에서 광무황제 독살설을 알리는 격문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발견한 일제 경찰도, 이를 추진했던 민족진영에서도 이 운동이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파급되어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앙마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모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청소년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을 때, 이를 지켜보던 어느 누구도 이 운동이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파급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누구도 싸움이 벌어지리라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사건은 터진다. 이런 사건은 아주 우연히, 우발적으로 터지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의도적인 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3·1운동은 의도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던 사건이다. 우리는 그 사건을 패배라 여기지만 1920, 30년대의 운동을 보면 그렇게 평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3·1운동으로 민중의 폭발적인 정치적 잠재력을 확인하게 된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이를 조직적인 운동으로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1920년 4월 11일 창립한 <조선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로 노동운동을 전면에 내걸고 조직되었다. 소작농민들은 ‘불납동맹’, ‘아사동맹’, ‘소작권상실 걸인단’을 만들어 싸웠고 ‘소작인조합’, ‘농민조합’은 전통적인 자치공동체를 이용해 마을 지주들에게 기금을 걷고 민간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동의 뿌리를 강화시키려 했다. 청년학생들은 민중을 대상으로 야학/여자야학과 강연회, 토론회 등을 열며 지역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지역운동의 구심점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아나키즘, 맑스-레닌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강연회와 야학, 독서모임에서 대중과 더불어 논의되었다.

그리고 시위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은 것은 중앙의 지도부가 전국의 시위를 조직하지 않고 각 지역의 지식인들이 자기 동네에서 시위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그 전의 민란과 농민운동이 그러했듯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들불처럼 번져가는 시위는 쉽게 그 불길을 잡히지 않았고 민중의 삶이 그 운동과정과 방식에 반영되었다.

이처럼 3·1운동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출현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3·1운동은 스스로를 거름으로 만들어 새로운 것의 불씨를 만드는 운동이었다. 이 점은 3·1운동의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3·1운동이 가장 극렬했던 곳은 예전에 동학농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지 않은 곳이었다. 모를 돌아가며 심듯이 짓밟힌 곳은 잠시 숨을 죽였고 싹을 틔운 곳은 그 숨이 끊이지 않도록 운동의 맥을 이어갔다. 이 운동은 국가의 폭력에 ‘사상’과 ‘자기조직화’로 맞섰다.

3·1운동은 사회운동이 민중을 이끌려 하거나 민중이 사회운동을 배제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그러했기에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중들은 1920, 30, 40년대에도 끊임없이 저항운동을 조직했다. 그러니 3․1운동은 민중이라는 주체를 드러내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함석헌은 3․1운동 이전이 “정치가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 영웅주의의 역사”였다면, 그 이후는 “씨알의 역사다. 자주(自主)하는 민(民)의 역사”라고 말했다.

2009년을 마감하는 우리는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해왔고 어떤 운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2010년에 우리는 어떤 새로운 조직, 새로운 이념, 새로운 정치를 맞이할 수 있을까? 준비 없이 꽃은 피지 않는다.

 

 

참고한 책

 

이정은 지음, 『3․1독립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국학자료원, 2009).

박환 지음, 『경기지역 3․1 독립운동사』(선인, 2007)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소명출판, 2008)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 엮음, 『3․1민족해방운동 연구: 3․1운동 70주년 기념논문집』(청년사, 1989)

조동걸 지음, 『일제하한국농민운동사』(한길사, 1983)

함석헌 지음, 『생활철학』(서광사, 1966)

함석헌 지음, 노명식 엮음, 『함석헌 다시 읽기』(인간과자연사, 2002)


인터넷 즐겨찾기에 나쁜놈들이란 '폴더'가 있다.
언론기사를 읽다 눈에 걸리는 기사들을 즐겨찾기하는 폴더인데, 이제 기사가 넘쳐 난다.
매달 칼럼을 쓸 때마다 한번씩 쓰고 정리하곤 하는데도 줄어들기는 커녕 달이 지날수록 늘어나기만 한다.
까칠한 내탓이냐, 미쳐 돌아가는 세상 탓이냐...

용산참사 유족들의 신변문제가 합의되었다고 한다.
간만에 본 9시 뉴스 첫보도이다.
다들 자기 성과, 누구 탓이라고 떠들어댄다.
합의금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35억이라는 얘기가 버듯이 보도되고...

허나 이미 구속된 사람들은 여전히 징역을 살아야 하고,
명동성당에 있는 래군이형과 대책위 사람들은 곧 감방에 가야한다.

다시 또 싸울 수 있을까?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다시 찾아올 거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생각이 많은 밤이다.

크리스마스 오전 11시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크리스마스 미사가 열렸다.
흐리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대로변까지 늘어설 정도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남일당을 찾았다.
돈을 좇지도,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세상오심을 기렸다.
예수가 누운 말 구유야말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뜻하는 것이란 신부님의 말씀이 있고, 약간은 낯선 미사가 진행되고 난 뒤, 신부님이 소리쳤다. "평화를 빕니다", "모두 힘을 냅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얘기가 아닌가. 평화를 빌고, 힘을 내야 한다. 그런 이들이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유족분은 먼저 간 사람들의 눈물이라며 목 놓아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게 미사가 끝나고 난 뒤 모두 '그날이 오면'을 합창했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였고, 그 가사가 마음을 파고 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난 뒤 어느새 문화로 잡아버린 듯한, 아는 얼굴들을 찾는 시간...
여러 사람의 모습을 접하고 마음이 따뜻했다.
아직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미사가 끝나고 난 뒤 밥차에서 사람들과 나눠먹었던 떡국도 아주 맛있었다.
평화는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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